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한국 진보는 브라질에서 무엇을 읽어야 하나. 영화감독 이송희일은 1차 투표 직후 쓴 글에서 룰라 정부가 우경화된 기조를 유지하다 '보우소나루주의'를 제압하지 못했다고 진단하며 "보다 진보적이고 담대한 정치 비전과 민중 동원"이 필요했다고 썼다. 일리 있는 진단이지만 나는 다른 대목을 본다. 브라질이 한국에 주는 경각심은 '노선의 선명성 '문제가 아니다. 보수 개신교의 정치 동원력을 제도로 꺾지 못하면 진보 정치에 미래가 없다는 경고다.
브라질 유권자의 표심은 종교에 따라 갈렸다. 선거 사흘 전 공개된 여론조사기관 다타폴랴(Datafolha) 조사에서 가톨릭 유권자의 50%는 룰라를, 32%는 플라비우를 지지했다. 복음주의 개신교 유권자에게서는 순서가 뒤집힌다. 플라비우가 52%, 룰라가 26%다.
처음부터 이런 구도는 아니었다. 실라스 말라파이아, 에지르 마세두처럼 지금 룰라를 가장 거칠게 공격하는 대형교회 지도자들도 룰라 1기에는 그의 편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낙태와 성소수자 문제를 고리로 우파와 손잡았고 2018년 자이르 보우소나루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의회 복음주의의원전선(FPE)에 이름을 올린 하원의원은 211명으로 전체 513석의 40%가 넘는다. 2023년 1월 8일 삼권기관 습격을 부추긴 혐의로 수사 받은 의원들도 이 명단에 있다.
복음주의가 이만큼 커진 배경에는 미국이 있다. 브라질 복음주의 개신교인 비율은 1991년 9.0%에서 2022년 26.9%로 세 배가 됐다. 냉전기 미국은 가톨릭 안에서 자라난 해방신학을 공산주의의 통로로 여겼다. 레이건 진영이 1980년 작성한 <산타페 문서>는 해방신학에 맞서야 한다고 적었고 그 뒤 수십 년 동안 미국 복음주의 단체의 선교 자금과 방송이 남미 빈민가로 흘러들었다. 복음주의자는 가톨릭 신자보다 젊다. 브라질에서 시간은 복음주의 교회의 편이다.
물론 개인의 신앙은 정치가 간섭할 영역이 아니다. 많은 신자들은 교회에서 영적 안식처를 찾는다. 문제는 교회가 정치 조직으로 움직일 때 생긴다.
복음주의 개신교는 정치의 영역에 개입해 반대자를 악마로 만든다. 선거를 영적 전쟁으로 설교하는 순간 상대 후보는 사탄의 하수인이 되고 타협은 배교가 된다. 2022년 브라질 대선에서 목사이자 하원의원인 마르쿠스 펠리시아누는 룰라가 집권하면 교회를 닫을 것이라는 영상을 퍼뜨렸다가 나중에 근거가 없었다고 인정했다. 당시 영부인 미셸 보우소나루는 남편이 들어오기 전 대통령궁이 악마에게 바쳐진 곳이었다고 말했다. 룰라는 결선을 열하루 앞두고 교회를 닫지 않겠다는 공개서한까지 내야 했다. 올해 6월에도 플라비우는 상파울루의 복음주의 대행진 무대에서 브라질이 영적 전쟁을 치르고 있으며 올해 악이 정부에서 쫓겨날 것이라고 말했다.
선거가 영적 전쟁이라면 악마에게 진 선거 결과에 승복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승복하는 게 더 이상한 일이다. 그래서 브라질에서는 2022년 대선 불복과 이듬해 1월의 삼권기관 습격이 터져 나왔다.
내란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윤석열을 지키겠다며 서부지법을 쑥대밭으로 만든 현장에도 교회가 있었다. 전광훈 목사가 이끄는 사랑제일교회의 특임전도사 두 명이 법원에 난입했고 둘 다 실형을 받았다. 가담자 가운데 가장 무거운 징역 5년을 받은 사람은 법원 안에 불붙인 종이를 던진 열아홉 살 청년, 이른바 '투블럭남'이었다. 그는 극우 성향의 개신교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독실한 신자로 살아온 청년이 폭도가 된 것이다.
복음주의 정치는 반대자만 악마로 만드는 게 아니다. 번영신학은 가난을 믿음이 부족한 탓으로 돌린다. 십일조를 내고 헌신하면 하나님이 물질로 갚아준다고 가르치니 여전히 가난한 신자는 헌신이 모자란 사람이 된다. 실업과 저임금은 구조의 문제가 되지 못하고 복지국가에 대한 요구는 기도 제목으로 바뀐다. 이 설교를 누가 듣는지가 문제다. 2020년 여론조사기관 다타폴랴 조사에서 브라질 복음주의자의 48%는 소득이 최저임금의 두 배, 당시 환율로 월 50만 원에 못 미쳤다. 59%는 흑인이나 혼혈, 58%는 여성이었다. 진보가 가장 먼저 대변해야 할 사람들이 매주 극우의 정치 언어를 듣고 있다.
교회는 세금을 내지 않는 선거 조직이기도 하다. 브라질 헌법은 종교 시설에 대한 과세를 금지한다. 매주 수천 명을 모으고 헌금을 걷는 조직이 선거철이면 동원 기구로 바뀐다. 면세 특권은 정치의 대가로 더 커진다. 2020년 브라질 의회는 교회가 체납한 사회기여금과 벌금 약 10억 헤알(약 2685억 원)을 탕감하는 조항을 통과시켰다. 보우소나루는 재정책임법 위반을 피하기 위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도 자신이 의원이었다면 거부권 행사를 뒤집을 것이라고 공언했고, 의회는 이듬해 실제로 거부권을 무효화시켰다. FPE는 다음 의회의 최우선 과제로 교회 면세 확대를 꼽았다.
한국도 안심할 수 없다... '반정부' 앞장서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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