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폐·분산형 노숙’ 상태에 놓인 청년 홈리스 10명 중 8명이 극심한 우울 증상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러스트 | 챗GPT
불안정한 거처로 인한 고립은 정신질환과 자살·자해 위기, 성노동 등 생존 위협으로 직결됐다. 서울 지하의 2평 남짓한 방음부스 바닥에서 친구 2명과 함께 살며 월 67만원을 부담했던 정진우씨(가명)는 “불안장애에서 공황장애, 중증도 우울장애로 병이 악화됐고, 일하던 중 공황장애가 터져 해고된 이후 완전히 모든 게 망가졌다”고 말했다.
고3 때 탈가정 이후 쉼터와 거리를 떠돌다 자살을 시도했던 김희철씨(가명)도 고립 당시 상황에 대해 “떠돌이 생활도 지치고 해결될 것 같지 않은 상황에 모든 걸 놔버리고 자살을 시도했다가 미수에 그쳐 긴급 입원됐다”라고 회상했다.
성 정체성에 따른 배제와 구직난도 생계 위기로 이어졌다.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구직에 어려움을 겪다 빚을 지고 성노동을 했던 안서윤씨(가명)는 월세를 감당할 수 없게 된 뒤에도 쉼터 대신 지인의 집을 택했다. 안씨는 “시스젠더(비트랜스젠더) 여성들과 지내는 쉼터에 들어가기는 눈치가 보였다”고 했다. 쉼터 입소를 포기하며 입소자를 중심으로 제공되는 공적 지원에서도 멀어졌다.
폭력 피해 집 나왔지만…‘원가정 복귀’ 전제 복지에 재노숙 악순환
정신건강 위기에는 가정 내 폭력과 학대, 가족 해체 등 청소년기부터 이어진 경험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조사됐다. 청년들이 생애 처음 집을 나오게 된 계기 중 부모·친족의 가정폭력 피해(19.9%·31명)와 이혼 및 가족해체(25.0%·39명) 등 원가정 문제가 44.9%(70명)로 절반 수준이었다. 특히 성소수자 그룹(24명)에서는 가정폭력 피해 37.5%(9명)와 가족해체 29.2%(7명)의 합산 비율이 66.7%(16명)에 달했다.
주거 위기를 경험하기 시작한 시기도 빨랐다. 최초 노숙한 시기를 살펴보면 51.3%(80명)가 만 24세 이하에 처음 노숙을 경험한 것으로 집계됐다.
가정폭력이나 학대를 피해 집을 나온 청년들은 다시 원가정으로 돌아가거나 주거 위기를 반복하는 구조에 놓여 있다. 현행 공적 복지 체계는 ‘원가정 복귀’를 최우선 해결책으로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가정 문제로 이탈한 청년의 재노숙률은 75.7%로 전체 평균(61.5%)보다 높았다.
유년 시절부터 친부와 친족의 폭력·방임에 노출됐던 이재은씨(가명)는 가정폭력을 피해 쉼터를 찾았지만 ‘원가정 복귀’ 조치로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이씨는 “집으로 돌아가는 게 죽기보다 싫었다”고 말했다. 대학 1학년 때 자살을 시도한 뒤 20대 전반에 걸쳐 정신병원을 오가며 4년가량 입원했다. 이씨는 “어릴 때 울타리가 돼주는 부모의 존재는 일종의 종잣돈인데, 모든 기반이 무너진 상태에서 10년을 홀로 버텨야 했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폭력과 부모의 이혼을 겪은 안정국씨(가명) 역시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집을 나왔다. 푸드코트와 건설 현장을 전전해 4년 만에 마련한 원룸을 도박과 지인들의 갈취로 잃은 뒤 지하상가와 공원, 인천국제공항 등을 전전했다. 버려진 음식으로 끼니를 때울 때 “비참함에 죽고 싶었다”던 안씨는 일시보호시설을 찾았다. 그러나 복지사들이 오래 노숙했거나 말이 없는 사람들에게 ‘살벌하게’ 욕을 하고 함부로 대하는 모습을 보곤 다시 거리로 나왔다.
친부와 의붓아버지의 계속된 폭력을 피해 외할머니집을 거쳐 서울로 도망친 정진우씨 역시 제도의 벽에 가로막혔다. 가정폭력 피해자임에도 의료급여 신청 시 부양의무자 기준에 따라 가해자인 부모에게 확인 연락이 가는 행정 절차 때문이다. 정씨는 원가정 복귀 조치를 막으려고 부모에게 간간이 연락을 취했던 기록 탓에 기초생활수급 신청이 최종 불승인됐다. 그가 머물던 거처는 임대차계약서 발급이 안 되는 단기임대 공간이라 주거 지원 신청조차 불가능했다.
지하·옥탑·고시원 전전… 주거비 짊어지다 부채·우울 늪으로
노숙 상태를 벗어난 이후에도 청년들이 안착할 수 있는 공적 주거 사다리는 작동하지 않았다. 조사 당시 홈리스 청년의 주거 유형은 ‘노숙 중(일시쉼터 포함)’과 ‘고시원 거주 중’이 각각 24.4%(38명)로 가장 많았다. 민간 월세주택(21.2%·33명), 장기시설(15.4%·24명)이 뒤를 이었다. 안정적인 공공임대주택에 거주하는 비율은 9.0%(14명)에 불과했다. 주거 위기를 겪은 뒤에도 대다수가 고시원이나 비적정 주택, 시설을 전전하며 불안정한 거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이 체감하는 주거 불안은 일반 청년층과 비교해 압도적으로 높았다. 최근 이들이 1년간 경험한 주거 불안 요소 중 ‘2개월 이상 월세 연체’ 비율이 28.2%(44명)로 가장 높았다. 이는 국무조정실 ‘2024년 청년 삶 실태조사’에서 파악된 일반 청년층의 2개월 이상 월세 체납 비율(1.7%)과 비교해 월등히 높다.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의 일상 지출은 생존 비용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이남준씨(가명)는 “80만원이 있었지만 집이 없으니 카페나 24시간 패스트푸드점에 계속 머물며 음식을 계속 사야 해서 십몇일 만에 돈이 다 떨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보증금이 모자라 방을 구할 수도 없고, 무보증 고시원은 잠만 자는 수준이라 제대로 된 삶을 영위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실제로 최근 3개월간 월세를 낸 홈리스 청년의 평균 월세는 약 31만8000원이었다. 전체 응답자의 평균 월소득(79만9938원)이 1인 가구 최저생계비의 절반 수준인 상황에서, 월세 가구의 ‘소득 대비 임대료 비율’은 44.5%였다. 이는 전국 청년 평균(16%)의 3배에 달하는 수치다. 소득이 전혀 없지만 노숙을 면하고자 빚을 내 월세를 감당한 청년이 13명에 이르는 등 주거 유지 노력이 부채와 금융 취약성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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