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야옹이님의 [덧붙여] 에 관련된 글입니다.
1.
있잖아. 잊고 싶으면 잊어.
근데 만약에, 혹시라도, 잊혀지지 않으면,
두려움만 남기지 말고 분노도 함께 남겨주길 바래.
이 말은 얼마전 dalgun 이 택시기사랑 싸웠다길래 그 글 읽다가 남긴 덧글이다.
아직까지는 이게 제일 그럴 듯해 보이는데, 피곤하다.
분노를 품으면 피곤하다.
하지만 품지 않으면 내 자신이 사라진다.
그래서 별 수 없이 이렇게 산다.
2.
내가 당한 가장 오랜 기간동안의 성폭행은 고등학교 3년간 타고 다닌 2호선 지하철안이었던 것 같다. 그때를 생각하면 당하지 않은 날을 꼽는게 쉬울 정도다.
근데 사실 그 당시에는 굉장히 둔감하게 살았다.
누구한테 말한 적도 없었던 거 같고, 상대방을 노려보는 것조차 못했던 거 같고...
왜?
일일이 따지고 대응하면 인생이 더 피폐해질만큼 일상적인 현상이었으니까...
마치 엄청난 악몽을 꾸고 나면 꿀 때보다 잠 깨서 되뇌일때 더 공포스럽듯이,
지금 되새기면 스스로 자살행위라도 도모한 기분이 들어
자신에게 미안해져서 되도록 구체적으로는 생각 안하고 산다.
가끔 여자들끼리 대화할때 분노가 고양되어 자신의 피해 사실을 엄청난 속사포로 말해버릴때가 있다.
그저 '이렇게 잘 버티며 살아왔어요!', '자신을 많이 죽이고도 살아남았어요' 라고 자랑거리 늘어놓듯 얘기할때에도
열심히 말해버리고 난 후, 내가 한 말에 놀라 상처받기는 매한가지, 거의 매번 후회한다.
가끔 남자들한테 들으라고 이야기해놓고도 또 후회한다.
듣고나서 혹시 '세상살기 힘들다'고 말할까봐...
(남의 감정까지 책임지려 하다니, 이런 쓸데없는 짓을...-_-;;;)
3.
태생적으로 둔한데다가 감상적인 성격도 아닌데, '난 정말 예민한가?'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었다.
바로 azrael 님이 겪은 '지나친 피해의식 아냐?'라는 말을 받았을때...
근데 뭘 고민한걸까?
피해받았기 때문에 의식이 생긴 건 정말 확실한 사실인데...
문제는 그놈의 '지나친' 때문인가?
이래뵈도 '사회생활 열심히 하자 주의'라서
'무엇에 분노할 것인가?', '얼마나 분노할 것인가?'부터 열심히 고민은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가감없이 분노스러운 건 하나 있다.
잘못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나도 참 많은 사람에게 피해주며 산다. 인정한다.
그런데 그걸 상대방의 피해의식으로 치환해주면 곤란하지 않은감?
그렇지 않아도 쌓여온 분노를 자르고 조절하느라 쉽지 않다.
남자들은 간혹 '적으로 돌리지 마라'라고 말하는데, 경계찾기 무쟈게 어렵다. (이것도 인정한다) 잘 조절이 안된다.
어렵다.
자기 권리의식도 찾아야 하고,
적절히 예민한 얼굴로 문제의 지점도 찾아야 하고,
찾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도 해봐야 하고,
그 수위도 고민해봐야 하고,
분노를 조절하면서 두려움도 조절해야 하는데 쉽지 않고,
가끔 둔감하게 살던 잿빛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도 이젠 생존의 문제로 목에 걸려와 그럴수도 없고...
나도 없는 그 따위 세상, 더이상 살 수 없기 때문에...
어렵다. 어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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