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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과 분당, 두 1기 신도시의 엇갈린 30년

남민지·이은교 기자

hibongsoo@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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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 입력 2026.09.24 12:00

  • 수정 2026.09.24 17:38

  • 댓글 1

[르포] 같은 시간대 다른 풍경…도시의 활력은 어디서 오나?

1기 신도시로 함께 출발한 두 도시의 현재가 얘기하는 것

MBC저널리즘스쿨 학생들이 여름방학 과제로 제출한 르포기사를 이봉수 교수(한국미디어리터러시스쿨 원장)의 첨삭을 거쳐 민들레에 연재한다. 학생들은 방학 기간에 두셋씩 짝을 지어 친구의 고향 도시를 방문해 익숙하거나 낯선 시선으로 사람들 삶을 들여다보는가 하면 다리가 놓인 뒤 섬마을 생활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관찰한다. 모교 주변 젠트리피케이션의 명암을 살펴보는가 하면 분당·일산 신도시 상가의 영고성쇠를 비교한다. 서울마음편의점에서 고립된 이웃에 시선을 돌리는가 하면 스스로 도심의 사찰에 머물며 청춘의 불안을 다스리기도 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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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 상업지구에 즐비한 ‘임대문의’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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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3호선 상행선 끝자락 즈음에 정발산역이 있다. 지난 8월 5일 오후 낮시간대 역에서 내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한낮의 태양이 정수리를 내리쬔다. 5분쯤 걷자 예스러운 글씨로 적힌 ‘Western Dom’(웨스턴 돔)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의 대표 상업지구다. 낮은 키의 상가들이 이어진 웨스턴 돔 안으로 들어섰다.

일산 웨스턴 돔 곳곳에 ‘임대 문의’ 안내문이 붙어 있다(왼쪽). 비어 있는 점포 우편함들에는 관리비 고지서와 우편물이 쌓여 있다(오른쪽). © 이은교

얼마 걷지 않았는데 통유리 너머 불이 꺼진 점포들이 연달아 나타난다. 출입문에는 어김없이 ‘임대 문의’ 안내문이 붙어 있다. 비어 있는 점포 앞 우편함에는 주인 잃은 관리비 고지서가 쌓이다 못해 무질서하게 꽂혀 있다. 사람들 발길이 끊긴 기간이 얼마나 됐는지를 말해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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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점포 사이에는 무인 매장이 자리 잡았다. 무인 매장 세 곳이 연달아 늘어서 대낮에도 환한 불빛을 내비치며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웨스턴 돔을 한 바퀴 도는 동안 사람보다 임대 문의 안내문이 더 자주 눈에 띈다. 평일 낮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거리는 한산하다. 사람들은 대형 카페에만 삼삼오오 모여 있고, 입구에서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불이 꺼진 점포가 늘어난다.

 

일산 웨스턴 돔에 무인 매장 세 곳이 연달아 입점해 있다. © 이은교

웨스턴 돔을 빠져나와 라페스타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두 상권을 잇는 길을 따라가도 거리 분위기는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다. 라페스타에 가까워지자 다시 임대 문의 안내문이 붙은 점포들이 보인다. 먹자골목은 낮 장사를 준비하는 식당들만 문을 열었을 뿐, 오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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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 동구의 한 약국. 진열대 앞을 서성이던 손님들은 약사에게 필요한 약을 묻고 하나 둘 약국을 빠져나간다. 약국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벽면의 선반이다. 어린이용 제품은 가장 아래 두 칸 정도를 차지하고, 나머지는 전부 영양제로 채워져 있다. 2011년부터 고양시 일산 동구에서 약국을 운영해 왔다는 약사는 15년 동안 일산의 변화를 지켜봤다. 과거와 현재의 일산을 묻자 그는 가장 먼저 ‘아기 손님’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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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어딘들 뭐 좋겠냐마는 일산은 많이 늙어가고 있잖아요.”

 

오후 4시쯤 라페스타 먹자골목에는 오가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 남민지

분당 판교의 점심시간은 직장인으로 붐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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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진 한 명은 같은 시간대 성남시 분당구 판교동으로 향했다. 푸른빛이 도는 유리 건물들이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고, 건물 외벽에는 국내 주요 IT 기업들 이름이 붙어 있다. 낮 12시 30분이 가까워지자 조용하던 거리에도 변화가 생긴다. 건물 안에 있던 직장인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면서 식당과 카페가 빠르게 사람들로 채워진다. 거리에는 점심을 해결하려고 오가는 이들이 끊이지 않는다.

 

점심시간인 오후 12시쯤 판교 거리에는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붐빈다. © 남민지

판교 삼평동에서 AI 최적화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는 이는 이곳 풍경을 두고 “싹 다 직장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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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시는) 다 복제품입니다. 차이점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판교에는 그래도 일자리가 좀 더 있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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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의 활기는 업무지구에서 비롯된 듯하다. 그렇다면 주거지와 상업지구가 맞닿은 곳은 어떤 모습일까? 버스를 타고 분당 서현역으로 이동했다. AK플라자와 주변 상업시설이 이어진 모습은 일산의 웨스턴 돔과 라페스타를 떠올리게 한다. 상업용 건물이 모여 있고, 그 사이로 골목이 이어진 구조는 비슷하지만 건물 안팎의 모습은 다르다.

 

AK플라자 분당점 내부. © 남민지

AK플라자 분당점의 내부 카페에는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사람이 많다. 건물 밖에서도 아기를 데리고 나온 젊은 부부와 쇼핑백을 든 사람들, 학생들이 삼삼오오 거리를 오간다. 일산 웨스턴 돔과 라페스타에는 비어 있는 점포와 임대 안내문이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분당 서현역 인근에서는 사람들 움직임이 먼저 보인다. 주변 골목을 한 바퀴 도는 동안 빈 점포는 한 곳 정도밖에 눈에 띄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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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버스를 타고 야탑동으로 향했다. 판교가 업무지구, 서현이 상업지구 성격을 강하게 드러낸다면 야탑은 주거지 색이 짙다. 아파트 단지 사이로 병원과 마트, 음식점 같은 생활형 시설이 이어진다. 이곳에서도 거리에는 사람이 꽤 보였고, 문을 닫은 점포나 임대 안내문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의 거리. © 남민지

판교와 서현, 야탑의 풍경은 서로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거리와 상가 안에 있다는 점이다. 같은 평일 낮, 일산에서 빈 점포와 임대 안내문을 따라 걸었다면 분당에서는 사람의 움직임을 따라 걷게 된다. 고양시에서 13년을 살다 올해 1월 분당으로 이사했다는 한 분당구민은 두 지역의 차이를 생활 인프라와 주거 규모에서 체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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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에는 기업이 입주한 건물이 일산보다 더 많이 보이고, 병원도 훨씬 많다고 느꼈어요. 제가 사는 아파트만 해도 38동까지 있고, 10평대부터 40평대까지 평형도 다양해요. 일산에 살 때보다 한 단지 안에 더 많은 사람이 모여 산다는 느낌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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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함께 태어난 두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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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서로 다른 표정을 하고 있지만 일산과 분당은 같은 날 세상에 나온 도시다. 1989년 4월 정부는 서울의 주택난과 집값 급등을 완화하기 위해 분당∙일산∙산본∙중동을 포함한 수도권 4개 신도시 건설 계획을 발표한다. 수도권 외곽에 대규모 주택과 생활시설을 갖춘 새로운 도시를 조성한다는 구상이었다.

 

개발 전 일산(왼쪽)과 분당(오른쪽)의 모습. © 서울신문·중부일보

신도시 개발 이전 분당과 일산에는 논밭과 마을이 자리하고 있었다. 정부의 신도시 계획에는 두 지역에 아파트 단지, 도로와 공원, 상업시설을 건설하는 내용이 담겼다. 1991년 9월 분당에서는 시범단지 2천476가구의 입주가 시작됐지만, 일부 도로와 가로등 공사가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일산의 첫 입주는 이듬해인 1992년 9월 시작됐다. 마두동 강촌마을에 첫 주민들이 들어왔지만, 아파트 주변에는 도로와 상가 등 생활기반시설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았다. 기차는 백마역에 한 시간 간격으로 섰고, 버스를 기다렸다가 서울까지 장을 보러 가는 주민도 있었다. 이런 신도시의 생활 속 불편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떠난 초기 입주민도 꽤 있었다.

 

일산 호수공원. © 이은교

그러나 공사장과 빈 땅 사이에 조금씩 도시의 일상이 생겨났다. 학교가 문을 열고 상가와 쇼핑 시설이 들어섰다. 일산에는 호수공원이 조성됐고, 분당에는 탄천과 중앙공원을 중심으로 주거지가 자리 잡았다. 두 도시는 그렇게 1기 신도시로 함께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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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년이 지난 지금, 같은 평일 낮 두 도시의 거리는 서로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한쪽에는 사람과 상점이 모이고, 다른 한쪽에는 임대 안내문과 빈 점포가 남았다.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두 도시는 무엇을 계기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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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모으는 일자리, 머물게 하는 인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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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갈림길을 만든 요인 중 하나는 일자리였다. 고양시에서 젊은 일자리가 줄어드는 흐름은 통계로 확인된다. 2023년 고양시정연구원이 통계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 고양시 근무지 기준, 취업자 중 50세 이상은 증가한 반면 15~29세와 30~49세는 감소했다. 특히 2022년 하반기부터는 50세 이상 취업자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고양특례시 근무지 기준 연령별 취업자 추이. © 고양시정연구원 '2023년 상반기 고양특례시 경제동향 분석 및 주요 이슈'

판교는 일산과 달리 젊은 직장인이 많다. 제1·2판교테크노밸리에는 2024년 기준, 1780개 기업이 입주해 8만 3465명 임직원이 일하고 있다. 이 가운데 20·30대가 60%를 차지하며 전체 임직원의 평균 연령은 37.9세로 조사됐다. 2024년 전국 일자리 가운데 20·30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32.7%였던 것과 비교하면 청년 직장인의 비중이 전국 평균보다 크게 높은 편이다.

 

제1·2판교테크노밸리 임직원의 연령별 비중. © 판교테크노밸리 2025년도 실태조사 결과.

그러나 일자리가 많은 것만으로는 도시의 활력을 설명하기 어렵다. 일자리는 사람을 불러들이는 출발점이지만, 사람이 계속 머물게 하는 데에는 다른 조건이 필요하다. 같은 1기 신도시인 분당과 일산의 차이에는 일자리 외에도 주변 도시를 잇는 교통 환경이 작용했다. 한양대학교 도시공학과 김흥순 교수는 분당이 일산에 견주어 강남, 성남, 용인, 수원, 화성으로 이어지는 성장축의 일원으로서 일자리와 인프라 등 긍정적 외부효과를 수혜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은 도시의 활력은 그곳에 어떤 사람들이 모여 사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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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아랑 젊은 사람들이 많은 동네가 활력이 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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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위원은 사람들이 머물고 다시 찾아오게 만드는 도시의 조건으로 오랜 시간 쌓인 ‘인프라’(Infrastructure)를 꼽았다. 그는 인프라는 교통과 학원가처럼 눈에 보이는 시설뿐 아니라 지역에 축적된 여러 조건을 뜻한다며, 인프라가 도시의 가치를 만든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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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다고 여겨지는 지역은 인프라가 다 있습니다. 근데 이 인프라는 물리적인 것, 물리적이지 않은 것 다 포함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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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다시 젊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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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위원은 노후한 신도시 재생 사례로 일본의 ‘타마 신도시’를 꼽았다. 타마 신도시는 도쿄 도심에서 약 30km 떨어진 곳에 조성된 계획도시다. 1970년대부터 광역철도인 게이오선을 따라 입주가 시작됐다. 도쿄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의 베드타운(bedtown) 구실을 했다. 베드타운은 대도시 주변에 주택지역으로 특화된 위성도시인데,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주민들이 고령화하고 젊은 세대가 빠져나가며 일부 구역의 주거지가 낡고, 상권도 함께 침체되기 시작했다.

 

타마 신도시의 첫 입주를 알리는 신문 기사. © 読売新聞. 1971년 3월 26일자 석간

일본은 타마 신도시의 노후화에 대응해 2018년 ‘타마 신도시 재생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이처럼 활력을 잃은 도시의 주거환경과 생활 기능을 되살리는 사업을 도시재생사업이라고 한다. 이 가이드라인에는 노후 주택과 생활기반시설을 정비하고 대규모 미사용지를 활용하는 한편 도로와 교통망을 개선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은형 연구위원은 타마 신도시의 변화에서 정책만큼이나 젊은 사람들의 유입에 주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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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부부나 경제 여력이 크지 않은 젊은 사람들이 유입되기 시작했죠. 어차피 거기(타마 신도시)는 베드타운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도쿄 출퇴근이 가능합니다. 그래서인지 다시 도시가 살아났습니다.”

 

일본 타마 신도시 스와·나가야마 지구의 주택단지 현황과 재생 계획. © 일본 국토교통성

실제로 타마 신도시에서는 노후 주거지를 재건축하면서 젊은 세대가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든 사례가 있다. 스와 2정목(타마 신도시 5주구)의 640가구 규모 노후 아파트는 재건축을 통해 1천249가구로 늘어났다. 재건축 과정에서 보육시설과 고령자 지원시설도 함께 건설됐다. 주거 공간을 새로 짓는 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세대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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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북적이던 일산과 지금도 직장인들로 활기를 띠는 분당은 서울의 인구 과밀을 해소한다는 같은 목적으로 탄생했다. 그러나 30여 년이 지난 두 도시의 모습은 달라졌다. 일산은 서울로 출퇴근하는 주거도시 성격을 벗어나지 못한 반면 분당은 판교를 중심으로 일자리와 생활권을 함께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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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젊게 만드는 일은 건물과 시설을 새것으로 바꾸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보다는 사람이 다시 돌아올 조건을 만드는 일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다시 살고 싶은 조건을 갖췄을 때 도시는 밝은 미래를 맞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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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민지·이은교 기자 hibongsoo@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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