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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낯선 식민지,한미FTA를 제2의 6월항쟁으로 저지하자

"낯선 식민지, 한미FTA"를 제2의 6월항쟁으로 저지하자!

심광현 /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 공동정책기획연구단장

2006년 06월 08일 19:41:15


 

  금년 2월 3일 한미FTA 협상 개시가 한미 두 정부에 의해 기습 공표된 이래 우리 사회는 87년 이래 근 20여년 만에 가장 격렬한 갈등의 격랑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고 있다. 재정경제부와 외교통상부 관료들과 재벌, 그리고 이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연구기관과 보수 언론들은 일제히 한미FTA 협상 개시를 환호하며 미국과의 FTA를 통해 한국경제가 비약적 발전을 이룰 것이라고 강변하고 있지만, 농수산, 영화, 노동, 교육, 보건의료, 공공서비스, 법률, 지적재산권, 환경 부문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일제히 반대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2월부터 연이은 영화인들과 농민들의 시위, 3월에는 부문 공대위들의 결성과 기자회견 및 토론회, 3월 28일 <한미FTA저지를위한범국민운동본부>의 발족과 4월 15일 대학로를 가득 메운 제1차범국민대회의 개최와 이어져온 각종 시위와 토론회 개최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정부-보수언론과 각 부문의 이해관계 당사자들 간의 치열한 찬반 논란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국민들은 아직까지는 한미FTA가 무엇인지, 왜 찬반 논란이 일고 있는지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한미FTA의 실체가 쉽게 확인되기 어렵다는 것이 주된 원인이 아닌가 싶다.

  우선 정부 스스로가 한미FTA를 추진하는 목표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드러내지 않고 있다. 처음에는 우리 경제의 70% 이상이 수출에 의존하고 있으므로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과의 FTA를 통해 중국 등 여타 개도국의 추격을 따돌리며 선진국으로 도약해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한미FTA를 통해 오히려 대미무역수지가 악화될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이제는 무역수지 개선이 목표가 아니라 "외부 충격에 의한 구조조정을 통한 서비스 경쟁력 강화"가 그 목표라고 말을 바꾸고 있다. 그러나 서비스 경쟁력 강화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렇게 해서 높아진 서비스의 질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미국식 서비스의 수준과 질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누가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정부는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그에 반해 한미FTA의 파트너인 미국 측에서는 자신들의 이익과 목표를 선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한 마디로 IMF 외환위기를 통한 개방 이후 아직 남아 있는 농업과 서비스 분야 전반의 관세, 비관세 장벽 전체를 제거하여 한국의 경제와 사회 전반을 미국이 장악할 수 있는 시장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아직 개방되지 않은 농업과 공공서비스 부문 전반에 법제 개편을 강제하여 시장화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요구대로 개방할 경우 반도체와 조선, 철강, 섬유 등 극히 일부의 미미한 이익을 제외하고는 우리보다 수십 배가 넘는 내수시장과 자본 규모를 가진 미국과의 '자유' 경쟁의 결과가 어떨지는 과학적 분석 없이도 누구나 쉽게 예측할 수 있지만, 미국 무역대표부와 국회보고서가 친절하게도 그들의 이익=우리의 손해를 이미 상세히 분석해 놓고 있다.

  같은 사안을 놓고 두 나라 정부가 보이는 이와 같은 격차가 무엇을 의미할까? 삼척동자가 보아도 우리의 손해가 명백해 보이는 이런 불리한 거래를 우리 정부가 앞장서서 미국에 요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렇게 상식을 초월하는 일이 목전에서 벌어지게 되면 일반국민들은 오히려 관심을 잃기 쉽다. 잠시 "설마 그럴 리가?" 하며 고개를 젓다가 바쁜 일상으로 되돌아가기 쉬운 것이다. 한미FTA는 대다수 국민들에게 이런 식으로 마치 내부를 알 수 없는 "블랙박스"로 여겨지는 것 같다. 실제로 노무현 정권과 보수언론이 노리고 있는 지점도 바로 이런 블랙박스 효과인 것 같다. 바로 이 지점이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포인트이다. 노무현 정권과 보수언론은 무슨 이유로 한미FTA를 일종의 블랙박스처럼 취급하고 있는가?

  6월 1일 출간된 『낯선 식민지, 한미FTA』(이해영, 메이데이)는 점증하는 이런 궁금증에 대해 명쾌하고도 체계적인 설명을 제공하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의 자유를 극단적으로 추구하면서 노동의 자유는 철저히 규제하며  자본의 보다 높은 수익성을 추구하기 위해, 한국의 수출경제를 주도하는 초국적 기업과 미국계 초국적 기업의 이항대립적인 동맹관계의 구축이 그 목적이라는 사실을 경제효과 전반, 제조업, 서비스, 투자, 지적 재산권, 농업, 군사안보 분야 등 전반에 걸쳐 상세히 규명하고 있다. 다시 말해 "한편으로는 시장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대립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신자유주의에 동일한 이해를 갖는 관계"가 바로 이항대립적 관계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이해영 교수는 이를 "우리에게는 여전히 낯선 초국적 식민주의"라고 명명하고 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이 새로운 식민주의는 식민주의 시절의 군사력과 신식민주의 시절의 자본력에 이어 '지식'이라는 하이테크 자본주의의 가장 강력한 새로운 생산력을 통해 해방 지역의 노동력을 착취, 수탈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지식은 공급과잉 상태의 제조업에는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IT(정보기술), BT(생명기술), CT(문화기술), NT(나노기술) 등등 새로운 성장엔진을 만들어내는 동력이다. 그것은 또한 서비스 산업을 추동하고, 투자를 촉진하며, 사후에는 지적재산권이라는 형태로 지속적 '약탈'을 가능케 한다. 그러나 지식기반산업이 고전적인 식민주의적 수단들 예컨대 군사력과 시장 독점들과 대립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어디까지나 그 기반 하에서 새로운 생산력 유형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244쪽)

  한미FTA라는 '블랙박스'의 복잡한 내적 메카니즘을 명쾌히 설명하는 대목이다. 노무현 스스로가 한미FTA의 궁극 목표는 "물건을 더 파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 경쟁력의 제고"라고 말하는 이유가, 또한 한미FTA가 단순한 경제협정이 아니라 한미동맹의 강화와 연결된 포괄적 협정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두 나라의 초국적 자본이 서로 경쟁적으로 손을 잡고 서비스 시장의 지식산업화를 촉진하여 새로운 유형의 노동착취를 강화함으로써 자본의 수익성을 높임과 아울러 이를 안정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군사동맹을 강화하겠다는 것에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해서 드러나게 된다. 명분 없는 이라크 침략과 쌍둥이 적자로 시달려온 부시 정권이 "초국적 식민주의"를 노골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이미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참여정부'가 스스로 '초국적 식민주의'의 대리인을 자칭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국익'이 아니라 소수 초국적 재벌(이미 46% 이상의 주식이 초국적 자본의 소유인 10대 재벌)의 이익만이 보장될 한미FTA의 궁극 목표에 대해 정부가 추상적인 답변을 반복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협상 체결 후에도 협정문의 공개를 3년간 유예하겠다는 이유 역시 바로 여기에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노무현 정권은 한미FTA를 블랙박스처럼 처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협상 개시 이전에 4대 무역현안(약값 인하조치 중단, 자동차 배기가스 기준 완화, 미국산 쇠고기 수입, 스크린쿼터 축소)을 미리 양보하고, 제대로 된 공청회 하나 없이 기습적으로 협상을 개시하면서 "우리가 주도적으로 성사시킨 것이므로" 협상을 체결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는 우리 정부의 태도를 이해영 교수는 "한국사회의 지배블록 내에서 한미동맹파의 총반격"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90년대 이후 "한국사회의 '절대적 친미'로부터 '상대적 친미'로의 진화는 지배블록 내지 지배엘리트 내 전통적 친미파 혹은 '한미동맹파'의 지위변경을 요구하는 것이었다면...특히 김대중 정권-노무현 정권으로 이어지는 정세전개는 한미동맹파의 게토화까지 요구되는 위기징후였음에 분명하다." "이러한 국내 정치경제적 조건에서 포괄적 정치경제적 협정으로서 한미FTA는 위축된 한미동맹파의 지위를 복원하는 매우 유리한 환경이 되고, 또 미국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미국/재벌/관료복합체'의 재공고화를 기획하는 데 가장 바람직한 조건이기도 하다"(29쪽)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이 교수는 6월 항쟁에 의해 만들어진 '87년 체제'가 한미FTA에 의해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고 말한다. 87년 체제와 그 성과를 방어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이를 업그레이드 할 것인가 아니면 한미FTA 저지에 실패하여 세계 최강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의해 "초국적 식민지"로 전락할 것인가의 갈림길에 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갈림길이 2006년 12월~2007년 3월 사이에 협상이 타결되거나 결렬되거나 또는 지연되는 세 갈래 길 중 어느 쪽으로 뻗어 나아가게 될 것인지를 두고 한국사회의 운명을 건 한 판 힘겨루기가 진행되고 있다. 이 힘겨루기는 한미 두 나라의 초국적 자본과 국가 간 동맹이라는 강적에 맞서는 것이므로 힘겨운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싸움이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그 패배의 결과는 지난 10여년의 고통보다 더욱 강도 높은 것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국민 다수가 전력을 투구해야 할 싸움이다.  

  자원이 없고 수출의존적인 한국경제가 무한경쟁의 WTO 체제에서 살아남는 길은 개방을 통한 국제경쟁력 강화밖에 없다며 세계화 전략을 추진, 개방에 적극 나선 김영삼 정부는 OECD 가입의 대가로 금융시장을 대폭 개방하여 결국 외채총액이 3.5배나 증가, 외환위기를 자초했던 바 있다. 이후 김대중 정부는 모라토리움 선언 대신 IMF의 구조조정안을 착실히 따라 노동의 유연화와 시장 개방 정책을 확대했다. 그 결과 고용 없는 성장, 내수 없는 수출로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었다. 그런데 이제 노무현은 역사에서 교훈을 배우기는커녕 자신의 "정치적 스승의 비극을 똑같이 반복"(손호철)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노무현이 연출하고 있는 이 비극의 결과는 100년 전 망국의 비극을 능가하는 낯선 재앙이 될 것이라는 점을 확실히 인식해야 한다. 이제 6월 5일부터 워싱턴에서 한미FTA 본 협상이 시작된다. 지난 20년간의 민주화 투쟁의 성과를 통째로 가로채려는 한미FTA를 저지하기 위해 제2의 6월항쟁으로 맞서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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