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상권까지'의 출발점
목록의 첫 줄은 강남구 세로수길이다. 흔히 알려진 가로수길 옆, 젊은 감각의 음식점이 밀집하고 외국인 관광객이 즐겨 찾는다는 그 거리다. 골목상권이 맞나 싶지만, 골목은 골목이다.
다만 서울시장은 발표 자리에서 "오늘 선정된 관악, 동작, 광진, 중랑의 골목상권까지" 돈이 흐르게 하겠다고 말했다. 여섯 곳 중 네 곳만 호명됐다. 강남과 도봉은 빠졌다. 말이 길어져 줄였을 것이다. 그런데 줄일 때 빠지는 이름이 그 사업의 서사를 말해준다. '골목상권까지'라고 할 때, 그 '까지'는 어디에서 출발하는 걸까.
이 발표가 있기 사흘 전인 11일, 서울시의회 본회의에서 야간경제 관련 예산이 되살아났다. 상임위 예비심사 단계에서는 상품권 발행비 10억 5700만 원을 비롯해 관련 사업 예산이 줄줄이 전액 삭감됐다. 깎은 쪽의 논리는 구체적 계획 없이 밀어붙인 선심성·전시성 예산이라는 것이었고, 되살린 쪽의 논리는 자영업 폐업이 역대 최대라는 것이었다. 결국 17억 9700만 원 가운데 16억 9200만 원이 복원됐다. 그리고 14일 여섯 곳이 발표됐다.
양쪽 말이 둘 다 맞다. 그래서 문제다. 폐업이 역대 최대인 것도 사실이고, 이 사업의 최종 성과 지표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밤을 켜는 데 드는 돈은 정해졌는데, 그 밤이 성공했는지 판정할 기준은 아직 없어 보인다.
갈등은 협약으로 내려간다
서울시는 대책도 함께 내놓았다. 상인과 주민이 상생협약을 맺고 상생협의체를 구성해 소음·악취·쓰레기·보행 불편을 상시 관리하겠다고 했다. 이 협약에는 영업구역과 종료시간, 청결 유지 같은 운영수칙을 담고, 어기면 단계별로 자체 제재를 한다. 주거지와 붙어 있거나 민원이 잦은 곳은 구청장이 도로점용을 제한하거나 허가하지 않을 수 있다. 옥외영업장 도로점용 가이드라인은 선정 발표 당일부터 시행됐고, 식품접객업 옥외영업 조례안도 행정예고를 거쳐 자치구에 곧 배포된다.
결국 시는 예산과 브랜드와 상품권을 준다. 구청장은 허가와 민원을 받는다. 상인과 주민은 협약을 맺고 서로를 단속한다. 밤을 여는 결정은 위에서 내려오고, 그 밤을 감당하는 일은 아래로 내려간다.
상생협의체라는 말은 공평하게 들린다. 그런데 상인은 조직되어 있고 주민은 대개 조직되어 있지 않다. 골목 2층, 3층, 그 뒤 원룸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회장도 총회도 회칙도 없다. 협약 테이블에 앉을 자리가 있는 사람과, 창문을 닫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 사람은 같은 조건에 놓여 있지 않다. 상권의 이해관계자 명단에 '상권에서 잠을 자는 사람'은 좀처럼 오르지 않는다.
달빛야장이 끝난 뒤에 남는 것
이름마저 참 예쁜 달빛야장 사업 지원은 오는 2028년까지다. 간판을 바꾸고 조명을 달고 로고를 만들고 상품권을 푸는 동안에는 사람이 온다. 사람이 오는 것과 돈이 남는 것은 다르다. 매출이 오르는 것과 임대료가 오르는 것도 다르다.
이 대목에서 다시 목록의 첫 줄을 본다. 세로수길은 가로수길에서 한 블록 들어간 골목이다. 가로수길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부동산 컨설팅 업체가 집계한 지난해 4분기 가로수길 공실률은 45.2%였다. 같은 보고서에서 서울 주요 가두상권의 평균 공실률은 13.8%였다. 세 배가 넘는다.
가로수길을 가로수길로 만든 가게들은 이제 대부분 그 거리에 없다.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성수동으로, 압구정 로데오로 옮겨 갔다. 그리고 같은 보고서에서 공실률이 가장 낮은 상권은 2.5%의 성수동이었다. 45.2%와 2.5%. 같은 도시, 같은 분기다. 세로수길은 그때 한 블록 안쪽으로 밀려난 사람들이 만든 골목이다. 이제 그 골목에 야간경제 예산이 들어간다. 골목이 잘되는 것이 나쁜 일일 리 없다. 다만 골목이 잘된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서울은 이미 보았다. 바로 한 블록 옆에서 말이다.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