목   차

들어가며

(1) 지뢰

(2) 7개의 군사분계선
   1) 정전협정 원본지도상 군사분계선  
   2) 군사분계선 표식을 연결한 선 
   3) 유엔사의 디지털 군사분계선 
   4) 미국국립지리정보국의 디지털군사분계선 
   5) 한국국방지형정보단의 디지털군사분계선 
   6) GP와 OP에서 실제 사용하는 군사분계선
   7) 조선의 군사분계선

(3) 군사분계선 이념

(4) 표면과 계면

(5) 국경선 이념

(6) 9.19남북군사합의서 틀
   1) 복원
   2) 실행
      1. 1단계 유엔사 비관련 사업
         서해5도 평화수역 파시
         한강하구 선박통행검사소 
         철조망‧용치철거와 감시체계전환사업 
         면사무소 설치 
        우선순위
     2. 2단계 유엔사관리권 부분이양사업
     3. 3단계 유엔사관리권 전부이양

나오며


들어가며

지뢰사고는 구조화된 사고이며, 그 구조에는 조선의 남부국경 경계선과 정전협정의 군사분계선 간의 충돌이 있다. 문제의 핵심은 이 충돌을 어떤 틀에서 다룰 것인가에 있다. 

야당은 지뢰사고를 집요하게 정쟁화한다. 통일부장관은 사고의 본질을 군사분계선 불일치문제라고 의제전환했다. 진보진영도 대체로 이에 동조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의제설정이다. 군사분계선 일치화는 2014년 유엔사재활성화를 시작하면서 유엔사가 설정한 의제이다. 

2013년 조선이 정전협정폐기선언을 함으로서 법적으로 정전협정은 일방적으로 폐기되었다. 유엔사로서는 유엔사의 존립기반인 정전협정을 어떻게든 유지해야하는 입장이었다. 당시 정전협정에서 유효성을 갖는 것은 군사분계선이 유일하다고 판단되는 시점이었다. 군사분계선 일치화의제는 정전협정과 유엔사연명을 위한 의제였다.

상식이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정전협정이 무효화되었다고 생각하다가도 예상치 않은 일이 발생하면 습관처럼 유엔사에게 중재자나 해결사 역할을 주문하고, 정전협정에 의존하여 판단을 구하려 한다. 

정전협정과 유엔사가 법적운명을 다했음에도 좀비처럼 살아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우리자신의 관성 때문이다. 정전협정을 제대로 모르다 보니 유엔사가 하는 정전협정해석을 신주처럼 따른다. 군사분계선 일치화는 북에는 아무런 효력도 없고 결과적으로 한국을 향해서만 정전체제를 굳히는 유엔사의 의제설정 전략이다. 

그러나 한국정부엔 정전협정 대신 9.19남북군사합의서가 있다. 분계선 논의도 지뢰제거 논의도 9.19남북군사합의서의 틀에서 다루어지도록 틀 자체를 바꿔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의 약속대로 선제적으로 9.19남북군사합의서를 복원하고 진정성을 보이면서 북이 호응할 수 있도록 한 후에야 경계선을 비롯한 여러 문제들을 논의, 해결할 수 있다. 우선순위를 정하고 순서에 따라 전진하며 우발적 사건들은 전략적 목표를 향하여 배치하고 관리해야 한다. 군사분계선 일치화 의제에서 9.19남북군사합의서 복원의제로 전환해야 한다. 이것이 나의 주장이다.

(1) 지뢰

정전협정 13항 ㄱ목(주1)에 의해 비무장지대의 지뢰는 정전협정 발효 후 3일 내에 철거되어야 했다. 남북은 이를 모두 위반한 채 기존의 지뢰를 제거하지 않거나 심지어 새로 매설해왔다. 1999년 9월 국방부가 제출한 국감자료에 의하면 남한지역에는 약 105만 여개의 지뢰가 매설된 것으로,(주2) 2016년 한국 합참발표에 의하면 남측 비무장지대와 민통선일대에 127만개, 북측 비무장지대에 약 80만개가 매설된 것으로,(주3) 2020년 10월 합참발표에 의하면 한국 쪽 DMZ와 민통선 일대에 지뢰 82만 8천개가 매설된 것으로 확인되었다.(주4) 1평방미터에 매설된 지뢰수를 지뢰매설밀도라 하는데 한국의 비무장지대는 1평방미터 당 2, 3발로 세계 1위이다.(주5)

지뢰사고로 피해를 입은 것은 국군만이 아니다. 합동참모본부 관계자는 2024년 6월 18일 언론브리핑에서 “인민군은 전선지역 일대 불모지 조성 및 지뢰 작업 중 여러 차례의 지뢰 폭발 사고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주6)하고 있다고 밝혔다. 남북 모두 정전협정을 위반한 상태에서 일어난 지뢰사고에 대해 서로 정전협정 위반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것은 집단폭력범죄현장에서 상대방이 나를 친 것만을 범죄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지뢰는 적과 아를 가리지 않는 특성 때문에 무차별살상무기로 분류된다. 실제로 한국에서의 지뢰사고는 조선의 인민군이나 간첩에 대해서 보다 한국의 군인과 국민에게서 압도적으로 발생했다. 

총격이나 포격과 달리 지뢰공격은 의도와 결과의 시간적 불일치, 표적공격의 불가능성, 매설에서 유실로의 유동성, 매설의 용이성과 제거의 험난성, 사고의 우발성으로 인하여 무기자체로서의 통제력이 의심되어 왔다.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원폭 이후 핵무기로 인한 피해가 전무했던 것은 통제력 때문이었다. 그에 비해 지뢰는 거의 통제불가능한 무기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20분에 1명꼴로 사고가 발생하고 있는 이유이다.

합리적 사고를 하는 당국자라면 지뢰사고를 계기로 더 많은 지뢰를 묻는 것보다 상호 제거하는 정책을 택해야 할 것이다. 1998년부터 국제대인지뢰금지캠페인(ICBL)과 한국대인지뢰대책회의(KCBL)는 “대인지뢰금지협약(오타와조약)의 남북한 공동서명”을 촉구해 왔다.(주7) 그러나 올해 오타와조약 탈퇴국이 출현하기 시작하는 등 국제적 지뢰제거규범의 후퇴가능성이 높아졌다. 더구나 남‧북이 당장 오타와조약에 가입할 가능성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9.19남북군사합의서는 현실적으로 지뢰제거를 확장해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 남북이 오타와 조약 동시가입으로 가기 위해서도 지뢰제거에 대한 가장 실질적인 희망은 9.19남북군사합의서이다.(주8) 9.19남북군사합의서에 따라 북이 지뢰 636개를 제거했다는 것이 그 증거이다.(주9) 

(2) 7개의 군사분계선

최철영은 ‘정전협정이 규정하고 있는 사항 중에서 가장 준수가 잘되고 있는 사항은 군사분계선의 위치에 관한 제2항이다. 북한은 1996년 4월 비무장지대 유지관리의무 포기선언에서도 군사분계선 자체의 존재를 부인하지는 않았다.’(주10)고 했다. 이처럼 군사분계선은 정전협정의 존재의의를 증명하는 마지막 보루였다. 이번 불행한 지뢰사고로 정전협정에서 유일하게 유지되고 있던 군사분계선마저 흔들렸다. 정전협정의 마지막 보루가 흔들린 것이다. 

국방부는 지난해 11월 북한에 MDL 기준선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군사회담을 제안했고, 일단은 한국군과 유엔사의 MDL 인식차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자 그 이후 TF를 구성해 협의해 왔다고 했다.(주11) 이를 통해 이번 사고의 원인이 된 유엔사의 ‘현장조사’가 군사분계선 확인과 관련된 것임을 유추할 수 있다.

현재 군사분계선에는 여섯 개의 유형이 있다. 

1) 정전협정 원본 지도상 군사분계선,  
2) 군사분계선 표식을 연결한 선, 
3) 유엔사에서 사용하고 있는 구글어스(Google Earth)상 디지털 군사분계선, 
4) 미국 국립지리정보국이 사용하는 디지털 군사분계선, 
5) 한국 국방지형정보단이 사용하는 디지털군사분계선, 
6) 비무장지대의 한국군 전방 초소인 GP와 OP에서 실제로 인지하고 사용하는 군사분계선.
7) 조선측에서 사용하는 군사분계선이다.(주12) 

7개의 군사분계선이 있다는 것은 나와 동일인물이 6명 있다는 것과 같으며 이중 진짜 내가 누구인지 입증할 길이 없다는 것과 같다. 조선측의 군사분계선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으므로 6개의 군사분계선에 대해 하나씩 살펴보자.

1) 정전협정 원본 지도상 군사분계선

실물을 지도로 옮기는 작업은 측정할 수 없는 것을 측정할 수 있는 것으로 전환하는 작업이다.(주13) 모델이론에 따르면 지도는 실재의 기호이면서 실재에서 작동하며 실재를 규정하는 척도라는 점에서 전형적인 모델이다. 또한 이는 기표의 기의화, 은유의 환유화, 가치의 가격화와 같은 구조를 갖고 있다. 지도는 아무리 정밀해도 완벽할 수 없지만 법적으로 합의됨으로서 실재를 규정하는 기준과 근거가 된다. 이로써 지도에는 권력이 부여되게 된다. 지도는 주체가 아님에도 이념으로서 물신적 권력을 갖는 것이다. 합의라는 봉합을 통해 지도의 권력과 권위가 유지될 때는 문제가 없지만 봉합된 틈이 노출될 때, 틈은 점점 더 큰 균열이 되고 흔들리기 시작한다. 불행한 지뢰사고는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정전협정의 마지막 권력을 흔들고 말았다. 이는 정전협정 지도자체가 원래부터 갖고 있던 균열이 현실과 결합되어 폭로된 것이다.

정전협정 지도철의 도엽들은 UTM 좌표계(주14)에 투영되었으며, 세계측지계가 아니라 지역측지계인 동경측지계(주15)가 사용되었다. 세계측지계는 인공위성 궤도추적기술(GPS/GNSS)을 바탕으로 지구의 실제 질량중심에 타원체의 중심을 일치시켰다. 동경측지계는 일본의 도쿄 천문대를 원점으로 삼은 지표중심측지계로 지구중심에서 타원체의 중심이 비켜나 약 100~200m 이상 오차가 생긴다.

19세기~20세기 초 측량 시에는 위성기술이 없었으므로 추(Plumb line)를 이용한 천문측량에 의존했다. 그러나 지구 내부의 밀도불균형과 산맥 등의 질량 때문에 중력방향(연직선)이 기울어지는 ‘연직선 편차’가 발생한다. 동경원점을 설정할 때 발생한 이 연직선 편차는 한반도까지 삼각망을 따라 연쇄적으로 확산되어 오차를 키운다. 이로 인해 한반도 지역에서는 동경측지계 좌표를 세계측지계로 전환할 때 위도방향으로 약 10.9초(약 335m 남쪽), 경도 방향으로 약 11.5초(약 28m 동쪽) 이동하게 되며, 합성거리 오차가 약 365m(남동쪽 방향)로 나타난다.(주16) 과거 한국의 모든 지적도는 동경측지계에 따른 베셀형이다. 이는 수치지형도로 알려진 세계측지계(GRS형)로 변환하지 않으면 건축과 조경 등의 현장에서 전혀 사용할 수 없다. 이처럼 1984년 이전의 모든 지도측량체계는 자체에 이미 오차의 균열이 내장되어 있었다.

1953년 군사분계선 협상이 종료된 이후 지도 원본은 동경으로 공수되었다. 미 제64측지공병대대는 9부의 정전협정에 첨부되는 34장의 지도를 제작하였다.(주17) 이 지도들은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 이전에 사실여부를 모두 확인하였다. 사본을 검증하기 위해 라이트 테이블에서 지도 원본과 새로 인쇄된 지도들을 비교하였다. 검증이 완료된 각 사본에는 유엔사 및 인민군 대표가 서명하여 진본임을 인증하였다. 이 지도들은 하나의 철로 제작되어 정전협정과 함께 양측에 배부되었다.(주18) 그러나 지도제작체계도 현재의 관점에서 여러 문제점을 갖고 있었다.

첫째, 지도 사용자가 확실하게 판독할 수 있게 하려고 지물(地物)들을 단순화하거나, 지물들의 절대적인 위치를 상대적인 위치로 이동시켜 도식하였는데, 이에 따라 두 도엽에 걸쳐 표시된 동일 지물의 경우 도엽 간 오차가 발생할 수 있었다. 

둘째, 지도 도엽들의 접합부분은 서로 겹치는 부분이 없이 대부분 서로 맞닿게 되어 있어 도엽 간의 오차가 36m 발생했다. 그 결과 두 도엽에 걸쳐 있는 지물이 연결되지 않고 끊기는 부분이 존재하게 되었다. 이는 지도제작 그 자체가 제대로 되었어도 지형지물이 지도상에 정확하게 반영되지 않는 결과를 초래했다. 

셋째, 지도상의 격자의 너비와 길이에 약 0.5mm의 차이가 있어 격자가 완벽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제도사들이 자를 이용하여 수기로 격자 선을 그었음을 고려할 때, 0.5mm 이상의 오차는 예상가능한 수준이다. 이러한 오차는 도식 단순화로 인해 발생한 오차와 유사한 수준으로 신뢰도 90%인 1/50,000의 축척지도의 경우 지도상 지물들의 절대 정확도는 최대 50m의 오차가 발생할 수 있다. 

지도에선 군사분계선이지만 현실에선 군사분계면인 셈이다.(주19) 더구나 지도를 근거로 한 많은 규정들의 오차는 말할 것도 없다. 예를 들면 군사분계선 155마일은 그 근거가 없을 뿐 아니라 잘못된 것이다. Becker는 ‘정전협정으로 인해 폭 2.5마일, 길이 148마일의 비무장지대가 설치되었다’(주20)라고 기술하였다. 그리고 비무장지대의 생물다양성 보전에 대한 Kim의 연구에서는 250㎞,(주21) 미국 National Geographic의 Adam과 Michael 그리고 Dimitrios는 모두 238㎞(148miles)로 기술하였다.(주22) 미국 NASA의 Earth observatory 홈페이지에서는 250㎞(148mile)로 표기하고 있어 더욱 혼동을 초래하고 있다. 그러나 김창환에 의하면 정확한 수치는 239.42㎞(148.77mile)이다.(주23)

이처럼 미 육군 제64측지대대의 지도 제작 시에 발생한 많은 제한요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있는 미군 제도사들은 인쇄된 도엽들이 정확하다고 인정하였다.(주24) 현재 유엔사 역시 정전협정지도의 원본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주25)

유엔사의 입장에 따라 정전협정 원본지도의 원본성을 인정하여 현재에 맞게 전환하려면 동경측지계에 따라 최대크기로 구체화하고 이를 세계측지계로 전환하여 새로운 지도를 작성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조선 측의 합의가 없는 한 새로운 원본성을 획득할 수 없다. 지도의 정밀성은 합의도출을 위한 조건이지 합의를 대체할 권력은 아니기 때문이다. 

2) 군사분계선 표식 연결선 

인민군사령부와 유엔사령부간 군사분계선 지도의 출발은 표식설치였고, 최종 합의된 것도 지도상의 선이 아니라 지상의 표식이었다. 표식을 잇는 선이 최종적으로 합의한 선이 된 것이다. 지도가 실재를 반영하는 기호‧상징으로서 권위가 부여된 것이라면, 표식은 상징이 현실에 다시 구현된 물질적 이념체이다. 측정할 수 없는 것으로서의 전투 접촉선은 측정할 수 있는 수치로 기재되며 현실과 불일치하게 되었고, 수치로만 존재하던 지도의 기호는 현실의 물질로 구현되면서 다시 불일치하게 되었다. 따라서 표식의 정확성 여부는 부수적인 것이며 표식이 합의되고 봉합되었다는 것만이 중요하다. 표식의 본질은 권력이념의 구현체이기 때문이다.

1951년 11월 1차 정전회담 당시 군사분계선은 최초에 제안되었던 38선과 달리 양측 군대의 접촉선을 따라 설정되었다.(주26) 접촉선은 직선인 38선보다 훨씬 복잡한 기술적 문제를 발생시킨다. 당시에는 표식물을 먼저 설치할 계획이었다. 사전에 정한 132개의 표식물을 군사분계선의 가장 확실한 지점에 설치한 후 그 표식물을 연결하는 선을 지도에 그리기로 하였다. 표식물 설치를 위해 정해 놓은 좌표들은 1951년 협상 당시에 사용했던 축척 1/25,000 지도상에 표시하였다. 1953년에 실시된 협상에서 군사분계선은 1953년 6월 16일의 접촉선으로 바뀌었다. 1951년 회담과는 달리 군사분계선 설정을 위한 협상은 1953년 7월 20일부터 22일까지 단 3일 만에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표식물의 좌표를 미리 설정했던 1951년과는 달리, 1953년 협상 시에는 군사분계선을 지도에 먼저 그린 후에 현지 측량을 통해 좌표를 파악하여 표식물을 설치하기로 하였다. 표식물 설치를 위한 지침은 1953년 7월 정전협정 체결 이전에 수립되었다. 강, 호수, 하천, 도로 또는 소로가 없는 특정한 상황에서는 분계선이 지상측량 결과에 따라 설정된다고 규정하였다. 또한, 표식물 설치인원들에게는, 지형지물과 거주지역을 고려하여, 표식물의 위치를 조정할 수 있는 재량권이 부여되었다.(주27) 표식설치의 정확성보다 임의성이 인정되는 이 재량권 합의에 의해 표식설치는 가능할 수 있었다. 대성동 주민들은 표식설치과정을 직접 지켜본 경험을 다음과 같이 구술하고 있다. 
 
“사천 양옆으로 남쪽 제방과 북쪽 제방이 있었다. 원래는 군사분계선이 사천 중간인데, 여기에 설치를 할 수가 없으니까 북쪽 제방에도 군사분계선 말뚝을 세우고, 이쪽에도 군사분계선 말뚝을 세웠다.”(주28)

군사분계선이 도로, 산길, 강, 개울과 같은 곳의 중간을 지날 때 표식은 이로부터 10m가 떨어지지 않은 곳에 북쪽과 남쪽 건너편으로 번갈아 설치되었다. 이처럼 표식물 설치에 따른 재량권은 필연적으로 지도와의 불일치를 초래할 수밖에 없었다.

군사분계선 표식물들은 1953년 8월에 설치되었다. 표식물 설치가 완료된 이후에는 유엔군, 인민군 및 중국 인민지원군 측 인원들로 구성된 공동감시소조가 각 표식물이 정전협정 지도상에 표시된 바에 따라 설치되었는지를 확인하였다. 공동감시소조는 상황에 따라서, 예를 들면 묘지나 마을이 군사분계선에 의해 둘로 나뉘게 되는 경우, 지도상 의도된 위치에서 북쪽 또는 남쪽으로 표식물을 옮겨 설치하는 것을 허가하였다. 이러한 과정이 완료된 이후에는 군사분계선이 표식되었음을 명시한 후속합의서가 체결되었다.(주29) 이는 지상 표식들과 지도의 선 간에 차이가 있는 경우, 지상 표식들이 가장 확실한 군사분계선임을 확인하는 것이었다.(주30) 이로써 군사분계선의 실체는 군사분계선 표식이 되었다.

이제 표식을 보존 관리하는 것이 군사분계선 유지의 핵심문제가 되었다. 대성동 주민들의 기억에 의하면 군사분계선 표식물은 7피트 높이의 금속이나 목재로 만들어진 말뚝 형태였고, 300~500미터 간격으로 세워졌으며, 그 표식물 사이에 작은 말뚝과 말뚝을 잇는 가는 철조망이 설치되었다.(주31) 최초 설치했던 군사분계선 표식물들은 이후 6피트 높이의 석면이나 시멘트 말뚝으로 교체되었으며, 말뚝에는 북쪽과 남쪽을 향하는 표지판 2개를 부착하였다. 북쪽을 향하는 표지판에는 중문과 국문으로, 남쪽을 향하는 표지판에는 영문과 국문으로 ‘군사분계선’을 표기하였다. 1954년 9월 유지보수작업을 위해 표식물들을 “갑”구와 “을”구로 나누는 추가합의서가 서명되었다. “갑”구에 있는 표식물들은 유엔사가, “을”구의 표식물들은 인민군이 책임지도록 하였다. 표식물 총 1,292개 중 유엔사는 696개에 대한 유지보수 책임을 맡게 되었다.(주32) 대성동의 군사분계선 표식물의 경우 몇 년 지나니까 나무 말뚝이 썩어 없어졌다. 그래서 시멘트 말뚝에 철판을 붙여 ‘군사분계선’이라고 쓴 게 세워졌다. 남북 양쪽에 군사분계선 표식이 설치되었지만, “지금은 이게 다 없어지고, 이쪽 군사분계선(표식)만 남았다.”(주33)

1969년까지 유엔사는 할당된 표식물에 대한 유지보수를 커다란 어려움이 없이 진행하였다.(주34) 그러나 1968년 푸에블로호 나포사건, 1969년 2월 EC-121기 사건을 거치며 정전 이후 전쟁위기가 최고로 고조되는 가운데 1969년 3월부터 유엔사의 표식물 유지보수팀이 인민군에 의해 기습공격을 당하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였다. 공격수위가 점차 높아지자 유엔사령관은 유엔사 병력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유지보수활동을 전면 중단하도록 지시하였다. 이후 몇 년간 표식물 유지보수 작업을 재개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으나, 안전에 대한 전반적인 우려는 해소되지 않았다. 1972년 유엔사 측은 표식물들에 대한 유지보수작업을 중단시켰다.(주35) 그럼에도 1973년 3월 7일 육군 제3사단 장병 7명이 강원도 철원 비무장지대에서 훼손된 0654번 표식교체 작업을 강행했다. 그리고 인민군의 사격에 의해 사상자 3명이 발생했다. 당시 박정인 3사단장은 105㎜와 155㎜ 곡사포로 도발 원점인 인민군 최전방 초소(GP)를 포격해 초토화시켰다.(주36) 표식관리가 전쟁을 불사하며 목숨을 건 일이 되었다.

동서독의 경우도 이런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1950년대 초 설치한 철조망과 경계석은 시간이 흐르면서 훼손되거나 무성해진 수풀에 가려 눈에 잘 띄지 않았다. 그 결과 동서독 수비대가 순찰 중 상대측 영토로 들어가거나, 철조망 설치와 경계 표식과정에서 상대측 영역을 침범하는 일이 발생했다. 나아가 경계선의 위치가 명확하지 않은 구간에서 양측수비대는 순찰 중 우발적으로 마주쳤고, 서로 상대가 영토를 침범했다고 주장하며 총을 겨누는 상황이 반복됐다. 때로는 누구도 경계선의 정확한 위치를 모르니 모두 물러나자는 한쪽의 제안에 합의해 충돌 없이 끝났지만, 경고사격과 교전으로 이어져 사망자도 발생했다. 1962년 8월 14일 헤센-튀링겐 접경지역 비젠펠트(Wiesenfeld) 인근에서 양국수비대가 대치하던 중 동독 국경수비대 장교 아른슈타트(R. Arnstadt)가 서독 국경수비대원이 쏜 총탄에 맞아 사망한 사건이 대표적 예에 해당한다. 서독은 자국 수비대의 행위가 정당방위였고 영토 침범도 없었다고 주장했으나, 동독은 이를 살인 음모로 규정했다. 이러한 공방 속에서 양국의 갈등은 고조되었다.(주37)

최근까지의 인민군 활동을 관측한 결과, 인민군도 그쪽에 할당된 표식물들에 대한 유지보수작업을 시행하지 않고 있지만, 군사분계선까지 접근하여 표식물의 위치를 숙지하는 듯한 모습은 보았다고 한다. 이러한 활동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유엔사보다 인민군이 군사분계선 표식물들의 실제 위치를 더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주38)

이번 사고 장소가 25사단 관할 사미천 부근이라면 군사분계선 표식 0204-0293 번대로 “을”구역이다.(주39) “을”구역의 군사분계선 표식 관리는 인민군소관이다. 국방부는 이번 수색로 개척작전을 “유엔사 현장조사를 실시하기 이전에 여건조성을 위한 것”(주40)이었다고 발표했다. 이 구역은 유엔사가 표식을 관측하기 위해 현장조사를 할 수는 있지만 표식 보수나 관리를 위해 현장조사를 할 필요는 없는 구역이다. 보수‧관리가 목적이면 가까이 접근해야 하지만 멀리서 할 수도 있는 확인관측이 목적이라면 무리한 접근을 시도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표식의 법철학적 의미에 대해 살펴보자. 헤겔은 법철학에서 자유의지-선택-권리-소유로 이어지는 논리하에서 표식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표식에 의한 점유취득은 모든 점유취득 가운데서 가장 완전한 것이다. 내가 물건을 폐기하거나 혹은 생산하는 경우, 그 궁극의 의미는 표식이며 더구나 타인에 대한 표식이고, 타인을 배제하기 위한 것이며, 내가 나의 의지를 그 물건 안에 넣어두었다고 하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표식이다. 표식의 개념은 물건을 있는 그대로서가 아니라 그것이 의미하는 바의 것으로서 인정한다는 것이다.’(주41)

예컨대 프랑스혁명 시대에 모자에 붙인 리본은 설사 그 빛깔이 국민과 어떠한 연관도 없다하더라도 국가에 있어서의 시민의 자격과 국민을 의미하는 것이다. 인간이 모든 것에 표식을 부여하고 이에 따라 물건을 획득할 수 있다는 점에서야말로 인간은 바로 물건에 대한 자신의 지배권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마크 쿨란스키의 대구이야기에 의하면, 아메리카대륙은 대구어장을 따라간 바이킹족이 ‘뉴펀들랜드’로 추정되는 땅을 발견하고 바스크족이 이곳에서 염장기술을 개발하여 말린 대구를 싣고 와 유럽에 판매함으로서 이미 점유되어 있었다. 그러나 바이킹에겐 이것이 영업 비밀이었기에 신대륙 발견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결국 1492년 콜럼버스에 의해 아메리카가 처음 발견된 것으로 되었는데, 여기서 사실상의 점유보다 표식에 의한 점유권이 더 중요함을 알 수 있다. 밀수문화재를 점유하고 있어도 합법적 시장에서 물타기 되기 전까지는 점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 조세피난처의 돈들도 사실상의 점유에서 표식점유로 이행하기 위한 불법체계이다. 점유형태가 육체적 취득이든, 노동생산을 통한 생성이든, 최종적으로는 표식의 취득이므로 점유는 곧 표식점유이고 표식점유는 지배권이다. 따라서 군사분계선 표식은 지도의 선보다 강력한 이념체로서 물신주의적 권력을 획득하게 된다.

2015년과 2016년에 걸쳐서 유엔사 군정위 측에서 조사해 본 결과에 의하면 최초 설치하였던 군사분계선 표식물 1,292개 중에서 181개 정도만 실제로 확인할 수 있었다.(주42) 표식 연결선으로 군사분계선을 삼기에는 불가능한 상태가 된 것이다. 어떤 이유로든 정전관리 주체인 사령관들은 정전관리의 가장 중요한 임무를 방기한 셈이다. 결국 표식체계의 붕괴는 곧 군사분계선 체계의 붕괴로 나타났다. 새로운 군사분계선 획정에 합의하지 못하면 군사분계선은 없는 것이다. 군사분계선이 없다면 정전협정도 없는 셈이 된다. 표식관리의 실패는 이토록 치명적인 것이다.

3) 유엔사의 구글어스 상 군사분계선

이것은 유엔사가 특정사건과 군사분계선 간의 위치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사용해 온 것으로서, 유엔사측이 주한미군 지형정보과로부터 입수한 것이다. 이 파일은 구글어스의 kml(keyhole markup language)파일이다.(주43) 이 파일의 정확한 출처는 확인된 바가 없으나 2014년 12월 한국 국방지형정보단이 유엔사에 제공한 군사분계선 파일과 같은 것이다.(주44)

유엔사는 2014년 이전까지 정전협정 원본지도를 지금 사용하고 있는 현대 측지계로 바꾸어 보려는 작업을 단 한 차례도 해 본 적이 없었다.(주45) 1984년 세계측지계로 변환되어 건축현장 등에서 이미 국립지리정보원이 제공하는 동경측지계→세계측지계 변환이 손쉽게 적용되고 있었음에도 유엔사는 자신의 기본임무를 방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유엔사는 2014∼2016년에 걸쳐서 실시한 군사분계선 프로젝트(MDL Project)를 통하여 정전협정 원본지도상 군사분계선의 위치를 추출하고 현대측지계(WGS84)로 변환한 좌표 값 23,954개를 추출하였다. 유엔사는 1,292개 표지판 사이의 빈 공간에 약 10m 간격으로 약 2만 3,000여 개의 미세한 수치좌표점(Digital Waypoints)을 촘촘히 찍었다. 또한 식별 가능한 군사분계선 표식물 181개의 좌표 값을 측량하였다.(주46) 63년이나 된 지도의 인쇄본을 현대적인 GIS시스템에서 처리가능한 전자형식으로 전환한 것이다.(주47)

유엔사에 의하면 정전협정 원본지도상 군사분계선을 현대측지계로 변환할 경우, 발생 가능한 총 오차는 1/50,000 축척 지도의 오차 100m, 지도와 실제지형 간의 오차 100m, 정전협정 원본지도상 1mm 두께의 펜으로 그어진 군사분계선의 폭 50m 등을 합하여 최대 250m의 오차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보았다.(주48) 유엔사는 지도 고유의 제한요소와 정전협정 원본 지도 제작 이전에 발생한 과정상의 제한요소를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하였다.(주49) 이는 인민군과 새로이 합의하여 봉합하는 수밖에 없다.

4) 미국 국립지리정보국의 2004년도 디지털 군사분계선

미국 국립지리정보국의 주한미군 정보참모부 분견대는 미국 국립지리정보국 자료실의 2004년도 군사분계선 자료를 유엔사에 제공하였다. 이 자료는 2004년 미국 국립지리정보국의 라도(John Rado) 지형정보분석관이 추진한 대규모 사업의 목적으로 제작되었다. 2003년 미국 국립지리정보국은 한국 군사력 디지털지도 작성을 추진하였고, 이 지도를 통해 조선의 국가적·정치적 경계선을 표시하려고 하였다. 라도 분석관은 지도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미국 국립지리정보국이 보유하고 있던 군사분계선이 중앙정보국의 축척 1/5,000,000 도엽 상의 경계선을 디지털화한 복사본임을 인지하였다. 그리고 그가 추진했던 사업의 특성상 보다 축척이 큰 지도가 필요했으므로 대축척 지도를 활용하였고, 여러 종류의 지도 간 차이가 존재함을 발견하였다. 그는 이러한 차이를 바로잡기 위해 정전협정 원본지도, 미국 국립지리정보국과 한국 육군지형정보단이 공동제작한 최신화된 종이지도, 1953년 정전협정 관련 문헌자료,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의 증언 등을 참고하였다. 그 결과 정전협정 원본지도상에 표시된 실제 지형과 가까워진 군사분계선이 제작되었다. 이는 단순하게 정전협정 원본지도상의 군사분계선을 그대로 복사해서 옮긴 것이 아니라 물리적 지형과 일치하도록 군사분계선을 수정한 것이다. 현재 미국에서는 국립지리정보국을 비롯한 정보기관들이 이 선을 사용하고 있다. 

5) 한국 국방지형정보단의 디지털 군사분계선

한국 국방지형정보단의 군사분계선은 유엔사의 구글어스 상 군사분계선과 거의 일치한다. 이것은 미국 국립지리정보국과 한국 국방지형정보단의 전신인 육군지형정보단이 2004년 이전에 공동으로 작업한 결과물이다. 당시 미국 국립지리정보국은 군사분계선 위치자료를 한국군에 제공하였으며, 한국 육군지형정보단은 이를 부분적으로 적용하였다. 현재 미국 국립지리정보국의 군사분계선은 이 선과 일치하지 않았다. 비무장지대의 북방한계선과 남방한계선은 부분적으로만 일치했다.

2014년 12월 유엔사가 한국 국방지형정보단을 방문하였을 때, 이 선의 사본을 받았다. 이것은 유엔사의 구글어스 상 군사분계선과는 일치하지만, 비무장지대의 북방한계선과 남방한계선은 일치하지 않으며, 이들이 제공한 북방 및 남방한계선은 주한미군과 미국 국립지리정보국 자료를 조합한 것으로 보였다.(주50) 유엔사는 2004년 한국군의 개정선은 한국군의 작전적 편의와 현대 지도정합성을 위주로 재조정되었기 때문에, 정전협정 원본지도의 원본성으로부터 괴리된 것으로 본 듯하다.

6) 비무장지대의 GP와 OP 병사들이 소지하고 있는 별도의 군사분계선

현장의 병사들이 인식하고 있는 군사분계선의 정확도는 각각 상이하다. 뚜렷한 물리적 지형지물이나 군사분계선 표식물이 관측되는 경우에는 군사분계선을 식별할 수 있다. 그러나 군사분계선 표식물이 관측되지 않는 경우 일부 GP와 OP에서는 지형지물을 기반으로 군사분계선을 파악하고 있다. 정확성 여부를 떠나서 현장의 한국군들은 인민군의 군사분계선 침범에 대응할 경우, 자신들이 소지한 군사분계선 지도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 

유엔사교전규칙과 합참교전규칙이 양립하는 상황에서 현장에서 실제 적용되는 선은 이 선이다. 한국군이 기준으로 사용하는 지형지물이 인민군이 사용하는 지형지물과 같지 않을 수 있어 당연히 상호오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일례로 2014년 10월 20일, 파주 대성동 마을 근처지역에서 인민군이 군사분계선을 넘어온 것으로 인식하여 한국군 GP에서 경고사격을 하고 인민군 민경초소에서 대응사격을 함으로써 상호 교전한 사건이 발생하였다.(주51) 이 사건 관련 유엔사 특별조사 과정에서 해당 GP에서 1개 이상의 군사분계선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고가초소에서 초병이 사용하는 군사분계선, 공용화기 요원이 사용하는 군사분계선, TOD(Thermal Observation Device: 열상감시장비) 운용실에서 사용하는 군사분계선이 모두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주52)

GP 및 GOP 현장부대들은 수십 년간 자신들이 물리적으로 정비한 수색로, 철조망, TOD(열상감시장비) 감시각도를 기준으로 지도를 보완해 왔다. 만일 유엔사 선을 중심으로 지도선이 미세하게 재조정되면 기존 초소의 감시음영지역 재설정, 지뢰지대 재표시, 수색통로 변경 등 작전적 재배치 부담이 전방 사단 전체에 도미노처럼 번지게 된다.

지도를 유엔사 수치좌표로 일치화하는 것은, DMZ 내 경계판단의 절대적 기준을 유엔사에 넘겨주는 정치·군사적 신호로 읽힐 수 있다. 반대로 유엔사 입장에서는 한국군 작전지도를 그대로 인정할 경우, 한국군의 독자적 자위권행사가 남북 간 무력충돌로 번지는 것을 통제할 정전관리자로서의 관할권을 상실할 위험이 있다.

합참과 국방부가 지뢰사고를 계기로 “유엔사와 MDL 일치화 TF를 가동 중”이라고 연일 발표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GIS 데이터를 맞추는 기술작업이 아니라 한미 간 교전규칙 적용의 우선순위와 자위권 행사의 법적 경계선을 합의하는 민감한 지휘권 협상이 표면 위로 올라와 있음을 의미한다. 결국 이 6번째 군사분계선과 유엔사 군사분계선 일치화가 가장 핵심문제임을 알 수 있다.

(3) 군사분계선 이념

군사분계선이나 그 표식은 즉자적 사물이 아니다. 정전협정이라는 개념에 현존재가 결합되어 생성된 이념체이다. 군사분계선과 관련된 작은 요소도 정전체제 권력변화의 결과이다. 

2014년-2016년의 유엔사의 군사분계선 일치화 작업은 2018년에 종료된 유엔사재활성화 시작연도로 그 시기가 겹친다.(주53) 이는 북이 정전협정 폐기를 선언한 상태에서 정전협정으로 관심을 집중시키기 위한 정전협정 강화 프로젝트이자, 유엔사의 정전위기관리권을 재확인하려는 유엔사강화 프로젝트로 보인다.(주54) 

향후 전작권 환수 과정에서 유엔사는 평시 DMZ출입통제 등의 관리권만 유지하고, 북측 도발에 대한 한국군의 자위권(초기위기조치권) 행사를 정전협정 위반으로 보지 않는다는 원칙적 예외조항을 합의할 수 있다. 혹은 유엔사의 위기관리권을 더 강화시켜 국군의 자위권을 불인정하고 초기위기조치권을 장악하고자 할 수 있다.(주55) 두 경우 모두에서 군사분계선 일치화는 유엔사가 자신들의 존재를 각인시키기 위한 기본전제이다. 이번 지뢰사고를 계기로 ‘군사분계선 문제’가 부각되었고, 유엔사의 국군에 대한 통제권이 협조체계란 이름으로 다시 기정사실화되었다. 결국 유엔사의 국군에 대한 지배력을 재확인하는 양상으로 귀결되고 있다.

유엔사와 국군이 군사분계선 일치화에 성공하더라도 북과 합의되지 않으면 아무런 효력도 발생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충돌을 초래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군사분계선 문제는 정전협정문제이다. 정전협정으로 복귀해야 하는 분계선 논의를 조선이 수용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한‧조간 합의 없이 진행되는 선 측량작업의 위험성은 한국에서만이 아니라 동서독에서도 빈번히 관찰되던 현상이었다. 

엘베강 접경지역에서는 국경선의 위치를 둘러싸고 동서독 간 충돌이 빈번하였다. 서독은 런던 의정서의 합의내용을 바탕으로 경계선을 강의 동쪽 강둑으로 보고 강 전체에 대한 관할권을 주장했지만, 동독은 강의 중앙을 경계선으로 보았다. 1963년까지 매년 시행된 엘베강 경계구역 측량작업은 서독이 단독으로 진행했다. 그러나 1964년 이후 동독은 자체측량선을 투입하고 서독 순찰정과 측량선의 강 중앙으로의 접근을 총격과 위협으로 저지했다.(주56) 그로 인해 긴장이 고조된 끝에 양측은 1966년 10월 25일 고를레벤(Gorleben) 근처에서 무력충돌 직전까지 갔다. 이러한 충돌은 우발적 사건이 아니라 경계선에 대한 서로 다른 법적 해석이 낳은 구조적 갈등이었음을 보여준다.(주57)

한국에서의 일방적 군사분계선 재획정 작업도 구조적 갈등으로 비화될 것이 충분히 예상된다. 군사분계선의 이념은 기술적 정확성이 아닌 합의에 의한 봉합의 결과물이다. 그러므로 조선과의 합의없이, 혹은 형식적 합의제안만 하고, 군사분계선 문제가 따로 해결될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것은 이념적 환상이다.

인민군에 대한 관측정보에 의하면 요새화 현장의 군인들이 나침반을 들고 위치를 확인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주58) 러시아제 글로나스(GLONASS)를 모든 인민군병사가 사용해도 미국의 GPS를 사용하는 국군의 지도인식 간에는 오차가 발생한다. 더구나 기존 군사분계선 지도를 근거로 나침반을 사용한다면 WGS84 수치좌표를 사용하는 한국군·유엔사의 위치와 최대 300~400m 떨어진 곳을 자신의 관할선이나 MDL로 착각하게 된다. 

남북이 군사분계선 일치화에 합의한 뒤, 양측 군인이 동일한 위성장비를 사용하지 않는 이상 군사분계선은 선이 아니라 약 400m 폭의 면이라고 간주하고 교전규칙을 조정하는 것이 현실에 부합할 것이다. 

선이나 선에서 일어난 사고를 들이밀어 조선이 대화의 틀로 나오게 할 방법은 없어 보인다. 어렵더라도 대화 틀로 나와야 새로운 선도 합의할 수 있다. 선의 효력은 정밀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합의에 있기 때문이다. 선과 선에서 발생하는 사건은 거대한 체계의 표면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정전협정체계를 전제한 군사분계선 일치화 논의는 해결책이 아니라 악화책이다. 

9.19군사합의서 체계로 전환하여 분계선 논의를 준비해야 한다. 지뢰사고에 대한 해결책도 9.19남북군사합의서에 있고, 선에 대한 재합의 가능성도 9.19남북군사합의서에 있다. 정전협정의 붕괴에 대한 유일한 대안은 9.19남북군사합의의 복원이다. 정전협정이란 족쇄를 풀고 탈출하는 순간 마주하게 되는 것은 무질서와 무대책과 대혼란의 지옥이 아니다. 이미 우리에겐 정전협정을 완전히 대체할 9.19남북군사합의서라는 설계도와 일부 실행성과에 대한 성공적 경험이 있다.

정전협정과 유엔사에 고착된 경로의존성에서 벗어나 9.19남북군사합의서와 전작권을 환수한 국군을 입각점으로 새로운 경로를 준비하고 개척해야 한다. 9.19체제하에서 위기가 발생해야 9.19로 해결하고 9.19가 강화된다. 9.19체제의 정착은 한‧조관계의 위기를 한‧조간의 기회로 만들어가는 틀이 된다. 

당장의 유혹 때문에 정전협정체제에 의존하면 위기는 정전협정으로 해결해야 하고 권력은 정전협정에 집중된다. 그러나 이는 조선이 정전협정으로 복귀할 때만 유효하다. 조선이 그런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정전협정 틀은 조선과의 문제해결 가능성을 멀어지게 할 뿐이다. 

군사분계선의 기술적 부정확성 때문에 군사분계선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은 전형적인 이데올로기적 환상이다. 군사분계선이 부정확해도 두 체계가 합의로 봉합하는 것만이 모순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따라서 선이 아니라 틀을 먼저 만들고 합의를 통한 봉합을 위해 기술적 정확성을 도입하는 것이 순서이다. 조선이 당장 호응하지 않아도 진정성을 가지고 한국 측의 일관된 입장을 견지하며 관계개선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4) 표면과 계면

군사분계선은 현실에선 존재할 수 없다. 정전협정 원본지도를 기준으로 할 경우 현실에서 군사분계선은 ‘군사분계면’임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계선(界線)은 계면(界面)의 표면(表面)이다. 계면은 계층면으로 구성되며 심층면, 중층면, 표층면이 분포한다. 계선은 계면의 표층면으로 구체화된다. 계면활성제는 표면의 입자를 포위하여 계면으로 해체시킨다. 군사분계선은 거대한 분계면의 계층체계가 현상하는 표면이다. 

1948년 6월 20일 서독이 단독으로 화폐개혁을 단행하자 독일점령지 경계선은 초기의 행정경계선에서 체제경계선으로 변화했다. 서독이 1955년 11월 연방군을 창설하자, 동독도 1956년 3월 국가인민군을 각각 창설하며 동서독 국경선은 독일을 넘어 미‧소 군사동맹 전체의 대치선으로 변했다.(주59) 군사분계선을 정전협정체계의 표면으로 보는가? 적대적 두 국가의 주권체계의 표면으로 보는가? 9.19남북군사합의서 체계의 표면으로 보는가에 따라 선의 성격이 결정된다. 

우리는 표면이 아닌 계면에 있다. 계면은 계층면의 겹이다. 경계면에서 두 세계의 표면은 여러 겹으로 섞여 있고 계면이 두 세계를 매개하는 이상 한 세계의 계면에서도 다른 세계의 계면을 경험한다. 나의 계면에서 일어나는 증상을 통해 상대의 계면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다. 표면에서 일어나는 가장 배타적, 적대적 행위조차도 서로의 계면을 요구하고 의존한다. 배타적이기 위해서는 배타의 대상이 있어야 하고 이는 결국 대상에 의존하게 된다. 배타성은 의존성을 전제로 해서만 성립되는 것이다. 

남북의 확성기음파는 남북의 계선을 넘어 계면 전체에 섞여 있었고 남북 모두에게 피해를 주고 있었다. 계면에서 남북은 이미 이어져 있었고 섞여 있었다. 남쪽이 아프면 북쪽도 아프고, 북쪽이 울면 남쪽도 울었다. 조선의 굉음방송은 한국의 대북방송이 멈추자 멈추었다. 

남쪽이 반성하면 북쪽도 반성할 수 있고, 북쪽이 변화하면 남쪽도 변화할 수 있다. 계면에서의 반성이 상대를 변화시키고 결국 자기를 변화시킨다. 표면장력을 계면 활성력으로 바꾸는 힘은 계면적 반성과 계면의 자기변화이다. 

아무리 작은 문제라도 계면 전체의 핵심으로 자라나가는 생성적, 전향적 주제가 있고 아무리 큰 문제라도 표면을 벗어나지 못하는 소멸적, 퇴행적 주제가 있다. 전자의 예로 서해평화어로수역 파시나 한강하구 선박통행검사소가 있다면 후자의 예로 군사분계선 일치화가 있다.

표면에서의 단순월선행위가 아닌 계면에서의 명백한 적대행위에 대해서만 교전규칙이 운용되어야 할 것이다. 지도가 아닌 장소, 장소가 아닌 행위를 중심에 두고 봐야 한다.

교전규칙의 기준을 기존의 선에 집착하면 언제든 오해와 착오에 의한 충돌이 일어날 것이다. 지도가 사람을 지배하는 것을 막기 위해선 지도라는 물신주의적 집착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지도의 선을 현실의 면으로 전환시켜 선의 오차범위인 최소 50m에서 300m까지 유연하게 면으로 보는 관점전환을 시도해야 한다. 감시장비와 AI의 분석을 이용하여 장소위주가 아닌 행동위주로 판단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 선조치 후보고의 교전규칙을 원래대로 선보고 후조치로 돌려야 한다.

(5) 국경선 이념

정전협정의 군사분계선은 고작 3개월을 예정한 임시 선이었다. 그러나 1954년 정전협정에서 합의한 평화회담이 결렬되면서 임시적 선은 70년을 넘겼고 사실상 국경선화하고 말았다. 사실이 그렇더라도 법적 근거없이 국경선이 그어지는 것은 아니다. 

조선은 1994년 군사정전위 철수, 1996년 비무장지대 관리의무 포기선언으로 정전협정 무력화를 추진해 오다가 2013년 최종적으로 정전협정 폐기를 선언했다.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협약 제44조 1항은 조약 전체에 대해서라면 폐기할 권리가 인정된다.(주60) 정전협정은 일방의 폐기선언에 의해 폐기된다. 정전협정의 폐기는 세 가지 결과를 초래한다. 

첫째, 전쟁이다. 전쟁의 중지가 정전이기에 정전의 폐기는 전쟁으로의 복귀를 의미한다. 

둘째, 평화협정이나 강화조약의 체결이다. 정전협정이 약속하거나 기대한 바에 따라 정치, 영토문제를 포괄하는 국가 간의 정상관계가 수립되는 것이다. 우리는 북의 정전협정 폐기선언이 첫째도 둘째도 아닌 제3의 과정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셋째, 차가운 평화체제이다. 상호적‧평화적 해결이 아닌 일방적‧적대적 해소지만 전쟁도 없고 평화협정도 없는 차가운 평화가 유지되는 상태이다. 

중국과 인도의 예를 보자. 양국은 국경문제를 둘러싸고 1962년 한차례 전쟁을 치렀다. 1963년 2월 28일 국경문제에 대한 외교적 최종적 합의도 없이, 또한 전쟁에 대한 공식적인 협정이나 합의도 없이, 중국의 일방적인 휴전결정과 철수로 양국 간 전쟁은 끝났다. 양국은 군사분계선도 국경선도 아닌 ‘실제통제선’(實際控制線, Line of Actual Control)이라는 용어로 서로의 경계를 구분했다.(주61) 1976년 외교관계를 회복한 양국은 꾸준히 관계회복 노력을 지속하여 1996년 11월 29일 「중·인 국경 실제통제선지역 군사영역 신뢰구축방안에 관한 중국과 인도간 협정」에 서명했다.(주62) 이 협정은 우리의 9.19남북군사합의서와 거의 유사한 군축협정이었다. 2013년 북의 정전협정폐기 선언 후 차가운 평화체제 상태에서 2018년 체결된 9.19남북군사합의서는 중국‧인도 간 협정과 내용만이 아니라 경로도 유사하다.

2013년 조선은 정전협정폐기선언을 통해 군사분계선의 법적지위를 해소했다. 군사분계선의 쌍방 간 합의가 소멸된 것이다. 조선은 군사분계선이 아닌 새로운 성격의 선을 ‘국경선’이라고 명시한 바는 없다. 북측은 새 철책 설치 등 DMZ 내 작업에 대해 ‘경계선 확장작업’이라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주63) 또한 대한민국과 접한 남쪽 국경을 영구적으로 차단, 봉쇄하는 것은 ‘전쟁억제와 공화국의 안전 수호를 위한 자위적 조치’이며 예민한 남쪽 ‘국경 일대에서 진행되는 요새화 공사’(주64)라고 했다. 이 공사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김여정의 담화에서도 드러난다. 지뢰 사건이 일어난 서부전선에 대해서는 ‘자작극’ 프레임과 책임부인에 그친 반면, 군사적 조치는 요새화 공사가 집중된 동부전선 21사단 방향을 특정했고, 보복도 경고사격이나 확성기가 아닌 실사격을 예고했다. 조선의 일차적 관심이 요새화 공사에 있음을 보여준다.(주65)

조선이 진행하고 있는 ‘경계선 확장작업’의 성격은 조선의 설명대로라면 한국의 전쟁위협에 대한 전쟁억제이자 공화국의 안전을 위한 방어적 조치이다. 조선의 경계선을 이념체로, 계면과 표면의 통일로서의 국경체제로 접근해보자.(주66)

첫째, 기능면에서 조선의 경계선은 절연과 억제를 목표로 한다. 이는 미국-캐나다간, 유럽연합국가간 국경의 여과기능, 즉 무역과 이동촉진, 선별적 차단기능과는 다르다. ‘여과’가 흐름을 선별하는 것이라면, ‘절연’은 흐름 자체의 소거를 지향한다. 

구 동독 국경의 기능은 전면적 차단이었다. 1970년대 동독은 서독과의 특수관계를 부정하고 서독을 외국으로 규정하는 정책을 공식화했고, 1974년 헌법개정으로 ‘독일민족’ 관련조항을 삭제했으며, 동독국경을 지뢰·자동발사장치·차단물로 요새화하면서 이를 ‘정상적 국가 간 국경’으로 서사화했다.(주67) 동독국경 요새화의 일차 기능은 자국민의 탈주 방지, 곧 안에서 밖으로의 흐름 차단이었다. 

반면 조선의 남부국경의 차단기능은 한국의 위협을 차단하는 것이고 사실상 강력한 절연기능 속에 흡수된다. 조선은 이에 더해 재래식 화력투사와 전술핵을 결합한 대남억제기능을 추가했다는 점에서 동독 모델의 극단적 확장이다. 한국측 군사분계선도 절연기능과 대북억제기능을 갖는다. 이런 점에서 한‧조는 같은 경계선이념을 공유하며 대치하고 있는 셈이다.

한편 정전선이 핵보유국 간 국경선으로 굳어진 경우는 인도-파키스탄 통제선(LoC)이다. 이들은 핵 그림자 아래에서 오히려 저강도 충돌이 상시화되는 역설적 형태가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주68) 

조선이 일방적으로 ‘국경선’을 선포하고 물리적으로 기정사실화하는 전략을 추진한다면 이는 러시아가 조지아-남오세티야 행정경계선을 따라 진행한 ‘국경선화’와 기능적으로 유사해질 수 있다. 조지아국경선은 ‘주권의 물질화’, 곧 법적 허구였던 선을 철조망과 표지판으로 물질화하여 사실상의 국제국경으로 전환하는 기정사실화 기능을 수행했다.(주69) 그러나 조지아의 국경화가 국경수비대 수준의 저강도 조치라면 조선의 남부국경화는 전술핵까지 수직 통합한 고강도 군사화라는 점에서 강도가 다르다. 한국 역시 미국의 핵확장억제체제로 통합되어 있기에 고강도 군사화란 점에서 조선과 다르지 않다.

둘째, 관리주체의 측면을 보자. 미국-캐나다 국경은 민간통합기관이 관리한다. 독일은 내무부 법집행기관, 즉 경찰이 관리한다. 구 동독은 국경수비대가 관리했다. 러시아와 인도는 준군사화된 국경수비대가 관리한다. 이에 비해 조선은 군 총참모부계통 단일편제하에 관리한다. 한국은 유엔사지휘를 받는 합참편제하에 관리한다. 조선이 단일편제의 강력한 통제권을 갖는데 비해 한국은 교전규칙이 양립할 정도로 분산된 통제권을 갖는다. 인민군이 전작권 없는 한국군을 상대하지 않는 것도 통제권의 한계에서 비롯된다.

셋째, 관리규범의 측면을 보자. 미국-캐나다 국경은 양자협력이 사실상의 규범이 된다. 유럽연합국들 간에는 성문화된 조약, 즉 다자규범에 의해 관리된다. 인도-파키스탄은 정전협정과 합의채널을 혼합한 관리를 한다. 구 동독과 조지아는 국내규정의 일방적 선포를 통해 배타적으로 관리했다. 조선 역시 정전협정을 폐기하고 국내법에 따른 규정을 통해 관리한다. 정전협정의 군사분계선이 순수히 군사적 성격의 임시적 분계선인데 비해 국경선은 정치적 성격의 영구적 영토주권선이다. 조선이 아직 국경선으로 선포하지 않았지만, 국경선의 국제법적 법적근거를 마련하고자 한다면 한‧조간 협상이 필수적이므로 협상의 여지는 남아있다. 

넷째, 관리‧방어의 통합측면이다. 군사분계선은 방어체계만 존재하지만 국경선은 관리체계를 가져야 한다. 즉 국경선은 국경방어와 국경관리의 통합체계가 요구된다. 국경방어는 국경을 상대국 군사력의 침입에 대한 저지선이자 잠재적 전장공간으로 취급하는 군사전략의 영역이다. 국경관리는 법집행·행정의 영역이다.(주70)

홍민에 의하면, 양자의 차이는 세 차원에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대상의 차이다. 관리의 대상이 사람·상품·정보의 ‘흐름’이라면, 방어의 대상은 상대국의 조직화된 ‘군사력’이다. 둘째, 수단의 차이다. 관리의 수단이 검문·심사·감시·차단 등 법집행·행정 수단이라면, 방어의 수단은 화력·장애물·기동·부대 배치 등 군사 수단이다. 셋째, 준거 규범의 차이다. 관리는 국내법과 국제규범(이동·난민·통상·레짐)을 준거로 삼는 반면, 방어는 군사교리와 작전계획, 그리고 궁극적으로 전쟁법을 준거로 삼는다. 관리가 평시 질서의 유지라면, 방어는 억지 실패 이후 물리적 저지까지를 포괄하는 것이다.(주71)

조선의 남부국경 경계선이 국경선이라면 관리 없는 방어, 혹은 관리의 방어화를 택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국경선을 추구하는 이상 국경관리를 도입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군사분계선보다 개방성을 가질 수도 있다. 

국경선은 평화협정에서 합의‧결정해야 하는 정치적‧영토적 의제이다. 평화협정 없이 결정된 국경선은 어떤 경우에도 완결성과 안전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그러나 정전협정 당사자인 북미가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조건에서, 한‧조 간에 평화적 국가관계를 수립하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다. 그렇다면 한‧조간 수교를 예비한 군사협정이 미리 추진되는 것은 합리적이다. 9.19합의서는 정전협정과의 단절을 명백히 했기에 향후에 가장 적합한 한‧조 군사협정이 될 가능성이 높다. 9.19합의서에 조선이 복귀한다면 조선의 국경선은 방어위주에서 관리위주로 좀 더 이동하게 될 것이다.

(6) 9.19남북군사합의서 틀

지뢰사고를 계기로 정전협정의 마지막 보루였던 군사분계선이 흔들렸다. 유엔사와 국군이 이번 사건을 정전협정 위반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조선에 대해서는 무의미한 주장이다. 그럼 현실적으로 비무장지대에 대한 관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 

조선은 2018년 9.19남북군사합의서를 통해 이 질문에 답을 한 셈이다. 9.19남북군사합의서가 이전의 남북군사합의서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정전협정에 따라’라는 수식어가 완전히 삭제되었다는 것이다. 조선의 입장에서는 정전협정의 폐기를 전제로 새로이 한‧조간에 체결한 군사협정인 것이다. 

남의 입장에서는 9.19합의를 정전협정의 보완적 협정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9.19합의서의 문안대로 해석한다면 유엔사의 관여와 개입없이 남북이 직접 비무장지대를 관리하는 체계를 합의한 셈이다. 1996년 정전협정에 따른 비무장지대 관리의무 포기선언을 한 후로 인민군이 국군과의 공동관리로 복귀한 합의가 9.19남북군사합의서이다. 

9.19남북군사합의서에 따르면 비무장지대의 ‘도로연결과 관련하여 일방의 인원이나 차량들이 군사분계선을 통과해야 할 경우에는 상대측에 사전에 통보한다’고 했다.

정전협정 7항에 의하면 군사분계선 통과허가권은 군정위에 있다. 그러나 1994년 인민군이 군정위에서 철수함에 따라 군정위는 정전협정 20항에 의해 해체되었다. 유엔사군정위는 정전협정상의 군정위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유령조직이다. 그러나 9.19군사합의서에 의해 군정위 부재 상태에서 군사분계선 통과에 대한 대안이 마련된 셈이다.

또한 비무장지대 내 ‘유해발굴공동조사 및 현장지휘조는 비무장지대의 시범적 공동유해발굴과 관련하여 제기되는 실무적 문제들을 공동으로 협의하여 해결한다’고 하여 유엔사가 아닌 국군의 비무장지대 관할권이 합의된 셈이었다. 정전협정 10항에 따라 유엔사가 비무장지대 출입을 허가해도 그들을 호위‧안내할 민정경찰은 군정위의 허가사항이었다. 즉 유엔사령관의 허가권에도 불구하고 군정위가 없기에 군인이나 민간인이 비무장지대에 출입할 수 없는 상태이다. 그러나 9.19군사합의서에 의해 비록 한정된 사업에 한하지만 국군이 비무장지대의 출입과 실무적 관련 문제에 대해 인민군과의 직접적 협의‧해결권을 갖게 되었다. 

정전협정이 유효한 틀이라면 당연히 정전협정의 틀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정전협정의 위반을 규정하기 위해서는 정전협정을 위반해야만 하는 역설에 빠진다. 9.19합의서 역시 북이 폐기를 선언했기에 마찬가지이긴 하다. 그러나 새로운 합의가 있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이 기존의 합의를 복원시키는 방법밖에 없다. 한국은 정전협정을 복원시킬 권한이 없다. 그러나 9.19합의서는 복원시킬 권한이 있다. 권한있는 자로서 책임을 질 수 있는 것은 9.19군사합의서이다.

윤석열 정부는 9.19남북군사합의서를 2023년 11월 일부효력정지 시킨 데 이어, 2024년 6월 전면효력정지 시켰다. 내란특검에 의하면 이는 2023년 10월부터 시작된 내란과 외환유치공작의 준비작업이었다. 북은 당시 “9.19합의 파기가 남측이 드론을 이용한 대북심리전에 직접 나서려는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고 이는 훨씬 심각한 외환유치공작으로 현실화되었다.

대북 드론 침투작전시 유엔사는 이에 대한 어떠한 통제도 하지 않았다. 정전협정 6항에 의하면 유엔사령관은 “비무장지대 내에서, 비무장지대로부터, 비무장지대를 향하여” 어떠한 적대행위도 감행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군용무인기의 조선침투는 한국 측에서 비무장지대를 향하여, 비무장지대 내에서, 비무장지대로부터 조선 측을 향하여 일으킨 적대행위였다. 이에 대해 유엔사령관은 정전협정 17항에 따라 적대행위를 막기 위한 모든 조치와 방법을 취해야 한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부작위에 의한 외환공작실행에 가담한 것이다. 9.19남북군사합의서 복원은 내란‧외환청산의 연장선에 있다. 조선에 대해서도 이재명 정부가 윤석열 정부와 다른 정부임을 확인시키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1) 복원

이재명 대통령은 2025년 8.15경축사에서 9.19남북군사합의서의 선제적, 단계적 복원을 약속했다. 9.19남북군사합의서는 남북관계발전법 22조에 의해 국무회의 비준동의로 공포되었고 따라서 국무회의 의결만으로 즉시 복원된다. 

9.19남북군사합의서는 군사분야 남북합의서로는 유일하게 대한민국 관보를 통해 공포된 법령이다. 다른 남북군사합의서와 달리 유일하게 법령의 지위를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다른 합의서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정전협정에 따라’라는 단서가 완전히 사려졌다는 점이다. 과거의 남북합의서는 ‘정전협정에 따라’라는 단서조항 때문에 남북간 합의임에도 유엔사가 개입하는 길을 열어 놓았고 번번이 유엔사로 인한 문제가 생겼다. 

그러나 9.19합의서 실행조치로 한강하구수로 조사시 남북은 유엔사의 개입없이 온전히 9.19합의에 기초하여 실행조치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9.19합의가 일종의 조약이라면 비무장지대법, 한강하구법, 서해5도법은 이행법률의 성격을 갖는다. 따라서 9.19군사합의서의 복원은 이들의 법적 근거를 강화한다. 

2) 실행

1. 1단계 유엔사 비관련 사업

9.19남북군사합의서의 선제적 복원과 함께 유엔사와 충돌하지 않고도 당장 추진할 수 있는 사업들을 우선순위로 추진할 수 있다.

서해5도 평화수역 파시: 

9.19남북군사합의서에 서해 평화수역은 5일간 체류를 보장하고 있어 파시를 운영할 수 있다. 또한 남북공동순찰대를 운영하도록 되어 있어 중국불법어업을 실효적으로 막을 수 있다. 서해5도 수역은 정전협정상 유엔사의 관할권이 없다. 남북합의만 된다면 유엔사의 어떤 개입도 없이 즉각 합의를 실천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

한강하구 선박통행검사소: 

유엔사가 관리권을 주장하는 한강하구는 만조시 수륙접촉선까지이다. 갯벌의 육지부는 한강하구에 해당하지 않는다. 따라서 유엔사 개입없이 사업추진이 가능하다. 9.19합의서는 한강하구 공동이용을 위해 남북이 원하는 위치에 각각 선박통행검사소를 설치하기로 약속하였다. 이는 한강하구공동이용을 위한 가장 중요한 시설로 조선 측에 한국의 9.19합의 이행의지를 보여줄 수 있다. 

철조망‧용치철거와 감시체계 전환사업: 

정전협정 제13항 ㄱ목은 협정발효 3일 이내에 모든 철조망을 제거하도록 했다. 그러나 1967년 12월 24일 비무장지대에 현재의 철조망이 설치되기 시작했다. 1970년에는 한강하구에 현재의 철조망이 설치되었다. 이들은 모두 정전협정위반이다. 따라서 이는 유엔사로서도 협조해야할 사항이다. 김포시는 한강하구 일부 구간의 철조망을 제거하고 첨단감시장비를 설치하여 성공적으로 전환사업을 마무리한 경험이 있다. 

1974년과 1975년 사이에 인민군의 상륙을 막기 위해 해안선에 용치를 설치하였다. 용치(Dragon’s Tooth)는 1938년 독일제국군이 처음 사용한 콘크리트 대전차 장애물이었다. 박정희 정부는 대만의 진먼다오를 시찰하고 와서 그대로 모방하여 서해5도에 설치하였고 한강하구의 지천합류부에도 상륙저지용 용치를 설치하였다. 용치는 그 기능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면서 선박훼손 등 치명적 위험요소가 되었으며 한강하구와 서해의 접근과 이용을 막음으로서 스스로 관할권을 제약하는 요인이 되어왔다. 용치 제거는 유엔사와 무관하게 실행할 수 있는 사항이다. 

면사무소 설치: 

1972년 개정된 「수복지구와 동인접지구의 행정구역에 관한 임시조치법」에는 비무장지대와 민통선 이북에 걸친 경기도 파주군 ‘장단면, 군내면, 진서면, 진동면의 면장은 면관할구역 안에 주민이 상주하게 될 때 임용’한다고 하여 면사무소를 설치할 수 없었다. 그러나 2009년 지방자치법개정으로 2개면 이상을 하나의 행정면으로 통합 관리할 수 있게 됨에 따라, 2021년 비무장지대 내 4개 면을 모두 관할하는 면사무소와 면장을 갖게 되었다. 이로써 장단면의 비무장지대는 대한민국의 법적관할권이 회복되었다. 장단면처럼 비무장지대 안에 있는 면들에 대해 관할권을 회복하는 조례제정운동이 요구된다. 이는 유엔사와 전혀 충돌할 필요가 없으면서도 비무장지대 관할권을 회복할 수 있는 조치이다.

우선순위

정부는 9.19남북군사합의 실행의 순서를 유엔사관리권이 약한 곳에서 강한 곳으로, 즉 서해-한강하구-비무장지대 순으로 점진적으로 추진할 것을 요구한다. 이행법률도 서해평화수역법-한강하구공용수역법-비무장지대법 순으로 추진할 것을 요구한다. 

2. 2단계 유엔사관리권 부분이양사업

유엔사의 실무역량의 한계로 정전협정관리업무의 대부분은 한국군에 인수되어 있다. 9.19남북군사합의서는 법령으로서의 조건을 갖춘 반면 유엔사규정은 어떤 국내법적지위도 갖지 못한다. 따라서 9.19남북군사합의서를 중심으로 국군의 관할권은 확대하고 ‘유엔사’의 관할권은 축소해가는 방향에서 관할권을 환수할 필요가 있다.

정전협정제10항에 의하면 ‘유엔사령관’이 남측 비무장지대 출입인원수를 결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을 호위할 민정경찰 수는 군정위 만이 결정할 수 있다. 20항에 따라 군정위는 협정서명 쌍방에 의해서만 구성된다. 그런데 1994년 인민군과 중공군의 군정위 철수로 군정위는 해체된 상황이다. 유엔사군정위는 군정위가 아니다. 따라서 10항이 명시한 유엔사령관의 비무장지대 출입허가권은 현실적으로 실행될 수 없다. 따라서 비무장지대와 한강하구의 관리공백은 정전협정으로는 대체할 수 없고 9.19남북군사합의서로는 대체할 수 있다. 9.19남북군사합의서는 새로운 비무장지대 관리규정을 상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엔사교전규칙 역시 합참교전규칙으로 대체해야 한다.

3. 3단계 유엔사 관리권 전부이양

보수적 국제법학자인 제성호 교수도 2006년부터 “유엔사가 우리측에게 관할권을 이양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왔다. 2019년 8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위한 기본운용능력(IOC) 검증을 위한 한‧미 연합지휘소훈련에서 에이브럼스 유엔사령관은 “유엔사령관이 데프콘(전투준비태세)3까지는 한국군에 작전에 관한 지시를 내릴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했다. 유엔사가 평시작전권에 관여하겠다는 뜻이다. 한국군의 평시작전권은 이미 1994년에 환수됐다. 2018년 정부당국자에 의하면, 한국 합동참모본부-유엔사-연합사 간 관계 관련 약정(TOR)체결시 “우리가 약정에서 ‘정전협정 준수와 관련해 유엔사가 연합사를 지휘할 수 있다’는 조항을 고치려고 했는데 미국의 반대로 무산됐다”고 했다. 전작권 환수에서 마지막 걸림돌이 유엔사 문제임이 드러난 것이다.

정전 이후 한반도 위기는 전시작전이 아닌 위기시 위기조치로부터 시작되었다. 따라서 위기관리권까지 전시작전권 환수에 포함되어야 한다. 정전위기관리를 유엔사령관이 고집하는 이상 완전한 전작권 환수는 요원해진다. 즉 전작권 환수과정에서 연합사만이 아니라 유엔사의 권한까지 환수받지 않으면 큰 문제가 생길 수 있음을 보여준다. 9.19남북군사합의서의 복원과 실질화만이 유엔사의 관리권 전부이양을 가능케 하고 온전한 전작권 환수를 가능케 할 것이다. 정전협정이 우세한 상황과 9.19합의서가 우세한 상황 중 후자가 전작권 환수에 훨씬 유리하다.

나오며

군사분계선이 흔들리면서 정전협정이 붕괴되었고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사고와 충돌을 막을 규범이 전무함이 확인되었다. 사소한 갈등도 충돌이 되고 전쟁으로 비화할 수 있는 군사분계선체계와 국경선체계의 긴장에 숨구멍을낼 수 있는 가능성이 그나마 9.19남북군사합의서이다. 조선은 정전협정처럼 9.19남북군사합의서에 대해서도 폐기선언을 했다. 

어차피 현재로선 아무런 틀도 없다. 북미간 평화협정이 성사되어도 한국이 끼어들 틈은 없다고 생각하는 게 현실에 부합할지 모른다. 무엇을 하든 새로이 시작해야 한다면 한‧조간의 냉량한 관계 하에서조차 9.19틀을 세우고 9.19틀을 살리는 길만이 우리의 희망처럼 보인다. 9.19틀 하에서 새로운 경계선체계를 봉합하는 것이 이번 군사분계선 위기에서 찾을 기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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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정전협정 13항 ㄱ) …군사력량을 비무장지대로부터 철거한 후 비무장지대 내에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는 모든 폭발물, 지뢰원, 철조망 및 기타 군사정전위원회 또는 그의 공동감시소조인원의 통행안전에 위험이 미치는 위험물들은 이러한 위험물이 없다고 알려져 있는 모든 통로와 함께 이러한 위험물을 설치한 군대의 사령관이 반드시 군사정전위원회에 이를 보고한다.

(2) 장용운, 『접경지역 평화지대론』. (서울 : 연경문화사, 2005), pp.23-24; 정주신, 「DMZ 탄생의 역사적 난제와 해결방안」, 한국과 국제사회Vol.5 No.5, (한국정치사회연구소 2021), p.53

(3) 「지뢰매설밀도 세계 1위 한반도 DMZ...200만발 매설 추정」, VOA, (2018.10.2.)

(4) 그러면서, 한국은 2021년 4월부터 11월까지 민통선 남쪽 후방지역 42개 지역 63만 제곱미터에서 지뢰제거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덧붙였다.「남북한, 대인지뢰금지협약 가입해야」, VOA, (2021.11.9.) https://www.voakorea.com/a/6305031.html

(5) 노르웨이의 국제 지뢰감시기구인 ‘노르웨이 피플스 에이드’(NPA)가 ‘2021 지뢰 제거’ 연례 보고서에서 한국전쟁 등을 거친 한반도는 전 세계에서 대인지뢰가 가장 많이 매설된 곳 가운데 하나라며 이같이 밝혔다.「남북한, 대인지뢰금지협약 가입해야」, VOA, (2021.11.9.) https://www.voakorea.com/a/6305031.html

(6) 합동참모본부 언론 브리핑(2024.6.18.)

(7) 「“지뢰금지 남북공동서명을”/윌리엄스 회장 촉구」, 한국일보, (1998.02.06.); 한국대인지뢰대책회의 성명(2000년 9월 5일)

(8)  정정협정 후속합의서 「쌍방 군사인원 시체 인도인수에 관한 행정상 세목의 양해」                 (1954.8.17. 군정위 제47차 회의 비준)는 비무장지대 남측에서 유엔사의 관리권한을 명시하고 있다.

(9) 물론 이는 유해발굴사업에 수반된 한정된 것이었다.「남북한, 대인지뢰금지협약 가입해야」, VOA, (2021.11.9.) https://www.voakorea.com/a/6305031.html

(10) 최철영, 「전후법으로서의 정전협정의 역할과 한계」, 민주법학43권, (2010.7), p.166

(11) 「군 “유엔사와 먼저 MDL 일치화…올초부터 TF 구성해 논의”」, KBS, ( 2026.10.06.)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678691

(12) Thomas F. Christie, IS1 US Navy, Intelligence Advisor UNCMAC-S, “Military Demarcation Line Information Paper,” 16 April 2016.

(13) 이는 건축가 루이스 칸의 핵심적인 건축사상이다.

(14) UTM 좌표계(Universal Transverse Mercator Coordinate System)는 전 지구상 점들의 위치를 통일된 체계로 나타내기 위한 격자 좌표체계의 하나로써, 지구를 경도 6도 간격의 세로띠로 나누어 횡축 메르카토르 도법으로 그린 뒤, 위도 8도 간격으로 총 60☓20개의 격자로 나누어 각 세로 구역마다 설정된 원점에 대한 종횡 좌표로 위치를 나타낸다. 지리 좌표계가 극지방으로 갈수록 직사각형이 많이 감소하는 반면 UTM좌표계는 직사각형 모양을 유지하므로 거리·면적·방향 등을 나타내는 데 매우 편리하다.

(15) 원래의 동경측지계는 동경을 중심으로 하는 1892년식 2차원 좌표체계와 1841년 베셀 타원체를 사용한 것이었다. 이 좌표계는 1898년에 한반도까지 포함하도록 확장되었다. 일본은 40년간 한반도를 점령하면서 1911년에 한 차례, 그리고 그 이후 국지적 측량 등 총 두 차례 측량하였다. 측지계가 한국에서 끝나서 동경과 한국 사이에는 기준점이 없었기 때문에 일본은 한반도 측량을 위한 시작점을 부산으로 정하였다. 한반도 공식 측량 이후 이 측지계는 1912년에 한차례 더 최신화되었다. 정전협정 지도를 분석한 결과, 1923년 관동 대지진으로 인해 발생한 지각 변동까지 반영하여 지도를 제작한 것으로 판단되었다.(계용호, 「한국 정전협정의 군사분계선에 관한 고찰, 유엔군사령부군사정전위원회의 MDL프로젝트」, 전략논단Vol.29, (해병대 전략연구소, 2019), p.15)

(16) Gemini 답변

(17) 한글본, 영문본, 중문본 3부씩 9부의 각1부마다 34장의 지도가 들어갔으므로 총 306장의 지도가 제작된 셈이다. 

(18) 당시 제작된 사본, 특히 인민군과 중국 인민지원군에 제공된 사본의 현황을 정확히 확인할 수는 없으나, 현재까지 남아있는 사본들은 유엔사군정위, 중립국감독위원회,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이 각각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계용호, 위 글, p.15

(19) 이는 정전협정 지도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모든 지도에 존재하는 제한요소들이다. 

(20) Jasper Becker, Rougue Regime: Kim Jong Il and the Looming Threat of North, (Oxford University Press, 2005), p.46

(21) Kim K.C., “Preserving Biodiversity in Korea’s Demilitarized Zone”, Science 278, (1997), p.242.

(22) Adam Theiler, “Dangerous Divide”, National Geographic Magazine Online Extra 2003(7); Michael Fry, “National Geographic, Korea, and the 38th Paralle”, National Geographic 8, (2013); Dimitrios Diamantis, Ecotourism: Management and Assessment, (Thomson Learning, 2004), p.167; NASA earth observatory (https://earthobservatory.nasa.gov/images/3660/korean-demilitarized-zone).

(23) 김창환, 「비무장지대 및 군사분계선의 길이에 관한 연구」, 한국지리정보학회지Vol.22 No.1, (한국지리정보학회 2019), p.26

(24) GIS(Geographic Information System: 지리정보체계)는 지리 공간적으로 참조 가능한 모든 형태의 정보를 효과적으로 수집·저장·갱신·조정·분석·표현할 수 있도록 설계한 컴퓨터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및 지리적 자료, 인적 자원의 통합체이다.

(25) 계용호, 위 글, p.26 참조

(26)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미국합동참모본부사 한국전쟁 하, (1991), p.66

(27) 계용호, 위 글, p.13 참조

(28) 한모니까, 「한국전쟁 정전(停戰)과 비무장지대(DMZ) 대성동의 재구성 - 대성동 주민의 구술생애사를 중심으로」 한국사연구No.207, (한국사연구회 2024), p.475

(29) 군사분계선(MDL) 표지 설치에 관한 합의(1953.11.3. 제86차 군사정전위원회 비서장 회의) 조·중 측은 “우리 측은 정전협정 제4항에 준거하여 군사분계선이 이미 표식되었다고 생각하며 이러한 조치가 취해졌음을 비서처의 공식기록에 기록해 두는 데 동의합니다”라고 기록하였다. 또한 국련 측도 “우리 측 역시 정전협정에 의거하여 군사분계선이 이미 표식되었다는데 동의합니다”라고 후속합의서에 기록하였다. Tab “R” Subsequent Agreement to the Korean Armistice Agreement: Agreement that MDL has been Marked, 3 November 1953; UNC-Subsequent-Agreements-revised-March-23-2017, V-2

(30)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유엔사 군정위 팀이 비무장지대에서 군사분계선 표식물의 위치를 직접 측량한 결과, 기존에 설치된 그 표식물들의 위치가 정전협정 지도에 표시된 군사분계선과 일치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31) 한모니까, DMZ의 역사 –한반도 정전체제와 비무장지대 중 제3장 제2절 「‘자유’와 ‘평화’의 ‘쇼윈도’ 경쟁」, (돌베개, 2023), p.192. 계용호 역시 유사하게 진술한다. ‘표식물은 8피트 높이의 금속제 말뚝을 땅에 박든지 3피트 크기 돌무더기에 고정하여 설치하며, 인접 표식물로부터 식별할 수 있도록 하였고, 각 표식물간 간격은 최대 500m를 넘지 않도록 하였다.’ 계용호, 위 글, p.16

(32) Thomas F. Christie, “Military Demarcation Line Information Paper,”16 April 2016; Subsequent Agreement to the Korean Armistice Agreement: Designation of “A”and “B”Sectors of MDL and Numbering System and Marker Design, 21 January 1955.

(33) 한모니까, 「한국전쟁 정전(停戰)과 비무장지대(DMZ) 대성동의 재구성 - 대성동 주민의 구술생애사를 중심으로-」 한국사연구No.207, (한국사연구회 2024), pp.475-476

(34) 계용호, 위 글, p.16 참조

(35) 계용호, 위 글, p.17 참조

(36) 권혁철, 「3개의 군사분계선…DMZ 폭발 여진, 말뚝이라도 다시 세운다면」, 한겨레신문, (2026. 9. 28)

(37) Bökel, Grenzerfahrungen, pp.49-50, 74-78; Diana Unkart/Klaus Hartwig Stoll, Das war die Teilung, Fulda: Point Alpha Stiftung, 2015, pp.144-146참조; 최승완, 「점령지역 경계선에서 국경으로-1950~60년대 동서독 접경지역과 국경체제의 형성」, 이화사학연구No.72, (이화여자대학교 이화사학연구소 2026), pp.275-276

(38) 계용호, 위 글, p.17 참조

(39) 비무장지대 군사분계선 “갑”구역과 “을” 구역. 유엔사 규정551-4

(40) 「국방부 “유엔사 현정조사 전 수색로 개척작전 중 지뢰 폭발”」, 주간조선, (2026.9.22.)

(41) 헤겔, 이동춘 역, 법의 철학(전편), (서울: 박영사, 1983 중판), p.164-165

(42) 계용호, 위 글, p.10 참조

(43) kml(keyhole makeup language) 파일은 구글어스, 구글 지도 및 기타 응용프로그램에서 쓰이는 XML기반의 마크업 언어 스키마이다. 지형정보를 모델화하고 표현하는 역할을 한다. 주요 기능은 아이콘과 라벨로 지구상의 위치를 표시하고, 시점·기능·지형·사물 등에 따른 각각의 카메라를 설정하며, 지표면이나 화면에 그림이나 영상을 띄움으로써 기능·특징별로 해당 위치의 표현 방법을 각각 설정할 수 있다.

(44) 계용호, 위 글, p.19 참조

(45) UNCMAC SEC Memorandum to UNCMAC, “Endorsement of Armistice Agreement Military Demarcation Line Project Phase 1B Extraction Report,” 26 May 2016.

(46) 계용호, 위 글, pp.10-11 참조

(47) GIS(Geographic Information System: 지리정보체계)는 지리 공간적으로 참조 가능한 모든 형태의 정보를 효과적으로 수집·저장·갱신·조정·분석·표현할 수 있도록 설계한 컴퓨터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및 지리적 자료, 인적 자원의 통합체이다.

(48) Thomas F. Christie, IS1 US Navy, Intelligence Advisor UNCMAC-S, "Military Demarcation Line Information Paper," 16 April 2016.

(49) 계용호, 위 글, p.26 참조

(50) 계용호, 위 글, p.20 참조

(51) 「남북, 파주 군사분계선 인근서 총격」, YTN, (2014.10.20.)

(52) 계용호, 위 글, p.21 참조

(53) 2014년 7월 28일 스캐퍼로티 사령관은 미 태평양사령관, 미 합참의장에게 ‘유엔군사령부 재활성화(Revitalizing the United Nations Command)’ 제하의 서신을 통해, “재활성화된 유엔사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보를 위한 다국적 수행자로서 능력을 확장시킬 것이며, 유엔사는 대한민국 방어를 위해 다국적 작전을 수행함으로서 지속적으로 정전을 유지하는 동시에 적대행위를 적극적으로 억제하고, 확전을 방지하며,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유엔군사령관으로서의 비전을 명시하였다. (장광현,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따른 유엔군사령부 재활성화에 관한 연구」, (아주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9), 부록 8)

(54) 「군 “유엔사와 먼저 MDL 일치화…올초부터 TF 구성해 논의”」, KBS, (2026.10.06.) 참조.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678691

(55) 유엔사와 국군사이의 군사분계선 일치화는 단순한 기술적 문제가 아닌 전작권 문제이다. 2018년 전작권 환수를 위한 한미연합연습과정에서 유엔사령관의 정전시 위기관리권이 걸림돌로 등장했다. 전작권환수를 막으려는 주한미군사령관에게 있어 유엔사령관의 지위는 굵은 동아줄이다.

(56) Vorkommnisse an der Grenze zur DDR auf der Elbe (1961-1974), BA Koblenz, B 106/95269.

(57) 최승완, 「점령지역 경계선에서 국경으로-1950~60년대 동서독 접경지역과 국경체제의 형성」, 이화사학연구No.72, (이화여자대학교 이화사학연구소 2026), p.276 

(58) 국군은 개인들이 GPS를 지참하고 현장에서 식별한다. 인민군도 지휘관들은 러시아제 글로나스(GLONASS)를 쓴다고 알려졌다. 

(59) 최승완, 「점령지역 경계선에서 국경으로-1950~60년대 동서독 접경지역과 국경 체제의 형성」, 이화사학연구No.72, (이화여자대학교 이화사학연구소 2026), p.255, 258

(60) ‘제44조 (조약규정의 가분성) ① 조약에 규정되어 있거나 또는 제56조에 따라 발생하는 조약의 폐기·탈퇴 또는 시행 정지시킬 수 있는 당사국의 권리는, 조약이 달리 규정하지 아니하거나 또는 당사국이 달리 합의하지 아니하는 한, 조약 전체에 관해서만 행사될 수 있다.’ 비엔나협약 제46조에 의해 국내법 규정에 위반된다고 하여 정전협정을 폐기할 수는 없다. 즉 북의 헌법이 바뀌었다고 해서 정전협정을 폐기하고 군사분계선을 국경선으로 바꾸는 것이 합리화되진 않는다. 국경선은 당사국간의 합의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북의 정전협정 폐기 선언은 비엔나협약 46조가 아닌 44조에 의한 것이다.

(61) 강택구, 김재한, 「휴전과 국경 안정화 중‧인 국경운용을 중심으로」, 세계지역연구논총28권3호, (2010.12), p.210

(62) 강택구, 김재한, 「휴전과 국경 안정화 중‧인 국경운용을 중심으로」, 세계지역연구논총28권3호, (2010.12), p.217

(63) 「북한, 작년 시작한 DMZ 철책 작업 유엔사에 뒤늦게 통보」, 연합뉴스(2025. 06. 30)

(64)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보도 (2024년 10월 9일), NKnews.org

(65) 홍민, 「DMZ 지뢰폭발 사고 관련 김여정 담화의 구조와 의도」, KINU 온라인시리즈 26-66, p.1

(66) 국경의 작동방식을 규정하는 법적지위, 관리조직, 운용규범, 군사태세의 제도 복합체를 ‘국경체제(border regime)’로 정의한다. Malcolm Anderson, Frontiers: Territory and State Formation in the Modern World (Cambridge: Polity, 1996); David Newman, “On Borders and Power: A Theoretical Framework,” Journal of Borderlands Studies 18, no.1 (2003), pp.13–15; Emmanuel Brunet-Jailly, “Theorizing Borders: An Interdisciplinary Perspective,” Geopolitics 10, no. 4 (2005), pp.633–649; 홍민, 「북한의 ‘남부국경화’ 군사적 조치-국경 화력체계와 북한식 국경모델」, KINU Insight 2026-04, p.23참조

(67) A. James McAdams, Germany Divided: From the Wall to Reunification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3); Edith Sheffer, Burned Bridge: How East and West Germans Made the Iron Curtain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11); Sagi Schaefer, States of Division: Border and Boundary Formation in Cold War Rural Germany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14); 홍민, 「북한의 ‘남부국경화’ 군사적 조치-국경 화력체계와 북한식 국경모델」, KINU Insight 2026-04, p.22참조.

(68) Happymon Jacob, Line on Fire: Ceasefire Violations and India–akistan Escalation Dynamics (New Delhi: Oxford University Press, 2019); Glenn H. Snyder, “The Balance of Power and the Balance of Terror,” in Paul Seabury, ed., The Balance of Power (San Francisco: Chandler, 1965).

(69) Edward Boyle, “Borderization in Georgia: Sovereignty Materialized,” Eurasia Border Review 7, no.1, (2016), pp.1–8; Gerard Toal, Near Abroad: Putin, the West, and the Contest over Ukraine and the Caucasu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17).

(70) 예를 들면 유럽안보협력기구(OSCE)가 2005년 채택한 국경안보관리개념(Border Security and Management Concept)은 국경관리의 목적을 초국경위협에 대한 안보와 사람·상품·서비스 이동의 자유 사이의 균형으로 설정하고, 국경 문제를 군사방어가 아니라 초국경 범죄·테러·불법이주에 대응하는 협력적 법집행의 문제로 프레임했다. OSCE, Border Security and Management Concept: Framework for Co-operation by the OSCE Participating States, MC.DOC/2/05, Thirteenth OSCE Ministerial Council, Ljubljana, 5– December 2005.

(71) Glenn H. Snyder, Deterrence and Defense: Toward a Theory of National Security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61); 홍민, 위의 글, p.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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