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서울의 밤 밝히는 예산, 그냥 '퍼주기' 아닌가

 

조태희 시민기자

jotaehui@naver.com

- 관악뉴스(지역언론사) 조태희의 관악을 담소 칼럼 게재

다른 기사 보기

'달빛야장' 시범상권 6곳에 최대 20억원씩 지원

민선 9기 핵심 전략 '야간경제 활성화' 목표

보행로 고치고 가로등 세우고 화장실 만들고

시의회 상임위에서 선심성 예산이라며 삭감

사흘 뒤 본회의 복원 "자영업 폐업 최대" 이유

사당역 로터리 경계 두 군데 선정, 이상하잖나

강남구 세로수길은 공실률 45.2%나 되는데···

상인과 주민 이해관계 엇갈려 갈등도 불가피

골목 가치 올라가면 건물주는 임대료 어부지리

누굴 위한 정책·어떤 결과 바라는지 설명 부족

해가 지고 난 뒤에야 동네의 표정이 달라지는 날이 있다. 낮에는 셔터와 간판 사이에 웅크리고 있던 골목이 불을 켜고, 사람들은 그제야 이 동네에 아직 서로의 얼굴을 알아보는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서울시가 그 시간을 정책으로 만들기로 했다. 서울시는 14일 '서울 달빛야장' 시범 상권 여섯 곳을 발표했다. 강남구 세로수길, 관악구 사당오락달빛야장, 광진구 건대맛의거리, 도봉구 창동역 상점가, 동작구 사당1동먹자골목, 중랑구 상봉먹자골목이다. 15개 자치구에서 19개 상권이 신청했고, 서류심사로 열 곳이 추려졌으며, 전문가 평가위원 5명과 시민평가단 50명이 최종 선정에 참여했다. 당초 다섯 곳을 뽑을 계획이었는데 한 곳을 더했다. 선정된 상권에는 2028년까지 최대 20억 원씩 들어간다. 시는 같은 해까지 달빛야장을 25곳으로 늘리겠다고 했다.

 

2026 서울 달빛야장 조성사업 시민참여평가단의 모습. (사진출처 : 서울시)

나쁜 일이 아니다. 보행로를 고치고 가로등을 세우고 CCTV를 달고 화장실과 쓰레기 처리시설을 만든다니, 달빛야장이 아니었더라도 우리 동네 골목에 이미 필요했던 것들이다. 그런데 목록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으면 몇 가지가 눈에 걸린다.

달빛은 구 경계를 모른다

관악에서 뽑힌 곳은 '사당오락달빛야장'으로, 남현동, 사당역 일대다. 관악의 밤이라고 하면 대개 신림역 주변의 신사리 상권, 신림동 골목이나 봉천 먹자골목, 서울대입구역 샤로수길 상권을 먼저 떠올린다. 정작 뽑힌 것은 관악의 동쪽 끝, 생활권으로 치면 이미 '사당'이라 불리는 자리다. 2·4호선과 경기 남부지역 곳곳으로 떠나는 광역버스가 모이고 관악산과 예술인마을과 부추삼겹살골목이 붙어 있으니, 좋은 후보이긴 했을 것이다.

길 건너 동작구 사당1동먹자골목도 함께 뽑혔다. 같은 사당역 로터리를 사이에 두고 야장 두 개가 각각 최대 20억 원을 받는다. 사업의 단위가 상권이 아니라 자치구여서 생기는 일이다. 밤에 사당역에 내려 한잔 하러 가는 사람은 자기가 지금 관악의 밤에 있는지 동작의 밤에 있는지 따지지 않는다. 달빛은 구 경계를 모른다. 하지만 예산은 안다.

 

박준희(가운데) 서울 관악구청장이 지난 13일 ‘서울 달빛야장’ 1기 상권으로 관악구의 ‘사당오락 달빛야장’ 선정을 직원들과 미리 축하하고 있다. (사진출처 : 관악구)

'골목상권까지'의 출발점

목록의 첫 줄은 강남구 세로수길이다. 흔히 알려진 가로수길 옆, 젊은 감각의 음식점이 밀집하고 외국인 관광객이 즐겨 찾는다는 그 거리다. 골목상권이 맞나 싶지만, 골목은 골목이다.

다만 서울시장은 발표 자리에서 "오늘 선정된 관악, 동작, 광진, 중랑의 골목상권까지" 돈이 흐르게 하겠다고 말했다. 여섯 곳 중 네 곳만 호명됐다. 강남과 도봉은 빠졌다. 말이 길어져 줄였을 것이다. 그런데 줄일 때 빠지는 이름이 그 사업의 서사를 말해준다. '골목상권까지'라고 할 때, 그 '까지'는 어디에서 출발하는 걸까.

이 발표가 있기 사흘 전인 11일, 서울시의회 본회의에서 야간경제 관련 예산이 되살아났다. 상임위 예비심사 단계에서는 상품권 발행비 10억 5700만 원을 비롯해 관련 사업 예산이 줄줄이 전액 삭감됐다. 깎은 쪽의 논리는 구체적 계획 없이 밀어붙인 선심성·전시성 예산이라는 것이었고, 되살린 쪽의 논리는 자영업 폐업이 역대 최대라는 것이었다. 결국 17억 9700만 원 가운데 16억 9200만 원이 복원됐다. 그리고 14일 여섯 곳이 발표됐다.

양쪽 말이 둘 다 맞다. 그래서 문제다. 폐업이 역대 최대인 것도 사실이고, 이 사업의 최종 성과 지표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밤을 켜는 데 드는 돈은 정해졌는데, 그 밤이 성공했는지 판정할 기준은 아직 없어 보인다.

갈등은 협약으로 내려간다

서울시는 대책도 함께 내놓았다. 상인과 주민이 상생협약을 맺고 상생협의체를 구성해 소음·악취·쓰레기·보행 불편을 상시 관리하겠다고 했다. 이 협약에는 영업구역과 종료시간, 청결 유지 같은 운영수칙을 담고, 어기면 단계별로 자체 제재를 한다. 주거지와 붙어 있거나 민원이 잦은 곳은 구청장이 도로점용을 제한하거나 허가하지 않을 수 있다. 옥외영업장 도로점용 가이드라인은 선정 발표 당일부터 시행됐고, 식품접객업 옥외영업 조례안도 행정예고를 거쳐 자치구에 곧 배포된다.

결국 시는 예산과 브랜드와 상품권을 준다. 구청장은 허가와 민원을 받는다. 상인과 주민은 협약을 맺고 서로를 단속한다. 밤을 여는 결정은 위에서 내려오고, 그 밤을 감당하는 일은 아래로 내려간다.

상생협의체라는 말은 공평하게 들린다. 그런데 상인은 조직되어 있고 주민은 대개 조직되어 있지 않다. 골목 2층, 3층, 그 뒤 원룸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회장도 총회도 회칙도 없다. 협약 테이블에 앉을 자리가 있는 사람과, 창문을 닫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 사람은 같은 조건에 놓여 있지 않다. 상권의 이해관계자 명단에 '상권에서 잠을 자는 사람'은 좀처럼 오르지 않는다.

달빛야장이 끝난 뒤에 남는 것

이름마저 참 예쁜 달빛야장 사업 지원은 오는 2028년까지다. 간판을 바꾸고 조명을 달고 로고를 만들고 상품권을 푸는 동안에는 사람이 온다. 사람이 오는 것과 돈이 남는 것은 다르다. 매출이 오르는 것과 임대료가 오르는 것도 다르다.

이 대목에서 다시 목록의 첫 줄을 본다. 세로수길은 가로수길에서 한 블록 들어간 골목이다. 가로수길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부동산 컨설팅 업체가 집계한 지난해 4분기 가로수길 공실률은 45.2%였다. 같은 보고서에서 서울 주요 가두상권의 평균 공실률은 13.8%였다. 세 배가 넘는다.

가로수길을 가로수길로 만든 가게들은 이제 대부분 그 거리에 없다.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성수동으로, 압구정 로데오로 옮겨 갔다. 그리고 같은 보고서에서 공실률이 가장 낮은 상권은 2.5%의 성수동이었다. 45.2%와 2.5%. 같은 도시, 같은 분기다. 세로수길은 그때 한 블록 안쪽으로 밀려난 사람들이 만든 골목이다. 이제 그 골목에 야간경제 예산이 들어간다. 골목이 잘되는 것이 나쁜 일일 리 없다. 다만 골목이 잘된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서울은 이미 보았다. 바로 한 블록 옆에서 말이다.

 

지난 9월 12일에 열린 신사 세로수길 K뷰티 비어 페스타 (사진출처 : 강남구)

그러고 나면 상생협약의 당사자 목록이 달리 보인다. 협약을 맺는 쪽은 상인과 주민이다. 어디에도 건물주는 없다. 공공이 20억 원을 들여 보행로를 깔고 조명을 달고 상품권을 풀어 골목의 값을 올려놓으면, 그 오른 값은 결국 임대료라는 형태로 정산된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은 임대료를 한 번에 5% 넘게 올리지 못하게 막아 두었지만, 서울에서는 보증금에 월세의 100배를 더한 금액이 9억 원을 넘는 가게에 이 상한이 적용되지 않는다. 보증금 1억 원에 월세 800만 원이면 딱 9억 원이다.

골목이 뜨면 그 선을 넘는 가게가 생긴다. 공공이 20억 원을 들여 골목의 값을 올리고, 그 값을 누가 가져갈지는 시장에 맡겨 두는 구조다. 결국 법이 보장하는 10년은 가게가 밀려나는 시점을 늦춰 줄 뿐, 임대료가 오르는 것 자체를 막아 주지는 않는다.

그러니 이 달빛야장 사업의 성적표는 방문객 수가 아니어야 한다. 20억 원 가운데 얼마가 조명과 로고로 가고 얼마가 화장실과 보행로로 갔는지, 늘어난 매출이 목 좋은 몇 곳에 몰렸는지 골목 전체에 고루 갔는지, 그 골목의 임대료가 사업 전후로 얼마나 달라졌는지. 무엇을 세어야 하는지는 이미 분명하다.

문제는 시점이다. 지표는 사업이 끝난 뒤에 만들면 늦는다. 비교할 출발선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재두지 않으면 나중에는 잴 수 없다. 시의회가 구체적 계획이 없다고 지적한 대목은 정치 공방 이전에 지극히 행정의 기본에 관한 것이었다.

과연, 누구의 밤인가

야장 여섯 곳이 발표된 다음 날, 서울시는 '야간경제총괄특보'를 임명했다. 시장 직속 보좌기관이다. 맡은 일은 야간경제 비전과 전략 수립, 4대 야간 랜드마크 육성, '서울의 밤' 브랜드 구축이다. 새로 온 특보는 '서울마이소울'과 '해치' 캐릭터 등 서울의 브랜드 사업을 여러 차례 기획해 온 사람이다.

원래 만들려던 자리는 이것이 아니었다. 서울시장은 지난 6월 '나이트 메이어' 도입 계획을 밝혔다. 그러다 최근 "연구가 깊어지면서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며 임명을 미뤘다. 대신 브랜드와 랜드마크를 총괄하는 특보 자리가 채워졌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8월 20일 서울시청 대회의실에서 서울시 야간경제 활성화 기자설명회를 열고 있다. (사진출처 : 서울시)

암스테르담이 2000년대에 나이트 메이어를 둔 이유는 브랜드 때문이 아니었다. 밤이 길어질수록 상권과 주민이 부딪히는데, 그 사이에 앉아 조정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런던도 2016년 같은 취지로 '나이트 차르'를 두었다. 그 자리는 2024년 가을부터 비어 있고, 이듬해 꾸려진 나이트라이프 태스크포스는 직책을 되살리는 대신 독립 위원회를 두라고 권고했다. 서울시장이 별도 직책 없이 운영하는 도시의 예로 든 그 런던이다. 다만 그 권고안에는 도시 전역에 적용할 영업허가 기준과, 소음 민원이 몇 건 쌓여야 영업방해 조사에 들어가는지를 정한 규칙이 함께 담겨 있었다. 직책을 접는 대신 규칙을 만든 것이다.

서울은 밤을 파는 자리를 만들었고, 밤을 조정하는 자리는 만들지 않았다. 직책도 규칙도 아닌 협약이 골목으로 내려갔다. 상인과 주민이 서로를 단속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밤을 켜는 일은 예산으로 되지만, 밤을 견디는 일은 예산으로 되지 않는다. 골목상권은 행사가 아니라 생활권이다. 그 골목에는 손님만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도 산다. 관악을 비롯한 여섯 골목상권의 밤이 밝아지는 것은 반갑다. 다만 그 밤이 누구의 밤인지는 20억원이 아니라, 그 돈을 다 쓰고 난 뒤의 새벽이 대답할 것이다.

조태희 시민기자 jotaehui@naver.com

 

저작권자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