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에 초대된 여러 전문가가 이런저런 말을 내놓고 있다. 지구온난화를 원인으로 볼 수 없다는 억지 주장도 있지만, 전문가들은 대체로 사태의 구체적 원인과 근본적 원인을 정확히 진단하고 있다.
앞으로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이냐는 앵커의 결정적 질문에는 시원한 답변을 찾기 어렵다. 인프라를 바꾸고 경보시스템을 만들어 골든타임 안에 대피하게 해야 한다는 정도가 주된 대책으로 논의되는 수준이다. 그러나 이것이 근본 대책일 수는 없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매우 적은 네팔인들이 북반구 부국의 온실가스 배출 행위의 희생양이 되고 만 상황, 즉 기후불평등 문제를 언급하는 사람은 그나마 다소 낫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도 문제의 지적에 그치고 만다.
정녕 우리는 이것 이상을 말할 수 없는 것일까? 앞으로 이런 수준의 재앙이 한국에도 일어날지 모르니 피해 최소화를 위해 대비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가 할 일은 없는 걸까? 지구와 네팔인, 희생자들의 영령은 우리에게 결단 어린 행동을 청구하고 있다. 어떤 행동일까? 이와 관련해 여러 전문가의 입에서 아직 나오지 않은 말, 그러나 듣고 싶은 말을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항시적이고 통합적인 기후 재난 관리 기구 필요
첫째, 다수의 사망·실종자가 나오는 기후 재난의 경우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예우가 중요하지만 어려울 수 있음을 이번 사태는 일깨웠다. 국내에서 이런 대참사가 발생할 경우, 희생된 분들의 존엄성을 끝까지 보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재난 시 사망자 시신 관리에 관한 국제 매뉴얼에 충실해야 하지만, 그 외에도 장례(매장), 희생과 피해의 보상 등과 관련한 기준과 방안을 미리 마련해 두어야 한다.
둘째, 누가 이런 일을 맡아서 해야 할까? 작금의 사후 약방문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가동)식 재난 대응 방식은 폐기했으면 한다. 기후 재난 뉴노멀 시대가 도래했음을 충분히 인정하고, 유럽 국가들처럼 항시적이고 통합적인 기후 재난 관리 기구를 운영해야 한다. 지금은 재난안전관리본부, 소방청, 해양경찰청 등으로 담당 기구가 쪼개져 있다. 각 지역의 위험 분석, 피해 최소화를 위한 시설물, 인프라, 자연 등의 조정, 핵심 인프라 보호, 재난관리자 교육, 경보시스템 보완, 구조와 복구, 구조·복구 역량(군부대, 소방청, 자원봉사자 등)의 관리, 희생자 관리, 국가 차원의 피해보상 체계 구축과 집행 등이 주요 업무여야 할 것이다.
문명사적 대전환을 이뤄야 한다
셋째, 손실과 피해 대응기금(FRLD, 2023년 시작)에 내는 한국의 기여금을 대폭 늘려야 한다. 그리하여 이번처럼 기후불평등이 분명할 경우, 불평등으로 인한 억울함이 조금이라도 더 씻기도록 애써야 한다. 한국이 2024년 제2차 FRLD 이사회를 계기로 발표한 신규 출연금(약속한 금액)은 700만 달러(약 93억 원)에 불과하다. 2024년 <네이처>에 발표된 한 연구가 추산한 연간 기후변화 피해 금액(3950억 달러)의 0.002%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한국이 경제적 부국이라면, 부국다운 행동을 해야 하지 않을까.
넷째, 근본적으로 기후위기는 현 문명의 위기이고, 따라서 문명사적 전환을 요구한다. 빙하가 녹는 문제는 단순히 RE100을 달성한다고, 발전소나 공장, 건물에서 화석연료 연소량 줄인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자본주의 구조 자체를 조정하는 식의, 경제 전체의 '방향 이동'이 아니라면 이 문제는 계속해서 우리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그렇다고 구조적 해결책만이 해법인 것도 아니다. 다량의 온실기체 배출로 귀결되는 무분별한 식사, 상품·에너지 소비, 여행, 오락 행위 등 개인들의 행위 자체가 '경제 문제'와 깊이 연루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개인들의 행위 선택은 욕망, 미감, 에토스, 생각 등 마음의 움직임이기도 하다. 인간과 세계에 관한 생각인 우주론은 특히 중요하다. 그러니까 마음, 개별 행동, 전체 경제 구조가 하나의 몸을 이루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 전체의 몸이 바뀌지 않는 한, 지구의 고온 문제가 해결되기는 요원할 것이다.
이 전체의 바뀜은 어떤 식으로 가능할까? 번데기가 나비가 되는 식의 인간 변화로만 가능하지 않을까. 우리 자신의 마음이 변하지 않고, 좋은 삶에 관한 우리의 감각 자체의 변화하지 않고서는 '빙하가 녹는 문제'의 해소는 결코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관점의 문제는 생사의 문제가 되었다. 성숙의 문제는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 무너진 빙벽의 잔해물을 잔뜩 거느리고 우리의 시야로 육박해오는 저 흙탕물의 괴물은 바로 이것을 알아차리라고 다급히 촉구하는 것은 아닌가. 늦지 않았다. 머리를 맞대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이야기하자.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