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정신 현상학 A. 의식 II. 지각; 혹은 사물과 착각 (번역 재개) -가재걸음: (§ 6) 하부

읽으면 읽을수록 몰이해와 함께 적절하지 못한 번역이 드러난다. 환장하겠다.


 

(§6) 마지막 부분의 번역이 엉터리다.


 

원문을 소개하고 뭘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했는지 짚어 보겠다. 


 

"Das Wahrnehmende hat das Bewusstsein der Täuschung; denn in der Allgemeinheit, welche das Prinzip ist, ist das Anderssein selbst unmittelbar für es, aber als das Nichtige, Aufgehobene."


 

이렇게 번역했다.


 

“왜냐하면, 지각의 존재근거․터전이 되는 보편성 내에서는[한밤중에는 소들이 다 시커먼바(정신현상학, 서설 §16) “별다른 소”(=시커멓지 않는 소)가 있을 수 없듯이] 별다른 존재(Anderssein)가 존립할 수 없는데, 있다면 다만 의식에 대해서만 뜬금없이(unmittelbar) 별다르게(selbst) 등장하는 것이고, 그 별다름이란 [곧바로] 소멸되고 파기되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원문을 정확하게 분석하지 못한 번역이다.


 

원문을 다시 보자. 두 개의 문장이 하나로 축약된 문장이다.


 

1) 'Das Anderssein selbst ist unmittelbar für es.'와

 

2) 'Aber in der Allgemeinheit, welche das Prinzip ist, ist das Anderssein,

     als das Nichtige, Aufgehobene.'를


하나로 만든 문장이다.

  

'Anderssein'의 존재양식을 ‘selbst' 와 ’als'로 구별하고, 그렇게 구별된 것을 평행적으로 배치하고 있다. 앞에서도 사용된 방법이다.

 

우선 이 두 문장을 번역해 보면 이렇다.


 

1) 'Anderssein'은 직접적으로 의식에 대하여 있다.

2) 'Anderssein'은 [지각의] 존재근거․터전이 되는 보편성[안]에서는 소멸된 것, 거둬치운(=지양된) 것으로 있다.  


 

번역하기 어려운 단어는 'selbst'와 'Anderssein'이다.


 

'Anderssein'은 우선 앞에서 이야기된 'Sichselbstgleichheit(자기동일성)'에 배치되는 말인 것 같다.

 

대상은 자기동일성인 반면, 의식은 - 스스로 판단하기를 - ‘가변적’이고,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고 또 있으나마나 한’(unwesentlich) 것이다. 처음엔 'unwesentlich'를 ‘비본질적’으로 번역했는데, 여기서는 오역인 것 같다. 여기서 ‘unwesentlich'의 계보는  Wesen(본질)-wesentlich(본질적)-unwesentlich(비본질적)이 아니라, Wesen([실체적인] 존재)-Unwesen(허깨비)-unwesentlich(있으나마나한)인 것 같다. 의식의 이런 가변성과 Unwesen을 'Sichselbstungleichheit'(자기비동일성)이라고 했으면 오해할 여지가 없었을 텐데 헤겔은 왜 구태여 'Anderssein'이라고 했을까?


 

'selbst'는 여기서 ‘다른 것과 관계하지 않는 상태’, 즉 무매개적인 상태를 의미하는 것 같다. 감각적 확신이 지향하는 ‘의식과 대상의 하나’에서 ‘의식과 대상은 돌이킬 수 없게 분리되어 있다’점이 필연적으로 드러난 후, 의식은 이제 이 분리를 대상과 의식(=인식)간의 [교통]단절(정신현상학 서론 참조)로 확정하여 대상을 ‘지각’하려고 한다. 그래서 ‘다름’이 어떤 관계 안에서의 ‘다름’으로서의 구별(Unterschied)이 아니라 서로 아무런 관계를 맺지 않는 그저 다름(Verschiedenheit), 즉 ‘반복과 차이’에서의 ‘차이’가 된다. 또한 이런 무관계성을 표현하기 위해서 ‘Anderssein'이라고 한 것 같다.    


 

암튼, 문제의 문장은 이정도 번역될 수 있겠다.


 

“왜냐하면, 지각의 존재근거․터전이 되는 자기동일성이란 보편성(안)에서는 [자기비동일성(Anderssein)이 있을 수 없는데, 있다면] 다만 의식에 대해서만 의식도 모르게 (unmittelbar) 뜬금없이(selbst=아무런 관계없이) 등장하는 것일 뿐이지 보편성(안)에서는 소멸된, 거둬치워진 것이 되기 때문이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 2.0 대한민국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