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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서평] 일본 민주당 정권, 신자유주의냐 복지냐

일본 민주당 정권, 신자유주의냐 복지냐

<기로에 선 일본> 와타나베 오사무 외 지음·이유철 옮김/메이데이·1만9000원

 

 [한겨레신문]2010.11.06.

 한승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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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화 부른 자민당식 개혁 ‘반 신자유주의’ 내세워 눌러

당내 ‘개발주의’ 세력 여전해 보수파·미국간섭에 ‘우향우’

 

<기로에 선 일본>을 읽노라면 ‘기로에 선 한국’이 떠오른다. 지난해 8월 말 총선에서 민주당이 압승했고 자민당 ‘55년 체제’는 무너졌다. 반세기를 넘긴 자민당 장기집권 체제는 왜 무너졌으며, 정권교체 뒤 집권 민주당은 일본을 어디로 끌고 가고 있나?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가?

 

<기로에 선 일본> 제2장 ‘세계적인 불황과 신자유주의의 전환’을 쓴 니노미야 아쓰미 고베대 교수는 자민당 정권 붕괴는 “신자유주의 구조개혁 노선”의 귀결이었으며, 그것은 신자유주의 개혁의 실패 때문이 아니라 성공 때문이었다고 얘기한다. “왜냐하면 신자유주의의 역사적·전략적 과제는 전후 복지국가의 해체에 있기 때문이다. 고이즈미 구조개혁은 이 복지국가 해체 전략이라는 시나리오로 추진된 것이며, 상당한 성과를 남겼다. 그러나 그는 ‘성공신화’를 일본 역사에 각인시켰을지 모르나 이 ‘성공신화’가 역설적으로 사회적 파국, 경제 파탄, 정치적 전환을 불러일으켰다.” 이 책을 추천한 이해영 한신대 교수 얘기처럼 “지난 10년 한국 사회를 지배한 패러다임 역시 신자유주의”가 아니던가.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며 집권한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택한(자의든 타의든) 경제정책의 근간은 신자유주의였고, 2007년 정권교체는 그 신자유주의가 한국 사회에 불러온 심대한 파장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그런데 그 신자유주의를 바라보는 새 집권당의 시각은 한, 일 간에 차이가 있었다. 일본 민주당은 ‘격차사회’(양극화)가 상징하는 파국적 상황을 초래한 신자유주의 노선에 대한 거부의 몸짓으로 자민당 아성을 무너뜨렸으나, 한국 한나라당은 제대로 된 신자유주의야말로 한국 사회를 구원할 것이라는 자세를 천명했다. 이런 차이를 배경으로, 약 2년간의 시차를 두고 일어난 한, 일의 정권교체가 담고 있는 복합적인 정치적 함의가 2년 뒤로 다가온 한국 대선 가도에 또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잘나가던 일본 경제는 1990년대 들어 거품 붕괴와 함께 쇠퇴의 길을 걷게 되고 자민당은 신자유주의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그것은 자민당 55년 체제 최후의 스타 고이즈미 집권기에 전후 최장의 ‘호황’을 기록하며 빛을 발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 성장은 주로 대기업 중심의 대미 수출 증가에 의존했고, 미국의 수입증대는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가 상징하는 주택붐과 그 모기지를 토대로 한 월스트리트 금융붐이 만든 미국의 ‘채무의존형 과잉소비’ 거품경제 덕이었다.

 

대중국 수출 역시 중국을 우회한 대미수출이 많았다. 그것은 일본의 소비·내수부진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었고 계급격차와 계층격차를 심화시켰다. 경기회복이라지만 그 혜택은 대기업과 부유층에 한정됐다. 가진 자들의 과잉생산과 과잉소비, 약자들의 비참과 과소소비, 일본의 과잉생산과 미국의 (채무의존형) 과잉소비가 짝을 이루었다. 이 구조는 일본과 미국 사이뿐만 아니라 한국과 미국 사이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고이즈미는 ‘관료주도 이익유도형 자민당 정치’을 아예 뿌리부터 개혁하겠다며 규제완화와 민영화, 파견법 개정, 성과급 확대, 지자체 통폐합, 사회보장 축소를 더욱 과감하게 추진했다. ‘기업은 번창하는데 서민들의 생활기반은 붕괴되는, 주주만을 배불리는 국가’ 일본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자민당은 그 ‘구조개혁’으로 자기 무덤을 팠다.

 

신자유주의로 출발했던 민주당은 고이즈미 개혁이 민심이반으로 귀결되자 재빨리 반신자유주의 몸짓을 취하며 자민당 이탈표를 거의 완벽하게 흡수했다. 특히 신자유주의적 일본개조를 부르짖었던 ‘선거 천재’ 오자와 이치로 전 대표가 재빨리 기회를 포착하고 그런 변신을 주도했다. 제1장 ‘정권교체와 민주당 정권의 미래’를 쓴 와타나베 오사무 히토쓰바시대학 교수는 민주당을 세 부류의 이질적인 집단 연합으로 본다.

 

하나는 하토야마, 간 나오토 총리, 오카다 가쓰야 전 대표, 마에하라 세이지 외상 등이 포진한 집행부를 구성하는 신자유주의·자유주의파다. 이들은 복지정치를 얘기하곤 있지만 자신들이 맞서 싸워야 할 ‘주적’을 미국과 일본 대기업 및 재계가 아니라 피라미에 불과한 관료들로 설정했고, 결국은 재정문제·안보문제로 딴죽을 건 그들에게 밀려 복지예산 삭감 쪽으로 가고 있다.

또 한 부류는 오자와가 이끄는 세력이다. 이들은 자민당식 개발주의 정치세력에 가깝다. 이들이 지방공장이나 중소기업, 농가를 지원하고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연합·렌고), 일교조 등 노조와도 연대하는 것은 자민당 구조개혁에 밀려나거나 소외된 세력을 결집하기 위한, 자민당식 전략의 민주당 버전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자민당을 해체해서 그 지지기반을 대신 차지하겠다는 전략이다. 나머지 한 부류가 자민당 비판의 선두에 섰던 중견그룹인데, 반빈곤, 반양극화 등 민주당의 진보적 내용의 공약 작성자들인 이들이야말로 자민당과는 확실히 다른 복지정치 추구파, 제3그룹이다. 하지만 이들에겐 당이나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가야 할지 전체를 아우르는 구상이 아직 없다. 집행부가 내세운 정치주도, 지역주권 등의 신자유주의 구상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다.

 

이 세 집단의 애매한 조합이 오히려 다양한 성향의 자민당 이탈표들을 흡수하는 데 유리했다. 공산당과 사민당 의석과 지지율에 큰 변화가 없었고, 자민과 민주라는 두 보수정당 총득표율에도 거의 변화가 없었다는 건 자민당 이탈표가 거의 몽땅 민주당으로 이동한 결과임을 보여준다. 여기에는 소선거구제 도입과 비례대표 축소 등을 통해 보수 양당제를 정착시키려는 일본 재계와 미국의 의도가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와타나베가 각각 머리, 몸통, 수족이라 부른 이들 세 부류 중 어느 쪽이 헤게모니를 쥐느냐에 따라 민주당의 갈 길이 정해진다. 하토야마의 총리직 사임으로도 알 수 있듯 오키나와 후텐마 미 해병대기지 이전 등 안보문제와 재정적자 문제 등을 앞세운 재계와 언론 등 일본 보수세력과 미국의 전후 복지국가체제 해체, 즉 신자유주의 노선 추동과 복지세력 견제는 강력하다. 친미 우파 내셔널리스트 마에하라를 외상직에 앉힌 간 나오토 내각 구성에서부터 그걸 느낄 수 있다. 민주당은 이미 오른쪽으로 확실히 기울고 있다. “그들의 미래는 2003년 열린우리당의 성공과 2008년 실패의 모습 속에 아른거리고 있다”고 옮긴이는 불길한 시선을 던진다.

 

<기로에 선 일본>의 원래 제목은 ‘신자유주의냐 신복지국가냐-민주당 정권하의 일본의 진로’다. 답은 신복지국가다. 그것은 수출의존·투자주도형 성장이 아니라 내수의존·소비주도형 성장이며, 사적 소비가 아니라 사회적 소비, 기업 중심이 아니라 국민 본위, 환경파괴가 아니라 환경보전 쪽이다. 그린(환경)을 넘어 화이트(의료·사회복지), 레드(노동)까지 어우러진 삼색기형 뉴딜이다. 자본주의 이후까지 겨냥하고 있다.

 

지은이들은 이를 위한 한-일-중 연대를 얘기한다. 일국만의 탈신자유주의는 이웃들이 신자유주의의 피난지가 됨으로써 성공할 수 없단다. 일본 연구자들 특유의 치밀한 자료제시와 깐깐한 논리전개가 비슷한 상황을 마주하고 있는 한국에도 시의적절하고 요긴한 참고가 될 수 있겠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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