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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책읽기와 노동자의 책 만들기①
앞으로의 세상이 노동자의 책으로 지배될 수는 없는가?
많은 이들이 관료화된 조합주의 운동을 비판한다. 그리고 대안으로 민주성의 회복을 논한다. 그러나 어디에도 제대로 된 민주주의 담론은 없다. 심지어 작금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관료적이고 조합주의적인 대안이 공공연히 제시되기도 한다. 때로는 민주노총의 민주화를 주장하는 것 자체가 비민주적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운동이 관리되고 통치되고 있다는 것! 언젠가부터 우리는 통치되는 것에 익숙해있고 민주나 자율로 둔갑한 신자유주의 통치에 길들여졌다. 관료주의를 극복하자는 말로 관료주의를 극복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종종 이 말은 동어 반복적으로 사용된다. 열정과 이념이 앞섰던 초기 조합운동과 달리 조직의 규모가 커질수록 제도화의 요구가 커진다. 조합원의 요구도 더불어 늘어나고 제도화된 노동조합은 더욱더 관료제적인 방식으로 성장한다. 제도화나 관료제를 두고 사람들은 그것의 정당성을 절차적 공정성과 효율성에서 찾는다. 관료들은 지식과 정보를 독점해나가며 전문성을 발판 삼아 오랫동안 반복해서 조합원 대중을 통치한다. 조합원 대중의 자발성은 묵살되고 통치되어야할 할 대상으로 전락한다. 정보의 독점과 조직의 효율이 총회 민주주의를 압도한다. 이러한 ‘조합원 대상화 메커니즘’이 제대로 성찰되지 않는다면 노동조합의 위기를 부추기는 관료화된 조합주의 경향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의식을 제대로 풀어나가기 위해 어디서부터 어떻게 접근할 수 있을까? 노동자들의 지식과 정보, 사고 수준을 향상시키고, 말과 글로써 자신의 분명한 견해들을 밝힐 수 있도록 책읽기, 글쓰기, 말하기, 논평하기 등을 통해 노동자 지성을 활성화시키고 광범하게 소통할 수 있는 노동자 교육문화운동을 전개해나갈 수 있다. 뭐 별 게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노동자들이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제대로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관료들의 통치가 자의적인 힘을 쓰지 못하게 할 수 있다.
문제는 ‘노동자의 정치’가 부재한 탓이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과연 위임과 대리 정치일까? 아니다. 노동자들이 진정으로 만들고 싶은 노동자 형상, 노동자들이 진짜 하고 싶은 정치는 위임과 대리 행위로 가능하지 않다.
노동자들 스스로 노동자 세상을 그려내고, 노동자 문화를 향유하며, 노동자의 역사적 지성을 바탕으로 현재의 문제들을 풀어나갈 수 있다. 노동자들의 책읽기와 글쓰기가 답이다.
“과거의 세상은 몇 권의 책으로 지배되었다”는 볼테르의 말을 비틀어 “앞으로의 세상이 노동자의 책으로 지배될 수는 없는가?”
담대한 질문을 던져보자. 노동자의 지성을 바탕으로 한 책은 이미 많고 앞으로도 계속 쓰일 것이다.
다만 우리가 그걸 못 보고 지나쳐버리고 있지는 않은가.
노동자의 책읽기와 노동자의 책 만들기에 대해서 앞으로 몇 차례 연재할 생각이다. 메이데이출판사에 들어온 지 이제 넉 달. 배우느라 분주할 텐데 웬 섣부른 주장 글이냐고 생각할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다. 하지만 용기를 내보련다. 앞으로의 세상을 노동자의 책으로 지배하기 위해서. 아직 세부적인 계획이 없어 다음 글은 이런 겁니다하며 예고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작은 약속 하나 할 수는 있다. 연재이므로 반드시 끝을 보자는 거.
해연海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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