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교육 문제를 둘러싼 논쟁은 소위 ‘3불(고교 등급제, 본고사, 기여입학제 불가)’ 논란이다. 현 정부는 ‘3불’이 한국 교육의 공공성을 수호하는 마지노선으로 여기고 있는 반면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 세력은 ‘3불’로 교육이 망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3불’에 대한 찬반 입장이 교육 논쟁의 양 축을 이루는 현재의 구도는 한국 교육 현실에서 바람직한 현상인가? 다시 말해 ‘3불’을 지속하거나 폐지되었을 때 한국 교육 현실은 나아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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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회 교육신화 비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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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교육신화 비판』(2007, 메이데이)은 이 질문에 ‘아니오’라고 단호히 대답한다. 교육운동을 이끌어 온 이철호 등 17인이 함께 쓴 이 책은 17개의 ‘신화’, 교육 문제를 은폐하고 ‘3불’ 논쟁으로 치닫는 교육정책의 ‘신화’를 벗기고 있다. 교육 문제의 전부를 어지러운 대학입시제도와 늘어나는 사교육비로 탈바꿈시켜버리는 작금의 상황을 교정하기 위한 작업이다.
이 책은 ‘한국사회에서 과연 교육기회는 평등한가’라는 도발적 질문을 던지며 더 이상 ‘개천에서 용 나는 일’은 없다고 말한다. 이와 더불어 사교육이 번성하는 이유, 대학입시제도 변경만으로는 공교육이 살아날 수 없는 이유를 밝힌다. 또한 국회를 시끄럽게 하고 있는 사립학교 문제나 정부와 교원단체가 갈등하는 교원평가 문제의 실제 의미를 파악한다.
『한국사회 교육신화 비판』은 ‘교육신화’는 이 사회를 지배하는 자들의 이해관계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본다. 그래서 정부의 교육정책은 소수를 위한 경쟁체제를 지속한다.
“현재의 교육 정책은 기득권층의 이해와 요구를 반영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바탕을 둔 다양한 처방은 학교 교육을 통해 수많은 탈락자를 발생시키고 엄청난 국민적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소수의 경쟁력 있는 인재가 육성되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다수의 학생들이 현 교육제도 아래서 건강하게 성장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신화에 사로잡혀 내린 잘못된 처방은 일시적인 고통을 완화시키는 진통제와 같은 효과를 가질 수는 있다. 그러나 갈등은 더욱 증폭되기 마련이다.”(머리말 중, 11쪽)
이 책은 한국사회 교육신화의 근원으로 ‘학력에 의한 사회 불균형’이 가로놓여 있음을 주목한다. 이는 대학 간 불평등, 더 나아가 일류대 경쟁을 불러일으키고, 이러한 현실이 내신과 수능, 그리고 본고사라는 ‘죽음의 트라이앵글’을 더욱 강화시켜 나가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래서 이 책은 한국교육의 자화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교육으로 인해 차별과 불평등이 형성되고 계승되어가는 지금, 우리 모두는 교육으로 인해 행복하지 않다. 하루 16시간 이상을 학습노동에 시달리는 청소년, 가르칠 기회를 방송에 빼앗겨 버린 교사들, 사교육비를 마련하기 위해 해체된 가족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도 다시 대입이나 편입이나 고시 준비에 들어가는 대학생들, 서열화 시험인 수능만 치르고 나면 도무지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닌 자식들, 스스로에 대한 절망을 견디지 못해 떨어져 내리는 꽃잎들.”(머리말 중, 11쪽)
이미 이런 상황이라면 ‘3불’을 지키느냐 마느냐가 개혁의 기준일 수는 없다. 현 정부는 ‘3불’을 교육 수호의 마지막 저지선인 것처럼 호들갑이지만 그 이면에는 자립형 사립고의 확장, 교육 개방, 대학 구조조정 등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최근 수년 간 가속화된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낮추지 않는다.
『한국사회 교육신화 비판』은 17명의 저자가 각각 하나씩의 주제로 쓴 글을 모았다. 저자마다의 개성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각 글이 다루는 문제를 세 개로 묶어서 책의 일관성을 추구했다.
<1부_한국 교육, 왜곡된 신화의 뿌리>는 특정한 시기가 아닌 한국 교육의 근원적 문제를 다루고 있다. 교육을 통한 인간의식의 형성, 교육에서의 국가 역할, 그리고 교육문제의 영원한 숙제인 사교육비에 얽힌 왜곡된 신화를 벗겨낸다.
<2부_교육을 부정하는 신화들>은 교육 내적인 면을 다루고 있다. 교원정책, 대학입시제도의 구체적인 상황, 학벌문제, 학제와 교육과정, 인권과 관련한 ‘신화’의 허구를 폭로한다.
<3부_신자유주의 교육 정책, 헌구적 신화 만들기>는 교육의 시장화, 영리산업화와 관련한 정부 정책을 비판한다. 대학 구조조정, 로크쿨 등 전문대학원, 영어 광풍, 자립형 사립고의 실체를 드러내다. 물론 한미 FTA의 사기극을 고발한다.
이 책의 저자들은 교수, 교사, 교육단체 활동가들이다. 교수라 해서 이론적 연구만 하지 않았으며, 교사라고 해서 가르치는 문제만 고민하지 않았다. 이들은 현장에서 오랜 동안 교육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활동해왔던 이들이다.
이 책은 수년에서 십 수 년의 교육운동 경험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생생한 문제의식을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의 장점은 복잡한 교육문제가 어떻게 얽혀 있는지 볼 수 있는 데에 있다.
‘교육문제’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어지러운 대학입시제도와 늘어나는 사교육비’ 말고는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래서 답답하다면, 그리고 이를 해결하는 방안을 상상하기 힘들 때 『한국사회 교육신화 비판』은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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