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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가 좌파로 30년을 살았다면
-'좌파는 어떻게 좌파가 됐나'(메이데이)를 읽고-
유영주 기자 www.yyjoo.net / <참세상> 2008년11월04일 1시13분
1980년 전후부터 지금까지 좌파로 살아왔던 사람은 모두 몇 명이나 될까. 오늘 좌파의 정체성을 갖고 좌파스럽게 살아가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500명 정도 될까? 1000명? 1만 명?
뭐 숫자는 숫자일 뿐, 귀 독자께서 좌파로 지난 30년을 살아온 사람이라면, 좋은 소식이다. 자서전으로 손색 없는 책이 출간됐다.
10년의 정치세력화를 평가하는 기획이 다뤄지는 오늘, 30년이나 묵은 ‘질풍노도의 에피소드’를 헤쳐 풀어놓으며 좌파의 실존과 헤게모니, 비전을 묻는데, 이광일 연구자의 책 ‘좌파는 어떻게 좌파가 됐나’가 갖는 강력한 미덕이다. 당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진보의 열정, ‘진보의 재구성’에 대한 짙은 애증을 피력하며 잘 알려진 연구자.
며칠 전 맑스코뮤날레 쟁점토론회 휴식 시간에 자판기 커피를 뽑아먹다 박성인 메이데이 발행인으로부터 새 책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여차여차 받아든 책. 책 제목만 듣고선 모처럼 자극적인 팜플렛 한 권 나오겠군 했는데, 이런, 책의 볼륨을 접하며 책 소개를 쓰겠다고 툭 던진 말이 후회막급하다.
급진노동운동 30년의 자화상
이광일 연구자는 본문의 주체를 ‘급진노동운동’으로 삼았고, 표지를 ‘좌파’로 장식했다. 10년 전 학위논문이라고는 하지만, 30년의 반추와 회고가 20년 전 어디쯤, 10년 전 어디쯤 과거에 머물게 하지 않는 탓에 텍스트가 주는 무게가 남다르다. 30년이 지난 오늘, 무릇 30년 급진노동운동, 그러니까 좌파 인생살이의 역경을 밟아온 사람이라면 지금 ‘비주류’ 그 실존의 격세지감을 떠올릴 수밖에 없지 않을까.
“80년대 급진노동운동의 위상과 관련, 이들은 자본의 극복과 새로운 사회체제로의 이행을 목표로 반파시스트투쟁을 주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논의들이 인상적으로 주장하듯 대중노동운동에 대한 ‘헤게모니’를 장악한 적은 없었다. 이들 급진노동운동은 그 구성원들이 보여준 반파시스트투쟁에서의 비타협성, 헌신성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 정치세력들의 외곽에서 그들의 전술적 대상으로 존재했다.”
익히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30년의 뭇 평가를 활자로 만나니 다시 안습이다. 계급연합 차원에서 자유주의세력들의 헤게모니를 전제로 한 민주연합론 따위가 그랬고, 세월이 많이 지난 지금도 민주당을 껴안아가며 연대운동의 판을 짜는 고약한 습성이 또한 그러하다. 헤게모니를 두고 쟁투가 그칠 날 없었던 과거에 비하면 지금 급진노동운동은 그 특유의 전투력마저 소진하고 만 건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일까.. 이광일 연구자는 지금 급진노동운동이 제도 내외에서 이 장벽을 극복하기 위해 벌이는 시도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좀처럼 눈을 떼지 않는다.
“한편으로 제도 내 진보정당 건설의 추진과 그것의 현실화로, 다른 한편 현장대중의 운동력을 불러일으키고 그들과의 결합을 일차적인 과제로 설정하며 노동해방을 모색하는 다기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이 두 흐름이 지니는 이론적 차이, 전략전술 상의 상이성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분리될 수 없는 이들 두 운동의 흐름이 대중과 어떠한 방식으로 경합하여 그들의 동의를 생산 및 재생산해낼 수 있는가..”
이광일 연구자가 주창해온 ‘진보의 재구성’과 맞닿아 있는 문제의식이다. 근데 이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를 어떻게 수습할 수 있을까. 유감스런 현실. 현실의 진보정당운동 주체들과 노동해방 주체들은 피곤하다. 계량하여 비교하긴 어렵지만 분명 잘 만나지도 못할(않을)뿐더러, 교감도 미약하고, 존중과 배려의 씀씀이도 퍽 인색하다.
정치세력화 10년 평가를 하는 진보정당 주체들의 이야기에 뉴스꺼리가 잘 없다. 잘못했다는 반성의 수사는 곧잘 보이지만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어떻게 틀어져 있는지를 담은 이야기는 쉽사리 발견되지 않는다. 제2창당을 고민하는 진보신당 주체들의 발언에는 예의 절박한 호소들이 묻어있지만, 급진노동운동의 30년의 안목으로 지금 운동의 현주소를 읽고, 짚고, 되묻고.. 그러면서 다음을 기획하는 그런 풍경은 잘 안 보인다.
30년 급진노동운동의 당사자 또는 후세들로 명명할 수 있을까. 지난 10월 18일 사회주의노동자연합, 노동자의힘, 노동해방실천연대 등 3단체 활동가들이 모여 한 판 토론을 펼쳤다. 주제는 사회주의정당 건설. 노동자의힘이 적극 제안해온사회주의노동자정당건설준비모임을 구성한 107명의 활동가들은 과연 어떤 비전을 갖고 있는 걸까. 선진노동자가 포함된 400여 명의 활동가가 전국토론회조직위를 구성하자고 제안한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의 속뜻은 무엇일까. 현대자동차노조 현장조직 민투위의 과거 이력을 초점으로 논쟁을 이끈 노동해방실천연대. 이들이 토론을 하며 보여준 사회주의정당운동의 가치와 지향, 미래는 대체 무엇인 걸까. 30년 전 급진노동운동의 화두였던 사회주의를 지금은 전면에 내걸고 나섰는데 이들은 과거의 그리고 현재 운동의 헤게모니에 대해 진정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
다소 미안한 이야기지만, 책은 어쩌면 지금까지 어떻게 좌파가 되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만으로 훨씬 더 빼어날 수 있었는 지도 모른다.
‘질풍노도의 에피소드’의 상흔들, 숨겨진 이야기들
30년을 좌파로, 급진노동운동에 복무하며 살아온 귀 독자라면 87년 노동자 대투쟁과 그 시기를, 90년대 초반 노동운동 위기논쟁에 대해, 또는 당시 급진노동운동의 위치에 대해 어떤 기억을 갖고 계신가.
책의 핵심에 대해 이광일 연구자는 “그 시대 혁명을 말한 급진적인 노동정치세력들은 ‘혁명의 시대’에 걸맞는 헤게모니를 지니고 있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썼다.
이광일 연구자는 급진노동운동을 둘러싼 기존의 비판적 논의나 논평(comment)의 대부분은 6월항쟁 이후 진척된 ‘정치적 자유화’ 조치들의 내용과 이완된 정치적 공간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했다고 지적한다.
“그것(과도한 의미 부여)에 근거하여 급진노동운동을 ‘과잉평가한 후 과잉비판’하는 공통된 양상을 보였다. 즉 6월항쟁 이후 ‘민주화 이행기’에 이른바 ‘다양하게 열려져 있던 전략적 선택’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한 채, ‘최대강령주의’를 추구한 급진노동운동이 87년 노동조합운동이 ‘대폭발(big bang)'하는 상황에서 이념적, 조직적으로 이들에 삼투압 되었고 이러한 관계구조의 지속이 다시 그 대중들을 이탈시켜 노동운동 위기의 주요인이 되었다는 류의 분석이다.”
이광일 연구자는 80년대에 등장한 급진노동운동의 위상과 성격에 대한 과도한 의미 부여를 경계한다. 책 전반에 흐르는 문제의식의 요점이다. 급진노동운동이 반파시스트 투쟁을 일관되게 전개하며 새로운 사회 이행을 모색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념, 조직의 수준에서 보면 대중적 헤게모니를 행사한 적이 거의 없었다는 분석이다.
이를 논증하기 위해 이광일 연구자는 90년대 초반 노동운동 위기론에 대해 쓴 많은 자료를 분석하고, 여러 연구자들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이 과정에서 급진노동운동이 대중적인 노조운동에 헤게모니를 행사하고 있었다는 주장들은 역사적 사실과 상당한 거리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니까 논의, 논평의 대부분이 노동운동의 역사와 이론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 및 검토, 혹은 고민 없이 이른바 ‘민주화이행’ 국면에 급진노동운동을 외삽적으로 끼워 넣음으로써 “6.29협약에 의해 구조화된 이른바 ‘87년체제’의 구조적 한계, 즉 자유주의 정치세력과 신군부파시스트세력의 타협에 의해 진보적인 운동정치세력들이 배제되었다는 사실이 민감하게 고려되지 않는다”고 본다.
“80년대 급진노동운동이 대중적 헤게모니를 지녔다고 전제하는 논의들은 급진노동운동의 위상을 과잉 격상시킨 후 그에 합당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서 부당하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심화와 관련하여 자유주의 정치세력들의 책임을 분산, 면제하기 위한 것에 다름 아니다. 바로 이러한 해석이 90년대 초 노동운동 위기론을 말한 주장들이 공유하고 있던 핵심 전제라는 점에서 그 정치적, 이데올로기적인 지향과 함축은 더욱더 확연히 드러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해석은 여전히 자연스럽게 수용되면서 급진정치세력들의 행보를 비판하는 역사적 근거로 인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개인적, 집단적 희망과 좌절, 상처들.. 트라우마.. 80년대는 단지 ‘질풍노도의 에피소드’인 것이지.
이광일 연구자는 당시 노동운동을 다룬 의미있는 성과로 최장집의 연구를 꼽고 비판적으로 검토하기 시작, 김녕, 박승옥, 송호근, 김동춘, 노중기, 임영일, 김영수 등의 글을 차레대로 논평한다.
가령 최장집과 송호근의 글에 대해서는 “정치적 노동운동과 대중적 노동조합운동의 상호관게를 통해 운동의 양상을 분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적절”하지만 “‘최대강령주의자들’, ‘새로운 노동운동’의 이념, 조직의 수준에서 대중적인 노동조합운동과 연계되어 헤게모니를 행사하였다고 주장하면서도 이후 그것의 쇠퇴를 가져온 매개요인에 대한 의미있는 분석 없이 바로 이러한 조건이 노동운동의 발전에 장애요소가 되었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징검다리 없는 ‘비약’으로 나아간다”고 지적한다.
이광일 연구자는 이 주장이 80년대 노동운동의 이론과 실천의 긴장을 간과하거나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으로 본다. 노동자정치운동이 노동조합운동의 향배를 좌우할 만큼 그에 대한 헤게모니를 갖고 있다는 가설을 전제한 이들 주장에 대해 “87년 이후 급진노동운동이 국가권력의 집중적인 억압과 탄압으로 재구조화 과정에 있었다는 사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비판한다.
임영일의 글 ‘한국의 노동운동과 계급정치’에 대해서도 급진노동운동의 역사적 위상과 공과를 거론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그는 노동자계급의 정치조직화를 언급하면서 그 방향을 ‘계급정당’의 조직화에서 찾는 것은 ‘민주적 계급정치구조’ 속에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하면서 92년까지 진행된 노동운동활동가 조직들의 정치적 실험의 실패와 좌절은 바로 이에 대한 관념적 접근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 노동조합운동이 기업별 노동조합주의에 의해 질곡되었던 시기에 ‘계급정당’의 조직화, 한 발 더 나아가 ‘전위정당’ 건설을 지향하기조차 한 활동가운동의 위상에 대한 평가를 회피함..”
이광일 연구자는 임영일의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넘고자 한 노력을 김영수에게서 발견한다. 이광일 연구자는 김영수의 글 ‘한국의 노동자정치운동과 민주노조운동 간의 연대관계’에 대해 “민주노조운동과 노동자정치운동은 상호 분화와 통일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할 때만이 그 의미를 분명히 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하고, “‘민주화 이행’의 와중에서 벌어진, ‘위기’를 포함한 노동운동의 미래는 여전히 상이한 경로와 위상을 지니는 정치운동과 대중운동의 분리 및 연대라는 차원에서만 해명될 수 있다”고 정리한다.
‘진보의 재구성’의 이론 족적.. 혁명의 시대 헤게모니
이광일 연구자가 ‘진보의 재구성’을 주창했을 때 오늘날 급진노동운동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짧은 기억으로 유별난 반응은 없었던 듯 한데, 한가한 연구자? 좋은 입담? 천진난만한 제안? 그렇게 읽혀진 건 아닐까.
가령 지난 3월 12일 ‘민중언론참세상’에 기고한 글 ‘진보의 재구성, 이제 시작이다’에서 이광일 연구자는 “새로운 진보정당을 구성하고자 하는 세력들은 그들(심,노)의 정치적 행보에 연연하지 말고 아래로부터 자신의 길을” 가고 “‘제도정치’ 외부의 ‘계급 좌파’와 ‘비계급 좌파’들이 이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개입, 결합할 것”을 호소한 바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두고 보면 진보신당도 계급좌파나 비계급좌파도 같이 가는 길을 선택하지는 않았다. 특별한 계기와 변화가 없다면 당분간도, 그리고 멀리 어림잡아봐도 큰 그림이 그려지긴 쉽지 않을듯 하다. 왜 그럴까. 앙금이 많아서? 노선이 달라서? 따로 가는 게 수지가 맞아서? 글쎄, 분명한 건 진보의 재구성을 위한 모멘텀이 제공되지 않는 한 급진노동운동의 역사가 낳은 부정적 유산, 그 이력을 뒤집는 건 쉽지않을 전망이다.
그런데 30년 전 급진노동운동 역사의 진단에서 왜 그럴까에 대한 약간의 실마리가 확인된다.
“이들이 주도한 급진노동운동은 ‘억압적,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의 가장 중요한 감시의 대상이었다. 애초 급진 노동운동은 보수독점의 정치사회로부터 완전히 배제되는 것은 물론 시민사회에서도 보수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과잉과 그것의 다른 한 면인 극우반공주의에 의해, 그리고 이것에 대한 시민들의 ‘자발적, 비자발적 순응’에 의해 어느 한 곳에도 온전히 자리잡을 수가 없었다”
이광일 연구자는 이로부터 급진노동운동은 두 가지 장애에 직면한다고 봤다.
하나는 사상이론의 수준에서 급진노동운동이 맑스주의 등 비판이론들을 수용하며 보수적 논의와 대결했지만 실천적으로 대중과 교호통로를 효과적으로 구축하지 못했다는 것. 그래서 “이론 혹은 전략전술의 차이를 조직의 분리와 직접적으로 동일시함으로써 정치 투쟁공간을 확대시켜 나가며 대규모화된 대중운동의 양상과는 달리 스스로를 서클주의, 분파주의에 제한시키는 반대 경향을 연출하였다”는 말이다. 결국 급진노동운동의 지도력에 대한 노동대중의 공신력은 땅에 떨어졌고, 이들 서클이나 정파는 고유한 ‘빈곤의 정치’를 더욱 조장하게 되는데...
급진노동운동에 내면화된 이러한 이력은 96-97년 총파업 총파업 이후 진보정당 건설 논의와 계급적 정치적 주체의 결집을 통한 노동자계급정당 건설 논의에 투영되었을 테고, 어찌 보면 민주노동당 내 분파 논란이나 2002년 이후 좌파 정치조직들의 정치적 재조직화 시도에도 전이되었음직 한 이야기다.
또 하나는 맑스-레닌주의, 네오맑스주의, 각국의 노동운동의 역사 등 이론과 자원들이 당대 현실 문제로 고민되지 않으면서 이론과 실천의 통일적인 발전이 저해되었다는 것. 이광일 연구자는 “이론의 도입 및 실천이 대중운동과 결합하지 못함으로써 정작 막대를 구부리기 위해 행동해야 할 상황이 도래했을 때, 효과적인 정치활동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것은 이들 급진노동운동이 애초 내걸었던 ‘현장으로! 현장으로!’라는 슬로건과 그 활동인자들의 개별적 헌신성에도 불구하고 이들 운동이 점차 현장대중과 분리되며 엘리트운동으로 나아간 결과물이었다”고 짚었다.
잘 모르겠다. 30년 급진노동운동에 내면화된 이력. 이것과 오늘날 급진노동운동 주체의 생태와의 관계를 이렇게 압축할 수 있을까.
이광일 연구자는 비관의 뉘앙스를 갖지 않는다.
“80년대 급진노동운동의 기본 문제의식은 ‘미래의 새로운 사회상’의 불투명성이라는 제약에도 불구하고 현재 진행중인 노동운동의 기저에 흐르고 있다. 오히려 제약이라고 말한 노동운동의 목표로서 미래사회의 구체적 상에 관한 불투명성은 노동운동이 다기한 영역과 이해에 기반한 실천들과의 접합을 통해 끊임없이 재구성하면서 제시해야 할 사안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자극제가 되고 있기도 하다.”
책의 마무리, 이광일 연구자는 오늘날 급진노동운동의 임무에 대해 “기존 보수자유주의 정치세력과의 대결을 통해 정치적 자유를 확보해내야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조합주의적 이해를 넘어 새로운 대안세계를 모색하기 위해 민중-민족적 헤게모니를 확보, 구사해야 한다”며 글을 맺었다.
귀 독자가 30년 급진노동운동에 종사한 사람이라면, 뭔가 영감이 떠오를 법 할 텐데, 글쎄 어떠한가. “그 시대 혁명을 말한 급진적인 노동정치세력들은 ‘혁명의 시대’에 걸맞는 헤게모니를 지니고 있었을까”라는 질문에 한 2년 쯤 후, 한 5년이나 10년 쯤 후에는 어떤 기억들이 확인될 수 있을까나.
그러니까 좌파는 어떻게 좌파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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