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OECD 회원국의 2005년도 경제ㆍ사회ㆍ환경 등 실태를 담은 ‘2007 OECD 통계연보’가 나왔다. 통계 연보를 보면 대한민국 노동자들은 연평균 2354시간을 일하고 있었다. 주 5일제로 노동했을 때, 하루 평균 9.31시간, 9시간 20분이다. 프랑스는 1546시간, 영국 1659시간, 미국 1713시간, 일본 1775시간….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유일하게 2000시간이 넘은 국가이다. 한국인, 세계 1위의 ‘일벌레’인가?
고백, 나는 일중독자다
나는 일중독자다. 그런데 내가 일중독자인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그냥 일을 즐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쉬는 날에도 일이 좋아서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일은 곧 자아실현의 완성이라고 생각했다. 대학에 입학해서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살았다. 아마도 학보사에서 신문을 만들며 반복적으로 마감을 하면서 생긴 것이 아닌가 싶다. 그 이후 줄곧 나는 일을 해왔다. 학보사 일을 마친 뒤 학생회에서 활동을 했고, 졸업을 해서는 다시 신문을 만들었다. 지금의 일을 하기 전 6개월 정도를 쉬었는데, 그 시간에는 중국어를 배웠다. 그냥 시간을 보내는 것이 못마땅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2년 전부터 가끔 몸에서 말을 듣지 않기 시작했다. 두통약과 소화제를 상비약으로 두고 살았다. 그러던 지난해 여름 몸이 멈춰달라고 소리쳤다. 신체적인 문제를 넘어 정신적인 문제였다. 그래서 나는 내가 심각한 일중독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2주간 병가를 내고 집에서 퍼즐을 맞췄다. 1000조각짜리 퍼즐 두 판이었다. 시간을 보내는데 최고였다. 그리고 다른 일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빠질 수 있는 놀이였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일중독’이 다시 ‘퍼즐 중독’으로 전이된 것이었을 뿐, 결과적으로 나의 일중독은 치료되지 못하였고, 나는 다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사이의 변화는 있었다. 이전처럼 일을 몰아하지 않고 촘촘히 계획을 잡지 않는다는 것과 몸에 이상이 생기거나 일로 인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할 경우, 일을 손에서 놓는다는 것이다.
주 노동시간 50.39시간, 일 많이 하면 누가 상을 주나?
최근 흥미있는 기사를 하나 읽었다. 직장인의 10명 중 9명은 몸이 아파도 참고 출근한 적이 있으며 그 중 70%는 퇴근시간까지 종일 근무했다는 설문조사 결과였다. 아프면 쉬어야지 왜 출근하는 걸까? 직장에서는 개근상을 주는 것도 아닌데, 아픈데도 출근을 하다니…. 응답자 중 절반 가까이가 ‘성실과 책임을 다하는 조직문화를 위해서’라고 답했다. 지인이 이 이야기를 듣더니 “일은 곧 생명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아프다고 왜 출근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라며 반대로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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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중독 벗어나기 ⓒ 메이데이 |
현대사회의 일중독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 있다. 강수돌 고려대 경영학부 교수가 쓴 현대 사회의 일중독과 해결 방안 연구서인 <일중독 벗어나기>(2007, 메이데이)가 그것이다. 이 책에서 ‘일중독’은 우리 삶의 내면이 공허할 때 그 허기를 일(성과)로 채우려는 질병의 일종으로 정의하고 있다.
1960년엔 “대망의 70년대를 바라보며 열심히 일하라”고 해고, 1970년대가 되니 “대방의 80년대를 바라보며 성실히 일하라”고 했으며, 1980년대가 되니 “대망의 90년대를 바라보며 허리띠 졸라매라”고 해다. 그러다가 1997년엔 나라가 온 통 ‘대 망’했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또 매어 이제 대망의 21세기, 2000년대가 되었다. …(중략)… 이런 구호 속에선 늘 오늘은 없고, 미래만 있다. 환상적인 미래를 그리며 ‘오늘도 내일도 열심히 일하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끊임없는 행복의 유보…, 이것이 문제다. - 서문 중에서
2003년부터 2005년까지 한국, 일본, 미국, 독일에서 노동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한국50.39시간, 일본 45.49시간, 미국 44.54시간, 독일 38.29시간으로 나타났다. 이 책에서는 이같은 요인을 한국인들이 다른 나라에 비해 ‘일중독’을 많이 체화하고 있기 때문에 법적 노동시간의 단축에도 불구하고 구조적으로 실 노동시간이 세계 최고를 달릴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일중독은 직장을 다니면서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는 현상이 아니다. 구체적인 공간으로 가정, 학교, 군대, 직장을 꼽고 있는데, 성과를 내고 부모로부터 칭찬이나 포상을 받게 되는 과정, 점수로서 개인이 평가되는 상황, 교육이라는 미명하게 저질러지는 굴리기, 40년 내외의 반복되는 직장생활 등이 일중독을 만들게 되는 원인이다.
일에서 해방되기
일중독은 알콜중독처럼 특수한 질병일 뿐이다. 그래서 자신이 일중독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이 일중독증 환자라고 인정해야만 한다. 그리고 자신의 취미에 맞는 규칙적 운동, 매일 5분 이상의 명상, 6시간 이상의 충분한 수면, 1년에 1주일 이상 일에서 벗어난 휴식 등이 필요하다고 한다. 어떤 전문의는 천천히 생활하는 습관을 기르라고 한다. 업무일정을 30분 단위가 아닌 45분 또는 1시간 단위로 늘려잡고 적절히 거절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이나 동료 등 주변 사람들도 이 병의 진단과 인정, 치유에 함께 동참해야 한다. 기업과 나라 차원에서는 지나친 성과주의나 일중독자를 피하고 성과주의에 따른 승진 정책을 취하지 말하여 하며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노동자의 삶의 건강성과 자율성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각종 처세술 책이 판을 치고, 직장에서 성공하는 방법에는 시간을 15분 단위로 잘라 쓰라고 하는 지금, 짧은 시간에 다양한 일을 하고 다양한 기술을 습득하고 있는 사람이 능력있는 사람으로 평가받는 세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솔직히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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