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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3/11/08
    20250613_보성소리 수궁가 사설
    돌민
  2. 2020/03/04
    20250608_강산제 심청가 사설
    돌민

20250613_보성소리 수궁가 사설

 공공 도서관은 희망 도서 신청이 안 되겠지만, 혹시 대학 도서관에 가능하시다면 희망 도서 신청을 부탁 드립니다. ^^ 감사합니다.

 

 돌민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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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삽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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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정응민 명창과 정권진 명창을 거쳐 정회석 명창에게 이어진 수궁가, 일명 ‘보성(寶城)소리 수궁가’ 사설을 주해(註解)한 것이 이 책이다. 고(故) 정응민 명창은 20세기 중반기까지 활약했던 판소리 명창이다. 『논어(論語)』에 나온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표현처럼, 판소리의 전통을 현대로 이은 큰 스승이다. 그의 아들이자 무형문화재 제5호 심청가 초대 보유자가 고(故) 정권진 명창이다. 정응민 명창의 손자이자 정권진 명창의 아들이자 무형문화재 제5호 심청가 보유자가 정회석 명창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3대(代)에 이르고, 정응민 명창의 윗대인 고(故) 정재근 명창까지 하면 4대에 이르는 판소리 명문가이다. 이 명창 집안의 수궁가를, 중시조(中始祖) 정응민 명창이 은거했던 보성(寶城) 지역의 이름을 따 ‘보성소리 수궁가’로 부르는 셈이다.

이 책의 주해는, 『토끼전 전집』 1~6권(김진영·김현주 외 편저, 박이정출판사, 1997~2003)에서 150여 년 전부터의 사설을 두루 발췌독 하며 그 문맥에 기초해서 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100여 년 전 유성기 음반의 복각 녹음에 실증적으로 기초하기도 했다. 끝으로, 중국철학서전자화계획 누리집(ctext.org)과 한국 고전종합 DB 누리집(db.itkc.or.kr)과 각종 백과사전과 어학 사전 등에서 총체적으로 용례를 검증하기도 했다.

물론, 허성도 서울대학교 명예 교수님께서 판소리 사설 주해에 있어 한시(漢詩) 이해가 필요하다는 점을 일깨워 주셨던 것이 중요한 계기였다. 그리고, 배연형 한국음반아카이브연구소장님께서 다음과 같은 사실 등을 알려주신 것도 중요한 계기였다. 정회석·조정희가 탈초(脫草) 하고 배연형이 감수한 「<부록 1> 정응민 <수궁가> 창본 (1935)」이 정회석의 「정응민 가계 <수궁가>의 음악적 특징과 전승양상」(한양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 한양대학교, 2014)에 실려 있었다.

안 팔리는 책인데도 기회를 주신 부크크의 배려에 대해, 지금까지 가르쳐 주신 스승님들의 은혜에 대해, 『당시별재집』 1~6권(심덕잠 엮음, 서성 옮김, 소명출판, 2013)과 『조선 사람이 좋아한 당시』(이종묵 평역, 민음사, 2022)와 『토끼전 전집』 1~6권 등등의 논저에 대해 감사한 마음뿐이다. 끝으로, 참고 문헌을 각주로 대신한 점에 대해 양해를 구한다.

 

2023년 9월 21일 목요일에

서울대학교 중앙 도서관 2층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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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13_보성(寶城)소리 수궁가(水宮歌) 사설

편(編)한 『주해(註解) 보성소리 수궁가』(부크크, 2023)의 본문 부분만이지만 좀 더 다듬었습니다. dolmin98@naver.com

 

보성(寶城)소리 수궁가(水宮歌) 사설

1.

 

[아니리]

갑신년(甲申年) 중하(中夏) 월(月)에 남해 광리왕(廣利王)이 영덕전(靈德殿) 높이 짓고 대연(大宴)을 배설(排設)하야 삼해 용왕(龍王)을 청하실 제 군신(群臣) 빈객(賓客)이 천승(千乘) 만기(萬騎)요, 강한지장(江漢之長)과 천택지군(川澤之君)이 일시에 모여들어 중악(衆樂)이 필진(畢陳) 허고 굉주교착(觥籌交錯)이라. 이삼일 노니더니, 남해 용왕이 해전 열풍(熱風)을 복중에 과(過)히 쏘여 졸연(猝然) 득병(得病)허여, 약방 도제조(都提調)를 불러 주야(晝夜)로 약을 쓰되, 만무회춘지망(萬無回春之望)이로구나.

 

[진양조]

영덕전 높은 궁궐 벗 없이 홀로 누워, 애통허여 울음 운다. 천무열풍(天無烈風) 좋은 시절의 해불양파(海不揚波) 태평헌듸, 괴이한 병을 얻어 신음 중(中)의 누웠으니, 날 구헐 이가 뉘 있드란 말인그나. 애통허여 울음을 운다.

 

[엇모리]

하로난 현운(玄雲) 흑무(黑霧) 하로난 현운 흑무. 궁중을 뒤덮으며 폭풍[飄風] 세우(細雨)가 사면을 두루더니, 어떠한 청의(靑衣) 도사(道士) 몸에난 장삼(長衫) 포(袍)요, 손에 옥을 쥐고 공중으로 내려와 재배이진(再拜而進) 왈, “약수(弱水) 삼천(三千) 리(里) 해당화(海棠花) 구경과 백운 요지연(瑤池宴)의 천년 벽도(碧桃)를 얻으랴 지하에 왔삽더니, 풍편(風便)에 듣자온즉, 대왕의 병세가 만만(萬萬) 위중타 허옵기의 뵈옵고저 왔나이다.”

 

[아니리]

왕이 왈 “도사 이리 오시기는 하늘의 도움이라. 원컨대 도사는 황황(遑遑)한 나의 병세를 자세히 짐작허사 선약(仙藥)을 가르쳐 주옵소서.” 도사 왈, “우선 맥(脈)이나 보사이다.” 도사가 왕의 맥을 보랴 헐 제, 만물의 영장(靈長)인 사람으로 둔신(遁身)허여 꼭 사람과 같은 진맥(診脈)을 허것다.

 

[자진모리]

왕이 팔을 내어주니 도사 맥을 본다. 심(心), 소장(小腸)은 화(火)요, 간담(肝膽)은 목(木)이요, 폐, 대장(大腸)은 금(金)이요, 신(腎), 방광(膀胱)은 수(水)요, 비위(脾胃)난 토(土)라. 간목(肝木)이 태과(太過)하여 목극토(木克土) 허니 비위가 상하옵고, 담성(痰聲)이 심허니 신경(腎經)이 미약(微弱)허고 폐, 대장이 왕성(旺盛)허니 간담경(肝膽經)이 자진(自盡)이라. 방서(方書)에 일렀으되 비내일신지조종(脾乃一身之祖宗)이요, 담(膽)은 내일신지표본(乃一身之標本)이라. 심정(心靜) 즉(則) 만병(萬病)이 식(息) 허고 심동(心動) 즉 만병이 생(生)하오니, 심경(心經)이 상하오면 무슨 병이 아니 날까. 오로칠상(五勞七傷) 급하오니 보중탕(補中湯)으로 잡수시오. 숙지황(熟地黃) 주초(酒炒)하야 닷 돈이요, 산사육(山査肉), 천문동(天門冬), 세신(細辛)을 거토(去土) 허고 육종용(肉蓯蓉), 택사(澤瀉), 앵속화(罌粟花) 각 한 돈, 감초(甘草) 각 칠 푼, 수일승전반(水一升煎半) 연용(連用) 이십여 첩을 쓰되, 효무동정이라. 설사가 급하오니 가감백출탕(加減白朮湯)으로 잡수시오. 백출(白朮)을 초구(炒灸) 하여 두 돈이요, 사인(沙仁)을 초구 하여 서 돈이요, 백복령(白茯苓), 산약(山藥), 오미자(五味子), 당귀(當歸), 천궁(川芎), 강활(羌活), 목통(木通), 감초 칠 푼, 수일승전반 연용 삼십여 첩을 쓰되 효무동정이라. 양감(兩減)이 급하오니 가미강활탕(加味羌活湯)으로 잡수시오. 마황(麻黃) 두 돈, 진피(陳皮), 강활, 방풍(防風), 백지(白芷), 천궁(川芎), 창출(蒼朮), 승마(升麻), 갈근(葛根), 세신 각 한 돈, 감초 칠 푼 수일승전반 연용 사십여 첩을 쓰되 효무동정이라. 신농씨(神農氏) 백초(百草) 약을 갖가지로 다 쓰랴다는 지레 먼저 죽을 테니 백약(百藥)을 한테 모아 작두에 모다 썰어 가마에 많이 다려 한 번에 먹어 보자. 약을 한테 모일 적의 인삼은 미감(味甘) 허니 대보원기(大補元氣) 허고 지갈생진(止渴生津) 허여 조영양위(調榮養衛)로다. 백출은 감온(甘溫) 허니 건비강위(健脾强胃) 허고 지사제습(止瀉除濕) 허며 겸구단비(兼驅痰痞)로다. 감초도 감온 허나 구즉온중(灸則溫中) 허고 생즉사화(生則瀉火)로다. 청심환(淸心丸), 소합환(蘇合丸), 팔미환(八味丸), 육미환(六味丸), 경옥고(瓊玉膏), 자음경옥고(滋陰瓊玉膏), 백고약(白膏藥), 대황(大黃), 망초(芒硝), 창출, 백출, 승마, 갈근, 세신, 진피, 계피(桂皮), 반하(半夏), 육계(肉桂), 천산갑(穿山甲), 천문동, 맥문동(麥門冬), 호황련(胡黃蓮), 당황련(唐黃連), 가미군자탕(加味君子湯), 청서육화탕(淸暑六和湯), 이원 익기탕(益氣湯), 강활탕(羌活湯), 도인탕(桃仁湯), 백사주(白蛇酒) 위령탕(胃苓湯), 황금 인분탕, 두꺼비 오줌, 곰 쓰래까지 각가지로 다 먹어도 백약이 무효로구나. 침구(鍼灸)로 다스리자. 동침(銅鍼), 은침(銀鍼) 빼어 들고 혈(穴)을 잡어서 침질헐 제, 천지지상경(天地之常經)이니 유주(流注)로 주어보고 갑일(甲日) 갑술시(甲戌時)의 담경(膽經) 규음(竅陰)을 주고, 을일(乙日) 유시(酉時)의 대장경(大腸經) 상양(商陽)을 주고 영구(靈龜)로 주어 보자. 일 신맥(申脈), 이 조해(照海), 삼 외관(外關), 사 임읍(臨泣), 오 소해(少海), 육 공손(公孫), 칠 후계(後谿), 팔 내관(內關), 구 열결(列缺), 삼기(三奇) 붙여 팔문(八門)과 좌맥(左脈)을 눌러주고 효험이 없으니, 임맥(任脈)과 독맥(督脈)과 십이(十二) 경(經) 주어 봐 승장(承漿), 염천(廉泉), 천돌(天突), 구미(鳩尾), 거궐(巨闕), 상완(上脘), 중완(中脘), 하완(下脘), 신궐(神闕), 단전(丹田), 곤륜(崑崙)을 주고 족태음비경(足太陰脾經), 각 대돈(大敦), 삼음교(三陰交), 음릉천(陰陵泉)을 주어 보자. 아무리 약과 침폄(針砭) 허되 병세 점점 위중(危重)허니,

 

[아니리]

용왕이 어이없어 “도사 맥을 더 착실히 보아 주옵고, 내 병명이나 가르쳐 주오.” 도사가 다시 정신을 차려 용왕의 기세를 요만허고 살펴보더니마는,

 

[중모리]

도사 다시 맥을 본다. “맥이 경동맥(驚動脈)이라, 비위(脾胃) 맥(脈)이 상하오니 복중(腹中)에서 난 병이요, 복중이 졀려 아프기는 화증(火症)에서 난 병인듸, 음황(陰黃) 풍병(風病)이라. 여섯 가지 기운(氣運)이 동(動)하야 감계신진(坎癸申辰)은 정양(淨陽)이요, 진경해미(震庚亥未)는 정음(淨陰)이라. 음허화동(陰虛火動)의 황달(黃疸)을 겸하였으니, 진세(塵世) 산간(山間) 토끼 간을 얻으면 차효(差效)가 있으려니와, 만일 그렇지 못하오면 염라대왕(閻羅大王)이 동성(同姓) 삼촌이요, 동방삭(東方朔)이가 조상이 되어도, 누루 황(黃) 새암 천 돌아갈 귀(歸).”

 

[아니리]

왕이 왈 “신농씨(神農氏) 백초(百草) 약은 어찌 약이 아니 되옵고, 조그막헌 토끼 간이 약이 되오리까?” 도사 이른 말이 “대왕은 진(辰)이요, 토끼는 묘(卯)라. 묘을손(卯乙巽)은 음목(陰木)이요, 간진술(艮辰戌)은 양토(陽土)라. 갑인진손대강수(甲寅辰巽大江水)요, 진간사산원속목(震艮巳山元屬木)이라. 목극토 허고 수생목(水生木) 허였으니 어찌 약이 아니 되오리까?” 용왕이 이 말 듣더니마는 탄식(歎息/嘆息)허여 우는 말이,

 

[진양조]

“연(然)하다, 수연(雖然)이나 창망(悵惘)헌 진세 간의 벽해(碧海) 만경(萬頃) 밖의 백운(白雲)이 구만리(九萬里)요, 여산(驪山) 송백(松柏) 울울창창(鬱鬱蒼蒼) 삼 척(尺) 고분(孤墳) 황제 묘라. 석자(昔者) 진시황(秦始皇)은 만승천자(萬乘天子) 위엄으로 동남동녀(童男童女) 오백 인을 불사약(不死藥) 구허랴 허송(虛送) 삼산(三山) 한 연후의 일발청산(一髮靑山)의 종적이 없었으니 못 구허고 붕(崩)허시며, 만고(萬古) 영웅 한(漢) 무제(武帝)도 승로반(承露盤)이 허사가 되어, 육십삼 세의 붕허시니 성쇠흥망(盛衰興亡)이 때가 있고, 수요장단(壽夭長短) 재천(在天)이라. 토끼라 허는 짐생은 해외(海外) 일월(日月) 밝은 세상의 백운 청산 무정처(無定處)로 시비(柴扉) 없이 다니는 짐생을 내가 어이 구허드란 말이오.”

 

[아니리]

이렇듯 탄식허니 도사 이른 말이 “태산지간(泰山之間)의 유백금지사(有百金之士) 허고 요순지군(堯舜之君)의 유고요직설(有皐陶稷契)이라. 대왕의 성덕(聖德)으로 어찌 충의지신(忠義之臣)이 없사오리까? 이제라도 수부(水府) 조정 만조백관(滿朝百官)을 불러 일체 하교하여 보옵소서.” 말이 지자 인홀불견(因忽不見) 간 곳 없것다. 왕이 도사 말을 옳게 여겨 수궁(水宮) 만조제신(滿朝諸臣)들을 일시에 불러들이난듸, 이 세상 같으면 일품(一品) 재상(宰相)님네가 들어오실 것이로되, 수궁이라 허는 곳은 맛진 고기가 지천(至賤)이 되야 수궁 만조백관인들이 모다 물고기 등물(等物)이었다. 모다 어명(御命)을 받고 들어오는듸,

 

[자진모리]

승상(丞相)은 거북, 승지(承旨) 도미, 판서(判書) 민어, 주서(注書) 오징어, 한림(翰林) 박대, 대사성(大司成) 도루목, 방첨사(防僉使) 조개, 해원군 방게, 감목관(監牧官) 수달피(水獺皮), 유수(留守) 광어, 병사(兵使) 청어, 군수(郡守) 해구(海狗), 현감(縣監) 홍어, 부서 찰방(察訪), 어사 숭어, 좌랑(佐郞) 병치, 대장(大將) 범치, 조 부장(部將) 조구, 비변랑(備邊郞) 청(靑)달내가오리, 금군(禁軍) 나졸(邏卒), 좌우 순령수(巡令手), 대원수(大元帥) 고래, 수피(水皮) 해구(海狗), 모조리, 원(黿) 참군(參軍) 남생이, 모래무지, 주부(主簿) 자래, 병어, 전어, 대구, 명태, 눈치, 준치, 삼치, 꽁치, 갈치, 물메기, 미끈덕 뱀장어, 정원사령(政院使令) 짜개사리, 돌 밑에 꺽지, 산 냇물의 중고기, 깊은 물에는 금잉어, 빛 좋은 피리, 망동이, 짱뚱이, 숭동이, 올챙이, 개고리, 송사리, 눈쟁이까지 그저 꾸역꾸역 들어와 대왕 전(前)의 복지(伏地) 청령(聽令)허니.

 

[아니리]

병든 용왕이 이만허고 내려다보더니마는, “짐이 경들을 본즉 용왕이 아니라 세상 팔월 대목장(場) 어물전(魚物廛) 도영수(都領首)가 되었구나. 병중에 내 입맛만 당그었지. 경들 중에 세상에 나가 토끼를 구해 과인의 병을 즉효(卽效) 헐 자 뉘가 있을꼬?” 좌우 면면상고(面面相顧)하고 묵묵부답(黙黙不答)이로구나.

 

[중모리]

용왕이 기가 막혀 또 탄식을 허는구나. “할고(割股) 사군(事君) 개자추(介子推)와 광초(誑楚) 망신(忘身) 기신(紀信)이는 죽을 임군 살렸으니 군신유의(君臣有義) 중할시고, 원통(冤痛)타 우리 수궁 만여지중(萬餘之衆)의 일충신(一忠臣)이 없었으니 어느 뉘라 날 살릴거나?” 자탄(自歎/自嘆)을 마잔허니

 

[아니리]

신자지도리(臣子之道理)로 저이들끼리 공론이 분운(紛紜)헐 제. “숭어 너 어떠허뇨?” “나는 세상에 나가고 싶다마는 횟감도 좋거니와 제찬(祭饌)으로 제일 위주(爲主) 허니 나갈 수 있나?” “도미 너는 어떠허뇨?” “춘삼월(春三月) 호시절(好時節)의 풋고사리 막 난 판에 왼통 찌개 거리로 나 죽기 싫다. 뉘 아들놈이 앉어 죽지 나가서 죽어야?” 이렇듯 서로 안 가기로만 작정허니,

 

[단중모리]

정언(正言) 잉어가 여짜오되 정언 잉어가 여짜오되, “세상이라 허는 곳은 인심이 소박(疏薄)허여 수궁 신하(臣下)가 얼른허면 잡아먹기 위주(爲主) 허니, 지혜 용맹 없는 자는 보내지 못하리라.” “수문장(守門將) 물메기가 어떠허뇨?” “물메기는 장수구대(長鬚口大) 허고 호풍신(好風神) 수염 좋으나 식량(食量)이 장이 넓어 조그막한 산천수(山川水) 요기감 얻으랴고 여기저기 다니다가 사립(簑笠) 쓴 저 어옹(漁翁) 사풍세우불수귀(斜風細雨不須歸)라. 입감 뀌어 던진 낚시 탐식(貪食)허여 집어먹고 단불요대(斷不饒貸) 죽게 되면, 세상의 이질(痢疾) 복질(腹疾) 배아피, 술병, 설사 난 듸 국 끓여 보(補)하기 약만 되니 보내지는 못하리라.” “군수(郡守) 해구는 어떠허뇨?” “해구는 신경(腎經)이 너무 좋아 호색(好色)을 허는 고로 색필망신(色必亡身)이라, 보내지 못하리라.” “하(鰕) 낭청(假郎廳) 새우는 어떠허뇨?” “낭청(郎廳) 새우는 용맹이 초등(超等)하여 뛰기는 잘 하오나 안정(眼睛)이 삼긴 것이 단명이라 보내지 못하리라.” 해운공 방게가 썩 나서며 살살 기어 복지주왈(伏地奏曰).

 

[아니리]

이놈은 중고제(中古制)로 아뢰난듸,

 

[중중모리]

“신의 고향은 세상이라, 신의 고향은 세상이라. 청림벽계(靑林碧溪) 산천수 모래 속의 잠신(潛身)허여 수십 년을 사올 적의, 월중퇴[月中兔] 망월퇴[望月兔] 안면이 있사오니, 소신을 보내시면 소신의 엄지발로 토끼 놈의 가는 허리를 덥썩 집어 잡어다 대왕 전의 바치리다.”

 

 

2. 별 주부

 

[아니리]

왕이 왈 “너는 십 각이 구존(具存)허여 걸음은 잘 걸으나, 인적이 얼른하면 퇴불여전(退不如前) 뒷걸음질을 잘하기로 당대사(當大事) 믿지 못하여 보내지 못하리라.” 이렇듯 공론이 미결(未決)헐 제,

 

[엇중모리]

영덕전(靈德殿) 뒤로 한 신하가 들어온다. 은목단족(隱目短足)이요 장경오훼(長頸烏喙)라. 국궁(鞠躬) 재배(再拜)허고 상소(上疏)를 올리거날,

 

[아니리]

그 상소 받아보니 별(鼈) 주부(主簿) 자래로서 그 상소에 허였으되, 황공복지(惶恐伏地) 신(臣) 진(進) 주상(主上) 전하(殿下) 하노이다. 신은 본시 수국 충신지후예(忠臣之後裔)로 추처낭중(錐處囊中)의 탈영이출(脫穎而出) 허든 모수(毛遂)의 재조(才操/才調)와 탄탄위아(呑炭爲啞) 허고 행걸어시(行乞於市) 허든 예양(豫讓)의 충성과 육국(六國)을 종합(從合/縱合)허던 소진(蘇秦)의 구변(口辯)과 맹획(孟獲)을 칠종칠금(七縱七擒) 허던 공명(孔明)의 지모(智謀) 없사오나 당차옥체미령지시(當此玉體靡寧之時) 하와 기감불충도보(豈敢不忠圖報) 허오리까? 차의성상지위령(此依聖上之威靈)과 무궁지조화(無窮之造化)로 광피사해(光被四海) 하시니 하왕불리(何往不利)며 하구부득(何求不得)으로 진세(塵世) 일개(一介) 퇴[兔]를 하난착래(何難捉來)리까? 복원(伏願) 성상(聖上)은 파탈(擺脫) 하생(下生) 불린지덕(不吝之德) 허시고, 즉령(則令) 소신(小臣)으로 사속출세(使速出世)케 하옵시면 진세 일개(一介) 퇴를 착지어정(捉至於庭) 하여 옥체(玉體) 평복(平復)하심을 신(臣) 소원야(所願也)로소이다. 왕이 왈, “영준지신(英俊之臣)이요, 충직지언(忠直之言)이라. 미재(美哉)라! 미재라! 오늘날 주석지신(柱石之臣)을 보았구나! 그러나 여 앉어 들으니 세상 양반께서 자래탕(湯)을 제일 별미로 안다 허니 나가서 죽으면 그 아니 원통허뇨?” 별 주부 황공대왈(惶恐對曰) “신이 비록 재주 없사오나, 목을 우무렸다 늘였다 진퇴(進退)를 맘대로 하옵고, 홍문연(鴻門宴) 번쾌(樊噲) 쓰던 도리 방패 같사옵고, 또한 수족이 너이오라, 강상의 둥덩실 높이 떠 망보기를 잘하와 인간 봉패(逢敗)는 없사오나, 해중지소생(海中之所生)으로 토끼 얼굴을 모르오니, 그 화상(畫像)이나 자세히 그려주옵소서.” 그 말이 옳다 허고,

 

[중중모리]

화공(畫工)을 불러라. 화공을 불러라. 화공 불러들여 토끼 화상을 그린다. 연(燕) 소왕(昭王) 황금대(黃金臺) 미인 그리던 화공. 남극 천자(天子) 능허대(凌虛臺) 일월(日月) 그리던 명화사(名畫師). 동정유리(洞庭琉璃) 청홍연(靑紅硯), 금수추파(錦水秋波) 거북 연적(硯滴), 오징어로 먹 갈아 양두(兩頭) 화필(畵筆)을 덤뻑 풀어 단청(丹靑) 채색(彩色)을 두루 묻혀 백릉설화간지상(白綾雪花簡紙上)의 이리저리 그린다. 천하 명산 승지(勝地) 간에 경개(景槪) 보던 눈 기려, 난초 지초(芝草) 왼갖 향초(香草) 꽃 따먹던 입 그리고, 두견(杜鵑) 앵무(鸚鵡) 지지 울 제 소리 듣던 귀 그려, 봉래(蓬萊) 방장(方丈) 운무(雲霧) 중의 내 잘 맡던 코 그리고, 만화방창(萬化方暢) 화림(花林) 중 뛰어가든 발 그려, 대한엄동설한풍(大寒嚴冬雪寒風) 방풍(防風)허든 털 그리고, 신농씨(神農氏) 백초(百草) 약의 이슬 털든 꼬리 그려, 두 귀는 쫑곳, 두 눈 도리도리, 허리 늘찐, 꽁지 묘똑, 좌편은 청산(靑山)이요, 우편은 녹수(綠水)듸, 녹수청산(綠水靑山)에 에굽은 장송(長松) 휘늘어진 양류(楊柳) 속, 들랑날랑 오락가락 앙그주춤 섰는 모양. 아미산월(峨眉山月)으 반륜(半輪)퇴들 이여서 더할쏘냐. 아나, 별 주부야 늬 가지고 나가거라.

 

[아니리]

토끼 화상(畫像) 간수(看守)할 제, 목을 쑥 빼어 뒷덜미에 넣고 딱 오무라노니, 물 한 점 젖을쏘냐? 왕이 어주(御酒)를 내려 허신 말씀. “경(卿)이 세상에 나가 토끼를 잡어 과인의 병을 즉효(卽效) 헐진대, 수국을 반분(半分)한들 무슨 한이 있을꼬?” 별 주부 황공대왈(惶恐對曰), “어쪘든 신의 충성 보옵소서.” 사배하직(四拜下直)허고, 저의 집 돌아와 이별을 허는듸

 

[세마치]

“여보소 마누라.” “예이.” “나는 봉명사신(奉命使臣)으로 토끼를 구하러 세상에 나가되 마누라를 잊지 못하고 가네. 이웃집 남생이란 놈이 나와 똑같이 생겼고, 그놈이 우멍하기 짝이 없으니, 대관절 가까이 붙이들 말소.” 별 주부 암 자래 거동(擧動) 보소. 물뿌리 같은 콧궁기로 숨을 쉬고, 녹두(綠豆) 같은 두 눈을 깜짝거리며 책(責)하여 이른 말이, “나리님 체(體) 위중허시고 연기로(年旣老) 중허시거날 소년(少年) 경박자(輕薄子)의 비루(鄙陋)허신 말씀으로 못 잊고 간다 허시니, 마음이 도리어 미안이오. 나라를 위하여 세상에 나가시면 조그막한 아녀자(兒女子)를 잊지 못하고 간단 말이 조정의 발론(發論)이 되면, 만조제신(滿朝諸臣)들의 웃음 될 줄을 모르시고 노류장화(路柳墻花) 같이 말씀을 허시니까?”

 

[아니리]

별 주부 대소(大笑)허며, “충신지자(忠臣之子)는 충신(忠臣)이요, 열녀지가(烈女之家)의 열녀(烈女)로다. 가중 마음이 이렇게 든든허니, 내 세상에 나가 토끼잡기 무슨 걱정이 될꼬? 내 만사를 잊고 다녀오리다.” 별 주부 암 자래 문밖에까지 나오며, “창망한 진세(塵世) 간(間) 부디 평안(平安)히 다녀오오.” “그러나 이웃집 남생이를 꼭 조심하렷다.”

 

3. 세상으로

 

[중중모리]

수정문(水晶門) 밖 썩 나서 경개 무궁(無窮) 좋다. 고고천변일륜홍(皐皐天邊一輪紅/皐皐天邊日輪紅) 부상(扶桑)의 둥실 높이 떠, 양곡(暘谷)의 잦은 안개 월봉(月峯)으로 돌고 돌아, 예장촌(豫章村) 개 짖고, 회안봉(回雁峯) 구름이 떠, 노화(蘆花) 날아서 눈 되고, 부평(浮評)은 물에 둥실 어룡(魚龍)은 잠자고, 잘새 훨훨 날아든다. 동정여천(洞庭如天)의 파시추(波始秋) 금수추파(錦水秋波)가 여기라. 앞발로 벽파(碧波)를 찍어 당겨, 뒷발로 창랑(滄浪)을 탕탕(蕩蕩), 이리저리 저리 요리 앙금 둥실 높이 떠 사면 바라봐. 지광(地廣)은 칠백(七百) 리 파광(波光)은 천일색(天一色) 천외(天外) 무산(巫山) 십이봉(十二峰)은 구름 밖에가 멀고, 해외 소상(瀟湘)은 일천(一千) 리 눈앞의 경개(景槪)로다. 오초(吳楚)는 어이허여 동남(東南)으로 벌였고, 건곤(乾坤)은 어이허야 일야(日夜)의 둥실 높이 떠, 낙포(洛浦)로 가는 저 배, 조각달 무관(武關) 속에 초(楚) 회왕(懷王)의 원혼(冤魂)이요, 모래 속에 가만히 엎져 천봉만악(千峯萬嶽)을 바라봐. 만경대(萬景臺) 구름 속 학선(鶴仙)이 놀아 있고 칠보산(七寶山) 비로봉(毗盧峯)은 허공에 솟아 계산파무울차아(稽山罷霧鬱嵯峨) 산은 층층 높고 경수무풍(鏡水無風)의 야자파(也自波) 물은 출렁 깊었네. 만산(滿山)은 울울(鬱鬱) 국화는 점점(點點) 낙화는 동동 장송(長松)은 낙락(落落) 늘어진 잡목(雜木), 펑퍼진 떡갈잎, 다리 몽동, 칡넝쿨, 머루, 다래, 으름넝쿨, 능수버들, 벚낭구, 오미자(五味子), 치자(梔子), 감과(柑果), 대추, 갖은 과목(果木) 얼크러지고 뒤틀어져서 구부 칭칭 감겼다. 또 한 경개를 바래봐. 치어다보니 만학천봉(萬壑千峰)이요, 내려 굽어보니 백사지(白沙地)라. 허리 굽고 늙은 장송 광풍(狂風)을 못 이기어 우줄우줄 춤을 출 제, 또 한 경개를 바라봐. 원산(遠山)은 암암(巖巖) 근산(近山)은 중중(重重) 기암(奇巖)은 층층(層層) 뫼산이 울어 천 리 시내는 청산(靑山)으로 돌고, 이 골물이 쭈루루루루 저골물이 콸콸 열의 열두 골물이 한데로 합수(合水)쳐 천방(天方)자 지방(地方)자 얼턱져 굽부져 방울이 버큼져 건너 병풍석(屛風石)에다 마주 쾅쾅 마주 때려 산이 울렁거려 떠나간다. 이런 경개가 또 있나, 아마도 네로구나 이런 경개가 또 있나.

 

[아니리]

그때여 별 주부는 운천경(雲千頃) 기어올라 사면을 살펴보니, 전후불견수목처(前後不見樹木處)의 분간(分揀)할 길이 전혀 없고, 허다(許多)히 기는 짐생 상면부지 허니, 토끼 얼굴을 알 수 있나, 한편을 바라본즉, 날짐생들이 모두 모아서 저희들끼리 상좌(上座) 다툼을 하고 노는듸, 봉황(鳳凰)새 나앉으며 허는 말이,

 

[중모리]

이내 한 말 들어 보소, “순(舜)인금 남훈전(南薰殿)의 오현금(五絃琴) 가지시고 소소구성(韶簫九成) 노래헐 제, 봉산(鳳山) 높은 봉(峰) 아침볕에 내가 날아 울음을 울어 팔백년 문물(文物)이 울울(鬱鬱)헐 제, 주(周) 문무(文武) 나 계시고, 만고(萬古) 대성(大聖) 공부자(孔夫子)가 내 앞에서 탄생허고, 천 길이나 높이 날아 기불탁속(飢不啄粟) 허여 있고, 영주산(瀛洲山) 높은 봉을 기엄기엄 기어올라 소상반죽(瀟湘斑竹) 좋은 열매 내 양식을 삼었으니 내가 어른이 아니시냐?”

 

[아니리]

까마귀 나앉으며, “그 다음 내가 상좌 앉을 일이 있소.” 부엉이 꾸짖어 허는 말이, “네 이놈 온 몸둥이 시커먼 늬가 어디 상좌를 헌단 말이냐?” 까마귀 들은 체도 아니 허고,

 

[엇모리]

“이내 근본 들어라, 이내 근본 들어라. 내 입부리가 길기는 월왕(越王) 구천(句踐)이 방불(彷佛)허고, 이 몸이 검기는 산음(山陰)땅 지내다가 왕희지(王羲之) 세연지(洗硯池)의 풍덩 빠져 먹물 들어 이 몸이 검어 있고, 은하수(銀河水) 생긴 후의 견우직녀(牽牛織女) 건네주고, 오난 길의 적벽강(赤壁江) 성희(星稀)헐 제, 남비(南飛) 둥실 떠 삼국(三國) 흥망(興亡)을 의론(議論)허고, 천하지(天下之) 반포은(反哺恩)을 내 홀로 알았으니 효도(孝道)는 나뿐이라, 아이고 서른지고 아이고 서른지고.”

 

[자진모리]

부엉이 허허 웃고, “늬 암만 그런데도 네 심정(心情) 불측(不測)허여 과붓집 남기 앉어 까옥까옥 또락또락 괴이(怪異)한 음성으로 수절(守節) 과부(寡婦)를 유인(誘引)허고, 네 소리 꽉꽉 나면 세상 인간이 미워라 돌을 들어 날리울 제, 너 날자 배 떨어지니 세상의 미운 놈은 너밖에 또 있느냐? 공동묘지나 찾어가지 이 좌석이 부당허다.”

 

[아니리]

까마귀 무색(無色)을 당해 나앉으며, “내 죄상(罪狀)이 그런다 허드라도 이 만좌(滿座) 중(中)에 그런 망신(亡身)이 어디가 있단 말이오?” 또 한편을 바라본즉, 그 곳에는 모다 길짐생들이 모여드는듸,

 

[단중모리]

소슬양풍석양춘(蕭瑟凉風夕陽春)의 여러 짐생 다 모인다. 공부자(孔夫子) 작춘추(作春秋) 절필(絶筆)허든 기린(麒麟)이며, 삼군(三軍) 삼영(三營) 거동(擧動) 시 천자(天子) 옥련(玉輦)의 코끼리, 옥경(玉京) 선관(仙官) 승필 허니 풍채(風采) 좋은 사자(獅子)로구나. 출림(出林) 풍종(風從) 표범이며, 비웅비표(非熊非豹) 곰이요, 복희씨(伏羲氏/伏犧氏) 양희생(養犧牲)의 길러 내든 노양(老羊), 산양, 창해력사(倉海力士) 박랑사(博浪沙) 저격(狙擊)허든 다람이며, 강수동류원야성(江水東流猿夜聲) 슬피 우는 잔나비, 꾀 많은 여우, 뿔 좋은 사슴, 돈피, 사피(斜皮), 산양, 노루, 날담부, 길담부, 날랜 토끼, 너구리, 오소리, 멧돝까지 모두 다 모일 적의 이런 장관이 또 있느냐?

 

[아니리]

“자 좌중(座中)에 통할 말 있소. 우리가 연년(年年)이 앉어 노는 자리에 상좌 없어 무미(無味)허고, 석양쯤 되면 어른 존장 몰라보고 서로 물고, 차고, 뜯고, 수라장이 벌어지니, 오날은 연치(年齒)를 따져 상좌(上座) 한 분으로 모셔놓고 좀 규모 있게 놀다 갈립시다.” “그 옳은 말씀이오. 그러면 우리가 나이 자랑을 해 봐야제, 저기 장(獐) 도감(都監) 노루는 언제 났소?” 노루가 깡짱 뛰어 나앉더니, 나이 자랑을 허것다.

 

[중모리]

“이내 나이 들어 보소. 이내 나이를 들어 보소. 기경선자(騎鯨仙子) 이태백(李太白)이 날과 둘이 동접(同接)하야 광산(匡山) 십년(十年) 글을 짓다, 태백은 인재로서 옥경(玉京)으로 승천(昇天)허고, 나는 미물(微物) 짐생으로 이미 미천(微賤)허게 되었으나, 태백과 날과 연갑(年甲)이 되니 내가 어른이 아니시냐?”

 

[아니리]

달(獺) 파총(把摠) 너구리 썩 나앉더니마는, “자네 나이 들어 보니 내 큰아들하고 벗 못 하게 생겼네.” “아니 그러면 달 파총은 언제 났는가?”

 

[진양조]

“이내 나이 들어 보소, 이내 나이를 들어 보소. 동작대(銅雀臺) 높은 집이 좌편(左便)은 청룡각(靑龍閣)이요, 우편(右便)은 금봉루(金鳳樓)라. 이교(二喬)의 뜻을 품고 조자건(曹子建)의 글씨를 빌어 동작대부(銅雀臺賦) 운(韻)허든 조맹덕(曹孟德) 조부(祖父)와 연갑(年甲)이 되니 내가 상좌(上座)를 못 하겼나?”

 

[아니리]

멧돝이 꺼시렁 눈을 끔적끔적거리고 나발 같은 주둥이를 이리저리 두르고 입맛을 쩍쩍 다시며 나오더니마는, “자내 나이 들어 보니 내 큰손자하고도 벗 못 하것다.” “아니 그람 저(猪) 낭청(郎廳)은 언제 나셨소?” 멧돝 나앉으며 허는 말이,

 

[중중모리]

이내 나이 들어봐라, 이내 나이 들어 보소. “한(漢)나라 사람으로 흉노국(匈奴國)에 사신 갔다, 위국충절 십구 년에 수발(鬚髮)이 진백(盡白) 허여 고국산천(故國山川) 험한 길 허유허유 돌아오던 소(蘇) 중랑(中郎)과 연갑(年甲)이 되니 내가 상좌(上座)를 못 하겠나?” 토끼가 듣고 나앉으며, 토끼 듣고 나앉으며. “재 낭청(郎廳)도 내 아랠세?”

 

[자진모리]

“한광무(漢光武) 시절(時節)에 간의대부(諫議大夫)를 마다허고 부운(浮雲)을 차일(遮日) 삼고 낚시질 힘써 허든 엄자릉(嚴子陵)의 시조(始祖)와 연갑(年甲)이 되니 내가 상좌(上座)를 못 하겠나?”

 

[아니리]

“그라면 그 토(兔) 선생(先生)이 상좌(上座)로 앉으시오.” 토끼를 상좌(上座)로 앉혀노니, 체소(體小)한 데다가 이놈이 경솔(輕率)하기 짝이 없어 앞발로 귀를 떨고 야단이 났는듸, 때마침 호랭이가 한 삼사일 주린 놈인듸, “내가 어디로 가서 이 주린 구복(口腹)을 채울꼬?” 하고 먹이를 찾으로 돌아다니는 판인듸, 마침 이놈들을 만나노니 어찌 반갑든지 그저 쏜 살 들어오듯, 수르르 어헝 으르르르르. 달려드니 그저 좌우 짐생들이 똥오줌을 벌벌 벌벌 싸며, “아이고 장군(將軍)님! 어디 갔다 인자 오시오?” “음! 너 이놈들 지금 무엇들 하고 있느냐? 대관절 너이들이 뭣을 하고 있기에 나를 이렇게 시장케 했느냐?” 토끼 나앉으며 “애 저이들끼리 상좌(上座) 다툼을 하고 놉니다.” “네 이놈들 차산(此山) 중의 어른은 나 하나뿐인듸, 너희들끼리 상좌(上座)니 중좌(中座)니 하좌(下座)니 허고 논단 말이냐?” “아이고 장군님, 장군님은 용맹이 하도 출천(出天)허신께 어제 나셨더라도 그냥 상좌(上座)로 앉으시오. 그란디 그 속이나 알게 생신(生辰)이나 좀 압시다, 대관절 언제 나셨소?” “글랑 그리 허여라.”

 

[중모리]

“이놈들 내 나이 들어봐라. 너 이내 나이를 들어 봐라. 혼돈미분(混沌未分) 태극(太極) 초(初)의 사정없이 넓은 하늘 한편 짝이 모자라야 광석 따듬어 하날을 때우시던 여왜씨(女媧氏)와 연갑이 되니 내가 어른이 아니시냐?” 으르르르릉 어헝 허고 달려드니, 좌우 짐생들이 깜짝 놀래며, “장군님 상좌(上座)로 앉으시오.”

 

[아니리]

호랭이가 상좌로 앉고, 살찐 맷돝, 노루, 사슴, 너구리, 오소리 등을 요구감 내 놓고, 옹굴지게 논일 판인듸, 이때의 별 주부는 한편에 은신(隱身)허여 이 광경을 보고, “저렇게 많은 짐승들이 모였는듸, 어찌 토끼가 없을쏘냐? 어쩠든 불러 볼 밖에 수가 없다.” 자래가 토끼를 부르랴고 헐 제, 수로만리(水路萬里) 거친 파도를 아래턱으로만 밀고나와 어찌 뻣뻣 회불러 논 것이 토(兔) 짜가 호(虎) 짜로 살짝 미끄러졌것다. “저기 저기 토 토 토 호 생원(生員)!” 허고 불러노니, 첩첩산중(疊疊山中)에서 호랭이란 놈이 생원 짜 말 듣기는 전후(前後) 불견(不見) 초문(初聞)이라. 상좌(上座)로 앉고 보니 즉시 생원으로 존칭(尊稱)이 되는지라. 이 말이 어찌 반갑든지 만나보기로 작정을 하고 내려올랴고 허는듸, 거기 있는 짐생들한테 당부를 허것다. “네 이놈들 저 밑에서 나를 찾는 손님이 계시니 그 손님을 맞이해 올 때까지 여기 가만있어야 망종이제, 너 이놈들 한 놈이라도 간 놈이 있으면, 돌아온 모음 통에 사지(四肢)를 찢어 방(榜)을 내걸고 팔족(八族)을 멸하리라! 반가운 손님을 맞아들인다는 것은 공부자(孔夫子)의 도리니라. 그 손님을 모시고 올 때까지 여그 가만히 있으렷다.” 당부를 해 놓고 내려오는디, 이놈이 쓸고 내려오든가 보더라.

 

[엇모리]

범 나려온다, 범 나려온다. 장림(長林) 깊은 골로 대 한 짐생이 내려온다. 몸은 얼쑹덜쑹, 꼬리는 잔뜩 한 발이나 넘고, 누에머리를 흔들며, 전동 같은 앞다리, 동아 같은 뒷발로, 양귀 찌어지고, 새 낫 같은 발톱으로 잔디 뿌리 왕(王)모래를 차르르 흩으며, 주홍(朱紅) 입 떡 벌리고 어리렁 허는 소리 태산(泰山)이 무너지고, 땅이 툭 꺼지난 듯, 자래 정신없이 목을 움추리고 가만히 엎졌것다.

 

[아니리]

호랭이 내려와 사면을 살펴보며, “거 뉘가 날 불렀나? 근래에 귀 밝은 것이 장 우환(憂患) 되드라.” 잔말을 허여 가며, 발밑을 살펴보니, 꼭 쇠똥 말라진 것 같은 것이 있것다. “이것이 날 불렀나? 꼭 도리방석 같이도 생겼고, 아니 이것이 목기(木器)인가? 목기 같으면 굽이 있을 것인디, 그도 아니고, 아 이것이 방구부챈가? 방구부채 같으면 자리가 있을 것인디 그도 아니고, 오 이것이 하느님 똥이로구나. 하느님 똥 먹으면 장생불로(長生不老)헌다더라.” 크나큰 발로 자래 복판을 짠득이 눌러노니 자래가 못 젼듸어, “게가 뉘라시오?” “아이고 요것이 나보고 통성명(通姓名)을 허잔다. 그래 나는 백수지장(百獸之長) 호 생원이다. 너는 무엇이냐?” 자래가 호 생원이란 말을 듣고 자초(自招) 재화(災禍)로 잘 죽는구나. 어찌 무섭고 겁이 나든지 바로 제 이름을 대 버리난듸, “예, 나는 남해(南海) 수국(水國) 자래 새끼요.”

 

[중모리]

호랑이 반겨 듣고, “얼씨구나 내 복이야, 얼씨구나 내 복이야. 내 평생 먹은 마음 왕배탕을 원했더니 자래라니 먹어보자.” 자래가 먹자는 소리에 기겁(騎劫)허여, “아이고 소(小)는 자래 아니오.” “그러면 무엇이냐?” “먹고 죽는 철남생이요.” “남생이란 말이 더욱 좋다. 습개(濕疥)에는 단약(單藥)이요, 치담(治痰) 치습(治濕) 헌다 허니 약으로만 먹어보자.” “아이고 내가 두꺼비오.” “두꺼비란 말이 더욱 좋다. 너를 산 채 불에 살어 술에 타서 먹고 보면 만병(萬病) 회춘(回春) 명약(名藥)이라더라. 그저 먹어보자.” 으르릉, 자래가 더욱 기가 막혀 속으로 탄식(歎息)헐 제, “못 살것네, 못 살것네. 이제는 꼭 죽었네. 내의 충성이 부족(不足)턴가, 이 죽엄이 웬일이냐? 나 죽기는 설찮으나 영덕전(靈德殿) 병든 용왕(龍王) 어느 뉘라 살려 주며 옥빈홍안(玉鬢紅顔) 젊은 처자 뉘라 의탁(依託)을 허잔 말이냐?” 슬피 통곡(痛哭/慟哭)으로 울음을 운다.

 

[아니리]

아서라, 내가 기왕(旣往) 죽을 배 있어서는 패술이나 마지막 써 볼 밖에 수가 없다. 움친 목을 길게 빼어 고성(高聲)으로 허는 말이, “네 이놈 늬가 내 성명을 잘 모르리라. 나는 남생이도 아니요, 두꺼비도 아니요, 남해(南海) 수궁 자랑 별 나리로다.” 호랑이 무식허여 자래 ‘별(鼈)’ 모르고, “별 나리, 별 나리, 그것 참 풍신(風神) 보고, 직품(職品) 들으니 안암밖으로 꼴불견이로구나. 허, 그렇다면 별 나리께서 여기를 무엇허러 오셨으며, 모가지는 들어갔다 나왔다 으째 그리 방정맞게 삼겼는고?” “너 이놈 늬가 네 목 근본(根本)을 잘 모르리라.”

 

[자진모리]

“우리 수궁 퇴락(頹落)허여 영덕전(靈德殿) 높은 집을 천여 간(間) 지었으되, 추녀 끝 돌아가다, 한발 자칫 미끄러져 어허 목으로 내려져 이 모양이 되었더니, 명의(名醫)다려 문의(問議)를 허니 호랭이 쓸개를 열 보만 먹으면 즉효(卽效) 약(藥)이 된다 허기에, 우리 수궁서 호랭이 귀신을 잡어 타고 함경도(咸鏡道)로 내려가 백두산(白頭山) 호랑이 잡아먹고, 서울로 집어 올라 삼각산(三角山) 호랑이 잡아먹고, 이 산중 들어가 너를 보니 반가워라. 너 하나만 먹었으면 열 번을 다 채우니 어찌 아니 반가우랴? 호랑이 귀신 거 있느냐? 비수(匕首) 검(劍)으로 호랑이 배 밧비 가르고 쓸개 내오너라! 식기 전에 맛을 보자!” 이렇듯 말을 허고 앙금앙금 앙금앙금 앙금거려 달려들어 모진 이빨로 호랑이 뒷다리 가운데 달랑달랑한 놈을 꽉 물고 어찌 뺑뺑이를 처 놨던지, “아이고 조끔만 놓으시오! 제일 오장(五臟)이 땡겨 못 살것소. 쪼끔만 노시오!”

 

[아니리]

그 용맹(勇猛)이 출천(出天)한 호랑이가 꼼짝 딸싹 못 허고, 그대로 엎드러져 한바탕 비는듸,

 

[진양조]

“비나이다, 비나이다. 별 나리 전의 비나이다. 나는 오대(五代) 차(次) 독신(獨身)이오. 삼십이 넘어 사십이 장근(將近)토록 슬하(膝下) 일점혈육(一點血肉)이 없어, 내가 만일 이 자리에서 죽게 되면 우리 가문(家門)은 영 문 닫쳐 버리오. 차라리 이것 때고 내 왼 눈이나 빼 잡수시오.” “이놈 안 될 말이로구나.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 허니 잔말 말고 쓸개만 내놓아라.” “아이고, 여기를 놓아야 쓸개를 드리지요. 제발 덕분의 살려를 주오.”

 

[아니리]

이렇듯 통곡을 허니 자래 생각건대, 이만 했으면 이놈을 반 이상은 휘어 놓았것다. 너무 오래 가지고 있어도 이놈한테 힘이 모자라 도리어 봉변(逢變)을 볼까 싶어 그저 실그머니 놓고 뚝 떨어져노니, 이놈이 그저 도망(逃亡)을 허는듸,

 

[휘모리]

호랑이 뭉크렀다, 벌쩍 뛰어 달아난다. 큰 싸움의 화살 나듯 조총(鳥銃)의 철환(鐵丸) 나듯 초가성(楚歌聲)의 놀랜 패왕(霸王) 궤위남출(潰圍南出) 허난 격(格)으로 태산(泰山)을 넘어 강수(江水) 지내여 인홀불견(因忽不見) 간 곳 없다.

 

[아니리]

겁짐에 어찌 뛰었든지, 해남(海南) 관(館)머리에서 이 지경(地境)을 당했는듸, 의주(義州) 압록강(鴨綠江) 변(邊)까지 뛰었제. 이때의 별 주부난 곰곰이 생각헌즉 내의 충성(忠誠)이 부족하야 아마 산신령(山神靈)이 변화(變化)하여 이리 된 것 같어 산제(山祭)나 착실히 모시리라 생각허고 산제 지낼 채비를 허는듸,

 

[중모리]

반송(盤松) 가지 꺾어 내려 광석(廣石) 암상(巖上)을 솰솰 쓸고, 추풍낙엽(秋風落葉)으로 자리 삼어 정히 깔고, 떨어진 산과(山果) 목실(木實) 삼색(三色)으로 주어다가 좌홍우백(左紅右白) 갈라 괴고, 맑고 맑은 석간수를 제주(祭酒) 삼어 부어 놓고 석하(石下)의 괘좌(跪坐)허여 분향재배(焚香再拜) 독축(讀祝)을 허였으되,

 

[축문]

“갑신(甲申) 팔월 계유(癸酉) 삭(朔) 초칠일(初七日) 기묘(己卯) 남해(南海) 신 별 주부 감소고우(敢昭告于) 산신(山神) 국수(國首) 전(前) 하노니다. 남해 용왕(龍王)이 우연(偶然) 득병허여 백약(百藥)이 무효(無效)트니, 명의(名醫)가 지시(指示)허되 진세(塵世) 퇴 간(肝)을 쓰면 비단(非但) 신병지거근야(身病之去根也)라. 겸차(兼且) 연년익수(延年益壽) 운운(云云) 고(故)로 도월(渡越) 원해(遠海) 삼만 리 하야 신궁자도 차산(此山)의 비금주수(飛禽走獸)가 만산(滿山) 왕래(往來)이 본시 해중지소생(海中之所生)으로 난변(難辨)퇴자 허여 자감민박지경(玆敢憫迫之情)을 대강(大綱) 앙고(仰告)하오니 복걸(伏乞) 신령(神靈)은 하감(下鑑) 주부지충(主簿之忠) 하사 차산 중(中) 노퇴 일 수(首)를 즉이(卽以) 치국 하옵심을 근이청작(謹以淸酌) 지천우신(祗薦于神) 복유(伏惟) 상향(尙饗).”

 

4. 토끼

 

[아니리]

재배허고 일어나 좌우를 살펴보니 지성이면 감천으로 대차 토끼 한 마리가 내려오는듸,

 

[중중모리]

그임 청택 요임[瑤林] 중(中), 그임 청택 요임 중 한 짐생이 내려온다. 저 짐생 생긴 모양 정신이 씩씩허고 이목(耳目)이 정즉허여 월중퇴 기상이라. 자래 목의 화상 내어 토끼보고 화상 보니 월중퇴 망월퇴 안면(顔面)이 있구나. “옳다, 저것 토끼로다 아까는 내가 늦게 붙여 호랑이 만나 봉패(逢敗) 보았으나, 이번은 되게 붙여 불러 보리라. 저기 저기 퇴 퇴 퇴 퇴 생원.” 허고 불러노니, 토끼가 듣고서 반긴다, 토끼가 듣고서 반긴다. “거 뉘가 날 찾나, 거 뉘가 날 찾나? 날 찾을 이 없건마는 그 누구가 날 찾어? 기산(箕山) 영수(潁水) 소부(巢父) 허유(許由) 세이(洗耳) 가자고 날 찾나? 계명산(雞鳴山) 퉁소 불어 팔천(八千) 병(兵)을 흩으랄 제 풍의 청병(請兵) 날 찾나? 도화(桃花) 유수(流水) 무릉(武陵) 가자 거주촉객(舉酒屬客)이 날 찾아? 건넌 산 과부(寡婦) 토끼가 연분을 맺자고 날 찾어.” 이리로 깡충 저리로 깡충 거덜거리고 내려온다.

 

[아니리]

토끼는 위에서 내려오고, 자래는 밑에서 올라가고 서로 찌웃짜웃허다가 이마와 코를 마주 처노니, “아이고, 이마야!” “아이고, 코야!” “여보, 초면(初面)에 남의 이마는 어찌 닿소?” “오, 오비이락(烏飛梨落)이오. 인역 이마 아픈 줄만 알았지, 남의 코 아픈 줄은 모른단 말씀이오?” 자래 호랭이에게 놀랜 터라, 목을 우무리고 넙죽 업졌으니, 토끼 보고 허는 말이, “이것 두리방석 같다. 한번 앉어보자!” 팔짝 뛰어 앉어노니, 자래라 허난 게 등을 누르면 목이 나오것다. 목이 실그머니 나오니 토기 깜짝 놀래, “왔다, 이것 무엇이냐? 그만 나오시오. 그만 나와. 어떤 놈이 도리줌치 속에 배암을 잡어 넣었다. 이제 나오나 보다.” 자래 못 견디어 등을 뜰썩허니 토끼 팔짝 자빠지며, “아따, 그놈의 나무접시 같은 것이 등 심은 대단허다.” “거 뉘라시오?” 토끼 대답허되, “예, 나는 천상(天上) 월궁(月宮)의 이음양(理陰陽) 순사시(順四時) 하며, 대소월(大小月)을 가림하며, 회초(晦初)를 분별(分別)허든 예부상서(禮部尙書) 월중퇴려니, 도약(擣藥) 취중(醉中)의 장생약(長生藥) 그릇 짓고 상제(上帝) 전(前) 득죄(得罪)하여, 차산(此山) 중의 적하(謫下)함에, 세상에서 이르기를 퇴 공(公) 선생(先生)이라! 대접(待接)을 받고 사요. 게는 뉘라시오?” “예, 나는 남해 수궁 자랑 별 나리러니 즉문진세지서명 하고 불원천리이래(不遠千里而來)렷다. 피차(彼此) 이리 만나기는 천만몽외(千萬夢外)요, 구앙(久仰) 성화(聲華)려니 하산경지 매하달이오.” 토끼 욕 먹난지 모르고, “거 우리 두 문장(文章) 만났으니 문자 져룸이나 한번 합시다.” “그럽시다.” “피차(彼此) 이리 만나기는 출가외인(出嫁外人)이요, 양상화매(兩相和賣)요, 법지불행(法之不行)은 장고(杖鼓/長鼓) 통 속이요, 막비왕토(莫非王土)요, 우이독경(牛耳讀經)이요, 여필종부(女必從夫)요, 숙불환생(熟不還生)이요, 여담절각이요, 세모방천(防川)이요, 아가사창(我歌査唱)이요, 어동육서(魚東肉西)요, 홍동백서(紅東白西)요, 좌포우혜(左脯右醯)요, 친사돈통가문(親査頓通家門)이요, 일구이언(一口二言)허는 자(者)는 삼천억부지자(三千億父之子)요.” 토끼 욕을 많이 먹건마는 모르고, “그 나도 유식(有識)허려니와 별 주부도 문장이오그려.” “그런듸 퇴 서방(書房) 어찌 왔소?” “아, 불르기에 왔지요. 별 주부는 어찌 왔소?” “세상이 좋다기로 구경차(次)로 나왔으나 별(別) 흥미(興味)를 모르겠으니 퇴 공(公) 좀 일러주오?” 토끼란 놈, 이 말을 듣고 지 몸을 자층 추어 자랑삼어 허는 말이,

 

[중모리]

“이내 몸이 한가(閑暇)하야 일모(日暮) 황혼(黃昏) 잠이 들어 월출(月出) 동령(東嶺) 잠을 깨어 진세(塵世) 간(間) 배회(徘徊)헐 제, 임자 없는 녹수청산(綠水靑山) 내 집 삼어 왕래(往來) 값없는 산과(山果) 목실(木實) 양식(糧食) 삼어 포식(飽食)허니 신여부운무시비(身與浮雲無是非)라. 명산(名山) 찾어 완경(玩景)헐 제 여산동남오로봉(廬山東南五老峰)과 진국명산(鎭國名山) 만장봉(萬丈峯) 첩고(疊高) 무산(巫山) 십이봉(十二峰) 봉래(蓬萊) 방장(方丈) 영주산(瀛洲山) 태산(泰山) 숭산(嵩山) 화산(華山)이며, 만악의 천태산(天台山) 아미산(峨眉山) 수양산(首陽山) 동(東) 금강(金剛) 서(西) 구월(九月) 남(南) 지리 북 향산(香山) 가야산(伽倻山) 속리산(俗離山)을 구경허고 무산(巫山)의 낙조(落照) 경(景)과 양곡(暘谷)의 일출(日出) 경(景)을 역력히 보았으니, 등태산(登太山) 소천하(小天下) 공부자(孔夫子) 대관(大觀)인들 이여서 더할쏘냐? 안기생(安期生) 적송자(赤松子)도 내의 제자 삼어 두고 장생불로(長生不老) 가르치며, 이따금 심심하면 종아리 땅땅 치니, 이내 호강이 어떠헌가?”

 

[아니리]

자래 그 말 반겨듣고, “참 좋은 말씀이오! 세상의 제일(第一)가는 호걸(豪傑)이오그려. 그러나, 퇴 선비 상(相)을 잠깐 살펴보니 얼굴은 일색(一色)이나 미간(眉間)의 화망(火亡) 살(煞)이 들어 죽을 액(厄)을 꼭 여덟 번 격끄겼소.” “허, 여보쇼. 내가 설령 그런다 허드라도 그 안전에 그런 박절(迫切)한 말이 어디 있단 말이오?” “화(火)를 내실 것이 아니라 내가 잠깐 토(兔) 공(公) 상(相)을 일러줄 테니 들어 보시오.”

 

[자진모리]

“일개(一介) 한(寒)퇴 자네 몸이 삼촌(三春) 구추(九秋) 다 보내고, 대한(大寒) 엄동(嚴冬) 설한풍(雪寒風) 만학(萬壑)의 눈 쌓이고 천봉(千峯)의 바람 칠 제, 화초(花草) 목실(木實) 바이 없어 어둑한 바우 틈, 벗 없이 앉은 모냥, 채운편월 무관수(武關囚)의 초(楚) 회왕(懷王)의 고생(苦生)이요, 일월(一月) 고초(苦楚) 북해상(北海上)의 소(蘇) 중랑(中郎)의 곤궁(困窮)이라. 주려 죽을 자네 몸이 삼동(三冬) 고생(苦生)을 다 보내고, 벽도홍행(碧桃紅杏) 춘(春) 이월(二月)의 주린 구복(口腹)을 채우랴, 심곡(深谷) 심산(深山) 기다릴 제, 골골이 묻힌 것 목다래 엄 착귀요. 지속으로 도난 것 사냥개 몰이꾼 험산곡(險山谷) 있난 것은 토끼 였난 아호(餓虎)로다. 송하(松下)의 숨은 것 잘 놓는 저 포수(砲手) 오난 토끼를 노랴 허고 왜물(倭物) 조총(鳥銃) 약(藥)을 잡어 대돈잡이 철환(鐵丸) 넣어 불 박어 손의 들고 은근이 앉졌다가 토끼 앞의 당도(當到)허면 한 눈 찡그리고 반(半)만 일어서면 불빛에 불 반짝 쾅 허 총 노니, “아익 그런 총(銃)소리 내지 마오. 우리 삼대가 총으로 다 망(亡)했소.” “그라면 어디로 갈꼬 그라면 어디로 갈꼬, 들로 내려가제.” “은(殷) 왕(王) 성탕(成湯) 가신 후의 그 그물 뉘가 들며 들로 나려 토끼 은신(隱身) 숨풀 속의 막대로 뛰다리며 워리 오호 쫓난 것 술 먹은 초동(樵童)이라. 그대 신세(身世/身勢) 생각허면 적벽(赤壁) 강산(强酸) 전패 허든 조맹덕(曹孟德)의 정신(精神)이라. 적은 눈 부릅뜨고 짜른 꽁지 뒷 찌고 험산고산 절벽상(絶壁上) 바삐 바삐 달아날 제, 목궁기 쓴 내 나고 밑궁기 조총(鳥銃) 놀 제 조생모사(朝生暮死) 자내 신세 한가(閑暇)허다고 뉘라 허며, 만산(滿山) 풍경(風景) 좋다헌들 무슨 정(情)의 완월(玩月)? 무슨 정의 유산(遊山)헐까? 안기생 종아리 때렸단 그런 거짓말일랑 날다려 다시 마소.”

 

[아니리]

토끼 듣고 넉이 없어, “여보 그러면 수궁 풍경(風景) 소식(消息) 좀 들어봅시다. 내 세상은 이렇게 복잡(複雜)허려니와 수궁 풍경 좀 들어봅시다.” “말이라 허는 것 들으면 병(病)이지요. 이러게 팔난(八難) 세상(世上) 살든 자네가 수궁 풍경 소식 듣고 가기로 하면 내가 한 등짐 헐 터이니 부질없제.” “아 주공, 그 붕우유신(朋友有信)이란 말도 있고 추우강남(追友江南)이란 말이 있는듸 벗은 몰라보고 혼자만 알려코져 허니 참 무식(無識)하기 짝이 없구만.” 별 주부 속으로 은근이 좋아라고, “오 그렇다면 내 이를 테니 들어 보시오.”

 

[진양조]

“우리 수궁 장관(壯觀)이라. 천양지간(天壤之間)의 무변대해(無邊大海) 영덕전 높은 집을 천여 단 지였으되, 호박(琥珀) 기둥 황금(黃金) 주추 산호주로 난간(欄干/欄杆) 허여 수궁(水宮) 패궐(貝闕)은 영롱(玲瓏)허여 삼광(三光)을 응(應)허였고, 곤의수상(袞衣繡裳) 황홀(恍惚)허여 오복(五福)을 갖췄으니 우리 용왕(龍王) 즉위(卽位)허사 만조 귀시허고 백성이 앙덕(仰德)이라. 앵무금잔(鸚鵡金盞)의 천일주(千日酒) 천빈옥반(玉盤) 의 불로주(不老酒) 빈사과를 싫도록 자신 후(後)의 수궁 미색(美色) 수십(數十) 명(名)을 좌우(左右)로 늘어세우고 자언거수승거산(自言居水勝居山)이라. 요지(瑤池)로 들어가니 칠백(七百) 리(里) 군산(君山)들은 무산(巫山)에 빗겨 있고 삼천사(三千沙) 해당화(海棠花)는 약수(弱水)에 붉어있다. 해내(海內) 태평(太平)허여 월청명(月淸明) 추강상(秋江上) 어적(漁笛) 소리 화답(和答)하며, 경수(涇水) 위수(渭水) 회수(淮水) 낙수(洛水) 혹거혹래(或去或來) 노닐 적에, 청풍(淸風) 적벽(赤壁) 소자첨(蘇子瞻)과 애월(愛月) 허던 태백(太白)이도 수궁 풍경 보았으면 세상에 머물쏘냐? 원컨대 퇴 선생도 나 따라 수궁 가면 늠름한 저 풍신(風神)의 용호대장(龍虎大將)이 틀림없으니 무실차기(無失此機) 따라가세.”

 

[아니리]

토기 듣고 허난 말이, “수궁 천 리 먼먼 길에 일거소식(一去消息) 끊어지면 그 아니 원통(冤痛)허오.” 자래 듣고 또 다시 구변(口辯)을 내는듸,

 

[중중모리]

“수궁 천 리 머다 마소. 수궁 천 리 머다 마소. 맹자(孟子)도 불원천리(不遠千里) 양(梁) 혜왕(惠王)을 가보았고, 궁팔십(窮八十) 강태공(姜太公)도 은국(殷國)을 이별(離別)허고 멀고 먼 기주(岐周) 가서 문왕(文王) 만나 귀의 되고, 백리해(百里奚)도 목공(穆公) 따라 진(秦)국의 재상(宰相) 되고, 한신(韓信)도 소하(蕭何) 따라 한(漢)나라 대장(大將) 되니, 원컨대 퇴 선생도 염려(念慮) 말고 따라가세, 염려 말고 따라가세.”

 

[아니리]

“그 원일견지(願一見之) 수궁이라. 그렇다면 갑세.” 따라가기로 작정이 되어 내려가는듸,

 

[중모리]

자래는 앞에서 앙금앙금, 토끼는 뒤에서 깡총깡총, 원로(遠路) 수변(水邊)을 나려갈 제, 건넌 산 바우 틈에 깊이 묻힌 여우 썩 나서며, “이에, 토끼야!” “워야?” “너 어듸 가느냐?” “오냐, 나 별 주부 따라 수궁 간다.” “수궁(水宮)은 뭣 하러 가느냐?” “훈련대장(訓鍊大將) 허러 간다.” “허허, 자식 어린지고, 너희들 수작(酬酌)헐 제, 내 근처(近處) 은신(隱身)허여 다 들었다. 가지 말어라, 가지 마라. 수궁에 들어가면 칼 잘 쓰난 위인(衛人) 형가(荊軻) 역수(易水) 한풍(寒風) 슬픈 소리 장사일거(壯士一去) 제 못 왔고, 소상강(瀟湘江) 모운(暮雲) 간(間)의 제녀(帝女)도 울어 있고, 연년(年年) 춘초(春草) 푸른 곳의 왕손(王孫)도 귀불귀(歸不歸)라. 토끼 너도 수궁 가면 돌아오지를 못허리라. 수궁인지 위방(危邦)이라, 위방불입(危邦不入)이요, 난방불거(亂邦不居)라. 가지 말어라, 가지를 마라. 내말 듣고는 가지를 마라.”

 

[아니리]

“앗, 차차차 하마트면 큰일 날 뻔허였고, 별 주부 잘 가시오. 나는 오든 길로 돌아가며 맹감이나 따 먹지.” 토끼 깡총깡총 돌아가니 별 주부 기맥혀, “여보 토 공, 그 가기는 가소만은 내 말 한자리만 듣고 가소. 그런 게 아니라, 저 녀석이 일전(日前)에 남해(南海) 수면으로 가재 사냥 내려 왔다, 실족(失足)하여 물에 빠져 거의 죽게 되었을 제, 때마침 우리 수궁 대장 범치 세상 구경 나갔다가 저 녀석을 건져 업고 수궁으로 돌아오니, 용왕이 보시고 풍신(風神)이 점잖다고 호반(虎班) 대장(大將) 허라 허니 마다허고, 궁중(宮中)에 무임(無任)으로 있다가, 저 방정맞은 것이 시녀(侍女) 간통(姦通)을 해서 어전(御前) 곤장(棍杖) 삼십 도(度)에 축출(逐出)허여 쫓았더니, 저 놈이 남도 못 되게 방해를 치네그려. 그러니 올라면 오고 말라면 말소.” 토끼 생각건대 대차 여우 심사를 아는지라. 그럴 법도 하것다. “여보 별 주부 같이 갑세. 하여튼 남해 수변 당도허여 물이 발목물만 지면 가려니와 허리 물만 져도 내가 못 가제.” 물은 얇은 곳이니 어서 내려가세.

 

[진양조]

남해(南海) 수변(水邊) 당도(當到)허니 세우(細雨) 중의 돛을 달고, 도용도용 떠난 배는 한가(閑暇)한 초강어부(楚江漁父) 풍월(風月) 실로 가는 밴가? 범피창파(泛彼蒼波) 높이 떠서 청강(淸江) 흥미(興味) 무한경(無限景)을 백구(白鷗)다려 문답(問答)을 헐 저, 소소한풍(蕭蕭寒風) 추야월(秋夜月)의 울고 가는 저 기럭아, 너 어듸로 행(行)하느냐? 소상(瀟湘) 동정(洞庭) 어데 두고 여관한등 잠든 나를 늬가 어이 깨우느냐? 여산동남 물결이 위르르르 출렁출렁.

 

[아니리]

“아이고 이 물 보아라! 바가지 없는 때 물 쓰고 꼼짝달싹 없이, 어복고혼(魚腹孤魂)이 되것구나. 여 별 주부 잘 가시오. 네 수궁 들어가서 용 되야도 못 가것네.” 도로 깡총깡총 올라가니, 별 주부 이제는 저놈의 자식을 한 번 질러 볼 밖에 수가 없다. 호령을 허는듸,

 

[자진모리]

“아따, 이놈아 잘 가거라. 벼슬하러 가자 허니 물 무섭다, 헌단 말과. 장부가 의심이 많으면 대소성사를 못 허는 법이라. 넷의 인중(人中) 쩌룬 운(運)이 무슨 복(福)이 있으며, 미간(眉間)의 화망(火亡) 살(煞)이 들어 내일 일모(日暮) 시(時) 김 포수(砲手) 날랜 철환(鐵丸) 한 정수리 쾅, 총이나 맞어 뒤져라, 이 녀석아.”

 

5. 용궁으로

 

[아니리]

“여보, 별 주부 수국 들어가면 화살(火煞) 면(免)하고 사오리까?” “아 수국과 화살하고는 대상극(大相剋)이라 총(銃)이라고는 그림자도 없제.” 토끼 제일 총 없단 말에 반겨듣고 아조 가기로 작정허여, 버드나무 젓가지를 앞발로 휘어잡고 뒷발을 물에 넣으니 물은 벌써 턱 밑에 오르난듸, 발 밑으로는 수만 길이것다. 겁을 내여 올라오랴 힘을 주니 가지는 점점 찌어져 물에 잠기거날,

 

[자진모리]

저 자래 거동 봐라. 토끼 두 귀를 검쳐 잡고 그져 끗고 들어가니, “이 애 별(鼈) 주부(主簿)야, 쪼금만 놓아라.” “네 이놈 잔말 마라. 짠물이 입에 들면 벙어리가 되느니라.” 이 물 고개 저 물 고개 이리저리 들어갈 제, 이놈을 딱 검쳐 업고 둥덩실 떠 들어가는듸, 소상(瀟湘) 팔경(八景) 다 구경하며 들어가것다.

 

[진양조]

범피중류(泛彼中流) 둥덩실 떠나간다. 망망(茫茫)헌 창해(滄海)이며, 탕탕(蕩蕩)헌 물결이라. 백빈주(白蘋洲) 갈매귀는 홍료안(紅蓼岸)으로 날아들고 삼강(三江)의 기러기는 한수(漢水)로 돌아든다. 요량(嘹喨)한 남은 소리 어적(漁笛)이 여그련만 곡종인불견(曲終人不見)의 수봉(數峰)만 푸르렀다. 애내성중만고수(欸乃聲中萬古愁)는 날로 두고 이름인가? 장사(長沙)를 지내가니 가(賈) 태부(太傅) 간 곳 없고, 멱라수(汨羅水)를 바라보니 굴(屈) 삼려(三閭) 어복충혼(魚腹忠魂) 무양(無恙)도 허시든가. 황학루(黃鶴樓)를 당도허니 일모향관하처시(日暮鄉關何處是)요, 연파강상사인수(煙波江上使人愁)난 최호(崔顥) 유적이오. 봉황대(鳳凰台)를 돌아드니 삼산반락청천외(三山半落青天外)요, 이수중분백로주(二水中分白鷺洲)는 태백(太白)이 노든 데요. 심양강(潯陽江)을 당도허니 백낙천(白樂天) 일거(一去) 후(後)으 비파성(琵琶聲)이 끊어졌다. 적벽강(赤壁江)을 그져 가랴. 소동파(蘇東坡) 노던 풍월 의구(依舊)하여 있다마는 조맹덕(曹孟德) 일세지웅(一世之雄) 이금(而今)의 안재재(安在哉)요. 월락오제(月落烏帝) 깊은 밤의 고소성(姑蘇城)에 배를 매니 한산사(寒山寺) 쇠북 소리 객선(客船)의 뎅 뎅 들리는구나. 진회수(秦淮水) 건너가니 격강(隔江)의 상녀(商女)들은 망국한(亡國恨)을 모르고서 연롱한수월롱사(煙籠寒水月籠沙)의 후정화(後庭花)만 푸르는구나. 악양루(岳陽樓) 높은 집이 호상(湖上)의 솟아 있고 무산(巫山)의 돋는 달은 동정호로 비쳐 오니 상하천광(上下天光)이 각색(各色)으로만 푸르렀다. 삼협(三峽)의 잔나비는 자식 찾는 슬픈 소리 천객(遷客) 소인(騷人)의 눈물이라. 한곳을 점점 당도허니 악양루와 같은 누각(樓閣)의 황금대자(黃金大字)로 새겼으되 남해(南海) 영덕전(靈德殿) 수정문이라. 둥그렸이 걸렸거날, 그곳을 점점 들어가니 천지(天地)가 조용허고 엄연한 별세계(別世界)로구나.

 

[중모리]

자래 등의 선듯 내려 좌우 경개(景槪)를 살펴보니, 동을 바라보니 일륜홍(日輪紅)이 어려 있고, 서를 바라보니 일발청산(一髮靑山) 층층헌디 비취색(翡翠色)이 어려 있고, 북을 바라보니 약수(弱水) 삼천(三千) 리(里) 해당화(海棠花) 장이 좋다. 깊기는 깊다마는 들어와 보니 별천지(別天地)로구나! 이러한 좋은 곳의 글을 한수 못 지어야 훈련대장을 헐 수 있나? 토끼 글을 한 수 읊을 적에 “산중(山中) 유객(遊客)이 도용궁(到龍宮) 허니 사해풍광입안중(四海風光入眼中)이라.”

 

[아니리]

“여보 토 선생 방금 읊은 그 글이 우리 훈련대장 감 글이 분명허오. 여기 잠깐 앉어 계옵시면 우리 수궁 남여(藍輿) 내보낼 것이니 그것 타고 들어오시오.” “그리 허오.” 별 주부 충충 들어가 진세(塵世)에 나갔던 별 주부 현신(現身)이오. 용왕이 반기 허여 “만(萬) 리(里) 원경(遠境)을 무사히 다녀왔으며 토끼는 잡어왔는가?” “예이, 대왕의 성덕(聖德)으로 만 리 원경을 무사히 왕래(往來)하옵고 진세 일개(一介) 퇴를 생금(生擒)허여 항우 수정문 밖에 대령(大令)하였나이다.” “기특타, 주부지충(主簿之忠)이여!” 어주(御酒)를 내려 치하(致賀)하신 후에, “어서 토끼 잡어 들여라” 하고 영을 내려노니, 토끼 밖에서 이 말을 듣고 있다 “아차 내가 사지(死地)를 들어왔구나! 내가 이제 도망을 가자헌들, 수로(水路) 만 리를 독행(獨行)으로 갈 수 없고 수국(水國) 중에 숨자 허니 내 몸에 표가 나니 아이고 이 일을 어쩔거나.” 자탄하고 있을 적에,

 

[자진모리]

강신(江神) 나졸 별군직(別軍職)과 수많은 도로목, 해(海) 모지리 청사(靑絲) 홍사(紅絲) 가막쇠를 요하(腰下)의 빗겨 차고 우르르르 “토끼 계 있느냐?” 토끼 깜짝 놀래 “아이고, 나는 토끼 아니오.” “그러면 무엇이냐?” “도둑 지키는 개요.” “개라니 더욱 좋다. 삼복(三伏)에 너를 잡어 약(藥) 개장도 좋거니와 장보간이 더욱 좋다. 이 개 바삐 말아가자.” “아이고, 내가 망아지요.” “말이라니 더욱 좋다. 요단항장(腰短項長) 천리마(千里馬)로다. 연인(涓人)도 오 백 금으로 죽은 뼈를 사갔으니, 너를 산 차 말아다 대왕(大王) 전(前) 바치면은 천금(千金) 상(賞)을 아니 주랴, 이 망아지 말아가자.” “아이고, 내가 송아지요.” “소라니 더욱 좋다. 도우탄(屠牛坦)에 너를 잡어 양기 두족(頭足), 갈비, 양(羘) 횟감 횟감이 진미로구나. 이 소 바삐 말아가자.” 이런 제기럴 헐 놈들이 동의보감을 얼마나 보았는지 저렇게 아는 놈들은 처음 보았네 “아이고, 내가 늬 외할애비다.” 여러 놈이 달려들어 청사 홍사 가막쇠를 이리저리 질끈 묶어 주장(朱杖)대 쿡 찔러 영덕전 너른 뜰의 대량대량 들이 매고 동댕이쳐 내던지며 “토끼 잡어들였소.”

 

[아니리]

용왕이 반기 허여 이만 허고 보시더니 “그것 참 약 되게 생겼다. 듣거라, 내 우연 득병(得病)하여 필사지경(必死之境)에 이르렀는듸, 명의(名醫)가 지시(指示)허되 늬 간을 쓰면 즉효(卽效) 헌다 허기에, 어진 신하(臣下)를 보내어 너를 잡어왔으니 이에 죽노라 한(恨)을 마라. 너는 일개 녹림초신(綠林草臣)이요, 짐은 수국 왕이라. 늬 간을 써 왕명을 보존할진대 무슨 한이 있을꼬. 네가 죽드라도 늬 신체는 비단으로 감장(監葬)하여 칠곽(漆槨)에 정(淨)히 담어 장풍향양(藏風向陽) 천리행룡(千里行龍) 일석지기 좋은 자리 분별(分別)해 써 줄 것이요, 또한 정조(正朝) 한식(寒食) 단오(端午) 추석(秋夕) 제사(祭祀)라도 착실(着實)히 분별해 줄 것이니 너 죽는다 한을 마라.” 토끼 하릴없이 죽게 되었구나. 우자천려(愚者千慮)에 필유일득(必有一得)이라. 한 꾀를 넌즛 생각허여 흩어진 정신을 가다듬어 조금도 안색(顔色)을 변치 않고 천연(天然)히 여짜오되,

 

[중모리]

“소퇴[小兔] 한 말씀 아뢰리다. 소퇴 한 말씀 아뢰리다. 회음(淮陰) 땅 한신(韓信) 이는 소하(蕭何) 따라 파촉(巴蜀) 가옵기는 한왕(漢王) 섬길 마음이요, 궁팔십(窮八十) 강태공도 주(周)나라 가옵기는 문왕(文王) 섬길 마음이요, 남양(南陽) 땅 제갈량(諸葛亮)도 한(漢)나라 가옵기는 현덕(玄德) 섬길 마음이요, 소퇴도 별 주부 따라 수궁 들어옵기는 대왕(大王) 섬길 마음이라. 분골쇄신(粉骨碎身)허올진대 추호(秋毫) 기망(欺罔)허오리까! 시일갈상(時日曷喪) 노래 소리 억조창생(億兆蒼生) 원망(怨望) 중의 탐학(貪虐)한 상(商) 주(紂) 인군(人君) 성현(聖賢)의 배 속의 칠(七) 궁기가 있다 허여 비간(比干)의 배 가르니 일곱 궁기가 있더니까? 소퇴도 배를 갈라보아 간이 들었으면 좋으려니와 만일 간이 없고 보면 불쌍한 내의 목숨 어찌 다시 구허리까? 당장의 배를 따 보옵소서.” 용왕이 듣고 화를 내어 “이놈, 네 말이 간괴(奸怪) 허다. 의서(醫書)에 일렀으되, 비수병즉구불능식(脾受病則口不能食) 허고 담수병즉설불능언(膽受病則舌不能言) 허고 신수병즉이불능청(腎受病則耳不能聽) 허고 간수병즉목불능시(肝受病則目不能視)라, 간이 없고 눈으로 어찌 만물을 보느냐?” “예, 소퇴가 아뢰리다. 소퇴의 간인 즉 월륜(月輪) 정기(精氣)로 삼겼삽기로 보름이면 간을 내고 그믐이 되면 간을 들입니다. 세상의 병객(病客)들이 소퇴가 얼른허면 간 달라기로 보채기로, 간을 내어다가 파촛잎에다 가만히 싸서 칡 노로 칭칭 동여, 영주(瀛洲) 석상 늘어진 계수(桂樹)나무 끝 끄터리다 달아두고, 도화(桃花) 유수(流水) 옥계(玉溪) 변(邊)에 목욕차(沐浴次)로 나려 왔다, 우연히 주부(主簿)를 만나 수궁 흥미가 좋다기로 완경차(玩景次)로 왔나이다.” 용왕이 또 화를 내는듸 “이놈, 그 말도 간괴허다. 사람이나 짐생이나 일신지내장(一身之內臟)은 다를 바가 없는듸, 어찌 간을 내고 들이고 임의(任意)대로 출입(出入)허는고?” “예, 소퇴가 아뢰리다. 예, 소퇴가 아뢰리다. 대왕은 단지기일(但知其一)이요 미지기이(未知其二)로소이다. 복희씨(伏羲氏/伏犧氏)는 어찌하여 사신인수(蛇身人首)가 되었으며, 신농씨(神農氏) 어찌 허여 인신(人身) 우수(牛首)가 되었으며, 대왕은 어찌 허여 꼬리가 저리 기다란 허옵고, 소퇴는 무삼 일로 꼬리가 이리 묘똑허옵고, 대왕의 옥체(玉體)에는 비늘이 번쩍번쩍, 소퇴 몸에는 털이 요리 송살송살 가마귀로 두고 일러도 오전 까마귀 쓸개 있고, 오후 까마귀 쓸개 없으니, 인생(人生) 만물(萬物) 비금주수가 모두 다 한가지라 허옵시니 답답치 아니허오리까?” 용왕이 반(半)이나 옳이 듣고 “그러면 간을 내고 들이고 임의대로 출입허는 표(表)가 있느냐?” “있지요.” “어듸 보자.” “자, 보시오.” 뻘그런 궁기 서이 늘어 있거날 “저 궁기는 어쩐 내력(來歷)인고?” “아뢰리다. 한 궁기로는 대변(大便)보고, 또 한 궁기로는 소변(小便)을 보고, 남은 궁기로는 간을 내고 들이고 임의로 출입허나이다.” “그러면 간을 어디로 넣고 어디로 내느냐?” “입으로 넣고 밑궁기로 내옵기로, 만물시생(萬物始生), 동방삼팔목(東方三八木), 서방사구금(西方四九金), 남방이칠화(南方二七火), 북방일육수(北方一六水), 중앙오십토(中央五十土), 천지(天地) 음양(陰陽) 아침 안개, 저녁 이슬 화하야 입으로 넣고 밑궁기로 내옵기로 으뜸 간이 되나이다. 미련허드라 저 주부야! 세상에서 날 보고 이런 이약을 허였으면 간을 보차 가지고 들어와 대왕 병도 즉차(卽瘥) 즉효(卽效) 허고 저도 충신이 나타나 양주 양합이 좋을 텐듸, 미련허드라 저 주부야 만시지탄(晩時之歎)이 쓸데없네.”

 

[아니리]

“그러면 세상에서 네 간을 먹고 즉효 한 사람이 있느냐?” “예, 있지요.”

 

[중중모리]

“소퇴의 할애비 풍경(風景)을 좋아허여 유산유수 노닐 제, 목욕차로 내려오다 실족(失足)하여 물의 빠져 거의 죽게 되었을 제, 한(漢) 무제(武帝) 제신(諸臣)들이 구선(求仙) 허여 나왔다, 건져 주어 살았기로 그 은혜(恩惠) 난망(難忘) 허여 간 조끔 주었더니 동방삭(東方朔)이 투식(偸食)허여 삼천갑자(三千甲子)를 살아 있고, 위수로 돌아가다 간 내어 씻었더니 궁팔십(窮八十) 여상(呂尙)이도 낚시질 나왔다가 기갈(飢渴)이 자심(滋甚)허여 그 물 조끔 떠 마시고 달팔십(達八十) 더 살았고, 안기생(安期生) 적송자(赤松子)도 우리 간 얻어먹고 장생불로(長生不老) 허였으니, 원컨대 대왕께서도 소퇴 간 자시면 천천만만(千千萬萬) 세(歲)를 태평(太平)으로 누루리다.”

 

[아니리]

용왕이 토끼에게 아조 둘리어 “토(免) 선생(先生) 해박(解縛)하라.” 토끼를 해박하여 전상(殿上)의 앉힌 후에 용왕이 인사(人事)허시되 “퇴 공(公)은 거양계(居陽界) 허고 과인은 처수부(處水府) 하야 불상통섭(不相通涉)이러니 오날 피차(彼此) 이리 만나기는 천만몽외(千萬夢外)로시! 어서 토 선생에게 술 올려라.” 수궁 미색(美色) 전어 단정(端正)히 궤좌(跪坐)허고 동정춘주(洞庭春酒) 가득 부어 토끼에게 올리니, 토끼 황공대왈(惶恐對曰) “대왕이 이다지 관대허시니 뼈를 갈아 드린들 무슨 한이 있으리까? 그러나 소퇴는 과맥전(過麥田) 대취(大醉)로소이다.” “퇴 공이 과인을 위하여 원해(遠海) 만 리를 수고로이 왔다가 내 정이 섭섭하니 한 잔만 받게.” 토끼 사양타가 “이렇게 권하시니 사차불피로소이다.” 일성 산골 물만 먹든 놈이 동정춘주를 알 수 있나, 한 잔을 맛보더니 “참, 술맛 좋소! 거, 한 잔만 더 주쇼.” 맛에 취해서 십여 잔을 먹어노니 취흥(醉興)이 도도(滔滔)허여, 수궁 물이 발목물로 알고 한번 노니는듸, 때마침 토(免) 공(公)을 위하야 또한, 수궁 풍류(風流)가 낭자(狼藉)허것다.

 

[엇모리]

수궁의 갖은 풍류 수궁의 갖은 풍류, 왕자진(王子晋)의 봉(鳳) 피리 니나니나 니나누, 곽(郭) 처사(處士) 죽장구 찌지렁 쿵 쩡 쿵, 장자방(張子房)의 옥(玉)퉁소 띳띠루 띠루, 성연자(成連子) 거문고 슬기덩지 둥덩덩, 혜강(嵆康)의 혜금(嵆琴)이며, 격타고(擊鼉鼓) 취용적(吹龍笛) 능파사(凌波詞)의 어부사(漁父詞), 우의곡(羽衣曲) 채련곡(採蓮曲) 곁들어다 노래헐 제, 낭자(狼藉)한 풍악(風樂) 소리 수궁이 진동헌다. 토끼도 좋아라고, 토끼도 신명내어, “얼시구절시구 지화자 자 좋을시고, 약일네라, 약일네라, 내의 간이 약이여. 위수변(渭水邊) 강태공(姜太公)도 내 간을 먹고 궁팔십(窮八十) 달팔십(達八十) 일백 육십을 살았고, 동방삭(東方朔)이 날 만나 간 좀 달라기에 팥알만큼 주었더니 삼천갑자(三千甲子) 만 팔천 장생(長生不老) 허였네, 대왕의 환우(患憂)도 내의 간 자시면 천천만만 세를 태평으로 누릴 터니 어찌 아니 좋을시구 지화자자 좋을씨고.”

 

[중중모리]

앞내 버들은 청포장(靑布帳) 두르고 뒷네 수양(垂楊)은 유록장(柳綠帳) 둘러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흔들흔들 우질우질 춤을 출 적에 앞발을 번뜻 추켜들고 촐랑촐랑 노는구나.

 

[아니리]

귀 밝은 대장 범치란 놈이 토끼 뒤로 졸졸 따라다니며 노니는 판인듸, 촐랑거리는 소리를 듣고 “토끼란 놈 배 속에 간(肝) 들었다.” 큰소리를 쳐노니, 토끼 깜짝 놀래 “네 이 녀석 내 배 속에 무얼 보고 간 들었다 허느냐? 내 배 속에 무슨 소리를 듣고 간 들었다 허느냐? 내가 늬그 수궁 들어와 먹은 것이 뭐 있느냐? 아, 이놈아, 빈속에 술잔이나 들어가노니, 똥 덩어리 노는 소리 듣고 간 들었다 허는구나.” 토끼 생각허되 군자(君子)는 가기이방(可欺以方)이요 견지이작[見機而作]이라. 뺀 짐에 주(走) 짜[字]가 제일 상수지, 뺀 짐에 뺄 수밖에 없다. 대왕 전 아뢰옵되 “병세(病勢) 만만(萬萬) 위중(危重)하오니 소퇴가 어서 세상을 나가 간을 가지고 들어와 왕명을 보존(保存)하겠네다.” 용왕이 반기 허사 별 주부를 또다시 진 명(命)을 허니, 별 주부는 토끼란 놈 배 속에 간이 들었는듸, 세상에를 다시 나가라고 하니 주달(奏達)을 허는듸,

 

[진양조]

별 주부 황공대왈 “신의 충성(忠誠) 다 베풀어 원해(遠海) 삼천 리를 겨우 잡어들인 토끼를 배 속에 달린 간 아니 내고 보낼진대 세상 웃음이 될 것이요, 내가 칠종칠금(七縱七擒)허든 제갈공명(孔明) 지모(智謀) 아니어든 한번 놓아 버린 토끼 어찌 다시 구(求)오리까? 배만 갈라 보옵소서, 배만 갈라 보옵소서.”

 

[중중모리]

토끼가 듣고 일어서며, 토끼가 듣고 화를 내어 “왔다, 이놈 별 주부야, 늬 말이 당(當)찬허다. 왕명이 지중(至重)커늘 늬가 어이 기만(欺瞞)허랴? 옛말을 못 들었나? 상(商) 주(紂)의 몹쓸 마음 비간(比干)의 배 가르니 칠구[七竅]도 못 보았고, 하(夏) 걸(桀)이 학정(虐政)으로 용봉[龍逄]을 살해(殺害)코 미구(未久)에 망국(亡國)을 모르더냐? 너도 이놈 내 배를 갈라 보아 간이 들었으면 좋으려니와 만일 간이 없고 보면 불쌍한 내의 혼백(魂魄) 수로만리(水路萬里) 갈 수 없고, 너의 나라 원귀(冤鬼)되어 연병 시병(時病) 퍼질진대 너의 용왕 십 년 살 것 하루도 못 살터이요, 너의 수국 만조백관(滿朝百官) 한 낮 한시(時) 모두 다 멸살(滅殺) 시키리라 아나 배 갈라라 아나 였다 배 갈라라 똥밖에는 든 것 없다. 내 배를 갈라 늬 보아라.”

 

6. 세상으로

 

[아니리]

용왕이 토끼 거동(擧動)을 보고 요망(妖妄)한 짐생이 사(邪)가 되어 그럴 법도 하겄다. “다시 일구이언(一口二言)허는 자(者)는 어망(漁網/魚網) 살로 정배(定配) 출송(黜送)하리라.” 이렇듯 어명(御命)을 허여노니, 별 주부 하릴없이 토끼를 업고 세상을 다시 나오는듸,

 

[진양조]

가자 가자 어서 가자. 이수(二水)를 건너 백로주(白鷺洲)를 어서 가자. 고국산천(故國山川)이 어디메뇨. 삼산(三山)을 바라보니 청천외(青天外) 멀어있고, 일락장사추색원(日落長沙秋色遠) 허니 부지하처조상군(不知何處吊湘君)고. 한곳을 당도(當到)허니 한 사람이 나오는듸 푸른 옷 입고 검은 관(冠)을 쓰고 거수(擧手)에 읍(揖)을 허며, “토 공(公)은 수로(水路) 왕래(往來) 상거(相距) 천이[千里]라 하이즉차[何以至此]오?” 토끼 대왈(對曰) “기경청산(靑山) 허니 관불과제관(觀不過諸觀)이요, 탁족무림 허니 태불과봉황이요, 소무지식(素無知識) 허고 유매평생이라. 소문 강호지흥미(江湖之興味) 허고 오복풍경지측차로다.” 귀인(貴人)이 듣고 평일 장탄(長歎) 왈 “군불견(君不見) 삼려대부(三閭大夫) 어복지혼(魚腹之魂)의 내 일찍 세상에서 이충사군(以忠事君) 허옵다가 시운(時運)이 불행(不幸)허여 이물의 물에 잠겨 영불출세(永不出世) 서른 뜻과 내의 글 외웠다가 추천 일월(日月) 밝은 세상의 음풍영월(吟風詠月) 문장(文章) 재사(才士)들께 천고지원(千古之怨) 전해 주소.” 그 글의 허였으되 “제고양지묘예혜(帝高陽之苗裔兮)여 짐황고왈백용(朕皇考曰伯庸)이라. 유초목지영락혜(惟草木之零落兮)여 공미인(恐美人) 지모(遲暮)로다. 거세개탁(擧世皆濁)이어든 아독청(我獨淸) 허고, 중인(衆人)이 개취(皆醉)어든 아독성(我獨醒)이라.” 창연히 생각을 허니 이난 만고(萬古) 충신(忠臣) 굴원(屈原)이로구나.

 

[단중모리]

백마주(白馬洲) 바삐 지내 적벽강(赤壁江) 당도(當到)허니, 소지노화월일선(笑指蘆花月一船) 추강(秋江) 어부(漁父)가 빈 배. 기경선자(騎鯨仙子) 간 연후(然後) 공추월지단단(空秋月之團團). 자래 등에다 저 달을 실어 우리 고향을 어서 가. 환산농명월(還山弄明月) 원해근산(遠海近山)이 좋을시고. 위수(渭水)로 돌아드니 어조(魚釣)하든 강태공(姜太公) 기주(岐周)로 돌아들고 은린옥척(銀鱗玉尺)뿐이라. 벽해(碧海) 수변을 당도하야 깡총 뛰어내려 모르는 체로 가는구나.

 

[아니리]

고고 태산(泰山)으로 올라가더니마는 “별 주부 어서 이리 올라오시오, 간(肝) 줄 테니 어서 올라오시오.” 별 주부 딱 쳐다보니 층암절벽이라. “아이고 내가 거기를 어떻게 올라간단 말이오.” “저리 돌아 올라온다 허면 수백 리나 될 것이니, 이리 막 앞으로 기어올라 오시오.” “아무리 생각해도 거기는 못 올라가것네.” “오 그러면 좋은 수가 있소. 내가 칡넝쿨을 걷어 가지고 홀롱기를 해서 내려 보낼 테니, 목을 걸고 올라오든지 다리를 걸고 올라오든지 양 가지로 허소.” “글랑 그리 허오.” 칡넝쿨을 걷어 가지고 홀롱기를 해서 내려보냈것다. 별 주부 그저 목을 쑥 빼어 홀롱기 안에다 딱 넣어노니,

 

[느린 중모리]

토끼 놈 거동을 보아라. 홀롱기를 쥐여 들고 홰홰 돌려 젯쳐노니 나무 쟁반 떠나가듯, 해상의 배 떠나듯 공중의 둥둥 떠 하릴없이 죽었구나. “네 이놈 별가(鼈哥) 놈아 늬가 나를 살살 꼬여 너의 수궁 들어가 내 배를 갈라 간을 내어 너의 용왕 준다 허였더냐? 동풍의 음건(陰乾)허여 빳빳 말라 뒈지거라. 왕배탕이 좋을시고, 들랑날랑 허는 목을 늘여서 죽이리라!” 홀롱기 측 끈을 낭귀다 매고 산천으로만 올라가는구나.

 

[아니리]

그때여 별 주부는 하릴없이 죽게 되였는듸, 목이 딱 짤리어노니 말인즉 헐 수 있으리오마는 속으로 자탄(自歎/自嘆)허는 말이 소리가 되니 듣게 되었던 것이었다. 별 주부 기가 막혀 통곡(痛哭/慟哭)으로 우는 말이,

 

[진양조]

“아이고, 아이고 내 신세야. 나 죽기는 설찮으나 내가 만일 죽게 되면 영덕전 병든 용왕 어늬 뉘라 살려 주며, 북당(北堂)의 학발(鶴髮) 양친(兩親) 옥빈홍안(玉鬢紅顔) 젊은 처자를 뉘라 의탁을 허드란 말이냐.”

 

[아니리]

이렇듯 설리 울 제. 어째 산신(山神)님이 살렸던지, 하나님이 감동을 허였던지 묘(妙)하게 홀롱기 벗어져 홰홰 둘러 내민 돌에 부딪쳐 떨어져노니 등이 난리가 되었구나. 이랬으면 그만 돌아가야 할 일인듸, 원체 충성이 지극한 별 주부라. 가는 토끼 다시 불러, “여보 토(免) 공(公) 아 이렇게 찡찡한 재담(才談) 그만허시고 간이나 좀 띠어 주고 가시오.” 가든 토끼 다시 돌아오며 욕을 한번 퍼붓는듸 대욕을 허는가 보더라.

 

[중모리]

“재기를 붙고 발기를 헐 녀석. 배 속의 달린 간을 어찌 들이고 내드란 말이냐? 미련허드라 미련허드라 너그 용왕이 미련허드라. 느그 용왕 미련키 날 같고, 나 슬기롭기 느그 용왕 같거들면 영락없이 죽을 것을, 내 밑궁기 서이 아니어든 내 목숨이 어이 살았겼나? 내 돌아간다 내가 돌아간다. 백운(白雲) 청산을 내 돌아간다.”

 

[아니리]

“내 이놈 별 주부야! 늬 소행을 생각허면, 내 발뒤꿈치로 늬 복판 콱콱 밟아 옹구 짐 뿌시거 놓듯 헐 일이로되, 늬가 만(萬) 리(里) 원경(遠境)을 날 업고 왔으니, 그 은혜로 화제(和劑)하나 해줄 터이니 그대로 약 써 보아라. 거 늬그 수궁 들어가니 이뿐 암자래 많튼구나, 하루 일천오백 마리씩 집어 다려서 멕이고, 그래도 안 낫거든 복장이 가루를 천 적을 만들어 오자대(梧子大)을 지어 무시복(無時服)으로 그져 주야로 퍼 먹여 버려라. 그러면 죽든지 살든지 일 마쳐 버리리라. 그렇지 않으면 염라대왕(閻羅大王)이 늬 할애비라도 살 수가 없다, 이 녀석아!” 토끼는 이러고 올라갔제. 별 주부 기가 막혀 “내가 이리될 줄 알았지. 내가 이제 도경(渡鯨)으로 수궁을 가자 헌들 무슨 면목(面目)으로 용왕을 배올거나.” 별 주부 하릴없이 탄식하며 도경으로 돌아가고, 토끼란 놈 살아 나왔다고 해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거덜거리고 노니다 토끼 덫에 딱 걸려노니 “아이고 내가 또 죽게 되었구나! 차라리 이리될 줄 알았으면 수궁에서 죽었더라면 정조(正朝), 한식(寒食), 단오(端午), 추석(秋夕) 제사라도 착실히 얻어먹고 백골(白骨)이라도 암장헐걸, 이제는 뉘 놈의 배 속의 장사(葬事)를 허드란 말이냐!” 죽을 것 각오하고 있난듸, 때마침 쉬파리 때가 왱 하고 달라들 제 “아이고 쉬 낭청(郎廳) 사촌님 어디 갔다 인자 오시오.” “너 일 참 잘 되었구나!” “그저 내 등에 쉬나 좀 쓸어 주면 살 도리가 있소.” “늬 아무리 꾀 많은들 사람의 손을 당할쏘냐. 사람의 내력(來歷)이라는 건 내 일(一) 장중(掌中)에 있나니 내가 이를 테니 들어봐라.”

 

[자진모리]

“사람의 내력을 들어라. 사람의 손이라 허난 게 엎어 노면 하날이요, 됫세 놓으면 땅인듸, 이리저리 금이 있기는 일월(日月) 다니는 길이요, 엄지장가락이 두 마디 기는 천지인삼재(天地人三才)요, 지가락이 장가락만 못하기는 정월, 이월, 삼월, 장가락이 그 중에 길기는 사월, 오월, 유월이요, 무명지가락이 장가락만 못하기는 칠월, 팔월, 구월이요, 소지(小指)가 그중에 저룹기는 시월, 동지, 섣달인듸, 자오묘유(子午卯酉)가 여그 있고, 건감간진손이곤태(乾坎艮震巽離坤兌) 선천팔괘(先天八卦)가 여그 있고, 불도(佛道)로 두고 일러도 감중련(坎中連) 간상련(艮上連) 여그 있고, 육도(六道)를 부려 대장경(大藏經) 천지가 모도 일(一) 장중(掌中)이라. 늬 아무리 많은들 사람 손을 당할쏘냐? 잔말 말고 너 죽어.”

 

[아니리]

“그저 죽고 살고는 내 수단에 있는 것이니, 내 등에 쉬나 좀 쓸어 주시오.” “글랑 그리 허여라.” 지 동지 수만 마리를 부르더니 쉬를 담뿍 쓸어 놓고 날아갔제. 토끼란 놈은 쉬 한 짐 짊어지고 죽은 듯이 엎졌는듸, 때마침 초동(樵童)들이 모두 아침밥 일찍 먹고 심곡(深谷) 심산(深山) 올라오며 시절가(時節歌)를 부르는듸,

 

[늦은 중모리]

“어이 가리 넘차 어이 가리 넘차, 어이 가리 너 너화로구나. 태고(太古)라 천왕씨[天皇氏]는 목(木)덕(德)으로 왕(王) 하였으니 낭기 아니 중헐쏘냐? 인황씨(人皇氏) 아홉 형제 분장구주(分長九州) 마련헐 제, 우리 곤(困)케 허였던가. 수인씨(燧人氏)가 불을 내어 화식(火食)허게 헌 연후(然後)의 우리 곤케 허였던가. 어떤 사람 팔자 좋아 삼태육경(三台六卿) 좋은 집에 부귀영화(富貴榮華)로 잘사는듸, 우리 팔자 어이허여 날이 새면 지게 갈퀴 짊어지고 심산구곡(深山九曲)이 왠일인그나. 집이라고 돌아가면 소탱 빈 방안의 곱송그려 새우잠 자니 초동 팔자(八字) 가련지고, 여보소 친구들아 자네는 저 골로 들어가고, 나는 이 골로 들어가 떨어진 낙엽 부러진 가지를 힘끝대로 뭉뚱그려 위부모(爲父母) 처자식(妻子息)의 극진공대(極盡恭待)를 허여 보세. 어이 가리 너 어 어이 가리, 어이 가리 너 너화로구나.”

 

[아니리]

이렇듯이 올라오다가 토끼 덫 살펴보니 과연 한 마리 치였제. “야 여기 좋은 것 있다. 거 모닥불 놔라 이거 꿔 먹고 올라가자.” 자세히 살펴보니 쉬를 잔뜩 쓸었것다. “아차 차차 우리가 이삼 일 전(前)에만 왔드라도 이놈을 무사히 꿔 먹고 갈 것인듸, 여 쉬를 담뿍 씰었다.” 그 중 고기 욕심 있는 초동(樵童) 하나 썩 나서며, “야 요즘에는 내음만 없어도 먹는다. 코 뒀다 어따 쓸래. 좀 맞어 봐라.” 이놈이 냄새를 위쪽에 대고 맡았으면 잘 꿔 먹고 올라갔을 것인듸, 묘하게 그놈 아랫도리에다 코를 댓던가 보더라. 토끼 때는 이때다 하고 삼년 묵은 도토리 방구를 소리 없이 내어노니, “왓다. 그것 오장(五臟) 뒤집는다. 이런 것 먹다가 설사병(泄瀉病)으로 죽는다. 없애버려라. 아나 오작(烏鵲)구 밥이나 되어라.” 뒷발목 검쳐 잡고 쉿 잡어 쏘아노니, 토끼란 놈 저 건너 깡짱 뛰어 나앉으며, “해해 사지(死地) 수궁 들어가 용왕도 속이고 나왔는듸, 무식한 너이들을 못 속일쏘냐!” 거기서 초동들 배 채우느라고 또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거덜거리고 놀것다.

 

[중중모리]

관대장자(寬大長者) 한고조(漢高祖) 지혜(智慧/知慧) 많기가 날만 해, 소진(蘇秦), 장의(張儀) 구변(口辯)인들 이내 말을 당할쏘냐? 삼국(三國) 시(時) 내 낳은들 공명(公明) 선생이 나만 헐까! 전국 시 나 낳은들 김전이가 말을 헐까! 시리허고, 시리허다. 영산홍로[暎山紅綠] 봄바람, 넘노나니 도화(桃花)로다. 붉은 꽃 푸른 잎은 산영(山影) 수색(水色)을 그림 허고, 나는 나비 우난 새는 춘광(春光) 춘흥(春興)을 자랑헌다. 예 듣던 청산 두견 자조 운다 각 새소리, 타향(他鄕) 수궁 갔든 벗님 고국산천(故國山川)이 반가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깡쫑거리고 올라간다.”

 

[아니리]

이렇듯 거덜거리고 올라가는듸, 이때어 난데없는 독수리 이삼일 주린 놈인듸 어디로 가 이 주린 구복을 채울고 하고 날아다니는 판에 마치 요구감이 뙤작거리고 올라가니 우 하니 내려와 큰 쭉대로 콱 쎄려노니, 이놈이 한 뎃 바뀌 궁글어 정신을 포로시 찾어 올려다본즉, 참 정떨어지게 생겼던가 보러다. 눈 오끔한 데다가 입뿌리가 낚시 뽄으로 생겼난듸, 천간이 녹을 지경이라. 독수리 또한 좋아라고 한바탕 노난듸,

 

[늦은 중모리]

“얼씨구나 내 복이야. 얼씨구나 얼씨구나 좋구나 지화자 좋을시고, 삼사 일 주렸더니 요구감을 얻었구나, 육진비 갖은 차담 이여서 더하오며, 홍문연(鴻門宴) 놓은 잔치 주물상(晝物床)이 이 같으랴! 눈을 먼저 빼 먹을까? 코를 먼저 빼 먹을까? 배를 갈라 간을 내어 식기 전에 먹어 볼까? 얼씨구나 얼씨구나 좋구나 자화자자 좋을시구.”

 

[아니리]

토끼 아무리 생각허여도 또 죽게 되었구나! 이놈이 또 한 꾀를 비집난듸, 거지 울음을 우는듸.

 

[단중모리]

“아이고 아이고 내 신세야. 아이고 내 일이야,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내 팔자야. 나 죽기는 설찮으나 내가 만일 죽게 되면 아까운 이사 줌치 무주공산(無主空山)에다 버려두고 임자 찾어 못 전허고 이 자리에 죽게 되니, 이 아니 원통(冤痛)허오, 아이고 아이고 내 신세야.”

 

[아니리]

독수리 가만히 말을 듣더니마는, “애 토끼야.” “예.” “그 의사 줌치가 무엇이간듸, 늬 죽기 보듬도 설잖탄 말이냐?” “예, 장군님 의사 줌치 내력을 들어 보시오. 의사 줌치라는 보물(寶物)이 뭣인고니 쫙 피어 놓고 보면 일곱 궁기가 뚫펴 있는듸, 꼭 부채 뽄으로 생겼죠. 한 궁기를 탁 탱기면 도야지 세끼 나오너라 하면 한 번에 수백 마리가 나오고, 삥아리 새끼 나오너라 하면 일천오백 마리 아니라 일억 오천 마리가 꾸역꾸역 나오고, 개 창사 노루 창사 나오느랴 허면 그져 빨래줄 나오듯 수백 발이 나오니 이런 보물이 어디가 있소. 헌듸, 이런 보물을 저 바우 틈 속에다 넣어 놓고 내가 이 자리에 죽게 되면, 그 보물을 누가 차지헌단 말씀이오? 그러니 원통하기 짝이 없소.” 독수리 이 말 듣고 “거 좋은 보물 가지고 있구나! 그 좋은 보물을 어디서 났느냐?” “예, 제가 일전에 남해 수궁 들어가 용왕한테 가리고 나왔지요.” “늬가 남해 수궁 들어갔단 말 얼풋 들었다.” “그 용왕이 주신 보물인듸, 그 보물을 뉘게 준단 말씀이오. 장군님 제발 덕분에 살려 주오.” 독수리가 이 말 듣더니 용심이 잔뜩 나것다. “이에, 토끼야. 내가 너를 살려줄 것이니 그 의사 줌치라는 보물을 나를 도라.” “아이고 장군님 생긴 것이 욕심(欲心/慾心)이 대단허여 줌치를 뺏고 나까지 잡어 잡수시랴 그러시오.” “이야 그럴 리가 있겠느냐? 그러면 너와 나와 사촌(四寸) 의형제(義兄弟)를 맺자.” “욕심 많은 장군님이 사촌을 아시리까?” “아이고 이놈아 너는 잠깐 요기(療飢)감밖에는 안 되고 그 줌치만 있고 보면 내 생전(生前) 양식(糧食) 걱정을 할 필요가 없것구나! 그런 좋은 것을 준다면 내가 너를 어째 잡아먹을 것이냐? 그러니 염려 말고 그 의사 줌치 날 다오.” “장군님 꼭 그럴 테면 저 건넌 바우 틈으로 갑시다.” 독수리 좋은 술병(甁) 들 듯 토끼 두 귀 검쳐 잡고 바우 앞에다 내려노니 토끼란 놈 이놈 의심 없이 바우 틈으로 들어갈려고 하것다. “너 이놈 내가 늬 발목 잡고 있을 테니 의사 줌치 가지고 나오너라.” “올체 그러시오 나 들어가오. 내 발목 잡으시오.” “오냐 잡었다.” “아이고 의사 줌치가 갈씬갈씬하오, 쪼끔만 놓시오.” “오냐 늬 엄지발꾸락 잡었다.” “아이고 갈씬갈씬하니 쪼끔만 더 놓시오.” “오냐 너 발툽 잡었다.” “어허 조금만 더 놓으시오.” 이놈이 탁 차고 들어가 한가한 치라고 시조 반(半) 장(章)을 썩 내놓는듸,

 

[시창]

“반(半)나마 늙었으니, 다시 젊기 어려워라!”

 

[아니리]

“네 이놈 토끼야. 그 한가한 치라고 진 노래 허지 말고 어서 의사 춤치 가지고 나오너라. 내 일이 바쁘다.” “야 이놈 독수라! 죽게 된 내가 살았으니 이것이 의사 줌치가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이 무식한 놈아 어서 다른 데 가서 일 보아라.” 독수리 어이없어 내가 이리될 줄 알았지, 내가 욕심이 많으기에 이 분(憤/忿)함을 당허는구나! “네 이놈 토끼야, 너는 인자 세상 구경 다했다. 네가 늬 굴 앞에 지켜 섰다가 나오기만 나오면 사지(四肢)를 찧을 테니 그리 알아라.” “야, 이놈아 내 나이 팔십(八十)이 되었으니 어린 손자(孫子) 자식이나 봐 주고 수신제가(修身齊家)나 헐란다.” 독수리 더욱 기가 막혀, “예이 빌어먹을 놈 잘 살어라.”

 

[엇중모리]

독수리 하릴없이 훨훨 날아가고, 그때 산신께옵서는 노퇴[老兔] 일(一) 수(首)를 보내어 대왕 병도 즉차 즉효 허고 태평가(太平歌)를 누렸더라. 어와 세상 벗님네들 이러한 미물(微物)들도 보국(報國) 충성(忠誠)을 다하거날 하물며 우리 인생이야 말을 즉히 헐 수 있나, 나라에 충성허고 부모의게 효도허세. 그만 더딜 더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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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08_강산제 심청가 사설

 

[20250102_박동실제 유관순 열사가.pdf (238.75 KB) 다운받기]

 

http://blog.jinbo.net/jayul/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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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공 도서관은 희망 도서 신청이 안 되겠지만, 혹시 대학 도서관에 가능하시다면 희망 도서 신청을 부탁 드립니다. ^^ 감사합니다.

돌민 올림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5765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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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ookk.co.kr/bookStore/67a19e7bf3250118b23851c3

 

 이 책은 (모흥갑 -) 박유전 - 정재근 - 정응민 - 성우향으로 이어진 심청가(沈淸歌)를 주해(註解)한 것이다. 이 책의 주해는, 『심청전 전집』 1~12권(김진영·김현주 외 편저, 박이정출판사, 1997~2004)에서 150여 년 전부터의 사설을 두루 발췌독 하며 그 문맥에 기초해서 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100여 년 전 유성기 음반의 복각 녹음에 실증적으로 기초하기도 했다. 끝으로, 중국철학서전자화계획 누리집(ctext.org)과 한국 고전종합 DB 누리집(db.itkc.or.kr)과 각종 백과사전과 어학 사전 등에서 총체적으로 용례를 검증하기도 했다.

 물론 본문 자체는 정응민의 ‘창본(소리책)’, 성우향의 사설과 녹음과 영상에 기초했다. 특히, 성우향의 영상인 『완창 판소리 – 심청가』(송원조·정화영 북, 국립극장 국립창극단, 2001)와 성우향의 1977년 ‘뿌리 깊은 나무 판소리 감상회’ 연속 공연 녹음인 『성우향 심청가』(김명환·김동준 북, 지구레코드, 1998)에 기초했다.

 참고로, 정응민의 창본은 정회석·조정희가 탈초(脫草) 하고 배연형이 감수한 「<부록 2> 정응민 <심청가> 창본 (1935)」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 자료는 정회석의 「정응민 가계 <수궁가>의 음악적 특징과 전승양상」(한양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 한양대학교, 2014)에 실린 것으로, 『정응민 가계 보성소리 창본 1 – 심청가』(정회석 엮고 지음, 여유당, 2023)에 재수록되었다. 정응민의 창본 자료가 탈초 되어 있음을 알려주신 은인은 배연형 한국음반아카이브연구소장님이시다. 배연형 연구소장님의 전자 우편을 알려주신 은인은 비가비 이규호 선생님이시다. 애초에, 이규호 선생님을 처음 소개해 주셨던 은인은 손태도 교수님이셨다.

 한편, 구할 수 없는 녹음 자료는 노재명 국악음반박물관장님과 ‘정창관의 국악음반세계’ 정창관 대표님의 은혜 덕분에 들을 수 있었다. 김문성 국악 평론가님과 이강직 선생님의 따듯한 배려에 대해, 『당시별재집』 1~6권(심덕잠 엮음, 서성 옮김, 소명출판, 2013)과 『조선 사람이 좋아한 당시』(이종묵 평역, 민음사, 2022)와 『심청전 전집』 1~12권 등의 논저에 대해, 벗의 우정에 대해 감사한 마음뿐이다.
 그리고 초고를 집필해 『강산제 심청가·박동실제 유관순 열사가』(공편)라는 책에 무상으로 실었었으나, 적지 않은 부분을 개고해 이 책으로 냄을 밝힌다. 끝으로, 참고 문헌을 각주로 대신한 점에 대해 양해를 구한다.

 

2025년 2월 4일 화요일에
인천 율목 도서관에서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250608_강산제 심청가(沈淸歌) 사설
 편(編)한 『읽는 판소리, 주해(註解) 강산제 심청가(沈淸歌)』(부크크, 2025)의 본문 부분만이지만, 좀 더 다듬은 것입니다. dolmin98@naver.com

 

1. 탄생

 

[아니리]

송나라 원풍(元豊) 말년(末年)에 황주(黃州) 도화동(桃花洞) 사는 봉사 한 사람이 있난디, 성은 심이요, 이름은 학규였다. 누대(累代) 명문거족(名門巨族)으로 명성(名聲)이 자자(藉藉)터니 가운(家運)이 불행(不幸)허여 이십(二十) 후(後) 안맹(眼盲)허니 낙수(洛水) 청운(靑雲)에 발자취 끊어지고 일가친척(一家親戚) 멀어져 뉘라서 받드리오. 그러나, 그의 아내 곽씨(郭氏) 부인이 있난디, 또한 현철(賢哲)하사 주남(周南) 소남(召南) 관저시(關雎詩)를 못 하는 것 전이 없고 백집사가감(百執事可堪)이라 곽씨 부인이 하루난 삯을 받고 품을 팔 제,

 

[단중모리]

삯바느질 관대(冠帶) 도복(道服) 행의(行衣) 창의(氅衣) 직령(直領)이며, 섭수(袖) 쾌자(快子) 중추막과 남녀(男女) 의복(衣服)의 잔누비질 상침(上針)질 갓금질과 외올뜨기 꾀담이며 고두 누비 솔 오리기 망건 뀌매기 갓끈 접기 배자(褙子) 토시 버선 행전(行纏) 포대 허리띠 다님 줌치 쌈지 약낭(藥囊) 필낭(筆囊) 휘양 볼끼 복건(幅巾) 풍차(風遮)이며, 처네 주의(周衣) 갖은 금침(衾枕) 베갯모 쌍원앙(雙鴛鴦) 수(繡)도 놓고, 오색(五色) 모사 각대(角帶) 흉배(胸背) 학(鶴) 기리기, 궁초(宮綃) 공단(貢緞) 수주(水紬) 선주(線紬) 낭릉(浪綾) 갑사(甲紗) 운문(雲紋) 토주(吐紬) 갑주(甲紬) 분주 표주(表紬) 명주(明紬) 생초(生綃) 통견(通絹) 조포(造布) 북포(北布) 황저포(黃苧布) 춘포(春布) 문포(門布) 계추리며 삼베 백저(白苧) 극상(極上) 세목(細木) 삯을 받고 맡아 짜기, 청황(靑黃) 적백(赤白) 침향(沈香) 오색(五色) 각색(各色)으로 다 염색(染色)허기, 초상(初喪)난 집 원삼(圓衫) 제복(祭服), 혼장대사(婚葬大事) 음식(飮食) 숙정(熟定), 갖은 제편 중계(中桂) 약과(藥果), 박산(薄饊) 과자(菓子)의 다식(茶食) 정과(正果) 냉면(冷麪) 화채(花菜) 신선로(神仙爐)며, 각각 찬수(饌需) 약주(藥酒) 빚기 수파련(水波蓮) 봉 오림과 배상(排床) 허기 고임질을 잠시도 놓지 않고 수족(手足)이 다 진(盡)토록, 품 팔아 모일 적에 푼 모아 돈 짓고 돈 모아 냥(兩) 만들어 냥을 지어 관(貫)돈 되니, 일수(日收) 체계(遞計) 장리변(長利邊)에 이웃집 사람들께 착실헌 곳 빚을 주어 실수(失手) 없이 받어들여 춘추시향(春秋時享)에 봉제사(奉祭祀), 앞 못 보는 가장(家長) 공경(恭敬) 시종(始終)이 여일(如一)허니, 상하 인리(鄰里)의 사람들,

 

[아니리]

곽씨 부인 어진 마음, 뉘 아니 칭찬허리. 하로난 심(沈) 봉사 먼눈을 삔덕이며, “여보 마누라, 마누라는 전생에 무삼 죄로 이생에 날 만나 날 공대(恭待)허니 나는 편타 헐지라도 마누라 고생살이 도리어 불안하오. 사는 대로 살아가되 지원(至願)할 일이 있소. 우리 연장 사십(四十)이나 슬하(膝下) 일점혈육(一點血肉) 없어 조상(祖上) 향화(香火) 끊게 되고, 우리 내외(內外) 사후(死後)라도 초종장사(初終葬事) 소대기(小大朞)며, 연년(年年)이 오난 기일(忌日), 어느 뉘라서 받드리까. 우리가 사십 후(後)에라도, 명산대찰(名山大刹) 신공(申供)이나 드려, 남녀(男女) 간에 낳어 보았으면 평생 한(恨)을 풀겠구만.” 곽씨 부인 이 말 듣고 공손(恭遜)히 대답(對答)허되

 

[창조]

“가군(家君)의 정대(正大)하신 마음 몰라 발설(發說)치 못하였더니,

 

[아니리]

지금 말씀 그리허오니 지극(至極) 신공(申供)하오리다.”

 

[창조]

“옛글에 허였으되 불효삼천(不孝三千) 무후위대(無後爲大)라 허였으니

 

[아니리]

품을 팔고 뼈를 간들 무슨 일을 못 하오리까.” “거 정성껏 빌어 보오.”

 

[중모리]

곽씨 부인 그날부터 품 팔아 모인 제물 왼갖 공을 다 드릴 제, 명산대찰 영신당(靈神堂)과 고묘(古廟) 총사(叢祠) 석왕사(釋王寺)며, 석불(石佛) 미륵(彌勒) 서 계신 디 허유허유 다니시며, 가사시주(袈裟施主) 인등(引燈) 시주(施主), 창호(窓糊) 시주(施主) 십왕(十王) 불공(佛供), 칠성(七星) 불공(佛供) 나한(羅漢) 불공, 가지가지 다 허오니, 공(功)든 탑(塔)이 무너지며, 심든 남기 꺾어지랴? 갑자(甲子) 사월(四月) 초파일야(夜) 한 꿈을 얻은지라. 서기반공(瑞氣蟠空) 허고 오채(五彩)이 영롱(玲瓏)터니, 하날의 선녀(仙女) 하나 옥경(玉京)으로 나려올 제, 머리 위에 화관(花冠)이요, 몸에난 원삼(圓衫)이라, 계화(桂花) 가지 손에 들고, 부인(夫人) 전(前) 배례(拜禮)허고 곁에 와 앉난 거동, 뚜렷한 달 정신(精神)이 산상(山上)의 솟아난 듯, 남해(南海) 관음(觀音)이 해중(海中)에 다시 온 듯 심신(心身)이 황홀(恍惚/慌惚)허여 진정(鎭靜)키 어렵더니, 선녀(仙女)의 고운 태도(態度) 호치(皓齒)를 반개(半開)허고, 쇄옥성(碎玉聲)으로 말을 헌다. “소녀는 서왕모(西王母) 딸이려니, 반도(蟠桃) 진상(進上) 가는 길에, 옥진(玉眞) 비자 잠깐 만나, 수어(數語) 수작(酬酌)을 허옵다가, 시(時)가 조끔 늦은 고(故)로, 상제(上帝)께 득죄(得罪)허여 인간(人間)에 내치심에 갈 바를 몰랐더니, 태상노군(太上老君) 후토부인(后土夫人), 제불(諸佛) 보살(菩薩) 석가(釋迦)님이 댁(宅)으로 지시(指示)허여 이리 찾어 왔사오니 어엿비 여기소서.” 품 안에 달려들어 놀래어 깨달으니 남가일몽(南柯一夢)이라.

 

[아니리]

양주(兩主) 몽사(夢事)를 의논(議論)허니, 내외(內外) 꿈이 꼭 같은지라, 그달부터 태기(胎氣)가 있난디,

 

[늦은중중모리]

석부정부좌(席不正不坐), 할부정불식(割不正不食), 이불청음성(耳不聽淫聲) 목불시악색(目不視惡色) 좌불중석(坐不中席) 십(十) 삭일(朔日)이 찬 연후(然後)에

 

[중중모리]

하루난 해복(解腹) 기미(幾微/機微)가 있구나, “아이고 배야, 아이고 허리야.” 심 봉사 좋아라고, 일변(一邊)은 반갑고 일변은 겁(怯)을 내어 밖으로 우르르 나가더니, 짚 한 줌 쑥쑥 추려 정화수(井華水) 새 소반(小盤)에 받쳐 놓고, 좌불안석(坐不安席) 급(急)한 마음, 순산(順産)허기를 기다릴 제, 향취(香臭)가 진동(震動)허고, 채운이 두르더니 혼미(昏迷) 중 탄생(誕生)허니, 선인(仙人) 옥녀(玉女) 딸이라.

 

[아니리]

곽씨 부인 정신 차려, 순산은 하였으나,

 

[창조]

“만득(晩得)으로 낳은 자식(子息) 남녀 간(間)에 무엇이오?”

 

[아니리]

심 봉사가 눈 밝은 사람 같고 보면, 아이를 낳을 때 분간(分揀)을 허련마는 앞 못 보는 맹성이라 보아 알 수가 있나, 아이를 만져보려 헐 제, 꼭 위장꾼 좀장 졸라 내려가듯 허것다. “자 어디 보자, 어디, 어이쿠.” 거침새 없이 미끈덕 넘어가니, “아마도 마누라 같은 사람 났는가 보오.”

 

[창조]

“만득으로 낳은 자식 딸이라니 원통(冤痛)하오.”

 

[아니리]

“여보 마누라, 그런 말 마오. 아들도 잘못 두면 욕급선영(辱及先塋) 허는 것이고, 딸도 잘만 두면 아들 주고 바꾸리까? 우리 이 딸 고이 길러, 예절(禮節) 범절(凡節) 잘 가르쳐, 침선(針線) 방적(紡績) 잘 시켜, 요조숙녀(窈窕淑女) 군자호구(君子好逑) 좋은 배필, 부귀다남(富貴多男) 허고 보면 외손봉사(外孫奉祀)는 못 허리까? 그런 말 마오.” 심 봉사 좋아라고, 첫국밥 얼른 지어 삼신상(三神床)에 받쳐 놓고 비난디, 이런 사람 같으면 오죽 조용히 빌련마는, 앞 못 보는 맹성이라, 팩성질이 있든가 보더라. 삼신제왕(三神帝王)님이 깜짝 놀라 삼천(三千) 구만리(九萬里)나 나 도망허게 빌것다,

 

[자진모리]

“삼십삼천(三十三天) 도솔천(兜率天) 삼불(三佛) 제석(帝釋) 삼신제왕(三神帝王)님네 하위동심 하여, 다 굽어보옵소서.

 

[자진중중모리]

사십 후에 낳은 자식, 한 달 두 달 이슬 맺어, 석 달의 피 어리고, 넉 달의 인형(人形) 삼겨, 다섯 달 오포(五胞) 낳고, 여섯 달에 육정(六精) 삼겨, 일곱 달 칠규(七竅) 열려, 여덟 달에 사만(四萬) 팔천(八千) 털이 나고, 아홉 달에 구규(九竅) 열려, 열 달 만으 찬김 받어, 금강문(金剛門) 하달문 고이 열어 순산(順産)허니, 삼신(三神)님 넓으신 덕택 백골난망(白骨難忘) 잊으리까? 다만 독녀(獨女) 딸이오나, 동방삭(東方朔)의 명(命)을 주고 태임(太任)의 덕행(德行)이며 대순(大舜) 증자(曾子) 효행(孝行)이며, 기량(杞梁) 일처(一妻) 절행(節行)이며, 반희(班姬)의 재질(才質)이며, 촉부단의 복(福)을 주어, 외 붇듯 달 붇듯 잔병(病) 없이 잘 가꾸어 일취월장(日就月將)허게 허옵소서.”

 

[아니리]

그때여 심 봉사는 피도 안 마른 애기를 한번 안고 어뤄 보는디

 

[늦은중중모리]

둥둥둥, 내 딸이야. 어허 둥둥 내 딸이야. 둥둥둥 어허 둥둥 내 딸이야. 금(金)을 준들 너를 사며, 옥(玉) 준들 너를 사랴. 백미(白米) 닷 섬에 뉘 하나, 열 소경 한 막대로구나. 둥둥 내 딸이야. 어덕 밑에 귀남(貴男)이 아니냐. 슬슬 기어라. 어허, 둥둥 내 딸이야. 둥둥둥, 오호 둥둥 내 딸이야.

 

[아니리]

그때의 곽씨 부인은 산후에 손데 없어 찬물에 빨래를 허였드니, 뜻밖에 산후별증(産後別症)이 일어나는디, 전신을 꼼짝달싹 못 허고,

 

[창조]

“아이고 다리야, 아이고 허리야, 아이고 머리야, 사대(四大)삭신 육천 마디 아니 아픈 디가 전이 없네.”

 

[아니리]

곽씨 부인 생각허니, 아무리 허여도 살길이 없는지라.

 

[진양조]

가군(家君)의 손길 잡고, 유언(遺言)허고 죽든이라. “아이고 여보, 가장(家長)님, 내 평생(平生) 먹은 마음, 앞 못 보는 가장님을, 해로(偕老) 백년(百年) 봉양(奉養)타가, 불행망세(不幸亡世) 당(當)하오면, 초종장사(初終葬事) 마친 후에 뒤를 좇아 죽자 터니, 천명(天命)이 이뿐인지 인연(因緣)이 끊쳤는지 하릴없이 죽게 되니, 눈을 어이 감고 가며 앞 어둔 우리 가장 헌옷 뉘라 지어주며, 조석(朝夕) 공대(恭待) 뉘라 허리. 사고무친(四顧無親) 혈혈단신(孑孑單身) 의탁(依託)헐 곳 바이없어 집팽막대 흩어 짚고 더듬더듬 다니시다, 구렁에도 떨어지고 돌의 채여 넘어져서, 신세(身世/身勢) 자탄(自歎/自嘆) 우는 모양 내 눈으로 본 듯허고, 기한(飢寒)을 못 이기어 가가문전(家家門前) 다니시며, 밥 좀 주오, 슬픈 소리 귀에 쟁쟁 들리난 듯, 나 죽은 혼백(魂魄)인들 차마 어이 듣고 보리, 명산대찰(名山大刹) 신공(申供) 드려, 사십 후에 낳은 자식, 젖 한 번도 못 먹이고 얼굴도 채 모르고 죽단 말이 웬 말이오. 이 일 저 일을 생각하니, 멀고 먼 황천(黃泉)길을 눈물겨워 어이 가며, 앞이 막혀 어이 가리. 여보시오, 가장님. 뒷마을 귀덕 어미, 정친(情親)허게 지냈으니, 저 자식을 안고 가서 젖 좀 먹여 달라 허면, 괄세 아니 허오리다. 이 자식이 죽지 않고, 제 발로 걸커들랑 앞을 세고 길을 물어 내 묘(墓) 앞에 찾아와겨 ‘아가, 이 무덤이 너의 모친(母親) 분묘(墳墓)로다’ 가르쳐, 모녀(母女) 상면(相面)을 허게 허오. 헐 말은 무궁(無窮)허나 숨이 가퍼 못 허겄소.”

 

[아니리]

앞 어둔 가장에게 어린 자식 제쳐 두고 유언허고 돌아눈다.

 

[중모리]

“아차, 아차, 내 잊었소. 저 아이 이름일랑 청(淸)이라고 불러 주오. 저 주랴 지은 굴레, 오색(五色) 비단(緋緞) 금자(金字) 박어, 진옥판(眞玉板) 홍사(紅絲) 수(繡)실, 진주(眞珠) 느림 부전 달아 신행(新行) 함(函)에 넣었으니, 그것도 씌어주고, 나라에서 하사(下賜)허신, 크나큰 은(銀)돈 한 푼, 수복강녕(壽福康寧) 태평(泰平) 안락(安樂) 양편(兩便)에 새겼기로, 고운 홍전(紅氈) 괴불줌치, 끈을 달아 두었으니, 그것도 채여 주고, 나 찌던 옥지환(玉指環)이 손에 적어 못 찌기로 농(籠) 안에 두었으니, 그것도 찌어 주오.” 한숨 쉬고 돌아누워 어린아이를 끌어다 낯을 한테 문지르며, “아이고, 내 새끼야. 천지도 무심(無心)허고 귀신(鬼神)도 야속(野俗)허지, 네가 진즉(趁卽) 삼기거나, 내가 조금 더 살거나, 너 낳자 나 죽으니, 가이없는 궁천지통(窮天之痛)을 널로 허여 품게 되니, 죽난 어미 산 자식이 생사(生死) 간의 무슨 죄냐. 내 젖 망종(亡終) 많이 먹어라.” 손길을 스르르 놓고, 한숨 기워 부는 바람 삽삽비풍(颯颯悲風) 되어 불고, 눈물 맺어 오난 비는 소소세우(蕭蕭細雨) 되었어라. 폭각질 두세 번에 숨이 덜컥 지는구나.

 

[아니리]

그때여 심 봉사는 아무런 줄 모르고 “여보 마누라. 사람이 병(病)든다고 다 죽을 리가 있겠소. 나 의가(醫家)에 가서 약(藥) 지어 올 터이니, 부디 안심허오.” 심 봉사 급한 마음에 의가에 가서 약을 지어 돌아와, 수일승전반(水一升煎半)에 얼른 짜 들고 방으로 들어가서 “여보 마누라, 일어나 약 자시오. 이 약 자시면 즉효(卽效) 허리라 허옵디다.” 아무리 부른들 죽은 사람이 대답이 있으리오. “어! 식음을 전폐(全廢)터니 기허(氣虛)허여 이러는가?” 양팔에 힘을 주어 일으키랴 만져보니, 허리는 뻣뻣하고 수족은 늘어져 콧궁기 찬김 나니, 그제야 죽은 줄 알고 심 봉사가 뛰고 미치는디, 서럼이라는 게 어지간해야 울음도 울고 눈물도 나는 것이지, 사뭇 아람이 차노면 울도 못허고 뛰고 미치는 법이었다.

 

[중중모리]

심 봉사 기(氣)가 막혀 섰다 절컥 주잕이며 들었던 약그릇을 방바닥에다 내던지고, “아이고, 마누라. 허허, 이것이 웬일이냐? 약 지러 갔다 오니 그새에 죽었네. 약능활인(藥能活人)이요, 병불능살인(病不能殺人)이라더니, 약이 도리어 원수로다. 죽을 줄 알았으면 약 지러도 가지 말고 마누라 곁에 앉어, 서천(西天) 서역(西域) 연화세계(蓮花世界) 환생차(環生次)로 진언(眞言) 외고 염불(念佛)이나 허여 줄걸 절통(切痛)허고 분(憤/忿)하여라.” 가삼 쾅쾅 뚜다려, 목제비질을 떨컥, 내리둥글 치둥글며, “아이고, 마누라, 저걸 두고 죽단 말이오? 동지(冬至)섣달 설한풍(雪寒風)에 무얼 입혀 길러 내며 뉘 젖 먹여 길러 낼거나 꽃도 졌다 다시 피고, 해도 졌다 돋건마는 마누라 한번 가면 어느 년(年) 어느 때 어느 시절에 오랴나. 삼천(三千) 벽도(碧桃) 요지연(瑤池宴)의 서왕모(西王母)를 따라가, 황릉(黃陵) 묘(廟) 이(二) 비(妃) 함께 회포(懷抱) 말을 허러 가, 천상(天上)에 죄(罪)를 짓고, 공(功)을 닦고 올라가. 나는 뉘를 따라갈거나.” 밖으로 우루루 나가더니 마당에 엎드려지더니, “아이고, 동네 사람들! 차소에 계집 추는 놈 미친놈이라 허였으되, 현철(賢哲)허고 얌전한 우리 곽 씨가 죽었소!” 방으로 더듬더듬 더듬더듬 들어가 마누라 목을 덥석 안고 낯을 대고 문지르며, “아이고, 마누라. 재담(才談)으로 이러나, 농담(弄談)으로 이러나. 실담(失談)으로 이러는가 이 지경이 웬일이여. 내 신세는 어쩌자고 이 죽엄이 웬일이오!”

 

[아니리]

동리 사람들이 모여들어 “여보시오, 봉사님, 사자(死者)는 불가부생(不可復生)이라, 죽은 사람 따라가면 어린 자식 어쩌시랴오?” 곽씨 부인 어진 마음 동네 남녀노소(男女老少) 모여들어 초종지례(初終之禮)를 마치난디, 곽 씨 시체(屍體) 소방상(小方牀) 대뜰 위에 덩그렇게 올려놓고, 명정(銘旌) 공포(功布) 삽선(翣扇) 등물(等物) 좌우(左右)로 갈라 세우고 문상(問喪)을 허여 가는디, 상(喪)부 소리를 맞아가며 나가것다.

 

[창조]

영이기가(靈輀旣駕) 왕즉유택(往卽幽宅) 재진견례(載陳遣禮) 영결종천(永訣終天) 관음보살(觀音菩薩). 춘초(春草)는 연년(年年)이 푸르건만 왕손(王孫)도 귀불귀(歸不歸)라. 관음보살.

 

[중모리]

요령(鐃鈴/搖鈴)은 땡그랑, 땡그랑, 땡그랑. “어허 넘차 너화너. 어너 어허 너엄 어이 가리 넘차 너화너. 북망산천(北邙山川)이 멀다더니 저 건너 안산(案山)이 북망(北邙)이로구나. 어 넘차 너화너. 새벽 종다리 쉰 질 떠 서천(西天) 명월(明月)이 다 밝아온다. 어 넘차 너화너. 인제 가면은 언제나 올라요 오시만 날을 일러 주오. 어너 어허 너엄 어이 가리 넘차 너화너. 물가 가재는 뒷걸음치고 다람쥐 앉어서 밤을 줍는디, 원산(遠山) 호랑이 술주정을 허네. 어 넘차 너화너. 인경 치고 파루(罷漏)를 치니 각(各) 댁(宅) 하님이 개문(開門)을 헌다. 어 넘차 너화너. 어너 어너 어허너 어허너 어너 어이 가리 넘차 너화너.” 그때의 심 봉사는 어린아이를 강보(襁褓)에 싸 귀덕 어미에게 맡겨두고, 곧 죽어도 굴관(屈冠) 제복(祭服) 지어 입고, 상(喪)부 뒤채를 검쳐 잡고, “아이고 마누라, 마누라! 날 버리고 어디 가오. 나도 가지, 나도 가지, 마누라 따라서 나도 가세. 산첩첩(山疊疊) 노망망(路茫茫)으 다리가 아퍼서 어이 가며, 일침침(日沈沈) 운명명(雲冥冥)에 주점(酒店)이 없어서 어이 가리. 부창부수(夫唱婦隨) 우리 정분(情分) 날과 함께 가사이다.” 상여(喪輿)는 그대로 나가며 어허 넘차 너화너.

 

[중중모리]

어너 어너 어이가리 넘차 너화넘. “여보소 친구네들, 세상사가 허망(虛妄)허네. 자네가 죽어도 이 길이요 내가 죽어도 이 팔자(八字)로다. 어넘차 너화너. 현철(賢哲)허신 곽씨 부인 불쌍허게 떠나셨네. 어넘차 너화너. 어너 어허 너엄, 어이가리 넘차 너화넘.”

 

[아니리]
산천에 올라가 깊이 파고 안장(安葬) 후에 평토제(平土祭)를 지낼 적에, 심 봉사가 이십(二十) 후(後) 안맹(眼盲)이라 예전 글이 문장(文章)이었든가 보더라. 축문(祝文)을 지어 신세 자탄으로 독축(讀祝)을 허는디.

 

[창조]

“차호(嗟乎) 부인(夫人), 차호 부인, 요차요조숙녀혜(淑女兮)여, 상불고이고인이라, 기백년지해로(期百年之偕老) 터니, 홀연몰혜(忽然沒兮)어언귀요. 유치자이영서(有稚子而永逝) 허니, 이걸 어이 길러 내며, 누삼삼이첨금혜(沾襟兮)여, 지난 눈물 피가 되고, 심경경이소혼혜(心耿耿而消魂兮)여, 살길이 전이 없네.

 

[진양조]

주과포혜(酒果脯醯) 박찬 허나, 만사(萬事)를 모다 잊고 많이 먹고 돌아가오.” 무덤을 검쳐 안고, “아이고, 여보 마누라. 날 버리고 어디 가오. 마누라는 나를 잊고 북망산천 들어가 송죽(松竹)으로 울을 삼고 두견(杜鵑)을 벗을 삼어 나를 잊고 누웠으나, 내 신세를 어이허리. 노이무처(老而無妻) 환부(鰥夫)라니, 사궁(四窮) 중에 첫머리요, 아들 없고 눈 못 보니, 몇 가지 궁(窮)이 되단 말가?” 무덤을 검쳐 안고 내리동글 치둥굴며, 함께 죽기로만 작정을 헌다.

 

[아니리]

동네 사람들이 만류(挽留)허며, “여보시오, 봉사님, 사자(死者)는 불가부생(不可復生)이라. 죽은 사람 따라가면 어린 자식 어쩌시랴오. 어서어서 가옵시다.”

 

[창조]

심 봉사 하릴없이, 동인(洞人)들께 붙들리어

 

[중모리]

집이라고 들어오니, 부엌은 적막(寂寞)허고, 방안은 텅 비었는디. 심 봉사 실성(失性) 발광(發狂) 미치는디, 얼사덜사 춤도 추고, 허허, 웃어도 보며, 지팽막대 흩어 짚고 이웃집 찾어가서, “여보시오, 부인님네, 혹 우리 마누라 여기 안 왔소?” 아무리 부르고 다녀도 종적(蹤跡/蹤迹)이 바이없네. 집으로 돌아와서 부엌을 굽어보며, “여보, 마누라. 마누라 마누라!” 방으로 들어가서 쑥내 향내 피워 놓고 마누라를 부르면서 통곡(痛哭/慟哭)으로 울음을 울 제, 그때의 귀덕 어미 아이 안고 돌아와서, “여보시오, 봉사님. 이 아이를 보시드래도, 그만 진정(鎭靜)하시오.” “허허, 귀덕이넨가? 이리 주소 어디 보세. 종종 와서 젖 좀 주소.” 귀덕 이네는 건너가고, 아이 안고 자탄(自歎/自嘆)할 제, 강보(襁褓)에 싸인 자식은 배가 고파 울음을 우니, 심 봉사 기가 막혀, “아이고 내  새끼야, 너의 모친 먼 디 갔다. 낙양(洛陽) 동촌(東村) 이화정(梨花亭)에 숙(淑) 낭자(娘子)를 보러 갔다. 죽상제루[竹上之淚] 오신 혼백(魂魄) 이(二) 비(妃) 부인(夫人) 보러 갔다. 가는 날은 안다마는 오마는 날은 모르겠다. 우지 마라, 우지 마라. 너도 너의 모친이 죽은 줄을 알고 우느냐, 배가 고파 우느냐? 강목수생(剛木水生)이로구나. 내가 젖을 두고 안 주느냐, 그저 응아, 응아, 응아!” 심 봉사 화가 나서 안었던 아이를 방바닥에다 밀어 놓고 “죽거라, 썩 죽어라! 네 팔자가 얼마나 좋으면, 아 그 초칠(初七) 안에 어미를 잃어야? 너 죽으면 나도 죽고, 나 죽으면 너도 못 사리라.” 아이를 도로 안고, “아가. 우지 마라, 어서어서 날이 새면 젖을 얻어먹여 주마. 우지 마라 내 새끼야.”

 

[아니리]

그날 밤을 새노라니, 어린아이는 기진(氣盡)허고, 어둔 눈은 더욱 침침(沈沈)허여 날 새기를 기다릴 제,

 

[중중모리]

우물가 두레박 소리 얼른 듣고 나설 적에, 한 품에 아이를 안고 한 손의 지팽이 흩어 짚고 더듬더듬 더듬더듬 우물가 찾어가서 “여보시오, 부인(夫人)님네, 이 애 젖 좀 먹여 주오. 초칠 안에 어미 잃고 기허(氣虛)허여 죽게 되니, 이 애 젖 좀 먹여 주오.” 우물가에 오신 부인 철석(鐵石)인들 아니 주며 도척(盜跖)인들 아니 주랴. 젖을 많이 먹여 주며, “여보시오, 봉사님.” “예.” “이 집에도 아이가 있고, 저 집에도 아이가 있으니, 어려이 생각 말고 자주자주 다니시면 내 자식 못 멕인들 차마 그 애 굶기리까?” 심 봉사 좋아라고, “허허, 고맙소. 수복강녕(壽福康寧)허옵소서.” 이 집 저 집을 다닐 적에 삼베길쌈허노라고 흐히, 하히 웃음소리 얼른 듣고 들어가 “여보시오, 부인님네. 인사는 아니오나, 이 애 젖 좀 먹여 주오.” 오뉴월 뙤약볕에 기음매는 부인들께 더듬더듬 찾어가서 “이 애 젖 좀 먹여 주오.” 백석청탄(白石淸灘) 시냇가에 빨래하는 부인들께 더듬더듬 찾어가서, “이 애 젖 좀 먹여 주오.” 젖 없는 부인들은 돈 돈씩 채워주고, 돈 없는 부인들은 쌀 되씩 떠 주며 “맘 쌀이나 허여 주오.” 심 봉사 좋아라고 “어허 고맙소. 수복강녕허옵소서.” 젖을 많이 먹여 안고 집으로 돌아올 제, 어덕 밑에 수풀에 앉어 아이를 어룬다. “아이고, 내 딸 배부르다. 배가 뺑뺑하구나! 이 덕이 뉘 덕이냐 동네 부인의 덕이라. 어려서 고생을 허면 부귀다남(富貴多男)을 한다더라. 너도 어서어서 자라나서, 너의 모친(母親) 닮아 현철(賢哲)허고, 얌전허여 애비 귀염을 보이어라.

 

[늦은중중모리]

둥둥둥, 내 딸이야. 어허 둥둥 내 딸이야. 둥둥둥 어허 둥둥 내 딸이야. 금(金)을 준들 너를 사며, 옥(玉) 준들 너를 사랴. 백미(白米) 닷 섬에 뉘 하나, 열 소경 한 막대로구나. 둥둥 내 딸이야. 어덕 밑에 귀남(貴男)이 아니냐. 슬슬 기어라. 어허, 둥둥 내 딸이야. 둥둥둥, 오호 둥둥 내 딸이야.

 

[자진모리]

둥둥둥, 내 딸, 어허, 둥둥 내 딸. 어허 둥둥 내 딸. 이리 보아도 내 딸, 저리 보아도 내 딸. 엄마 아빠 도리도리, 주얌주얌. 잘강잘강 선마 둥둥 내 딸. 서울 가 서울 가 밤 하나 얻어다, 두룸박 속에 넣었더니, 머리 감은 새앙쥐가 들랑달랑 다 까먹고 다만 한쪽이 남았기에 한쪽은 내가 먹고 한쪽은 너를 주마, 우루 루루루루,

 

[늦은중중모리]

둥둥둥, 오호 둥둥 내 딸이야.”

 

[아니리]

아이 안고 집으로 돌아와 보단 덮어 뉘어 놓고, 동냥차(次)로 나갈 적에,

 

[단중모리]

삼베 전대(纏帶) 외동 지어 왼 어깨 들어 메고, 동냥차(次)로 나간다. 여름이면 보리동냥, 가을이면 나락 동냥, 어린아이 맘죽차(次)로 쌀 얻고 감을 사, 허유허유 돌아올 제, 그때의 심청이난, 하늘의 도움이라 일취월장(日就月將) 자라날 제, 십여(十餘) 세(歲)가 되어가니, 모친의 기제사(忌祭祀)를 아니 잊고 헐 줄 알고, 부친(父親)의 공양사(供養事)를 의법이 허여 가니, 무정세월(無情歲月)이 이 아니냐.

 

2. 심청

 

[아니리]

 

하로난 심청이 부친 전(前)에 단정(端正)히 꿇어 앉아, “아버지.” “웨야?” “아버지 오날부터는 아무 데도 가시지 마옵시고 집에 가만히 계시오면, 제가 나가 밥을 빌어 조석공양(朝夕供養)하오리다.” “여보아라, 청아. 내 아무리 곤궁(困窮)헌들 무남독녀(無男獨女) 너 하나를 밥을 빈단 말이 될 말이냐? 워라 워라, 그런 말 마라.”

 

[중모리]

“아버지 듣조시오. 자로(子路)난 현인(賢人)으로, 백(百) 리(里)에 부미(負米) 허고, 순유의(淳于意) 딸 제영(緹縈)이난 낙양옥(洛陽獄)에 갇힌 아비, 몸을 팔아 속죄(贖罪)허고, 말 못 하는 까마귀도 공림(空林) 저문 날에 반포은(反哺恩)을 헐 줄 아니, 하물며 사람이야 미물(微物)만 못허리까. 다 큰 자식 집에 두고 아버지가 밥을 빌면 남이 욕(辱)도 헐 것이요, 바람 불고 날 추운디, 행여 병(病)이 날까, 염려(念慮)오니 그런 말씀을 마옵소서.”

 

[아니리]

“여봐라, 청아. 너 이제 허는 말 어데서 다 들었느냐? 너의 어머니 배 속에서 죄다 배워 갖고 나왔느냐, 네 성의가 그럴진대, 한두 집만 다녀오너라.” 부친(父親)의 허락(許諾)을 받고,

 

[중모리]

심청이 거동 봐라. 밥 빌러 나갈 적에, 헌 베 중의(中衣) 다님 매고 말만 남은 헌 초마에, 깃 없는 헌 저고리, 목만 남은 질 보신에, 청목(靑木) 휘양 둘러쓰고, 바가지 옆에 찌고 바람맞은 병신처럼 옆 걸음 쳐 나갈 적에, 원산(遠山)의 해 비치고, 건넌마을 연기(煙氣) 일 제, 주적주적 건너가 부엌문 전(前) 다다르며 애근이 비는 말이 “우리 모친 나를 낳고 초칠(初七) 안에 죽은 후에, 앞 못 보신 우리 부친 저를 안고 다니시며, 동냥젖 얻어먹여, 이만큼이나 자랐으나, 앞 못 보신 우리 부친 구완헐 길 전이 없어 밥 빌러 왔사오니 한 술씩만 덜 잡숫고, 십시일반(十匙一飯) 주옵시면, 치운 방 우리 부친 구완을 허겄네다.” 듣고 보는 부인들이 뉘 아니 슬퍼허리. 그릇 밥 김치, 장을 애끼잖고 후(厚)히 주며, 혹은 먹고 가라 허니, 심청이 여짜오되, “치운 방 우리 부친 날 오기만 기다리니 저 혼자만 먹사릿까, 부친 전에 가 먹겄네다.” 한두 집이 족(足)헌지라, 밥 빌어 손에 들고 집으로 돌아올 제, 심청이 허는 말이 “아까 내가 나올 때는 원산의 해가 조끔 비쳤더니 벌써 해가 둥실 떠 그새 반일(半日)이 되었구나.”

 

[자진모리]

심청이 들어온다. 문전(門前)에 들어서며 “아버지, 칩긴들 아니 허며 시장킨들 안 허리까. 더운 국밥 잡수시오. 이것은 흰 밥이요, 저것은 팥밥이요, 미역튀각 갈치자반, 어머님 친구라고 아버지 갖다 드리라 허기로 가지고 왔사오니, 시장찮게 잡수시오.” 심 봉사 기가 막혀 딸의 손을 부여다 입에 대고 훅, 훅, 훅 불며 “아이고, 내 딸 춥다. 불 쬐어라. 모진 목숨이 죽지도 않고 이 지경이 웬일이냐. 너의 모친이 살았으면, 이런 일이 있겄느냐?”

 

[아니리]

부친을 위로(慰勞)허여 진지를 잡수시게 한 후, 세월(歲月)이 여류(如流)허여, 심청 나이 벌써 십오(十五) 세가 되었구나. 효행이 출천(出天)하고 얼굴이 일색(一色)이라, 이렇단 소문이 원근(遠近)에 낭자(狼藉)허니, 하로난 무릉촌(武陵村) 장 승상댁(丞相宅) 부인이 시비(侍婢)를 보내어 심청을 청(請)하였구나. 심청이 부친(父親) 전(前) 여짜오되, “아버지.” “웨야?” “무릉촌 장 승상댁 부인이 시비를 보내어 저를 청하였사오니 어찌하오리까?” 심 봉사 좋아라고 “이 애 청아, 그 댁 부인과 너의 모친과는 별친(別親)하게 지내었다. 네가 진즉(趁卽) 가서 뵈올 것을 이제 청하도록 있었구나. 어서 건너가되, 아미(蛾眉)를 단정히 숙이고 묻는 말이나 대답(對答)허고 수이 다녀오너라.” 부친의 허락을 받고,

 

[진양조]

시비(侍婢) 따라 건너간다. 무릉촌을 당도(當到)허여, 승상(丞相) 댁(宅)을 찾어가니, 좌편(左便)은 청송(靑松)이요, 우편(右便)은 녹죽(綠竹)이라. 정하(庭下)의 섰난 반송(盤松) 광풍(狂風)이 건듯 불면, 노룡(老龍)이 굼니난 듯. 뜰 지키는 백두루미 사람 자취 일어나서 나래를 땅의다 지르르르르르 끌며, 뚜루루룩 낄룩, 징검징검 알연성(戛然聲)이 거의허구나.

 

[중중모리]

계상(階上)의 올라서니, 부인이 반기 허여 심청 손을 부여잡고 방으로 들어가 좌(座)를 주어 앉힌 후에 “네가 과연 심청이냐?” 듣던 말과 같은지라, “무릉(武陵)에 내가 있고 도화동(桃花洞) 네가 나니, 무릉에 봄이 들어 도화동 개화(開化)로다. 이내 말을 들어봐라. 승상 일찍 기세(棄世)허고, 아들이 삼(三) 형제(兄弟)나 황성(皇城) 가 여환(旅宦) 허고 어린 자식(子息) 손자(孫子) 없어, 적적(寂寂)한 빈 방(房)안에 대하나니 촛불이요, 보는 것 고서(古書)로다. 니 신세를 생각허면 양반의 후예(後裔)로 저렇듯 곤궁(困窮)허니, 나의 수양(收養)딸이 되어 예공(禮功)도 숭상(崇尙)허고, 문필(文筆)도 학습허여 말년(末年) 재미를 볼까 허니 너의 뜻이 어떠허뇨?”

 

[아니리]

심청이 여짜오되, “모친 별세(別世)헌 연후(然後)에, 부친은 저를 아들 겸 믿사옵고, 저는 부친을 모친 겸 믿사오니, 분명 대답 못 하겠네다.” “기특(奇特)타, 내 딸이야. 나는 너를 딸로 아니, 너는 나를 어미로 알아다오.” 심청이 여짜오되,

 

[창조]

“치운 방 우리 부친 저 오기만 기다리니, 어서 건너 가겼네다.”

 

[아니리]

부인이 허락허고, 비단과 양식을 후히 주어 시비 함께 보낸지라. 그때의 심 봉사는 딸 오기만 기다릴 제,

 

[진양조]

배는 고파 등에 붙고, 방은 치워 한기(寒氣) 들 제, 먼 디 절 쇠북 소리, 날 저문 줄을 짐작(斟酌)허고, 딸 오기만 기다릴 제, “어찌하여 못 오느냐, 부인이 잡고 만류허느냐, 질에 오다 욕(辱)을 보나? 백설은 펄펄 흐날린디, 후후 불고 앉었느냐?” 새만 푸루루루, 날아들어도 “내 딸 청이 네 오느냐?” 낙엽만 버썩, 떨어져도 “내 딸 청이 네 오느냐?” 아무리 부르고 기다려도 적막공산(寂寞空山)에 인적(人跡/人迹)이 끊쳤으니, “내가 분명 속았구나.” 이년의 노릇을 어찌를 할거나, 신세 자탄으로 울음을 운다.

 

[자진모리]
“이래서는 못쓰겄다.” 닫은 방문 펄쩍 열고 집팽이 흩어 짚고, 더듬더듬 더듬더듬, 더듬더듬 나가면서 심청(沈淸)을 부르난디 “청아, 오느냐? 어찌허여 못 오느냐?” 그때의 심 봉사는 딸의 덕(德)에 몇 해를 가만히 앉아 먹어노니, 도랑 출입이 서툴구나. 지팽이 흩어 짚고 이리 더듬 저리 더듬 더듬더듬 나가다가, 질 넘어 개천(川) 물에 한 발 자칫 미끄러져 거꾸로 물에가 풍! “아이고, 사람 살려! 어푸, 도화동 사람들 심학규 죽네!” 나오라면 미끄러져 풍 빠져 들어가고, 나오라면 미끄러져 풍 빠져 들어가고 나오라면 미끄러져 풍 빠져 들어가고 그저 점점(漸漸) 들어가니, “아이고 잘 죽는다. 정신(精神)도 말끔허고 숨도 잘 쉬고 아픈 데 없이 잘 죽는다.”

 

[아니리]

한참 이리 요란(搖亂)헐 제.

 

[엇모리]

중 하나 올라간다. 중 하나 올라간다. 다른 중은 내려온디, 이 중은 올라간다. 이 중이 어디 중인고, 몽은사 화주승(化主僧)이라. 절을 중창(重創)허랴 허고 시주(施主) 집 내려왔다, 날이 우연(偶然)히 저물어져 흔들흔들 흔들거리고 올라갈 제, 저 중의 맵시 보소. 굴갓 쓰고, 장삼(長衫) 입고, 백팔염주(百八念珠) 목에 걸고, 단주(短珠) 팔에 걸어, 용두(龍頭) 새긴 육환장(六環杖), 채고리 많이 달아, 처절철 툭탁 짚고, 흔들흔들, 흐늘거리고 올라갈 제, 중이라 허는 게, 속가(俗家)에 가도 염불, 절에서도 염불, 염불을 많이 허면 극락세계(極樂世界) 간다더라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원산은 암암허고 설월(雪月)이 돋아 오는디, 백저포(白紵布) 도장삼(長衫)은 바람결에 펄렁펄렁 염불을 허는디, “아, 아, 아 어허어허허으으으 아아 하아 상래소수불공덕(上來所修佛功德) 회향삼처실원만(廻向三處悉圓滿) 원왕생(願往生) 원왕생 시불중천제갈영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염불(念佛)허고 올라갈 제, 한곳 당도하니, 어떠한 울음소리 귀에 얼른 들리거늘, 저 중이 깜짝 놀래 “이 울음이 웬 울음, 이 울음이 웬 울음? 마외역(馬嵬驛) 저문 날의 하소대로 울고 가는 양태진(陽太眞)의 울음이냐, 이 울음이 웬 울음, 여호가 변화하여 날 홀리는 울음인거나, 이 울음이 웬 울음?” 죽장(竹杖)을 들어 메고 이리 끼웃, 저리 끼웃 끼웃거리고 올라갈 제 한곳을 바라보니, 어떠한 사람이 개천(川) 물에 풍덩 빠져 거의 죽게가 되었구나.

 

[자진엇모리]

저 중의 급한 마음, 저 중의 급한 마음, 굴갓, 장삼 훨훨 벗어 되는 대로 내던지고, 보선, 행전, 다님 끄르고, 고두 누비바지 가래 따달 딸딸 걷어 자감이 딱 붙여, 무논의 백로(白鷺) 격(格)으로, 징검징검 징검거리고 들어가 심 봉사 꼬드래상투를 에뚜루미 쳐

 

[엇모리]

건져 놓고 보니 전에 보던 심 봉사라.

 

[아니리]
심 봉사 하릴없이, “죽을 사람을 살려 주니 은혜 백골난망(白骨難忘)이오, 거 뉘가 날 살렸소?” “예, 소승은 몽은사 화주승(化主僧)이온디, 시주(施主) 집 내려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다행히 봉사님을 구하였소.” “허허, 거 활인지불(活人之佛)이라더니 대사(大師)가 나를 살렸소그려.” 대사 이른 말이 “여보시오 봉사님. 꼭 내 말만 들으면 삼년 내로 두 눈을 뜰 것이오마는······.” 심 봉사가 눈 뜬단 말을 듣더니 “아니 그 어쩐 말이오?” “공양미(供養米) 삼백(三百) 석(石)만 우리 절에 시주허면 삼(三) 년(年) 내(內)로 눈을 뜨오리다.” 심 봉사가 눈 뜬단 말에 후사(後事)는 생각지 않고 대번 일을 저즐난디, “여, 대사, 자네 말이 꼭 그럴진대, 공양미 삼백 석을 권선문(勸善文)에 적소 적어.” 저 중이 어이없어 “봉사님 세력(勢力)을 헤아리면 삼백 석은 말고 삼백 주먹이 없는 이가 함부로 그런 말을 허시오?” 심 봉사 화를 내어 “어허, 자네가 내 수단(手段)을 어찌 아는가, 잔말 말고 적게 적어.” 저 중이 권선(勸善)에 적은 후(後)에 “여보시오 봉사님, 부처님을 속이면 앉은뱅이가 될 것이니 부디 명심(銘心)하오.”

 

[창조]

중은 올라가고 심 봉사는 집으로 돌아와 곰곰이 생각허니 이런 실(實)없는 일이 없든가 보드라.

 

[중모리]

“허허, 내가 미쳤구나. 정녕 내가 사(邪) 들렸네. 공양미 삼백 석을 내가 어찌 구허리오. 살림을 팔자 허니 단돈 열 냥(兩)을 누가 주며, 내 몸을 팔자 허니, 앞 못 보는 병신 몸을 단돈 서푼을 누가 주리. 부처님을 속이면은 앉은뱅이가 된다는디, 앞 못 보는 봉사 놈이 앉은뱅이가 되거드면, 꼼짝없이 내가 죽겄구나, 수중고혼(水中孤魂)이 될지라도 차라리 죽을 것을 공연한 중을 만나 도리어 내가 후회로구나, 저기 가는 대사, 권선의 쌀 삼백 석 지우고 가소, 대사!” 실성(失性) 발광(發狂) 기가 막혀 혼자 앉어 탄식헌다.

 

[자진모리]

심청이 들어온다. 문전(門前)에 들어서며 “아버지.” 저의 부친 모양(模樣) 보고 깜짝 놀래 발 구르며 “이것이 웬일이오? 살 없는 두 귀 밑에 눈물 흔적(痕迹) 웬일이며, 솜 없는 헌 의복에 물 흔적이 웬일이오. 나를 찾아 나오시다, 개천에 넘어져서 이 지경을 당하였소. 승상댁 노부인(老婦人)이 굳이 잡고 만류(挽留)허여 어언간(於焉間) 더디었소. 말을 허오 말을 허여 답답허여 못 살겄소.”

 

[아니리]

심 봉사 하릴없이 “여보아라, 청아. 아 너를 기다리다 못허여 더듬더듬 나가다가 이 앞 개천 물에 빠져 거의 죽게 되었을 제, 아 뜻밖에 몽은사 화주승이 올라가다 나를 구해주고, 날다려 공양미(供養米) 삼백 석만 몽은사로 시주(施主)허면 삼 년 내로 눈을 뜬다더구나 그리허여 후사(後事)는 생각지 않고 공양미 삼백 석을 권선(勸善)에 적어 주었으니 이를 어쩔거나. 아무리 생각허여도 백계무책(百計無策)이로구나.”

 

[중모리]

“아버지 듣조시오. 왕상(王祥)은 고빙(叩氷) 허여 어름 궁기 잉어 얻고, 맹종(孟宗)은 읍죽(泣竹) 허여 눈 속에 죽순 얻어 양친(兩親) 성효(誠孝)를 하였으며, 곽거(郭巨)라는 옛 사람은 부모(父母) 반찬(飯饌) 허여 놓으면, 제 자식(子息)이 먹는다고 산 자식을 묻으랴고 땅을 파다 금(金)을 얻어 부모 봉양(奉養)을 허였으니, 사친지효도(事親之孝道)가 옛사람만 못허여도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 그런 말씀을 마옵소서.”

 

[아니리]

부친을 위로(慰勞)하고 그날부터 목욕재계(沐浴齋戒) 정(淨)히 허고 지극정성(至極精誠)을 드리난디,

 

[진양조]

후원(後園)에 단(壇)을 뭇고 북두칠성자야반[北斗七星橫夜半]에 촛불을 돋워 켜고, 정화수(井華水)를 받쳐 놓고, 두 손 합장(合掌) 무릎을 꿇고 “비나니다, 비나니다. 하느님 전(前) 비나니다. 천지지신(天地之神) 일월성신(日月星辰) 화위동심(化爲動心) 하옵소서. 무자생(戊子生) 소녀 아비 삼십 전 안맹(眼盲)허여 오십이 장근(將近)토록 시물(視物)을 못 하오니, 아비의 허물은 심청 몸으로 대신(代身)허고, 아비 눈을 밝히소서. 인간의 충효지심(忠孝之心) 천신(天神) 어이 모르리까. 칠 일 안에 어미 잃고 앞 어둔 부친에게 겨우겨우 자라나서 십오 세가 되었으나, 욕보지덕(慾報之德)택인데 호천망극(昊天罔極)이라, 공양미 삼백 석만 불전에 시주허면 부친 눈을 뜬다 허니, 명천(明天)이 감동(感動)허여 공양미 삼백 석을 지급(支給)허여 주옵소서.”

 

[아니리]

이렇다시 빌어갈 제,

 

[중중모리]

하루난 문전의 웨난 소리 “우리는 남경(南京) 장사 선인(船人)으로 인당수(印塘水) 인(人) 제숙(‘제사에 쓰는 고기 따위’를 뜻하는 제주 방언, 『문학 속의 제주 방언』 참고)을 드리고저, 십오(十五) 세나 십육(十六) 세나 먹은 처녀(處女)를 사랴 허니, 몸 팔 일이 뉘 있읍나? 있으면 있다고 대답을 허시오, 아아 아어어 어어.”

 

[아니리]

심청이 이 말을 듣고 “천재일우(千載一遇)의 좋은 기회(機會)로구나.” 이웃사람 아잖게 몸을 은신(隱身)허고, 선인 한 사람을 청(請)하여 여짜오되,

 

[창조]

“여보시오 선인님네, 소녀난 당년(當年) 십오 세인데 부친을 위하여 몸을 팔려 하오니

 

[아니리]

나를 사 가심이 어떠하오?” 선인이 좋아라고, “출천지대효(出天之大孝)로고, 값은 얼마나 주오리까?”

 

[창조]

“더도 덜도 말고 공양미 삼백 석만 내월(來月) 십오(十五) 일(日) 날 몽은사로 올려주오.”

 

[아니리]

“참으로 효녀(孝女)로고, 그리하오. 그러나 우리도 내월 십오 일이 행선(行船) 날이오니 어찌하오리까?”

 

[창조]

“값을 받고 팔린 몸이 내 뜻대로 허오리까?”

 

[아니리]

선인과 약속을 정허고 방으로 들어가 생각허니, 부친을 아니 속일 수가 없는지라, 속인 것도 또한 효성(孝誠)이라, 부친을 속이는디, “아버지.” “웨야.” “오늘 공양미 삼백 석을 몽은사로 올리게 되었으니 아무 염려 마옵소서.” 심 봉사 깜짝 놀래 “아니, 거 어쩐 말이냐?” “전일(前日)에 무릉촌 승상댁 부인께서 저를 수양(收養)딸로 말씀한 걸 분명(分明) 대답(對答) 못 했지요.” “그래서?” “오날 제가 건너가 아버지 사정을 여쭈오니 부인께서 공양미 삼백 석을 몽은사로 올리시고 저를 수양딸로 다려간다 하옵디다.” “아따, 그 일 참 잘되었다. 그러면 언제 가기로 하였느냐?” “내월(來月) 십오 일에 가기로 하였네다.” “아, 그래. 근디 나는 어쩌고?” “아버지도 모시고 가기로 하였네다.” “그렇지, 눈먼 놈을 나 혼자만 둘 것이냐, 야야 그 일 참 잘되었다. 허허 그 일 참 잘 되었다.” 부친의 맺힌 근심 위로허고 행선 날을 기다릴 제,

 

[진양조]

눈 어둔 백발(白髮) 부친 생존(生存) 시(時)에 죽을 일과 사람이 세상(世上)에 나, 십오 세의 죽을 일을 생각허니, 정신이 막막허고 흉중(胸中)이 답답허여 하염없는 설음이 간장(肝腸)으로 솟아난다. 부친의 사시(四時) 의복(衣服) 빨래허여 농 안에 담어 두고, 갓 망근 다시 꾸며 쓰기 쉽게 걸어놓고, 행선일(行船日)을 생각허니, 하룻밤이 격(隔)헌지라. 모친 분묘(墳墓) 찾어가서, 주과포혜(酒果脯醯) 차려놓고, “아이고, 어머니. 불효(不孝) 여식(女息) 청이난 부친 눈을 띄우랴고 삼백 석 몸이 팔려 제숙으로 가게 되니, 불쌍헌 아버지를 차마 어이 잊고 가며, 분묘의 돋난 풀을 뉘 손으로 벌초(伐草)허며, 연년(年年)이 오난 기일(忌日) 뉘라서 받드리까? 내 손으로 부은 술을 망종(亡終) 흠향(歆饗)허옵소서.” 사배하직(四拜下直)허고 집으로 돌아와, 부친을 위로허고 밤 적적(寂寂) 삼경(三更)이 되니, 부친이 잠든지라 후원으로 돌아가서 사당(祠堂) 문을 가만히 열고 분향(焚香) 사배(四拜) 우는 말이 “불효 여식 청이는 선영향화(先塋香火)를 끊게 되니 불승영모(不勝永慕) 허옵니다.” 방으로 들어오니, 부친이 잠이 들어 아무런 줄 모르거날 심청이 기(氣)가 막혀 크게 울든 못허고 속으로 느끼난디 ‘아이고 아버지, 아버지를 어찌허고 가리. 이내 한 몸 없어지면 동네 걸인(乞人)이 또 될 것이니, 어찌 잊고 돌아가리, 아이고, 아버지, 날 볼 밤이 몇 밤이며, 날 볼 날이 몇 날이오.’ 얼굴도 대어 보고 수족(手足)도 만지면서 ‘아버지, 오늘밤 오경(五更) 시(時)를 함지(咸池)에 머무르고, 내일 아침 돋는 해를 부상(扶桑)에다 맬 양이면, 불쌍한 아부지를 일시(一時)라도 더 뵈련마는 인력(人力)으로 어이허리.’ 천지(天地)가 사정(事情)이 없어 벌써 닭이 꼬끼오. “닭아 우지 마라 반야(半夜) 진관(秦關) 맹상군(孟嘗君)이 아니어든 니가 울면 날이 새고 날이 새면 나 죽는다. 나 죽기는 설찮으나 의지(依支) 없는 우리 부친을 차마 어이 잊고 가리.

 

[중모리]

하량낙일수운기(河梁落日愁雲起)는 소통국(蘇通國)의 모자(母子) 이별(離別), 용산(龍山)의 형제(兄弟) 이별, 서출양관무고인(西出陽關無故人)이라. 상봉(相逢)헐 날이 있건마는 우리 부친 이별이야 어느 때나 다시 보리.”

 

[아니리]

벌써 동방(東方)이 밝어지니, 심청이 하릴없어 정신을 다시 차려 “이래서는 못쓰겠다. 부친 진지나 망종(亡終) 지으리라.” 허고 부엌으로 나오니 벌써 문밖에 선인들이 늘어섰거늘, 심청이 빨리 나가 “여보시오 선인님네, 부친 진지나 망종 지어 드리고 떠나는 것이 어떠허오.” 선인들이 허락허니 부엌으로 들어가서 아침밥을 얼른 지어 소반(小盤) 위에 받쳐 들고 방으로 들어가 “아버지 일어나 진지 잡수시오.” “야야, 오늘 아침밥은 매우 일쿠나. 그런디 청아 내가 간밤에 묘한 꿈을 꾸었지. 니가 큰 수레를 타고 끝없는 바다로 한없이 가 보이기에 아 내가 뛰고 궁글고 야단(惹端)을 쳤는디, 내 손수 해몽(解夢)허였지야. 수레라 허는 것은 귀인(貴人)이 타는 것이고, 꿈에 눈물은 생시에 술이라. 오늘 장 승상댁 부인께서 너 다려가려고 가마를 보내실 모냥이고, 나는 장 승상댁 부인한테 가서 술에다 고기에다 떡에다 참 잘 먹을 꿈이라고 내가 해몽을 했어.”

 

[창조]

심청이 저 죽을 꿈인 줄 짐작허고,

 

[아니리]

“아버지 그 꿈이 장(壯)히 좋습니다. 어서 진지 잡수시오.” “아가, 오늘 아침 반찬이 매우 걸구나, 거 누 댁에 제사(祭祀) 모셨더냐?” 진지 상(床)을 물리치고, 담배 붙여 올린 후에,

 

[창조]

심청이 아무 말도 못 하고 우두머니 앉었다가,

 

[아니리]

아무리 생각하여도 이제는 부친을 더 속일 수가 없는지라.

 

[자진모리]

심청이 거동 봐라. 부친 앞으로 우르르르르르 “아이고, 아버지!” 한 번 부르더니 말 못 허고 기절한다. 심 봉사 깜짝 놀래 “아이고, 이거 웬일이냐 허허, 이거 웬일이여. 아니 얘가 급체(急滯)허였는가, 아가 정신 차려라, 누가 봉사 딸이라고 정개허드냐.” “아이고, 아버지 불효(不孝) 여식(女息)은 아버지를 속였소.” “아, 이놈아, 속였으면 무슨 큰일을 속였난디 이렇게 아비를 놀라게 한단 말이냐? 말하여라, 답답허다. 말하여라.” “아이고 아버지 공양미 삼백 석을 누가 저를 주오리까. 남경 장사 선인들께 삼백 석에 몸이 팔려 인당수의 제숙으로 오늘이 행선 날이요. 어느 때나 뵈오리까.”

 

[아니리]
심 봉사가 이 말을 듣더니 눈 뜨기는커녕, 눈 빠질 말을 들었으니, 그 일이 어찌 되겄느냐?

 

[중중모리]

“허허 이것 웬 말이냐? 못 허지야 못 허여 아이고 청아! 애비 보고 묻도 않고, 너 이것이 웬일, 못 허지야 못 하여, 눈을 팔아 너를 살듸 너 팔아 눈을 뜬들 무엇 보자 눈을 뜨랴 철모르는 이 자식아, 애비 설움을 너 들어라. 너의 모친 너 낳고 칠 일 안에 죽은 후에 앞 못 본 늙은 애비가 품 안에 너를 안고 이 집 저 집 다니며 동냥젖 얻어먹여 이만큼이나 장성(長成) 묵은 근심 햇근심을 널로 허여 잊었더니, 이것이 웬일이냐. 나를 죽여 묻고 가면 갔지, 살려 두고는 못 가리라.” 그때의 선인들이 문밖에 늘어서 “심 낭자 물때 늦어 가오.” 성화같이 재촉허니 심 봉사 이 말 듣고 밖으로 우루루루루루 “에이, 무지한 놈들아! 장사도 좋거니와 사람 사서 제(祭)지낸 디 어디서 보았느냐? 옛글을 모르느냐? 칠년대한(七年大旱) 가물 적에 탕(湯) 임군 어진 마음 사람 잡어서 빌랴 허면 내 몸으로 대신 가리라, 몸으로 희생(犧牲) 되어 전조단발(剪爪斷髮) 신영백모(身嬰白茅) 상림(桑林) 뜰에 빌었더니 대우방수천리(大雨方數千里)에 풍년(豐年)이 들었단다. 나도 오늘 내 몸으로 대신 가리라. 아이고, 동네 사람들, 저런 놈들을 그저 둬, 내 딸 심청 어린 것을 꼬염 꼬염 꼬여다가 인당수 제숙 허면 네 이놈들 잘될쏘냐?” 목제비질을 떨컥 내리둥굴 치둥굴며 “아이고, 이거 웬일이여?” 심청이 기가 막혀 부친을 부여안고 “아이고 아버지, 지중한 부녀(父女) 천륜(天倫) 끊고 싶어 끊사오며 죽고 싶어 죽사릿까? 아버지는 눈을 떠서 대명천지(大明天地) 다시 보고 좋은 디 장가들어 칠십(七十) 생남(生男)허옵소서. 아이고 아버지, 아이고 아버지!”

 

[아니리]

선인들이 이 정상(情狀)을 보고, 전곡(錢穀)을 따로 내어 동인들께 부탁허되, 심 봉사 평생 먹고 입을 것을 내어 주었구나. 그때여 무릉촌 장 승상댁(丞相宅) 부인이 이 소식을 듣고 시비를 보내어 심청을 청하였거날 심청이 부친 전 여짜오되 “아버지 장 승상댁 부인이 청하였사오니 어찌하오리까?”

 

[창조]

“웟따, 그 댁에난 열 번이라도 가고 백 번이라도 가거라.”

 

[아니리]

선인들께도 말허고 무릉촌을 건너갈 제,

 

[세마치]
시비(侍婢) 따라 건너간다. 울며불며 건너갈 제 “아이고, 아이고, 내 신세야. 어떤 사람 팔자(八字) 좋아 양친(兩親)이 구존(俱存)허여 부귀영화(富貴榮華)로 잘사는듸, 내 신세는 어이허여 십오 세의 이 세상을 떠나는고.” 그렁저렁 길을 걸어 무릉촌을 당도허니, 부인이 영접(迎接)허여 “예이 천하(天下) 무정(無情)한 사람아! 나는 너를 딸로 여기는디 너는 나를 속였느냐? 효성은 지극(至極)허나 앞 못 본 너의 부친을 뉘게 의탁(依託)허랴느냐? 공양미 삼백 석을 지금 내가 줄 터이니, 선인들과 해약(解約)하라.” 심청이 여짜오되, “장사허는 선인들께 수삭(數朔) 만의 해약허면 선인들도 낭패(狼狽)오니, 이제 후회 쓸데 있소. 값을 받고 팔린 몸이 이제 두말허오리까.” 부인이 심청의 기색을 보고 다시 두말 못 허시고 “니 진정 그럴진대, 너의 화상(畵像)이나 그려 널 본 듯이 보겠노라.” 화공(畵工)을 즉시 불러 심 낭자(娘子) 생긴 형용 역력(歷歷)히 잘 그려라. 화공이 영(令)을 듣고 오색단청(五色丹靑) 풀어 놓고 화용월태(花容月態) 고운 얼굴 모란화(花) 한 송이가 세우(細雨) 중에 젖인 듯이, 난초 같은 푸른 머리 두 귀밑에 따인 것과 녹의홍상(綠衣紅裳) 입은 태도 낱낱이 그려 내어 족자(簇子) 떨어 걸어 놓으니, 심청이가 둘이로다. 부인이 화제(畵題)를 쓰시난디, 생기사귀일몽간(生奇死歸一夢間) 허니 연장하필누삼삼고 세간(世間)으 최유단장처(最有斷腸處)에 초록강남인미환(草綠江南人未還)이라. 부인이 심청을 부여안고 “인제 가면 언제나 올거나 오만 날이나 일러다오.”

 

[아니리]
심청이 일어서며

 

[창조]

“물때가 늦어가니 어서 건너가겄네다.”

 

[아니리]

부인이 허락허니 심청이 하직(下直)허고 집으로 돌아오니 선인들은 재촉하고 부친은 뛰고 궁글거늘, 심청이 하릴없이 동네 어른들께 부친을 의탁허고 길을 떠나는디.

 

[중모리]
따라간다. 따라간다. 선인들을 따라간다. 끌리는 초마 자락을 거듬거듬 걷어 안고 비같이 흐르난 눈물 옷깃에 모두 다 사무친다. 엎더지며 넘어지며 천방지축(天方地軸) 따라갈 제, 건넛마을 바라보며 “이 진사댁(進士宅) 작은 아가 작년 오월 단오야(端午夜)의 앵도(櫻桃/鶯桃/鸎桃) 따고 노든 일을 니가 행여 잊었느냐. 금년 칠월 칠석야(七夕夜)의 함께 걸교(乞巧)하잤드니 이제는 하릴없다. 상침(上針)질 수(繡)놓기를 뉠과 함께 허랴느냐. 너희는 양친이 구존(俱存)허니 모시고 잘 있거라. 나는 오날 우리 부친 슬하(膝下)를 떠나 죽으로 가는 길이로다.” 동네 남녀노소 없이 눈이 붓게 모도 울고 하ᄂᆞ님이 아옵신지 백일(白日)은 어디 가고 음운(陰雲)이 자욱허여 청산(靑山)도 찡그난 듯 초목(草木)도 눈물진 듯 휘늘어져 곱든 꽃이 이울고저 빛을 잃고 춘조(春鳥)는 다정(多情)허여 백반제송(百般啼送) 허는 중에 묻노라 저 꾀꼬리 뉘를 이별허였간디 환우성(喚友聲) 지어 울고, 뜻밖의 두견(杜鵑)이난 귀촉도(歸蜀道) 귀촉도 불여귀(不如歸)라. 가지 위에 앉어 울것마는 값을 받고 팔린 몸이 내가 어이 돌아오리. 한곳을 당도(當到)허니, 광풍이 일어나며 해당화(海棠花) 한 송이가 떨어져 심청 얼굴에 부딪치니 꽃을 들고 하는 말이 “약도춘풍불해의(若道春風不解意)면 하인취송낙화래(何因吹送落花來)라, 한 무제(武帝) 수양공주(壽陽公主) 매화장(梅花粧)은 있건마는 죽으러 가는 몸이 언제 다시 돌아오리. 죽고 싶어 죽으랴마는 수원수구(誰怨誰咎) 어이허리.” 걷는 줄을 모르고 울며불며 길을 걸어 강변(江邊)을 당도허니, 선두(船頭)에다 도판(渡板)을 놓고 심청을 인도허는구나.

 

3. 용궁

 

[아니리]

그때여 심청이난 세상사(世上事)를 하직허고 공선(供船)의 몸을 싣고 동서남북(東西南北) 지향(指向) 없이 만경창파(萬頃蒼波) 높이 떠서 영원(永遠)히 돌아가는구나.

 

[진양조]

범피중류(泛彼中流) 둥덩실 떠나간다. 망망(茫茫)헌 창해(滄海)이며, 탕탕(蕩蕩)헌 물결이라. 백빈주(白蘋洲) 갈마기는 홍료안(紅蓼岸)으 날아들고 삼강(三江)의 기러기는 한수(漢水)로 돌아든다. 요량(嘹喨)한 남은 소리 어적(魚笛)이 여기련만 곡종인불견(曲終人不見)에 수봉(數峰)만 푸르렀다. 애내성중만고심(欸乃聲中萬古心)은 날로 두고 이름인가. 장사(長沙)를 지내가니 가(賈) 태부(太傅) 간 곳 없고 멱라수(泊羅水)를 바라보니 굴(屈) 삼려(三閭) 어복충혼(魚腹忠魂) 무양(無恙)도 허시든가. 황학루(黃鶴樓)를 당도(當到)허니 일모향관하처시(日暮鄉關何處是)요, 연파강상사인수(煙波江上使人愁)는 최호(崔顥) 유적(遺跡)인가, 봉황대(鳳凰台)를 돌아드니 삼산반락청천외(三山半落青天外)요, 이수중분백로주(二水中分白鷺洲)넌 태백(太白)이 놀든 디요, 심양강(潯陽江)을 당도허니 백낙천(白樂天) 일거(一去) 후(後)에 비파성(琵琶聲)도 끊어지고 적벽강(赤壁江)을 돌아드니 소동파(蘇東坡) 노던 풍월(風月) 의구(依舊)허여 있다마는 조맹덕(曹孟德) 일세지웅(一世之雄) 이금(而今)에 안재재(安在哉)요 월락오제(月落烏帝) 깊은 밤에 고소성외(姑蘇城外) 배를 매니 한산사(寒山寺) 쇠북 소리 객선(客船)의 뎅 뎅 들리거늘, 진회수(秦淮水)를 바라보니 격강(隔江)의 상녀(商女)들은 망국한(亡國恨)을 모르고서 연롱한수월롱사(煙籠寒水月籠沙)에 후정화(後庭花)만 부르드라. 악양루(岳陽樓) 높은 집에 호상에 솟아난 듯 무산(巫山)에 돋은 달은 동정호(洞庭湖)로 비쳐오니 상하천광(上下天光)이 거울 속에 푸르렀다. 창오산(蒼梧山)이 아득허니 황릉(黃陵) 묘(廟) 잠겼어라. 삼협(三峽)의 잔나비는 자식 찾는 슬픈 소리 천객(遷客) 소인(騷人)이 눈물을 몇몇이나 뿌렸든고. 팔경(八景)을 다 본 후에,

 

[중모리]

한곳을 당도허니 향풍(香風)이 일어나며 죽림(竹林) 사이로 옥패(玉佩) 소리 들리더니 어떠한 두 부인(夫人)이 선관(仙冠)을 높이 쓰고 신음(呻吟) 거려 나오면서 “저기 가는 심 소저(小姐)야, 슬픈 말을 듣고 가라. 창오산붕상수절(蒼梧山崩湘水絕) 허여 죽상지루내가멸(竹上之淚乃可滅)이라. 천추(千秋)에 깊은 한을 하소할 곳 없었더니 오늘날 출천대효(出天大孝) 너를 보니 오죽이나 흠전(欽傳) 허랴. 요순(堯舜) 후(後) 기천(幾千) 년(年)의 지금의 천자(天子) 어느 뉘며 오현금(五絃琴) 남풍시(南風詩)를 이제까지 전하더냐. 수로(水路) 먼먼 길을 조심허여 잘 가거라.” 이난 뉜고 허니, 요녀순처(堯女舜妻) 만고(萬古) 열녀(烈女) 이(二) 비(妃)로다. 오강(吳江)을 바삐 건너 멱라수를 당도허니 한 사람이 나오난디, 키는 구 척(尺)이나 되고 면여거륜(面如車輪) 하여 미간(眉間)이 광활(廣闊)허고 두 눈을 감고 가죽을 무릅쓰고 우루루루루루루루 나오더니 “저기 가는 심 소저야, 슬픈 말을 듣고 가라. 슬프다. 우리 오(吳) 왕(王) 백비(伯嚭)의 참소(讒訴) 듣고 촉루검(屬鏤劍)을 나를 주어 목 찔러 죽은 후에 가죽으로 몸을 싸서 이 물에 던졌더니 장부의 원통(冤痛)함이 월병(越兵)의 멸오(滅吳) 함을 내 일즉 눈을 빼어 동문상(東門上)에 걸고 왔네. 세상에 나가거든 내 눈 찾어 전해다오, 천추에 원통함이 눈 없는 것이 한(恨)이로세.” 이는 뉜고 허니 오(吳)나라 충신 오자서(伍子胥)로다. 멱라수를 바삐 건너 또 한곳을 당도허니 어떠한 두 사람이 택반(澤畔)으로 나오드니 슬피 탄식(歎息) 우는 말이 진(秦)나라 속임 입어 삼 년 무관(武關)에 고국을 바라보며 미귀혼(未歸魂)이 되었더니 박락퇴성(博浪槌聲) 반기 듣고 속절없는 동정(洞庭) 달의 헛춤만 추었노라. 뒤에 오난 한 사람은 안색(顔色)이 초췌(憔悴)허고 형용(形容)이 고고(枯槁)허니 이난 초(楚)나라의 굴원(屈原)이라. 죽은 지 수천 년의 정백(精魄)이 남어 있어, 사람의 눈에 와 보이니 이도 또한 귀신이라 나 죽을 징조로다.

 

[진양조]

배의 밤이 몇 밤이며 물의 날이 몇 날이나 되든고, 무정한 사오(四五) 삭(朔)을 물과 같이 흘러가니, 금풍삽이석기(金風颯以夕起) 허고 옥우곽기쟁영(玉宇廓其崢嶸)이라. 낙하(落霞)는 여고목제비(與孤鶩齊飛) 허고 추수(秋水)는 공장천일색(共長天一色)이라, 강한(江漢)에 귤농(橘濃) 황금(黃金)이 천(千) 편(片) 노화(蘆花)의 풍기(風起) 허니 백설(白雪)이 만(萬) 점(點)이라, 신포세류(新蒲細柳) 지난 잎은 만강추풍(滿江秋風) 흐날리고 옥로청풍(玉露靑楓)은 불었는디. 외로울사 어선(漁船)들은 등불을 돋워 키고 어가(漁歌)로 화답(和答)허니 돋우나니 수심(愁心)이요, 해반(海畔) 청산(靑山)은 봉봉(峰峰)이 칼날 되어 뵈이나니 간장(肝腸)이라. 일락장사추색원(日落長沙秋色遠) 허니 부지하처조상군(不知何處吊湘君)고. 송옥(宋玉)의 비추부(悲秋賦)가 이에서 슬프리오. 동녀(童女)를 실었으니 진시황(秦始皇)의 채약(採藥) 밴가, 방사(方士)는 없었으나 한(漢) 무제(武帝)의 구선(求仙) 밴가. 지레 내가 죽자 허니 선인들이 수직(守直)허고, 살아 실려 가자 허니 고국(故國)이 창망(蒼茫)이라. 죽도 사도 못허는 신세(身世/身勢)야, 아이고 이 일을 어찌허리.

 

[엇모리]

한곳 당도허니 이난 곧 인당수(印塘水)라. 대천(大川) 바다 한 가운데 바람 불고 물결쳐 안개 뒤섞여 젖어진 날 갈 길은 천리만리(千里萬里)나 남고 사면(四面)이 검어 어둑 점글어져 천지(天地) 적막(寂寞)헌디 간치뉘 떠들어와 뱃전 머리 탕탕 물결은 와르르르르르 출렁출렁 도사공(都沙工) 영좌(領座) 이하 황황급급(遑遑急急)허여 고사(告祀) 기계(器械) 차릴 제, 섬쌀로 밥 짓고 온 소 잡고 동우술 오색탕수(五色) 탕수(湯水) 삼색실과(三色實果)를 방위(方位) 찾어 갈라놓고 산 돝 잡어 큰칼 꽂아 기는 듯이 바쳐 놓고 도사공 거동 봐라. 의관(衣冠)을 정제(整齊)허고 북채를 양손에 쥐고

 

[자진모리]

북을 두리둥 두리둥 두리둥 둥둥둥 두리둥 두리둥 둥둥둥 헌원씨(軒轅氏) 배를 모아 이제불통(以濟不通) 한 연후에 후생(後生)이 본(本)을 받어 다 각기 위업(爲業)하니 막대(莫大)한 공 이 아니냐. 하우씨(夏禹氏) 구년지수(九年之水) 배를 타고 다사릴 제 오복(五服)에 정한 공수(貢輸) 구주(九州)로 돌아들고 오자서(吳子胥) 분오(奔吳) 헐 제 노가(蘆歌)로 건너주고, 해성(垓城)에 패(敗)한 장수(將帥) 오강(烏江)으로 돌아들어 의선대위(檥船待謂) 건너주고 공명(孔明)의 탈조화(奪造化)는 동남풍(東南風) 빌어 내어 조조(曹操)의 백만(百萬) 대병(大兵) 주유(周瑜)로 화공(火攻)허니 배 아니면 어이허리. 그저 북을 두리둥 두리둥 둥둥둥 두리둥 두리둥 둥둥둥 주요요이경양(舟遙遙以輕颺) 허니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歸去來) 해활(海闊) 허니 고범지(孤帆遲)난 장한(張翰)의 강동거(江東去)요 임술지추(壬戌之秋) 칠월(七月)의 소동파 놀아 있고 지국총 총 어사와 허니 고예승류무정거(鼓枻乘流無定居)난 어부(漁父) 길검 계도난요하장포(桂棹蘭橈下長浦)난 오희월녀(吳姬越女) 채련주(採蓮舟)요 타고발선하군랑(打鼓發船何郡郎)의 상고선(商賈船)이 이 아니냐. 우리 선인 스물네 명 상고(商賈)로 위업(爲業)허여 경세우경년(經歲又經年)에 표박서남(漂泊西南)을 다니더니 오늘날 인당수(印塘水)에 인 제숙을 드리고저 동해신(東海神) 아명(阿明)이며 서해신(西海神) 거승(巨乘)이며 남해신(南海神) 축융(祝融)이며 북해신(北海神) 옹강(禺强)이며 강한지장(江漢之長)과 천택지군(川澤之君)이 하감(下瞰)허여 보옵소서 그저 북을 두리둥 두리둥 둥둥둥 두리둥 두리둥 둥둥둥 비렴(飛廉)으로 바람 주고 해약(海若)으로 인도(引導)허여 환난(患難) 없이 도우시고 백천만금(百千萬金) 퇴(堆)를 내어 돛대 위에 봉기(鳳旗) 꼽고 봉기 우에 연화(蓮花) 받게 점지허여 주옵소서 고사를 다 지낸 후에 “심 낭자 물에 들라.” 심청이 죽으란 말을 듣더니마는 “여보시오 선인(船人)님네, 도화동이 어디쯤이나 있소?” 도사공이 나서더니 손을 들어서 가르키난디 “도화동이 저기 운애(雲靉)만 자욱헌 디가 도화동일세.” 심청이 기(氣)가 막혀 사배(四拜)하고 엎드려지더니 “아이고 아버지. 불효 여식은 요만끔도 생각마옵시고 사는 대로 사시다가 어서어서 눈을 뜨셔 대명천지(大明天地) 다시 보고 좋은 데 장가들어 칠십(七十) 생남(生男)허옵소서. 여보시오 선인님네 억십만(億十萬) 금(金) 퇴를 내어 본국(本國)으로 돌아가시거든 불쌍헌 우리 부친 위로(慰勞)허여 주옵소서.” “글랑은 염려 말고 어서 급(急)히 물에 들라.” 성화(星火)같이 재촉허니

 

[휘모리]

심청이 거동(擧動) 봐라. 샛별 같은 눈을 감고 초마폭을 무릅쓰고 뱃전으로 우루루루루루 만경창파(萬頃蒼波) 갈마기 격(格)으로 떴다 물에가 풍!

 

[진양조]

해당(海棠)은 광풍(光風)으 날리고 명월(明月)은 해문(海門)에 잠겼도다. 영좌도 울고 사공(沙工/砂工)도 울고 격군(格軍) 화장(火匠)이 모도 운다. 장사도 좋거니와 우리가 연년(年年)이 사람을 사다가 이 물에 넣고 가니 후사(後事)가 어이 좋을 리가 있겄느냐 닻 감어라 어기야, 어기야, 어기어, 어기야, 어허기야, 우후청강(雨後淸江) 좋은 흥(興)을 묻노라 저 백구(白鷗)야, 홍료월색(紅蓼月色)이 어느 곳고 일강세우노평생(鷺平生)의 너는 어이 한가허드냐 범피창파(泛彼蒼波) 높이 떠서 도용도용(滔溶滔溶) 떠나간다.

 

[아니리]

그때에 이러한 출천지대효녀(出天之大孝女)를 하늘이 그저 둘 리 있겠느냐? 하로난 옥황상제(玉皇上帝)께서 사해용왕(四海龍王)을 불러 하교(下敎)하시되 “오늘 묘시(卯時)에 유리국(琉璃國) 심 소저가 인당수에 들 터이니 착실히 뫼셨다가 인당수로 환송하라.” 용왕이 수명(受命)하고 내려와 용궁(龍宮) 시녀(侍女)들을 불러 “너 이제 백옥교(白玉轎)를 가지고 인당수 빨리 나가 묘시를 기다리면 인간의 심 소저가 들 터이니 착실히 모셔 오너라.” 각궁(各宮) 선녀(仙女)들이 수명허고 인당수를 당도(當到)허니 때마침 묘시 초(初)라 그때의 심 소저는 물에 들듯 말듯 천지 명랑(明朗)허고 일월이 조림(照臨)커날 뜻밖에 팔선녀(八仙女)들이 백옥교를 앞에 놓고 예(禮)하며 여짜오되 “저희들은 용궁(龍宮) 시녀로서 부왕(父王)의 분부(分付) 듣고 소저를 뫼시고자 왔사오니 옥교(玉轎)를 타옵소서.” 심청이 여짜오되 “인간(人間)의 미천(微賤)한 사람으로 어찌 옥교를 타오리까?” “만일 아니 타면 상제께서 수궁(水宮) 대죄(大罪)를 내릴 테니 사양치 마옵소서.” 심 소저 마지못허여 옥교에 앉으니 수궁 풍류(風流)가 낭자(狼藉)헐 제

 

[엇모리]
위의(威儀)도 장(壯)할시구 천상(天上) 선관(仙官) 선녀들이 심 소저를 보려 허고 태을진(太乙眞) 학(鶴)을 타고 안기생(安期生) 난(鸞) 타고 고래 탄 이적선(李謫仙) 청의동자(靑衣童子) 황의동자(黃衣童子) 쌍쌍(雙雙)이 모였네. 월궁항아(月宮姮娥) 마고(麻姑) 선녀 남악(南岳/南嶽) 부인(夫人) 팔선녀(八仙女)들이 좌우(左右)로 벌렸는듸, 풍악(風樂)을 갖추울 제 왕자진(王子晋)의 봉(鳳) 피리 니나니나 니나누, 곽(郭) 처사(處士) 죽장구 찌지렁 쿵 쩡 쿵, 장자방(張子房)의 옥(玉)퉁수 띳띠루 띠루, 성연자(成連子) 거문고 슬기덩지 둥덩덩, 혜강(嵆康)의 혜금(嵆琴)이며 수궁이 진동헌다. 괘룡골이위량(挂龍骨以爲梁) 허니 영광(靈光)이 요일(耀日)이요, 집어린이작와(緝魚鱗而作瓦) 허니 서기반공(瑞氣蟠空)이라. 주궁패궐(珠宮貝闕)은 응천상지삼광(應天上之三光)이요, 곤의수상(袞衣繡裳)은 비인간지오복(備人間之五福)이라. 산호(珊瑚) 주렴(珠簾) 백옥안상(白玉案床) 광채(光彩)도 찬란허구나. 주잔을 드릴 적에 세상 음식이 아니라 유리잔(琉璃盞) 호박병(琥珀甁)의 천일주(千日酒) 가득 담고 한가운데 삼천(三千) 벽도(碧桃)를 덩그렇게 괴었으니 세상의 못 본 바라 삼일(三日)의 소연(小宴) 허고 오일(五日)에 대연(大宴) 허여 극진히 봉공(奉供) 헌다.

 

[아니리]
하루난 천상에서 광한전(廣寒殿) 옥진(玉眞) 부인(夫人) 내려오시난디, 이난 뉘신고 허니 심 봉사 아내 곽씨 부인이 죽어 광한전 옥진 부인이 되었난디, 심청이 수궁에 머물러 있단 말을 듣고 모녀 상봉차(相逢次)로 하강(下降)하시것다.

 

[진양조]

오색(五色) 채단(彩緞)을 기린(麒麟)으 가득 싣고 벽도화(碧桃花) 단계화(丹桂花)를 사면에 벌여 꼽고 청학(靑鶴) 백학(白鶴)은 전배(前倍) 서고 수궁에 내려오니 용왕도 황겁(惶怯)허여 문전(門前)에 배회(徘徊)헐 제, 옥진 부인이 들어와 심청 손을 부여잡고 “네가 나를 모르리라. 나는 세상에서 너를 낳은 곽 씨로다. 너의 부친 많이 늙었으리라. 나는 죽어 귀인(貴人)이 되어 광한전 옥진 부인이 되었으나 너의 부친 눈을 띄우랴고 삼백 석에 몸이 팔려 이곳으로 들어왔다 허기로 너를 보러 내 왔노라. 세상에서 못 먹던 젖 이제 많이 먹어 보아라.” 심청 얼굴 끌어다 가슴에다 문지르며 “아이고 내 자식아, 꿈이면 깰까 염려로다.” 심청이 그제야 모친인 줄 짐작(斟酌)허고 부인 목을 부여안고 “아이고 어머니, 어머니, 이것이 꿈이요 생시요 불효(不孝) 여식(女息) 심청이는 앞 어둔 백발 부친 홀로 두고 나왔는디, 외로우신 아버지는 뉘를 의지(依支)허오리까?” 부인이 만류(挽留)허며 “내 딸 청아 우지 마라. 너는 일후(日後)에 너의 부친 다시 만나 즐길 날이 있으리라.” 광한전 맡은 일이 직분(職分)이 허다(許多)허여 오래 지체(遲滯) 어려워라. 요령(鐃鈴/搖鈴) 소리가 쟁쟁(錚錚) 나더니 오색(五色) 채운(彩雲)으로 올라가니 심청이 하릴없어 따라 갈 수도 없고 가는 모친을 우두머니 바라보며 모녀 작별(作別)이 또 되는구나.

 

[아니리]

하루난 옥황상제께서 사해용왕(四海龍王)을 불러 하교(下敎)허시되, 심 소저 방연(芳緣)이 늦어가니 인당수로 환송(還送)허여 인간의 좋은 배필(配匹)을 정해 주라. 용왕이 수명(受命)허고 내려와 심청 환송헐 제, 꽃 한 봉을 조화(調和) 있게 만들어 그 가운데 뫼시고 양대 선녀로 시위(侍衛)허고, 조석지공(朝夕之貢)과 찬수(饌需) 범절(凡節) 금주(金珠)보배를 많이 넣고 용왕과 각궁 선녀 모두들 나와 작별허고 돌아서니 이난 곧 인당수라. 용왕의 조환지라 꿈같이 번뜻 떴다 바람이 분들 흔들리며 비가 온들 젖을쏘냐. 주야(晝夜)로 덩실 떠 있을 때 그때여 남경(南京) 갔던 선인들이 억십만금(億十萬金) 퇴를 내어 본국(本國)으로 돌아올 제, 인당수를 당도하니 심 소저의 효행(孝行)이 홀연히 감동(感動)되는지라. 제물(祭物)을 정히 차려 놓고 심 소저의 넋을 위로(慰勞)하는디,

 

[중모리]

북을 두리둥 둥 울리면서 슬픈 말로 제(祭)지낸다. “넋이야 넋이로다. 이 넋이 뉘 넋이냐. 오장원(五丈原)의 낙성(落星) 허든 공명(孔明)의 넋도 아니요, 삼 년 무관(武關)의 초(楚) 회왕(懷王)의 넋도 아니요, 부친 눈을 띄우랴고 삼백 석에 몸이 팔려 인당수 제숙 되신 심 낭자의 넋이로다. 넋이라도 오셨거든 많이 흠향(歆饗)허옵소서.” 제물(祭物)을 물에 풀고 눈물 씻고 바라보니 무엇이 떠 있는디, 세상의 못 본 바라. 도사공이 허는 말이 “저것이 무엇이냐 금(金)이냐?” “금이란 말씀 당치 않소. 옛날 진평(陳平)이가 범(范) 아부(亞夫)를 잡으랴고 황금 사만을 흩었으니 금 한쪽이 있으리까?” “그러면 저게 옥(玉)이냐?” “옥이란 말씀 당치 않소. 옥출곤강(玉出崑崗)이 아니거든 옥 한쪽이 있으리까?” “그러면 저게 해당화(海棠花)냐?” “해당화란 말씀 당치 않소. 명사십리(明沙十里)가 아니거든 해당화 어이 되오리까?” “그러면 저게 무엇이냐? 가까이 가서 보자. 저어라 저어라, 어기여 어기여 어기여 차.” 가까이 가서 보니 향기(香氣) 진동(振動)허고 오색(五色) 채운(彩雲)이 어렸거늘,

 

[아니리]
배에 건져 싣고 보니 크기가 수레 같고 향취(香臭) 진동커날 본국에 돌아와 수다(數多)히 남은 재물(財物) 각기 분집(分執)헐 제 도선주(都船主)는 무슨 마음인지 재물은 마다허고 그 꽃봉이만 차지허였구나. 이때는 어느 땐고 허니, 송(宋) 천자(天子)께옵서 황후(皇后) 붕(崩)하신 후(後) 납비(納妃)를 아니 허사 세상 기화요초(琪花瑤草)를 거둬들여 황극전(皇極殿) 넓은 뜰에 가득히 심어 두고 조석(朝夕)으로 화초(花草)를 구경허실 적에,

 

[중중모리]

화초(花草)도 많고 많다. 팔월(八月) 부용(芙蓉)의 군자용(君子容) 만당추수(滿塘秋水)에 홍련화(紅蓮華) 암향부동월황혼(暗香浮動月黃昏) 소식(消息) 전(傳)턴 한매화(寒梅花) 진시유랑(儘是劉郎)으 거후재(去後栽)난 붉어 있다고 복성꽃 구월(九月) 구일용산음(九日龍山飮) 소축신(笑逐臣) 국화꽃 삼천(三千) 제자(弟子)를 강론(講論)을 허니 행단춘풍(杏壇春風)으 은행(銀杏)꽃 이화만지불개문(梨花滿地不開門) 허니 장신궁중(長信宮中) 배꽃이요 천태산(天台山) 들어가니 양변개(兩邊開) 작약(芍藥)이요 원정부지 이별(離別)허니 옥창오견(玉窓五見)의 앵도화(櫻桃花) 촉국한(蜀國恨)을 못 이기어 제혈(啼血) 허든 두견화(杜鵑花) 이화(李花) 도화(桃花) 계관화(鷄冠花) 홍국(紅菊) 백국(白菊) 사계화(四季花) 동원도리편시춘(東園桃李片時春) 목동요지(牧童遙指)가 행화(杏花) 월중단계(月中丹桂) 무삼경(無三更) 달 가운데 계수(桂樹)나무 백일홍(百日紅) 영산홍(映山紅) 왜(倭)철쭉 진달화 난초(蘭草) 파초(芭蕉) 오미자(五味子) 치자(梔子) 감자(柑子) 유자(柚子) 석류(石榴) 능나 능금 포도 머루 어름 대추 각색(各色) 화초 갖은 행과 좌우(左右)로 심었난디 향풍(香風)이 건듯 불며 벌 나비 새 짐생들이 지지 울며 노닌다.

 

[아니리]

이때의 도선주는 천자께옵서 화초를 구하신단 소문을 듣고 인당수에 떴던 꽃을 어전에 진상(進上)허니 천자(天子) 보시고 세상(世上)에서는 없는 꽃이라 선인을 입시(入侍) 시켜 치하(致賀)하시고 무창 태수(太守)를 봉(封)하였구나. 이 꽃을 후궁(後宮) 화계상(花階上)에 심어 놓고 조석(朝夕)으로 화초를 구경허실 적에,

 

[중모리]

천자 보시고 반기 허여 요지(瑤池) 벽도화(碧桃花)를 동방삭(東方朔)이 따온 지가 삼천 년이 못 다 되니 벽도화도 아니요 극락세계(極樂世界) 연화(蓮花) 꽃이 떨어져서 해상(海上)의 떠왔넌디 그 꽃 이름은 강선화(降仙花)라 지으시고 조석으로 화초를 구경헐 제 일야(一夜)는 천자 심신(心身)이 황홀허여 화계상을 거니는디 뜻밖에 강선화 벌어지며 선녀들이 서 있거날 천자 고이 여겨 “너희가 귀신이냐 사람이냐?” 시녀 예(禮)하고 여짜오되 “남해(南海) 용궁 시녀로서 심 소저를 모시고 세상(世上)을 나왔다가 불의(不意)에 천안(天顔)을 범(犯)하였사오니 황공무지(惶恐無地)하오이다.” 인홀불견(因忽不見) 간 곳 없고 한 선녀 서 있거날

 

[아니리]

황제 반신반의(半信半疑)하야 대강 연유(緣由)를 탐문헌 바 세상의 심 소저라. 궁녀로 시위하여 별궁(別宮)에 모셔 놓고 이튿날 조회(朝會) 끝에 만조백관(滿朝百官)에게 간밤 꽃봉 사연(事緣)을 말씀허니 만조제신(滿朝諸臣)이 여짜오되 “국모(國母) 없으심을 하느님이 아옵시고 배필을 인도허였사오니 천여불취(天與不取)면 반수기앙(反受其殃)이라. 인연(因緣)으로 정하소서.” 그 말이 옳다 허고 그날로 택일(擇日)허니 오월(五月) 오일(五日) 갑자시(甲子時)라. 심 황후 입궁 후에 연년(年年)이 풍년이요, 가가호(家家戶) 태평(太平)이라.

 

[창조]

그때여 심 황후는 부귀는 무쌍(無雙)허나 다만 부친 생각뿐이로구나.

 

[아니리]

일야(一夜)는 옥난간(玉欄干)에 높이 앉어,

 

[진양조]
추월(秋月)은 만정(滿庭)허여 산호(珊瑚) 주렴(珠簾) 비쳐들 제, 청천(靑天)의 외기러기는 월하(月下)으 높이 떠서 뚜루루루루 낄룩 울음을 울고 가니, 심 황후 반기 듣고 기럭이 불러 말을 헌다. “오느냐 저 기럭아, 소(蘇) 중랑(中郎) 북해상(北海上)에 편지 전(傳)턴 기럭이냐. 도화동을 가거들랑 불쌍헌 우리 부친 전에 편지 일 장(張) 전허여라.” 편지를 쓰랴 헐 제, 한 자(字) 쓰고 눈물짓고 두 자 쓰고 한숨 쉬니 눈물이 먼저 떨어져서 글자가 수묵(水墨)이 되니 언어(言語)가 도착(倒錯)이로구나. 편지 접어 손에 들고 문을 열고 나서 보니 기럭은 간 곳 없고 창망(滄茫/蒼茫)헌 구름 밖에 별과 달만 뚜렷이 밝았구나.

 

4. 개안

 

[아니리]

이때여 황제 내궁(內宮)에 들어와 황후(皇后)를 살피시니 수심이 띠어 있거늘 황제 물으시되 “무슨 근심이 있나이까?” 심 황후 여짜오되 “솔토지민(率土之民)이 막비왕신(莫非王臣)이라, 이 세상에 불쌍한 게 맹인이라 천지(天地) 일월(日月)을 못 보오니 적포지한(積抱之恨)을 풀어 주심이 신첩(臣妾)의 원(願)이로소이다.” 황제 칭찬허시고, 맹인 잔치를 여시는디 “각도각읍(各道各邑)으로 행관(行關)허되 대소(大小) 인민(人民) 간에 잔치 참례(參禮) 아니 허면 그 고을 수령(守令)은 봉고파직(封庫罷職)허리라.” 각처(各處)로 전허였구나.

 

[진양조]

그때여 심 봉사는 모진 목숨 죽지도 않고 근근도생(僅僅圖生) 지내갈 제 무릉촌 승상 부인이 심 소저를 보내시고 강도에 망사대(望思臺)를 지어 놓고 춘추로 제향(祭享)헐 제, 도화동 사람들도 심 소저의 효성이 감동되어 망사대 곁에 타루비(墮淚碑)를 세웠는니 비문(碑文)에 허였으되 “지위노친평생한(至爲老親平生恨) 허여 살신성효(殺身成孝)행선거라, 연파만리(煙波萬里)행심벽 허니 방초연년환불귀(芳草年年還不歸)라.” 이렇다 비를 허여 세워노니, 오고 가는 행인(行人)들도 뉘 아니 슬퍼하리. 심 봉사도 딸 생각이 나거드면 집팽막대 흩어 짚고 더듬더듬 찾어가서 비문을 안고 우더니라. 일일(一日)은 심 봉사 마음이 산란(散亂)허여 딸의 비를 찾어가서 “후유 아이고 내 자식아, 내가 왔다. 너는 아비 눈을 띄우랴고 수중고혼(水中孤魂)이 되고 나는 모진 목숨이 죽지도 않고 이 지경이 웬일이란 말이냐. 날 다려가거라, 나를 다려가거라. 산신(山神) 불악귀(惡鬼)야, 날 잡아가거라. 살기도 나는 귀찮허고, 눈 뜨기도 내사 싫다.” 비문 앞에가 엎드러져 내려둥글 치둥굴며 머리도 찧고 가삼 쾅쾅 두 발을 굴러 남지서지를 가리키는구나.

 

[창조]

낮이면 강도에 가 울고, 밤이면 집에 돌아와 울고

 

[아니리]

눈물로 세월을 보낼 적에 심 봉사가 의식은 겨우 견디나 사고무친(四顧無親) 수족(手足) 없어 사람을 하나 구(求)하랴 허는디 마참 본촌(本村)에 뺑덕이네라는 여자가 있어 심 봉사가 딸의 덕(德)으로 전곡(錢穀) 간에 있단 말을 듣고 이웃 사람도 몰래 살짝 자원(自願) 출가(出嫁)허였것다. 이 뺑덕이네가 심 봉사 재산(財産)을 망허기로 드는디 꼭 먹성질로 망허것다.

 

[자진모리]

밥 잘 먹고, 술 잘 먹고, 고기 잘 먹고, 떡 잘 먹고, 양식 주고 술 사먹고, 베 퍼주고 고기 사먹고, 동인 잡고 욕 잘 허고, 행인 잡고 패악(悖惡)허고 이웃집에 밥 붙이기 잠자면 이 갈기와 배 끓고 발목 떨고, 한밤중 울음 울고, 오고 가는 행인들께 담배 달라 실랑허고, 정좌 밑에 낮잠 자고, 남의 혼인(婚姻)허랴 허고, 단단히 믿었는디 해담(害談)을 잘 허기와 신부 신랑 잠자는디 가만 가만 가만 가만 뒤로 살짝 돌아가 봉창(封窓)에 입을 대고 “불이야!” 힐끗허면 핼끗허고, 핼끗허면 힐끗허고, 삣죽허면 뺏족허고, 뺏족허면 삣죽허고, 이 년의 행실이 이러허여도 심 봉사는 아무런 줄을 모르고 아조 뺑파에게 콱 미쳤것다.

 

[아니리]

나무칼로 귀를 싹 비어 가도 아무 것도 모르게 되었던 것이었다. 하로는 관가(官家)에서 심 봉사를 청했거늘 심 봉사 관가에 들어간즉, 사또 허신 말씀 “지금 황성(皇城)서 맹인(盲人) 잔치를 허는디 잔치 참례 아니 허면 그 고을 수령을 봉고파직(封庫罷職)한다고 관자(關子)가 내렸으니 즉시 올라가라.” 허고 노비(路費)까지 후(厚)히 주것다. 심 봉사 대답허고 집으로 돌아와 “여보 뺑덕이네, 오늘 관가에 가니 황성 맹인 잔치를 가라 허니 나 혼자 어찌 갈게.”

 

[창조]

“아이고 여보 영감, 황성 천 리 먼먼 길을

 

[아니리]

영감 혼자 어찌 가신단 말이오.

 

[창조]

여필종부(女必從夫)라니 천 리라도 가고 만 리라도 같이 가지요.”

 

[아니리]

“열 열 열 열녀(烈女)로다. 그렇지, 아 다 보아도 우리 뺑파 같은 사람은 못 보았고, 그러면 돈냥(兩)이나 있는 것 뉘게다 맡기고 갈고?” “아이고 저러기에 외정(外丁)은 살림 속을 몰라. 낳도 못허는 아이 선다고 살구값, 팥죽값, 떡값, 그리저리 제(除)허면 뭔 돈 있것소?” “그래 잘 먹었다. 계집 먹은 것 쥐 먹은 것이라더니 그만두고 길이나 떠나세.” 뺑덕이네 앞세우고 길을 떠나는디,

 

[중모리]

“도화동아 잘 있거라. 인제 내가 떠나가면 어느 년 어느 때 오라느냐. 어이 가리너 어이 가리 황성 천 리를 어이 가리. 오날은 가다가 어디가 자며 내일은 가다가 어데 가 잘고. 유(劉) 황숙(皇叔)의 단계(檀溪) 뛰던 적로마(的盧馬)나 있거드면 이날 이시(伊時/爾時)로 가련마는 앞 못 보는 병신 몸이 몇 날을 걸어 황성을 가리. 어이 가리너 어이 가리너 어이 가리. 자룡(子龍) 타고 월강(越江)허던 청총마(靑驄馬)나 있거드면 이날 이 시로 가련마는 몇 날 걸어 황성 가리 여보소 뺑덕이네.” “예.” “길소리나 좀 메겨 주소. 다리 아퍼 못 가것네.” 뺑덕이네가 길소리를 메기난디 어디서 들었다던지 전라도 김매기 반 경상도 메나리조(調)로 한번 메겨 보난디 “어이 가리너 어이 가리 황성 천 리를 어이 가리. 날개 돋친 학이나 되면 펄펄 수루루 날아 이날 이 시로 가련마는 몇 날 걸어 황성 가리. 어이 가리너 어이를 가리.”

 

[아니리]

이렇게 올라가다가 정자 밑에서 여러 봉사들이 쉬어갈 제 “자, 우리가 이렇게 만났으니 벽돌림 시조(時調)나 한 장쓱 허고 갈리제.” 심 봉사가 시조 말을 시주(施主)로 알어듣고 “아이고 내 앞에서 시주 말 내도 마시오. 내 딸 청이가 시주 속으로 죽었소.” 여러 맹인이 대소(大笑)허고 길을 떠나는디,

 

[중모리]

이렇다시 길을 가다 주막(酒幕)에 들어서 잠을 잘 제, 근처(近處) 사는 황 봉사라는 봉사가 주인과 약속을 허고 뺑덕이네를 꾀어 밤중에 도망을 허였난디, 심 봉사는 아무 물색(物色)을 모르고 첫새벽에 일어나서 뺑덕이네를 찾는구나.

 

[아니리]

“여보 뺑파, 아이 여보 뺑파!” 아무리 불러 봐도 도망간 사람이 대답헐 리가 있으리오. 심 봉사 겁이 나서 방 네 구석을 더듬어 보니 뺑덕이네가 가고 없제. “여보 주인, 혹 우리 마누라 안에 들어갔소?” “안에 들어온 일 없소. 밤중쯤 되어서 새파란 젊은 봉사허고 새벽질 친다고 벌써 떠났소.” “아니 그러면 나를 부르제.” “아 그 사람하고 내외간(內外間)인 줄 알았지, 누가 영감하고 내외간인 줄 알았소?”

 

[창조]

그제야 도망간 줄을 짐작허고

 

[진양조]

“허허, 뺑덕이네가 갔네그려. 덕이네, 덕이네, 덕이네, 뺑덕이네 뺑덕이네가 도망을 갔네. 당초에 니가 버릴 테면 있던 곳에서 마다허지, 수백 리 타향에다가 나를 두고 니가 무엇이 잘되겠느냐. 귀신이라도 못 되리라 요년아. 너 그런 줄 내 몰랐다. 이야 아서라, 내가 니까진 것 생각하는 놈이 시러비아들 놈이제. 현철(賢哲)허신 곽 씨도 죽고 살고 출천대효(出天大孝) 내 딸 청이도 생이별(生離別)을 허였는디, 너까짓 년 생각허는 내가 미친놈이로구나.”

 

[중모리]
날이 차차 밝어지니 주인을 불러 하직허고 황성 길을 올라간다. 주막 밖을 나서더니 그래도 생각이 나서 “뺑덕이네 덕이네, 날 버리고 어디 가오. 눈 뜬 가장 배반(背反/背叛)키도 사람 치고는 못 할 텐디, 눈 어둔 날 버리고 니가 무엇이 잘되겄느냐 새서방 따라서 잘 가거라.” 새만 푸르르르르 날아가도 뺑덕이넨가 의심(疑心)을 허고 바람만 우루루루루 불어도 뺑덕이넨가 의심을 허네. 그렁저렁 올라갈 제, 이때는 어느 땐고. 오뉴월 삼복(三伏) 성염(盛炎)이라. 태양은 불빛 같고 더운 땀을 휘뿌릴 제, 한곳을 점점 내려가니

 

[중중모리]

시내 유수(流水)는 청산으로 돌고 이 골 물이 쭈르르르르 저 골 물이 퀄퀄 열에 열두 골물이 한데로 합수(合水)쳐 천방(天方)자 지방(地方)자 월턱져 구부져 방울이 버끔져 건넌 병풍석(屛風石)에다 마주 쾅쾅 마주 쌔려 산이 울렁거려 떠나간다. 이런 경개(景槪)가 또 있느냐. 심 봉사 좋아라고 물소리 듣고 반긴다. 더듬더듬 더듬더듬 더듬더듬 내려가서 의복을 훨훨 벗어 놓고 물에가 풍덩 들어앉으며 “에이, 시원하고 장히 좋다.” 물 한주먹을 덥석 집어 양치질도 퀄퀄하고 또 한주먹 덥석 집어 겨드랑도 문지르며 “에이 시원허고 장히 좋다. 삼각산(三角山)을 올라선들 이어서 시원허며 동해(東海) 유수를 다 마신들 이어서 시원허리. 얼씨구나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네 툼벙툼벙 좋을시구.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네. 얼씨구나 절씨구.

 

[아니리]

목욕을 허고 나와 보니 의관(衣冠) 행장(行裝)이 없거날

 

[창조]

심 봉사 기가 막혀 “아 이 좀도둑놈들아 내 옷 가져 오너라. 내 옷 갖다 입은 놈들은 열두 대(代) 떼 봉사 날 것이다.

 

[중모리]

허허 이제는 영 죽었네. 허허 이게 웬일이여, 아이고 아이고 내 신세야, 백수(白首) 풍신(風神) 늙은 몸이 의복(衣服)이 없었으니 황성 길을 어이 가리.” 위아래를 훨씬 벗고 더듬더듬 올라갈 제, 체면 있는 양반이라 두 손으로 앞가리고 “내 앞에 부인네 오시거든 돌아서서 가시오 나 벗었소.”

 

[아니리]

한곳을 당도허니

 

[창조]

에이찌루 에이찌루 어라.

 

[아니리]

심 봉사 반기 여겨 “옳다 어디서 관장(官長)이 오나 부다 관(官)은 민지부모(民之父母)라니, 억지나 좀 써보리라.” 두 손으로 앞을 가리고 기엄기엄 들어가며 “아뢰어라 아뢰어라 급창(及唱) 아뢰어라. 황성 가는 봉사로써 배알차(拜謁次)로 아뢰어라.” 행차(行次)가 머물더니 “어데 사는 소경이며 어찌하여 옷을 벗었으며 무슨 말을 하랴는고?”

 

[창조]

“예, 소맹은 황주 도화동 사옵는디 황성 잔치 가는 길에 날이 하 더웁기로 이곳에서 목욕을 허다 의관 의복을 잃었으니

 

[아니리]

찾아주고 가옵거나 별반(別般) 처분(處分)허옵소서.”

 

[중모리]
“적선지가(積善之家)에 필유여경(必有餘慶)이라 하였으니 태수장(太守丈) 덕택의 살려 주오.”

 

[아니리]

이 행차는 무릉(武陵) 태수(太守)라 수배(隨陪) 불러 “의복 한 벌 내어주라.” 급창 불러 “너는 수건 써도 좋으니 갓 망근 내어주라.” 노비(路費)까지 후히 주며 잘 가라 하니 “황송한 말씀이오나 그 무지한 놈들이 담뱃대까지 가져갔사오니 어찌하오리까.” 태수 허허 웃고 담뱃대까지 내어 주었것다. 심 봉사가 좋아라고 “은혜(恩惠) 백골난망(白骨難忘)이오.” 백배사례(百拜謝禮) 하직(下直)허고 황성 길을 올라갈 제, 낙수교(洛水橋)를 지내어 녹수경(綠樹京)을 건너 한곳을 다다르니 방아집이 있거늘 여인들이 모여 방아를 찧는디 심 봉사를 보고 조롱을 허것다. “근래 봉사들 한 시기 좋더구 아마 저 봉사도 황성 잔치에 가는 봉사인가부지. 거기 앉어 있지 말고 이리 와서 방아나 좀 찧어 주고 가시오.” 심 봉사가 그 말 듣고, “점심만 줄 테면 방아 찧어 주지요.” “아, 드리고 말고요. 술도 주고 밥도 주고 고기도 줄 터이니 방아나 좀 찧어 주시오.” “허, 실없이 여러 가지 것 많이 준다.” 심 봉사가 점심을 얻어먹을 양으로 방아를 한번 찧어 보는디,

 

[중중모리]

“어유와 방아요 어유와 방아요 떨크덩 떵 잘 찧는다. 어유와 방아요 태고(太古)라 천황씨(天皇氏)는 이목덕(以木德)으로 왕 하였으니 남기 아니 중(重)헐쏜가 어유와 방아요. 유소씨(有巢氏) 구목위소(構木爲巢) 이 남기로 집 지셨나 어유와 방아요. 신농씨(神農氏) 만든 따부 이 남기로 만들었나 어유와 방아요 이 방아가 뉘 방아냐 강태공(姜太公)의 조작(造作)이로다. 어유와 방아요. 방아 만든 태도를 보니 사람을 비양턴가 이상하고도 맹랑하다. 어유와 방아야. 옥빈홍안(玉鬢紅顔) 태도(態度)련가 가는 허리에 잠(簪)이 질렸구나 어유와 방아요. 길고 가는 허리를 보니 초(楚) 왕궁(王宮)의 허리련가. 어유와 방아요. 덜크덩 떵 잘 찧는다 어유와 방아요. 머리 들어 오르는 양 창해(滄海) 노룡(老龍)이 성을 낸 듯 어유와 방아요. 머리 숙여 내리는 양 주(周) 난왕(赧王)의 돈수(頓首)련가 어유와 방아요. 오고대부(五羖大夫) 죽은 후에  방아 소리를 끊쳤더니 우리 성상(聖上) 즉위(卽位)허사 국태민안(國泰民安) 허옵시니 하물며 맹인 잔치 고금(古今)에 없는지라. 우리도 태평성대(太平聖代) 방아소리나 하여 보자. 어유와 방아요.”

 

[자진모리]

어유와 방아요. 어유와 방아요. 어유와 방아요. 한 다리 치어 들고 한 다리 내려딛고 오리락내리락허는 모냥 사람 보기 이상(異常)허구나. 어유와 방아요. 황성 천 리 가는 길에 이 방아를 만들었나. 어유와 방아요. 고소하구나 깨방아, 찐득찐득 찰떡 방아. 어유와 방아요. 재채기 난다 고추 방아 어유와 방아요. 어유와 방아요. 어유와 방아요 보리쌀 뜬물에 풋호박 국 끓여라. 우리 방애꾼 배 충분허자 어유와 방아요.

 

[중중모리]

떨크덩 떵떵 자주 찧어라. 점심때가 늦어간다. 어유와 방아요.

 

[아니리]
이렇다 방아를 찧고 점심밥 얻어먹은 후에 그렁저렁 길을 걸어 한곳을 당도허니 어떠한 여인이 문밖에 섰다, 심 봉사를 청하거늘 심 봉사 내념(內念)의 이곳은 나 알 이가 없것마는 이상한 일이로다. 여인을 따라가니 외당(外堂)에 앉히고 저녁밥을 드리거날 석반(夕飯) 먹고 있노라니 여인이 다시 나와 “봉사님 내당(內堂)으로 좀 들어 가옵시다.” 심 봉사 깜짝 놀래 “댁이 무슨 의단(疑團) 있소. 나는 독경(讀經) 못 하는 봉사요.” “다른 걱정 말으시고, 내당으로 좀 들어 가옵시다.” 여인을 따라 내당으로 들어가니 어떠한 부인이 좌(座)를 주어 앉히면서 그 부인 하는 말이 “당신이 심 봉사요?” “어찌 아시니까?” “아는 도리가 있나이다.”

 

[중모리]

이 부인이 말씀허되 “저는 안가(哥)로써 황성에 사옵더니 부모 일찍 기세(棄世)허고 저도 또한 맹인이 되어 복술(卜術)을 배워 평생을 아자지(我自知)라. 이십오(二十五) 세(歲)에 길연(吉緣)이 있는디, 지금 제가 이십오 세일 뿐더러 간밤에 꿈을 꾸니 하늘에 일월(日月)이 떨어져 물에 잠겨 보이니 심씨(沈氏) 맹인 만날 줄을 짐작허고 지내는 맹인을 차례로 물어 가옵더니 천우신조(天佑神助)허여 이제야 만났으니 인연(因緣)인가 허옵니다.”

 

[아니리]

심 봉사 좋아라고 맘이야 좋것마는 천부당만부당(千不當萬不當)허는 소리 하나도 내게는 불관(不關)이오. 어찌되었든 간에 그날 밤을 동방화촉(洞房華燭)에 호접몽(蝴蝶夢)을 뀌었것다.

 

[진양조]

그때여 심 황후는 부친 생각 간절허여 자탄(自歎/自嘆)으로 울음을 울 제, "이 잔치를 배설(排設)키는 부친을 위함인디 어찌하여 못 오신고? 내가 영영 인당수에 죽은 줄 알으시고 애통허시다, 세상을 버리셨나? 부처님의 영험(靈驗)으로 완연히 눈을 떠 맹인 축에 빠지신가? 당년(當年) 칠십(七十) 노환(老患)으로 병(病)이 들어 못 오신거나? 오시다가 노변(路邊)에서 무슨 낭패(狼狽) 당(當)허신가? 오늘 잔치 망종(亡終)인디 어찌하여 못 오신거나?" 신세 자탄으로 울음을 운다.

 

[아니리]

이렇다 자탄허시다, 예부상서(禮部尙書) 불러 분부하시되, “오늘도 오시는 맹인이 있거든 성명을 낱낱이 받아 올리되 황주 도화동 사는 심학규라 하는 이 있으면 별전으로 모셔 드려라.” 그때에 심 봉사는 안씨 부인과 인연을 정한 후에 잠을 자고 일어나드니 수심이 가득허였거늘 안씨 부인 물어 허는 말이, “무슨 근심이 있나이까?” “내가 간밤에 꿈을 뀌니

 

[창조]

내가 불 속에 들어가 보이고 가죽을 베껴 북을 메어 보이고 나뭇잎이 떨어져 뿌리를 덮어 뵈이니

 

[아니리]

그 아니 흉몽이오?” 안씨 부인 듣고 꿈 해몽을 하는디,

 

[창조]

“신재화 하니 희락(喜樂)할 꿈이요, 개피작고(作鼓) 허니 큰소리 날 꿈이요, 낙엽(落葉)이 귀근(歸根) 하니, 자녀를 상봉이라.

 

[아니리]

그 꿈 대단히 좋사오니, 오날 궐문 안을 들어가면 징험(徵驗)이 있으리다.” “천부당만부당한 소리 내게난 하나도 불관(不關)이오.” 아침밥을 지어 먹고 궐내에 들어가는디,

 

[중중모리]
정원사령(政院使令)이 나온다. 정원사령이 나온다. “각(各) 도(道) 각 읍(邑) 소경님네 오늘 맹인 잔치 망종이니 잔치 참례(參禮)허옵소서.” 골목골목 다니시며 이렇다 외난 소리 원근(遠近) 산천(山川)이 떠드렇게 들린다. “한 맹인도 빠짐없이 다 참례허옵소서.”

 

[아니리]

그때여 수백 명 봉사들이 궐문 안에 들어가 앉었을 제 심 봉사는 제일 말석(末席)에 참례(參禮)가 되얐는디, 봉사의 성명을 차례로 물어 갈 제, 심 봉사 앞에 당도허여 “이 봉사 성명이 무엇이오?” “예, 나는 심학규요.” “심(沈) 맹인(盲人) 여기 계시다.” 심 봉사를 뫼시고 별궁(別宮)으로 들어가니 심 봉사가 일향 죄가 있난지라. “아이고 어쩌려고 이러시오. 허허 이놈 용케 죽을 데 잘 찾어 들어왔다.” 내궁(內宮)에 들으니 그때 심 황후는 언간(焉間) 용궁에 삼 년이 되었고 심 봉사는 딸 생각에 어찌 울고 세월을 보냈던지 더욱 백수(白首) 되었구나. 심 황후 물으시되

 

[창조]

“거주성명(居住姓名)이 무엇이며 처자 있는가를 물어 보아라.” 심 봉사가 처자(妻子) 말을 듣더니 먼눈에서 눈물이 뚝뚝 뚝뚝 뚝 떨어지며

 

[중모리]
“예, 예, 아뢰리다. 예, 소맹(小盲)이 아뢰리다. 소맹이 사옵기는 황주 도화동이 고토(故土)옵고 성명은 심학규요 을축년 삼월 달에 산후(産後)탈로 상처(喪妻)허고 어미 잃은 딸자식을 강보(襁褓)에 싸서 안고 이 집 저 집 다니면서 동냥젖 얻어먹여 겨우겨우 길러 내어 십오 세가 되었으되 이름은 심청이요, 효성이 출천하야 그 애가 밥을 빌어 근근도생(僅僅圖生) 지내 갈 제, 뜻밖에 중이 찾어와서 공양미 삼백 석을 몽은사로 시주허면 소맹이 눈을 뜬다 허니 효성 있는 딸자식이 남경 장사 선인들께 삼백 석에 몸이 팔려 인당수 제숙으로 죽은 지가 삼 년이오, 눈도 뜨지 못하옵고 자식 팔아먹은 놈을 살려 두어 쓸데 있소? 당장에 목숨을 끊어 주오.”

 

[아니리]

심 황후가 이 말을 다 듣고 있을 리가 만무허지마는, 소리를 허자니 자연히 늦게 알았던 것이었다.

 

[자진모리]

심 황후 거동 봐라. 이 말이 지듯 마듯 산호 주렴 걷쳐 버리고 부친 앞으로 우루루루루 “아이고 아버지!” 심 봉사 이 말을 듣고 먼눈을 희번덕거리며 “누가 날더러 아버지라고 하여, 나는 아들도 없고 딸도 없소. 아버지라니 누구여, 무남독녀(無男獨女) 외딸 하나 물에 빠져 죽은 지가 우금(于今) 삼 년인디, 아버지라니 이거 웬 말이여.” “아이고 아버지, 여태 눈을 못 뜨셨소? 아버지 눈을 떠서 어서어서 저를 보옵소서. 인당수 빠져 죽은 불효(不孝) 여식(女息) 심청이가 살아서 여기 왔소. 아버지 눈을 떠서 어서어서 청이를 보옵소서.” 심 봉사 이 말을 듣고 먼눈을 휘번덕거리며 “예이 이거 웬 말이냐? 내가 죽어 수궁을 들어 왔느냐, 내가 지금 꿈을 꾸느냐, 이것이 참말이냐? 죽고 없는 내 딸 심청 여기가 어디라고 살어오다니 웬일이냐? 내 딸이면 어디 보자. 아이고 갑갑허여라. 내가 눈이 있어야 보지 어디 내 딸 좀 보자.” 두 눈을 끔적끔적 끔적거리더니 두 눈을 번쩍 떴구나.

 

[아니리]

심 봉사가 눈을 뜨고 보니 세상이 해적해적허구나. 심 봉사 눈 떴단 말을 듣더니 만좌 맹인이 눈이 떨어질라고 눈가시 섬섬(閃閃) 섬섬 섬섬 벌레 기어다니는 맹이로 근질근질 근질근질허더니마는, 눈을 뜨는디 눈 뜨는 데도 장단이 있던가 보더라.

 

[자진모리]

만좌 맹인이 눈을 뜬다. 전라도 순창 담양 새 갈모 띠는 소리라 쫙쫙 쫙 허드니마는 모다 눈을 떠 버리난디 석 달 안에 큰 잔치에 먼저 와서 참례허고 내려가던 봉사들도 저의 집에서 눈을 뜨고 미처 당도 못한 맹인 중로(中路)에서 눈을 뜨고 천하 맹인이 일시에 눈을 뜨는디, 가다 뜨고 오다 뜨고 자다 깨다 뜨고, 울다 웃다 뜨고, 회내다 뜨고, 떠 보느라고 뜨고, 앉어 뜨고, 서서 뜨고, 무단히 뜨고, 어이없이 뜨고, 실없이 뜨고, 졸다 번듯 뜨고, 눈을 끔적거리다가 뜨고, 눈을 부벼 보다가도 뜨고, 지어(至於) 비금주수(飛禽走獸)라도 눈먼 짐승도 일시에 눈을 떠서 광명천지(光明天地)가 되었구나.

 

[아니리]

심 봉사가 그제야 정신 차려 딸을 자세히 살펴보니, 칠보(七寶) 금관(金冠) 황홀허여 딸이라니 딸인 줄 알지 전후불견(前後不見) 초면(初面)이로구나. 얼굴을 가만히 보더니마는

 

[중모리]
옳제, 인제 알겄구나. 내가 분명 알겄구나. 갑자(甲子) 사월(四月) 초파일야(初八日夜) 꿈 속으 보던 얼굴 분명헌 내 딸이라. 죽은 딸을 다시 보니 인도환생(人道還生)을 허였는가, 내가 죽어 따러 왔나, 이것이 꿈이냐 이것 생시(生時)냐. 꿈과 생시 분별(分別)을 못 허겠네. 얼씨구나 얼씨구나 좋네 지화자 좋을시구. 어제까지도 내가 맹인이 되어 지팽이를 짚고 나서면은 어데로 갈 줄 아느냐 올 줄을 아느냐. 오날부터 새 세상이 되었으니 집팽이 너도 고생 많이 허였다. 피루루루 루루 내던지고 얼씨구나 얼씨구나 좋네 지화자 자자자 좋을시구.

 

[중중모리]

얼씨구나 절씨구 얼씨구나 절씨구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네 얼씨구나 절씨구. 어둡던 눈을 뜨고 보니 황성 궁궐(宮闕)이 웬일이며 궁 안을 바라보니 창해(滄海) 만 리 먼먼 길 인당수 죽은 몸이 환세상(還世上) 황후(皇后) 되어 천천만만(千千萬萬) 뜻밖이라. 얼씨구나 절씨구 어둠침침 빈방 안에 불 킨 듯이 반갑고 산양수(山陽水) 큰 싸움에 자룡(子龍) 본 듯이 반갑네. 흥진비래(興盡悲來) 고진감래(苦盡甘來) 날로 두고 이름인가. 여러 봉사들도 좋아라고 춤을 추며 노닌다. 얼씨구나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네 얼씨구나 절씨구. 태곳적 시절 이래(以來)로 봉사 눈 떴단 말 처음이로구나. 얼씨구나 절씨구 일월이 밝아 중(重)복 허니 요순(堯舜) 천지(天地)가 되었네. 송(宋) 천자(天子) 폐하(陛下)도 만만세(萬萬歲). 심 황후 폐하도 만만세(萬萬歲), 천천만만(千千萬萬) 세(歲) 태평(太平)으로만 누리소서 얼씨구 절씨구. 얼씨구나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네 얼씨구나 절씨구.

 

[아니리]

여러 봉사들도 심 부원군(府院君)과 함께 춤을 추고 노는디, 그 중의 눈 못 뜬 봉사 하나가 아무 물색도 모르고 함부로 뛰놀다가 여러 봉사 눈 뜬 것을 듣더니마는 한편에 가 울고 있구나. 심 황후 보시고 분부허시되 “만좌 맹인이 눈을 다 뜨고 지어 비금주수까지도 눈을 떴난디, 저 봉사는 무슨 죄가 지중(至重)허여 홀로 눈을 못 떴는고? 빨리 사실을 알아 들여라.”

 

[창조]

황 봉사가 아뢰난디

 

[중모리]

“예, 예 아뢰리다. 소맹의 죄를 아뢰리다. 심 부원군 행차(行次) 시(時)에 뺑덕이네라 허는 여인을 앞세우고 오시다가 주막(酒幕)에 숙소(宿所)헐 제, 한밤중에 유인(誘引)허여 함께 도망(逃亡)을 허였는디, 그날 밤 오경(五更) 시(時)에 심 부원군 우는 소리 구천(九泉)에 사무쳐서 명천(明天)이 아신 바라, 눈도 뜨지 못하옵고 이런 천하 몹쓸 놈을 살려 두어 쓸데 있소? 비수검 드는 칼로 당장에 목숨을 끊어 주오.”

 

[아니리]

심 황후 들으시고 “네 죄를 생각허면 죽여 마땅허나 네 죄를 네가 말하기로 특(特)히 살리노라.” 어명(御命) 허여노니 황 봉사는 눈을 하나 밖에 못 뜬 것이 마치 총 놓기 좋게 되었구나. 이런 일을 보드래도 적선지가(積善之家)에 필유여경(必有餘慶)이요, 적악지가(積惡之家)에 필유여앙(必有餘殃)이라. 어찌 천도(天道)가 없다 하리오.

 

[엇중모리]

그때여 심 생원(生員)은 부원군(府院君)을 봉(封)허시고 안씨 부인 교지(敎旨)를 내려 정렬부인(貞烈夫人)을 봉허시고, 무릉촌 승상 부인은 별급상사(別給賞賜) 시키시고 그 아들을 직품(職品)을 돋우어 예부상서 시키시고 화주승은 불러올려 당상(堂上)을 시키시고 젖먹이던 부인들과 귀덕 어머니는 천금(千金) 상(賞)을 내리시고 무릉 태수 형주(荊州) 자사(刺史)는 내직(內職)으로 입시(入侍)허고, 도화동 백성들은 세역(歲役)을 없앴으니, 천천만만(千千萬萬) 세(歲)를 누루더라. 어화 여러 벗님네들 이 소리를 허망이 듣지 말고 효녀 심청 본을 받어 천추(千秋) 유전(流轉) 허옵시다그 뒤야 뉘가 알랴? 호가(好歌)도 장창불락(長唱不樂)이라. 그만 더질더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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