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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www.fims.uwo.ca/people/faculty/dyerwitheford/Commons2009.pdf
[Commons2009.pdf (83.96 KB) 다운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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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04_공통적인 것의 유통 2009.hwp (29.70 KB) 다운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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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irculation of the Common
공통적인 것의 유통
Nick Dyer-Witheford
닉 다이어-위데포드
Talk for the “Future of the Commons” series, University of Minnesota, Oct. 2009.
2009년 10월, 미네소타 대학, “공통적인 것의 미래” 시리즈를 위한 대화.
1) This talk is about commons and the possibility of life in common.
1) 이 대화는 공유지와 공통적인 삶의 가능성에 관한 대화이다.
2) Talk of commons has been, well, common on the left in the last decade. Faced by the onrush of privatizing, deregulating and expropriating global capital, activists and theoreticians in an array of struggles have found in image of the common lands lost to primitive accumulation a point of intellectual and affective inspiration. From land wars in Mexico or India to ‘creative commons’ initiatives of digital culture to attempts to avert chaotic climate change, resistance to the second enclosures of neoliberalism speaks of itself as a defense of the commons.
2) 지난 10년간 좌파에서 공유지에 대한 대화는, 꽤, 공통적이었다. 사유화하는, 탈규제화하는, 그리고 몰수하는 전지구적 자본의 돌진에 직면해서, 투쟁의 대열의 활동가들과 이론가들은 원시 축적으로 분실된 공유 토지의 이미지에서 지적이고 정동적인 영감의 한 점을 찾아냈다. 멕시코 또는 인도에서의 토지 전쟁으로부터 혼돈적 기후 변화를 피하려고 시도하는 디지털 문화의 창조적 공유지 이니셔티브까지, 신자유주의의 두 번째 인클러저에 대한 저항은 그 자신을 공유지의 방어라고 말한다.
3) This has been important because it provides a way of speaking about collective ownership without invoking a bad history—that is, without immediately conjuring up, and then explaining (away) ‘communism’ conventionally understood as command economy plus a repressive state.
3) 이것은 중요했는데 나쁜 역사를 불러 일으키지 않고 - 즉, 곧 마법으로 불러내지 않고, 그리고 그때 명령 경제 더하기 억압적인 국가로서 인습적으로 이해된 ‘공산주의’를 잘 설명해 (버리지) 않고 - 집합적인 소유권에 관하여 말하는 방식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4) At the same time, however, commons-politics has its problems. Since 9/11, war has chilled all talk of alternatives to capital. But, in addition, frequent invocation of the commons does not amount to a convincing articulation of such an alternative. It cover s a variety of proposals for collective management of various resources, some radical, some reformist, and some, even, reactionary. As George Caffentzis has pointed out, neoliberal capital, confronting the debacle of free market policies, is now turning to a ‘Plan B’, in which limited versions of commons, pollution trading schemes, community development and open-source and file sharing practices are introduced as subordinate aspects of a capitalist economy, where voluntary cooperation subsidizes: Web 0.2 is a paradigm case.
4) 하지만, 동시에 공유지 정치는 그것의 문제를 가진다. 9/11 이래, 전쟁은 자본에 대한 모든 대안 논의를 냉각시켰다. 게다가, 그러나 공유지에 대한 잦은 기원은 그러한 대안의 분명한 분절에 이르지 않는다. 그것은 다양한 자원의 집합적인 관리에 대한 여러 가지의 제안, 약간의 급진주의자, 약간의 수정주의자, 그리고 약간의, 심지어, 반동주의자에 걸친다. 조지 카펜치스(George Caffentzis)가 지적했던 것처럼, 신자유주의적 자본은, 자유 시장 정책의 붕괴에 직면해서, 지금 플랜 비(Plan B)에 손을 대고 있다, 그 안에서 공유지의 제한된 버전, 오염물질 무역 계획, 공동체 발전과 오픈 소스(open-source)와 파일 공유 실천은 자본주의적 경제의 하위 양상으로서 도입되었다, 그곳에서 자발적인 협력이 장려된다: 웹 0.2는 패러다임적 케이스이다.
5) This paper proposes that, to move beyond this impasse, we add to two concepts already in the theoretical tool box of the movement—the circulation of capital, and the circulation of struggle, a third —the circulation of the common.
5) 이 논문은 이 막다름을 넘어서 움직이기 위해, 우리가 운동의 이론적 연장통 - 자본의 유통 - 에 이미 두 가지 개념을 더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 그리고 투쟁의 유통, 세 번째 - 공통적인 것의 유통.
6) The intention is to think not just what we fight against, or that we are fighting, but what we are fight for--and fight for not just as isolated commons islands in a sea of commodification, but as a world beyond capital, as an emergent commonism.
6) 그 의도는 단지 우리가 맞서 싸우고 있는 것을, 또는 우리가 싸우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 그리고 단지 상품화의 바다에서 고립된 공유지 섬으로서가 아니라, 자본을 넘어서는 세계로서, 떠오르는 공산주의로서.
7) So: Marx deemed the cellular form of capitalism to be the commodity, a good produced for exchange between private owners.
7) 그래서: 맑스는 자본주의의 세포 형태를 상품, 사적인 소유자들 사이의 교환을 위해 생산된 재화라고 생각했다.
8) His concept of the circuit of capital traces the metamorphosis of the commodity into money, which commands the acquisition of further resources to be transformed into more commodities. This cycle of capital is expressed in the formulae M ─ C –. . . P . . .C' ─ M'. Money (M) is used to purchase as commodities (C) labor, machinery and raw materials that are thrown into production (P) to create new commodities (C') that are sold for more money (M'), part of which is retained as profit, part of which is used to purchase more means of production to make more commodities; rinse and repeat.
8) 자본의 순환에 대한 그의 개념은 상품의 화폐로의 변신을 추적한다. 그것은 더 많은 상품으로 변형될 그 이상의 자원의 취득을 명령한다. 자본의 이 주기는 공식 M ─ C –. . . P . . .C' ─ M'으로 표현된다. 화폐(M)는 더 많은 화폐(M')로 팔리고, 더 많은 화폐의 일부는 이윤으로서 보유되고, 일부는 더 많은 상품을 만들 더 많은 생산 수단을 구입하는 데 쓰일 새로운 상품들(C')을 창조하는 생산(P)에 던져질 상품(C)으로서의 노동, 기계 그리고 원료 구입에 사용된다; 씻어내고 반복하고.
9) The circulation of capital becomes an auto-catalytic, self-generating, boot-strapping process, a “constantly revolving circle” in which every point is simultaneously one of departure and return.” This dynamic is the growth mechanism that converts the cell form of the commodity into what Marx termed more “complex and composite” forms, an entire capitalist metabolism. It is the path from capital’s molecular level to its molar manifestation.
자본의 유통은 그 안에서 모든 지점이 동시적으로 출발과 복귀의 지점이 되는 자동-촉매적, 자기-생산적, 부트-스트래핑(boot-strapping) 과정, “끊임없이 회전하는 궤도”가 된다. 이 역동성은 상품의 세포 형태가 맑스가 더 많은 “복합적이고 합성적인” 형태라고 말했던 것, 전체적인 자본주의적 물질대사로 전환하는 성장 메커니즘이다. 그것은 자본의 분자 수준에서부터 그것의 몰적인 명시까지의 경로이다.
10) Within this circuit, Marx identified different kinds of capital—mercantile, industrial and financial. So, for example, the transformation of commodities into money (C-M) is the role of mercantile capital; that of the production of commodities by means of commodities (P) is conducted by industrial capital, and the conversion of money capital into productive capital is the ostensible task of financial capital (M-C).
10) 이 순환의 내부에서, 맑스는 다른 종류의 자본 - 상인, 산업 그리고 금융. 예를 들어, 그래서 상품의 화폐로의(C-M) 변형은 상인 자본의 역할이다; 생산(P)의 수단에 의한 상품의 생산이라는 그것은 산업 자본에 의해 수행된다, 그리고 화폐 자본의 생산적인 자본으로의 전환은 금융 자본의 외면적 임무이다.
11) The elaborations of this model by other theorists have resulted in diagrams of great entanglement. But if we think of a rotating sphere not only accelerating in velocity as its speeds its circulatory processes but expanding in diameter as it fills more and more social and geographic space, we have the image of global capital.
11) 다른 이론가들에 의한 이 모델의 동화는 중대한 얽힘의 다이아그램으로 귀착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회전하는 영역을 그것이 그것이 순환적이 과정을 빠르게 할 때 속도에서의 가속화로서 뿐만 아니라 그것이 더욱 더 사회적이고 지리적인 공간을 채울 때 직경에서의 확대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전지구적 자본의 이미지를 가진다.
12) It was the discovery of autonomist theory to show that the circulation of capital was also a circulation of struggles. Each moment in the circuit of capital is a potential moment of conflict. Thus the attempt to purchase the commodity labor (M-C) could be interrupted by struggles over dispossession of populations from the land necessary to create disposed proletarians; the moment of production (P) was the site of classic work place resistance; the conversion of C-M was liable to dangers from theft to public reappropriation.
12) 그것은 자본의 유통이 또한 투쟁의 유통이라고 보여준 자율주의 이론의 발견이었다. 자본의 순환에서 각각의 순간은 충돌의 잠재적 순간이다. 따라서 상품 노동을 구입하려는 시도(M-C)는 배치된 프롤레타리아를 창조하는 데 필요한 땅으로부터 주민의 내쫓음에 대한 투쟁에 의해 방해될 수 있었다; 생산(P)의 순간은 고전적 노동이 저항을 벌이는 장소였다; C-M의 전환은 도둑질부터 공적인 재전유까지의 위험을 면할 수 없었다.
13) Each of these flashpoints might ignite others, and then be connected to one another. This de-centered the classic Marxian focus on the immediate point of production, without relinquishing— indeed expanding—the concept of anti-capital struggle. It view of a widening orbit of potentially interlinked struggles is at the root of the idea—however imperfectly developed-- of the multitude.
13) 이 발화점들의 각각이 다른 것들에 불을 붙였을지도, 그리고 그때 서로 연결될지도 모른다. 이 탈중심화된 고전 맑스주의는 생산의 즉각적 지점에 집중한다, 반(反) 자본주의 투쟁의 개념을 포기함이 없이 - 진실로 확장하면서 - 말이다. 그것은 잠재적으로 상호연결된 투쟁의 넓어진 궤도에 대한 그것의 견해는 다중이라는 - 하지만 불완전하게 발전된 - 생각의 뿌리에 있다.
14) But the theory of the circulation of struggles, in a very classically Marxian way, has little to say about what lay beyond these struggles, about life after capitalism. Precisely because the momentum of the movement of movements is today partially stalled in a war situation, it may be a timely moment to consider this question. Such an exercise can condemned as utopian thought, but there is such a thing as immanent utopianism, grounded in practical possibilities of the present.
14) 그러나 투쟁의 유통이라는 이론은, 매우 고전적으로 맑스주의적 방식으로, 이 투쟁 넘어서 있는 것에 관하여, 자본주의 이후의 삶에 대하여 거의 말하지 않는다. 틀림없이 운동들의 운동의 순간이 오늘날 부분적으로 전쟁 상황에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되기 때문에, 그것은 이 문제를 숙고할 적시의 순간일지도 모른다. 그러한 연습은 유토피아적 사상으로 비난받을 수 있다, 그러나 내재적인 유포피아주의로서 그러한 것이 있다, 현재하고 있는 것의 실제적 가능성에 기초하면서 말이다.
15) So I postulate another step, from the circulation of struggles to the circulation of the common.
15) 그래서 나는 또 하나의 단계를 가정한다, 투쟁의 유통으로부터 공통적인 것의 유통까지.
16) If the cellular form of capitalism is the commodity, the cellular form of society beyond capital is the common. A commodity is a good produced for exchanged, a common a good produced to be shared. A commodity, a good produced for exchange, presupposes private owners between whom this exchange occurs. The notion of the common presupposes collectivities within which sharing occurs.
16) 만약 자본주의의 세포 형태가 상품이라면, 자본주의를 넘어선 사회의 세포 형태는 공통적인 것이다. 상품은 교환을 위해 생산된 재화이고, 공유물은 공유되기 위해 생산된 재화이다. 교환을 위해 생산된 재화, 상품은 그 사이에서 이 교환이 일어나는 사적인 소유자들을 미리 가정한다. 공통적인 것의 관념은 그 내부에서 공유가 일어나는 집합성을 미리 가정한다.
17) The circuit of the common traces how these collectivities—which I term associations—organized shared, common resources including creativity, machinery and resources into productive ensembles that create more commons which in turn provide the basis for new associations.
17) 공통적인 것의 순환은 - 내가 연합이라고 이름짓는 - 이 집합성이 새로운 연합을 위한 기초를 다음으로 제공할 더 많은 공유지를 창조할 생산적인 종합적 효과로의 창조성, 기계류, 그리고 자원들을 포함한 공유된, 공통적인 자원을 조직하는 길을 밟는다.
18) So in a rewritten circulation formula, C represents not a Commodity but Commons, and the transformation is not into Money but Association. The basic formula is therefore: A ─ C ─ A'. This can then be elaborated into A ─ C . . .P . . . C' ─ A'.
18) 그래서 고쳐 쓰인 유통 공식으로, C는 상품이 아니라 공유지를 말한다, 그리고 변형은 화폐로가 아니라 연합으로이다. 기초 공식은 그러므로 : A ─ C ─ A'. 이것은 그때 이것은 그 다음에 A ─ C . . .P . . . C' ─ A'로 정교화 될 수 있다.
19) Just as the circulation of capital subdivides into different types of capital—mercantile, industrial, financial-- we should recognize differing moments in the circuit of the common. Let’s call them eco-social, labour and networked commons.
19) 꼭 자본의 유통이 자본의 다른 유형 - 상인, 산업, 금융 - 으로 다시 나누어지는 것처럼 우리는 공통적인 것의 순환에서 다른 순간들을 인식화해야 한다. 생태-사회적, 노동 그리고 네크워크 공유지.
20) Eco-social commons would be planning institutions to manage the biosphere not as commercial resources but as the shared basis for any continuing form of human association-- agencies for planetary climate control, fishery reserves, protection of watersheds, and prevention of pollution. Naming these eco-social commons indicates that the same planning logic also encompasses epidemiological and public health care provisions, regulation of food chain, biotechnological monitoring understood, again, not as strategic opportunities for commercial exploitation of species life.
20) 생태-사회적 공유지는 상업적 자원으로서가 아니라 인간 연합의 어떤 연속적인 형태에 대한 공유된 기초로서의 생물권을 관리하기 위해 제도를 계획하고 있는 중일 것이다 - 행성적 기후 통제, 어업 보류, 유역 보호, 그리고 오염 방지를 위한 기능. 이를 생태-사회적 공유지라고 이름 짓는 것은 같은 계획적인 논리가 종 생물의 상업적 착취를 위한 전략적 기회로서, 다시, 이해되지 않는 역학적이고 공적인 건강 보호 예비, 식량 페인을 위한 규제, 생물공학적 감시를 또한 둘러싼다는 것을 가리킨다.
21) By labour commons we mean the democratized organization of productive and reproductive work. This would include worker cooperatives, and co-managed public enterprises, land redistribution. But it should also be conceived more widely to include measures such as the introduction of a planetary basic income or guaranteed wage, conceived not as a glorified welfare hand out, but as an acknowledgement of the contribution to collective productivity of every species life.
21) 노동 공유지를 통해 우리는 생산적이고 재생산적인 일의 민주화된 조직을 의미한다. 이것은 노동자 협력, 그리고 참여 관리된 공적인 기업, 땅 재분배를 포함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행성적인 기본적 소득 또는 보장된 임금의 도입 그 자체와 같은 수단을 포함하는 것으로 또한 더 많이 넓게 마음 속에 그려져야 한다, 미화된 복지가 나눠주는 것으로가 아니라, 모든 종 생물의 집합적인 생산성에 대한 기여의 인정으로 마음 속에 그려져야 한다.
22) By networked commons we mean systems that unleash, rather than repress, the tendency of communication systems to overflow commodified intellectual property regimes in favor of the creation of common pool resources. We are talking an approach to communication that sees in its tendency to create non-rivalrous goods whose reproduction cannot be easily controlled not a problem but a vast potential. We are talking the reduction. We are talking not just of creative commons; but of large scale adoption in public institutions of open source practices; the remuneration of cultural producers in ways that allow the relaxation of commercial IP rights; plus the education and infrastructures that make access to peer to peer systems a public utility as common as the telephone.
22) 네트워크 공유지를 통해 우리는 공통적인 풀 자원의 창조를 찬성하여 지적 재산권 체제를 넘쳐 흐르는 소통 체계의 경향을, 억누르기 보다는 차라리, 해방시키는 체계를 의미한다. 우리는 문제가 아니라 거대한 잠재력이라 그것의 재생산이 쉽게 통제될 수 없는 비(非) 경쟁적 재화를 창조하는 그것의 경향을 본 소통에의 접근을 이야기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는 창조적인 공유지를 단지 말하고 있는 중이 아니라; 오픈 소스 실천의 공적인 제도로의 큰 규모의 차용; 상업적인 IP 권리의 이완을 허락하는 방식으로의 문화적 생산자들에 대한 보상; 더해서 피어 투 피어(peer to peer) 체계에의 접근을 전화만큼 공통적인 공적인 유틸리티(utility)로 만드는 교육과 기반을 이야기하고 있는 중이다.
23) To speak of the circulation of the commons is to propose process in which eco-social labour and networked commons each reinforce and enable the other: in which the common goods and services generated by associations at one point in the circuit provide inputs and resources for associations at another.
23) 공통적인 것의 유통을 말하는 것은 그 속에서 생태-사회적 노동 그리고 네트워크 공유지 각각이 나머지를 강화하고 가능하게 하는 과정을 제안하는 것이다 : 그 속에서 순환 안의 한 지점에서 연합에 의해 낳아진 공통적인 재화와 용역은 또 다른 지점에서의 연합을 위한 투입과 자원을 제공한다.
24) So, for example, we can envisage a process in which large scale eco-social planning seeds various labour commons, worker cooperatives and associative enterprises, which then in turn generate the goods and services required for ecological and public health and welfare planning. Amongst these goods and services would be the non-rivalrous software goods of the networked commons, a pool of free knowledge & innovation to be used in turn in the planning and production of the eco-social and labour commons.
24) 예를 들어, 그래서 우리는 그 속에서 큰 규모의 생태-사회적 계획이 다양한 노동 공유지, 노동자 협력 그리고 연합적 기업의 씨를 뿌리는 과정을 구상할 수 있다, 그것은 그때 다음으로 생태적이고 공적인 건강과 복지 계획에 요구된 재화와 용역을 낳는다. 이 재화와 용역 중에서이다, 네크워크 공유지의 비 경쟁적 소프트웨어 재화가, 생태-사회적 그리고 노동 공유지의 계획과 생산에 다음으로 사용될 무료 지식 & 혁신의 풀이 있을 곳은 말이다.
25) To speak of the circulation of the common is thus to begin to think about how open source and peer to peer models provide a potential reservoir of non-commodified applications for labour cooperatives and associated enterprises, from programming for micro-fabrication tools to inventory control to networked coordination of associations of self-managed enterprises.
25) 공통적인 것의 유통을 말하는 것은 따라서 오픈 소스와 피어 투 피어 모델이 노동 협력과 연합된 기업에 대한 비 상품화된 적용의 잠재적 저장지가 되는 방식을 생각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자기 관리된 기업의 연합에 대한 네트워크화된 조정에 대하여 재고 관리를 하는 미세-직조 도구를 위한 프로그래밍으로부터.
26) It is also to begin to think of both the equity and eco-social dimensions of highly distributed peer to peer systems, for example in coordinating micro-grid systems of household generated solar and wind energy supply—what Monbiot (2006, 124) terms an ‘energy Internet’ or of the role in public planning of grid computing projects--projects where millions of people make available the unused screen saver cycles to measure global warming. It is ultimately to think how highly distributed
26) 그것은 높이 분포된 피어 투 피어 체계의 공평과 생태-사회적 차원 둘 다를 생각하기 또한 시작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수 백 만의 사람들이 쓰지 않는 화면 보호기 주기를 전지구적 온난화를 재기 위해 이용할 수 있게 만드는 장소인, 가구가 생산하는 태양력과 풍력 에너지 공급 - 모비오(Monbiot; 2006, 124)가 ‘에너지 인터넷’이라고 칭했던 것 또는 그리드 망상 컴퓨팅 프로젝트의 공적인 계획에서의 역할인 것 - 프로젝트의 미세-망상(網狀) 체계를 조정하는 데에서 말이다.
27) To speak of the circulation of the common is also to think both how large scale molar governmental planning creates the conditions for autonomous projects—by funding coops or adopting open source and peer to peer standards-- and, in turn, how these autonomous molecular units in turn guaranteed innovation, variegated input and dissent against the dangers of bureaucratization, rigidity, and sectional interest.
27) 공통적인 것의 순환을 말하는 것은 큰 규모의 몰적인 통치적 계획이 자율적인 프로젝트를 - 생활협동조합에 자금을 대거나 또는 오픈 소스와 피어 투 피어 표준을 채택함을 통해 - 창조하는 방식과, 다음으로, 이 자율적인 분자적 단위가 다음으로 혁신을 보장했고, 관료제, 경직, 그리고 부문적 이윤에 맞서 투입과 불찬성에 변화를 줬던 방식 둘 다를 또한 생각하는 것이다.
28) ‘Commonism’ would thus be a social order assembled from a connection or circulation of different commons, preventing the capitalist cooption and subsumption of current and new commons by link ing them up, attaining a critical mass that counters the weight of established relations. Such a project need not predicate an instant abolition of the market, only the transformation from central system to a sub-system, surrounded by, and subordinated to a more powerful ‘commons’ dynamics. It process of what Christopher Spher describes as ‘out-cooperating Empire.’
28) ‘공통주의’는 따라서 다른 공유지들의 연결 또는 유통으로부터 모아진 사회적 질서일 것이다, 확립된 관계의 무게에 반대하는 비판적 대중에 이르고, 그것들을 이음을 통해 현행적이고 새로운 공유지의 자본주의적 무단점용과 포섭을 방지하면서 말이다. 그러한 프로젝트는 시장의 즉각적 폐지를 단언할 필요가 없고, 오직 중심적 체계로부터 하위-체계로의 변형을 단언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그것은 더 많이 강력한 공유지의 역동성에 의해 에워싸이고, 하위에 두어진 것이다. 그것은 크리스토퍼 스피어(Christopher Spher)가 ‘아웃-코오퍼레이팅(out-cooperating) 제국’로 묘사한 것의 과정이다.
29) This is speculative, but not, however, entirely one of those abstract cook-books for the future the Marxian left so rightly distrusts. Where one can see elements of this type of project in action is in some of the ‘solidarity economics’ of the Latin American left. Here we see models of a twenty first century socialism that works on the basis of a ‘quilt’ or ‘patchwork’ of decommodified activity includes interaction between central state planning and a decentralized network of worker cooperatives, self-management projects, nuclei of development, and so on. In the work of solidarity economists such as Euclides Mance, the units of these networks are conceived not just as individually following principles of social and environmental justice, but as providing inputs for each other, to create an autopoeitic, self-boosting system whose logic is similar to that outlined here. What is being increasingly thrown into the mix in Venezuela, Brazil is now publically sponsored use of open source systems—networked commons. So the recipes are being tested.
29) 이것은 사색적이다, 하지만, 맑스주의자들이 그렇게 올바르게 불신했던 미래에 대한 추상적인 요리책(cook-books)의 아주 하나는 아니다. 누군가 이 유형의 프로젝트 요소로서 볼 수 있는 것은 라틴 아메리카인들이 남긴 ‘연대 경제’의 일부에 있다. 여기서 우리는 탈상품화된 활동의 ‘누비이불’(quilt)과 ‘쪽모이 세공’(patchwork)에 기초해서 작동하는 21세기 사회주의의 모델을중심적 국가 게획과 노동자 협력, 자기 관리 프로젝트의 탈중심화된 네트워크, 발전의 핵, 등등 사이의 상호작용을 포함하는 것을 본다. 에우클리데스 만스(Euclides Mance)와 같은 연대 경제주의자들의 연구에서, 이 네트워크의 단위는 꼭 개인적으로 사회적이고 환경적인 정의의 원리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서로서로를 위해 투입을 제공하는 것처럼, 자기산출적, 자기 추진적(self-boosting) 체계를 창조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베네수엘라, 브라질에서 혼합으로 점점 던져지고 있는 중인 것은, 오픈 소스 체계 - 네트워크 공유지 - 의 사용을 지금 공적으로 후원하고 있다. 그래서 그 처방은 시험되는 중이다.
30) Let me now very quickly draw out some of the implications of this way of thinking. First, it is against the grain of postmodern thought in so far as it proposes a model of a totality, counter-totality against capital.
30) 나로 하여금 지금 매우 빠르게 사고의 이 방식이 갖는 몇몇 함축을 꺼내게 하자. 첫째, 그것은 총체성의 모델, 자본에 맞선 대항-총체성을 제안하는 한에서는 포스트모던적 사고의 찌꺼기에 맞선다.
31) Second, however, it starts small. By moving from a cellular model of commons and association that is simple, even rudimentary, this paper has aimed to suggest a process thinkable at levels from the domestic to municipal to the planetary and implementable at both modest and large levels. It scales.
31) 하지만, 둘째 그것은 작게 시작한다. 공유지의 분자적 모델과 간단한, 심지어 잔유적, 연합으로부터 움직이므로, 이 논문은 시에 내부적인 것으로부터 겸손하고 큰 둘 다 수준에서 행성적이고 도구적일 수 있는 것까지의 수준들에서 생각할 수 있는 과정을 제안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32) Third, it suggests a multiplicitous totality. Speaking of a complex, composite non-capitalist society composed by an interaction of different kinds of commons—eco-social, labour, networked— each with distinct, specific logics, we can wake from the hallucination both of a uniform socialist utopia, and of a capitalism to which there is no alternative, in favor of a new potential assembled from multiple forms of common logic.
32) 셋째, 그것은 다양한 총체성을 제안한다. 각각이 별개이고, 특유의 논리를 가지는 다른 종류의 공유지들 - 생태-사회적, 노동, 네트워크 - 의 상호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복합적인, 혼성적인 비 자본주의적 사회를 말하면서, 우리는 한결같은 사회주의적 유토피아와 대안이 없는 자본주의 둘 다의 환각으로부터 깰 수 있다, 공통적인 논리의 복합적 형태로부터 모아진 새로운 잠재력을 찬성하면서 말이다.
33) Fourth, this is not necessarily a model of changing the world without seizing power. It does not preclude a punctual moment or moments of radical crisis. It simply suggests that the circulation of the commons have to precede such a moment, to establish its preconditions, and extend beyond it, to actualize its potential.
33) 넷째, 이것이 권력을 잡음이 없이 세계를 변화시키는 모델인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시간을 엄수하는 순간 또는 급진적인 위기의 순간을 미리 배제하지 않는다. 그것은 공통적인 것의 유통이 그러한 순간에 선행해야, 그것의 전제조건을 확립해야,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 뻗어야 한다고 단순히 제안한다, 그것의 잠재력을 현실화하기 위해서 말이다.
34) As circulation of struggles arises from the circulation of capital, so the circulation of the commons arises from the circulation of struggle. Fights for commons--terrestrial, planned and networked-- are happening, now, even in the teeth of mounting war danger. Commonism is a forward projection of these contests. It is an emergency concept – a concept of emergence. If capital is an immense heap of commodities, commonism will be a multiplication of commons. Under such conditions it may be possible once again to say: “Omnia sunt communia”—everything in common.
34) 투쟁의 유통이 자본의 유통으로부터 일어나기 때문에, 그래서 공통적인 것의 유통이 투쟁의 유통으로부터 일어난다. 공유지 - 대지적, 계획, 그리고 네트워크 - 를 위한 싸움은 일어나고 있는 중이다, 지금, 전쟁 위험을 개시하는 톱니에서조차도 말이다. 공통주의는 이 논쟁의 전방으로의 투사이다. 그것은 사태 개념 - 출현의 개념이다. 만약 자본이 상품의 막대한 퇴적이라면, 공통주의는 공유지의 증식일 것이다. 그러한 조건 하에 그것은 다시 한번 말하는 것지도 모른다 : “Omnia sunt communia” - 모든 것은 공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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