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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주의 코뮤니스트 포럼 <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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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주의 코뮤니스트 포럼  <3회>

 

■토론주제 : 부르주아 선거와 노동계급 (발제ㅣ이형로)
■일시 : 2022년 1월 25일(화) 오후 7시 
■포럼참가 문의 : communistleft@gmail.com  (자료는 소책자 배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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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4호] 자본주의를 전복하지 않고서는 미래도 없다

자본주의를 전복하지 않고서는 미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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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계 팬데믹산불가뭄홍수 등 기후 재앙의 소용돌이 – 최근 기후변화 정부 간 위원회(IPCC)의 보고서는 세계 지구 온난화가 급격하게 진행되어 실질적인 위협에 직면해 있다고 예측한다아프가니스탄에서 아프리카에 이르는 세 차례네 차례 또는 다섯 차례에 걸친 전쟁그리고 가장 강력한 두 제국주의 국가인 미국과 중국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1960년대 말 이래로 이미 거의 영구적인 위기에 빠져있던 세계 경제는 이제 팬데믹과 봉쇄로 인해 더욱 경련을 일으키며 인플레이션 상승과 실업노동력 부족의 역설적인 조합을 초래하고 있다이슬람기독교 및 기타 근본주의의 부상을 통해 공공연한 종교적 용어로 표현되거나 지구의 미래에 대한 다양한 반()이상향 공상 과학 환상을 통해 묵시적 분위기가 점점 더 널리 퍼지게 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어떤 수준에서 그러한 환상은 허무주의와 절망의 성장 일부이거나절대 존재하지 않았던 과거로 돌아가거나 우리 자신과 자연 밖의 힘으로 신자들에게 주어진 '새로운 천국과 새로운 지구'(계시 21:1)로 탈출함으로써 허탈감을 극복하려는 헛된 희망을 표현하는 것이다그러나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또한 현대 문명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것을 반영하는 왜곡된 거울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로마의 쇠퇴기 또는 중세의 쇠퇴와 같이 무엇보다도 전체 생산 양식의 쇠퇴기의 "마지막 날"에 대한 예언이 널리 퍼졌다신약성서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은 묵시록의 네 기수를 상징하는 것으로사실상 종말기에 이른 사회의 본질적인 특징을 지적하고 있다죽음이 이끄는 다른 기수는 전쟁역병그리고 기근 빵의 가격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터무니없이 올랐다는 것을 보여주는 저울을 들고 있는 마지막 기수이다그리고 장기간의 하락세에서고대 노예 사회와 봉건제는 지배계급 파벌 간의 끊임없는 전쟁흑사병과 같은 전염병기근그리고 비록 이것이 자본주의와 같이 완전히 상품화된 시스템은 아닐지라도 인플레이션과 통화의 평가절하로 황폐해 졌다.[1]

 

 

네 명의 기수가 다시 해외에 있는 것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어떤 면에서는그들은 이종 교배를 하고 있다전쟁은 예멘과 에티오피아에서처럼 기근을 불러온다자연의 파괴는 코비드(COVID-19)와 같은 새로운 전염병또한 감소하는 자원에 대한 끔찍한 기근과 전쟁 위협을 불러일으킨다그리고 이 모든 유령은 자본축적의 근본적인 모순에 다시 반응하여 1930년대 이후 볼 수 없었던 수준으로 세계 경제 위기를 심화시킨다.

 

고대와 중세의 묵시록에서 예견된 "세계의 종말"은 새로운 계급 지배 형태의 새로운 생산 양식으로 대체될 특정한 생산 양식의 종말을 의미했다하지만 자본주의는 마지막 계급 사회이며심연을 향해 무모하게 나아가는 것은 인류가 코뮤니스트 혁명이냐 인류 파멸이냐라는 단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을 인류는 직면하고 있다자본주의는 역사상 가장 역동적이고 생산적이지만가장 파괴적인 시스템이며무시무시한 핵무기와 자연환경의 파괴를 억제할 수 없는 무능으로, 자본주의는 진정으로 세계인류 그리고 어쩌면 지구상의 모든 생명의 종말을 가져올 수 있다.

 

자본주의는 통제될 수 없다.

 

지배계급의 일부는 부정으로 후퇴한다코비드는 단지 작은 독감(보우소나루)이고기후 변화는 중국의 사기(트럼프)라고 한다더 지능적인 분파는 그 위험성을 알고 있다따라서 봉쇄로 인해 막대한 금액이 들어가고 백신 경쟁에 투입된다따라서 11월에 글래스고에서 열릴 예정인 COP26과 같은 기후 변화에 관한 수많은 국제회의에서 IPCC 보고서가 제시할 암울한 시나리오에 공개적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비록전쟁과 군국주의로 인한 위험이 코비드와 기후 변화의 위협에 의해 잠시나마 가려졌다고 해도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전 세계 사람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그러나 '멸종 반란', '영국 절연 운동(인슐레이트 브리튼)', '기후를 위한 청년 운동'과 같은 단체가 조직한 시위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왜냐하면 이는 세계 정부가 현명하게 행동하기 시작하고그들의 차이점을 제쳐두고심각한 세계 계획을 세울 것을 요구하는 것 이상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세계 국가지배계급은 그 자체로 자본주의 체제의 표현일 뿐이며그들은 전쟁과 생태계 파괴를 초래하는 법을 폐지할 수는 없다로마 황제나 절대 군주제 시대와 마찬가지로자본주의 쇠퇴는 자본 경쟁의 법칙을 어느 정도 통제(그뿐만 아니라 지배에 의문을 제기하는 모든 이들을 억압하는)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활력을 잃은 괴상한 국가 기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그러나 결국 자본은 통제할 수 없다정의에 따르면 자본은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졌지만인간의 필요 위에 서 있거나 맞서는 힘이다그것은 본질적으로 최고의 이윤을 위한 경쟁을 통해서만 발전할 수 있는 아나키적인 사회관계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세계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국가 기계들이경제적군사적 차원에서무엇보다도 세계 시장에서 다른 나라들과 경쟁해야 할 필요성에 의해서 현재의 규모로 부풀려졌다.

 

자본주의는 결코 "국제적 공동체"가 될 수 없으며쇠퇴의 말기에는 해체 경향모든 사람이 자신을 위해혼돈을 향한 경향이 더욱더 강해질 수밖에 없다.

 

1919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의 강령은 1914~18년의 세계 제국주의 전쟁이 "자본의 붕괴내부 붕괴프롤레타리아트의 코뮤니스트 혁명의 시대"로 진입했음을 선언했다그러나 그것은 또한 "()자본주의 '질서'는 기능을 멈췄다그 이상의 존재는 논쟁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최종 결과는 혼돈이다이러한 혼돈은 생산적이고 다수 계급인 노동계급만이 극복할 수 있다프롤레타리아트가 진정한 질서인코뮤니스트 질서를 확립해야 한다.”

 

자본주의 종말은 피해 갈 수 없다부르주아 사회는 진정한 인류 공동체의 오랜 꿈과 자연과 새로운 화해를 실현하기 위해 사용하고 전환할 수 있는 생산력을 발휘했다이전의 계급 사회가 저생산의 위기에 기초하지만자본주의는 과잉생산의 위기를 겪고 있는데희소성을 극복하고 다른 계급에 의한 한 계급의 착취를 완전히 제거할 가능성을 가리키는 모순이다그리고 국제적 노동계급인프롤레타리아트는 계급 없는 사회를 만드는 데 물질적 이해관계를 갖는 '생산력'을 만들어냈다.

 

자본에 적대적인 세력으로서의 자신의 존재를 크게 망각한 노동계급의 현재 상태와, 1917년 10월 혁명을 낳은 혁명적인 계급운동과 1917~23년 혁명적 물결의 가장 진보적인 정치적 표현인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 사이에는 엄청난 괴리가 존재한다이 격차를 메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노동계급이 자신의 물질적 이해관계를 방어하기 위해 투쟁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려있다.

 

이런 의미에서자본주의 파멸의 기수 중 하나는경제 위기와 그로 인한 노동자들의 생활과 노동 조건에 대한 공격이다. 이것은 프롤레타리아가 자신의 계급적 요구를 방어하기 위해 단결하고공동의 이해관계를 인식하여적을 타도하기 위한 관점을 발전시킬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2021년 10월 9

아모스(Amos)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

 

[1] 특히 자본주의 쇠퇴」 팸플릿 참조. 2. 위기와 쇠퇴 국제코뮤니스트흐름

 

 

<출처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17080/no-future-without-overthrow-capit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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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4호] 새로운 기후 시위: 지구를 파괴하는 것은 자본주의다!

새로운 기후 시위지구를 파괴하는 것은 자본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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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생태 재앙 앞에서많은 나라에서 수백만 명의 젊은이를 동원한 2019년의 "기후를 위한 행진"에서 보듯이불안과 분노는 실로 엄청나다현재 많은 나라에서 새로운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당시에 우리는 이 행진이 완전히 부르주아적인 영역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이것이 바로 우리가 2019년 첫 행진에서 배포한 국제 전단을 읽거나 다시 읽도록 초대하는 이유인데이는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몇 달 동안우리는 지구 전역에서 기후 재앙이 증가하는 것을 보고 있다가뭄거대한 화재파괴적인 폭우이류(泥流), 홍수 등 환경 위기의 희생자는 매년 수백만 명에 달하고 있지만가장 강력한 국가들조차 이러한 재난을 막을 힘이 점점 더 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기후변화 정부 간 위원회(IPCC)의 최근 보고서는 기후 교란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우리는 세계 온난화의 뿌리는 자본주의 기능 자체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기관지를 통해 정기적으로 보여주었다. 기후 재앙은 점점 더 많아지고파괴적이며통제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수년 간의 예산 삭감 이후최근 독일미국중국에서 보았듯이국가들은 국민을 그 영향으로부터 보호할 능력이 점점 더 사라지고 있다부르주아계급은 더는 재난의 규모를 부정할 수 없지만무엇보다도 생태 정당을 통해 정부가 환경을 위해 강력한 조치를 할 수 있다고 설명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지배계급의 모든 파벌은 "녹색 경제", "()성장", "지역 생산등 그들이 애용하는 해결책을 가지고 있다소위 말해서 이러한 모든 해결책은 자본주의가 개혁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공통점이 있다하지만 이윤 추구천연자원의 약탈생필품의 과도한 생산은 자본주의의 "선택"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다가오는 생태 재앙 앞에서많은 나라에서 수백만 명의 젊은이를 동원한 2019년의 "기후를 위한 행진"에서 보듯이불안과 분노는 실로 엄청나다그런데도 당시에 우리는 이 행진이 완전히 부르주아적인 영역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시민들은 전례 없는 환경 악화의 근저에 놓여 있는 바로 그 자본주의의 이윤을 방어하기 위해 존재하는 이 괴물 같은 기계인부르주아 국가에 압력을 가하도록 요구받았다실제로 기후 문제는 국제적 규모에서만 해결될 수 있을 뿐이다세계시장에서 각 국가가 서로 무자비하게 맞서는 자본주의는 이에 대한 답을 내놓을 수 없다각 국가가 환경을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자국의 추잡한 이익을 냉소적으로 옹호하는 대규모 환경 회의는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국제주의 의미를 진정으로 보여주고 생산의 무정부 상태를 종식할 수 있는 유일한 계급은 노동계급이다환경 위기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은 그 자체로 품고 있는 사회즉 코뮤니즘이다.

 

미래의 재앙을 발표한 지 1년이 지난 지금생태 정당들멸종 반란과 자본의 좌파들(스탈린주의자트로츠키주의자아나키스트사회민주주의자 등)은 기후 문제를 둘러싼 모든 종류의 행진과 시위를 추진하려고 할 것이다이것은 노동계급이 "국민"으로 희석되고, "민주 국가"가 상황을 바꿀 수 있다는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것과 같은정치적인 막다른 골목으로 분노를 돌리기 위한 부르주아지의 새로운 구상이다이것이 바로 우리가 2019년 첫 행진에서 배포한 국제 전단을 독자들이 읽거나 다시 읽도록 초대하는 이유인데이는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전단지 링크 자본주의는 지구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한다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만이 이러한 위협을 종식 시킬 수 있다.

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16649/capitalism-threatens-planet-and-survival-humanity-only-struggle-world-proletariat-can

 

 

2021. 09. 21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출처>

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17069/new-climate-protests-its-capitalism-which-destroying-pl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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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에도 변함없이 혁명적 전망으로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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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과학에 대한 음모론들, 불합리한 믿음들, 그리고 회의론은 기존 사회에 의해 제공된 전망의 부재를 반영한다.

 

그와는 반대로 착취에 맞선 노동계급의 싸움과 노동계급의 혁명적 전망에 대한 확신은 의식의 자유로운 발전 그리고 합리적이고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접근의 자유로운 발전을 수반할 것이다."

 

 
 
올해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연말~연초 건강하고 편안하게 보내시고
내년에도 변함없이 혁명적 전망으로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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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4호] 기후-생산-자본

기후-생산-자본

 

 

요약

 

기후 변화에 대한 6번째 기후변화 정부 간 위원회(IPCC) 보고서는 인공 온실가스 배출이 온도 상승만년설 해빙해수면 상승 요인이라고 밝혔다온실가스 배출량의 엄청난 증가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존재와 일치하며현재의 구조적 위기와 함께 심화하였다기후 변화 원인은 바로 자본주의다변화 규모는 여러 면에서 전례가 없는 수준이다화석 연료의 생산과 소비는 자본주의적 생산 시스템의 필수적인 부분이다따라서 화석 연료를 실질적으로 포기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기후 변화가 초래하는 주요 결과는 수억에 달하는 사람들의 생활 조건 악화와 이주의 심화이다자본주의적 생산과 환경 사이 관계를 수정하거나 오히려 역사적으로 종식 시킬 수 있는 중요한 변화가 필요하다과학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증거를 따름으로써오직 국제주의적 프롤레타리아트 혁명만이 인류생산 및 환경 사이새로운 관계를 건설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이것은 오늘날 이윤 추구와 충돌하기 때문에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이것이 바로 국제주의자들이 세계 노동계급 안에서 싸우고 있는 관점이다.

 

보고서

 

기록적인 기온을 장식한 여름을 설명하기 위해 IPCC의 여섯 번째 기후 보고서 첫 번째 부분이 8월 7일에 도착했다이 책에서 기후 변화를 모니터링하는 정부 간 기구의 과학자들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변화에 관해 설명한다. 2022년에는 2개의 보고서가 더 나올 예정이다첫 번째는 기후 변화로 인한 영향변화 및 취약성에 관한 것이고두 번째는 기후 변화를 완화할 방법에 관한 것이다해당 주제에 대한 세계 기후학자들의 보고서 결론은 만장일치에 가까운 견해를 보여준다기후학자 사이에서 인간이 만든 기후 변화를 부정하는 사람은 0.01% 미만이다(Powell, 2019).

 

여기서 우리는 정책 입안자 요약(IPCC, 2021)의 결과를 따를 것이다우리가 참조하는 장을 괄호 안에 표시하고보고서에 우리의 의견을 삽입했다.

 

기후 현황

 

보고서 :

 

"인간 활동이 현재 대기해양 및 육지 온난화 원인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이 온난화는 대기해양빙하와 대기권에서 광범위하고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원인이다."(5)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특히 CO2, CH4 및 N2O)의 증가는 1750년부터 감지할 수 있으며이는 인간 활동에 의한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1970년대 중반부터 상황은 악화하기 시작했다.

 

"지난 40년은 각각 이전보다 훨씬 더 더웠다."

(같은 책)

 

또 다른 출처는 동일한 데이터를 훨씬 더 잘 설명한다. 19세기 말 이후로 1.1°C 증가했지만다음과 같다.

 

“1975년 이래로 발생한 2/3의 증가는, 10년마다 0.15-0.2°C씩 증가하기 시작했다.”

(토찌, 2020, 54)

 

이 인간 활동은 1990년대 이후 전 지구적으로 빙하 후퇴의 주요 매개체였다. 1979년 이후 기록된 북극 얼음의 감소북반구의 봄 눈 감소그린란드 만년설 해빙(1), 기후대가 양쪽 반구의 극으로 계속해서 이동하고 있다동일한 인간 활동이 1950년대 이후 해양의 산소 감소, 1970년대 이후 온도 상승 및 현재의 산성화를 초래했다.

 

1900년 이후 해수면은 20cm 상승했다다음과 같은 역사적 추세로:

(1901-1971) + 1.3mm/;

(1971-2006) + 1.9mm/;

(2006-2018) + 3.7mm/.

1970년대까지 지구는 인간 활동으로 생성된 온실가스 상당 부분을 성공적으로 흡수했지만그 후에 균형이 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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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프 1: 기후 변화에 대한 인간 활동의 영향(ICPP, 2021). 오른쪽에서 우리는 자연 과정 시뮬레이션과 인간 영향 사이의 차이를 볼 수 있다.

 

 

반영 1 : 이 보고서는 일반적인 영향이나 인간’ 활동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우리는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상에 거의 30만 년 동안 존재해왔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믿는다반면이 현상들은 단지 지난 250년 동안만을 걱정했고지난 50년 동안 최고조에 달했다. (그래프 1참조그 근거는 현재 기후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일반적인 인간 활동이 아니라이러한 활동이 지난 천 년의 마지막 분기에 취한 특정한 형태즉 자본주의 생산양식이라는 것을 보여준다기후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다량의 온실가스 배출은 18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자본주의 산업사회 확산과 맞물려 있으며자본주의가 지구 전체에서 논란의 여지가 없는 생산양식이 되면서 더욱더 심화하였다.

 

반영 2 : 지구 온난화의 상황은 1970년대 이후로 더욱더 악화하였다이는 오늘날 우리가 사는 자본 축적 세 번째 주기의 구조적 위기가 시작된 것과 일치한다. (데이먼, 2020) 자본이 경제 위기의 영향을 미루고 제한하기 위해 시행한 대응책이 어떻게 기후와 환경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쳐 온실가스 배출의 대규모 증가를 초래했는지를 보여주는 많은 데이터가 있다. (그래프 3). 우리는 주요 반대 경향 중에서 다음과 같은 것을 기억한다마이크로프로세서 혁명자본주의 주변부 국가로의 생산 이동새로운 상품 부문의 탄생순환 속도의 증가와 함께 생산되는 상품의 많은 증가임금을 시작으로 생산 비용 절감.

 

보고서 : (A.2) 최근의 기후 시스템 변화의 규모는 많은 면에서 전례가 없고 인류에게 알려지지 않았다대기 중의 CO2 농도와 현재 바다의 산도 수준은 지난 200만 년 동안 전례가 없었다오늘날 CH4와 N2O의 농도를 알아내려면 최소한 8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대기 온도의 갑작스러운 상승은 12만 5천 년그리고 해수 온도에 대해서는 우리는 마지막 빙하기의 끝인 11,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반영 3 : 이러한 데이터에 직면하여 A. 구테흐스(Guterres) 유엔 사무총장은 다음과 같이 판단했다.

 

이 보고서는 석탄과 화석 연료가 지구를 파괴하기 전에 죽음의 종소리를 울려야 한다.”

 

그리고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자본 축적의 전체 세 번째 주기(1945~...)는 이러한 연료를 주요 에너지원으로 삼았다역사 유물론에 따라 이 시스템이 사용하는 1차 에너지원의 구조적 혁명은 지구가 생산 조직의 측면에서 급진적인 사회적경제적정치적 변화를 겪지 않고서는 거의 불가능하다이러한 규모의 구조적 변화는 일반화된 전쟁자본주의 문명의 세계적인 붕괴 또는 국제 혁명과 같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의 결과로만 일어날 수 있다.

 

현재의 세계 자본주의 질서는 말 그대로 화석 연료를 중심으로 지금의 모습으로 자신을 건설하고 정의했다몇 가지 보기를 들어보자석유·가스 상위 10대 기업(대부분 공기업)은 온실가스의 22%를 만들어 내고 있다(폰타나, 2019), 화석 연료를 다루는 100대 글로벌 기업이 배출량의 70% 이상을 배출하고 있다(그리핀, 2017). 석유 산업은 경제적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중요한 산업 중 하나이고그중 6개는 사상 최고의 수익을 올린 11개 기업 중 하나이며지난 10년 동안 세계 석유 소비는 꾸준히 증가해 왔다. (손니크센, 2021). 화석 연료는 전 세계적으로 거래되는 방대한 양의 상품 생산에 관여하고 있다석유 회사는 여전히 추출정제 및 유통 활동에 막대한 양의 새로운 자본을 계속해서 투자하고 있으며화석 연료의 소비는 산업 시대의 시작 이래로 멈출 수 없는 발전을 계속해오고 있다. (그래프 2는 지난 50년 동안의 이러한 소비의 추세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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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프 2: 세계 에너지 소비의 추세(Climatizati, 2019)

 

 

보고서 : (A.3) 기후 변화는 지구의 다른 지역에서 세 가지 종류의 극단적인 기후 및 기상 이변을 일으킨다.

 

1. 극심한 폭염.

2. 대폭우 및 점점 강력해지는 열대성 사이클론

3. 가뭄

 

또한 해수면 상승의 영향도 있다빙하가 녹는 속도만 해도 1990년대와 2010년대 사이에 4배나 증가했다(A.4) 홍수기근화재 그리고 사막화와 같은 사건 결과는 점점 더 빈번하고 강렬해지는 경향이 있다.

 

반영 4 : 사막화는 호주 남부사하라 사막 이남의 북아프리카 국가들에 점점 더 영향을 미치고 있다해수면 상승은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와 같은 인구 밀집 지역의 평야를 범람시키고새로운 섬과 영토를 위협하고 있다그 어느 때보다도 더 거대하고 힘을 가진 열대성 사이클론이 사람들이 사는 근처까지 몰려오고 있다지속적인 가뭄은 치명적인 기근을 일으키는 중앙아프리카 국가 전체를 괴롭힌다대량 이주는 그러한 기후 변화 중 가장 눈에 띄는 직접적인 결과 중 하나이다 (토지, 2020). 가뭄이 장기화하면서 한때 중동에서 가장 컸던 이란의 우르미아 호수는 1990년대 이후 절반으로 줄어들었고오늘날은 넓은 소금밭을 남기며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다요르단강의 건조가 한때 아랄해와 차드 호수에서 그랬던 것처럼사해 소멸에 기여하고 있는 요르단의 극한 정점(플링겐 외, 2021)으로 인해중동 전역에서 물 공급이 점점 더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첫 번째 물 폭동이 이란에서 일어나고 있다(ICT, 2021). 2021년 8월 14일 토요일, 1950년대 조사가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그린란드 봉우리의 강수량은 눈 대신 비였다. (라미레즈, 2021) 아마존앙골라호주콩고시베리아미국 등지에서가뭄을 발생시키는대형 화재가 잇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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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지구 자원으로 인간(2)을 집중적이고 광범위하게 착취하는 것에 바탕을 두고 있다지구 인구에 미치는 영향과 함께 기후 비상사태는 제국주의 전쟁과 경제 위기로 인해 이미 세계 인구에 가해진 고통을 가중한다우리의 시대를 특징짓고서로 영향을 주고먹여 살리는 이 세 가지 요소 모두 1970년대 초에 시작된 자본주의 생산양식과 구조적 위기라는 동일한 공통분모에 의해서 결정된다.

 

가능한 기후 미래

 

보고서 (B.1) 기후 변화의 식별 가능한 원인은 본질적으로 온실가스토지 사용 및 대기 오염의 세 가지이다. IPCC는 세 가지 변수가 감소안정적으로 유지 또는 대기에 미치는 영향을 단기(2021~2040), 중기(2041~2060및 장기(2081~2100기간으로 증가시킬 수 있는지에 따라 몇 가지 가능한 미래의 시나리오를 제공한다.

 

2050년까지 배출제로’ 목표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즉시 그리고 급격하게 감소할 경우 온도(현재 +1.1°C)는 단기간에 +1.5°C, 중기에는 +1.6°C, 상승해서 장기적으로 +1.4°C까지 떨어지기 시작할 것이다하지만 우리는 지금 생산양식을 바꿔야 한다.

 

배출량 증가의 점진적 감소의 중간 시나리오에서 2070년까지 배출제로에 도달하려면 단기적으로 +1.5°C중기에 +2°C장기적으로는 +2.7°C로 증가할 것이며인류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심각할 것이다그리고 다음 보고서에서 이 부분을 설명할 것이다대략 2060년까지 배출량이 다소 일정하고 이후 2100년까지 현재 수준의 약 4분의 1로 감소하는 중기 시나리오는단기간에 +1.5°C중기 기간에 +2°C장기간에 +2.7°C로 증가할 것이며인류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심각할 것이다그리고 다음 보고서에서 이 부분을 설명할 것이다.

 

현재 온실가스 배출 추세의 유지(IPCC가 예측한 시나리오 중 5개 중 4)를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에서는 단기간에는 +1.5°C, 단기간에는 +2.1°C, 그리고 장기간에는 +3.6°C에 이를 것이다이에 비해 지구 온도가 +2.5°C에 도달하거나 넘은 마지막 시간은 3백만 년 전이었다그러나 배출량이 증가하거나 기후가 예기치 않게 반응할 수 있고 이것은 더 나쁜 시나리오로 이어질 수 있다.

 

앞으로 위에서 설명한 모든 극한 기후 현상은 온도를 상승시키는 기능으로 작용할 것이며해양과 육지의 이산화탄소 흡수 용량은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축적을 늦추는 데 비례하여 점점 더 효과가 작아질 것이다수백 년에서 수천 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과거와 현재의 온실가스 배출이 촉발한 많은 변화는오늘날에는 이미 돌이킬 수 없다시나리오에 따르면 2014년과 비교하여 해수면은 2100년까지 +28cm에서 +101cm 사이의 가변 측정치로 상승하여 2150년까지 +37cm에서 +2m 이상 변동할 수 있는 수치에 도달할 것이다이 모든 것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온실가스 배출이 빠르게 감소하고 빙하가 녹아내리는 강도가 높아짐에 따라 예측할 수 없는 영향이 발생할 수 있다.

 

반영 5 : 질문원하고 필요한 만큼의 온실가스 감소를 달성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현재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통계에 따르면그것의 급격한 그리고 즉각적인 감소는 적어도 현재로서는 불가능해 보인다유럽과 미국과 같은 오래된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새로운 나무 심기를 포함하여 CDR(이산화탄소 제거기술의 소폭 증가와 함께 일정한 감소가 진행 중이다그러기 위해선 적어도 10억 그루를 심어야 한다(Tozzi, 2020). 새롭고 오래된 개량주의는 비록 중앙은행은 아닐지라도국가가 이른바 녹색 전환을 위해 생태적으로 양립 가능한 생산에 자금을 조달해야 할 때라고 단언한다(Roberts, 2021). 따라서 이 시스템 전체가 온실가스 감소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는가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2021년 6월 4제이 파월(Jay Powell) 미국 연방준비위 총재는

 

오늘날 기후 변화는 통화 정책 정의에서 직접적인 고려대상이 아니다.”

 

그리고 사실그래프 3을 살펴보면 우리는 현대 자본주의 생산의 심장부인 아시아, 1970년대 초반부터 상품 생산이 가장 많이 이전된 특히 신흥 제국주의 열강인 중국과 인도에서, CO2 생산은 극적으로 증가하여 오늘날 조립 및 하이테크 생산에 전념하는 경향이 있는 유럽과 세계 최고의 제국주의 강대국이지만 오늘날 명백한 쇠퇴에 처한 미국과 같은 오래된’ 자본주의 지역에서 발견되는 소소한 감소를 충분히 상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FD, 2021). 따라서 CO2 배출량은 기본적으로 동일하게 유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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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프 3: 지구상 전체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과거 그래프 (2019년 우리의 세계 자료)

 

 위의 사실에서 현재의 틀은 위에서 설명한 기후 변화의 악화로 인한 최악의 결과를 피하려면 구조적 수준에서 완전히 뒤흔들 필요가 있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이러한 극단적인 기후 이변의 결과로 전 세계의 사회건강경제 및 전쟁에 미치는 영향을 실제로 예측하는 것은 어렵다그리고 아마도 그 자체로 미래의 급진적 변화를 촉발할 수 있는 대규모의 움직임을 발생시킬 것이다.

 

우리는 다음 11월 글래스고에서 열릴 기후 회의와 같은 정치적 선택이 무시될 수 있는 좋은 의도 이상을 보여줄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우리가 반복해서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문제는 체계적이고 구조적으로 자본주의 자체에 내재하고 있기에 세계 대전체제의 일반적인 붕괴 또는 국제적인 프롤레타리아혁명과 같은 역사적 변화만이 자본-생산-환경 관계의 현저한 수정이나 폐지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록 일반화된 전쟁 또는 체제의 야만적인 붕괴가 온실가스 배출의 실질적인 감소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프롤레타리아트와 반()자본주의 정치 혁명의 산물인 새로운 사회 조직만이 합리적이고 건설적인 계획에 따라 개입할 수 있다.

 

1. 다른 위도에서 이미 활성화된 돌이킬 수 없는 급격한 기후 변화를 초래한 인간의 관점에서 극적인 결과를 관리한다.

2. CO2 배출량의 순감소환경인간에 대한 완전한 존중그리고 과학계에서 말하는 부분을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생산 방식을 시작한다사실경제사회적 발전의 주요한 동력으로서의 이윤 추구는 부르주아 과학 역시 암시하는 것처럼인간과 환경의 조화로운 관계를 달성하는 데에 있어서 주요 걸림돌이다.

 

 

이미 이것을 이해하고 있는 노동계급의 관점에서 볼 때그것은 지구 온난화의 영향에 대한 비난과 자본주의 전체에 대한 투쟁을 결합하는 문제이다이러한 야심 찬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해국제주의자들은 환경제국주의경제의 세 가지 수준에서 자본주의에 대해 비판하고 이를 선전한다기후 문제는 우리가 보아 왔듯이 계급 간 관계의 산물이기도 하다지구의 모든 자원을 약탈하는 탐욕스러운 부르주아지와 혁명적 프로젝트의 전략적 요소와 함께 착취전쟁기후 변화환경 파괴에 대한 투쟁을 결합할 능력을 가장 진보적인 부분에서 출발하여 자신의 내부에서 찾아야 하는 프롤레타리아트 사이의 관계이다.

 

이러한 최소 지침에서 시작하여 혁명적 변화의 관점에서 기후 변화에 대한 담론은 발전할 수 있고 또한 발전해야 한다.

 

2021년 9월 21

로토(Loto)

 

 

<참고문헌>

 

Climatizzati. (2019). Petrolio? Business as usual ... anzi peggio: crescita del 12% entro il 2030. climatizzati.ch

Carbon Dioxide Removal. en.wikipedia.org

edition.cnn.com

Damen, F. (2020). Il capitalismo è crisi. Milano: Edizioni Prometeo

FD. (2021). 15 August 2021. leftcom.org

Fontana, C. (2019). 20 multinazionali del petrolio e gas producono da sole il 30% delle emissioni. 7 January 2019, valori.it

Griffin, P. (2017). The Carbon Major Database. CDP report, July 2017

ICT. (2021). Iran: On Oil and Troubled Water. leftcom.org

IPCC ipcc.ch

Pleitgen, F., Otto, C., Dewan, A., Tawfeeq, M. (2021) The Middle East is running out of water, and parts of it are becoming uninhabitable. 22 August 2021. edition.cnn.com

Roberts, M. (2021).Climate change: the fault of humanity? thenextrecession.wordpress.com

Our world in data. ourworldindata.org

Powell, J. L. en.wikipedia.org

Ramirez, R., (2021). Rain fell at the normally snowy summit of Greenland for the first time on record. 19 August 2021. edition.cnn.com

Sonnichsen, N. (2021). Global Oil Industry, Statistics & facts. statista.com

Tozzi, M., Baglioni, L. (2020). Un’ora e mezzo per salvare il mondo. Roma: Rai Lib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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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9년 8월 1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 카스파르 하를로예프(Caspar Haarloev)는 그린랜드 극지방 만년설에 형성된 녹아내린 얼음의 강을 촬영했다. 2019년 7월 31일 그린랜드에서만 110억 톤의 얼음이 녹은 것으로 추정한다. (토찌, 2020)

 

(2) 인간에게 노동력의 집중적인 착취는 상대적 잉여가치라고 불린다광범위하고 절대적인 잉여가치

 

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PCInt)

옮긴이 ┃ 이명수

 

 

 

<출처>http://www.leftcom.org/en/articles/2021-09-21/climate-production-capi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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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권한 법안: 계급전쟁 준비

경찰 권한 법안계급전쟁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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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범죄 선고 및 법원 법안은 전국적으로 '법안 폐기항의와 시위 물결을 불러일으켰고일반적으로 국가에그리고 더 구체적으로 경찰에 더 많은 권한을 준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 법안은 정적인 집회를 포함한 시위를 억제하기 위해 기존 경찰 권한을 확대한다경찰은 발생한 소음이 '집회/시위 행렬 주변에서 수행되는 조직의 활동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라거나 '심각한 불안공포 또는 고통'을 포함할 수 있는 '주변의 사람들에게 중대하고 관련 있는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할 경우 행렬에 규정을 적용할 수 있다이런 상황에서 경찰은 그것을 막기 위해 필요한 모든 규정을 부여할 수 있다그 기준은 모호하다그리고 내무장관은 이러한 규정들을 정의할 재량권을 갖게 된다게다가 이 법안은 그러한 규정을 위반한 개인을 기소할 수 있는 기존 권한을 확대한다현재는 개인이 고의로 규정을 어겼다는 것이 입증될 경우에만 위법이지만이 법안의 조항에 따르면 검찰은 개인이 그 규정에 대해 '알았거나 알았어야 했다'는 것만을 보여주면 된다이것은 사실상 시위에 참여한 모든 사람을 기소의 위험에 빠트리는 엄중한 책임 범죄가 되도록 하고결국엔 최고 형기가 3개월에서 51주로 늘어난다다른 조치는 '권리의 행사 또는 향유'하는 과정에서 대중을 '방해'하는 것을 포함하며 최대 10년의 징역형이 부과되는 새로운 공공의 민생 범죄를 포함한다또한 너무 시끄럽다고 여겨지는 1인 시위를 축소할 수 있는 권한도 갖게 될 것이다간단히 말해서이 법안은 경찰이 자신이나 그들의 정치적 주인이 방해하거나 중단시키려는 시위를 훨씬 더 쉽게 단속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이 법안은 대중의 시위를 억제하기 위한 조치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소유자의 동의 없이 토지에 거주하거나 거주하려는 행위는 '중대한 방해손상 또는 고통'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 범죄가 된다벌금은 최대 2,500파운드의 벌금 또는 3개월의 징역뿐만이 아니라 자동차와 카라반을 포함한 차량 압류가 포함된다이것은 분명히 집시와 여행자를 목표로 하며영국 내에서 허가된 장소의 제한된 가용성으로 인해 사유지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위협하게 된다이는 유럽인권협약(ECHR)에 따라 공인된 여행자 권리를 침해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또한 차 안에서 잠을 자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증가하는 홈리스들을 위협한다그들의 차량을 압류하는 권한은 특히 가혹하고 그들이 가진 유일한 숙소를 강탈하는 것이다이것은 '가난'이라는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범죄화하는 조치이다.

 

빅 데이터의 도움 없이는 현대의 억압적인 법률이 완성되지 않는다심각한 폭력을 예방하고 감소시킨다는 미명아래 의료 서비스 제공자청소년 서비스 및 교육기관과 같은 특정 기관은 경찰이 요청할 경우 정보를 공개해야 하는 새로운 법적 의무가 생긴다이 경우 기밀 유지 및 기존 데이터 보호 권리에 대한 모든 전문적 의무가 무시된다이를 보완하기 위해 중대폭력 감소 명령 도입과 함께 단속과 수색 권한 확대도 추진된다이를 통해 경찰은 특정 사무실을 의도적으로 또는 범죄행위에 대한 의혹 없이 개인에 대한 프로필을 기반으로 검문검색을 할 수 있게 된다.

 

경찰법안은 영국에 불법적으로 입국하는 난민 신청자를 효과적으로 범죄화하는 '국경 및 이민 법안'(합법적인 경로가 거의 없기 때문에 난민 신청자 대부분 해당)이며난민협약과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또한존슨의 의회 휴회와 같은 국가와 그 기관의 결정을 불법으로 할 수 있는 판사의 권한인 사법심사권을 제한하는 입법안도 발의되었다난민과 인권에 관한 협약과 같은 기존 협약이 침해되었을 뿐만 아니라제안된 법안은 또한 그들의 소중한 부르주아의 권력분립 원칙을 훼손하게 될 것이다!

 

경찰범죄 선고 및 법원 법안과 진행 중인 다른 법률은 국가가 스스로 부여하는 억압적 권력이 상당히 증가했음을 보여준다비록 오늘의 목표가 멸종 반란여행자난민으로 보이지만궁극적으로 이러한 조치들은 노동계급으로 향하게 될 것이다그들은 '해고와 재고용'과 같은 조치를 통해 임금 동결과 임금 삭감의 압박이 강화되면서 노동계급의 어떠한 투쟁도 미연에 방지하려는 시도이다이런 식으로 법이 개정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가져야 할 이른바 어떠한 '권리'도 그것이 체제를 위협하는 것처럼 보이는 즉시 제거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우리의 이른바 '권리'는 노동계급에 대한 자본주의적 착취와 자본가의 재산에 위협이 되지 않는 한 존재할 수 있을 뿐이다.

 

통치자들이 지금 이러한 이른바 권리들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본주의 체제 전체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동시에통치자들의 초조함즉 위기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불안감이다대신 그들은 그 체제가 낳는 부당함에 대한 항의를 금지하기로 결정했다이는 지속적인 이윤과 지속적인 성장을 요구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전 세계적으로 전복하고 인간의 필요를 위한 협력 생산 체제로 대체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징후일 뿐이다.

 

 

2021년 8월 26

오로라(Aurora) 56호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원문 출처>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21-08-26/police-powers-bill-preparing-for-class-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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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사면을 규탄하며,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본질을 상기하자!!!

박근혜 사면을 규탄하며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본질을 상기하자!!!

(2017년 국제코뮤니스트전망 성명 재발행)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17년 3월 10일, 엄청난 권력으로 국가를 통치하던 박근혜가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었다. 연인원 1,600만 명의 촛불 투쟁과 압도적인 탄핵 찬성 여론을 고려할 때 충분히 예상되었던 일이지만, 모두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기다려야만 했다.

 

헌법재판소는 최고 권력자가 권력을 남용했을 때 발생하는 국가적 폐해에 대해 지적하고 헌법질서 수호를 위해 박근혜를 파면했지만, 정작 대통령을 직접 선출한 주권자의 권리와 의지에 따른 파면과는 거리가 멀었다. 더욱이 박근혜 정권 아래 반(反)노동자 악법을 인정하고, 정치사상의 자유를 말살한 결정을 내린 헌법재판소가 이번 사건에 내린 판결문에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생명권 보호 의무 위반, 언론의 자유 침해, 권력에 의한 인권 유린 등의 가장 중요한 탄핵 사유가 빠져버렸다.

 

이러한 박근혜 탄핵 과정에서 보듯이 주권자가 직접 권력을 끌어내리지 못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노동자계급의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노동계급의 민주주의는 선출된 권력을 언제든 소환할 수 있어 선출한 자에 의해 통제되고, 모든 대표자의 특권을 폐지하여 위임받지 않은 권한을 행사할 수 없고, 소수(자)가 배제되지 않고 모두가 평등한 조건으로 향하며, 선출되지 않은 관료제는 점진적으로 폐지하고 노동자가 직접 정치와 행정에 참여하는 아래로부터의 직접 민주주의이다. 이러한 민주주의만이 노동자의 생산과 일상을 스스로 조절하고, 다수가 사회를 통제할 수 있다. 이것은 노동자들의 삶을 위선과 불평등의 부르주아 민주주의-법 제도에 맡기지 않고 투쟁으로 돌파하면서 스스로 조직하고 민주주의를 창조해 나갈 때 가능하다. 촛불 투쟁과 노동자 투쟁이 나아갈 길은 바로 지배계급의 민주주의 환상을 깨고 자신들의 민주주의를 만들어 나가는 것, 모든 권력을 누구에게도 위임하지 말고 스스로 권력에 참여하고 행사하는 것, 정권교체를 넘어 선거를 넘어 자본주의 체제와 싸우는 것이다.

 

노동자 운동 진영에서는 대선을 맞이해 부르주아 선거에 대한 환상까지 넘어서는 투쟁을 해야 한다.

 

‘노동존중’은커녕 최소한의 노동 3권과 생존을 위한 최저임금도 보장하지 않은 반(反)노동자 악법과 제도를 만든 주역이 규칙을 정한 자본주의 선거에서 노동자는 승리할 수도 권력을 가질 수도 없다. 어디에도 노동자를 위한 자본주의 선거는 존재하지 않으며, 그런 선거는 유일하게 노동자 고유의 투쟁이 지금의 촛불 투쟁과 같이 대대적으로 전 사회를 뒤덮을 때나 가능하다. 따라서 노동계급은 절대 불리한 부르주아 선거에 뛰어들어 자본가 정치세력의 들러리를 서거나 권력에 구걸하지 말고, 노동자들에게 선거의 본질을 제대로 알리고 노동자 정치의 전망을 제시해야 한다. 선거가 아닌 투쟁으로 노동자가 직접 정치에 참여하고 권력을 행사하기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

 

노동자 정치는 부르주아 국가기구와 자본에 포섭된 노동조합과 노동자 정당으로는 불가능하다. 부르주아 정치에 참여하면서 그들의 왼편에 자리 잡는 노동자 정치, 그들의 민주주의 방식을 따르는 가짜 노동자 민주주의로는 절대 불가능하다. 그것은 오직 자본과 국가권력, 그리고 부르주아 정치로부터 독립된 노동자 정치 세력화를 통해 실현할 수 있다. 노동자 정치는 대대적인 계급투쟁 속에서 다수 노동자 대중이 참여하는 정치광장에서 탄생한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열정적이고 대대적인 토론과 직접행동, 계급적 연대가 그것을 확장시킬 것이다.

 

노동자 정치는 노동자 민주주의, 노동자 혁명, 노동자 권력이 실현되는 정치이며, 이것을 목표로 현실에서 투쟁하는 ‘행동의 정치’이다. 노동자들이 이러한 목표로 향하는 모든 곳에 부르주아 민주주의, 부르주아 정치, 부르주아 독재 권력이 막아서고 있다. 그것은 하나의 체제이다. 그것은 세상을 지배하는 폭력이며, 노동자를 착취하는 생산양식이며, 전쟁과 학살과 굶주림과 환경재앙과 인간 파괴의 근본 원인인 자본주의 체제이다. 노동자 정치는 바로 이러한 자본주의 체제와 싸우는 ‘혁명 정치’이다.

 

촛불혁명 환상과 코로나19 팬데믹에 눌려 후퇴하고 움츠렸던 노동자 운동과 혁명운동세력은 이제 반격에 나서야 한다. 자본가계급과의 협력은 노동자 투쟁의 무덤이다. 노동자가 시민으로 후퇴하는 자본주의 선거는 노동자 투쟁의 독약이다. 자본주의 체제와 싸우지 않고 재벌해체와 자본주의를 개량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현재 위기와 참상의 원인이 자본주의 체제인 것을 가리고 건강한 자본주의 환상을 퍼뜨린다.

 

우리 앞에 이러한 걸림돌은 늘 있었다. 우리가 후퇴할수록 걸림돌은 더 늘어만 갔다. 하지만 우리가 길을 돌아가지 않고 정면 돌파할 때 길은 다시 열릴 것이다. 둑은 큰 물결에 허물어진다. 그러나 작지만 곧고 강한 물살이 먼저 균열을 내지 않으면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비록 우리는 지금 소수지만, 곧고 강한 물살이 되어 싸울 것이고, 촛불 투쟁보다 더 크고 높은 투쟁의 물결과 만나 세상을 바꿀 것이다.

 

- 선거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 노동자를 위한 자본주의 선거는 없다.

- 선거환상을 넘어 자본주의 체제와 전면적으로 투쟁하자!

- 노동자민주주의, 노동자혁명, 노동자 권력을 향한 노동자 정치 실현하자!!!

 

2017년 4월 10일

2021년 12월 24일

국제코뮤니스트전망

 

 

<2017년 성명서 전문 읽기>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1&document_srl=274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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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3호] 자본주의의 쇠퇴이론 : 회고와 전망Ⅱ

자본주의의 쇠퇴이론 : 회고와 전망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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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자본주의 쇠퇴론에 대한 최근의 문제 제기와 토론

 

3-1. 자본주의는 1914년 이후 쇠퇴에 들어섰는가? (1차 토론)

 

최근 ICC의 자본주의 쇠퇴론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글이 발표되어 자본주의의 쇠퇴 문제를 다시 토론하고 논쟁하는 장이 마련되고 있다A Free Retriever’s Digest는 ‘ICC의 오류라는 제목의 C.Mcl의 글을 A Free Retriever’s Digest(2020. no.6)에 싣고 이를 토론하는 세 개의 블로그 토론을 잇달아 게재하였다.[16]

 

C.Mcl의 글은 ICC가 공식적으로 사회주의로 위장해왔던 모든 국가의 자본주의 본질로노동조합을 포함한 이른바 좌파조직의 제도적 통합, ‘혁명적 의회주의의 낡은 성격임금노동자의 자기착취 같은 자주관리 등의 정치적 입장을 비판하고 있음을 전제하고 있다그러나 ICC의 입장을 지지하는 이론적 틀은 쓸모없고사실과 모순되며역사유물론에 따르면 시대착오적이고 맑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을 초월하고 있기에 객관적 기초가 없는 설명의 혼합으로 실제로는 관념적 틀이라고 혹평하고 있다.[17]

 

그 결과 위험한 정치적 편견을 드러낸다는 것이다보기를 들어 1914년 이래 실질적 개혁을 획득하기 위한 즉각적 투쟁의 불가능성, 20세기 실질적 국가발전의 불가능성인간 본질과 도덕(관념)적 개념노동계급의 객관적 분화를 고려하지 않음을 특징으로 한다따라서 ICC의 기본입장은 진화(민족문제, 1차 세계대전 이후 그리고 1917~1923년 봉기 운동의 패배 이후 개량주의 세력이 차지한 위치 등)에 기초하여 수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끝으로 ICC 입장에는 젠더인간 본질자연과 관계신기술프롤레타리아트 구성과 변화이행기생태 등의 수많은 문제가 빠져있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이 글은 1914년 이전과 이후로 크게 구분하여 1부에서는 생산력 제동인가 아니면 가속인가의 문제를 절대적상대적 부의 생산인구소득분배노동계급의 발전 등의 세부항목으로 구분하여 통계적 경험치로 비교하면서 생산력의 증대를 분석하고 있고, 2부에서는 실질적이고 지속가능한 개혁을 1914년 전후로 구분하여 임금노동시간착취율실업노동조합 본질과 기능으로 세분하여 통계분석을 하며 개혁이 이루어졌음을 증명하고 있다.[18]

 

C.Mcl의 글은 첫째, ICC의 혁명적 맑스주의 입장과는 전혀 다른 개량주의 입장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둘째의회주의노동조합주의 등에 대한 반대 입장을 취하는 ICC의 입장과 기본 입장이 다르다는 점, 1914년의 전후 시기의 통계수치 비교는 자본주의 쇠퇴론 본질과 크게 연관이 없다는 점으로 요약할 수 있다따라서 이 토론은 내가 <혁명적 맑스주의자 국제대회>에서 정리한 자본주의 쇠퇴에 대한 코뮤니스트 좌파진영 내의 토론과 전혀 다른 개량주의 세력의 문제 제기일 수 있다.

 

그러나 C.Mcl의 글에 대한 세 가지 토론 글과 C.Mcl의 답변을 더 살펴보기로 한다.[19]

 

첫 번째 토론자 Link의 토론 내용은 다음과 같다. Link는 C.Mcl의 자본주의 발전에 대한 경험적 사실의 제시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하면서 ICC가 비자본주의 시장에 의존하는 룩셈부르크의 축적이론에 갇혀 있음을 지적하지만이것이 쇠퇴의 개념을 거부하거나 ICC가 오류라는 제안으로 이끄는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룩셈부르크주의는 1960년대 세계발전의 맥락에서 정당화되었다고 설명한다그러나 자본주의 경제와 세계인구의 지속적 성장의 확장된 시기만 유효하다고 그 한계를 지적한다.

 

나아가 룩셈부르크주의의 오류가 제국주의와 세계시장의 완결그리고 자본주의의 변화를 이해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며쇠퇴하는 자본주의에서 자본주의의 지속적 성장이 개량주의민족문제 등을 거부하는데 위해(危害)를 가하는 정치적 탈선으로 이끈다고 인식하는데 동의할 수 없다고 결론짓는다따라서 쇠퇴는 그 스스로 경제 위기가 아니지만자본주의 내의 모순이 점점 커져 위기를 창출하는 환경을 만드는 정치적사회적 역사발전이다다시 말해 쇠퇴는 생산력 성장에 대한 족쇄이지 그 하강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본다.

 

둘째토론자 Fredo Corvo의 토론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는 이탈리아독일네덜란드 그리고 다른 나라 코뮤니스트 좌파의 역사적 공헌을 종합하는 ICC의 영웅적 노력의 필요한 수정에 C.Mcl의 글이 이바지하지만실제 계급투쟁에 공헌하고 입장을 취하는 실재 분석 작업으로부터 고립되어 있고그의 최근의 출판물이 중동으로부터 인도차이나까지 그리고 코스타리카로부터 리비아에까지 프롤레타리아트를 사로잡은 제국주의 전쟁의 일반화를 무시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C.Mcl은 자본주의의 지속적 생존을 결정하는 것으로 자본주의의 생산적 질서를 보여주고 있지만자본주의 쇠퇴 이후의 ICC를 반박하는 목적을 위해 1914년 전과 후라는 장기적 관점을 따랐지만쇠퇴이론의 본질인 전쟁의 문제를 다루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또한 Fredo Corvo는 자본주의도 모든 생산의 역사적 양식같이 상승최고점하강이라는 곡선에 따라 발전하는가를 되묻고맑스와 엥겔스는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고 단언한다그리고 맑스가 프랑스 내전」 초고에서 코뮨이 프롤레타리아 경제를 실행할 유일한 형식이라고 보았는데이는 ICC가 보기에 레닌주의자/트로츠키주의자에게는 전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으며그들을 스탈린주의의 맑스로 비난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자본주의가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극복되지 않는다면제국주의 국가 사이의 제국주의 전쟁을 통한 세계재분할이 이루어지고 프롤레타리아트로부터 착취한 잉여가치의 재분배를 통해 자본주의는 지속한다고 전망하면서, 1914년 전후가 아닌 경제인구 수치의 분석이 중요하고 자본과 노동의 실질적 발전에 따라 전쟁재건위기의 분석이 필요하다고 결론짓는다.

 

셋째첫 번째 토론자였던 Link는 2020년 11월 13일에 추가토론을 블로그에 올린다그는 C.Mcl의 텍스트에 대해 자본주의가 아직도 부흥기에 있다는 말인가를 묻고 20세기 착취율 통계가 전체로서의 세계 경제의 대표치가 아닌 영국의 통계를 사용하고 있음을 지적하고자신은 쇠퇴(decadence)를 위축(obsolesce)으로 사용한다고 덧붙인다.

 

1914년 제국주의 전쟁은 자본주의의 전환점이었음을 다시 확인하고 자본주의 위기의 어떤 경제이론도 이러한 변화를 설명할 수 없다고 하면서변화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이어서 1914년 후 이 시기의 변화가 세계시장의 완결이에 따른 군사적 충돌그리고 민족경제와 국제관계를 통제하기 위한 국가자본주의의 출현나아가 혁명과 전쟁의 시대라는 룩셈부르크의 견해에 동의한다고 결론짓는다.

 

넷째세 토론자의 토론에 대한 C.Mcl의 답변(2020년 11월 15)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그는 자본주의가 중국과 인도(더 일반적으로는 아시아 대륙)를 통합했을 때 자본주의가 쇠퇴의 문턱에 들어섰다는 1945년 안톤 판네쿡의 분석에 동의한다고 하면서, 2013년 중국의 경제성장의 하강국면을 시작으로 자본주의가 서서히 쇠퇴 시기에 들어섰다는 자신의 입장을 새롭게 제시한다.

 

또한, 1914년 전후를 비교하는 실증분석을 통해 ICC를 비판한 것이 쇠퇴의 개념을 거부하는 것도 아니며, 1차 세계대전이 자본주의의 삶에서 중요한 단계임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라고 한발 물러선다그리고 코뮤니스트 좌파가 방어하는 정치적 입장에 동의하지만, ICC처럼 관념적 틀이 아닌 실제 자본주의의 진화에 대한 일관된 분석을 근거로 설명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1914년 이후의 쇠퇴이론은 세계와 노동계급의 역사적이고 즉각적 이해에 대한 걸림돌이라고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다시 확인하고 있다.

 

3-2. 자본주의 쇠퇴 문제에 관한 토론 (2차 토론) (2021년 3월 A Free Retriever’s Digest)

 

앞의 토론(1) 이후 2차 토론이 이루어졌다첫 번째 토론자는 Aníbal & materia인데그의 토론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20] 현재 논쟁에 관한 한 자본주의 쇠퇴는 유지될 수 있는 틀이 아니라고 보는 Aníbal & materia는 논쟁이 불필요하다는 Fredo Corvo, 21세기 초에 쇠퇴에 들어섰다는 C.Mcl, 그리고 자본주의가 반드시 나아가야 하는 미래시기로서 쇠퇴를 바라보는 자신의 입장이 있다고 정리한다.

 

그는 발전되는 이 논쟁의 맥락을 다음 몇 가지로 세분하고 있다.

 

첫째위기-전쟁-재건-위기의 순환이 타당한지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점

둘째정확한 접근이 되려면 중국동남아시아 영역이 자본주의로 통합된 후 쇠퇴로 들어섰는지를 질문해야 한다는 점

셋째쇠퇴이론은 필요한데 과거의 오류와 맑스주의의 부적절성과 약점은 쇠퇴이론을 회피하는 것을 용인하지 않는다는 점

넷째쇠퇴가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견해이지만어떤 조건에서 그러한가 하는 것은 전략전술의 의미를 구체화할 필요성을 제기한다는 점

다섯째쇠퇴 시기 이전의 가정적인 혁명 과정에 직면했을 때 국제주의 코뮤니스트들은 그 조건을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점.

여섯째요약하면 1917~23년의 혁명적 물결의 경험은 조심스러워야 하고 적절한 조건을 발견하지 않는 혁명 과정에서의 참여를 피하도록 한다는 것

일곱째소련의 경험은 대리주의적 자본주의(프롤레타리아독재가 코뮤니스트 당독재라는데 종합되어 있는)가 코뮤니스트당과 노동자평의회 사이의 나쁜유명무실해진 접근임을 되새기기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

여덟째사회주의는 자본주의와 대조되고 경쟁하는 체제로 자본주의 내에서 형성된다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는 점이다.

 

두 번째 토론자인 Fredo Corvo는 이미 첫 번째 토론에서 자신의 입장을 밝힌 바 있는데이번 토론에서는 자본주의는 끝나고 있는가그러나 어떻게?라고 하면서 몇 가지 질문과 입장을 추가하고 있다.[21] 그는 중국의 자본주의로의 통합이 자본주의의 쇠퇴로 이끄는가를 묻고 자본주의 생존이 일을 추구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지속적 성장을 전제로 한다는 (그 당시 맑스의 산업예비군’ 또는 잉여인구의 개념판네쿡의 견해에 동의하면서 자본주의가 자동으로 몰락한다는 견해에 반대하고 ICC가 의존하는 룩셈부르크의 시장포화론을 비판한다.

 

또한그는 사회민주주의의 생산력 발전의 의미가 기술적 의미(기계설치물 등)로만 이해했다는 한계볼셰비즘에 따른 생산력 발전도 일면적 기술적 개념에 머물렀고 모든 유파(레닌주의트로츠키주의스탈린주의)가 자본주의 개념을 사적자유주의적 자본주의 단계에 한정하고 동구 블록중국북한베트남쿠바 등을 사적 자본주의의보다 우월한 약한 자본주의로 보았다는 점을 지적했다그러면서 자본주의의 발전은 프롤레타리아트 속에서 사회주의에 대한 열망과 의지를 일깨운다는 판네쿡의 견해에 동조하고 있다.

 

그리고 남은 문제로 제국주의 전쟁이 세계 노동계급을 착취하는 잉여노동의 재분배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온다는 점전쟁은 위기환경보건의 쟁점과 함께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삶의 주요 부분이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쇠퇴이론이 더는 차지할 위치가 없는데현실과 반대될 뿐 아니라 맑스주의의 이론적 기초에도 반대되기 때문이라고 결론짓는다.

 

 

4. 결론 자본주의 쇠퇴론의 토론이 남긴 과제

 

자본주의 쇠퇴론의 중심에 있는 ICC는 2020년 12월 팬데믹과 노동계급에 대한 논쟁을 온라인(영상토론회로 개최했다토론회에서 ICC는 자본주의 발전에서 시대의 일반적 특징으로 부흥(상승), 쇠퇴그리고 해체로 규정하는 자신의 입장을 다시 확인하고 오늘날 자본주의가 성장하지만뿌리로부터 썩어가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그리고 자본과 노동 사이의 근본 모순역사의 주요 동력으로서 계급투쟁을 무시하지 않지만혁명으로 전복하지 않으면 상호 유린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막다른 골목에 와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22]

 

그리고 코비드19 팬데믹은 세계 자본주의의 황폐한 조건이라는 글에서는 코뮤니스트 혁명이 가능하다는 보다 적극적 전망을 제시하기도 한다.[23] 그러나 독자 편지 왜 ICC는 역사적 경로의 개념을 포기했는가?라는 글에서는 ICC의 기존 입장을 강변하고 있다.[24] ICC는 맑스의 방법과 맑스주의 운동을 채택해왔고 그에 따라 1989년 동구 블록의 몰락 이후 역사의 경로’ 개념이 철 지났다고 판단하고, ‘세계전쟁인가 프롤레타리아 혁명인가?’가 아니라 일반화된 혼돈에서의 인류의 파괴인가프롤레타리아 혁명인가?’다 라고 결론짓고 스탈린주의 체제의 몰락이 마치 코뮤니즘의 몰락이라는 부르주아지의 캠페인 때문에 프롤레타리아트의 의식과 전투성이 약화하였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아직까지 최근에 제기된 자본주의 쇠퇴에 대한 논쟁에는 어떠한 대응도 하지 않고 있다이는 아마도 이들 입장이 코뮤니스트 좌파진영의 입장이 아니라고 판단하지 않았을까 하는 나의 추정이기도 하다그러나 우리는 자본주의 쇠퇴론 논쟁을 검토하면서 몇 가지 잠정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ICC가 의존하는 룩셈부르크의 시장포화론만으로 자본주의 쇠퇴를 말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비자본주의 시장과 자본주의 시장의 구획은 1차 세계대전의 시점과 그 이후 비자본주의 시장이었던 식민지국가들이 자본주의로의 통합이 이루어지는 1960년대 이후는 그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둘째그렇다고 해서 1차 세계대전이 제국주의 전쟁금융자본주의프롤레타리아트의 봉기와 생산관계의 모순 심화가 생산력 발전의 족쇄가 되는 역사적 계기였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셋째아직도 세계전쟁인가 세계혁명인가의 문제는 1차 세계대전 때뿐만이 아니라 지금도 유효하며코비드19 팬데믹 이후의 자본주의 모순과 위기의 전망 아래에서도 더욱 유효하다는 코뮤니스트 좌파의 기본입장은 더욱 원칙적인 맑스주의 방법과 맑스주의 운동의 역사 속에서 확인되기 때문이다.

 

넷째몇몇 토론자들이 제기한 판네쿡의 입장즉 자본주의가 자동으로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프롤레타리아트의 자기해방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인식이 코뮤니스트 좌파가 되새겨야 할 혁명원칙임을 상기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다섯째자본주의 쇠퇴론은 역사적 경로 문제와 분리될 수 없는 총체적 틀로 분석하고 코뮤니스트 사회를 전망하는 코뮤니스트 좌파의 역사적 책무가 더욱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코뮤니스트전망 ㅣ 오세철

 

 

<>

 

[16] A Free Retriever’s Digest - An internationalist Articles Selection & Review」 Vol.5 #1 (January – March 2021)

C.Mcl의 글 출처는 Les impostures du CCI (Courant Communiste International)

http://leftcommunism.org/spip.php?article468&lang=fr

Translation: H.C., September 2020. Reviewed by the author.

Latest corrections: 17 November 2020. 이다.

그리고 “1914 이후 자본주의는 쇠퇴에 들어섯는가의 블로그 토론은 A Free Retriever’s Digest」 (November 2020)에 실려 있다.

[17] C.Mcl의 글, 6

[18] 위 글, 7~27

[19] 블로그 토론, Link, November 6. 2020, 13~16

[20] Aníbal & materia, February 5, 2021 (Translation of March 2021)

A Free Retriever (2021년 3월 14)

https://afreeretriever.wordpress.com/portfolio/discussion-contributions-on-the-question-of-capitalisms-decadence/5/

[21] Fredo Corvo, January/March 2021

A Free Retriever (2021년 3월 14)

https://afreeretriever.wordpress.com/portfolio/discussion-contributions-on-the-question-of-capitalisms-decadence/4/

[22] ICC, Netto (2021년 2월 20)

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16980/icc-virtual-discussion-meetings-contacts-december-2020-lively-debate-pandemic-and

[23] ICC, Sylver (2021년 2월 17)

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16983/covid-19-pandemic-reveals-dilapidated-condition-world-capitalism

[24] ICC, Sofiane (2021년 3월 5)

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16982/readers-letter-why-has-icc-abandoned-concept-historic-course

 

<이전 글>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40710
 

 

 ▶ 더 자세한 내용과 토론은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포럼에서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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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3호] 자본주의의 쇠퇴이론 : 회고와 전망Ⅰ

자본주의의 쇠퇴이론 회고와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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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코뮤니스트」 12(2020년 11) “코뮤니스트 좌파진영 최근 내부 논쟁(3)”의 머리글에서 나는 논쟁(1)과 (2)를 정리하면서 역사의 경로에 대한 논쟁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1]

 

첫째, ICC(국제코뮤니스트흐름)는 역사의 경로’ 개념이 해체’ 시기에 더는 유효하지 않다고 하는 반면, ICT(국제코뮤니스트경향), IGCL(코뮤니스트 좌파 국제그룹), NC(신경로), GCCF(걸프만 코뮤니스트 분파등은 혁명인가 전쟁인가의 의제가 여전히 유효하며, ICC는 계급투쟁을 폐기했다고 비판한다이는 근본적으로 맑스주의에 대한 이해유물론과 관념론의 대립자본주의의 모순에 대한 이해 등의 근본적 논쟁을 내포하기 때문에 더욱 깊이 있는 문제 제기와 논쟁이 요구되는 과제로 남겨두기로 하자.

 

둘째, (자본주의의해체 시기를 양대 제국주의 블록의 소멸(소련 해체로 인한)로 보고 계급의 힘의 균형이 더는 의제가 아니라는 ICC는 소련을 포함한 이른바 사회주의를 국가자본주의로 규정했기 때문에 이미 세계 자본주의 틀 안에 국가자본주의의 몰락을 자본주의 해체라는 새로운 의미로 규정하기에는 스스로 모순을 안고 있다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계급투쟁은 필연적인 역사발전의 동력이기 때문에 해체’ 문제를 자본주의를 넘어선 인류의 파괴로 본다면 우주적 차원의 더 넓고 깊은 인식의 영역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셋째코뮤니스트 좌파진영 논쟁이 맑스주의 원칙정치 노선강령 등의 본질적 개념과 과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기회주의’, ‘기생주의라는 조직 문제로 한정되고 서로를 비난하는 방식으로는 세계혁명과 그것을 프롤레타리아트와 함께 이루어 낼 세계혁명당 건설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역사의 경로’ 논쟁이 깨닫게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결론 새로운 토론논쟁 그리고 연대-단결을 전망하며에서 다음과 같이 끝을 맺었다.[2]

 

(첫째둘째셋째는 생략)

 

넷째그러나 논쟁이 시작된 혁명인가 전쟁인가의 중심의제는 ICC가 전쟁을 세계적 혼돈으로 대체하면서 이윤을 강조한 ICT 등의 입장과 혼돈야만 등의 질적인 차원이라는 인류문명 차원의 ICC 대립 구도는 앞으로도 지속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다섯째팬데믹 위기가 자본주의 위기제국주의 전쟁의 가능성프롤레타리아트 투쟁의 전망맑스주의와 코뮤니즘 원칙에 굳건히 서 있는 젊은 코뮤니스트들의 성장과 발전계급 정체성을 회복하는 혁명적 노동계급의 복원은 적어도 앞으로 10년은 그 과정을 통해 프롤레타리아트와 코뮤니스트들의 연대단결통일을 위한 자기반성상호비판이 계속될 것이다.

 

그런데 최근(2021A Free Retriever’s Digest」 5호부터자본주의의 쇠퇴에 대한 또 다른 논쟁이 시작되면서 위에 언급한 역사의 경로’ 논쟁과 연결될 수밖에 없는 중요한 계기를 만나게 되었다. ICC의 자본주의의 쇠퇴를 번역하고(2009) <혁명적 맑스주의자 국제대회(2006)>에서 자본주의의 쇠퇴를 둘러싼 코뮤니스트 좌파 내의 논쟁을 정리한 글을 발표한 나로서는 자본주의의 쇠퇴이론의 역사를 회고하면서 코뮤니스트 좌파의 미래를 전망하는 글을 준비해야만 했다.

 

 

2. 자본주의 쇠퇴 이론에 대한 회고

 

2-1. 2006년 <혁명적 맑스주의자 국제대회>

 

좌익 공산주의 혁명적 맑스주의 역사와 논쟁(빛나는 전망2008년 9) 편집자인 나는 편집자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3]

 

“2006년 10월 23일 한국에서 처음으로 혁명적 맑스주의자 국제대회가 열렸다그 대회에 참가한 조직은 [국제코뮤니스트흐름](International Communist Current)과 [국제주의자전망](Internationalist Perspective), (초청받은 [혁명당국제서기국](International Bureau for Revolutionary Party)은 참여하지 않았다)이며한국에서는 주체자로서 [사회주의정치연합], [노동해방당건설투쟁단], [노동해방연대], [울산노동자배움터]가 대회 발제자로 참여하였다나는 주최 측을 대표하여 다음과 같은 인사말을 했다.

 

우리는 지금까지 세계 여러 곳에서 정기적으로 맑스주의자 대회(모임)가 열리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그러나 대부분은 강단의 추상적 논리나 자본주의의 좌파에 속한 정치적 세력들의 연대를 위한 행사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자본주의 쇠퇴 시대의 객관적이고 주체적 조건이 야만과 전쟁을 넘어서서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도 우리는 더욱더 깊이 인식하고 있다.

 

한국의 노동계급은 현장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고 혁명적 정치 세력은 전망을 분명하게 열어젖히지 못하고 있지만과거 혁명운동이 국제주의 원칙을 저버리면서 참담한 패배를 경험했던 역사를 뿌리로부터 반성하면서 우리는 하나의 현장하나의 국가하나의 민족을 넘어서는 세계 프롤레타리아의 단결을 이루어내야만 한다.

 

이번 혁명적 맑스주의자 국제대회는 한국의 혁명적 맑스주의자들과 세계의 좌익공산주의자들과의 소중한 만남과 토론의 마당이며 혁명적 맑스주의 진영 내의 입장과 노선 차이를 드러내고 소통하는 첫 번째 경험이 될 것이다.

 

대회의 주제를 이론실천전망으로 구분하고 이를 꿰뚫는 인식의 지평을 넓혀 나가는 것이 이번 대회의 주요 목표이다우리는 이번 국제대회를 시작으로 세계의 혁명적 맑스주의 세력이 연대하고 단결하여 세계혁명을 향한 힘을 축적하고 세계의 프롤레타리아트와 함께 그 역사적 과업을 완수하기를 바란다.”

 

이 대회에서 내가 발표한 글은 자본주의의 쇠퇴에 관한 논쟁에 대하여이다.[4] 코뮤니스트 좌파 내부에서의 자본주의 쇠퇴에 관한 논쟁은 주로 1990년대 말부터 지금까지 이루어지고 있다논쟁은 주로 ICC와 IBRP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으며, IP는 자신의 입장을 ICC/IBRP와 구별하면서 제출하고 있다이번 호는 이들 세 흐름의 최근 글들을 기초로 하고 있다.[5] 자본주의 쇠퇴이론은 맑스 역사적 유물론의 중심 이론으로 앞으로 프롤레타리아 혁명 전략의 기초가 되며 코뮤니즘의 전망을 여는 열쇠이기도 하다이번 호는 논쟁의 지점을 정리하고 각 세력의 입장을 대비하여 그 차이를 드러내려고 하였고주로 직접 인용문을 대상으로 하였다.

 

논쟁의 쟁점들은 1) 쇠퇴 이론(개념)을 포기했는가의 문제, 2) 쇠퇴 기원에 대한 논쟁, 3) 경제 결정론인가의 문제, 4) 쇠퇴의 양적 기준과 질적 기준 문제, 5) 전통적 맑스주의 문제이며 더 공개적 논쟁을 위하여 잠정 결론을 짓고 있다.[6]

 

첫째자본주의 쇠퇴이론과 개념은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코뮤니스트 사회 건설의 핵심으로 중요하게 인식되어야 한다.

 

둘째자본주의 위기에 대해 경제 이론의 양적 기준만으로 이해하는 것은 불충분하다따라서 유물론에 철저하게 기초하면서 총체성의 방법으로 접근해야 한다.

 

셋째경제 메커니즘과 계급투쟁의 변증법적 통합인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넷째부르주아지의 저항 능력이나 기술발전의 힘에 대한 지나친 과대평가는 부적절하다.

 

다섯째쇠퇴와 자본의 실질적 지배와의 관계가 철저하게 분석되어야 한다.

 

여섯째주체로서 노동계급에 대한 인류학적문화적 연구가 쇠퇴와 관련되어 폭넓게 연구되어야 한다.

 

일곱째자본축적에서 포드주의포스트포드주의의 이분법을 넘어 쇠퇴 시대의 울트라 포드주의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여덟째맑스주의 핵심과 그의 이론적 간극과 빈틈에 대한 보다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

 

2-2. 자본주의의 쇠퇴」 (ICC 지음오세철 번역빛나는 전망, 2009)의 출간

 

코뮤니스트 좌파 정치조직 가운데 자본주의의 쇠퇴이론을 앞장서서 주창하고 책으로 출간한 조직은 ICC(국제코뮤니스트흐름)이다. 2006년 <혁명적 맑스주의자 국제대회>를 한국에서 개최하고 그 대회의 중심이론이 자본주의 쇠퇴이론이었음을 앞서 밝힌 바 있다.

 

나는 이 책을 한국어로 옮기면서 다음과 같이 옮긴 이의 글을 썼다.[7]

 

생산관계의 근본적 모순의 심화가 생산력 발전의 족쇄가 되어 결국 그 족쇄를 깨뜨리는 생산양식의 단절이 필연적이라는 맑스의 역사유물론은 인류 역사의 발전에 대한 탁월한 과학적 사상이론이다봉건제 이후의 자본주의가 상승기를 경험하다가 1차 세계대전 이후 쇠퇴기에 접어들어 그 자생적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체계적 몰락의 길로 나가고 있음은 지금 세계자본주의가 겪고 있는 공황과 자구적 처방의 속절없음을 보아도 자명하다.

 

1919년 코민테른 창립대회에서 자본주의 선택의 길을 전쟁이냐 혁명이냐고 단언한 이래 자본주의의 쇠퇴에 대한 이론적 입장은 혁명적 맑스주의 진영의 중심적 화두였고 논증의 대상이었다. (...)

 

이 소책자는 1970년대에 발간되었으나 최근에 ICC가 수정 보완한 수정판이다. (...)

 

자본주의의 위기를 잉여가치 생산에 초점을 맞추는 이윤율저하 경향법칙과 잉여가치의 실현에 초점을 맞추는 자본주의 시장 포화론 사이에서 ICC는 로자 룩셈부르크의 입장인 후자에 기반하고 있고 이는 현재 세계자본주의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자본주의 쇠퇴이론의 몇 가지 핵심을 말하고 있다.

 

임노동 관계의 본질로 인해서 자본주의는 그것이 추출한 모든 잉여가치를 그 자신의 사회적 경계 내에서 실현할 수 없다는 맑스의 주장에 기초하여룩셈부르크는 자본주의 역사적 하강은 자본주의적 총생산에 따라 창출된 잉여가치의 양에 비해 자본주의 외부의 시장들이 모두 소진되는 그 시점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다고 결론지었다룩셈부르크에게 자본주의는 자체만으로는 존재할 수 없는그래서 매개나 토양으로 다른 경제체제가 필요한 최초의 경제 양식이었다동시에 그것은 세계적 보편 체제가 되려는 경향이 있지만그러한 체제가 될 수 없어서 파괴되고 마는 것이었다.”(자본축적론). 요약하면자본주의는 지구 전체를 지배하게 된 그 시점에 과잉생산의 영원한 위기에 빠지게 되었다.”[8]

 

룩셈부르크의 인터내셔널 그룹레닌의 볼셰비키 분파브레멘의 좌익급진파 등 이들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원칙을 고수한 세력들로서,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맑스가 예측한 전쟁과 혁명의 시기의 시작을 나타냄을 확인하고프롤레타리아트가 자신의 혁명적 투쟁으로써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할 것을 요구했다.”[9]

 

쇠퇴론은 ICC가 고안한 것이 아니라 맑스주의 전통 전체로부터의 진정한 유산이다그리고 그것은 일관된 혁명적 활동의 필수 불가결한 기초이다그것이 작동하는 시대에 대한 이해 없이는 프롤레타리아 정치조직의 강령은 그 분석과 계급 내 개입을 위한 물질적 기초를지향성을 가질 수 없다자본주의 쇠퇴에 대한 이해 없이는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캠프를 구별하는 계급 경계가 확고하게 방어될 수 없다.”[10]

 

이 책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11]

 

1계급사회의 번영과 몰락(43~85)

2위기와 쇠퇴(89~98)

쇠퇴의 징표들 (경제적 수준에서상부구조의 수준에서이데올로기 영역에서사회적 관계의 영역에서정치적 영역에서)

3자본주의에서의 쇠퇴(101~120)

4쇠퇴생산력의 총체적 정지?(123~134)

5_ 1914년 전쟁이라는 전환점(137~159)

6_ 2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163~177)

7쇠퇴의 위기들(181~188)

8총체자본의 개념(191~216)

 

그리고 자본주의 쇠퇴 문제가 이것으로 모두 다루어진 것이 결코 아니다이 중에서 조사되지 않은 문제들도 많이 있다라고 한계를 인정하면서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고 있다.[12]

 

우리의 주요 목적은 다음과 같다첫째프롤레타리아 혁명이 1차 세계대전 이후 의제라는 우리 확신의 기반을 설명하는 것둘째자본주의 사회가 거쳐 온 심각한 변화를 다루는 것이러한 변화는 혁명가의 전통적 입장을 낡은 것으로 만들어버렸다즉 19세기에 유효했던 전술들(의회주의노동조합에서의 활동민족투쟁에의 참여)이 오늘날 반()혁명적으로 되었다.”

 

2-3. 역사유물론 자본주의 쇠퇴론 그리고 코뮤니스트 혁명

 

맑스는 요강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13]

 

임금노동과 자본을 양측 면으로 가진인간 활동이 취한 노예체제의 마지막 형태는 그리하여 마치 허물이 벗겨지듯 사라진다이것이야말로 자본에 대응하는 생산양식의 귀결점이다. (스스로 이미 부자유한 사회적 생산의 이전 형태들에 대한 부정인임금노동과 자본의 부정을 위한 정신적물질적 조건들은 자본의 생산과정 자체의 산물이다사회의 생산력 발전과 현존하는 생산관계 사이에 점증하는 부조화는 모순위기변동으로 표현된다.”

 

맑스의 이 대표적 언명은 자본주의 쇠퇴론을 말하는 축약된 표현이며역사유물론의 핵심이기도 하다여기서 쇠퇴 의미는 사회주의 기초 형성과 파국을 향한 모순을 포함한다자본주의 쇠퇴론의 쟁점들 속에는 위기자동붕괴상승기와 쇠퇴기의 구분이행의 의미주체와 객체에 대한 존재론적 문제가 담겨있다.

 

한편 엥겔스가 확립한 에르푸르트 강령은 당 강령의 중심에서 자본주의 쇠퇴론과 자본주의의 붕괴를 지지한다.

 

이러한 (사유재산체제를 지키려는 노력은 더는 사회발전을 불가능하게 하고 사회가 정체와 쇠퇴로 가게 한다. (...) 새로운 사회질서의 수립은 단순히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 불가피한 것이 되었다오늘날 모든 것이 보여주는 것과 같이 자본주의 문명은 지속할 수 없다우리는 사회주의로 나아가든지 야만으로 전락하든지 해야 한다인류의 역사는 관념에 따라 결정되지 않고 누구의 바람이나 변덕이 아닌 특정한 기본법칙에 복종하면서 저항할 수 없이 진보하는 경제발전으로 결정된다.”[14]

 

에르푸르트 강령은 내부모순에 의한 자본주의의 불가피한 몰락을 주장할 뿐만 아니라 개량주의적 목표와 전술도 담고 있다그리고 사회주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자유로운 창조물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가 상속받은 경제발전의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보았다이처럼 제인터내셔널이 맑스의 경제학만을 채택해 자본주의 사회의 사회형식 비판으로서가 아니라 경제학으로서 정치경제비판을 한 것은 맑스의 공헌이 경제학이 아닌 정치와 경제의 분리에 대한 비판즉 경제학 비판임을 인식하지 못한 데 있다.

 

1916년 이후 부하린과 레닌의 이론은 제국주의와 전쟁을 금융자본의 피할 수 없는 정책으로 보았고이러한 금융자본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나아가는 자본주의 쇠퇴로 보았다로자 룩셈부르크는 다른 분석을 통해 자본주의 몰락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반면 코뮤니스트 좌파는 프롤레타리아트 패배와 투쟁의 고립에 직면하여 자본주의가 쇠퇴한다는 객관적 분석에 몰두하게 된다.

 

그로스만(Gossman)과 그 추종자들은첫째 자본주의가 파국으로 가면서 쇠퇴하고 있음을 보이는 경제학을 이해하였고둘째 새로운 경제 질서를 도입하는 정치혁명의 필요성을 보았다그들은 맑스의 자본을 자본주의 몰락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완전한 경제학으로 선언했다그러나 이들은 정치와 경제의 연결 관계가 내부적이 아니라 외부적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고 자본의 완결이 자본주의 정치경제가 아니라 노동계급의 정치경제라는 맑스의 총체적 이해 부족이었다.

 

이러한 경제와 정치를 분리하는 그로스만의 입장을 비판한 판네쿡은 혁명적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마지막 위기를 믿는 것이 불필요하다고 주장한다자본주의는 위기에서 위기로 이어지고 프롤레타리아트는 투쟁을 통해서 배우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자본주의 파괴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그는 프롤레타리아트 자기해방이야말로 자본주의 몰락이라고 주장하면서 (자본주의 입장이 아닌노동계급 입장에서 자본주의 쇠퇴와 몰락을 이해하고 있다.

 

21세기 오늘날 코뮤니즘의 역사적 필요성을 주장하는 코뮤니스트 좌파는 다음과 같이 결론 맺고 있다.[15]

 

맑스주의 혁명적 기초는 자본주의가 위기 체제일 뿐만 아니라 자기 확장의 객관적 한계에 직면한 생산양식임을 증명하는 능력에 있다이 견해는 코뮤니즘이 바람직할 뿐만 아니라 절대적 필요성이라는 것이다쇠퇴하는 자본주의 시대에 이러한 필요성은 21세기 오늘날 자본주의가 그 위기를 (전쟁이라는가치의 물질적 파괴를 통해 해결하려는 방법이 인류 전체를 절멸시키려고 위협하고 있기에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맑스주의 핵심이론인 역사유물론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 쇠퇴이론에 대해 정통 맑스주의 입장을 역사적으로 검토하였다자본주의 쇠퇴론에서 이탈과 포기는 사실상 맑스주의 포기일 수밖에 없고자본주의 생산양식의 폐절이 아닌 수정주의나 개량주의로의 노선 전환임을 인식할 수 있었고, 2차 세계대전 후 호황과 되풀이되는 위기를 경험하면서 단기적 국면의 주체성 이론들의 등장과 소멸을 지켜보았다.

 

1980년대 이후 자본주의의 모순과 계급투쟁을 뒤섞은 조류인 사회민주주의와 스탈린주의 동반 몰락은 자본주의 쇠퇴론이라는 정통 맑스주의 입장을 다시 한번 힘차게 부여잡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자본주의 쇠퇴라는 객관적 자본 법칙과 이를 폐절하려는 능동적 주체로서의 노동계급의 투쟁이 상호작용하면서 21세기의 자본주의는 그야말로 코뮤니즘의 객관적 물질적 기초를 마련해 줄 뿐만 아니라 생산력으로서의 혁명 세력을 강력하게 형성시키고 있다여기서 우리는 코뮤니즘 본질에 대해 체계적으로 종합하고 최대강령의 원칙을 찾아내야 한다.   <계속>

 

국제코뮤니스트전망 ㅣ 오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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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코뮤니스트」 12, 2020년 11국제코뮤니스트전망, 172~173

[2] 코뮤니스트」 12, 2020년 11국제코뮤니스트전망, 189

[3] 좌익공산주의 혁명적 맑스주의 역사와 논쟁오세철 편저빛나는 전망, 2008, 5~6

[4] 위 책, 262~278

[5] ICC의 경우International Review」 no.96, 97, 105, 115, 117, 118, 119, 121

IBRP의 경우Prometeo」 no.8, Revolutionary Perspectives」 no.32, Internationalist Communist」 no.21

IP의 경우INTERNATIONALIST PERSPECTIVE」 no.30, 31, 34, 35, 44 그리고 이번 대회 발제문

[6] 위 책, 277~278

[7] 자본주의의 쇠퇴국제코뮤니스트흐름 지음/오세철 번역빛나는 전망, 2009년 1, 1~2

[8] 위 책, 19

[9] 위 책, 20

[10] 위 책, 36

[11] 위 책, 41~218

[12] 위 책, 221

[13] 칼 맑스 요강」 <전집> 29, 133~134

[14] 에르푸르트 강령, 117~119

 

[15] “모순의 축적인가 로자 룩셈부르크의 경제적 결과인가”, Revolutionary Perspectives」 43, 2007년 8

 

▶ 더 자세한 내용과 토론은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포럼에서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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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3호] 200년: 엥겔스와 그의 혁명적 기여

 200엥겔스와 그의 혁명적 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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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태어난 때로부터 200년이 된 해였다이를 기념하여 우리는 1995년 엥겔스 사후 100주년을 기념하며 출간했던 혁명적 전망(Revolutionary Perspective)」 1(시리즈 3)의 글 하나를 다시 펴낸다이것은 축하라거나단순한 일대기가 아니다이것은 맑스주의 방법과 19세기 노동운동의 발전에 기여한 그의 공헌과 그의 사후 125년 동안 이어진 그의 중요성을 평가하려는 시도이다여기서 엥겔스의 공헌을 방어하며 제시된 주장은 이른바 ()엥겔스주의의 근원도 추적하는데이 주장이 제기된 25년이 지난 이후새로운 세대(보기를 들어몇몇 아마추어 코뮤니스트들과 가치 형태 이론가들)가 다시 한번 맑스주의에서 엥겔스를 퇴치하려는 시도에도 유효한 것으로 남아있다.

 

 

없어서는 안 될 엥겔스

 

칼 맑스의 전 생애에 걸친 친구이자 협력자프리드리히 엥겔스는 1895년 8월 5일에 사망했다노동계급이 자신의 가장 위대한 투사이자 혁명적 코뮤니즘의 공동 설립자를 잃은 해로부터 100년이 지났다.

 

엥겔스가 없었더라면맑스주의도맑스주의 운동도 없었을 것이다. 1847년 코뮤니스트 동맹(Communist League)의 발족으로부터, 1864년 국제 노동자 협회(인터내셔널설립말하자면 가장 익숙한 정치적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1889년 제인터내셔널의 준비에 이르기까지엥겔스의 기여는 필수 불가결한 것이었다.

 

현재 우리의 역사적 경험과 마찬가지로 퇴조 시기맑스와 격리되어 있었음에도조직의 와해에도 불구하고 투쟁의 중심에 섰던 사람이 바로 엥겔스였다많은 서신을 통해 분파의 필수적인 작업을 계속했던 것도 그였다. 1883년 맑스 사후엥겔스는 당의 정신으로서 살아 숨쉬며인터내셔널까지 바로 조직의 원칙과 경험의 지속성을 전달했고역사적인 오늘날그 정치적 유산을 체현한 유일한 전통코뮤니스트 좌파에게까지 전달했다.

 

엥겔스의 이론적 투쟁에 대한 고발은 최종 분석에 있는데이는 정치적 상황과 따로 떨어질 수 없으며그의 위상에 동등한 증언으로 남아있다그들의 공식화 이후 100오늘날 그의 사상은 뜨거운 논쟁거리분란의 원인으로 남아있다. 1844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a Contribution to a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부터 자본주의 경제의 근본적인 본질에 맑스의 눈을 뜨게 한 작업인 공동저작코뮤니스트 선언(Communist Manifesto), 청년 헤겔주의자에 대한 응답으로 맑스와 함께 맡았던 초기 작품신성 가족(The Holy Family)독일 이데올로기(German Ideology)그리고 그의 후기 저작들인 -뒤링(Anti-Dühring)가족사유재산국가의 기원(The Origin of the Family, Private Property, and the State)자연변증법(The Dialectics of Nature)에 이르기까지그리고 맑스의 자본(Capital)」 초안에 대한 물적지적 지원부터 혁명적 코뮤니즘의 원칙들을 유명하게 한 수많은 팸플릿과 논쟁적인 글들에 이르기까지엥겔스의 지적 에너지는 프롤레타리아트 해방에 끊임없이 기여했다.

 

이 글은 그를 칭송하기 위한 일대기가 아니다우리는 학계의 맑스주의 전문가들이 안락의자에 앉아 연대기적 자료들의 유골을 살펴보도록 내버려 둘 것이다엥겔스의 결정적인 전기는 계급투쟁의 페이지 속에서만 작성될 것이다우리는 그 대신 엥겔스의 혁명적 맑스주의를 방어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며이는 전문적인 중상모략의 정통이 된 이들에 의해 폄하된 그의 명성을 회복하려는 시도이다.

 

()엥겔스주의의 기원

 

2차 세계대전 이후 재건 시기패배를 모르는 새로운 프롤레타리아트 세대가 등장했는데계급의 정치적 재구성을 위한 필수적인 주관적 조건들이 부재한 상황에서 그들은 다양한 종류의 좌익 급진주의의 등장을 목격했다새로운 축적 싸이클 위기의 징조냉전 시대 첫 번째 균열, CND(Campaign for Nuclear Disarmament, 핵군축 캠페인)와 새로운 좌파의 성장베트남전 반대 등지식인 집단의 새로운 계층들을 급진화하고 필연적으로 동시에 맑스주의 사상에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킨 몇몇 조건이 존재했다.

 

이 과정은 몇몇보다 명백한 개량주의의 공허함그리고 스탈린주의라는 이데올로기적 돌덩이의 무거운 무게에 대한 더 큰 문제 제기로 이어졌다결과적으로 비판자들은 맑스주의 설립자들의 저작에서 스탈린주의의 씨앗과 개량주의의 실패를 찾기 시작했고이는 학계 맑스주의의 확장에 기름을 부었다이와 동시에 맑스의 초기 인본주의적’ 저작들이 널리 이용되었다엥겔스의 사상에 대한 새로운 합의가 등장하기 시작했다엥겔스의 사상이 완전히 관념적 방법의 결과였다는 것 지면의 한계로 자세히 다룰 수는 없지만 이 영향력이 적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이 시기의 주류는 스탈린주의의 조악한 환원주의와 개량주의의 반-이론적 왜곡에 대한 반응으로 종종 철학적문화적 분석을 강조하는 것이었다그러나 신좌파(New Left)의 맑스 계승주의자들(marxicologists)은 태생적으로 이러한 현상들을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이론에서 환원주의나 실용주의가 스탈린주의나 개량주의 보다 덜한 원인이라 가정한다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이 맹목적으로 관념론적 방법을 추구한다는 뜻이다.

 

일단이 논리가 받아들여지면유산의 지식인들은 곧 어떤 사상가가 이런 잘못된 사상들을 운동에 처음 들여왔는지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한다. ‘원죄’ 탐색이 시작되었다.

 

비판

 

맑스와 엥겔스의 사상 사이의 틈을 최초로 체계적으로 주장한 연구 중 하나는 게오르그 리히트하임(Goerge Lichtheim) 맑스주의역사적이고 비판적인 연구(Marxism: An Historical and Ciritical Study, Routlege, 1961)이다리히트하임은 맑스의 비전에서 비판적 사고는 혁명적 행동에 의해 증명된다.(validated)”는 것이엥겔스에게서는 사회주의가 필연이라는 것이 거의 기계적인 확실성으로 연역될 수 있다는 점에서이는 철의 법칙으로 등장한다.”(1)로 바뀌었다고 주장했다.

 

엥겔스가 역사적 진화가 자연적(보편적진화의 한 측면이고기본적으로 같은 법칙에 종속된다고 했을 때 맑스와 갈라선 것으로 여겨진다맑스는 헤겔로부터 역사를 만들어가는 데 자기 의식적 행동의 중요성을 가져왔다반면진정으로 엥겔스를 도취시킨’ 것은 헤겔의 결정론자연과 역사가 이미 정해진 과정을 따르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능력이었다.(2)

 

리히트하임의 책은 발간 이후 20년 넘게 출간된 저작들에서 매우 친숙해진 여러 가지 주제들을 반복한다엥겔스가 맑스의 주체적 행동을 과학의 경험론적(실증주의적개념으로 대체했고이는 다윈주의 진화론과 비슷한 방식으로 사회적 세계와 자연 세계를 모두 포함하는 것으로 맑스주의를 잘못 확장했으며이 결정론적 환원주의적 공식이 필연적으로그의 삶이 다하는 날까지독일 사회 민주주의당(German Social Demoratic Party)이 개량주의적 정책을 지지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리히트하임은 서유럽 맑스주의으로 알려진 사상적 흐름의 뿌리 깊은 특징이 된 반()엥겔스주의의 시작을 알린 것이다알프레드 슈미츠(Alfred Schmidt)의 맑스의 자연의 개념’(The Concept of Nature in Marx)(1962)에서는 아래와 같이 주장한다:

 

자연과 사회적 역사의 관계에 대한 개념에서 엥겔스는 맑스의 개념을 넘어섰고이 지점에서 그는 교조적 형이상학으로 빠져들었다.”(3)

 

슈미츠는 맑스가 물질세계와의 상호 작용 속에서 사상을 찾았다면엥겔스는 인간 존재의 두뇌 속에서 외재적 세계의 조악한 반영만을 보았을 뿐이며 이를 알량한 의식 이론의 모조품이라고 믿었다.

 

1969루시오 콜레티(Lucio Colletti)는 거의 무심결에 아래와 같이 질문할 수 있었다.

 

카우츠키와 플레하노프가 저지른 맑스주의 사상에 대한 왜곡은배아 상태였을 뿐이지만 엥겔스의 저작의 몇몇 측면 속에서 어디까지 이미 준비되어 있었는가자연과 역사 발전의 가장 보편적인 법칙에 대한 탐색이 이러한 시도를 전반적으로 헤겔주의와 다윈주의와의 오염의 경향(preconstitution)으로 만들었는가?(4)”

 

그는 계속해서인터내셔널의 지도자들에 대한 엥겔스의 영향력이 철학적-우주론적 발전다시 말해 자연 철학’, 다른 말로 역사적 유물론을 확장하여 변증법적 유물론에 넣은 그의 작업의 부분적 결과라고까지 주장한다.

 

콜레티에 따르면, ‘변증법적 유물론은 엥겔스가 홀로 잘못한조악한 오해이다엥겔스는 유물론을 더욱 우월한 형태로 만들고 있다는 착각으로이미 헤겔에 통째로 존재했던 사물의 변증법’ - 이에 대해 헤겔이 이미 명시적으로 반-유물론적 기능을 부여한 것도 모른 채 을 진부한 방식으로 재생산했을 것이다.

 

엥겔스로부터모든 맑스주의를 아우르는 가짜-맑스주의 전통이 확산했을 것이다레닌의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은 맑스주의와 헤겔(1958)의 첫 부분에서 부분적으로 면죄부를 받을 수 있으나두 번째 부분(1968)에 의하면 완전히 이에 연루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이른바 서유럽 맑스주의라는코르쉬(Korsch)와 초기 루카치(Lukács)에서 마르쿠제(Marcuse)에 이르는 이들은 반()유물론과 반()엥겔스 논쟁에도 불구하고 맑스주의에 대한 엥겔스의 오류 계승을 역시 배신한 것으로 보인다.

 

70년대 초반에 이르러 그 양식이 완전히 받아들여졌다 엥겔스는 악당이었다정치적 입장이나 이론적 입장 콜레트의 신칸트주의가 되었든슈미츠의 인본주의가 되었든신좌파평론(New Left Review)의 알튀세르주의가 되었든 에 관계없이결론은 항상 같았다 무엇이 되었든 맑스주의가 잘못된 뿌리는 엥겔스였다르빈(Levine), 카버(Carver), 콜터(Coulter), 조던(Jordan), (Gunn) 등 몇몇 소수만이 이러한 경향이 가상의 정통에 엉겨 붙어 있음을 보았다.

 

맑스와 엥겔스 사상의 통합

 

맑스와 엥겔스의 사상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입장은명백한 현실 기록되어 있는 그들의 평생에 걸친 동반자 관계 을 무시한다코뮤니스트 운동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두 사람의 삶에 관한 기본적인 전기적 사실들을 뛰어넘는 것은 상당한 왜곡이 필요한 일이다오직 가장 조악한 방식의 관념론만이 그 위업을 행할 수 있다오직 미리 상상 속에서 정해놓은 결론만이 그러한 수정된 사상들을 유지하기 위해 실증적인 데이터를 왜곡할 수 있다.

 

카버(Carver)에게, ‘살아 있는 두 사람의 지적 관계는 바로 그들이 독립적으로 성취한 것에 관한 이야기이다.’ 맑스 사후, ‘변증법을 창조하고 그에 따라 맑스의 삶과 저작들을 재구성했다’(5)는 점에서 엥겔스는 전능한 역할을 맡게 되었다.’ 르빈(Levine)은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하면서 관념론의 반동적 논리를 뚜렷하게 보여주었다.

 

두 사람 사이의 기본적인 지적 차이가 어째서 유형화되어진정한명확하게 구분되고인정된 논쟁으로 표면화되어 나타나지 않았을까?”(6)

 

맑스와 엥겔스가 서로 다른 이론적 경로를 따라 발전했다는 아이디어는 어떤 전기적 증거도 없는 주장이다후자는 곁눈질로만 봐도 이를 지지한다.

 

1840년대 두 사람은 역사적 유물론으로 알려지게 될 관점에 도달했고몇몇 중요한 예시에서 길을 이끌어 간 것은 엥겔스였다전체가 공동작업인 코뮤니스트 선언은 코뮤니즘의 원칙들에서 엥겔스가 처음 윤곽을 잡았다엥겔스가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을 썼을 때맑스는 여전히 헤겔 철학의 엉킨 실타래에서 빠져나오는 중이었다이것은 40년 동안의 경제 분석에 몰두하기 위한 결정적인 동력을 제공한 것이었고또한 그의 1844년 경제학 철학 수고에 그 과정이 기록된맑스가 완전한 유물론적 계급 분석으로 이행하는 즉각적인 영감이 되어주었다.

 

맑스와 엥겔스는 공동의 견해에 도달하면서그들의 견해를 정교화한 신성 가족과 독일 이데올로기를 공동 집필했다그들은 그들이 개입한 의인 동맹에서 자신들의 사상을 설득하고 코뮤니스트 동맹으로 전환하기 위해 함께 투쟁했다. 1848년 유럽 곳곳에서 일련의 부르주아 혁명이 발발했다맑스와 엥겔스는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 경제적 발전을 촉진할 조건을 갖추는 데 기여하고자 했다.

 

맑스가 영국에서 망명 생활을 시작하고 엥겔스가 맨체스터에서 지낸 것은 필연적으로 그들의 공동 작업 유형을 변화시켰다– 그들 사이에 새로운 정치적지적 노동 분업을 확립한 것이다오랜 기간의 자본론」 작업 동안 엥겔스는 그들이 거의 매일 주고받은 서신에서또는 방문 토론을 통해 맑스의 변함없는 조언자였다이러한 지속적인 협업은 자본론」 집필의 모든 단계에서 계속되었으며이는 맑스가 엥겔스에게 대개 위임했던 교정작업을 포함한다맑스에게는, “말하자면 지금까지의 당신의 만족스러운 응답은 나에게 있어 세계의 나머지 누구의 만족보다도 더 중요합니다.” 그 마지막에서 우리는 그의 엥겔스에 대한 의심할 여지 없는 부채의 본질에 대해 알 수 있다.

 

당신이 없었더라면 나는 절대 이 작업을 완성할 수 없었을 겁니다그리고 확신컨대당신의 뛰어난 에너지를 낭비하고특히 주로 나와 관련된 돈을 버는 문제들 속에서 녹슬게 한 것에 대해더욱이 여전히 나의 소소한 문제들에 대해 나를 대신하여 당신이 개입해야 했던 것이 항상 내 마음을 무겁게 해 왔습니다.”(7)

 

르빈은 맑스의 죽음이 엥겔스가 자유롭게 그의 맑스주의에 대한 왜곡된 저작을 출판하게 했다고 주장한다그러나 르빈이 제공한 연대기 출판물조차 그 자신의 주장을 약화시킨다반뒤링은 맑스가 살아있는 동안 출판된 저작이며모든 프로젝트가 맑스의 아이디어였고맑스는 스스로 그 일부 챕터를 서술하였다우리는 맑스가 그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그의 철학을 학살하는 것그 자신의 사상에 안티테제인 형이상학적 구성하는 것으로부터 스스로를 분리해낼 필요를 명백하게 전혀 느끼지 못하면서두 눈 뜨고 보고만 있었다고 이해해야 하는가!

 

유토피아적 사회주의와 과학적 사회주의 반뒤링에서 나왔고이 또한 맑스 죽음 이전에 출판되었다. 가족사적 소유국가의 기원은 맑스 사후에 나왔으나맑스가 그의 손으로 작성한 문화인류학적 노트로 엥겔스가 만든 것이다루트비히 포이에흐바흐는 맑스 사후 출판되었으나그의 초기 저작들의 관점 연장선에 있음을 강조하는 것처럼엥겔스는 맑스의 새롭게 발견한 포이에흐바흐에 대한 테제를 부록으로 출판했다명백히 그는 인본주의적’ 젊은 맑스와 결정론적’ 늙은 엥겔스 사이의 모순을 발견할 수 없었다.

 

로라 맑스(Laura Marx)의 남편폴 라파르그의 아래 편지 발췌는아마도 어떤 역사적 회고보다도 그들의 진정한 취지와 독특한 관계에 대한 본질을 훨씬 더 잘 전달하고 있을 것이다.

 

엥겔스는말하자면맑스 가족의 일원이었다맑스의 딸들은 그를 그의 두 번째 아버지라 불렀다그는 맑스의 또 다른 자아였다그들은 젊었던 시절부터 함께 발전하고 서로 평행하게 함께 나아갔으며사상과 감정들의 친밀한 동료관계 속에서 살았고같은 혁명적 호소를 공유했다.···그러나, 1848년 혁명의 패배 이후엥겔스는 맨체스터로 향해야 했고맑스는 그동안 런던에 남아있어야 했다그렇다고 해도그들은 거의 매일 서로에게 편지를 쓰며 공동의 지적 삶을 지속해 나갔다.···엥겔스가 자신 일에서 자유로워지자마자그는 맨체스터에서 서둘러 런던으로 향했고거기서 그는 친우 맑스로부터 10분 거리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집을 마련했다. 1870년부터 그의 친구가 죽을 때까지그들은 하루도 허투루 보내지 않고 때때로 그들의 집에서때때로 다른 이들의 집에서 만났다.··· 맑스는 다른 누구의 의견보다 엥겔스의 의견을 높이 평가하였는데이는 맑스가 엥겔스를 그의 협업자가 될 수 있을 만한 사람으로 보았기 때문이며맑스에게 엥겔스는 그의 온전한 청자였다엥겔스를 납득시키고 그의 사상을 설득하는 데에 맑스는 그 어떤 것보다 큰 노력을 들였다보기를 들어나는 엥겔스의 어떤 부차적인 부분에 대한 견해를 바꾸기 위해 필요한 사실들을 찾으려고 맑스가 모든 서적을 몇 번이고 읽는 것을 보았다.··· 맑스에게 있어서는 엥겔스가 자신의 견해에 동의해주는 것이 큰 업적이었다맑스는 엥겔스를 자랑스러워했다그는 엥겔스의 모든 도덕적이고 지적인 뛰어난 점들을 열거하는 데에 기쁨을 느꼈다그는 지식의 다재다능함을 존경했고어떤 조그마한 나쁜 일이라도 그에게 생길까 경계했다.”(8)

 

저속한 유물론자의 저속한 비판

 

콜레티는 슈미츠와 페처(Fetscher)(9)와 마찬가지로 엥겔스가 맑스의 역사적 유물론을 우주적’ 차원으로 확대하려 할 때그가 반대하고자 했던 매우 저속한 유물론의 저주 아래쓸모없고 부정적인 작업에 빠져들었다고 주장했다간단하게이 주장은 다음과 같다 맑스의 인식론적(gnoseological)(10), 사회정치적 위대한 성취는 인간 존재가 자신의 노동을 통해 자연과 사회적 관계를 맺는다는 점이다결과적으로 인간이 자연을 변형하는 기능 외 지식은 없다이러한 혁명적 통찰 – 과거의 모든 철학에 비해 목적방법그리고 사상에 있어서 우월한 에 도달했으면서 어째서 자연 그 자체에 대한 철학으로 회귀하여 되돌아가야 하는가?

 

그러나자세히 들여다보면이러한 의견은 이론적으로그리고 역사적으로 오해임이 밝혀진다그것은 청년 맑스가 포이에르바흐에 대한 비판을 공식화한 시대와 비교하여 1850년 이후 유럽의 철학-과학적 변화를 적절히 반영하는 데 실패했다몰레스홋(Moleschott) 또는 부흐너(Buchner)는 순수 철학적 입장에서 포이에르바흐보다 열등했음에도 불구하고그들의 유물론은 포이에르바흐의 본질적으로 자연주의적인 인본주의보다 자연과학에 훨씬 더 많이 연결되어있다.

 

전자는 단순히 개념에 대한 감각적인 우월성을 주장하거나 신학을 인류학으로 바꿔버리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그들은 감각– 지성과 도덕성과 마찬가지로 을 생물학적 용어로 설명할 방법을 찾고자 했다맑스가 제기한 포이에흐바흐에 대한 반대는후자의 경우 능동적인 면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지점을 간과하였으나그래도 충분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일반적인 것으로 나타났다왜냐하면 새로운 유물론(18세기 프랑스 유물론도 마찬가지로)의 주장은 심지어 이런 능동적인 면조차 과학적 용어로그러니까 특정한 법칙을 따르는 여러 유물론적’ 과정으로 설명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 계획을 실행하는 것이 단순하고 조악하다 할지라도 그 주장이 옳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중요하다이 조악함은 주요하게 두 가지 요인의 결과이다. 1) 인간 문화도덕그리고 정치적 행동을 어떤 심사숙고 없이 생물학적 활동으로 환원시켜 버리고따라서 동물의 세계에 속한 인간 존재를 구분해주는 노동이 부여한 두 번째 본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 2) 사회적 불평등과 부당함을 과학으로 치료할 수 있는 질병으로 이해하며따라서 계급투쟁의 필연성을 이해하는 데 완전히 실패하고 과학자 자신들의 계급 위치와 어떻게 이것이 그들의 이론적 결과물을 조건 짓는지에 대한 어떤 분석도 누락해버린다는 점이 그것이다.

 

이러한 편향적인 지적 발전에 대한 대답은 단순한 주관적 요소의 재발견으로서뿐만 아니라 유물론의 틀 안에 주어져 있음이 틀림없다이것은 자연이 영원한 순환’(여전히 몰레스홋(Moleschott)은 이 개념을 공유하지만)이라는 개념을 전복시키고역사적 확실성이란 인류에게만 존재하는 독특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다윈의 위대한 발견이 유물론의 2차 유행을 불러온 이후더 중요한 것이 되었다.

 

다른 무엇보다도진화주의는 인간 이전 자연의 존재인류의 기원과 미래의 소실에 대한 의문을 다시 제기하였다노동의 등장과 함께 하는 두 번째 본성이 확립되는 한코뮤니즘의 출현과 함께 세 번째 본성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 인류의 생물학적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가어떤 점에서는 조악하고 반동적일 수 있었던 한 철학이 제기한 이러한 의문은 과학적 연구가 인류의 객관적 현실을 밝혀냄에 따라 새로운 빛을 비추었다그것은 그 자체로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강력한 치료제였다.

 

19세기 중후반 이러한 사상이 등장함과 동시에퇴색한 실증주의 또한 등장했다이 실증주의는 불가지론을 지향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종교로 장난을 치진 않았다. ‘실증주의에 반대하는 반응이 된 것은, 20세기 초쇠퇴 시기의 등장과 함께 유행한 관념론적 르네상스로실증주의 그 자체 내부에 이미 발아하고 있었다.(12)

 

바로 이러한 복잡한 상황에서 맑스주의의 이른바 우주론적 개발이 이뤄졌다그러나 이것은 엥겔스가 행했던 충동적인 지시를 보여준다기보다오히려 객관적 정치-이론적 필요를 의미했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 중요하다맑스주의의 두 설립자 사이의 차이에 대한 진지한 검토라면 그것이 한 사람의 철학적 심오함과 다른 한 사람의 이른바 피상적인 이해라는 식의 손쉬운 비교가 아니라두 사람 사이에 존재했던그들의 특수한 역사적 상황이 강제한 한계의 산물인 노동의 분업에 대한 검토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이 시기 당시의 문화와 논쟁하는 일을 맡은 것은 엥겔스였고맑스는 그동안 그의 모든 에너지를 단 하나의그의 위대한 작품자본에 쏟았다.

 

자연과학에 대한 엥겔스의 저작을 단순히 헤겔의 자연 철학의 진부한 반복이나 저속한 유물론에의 부분적 항복으로 취급하는 것은 이러한 저작의 근본적인 특징실증주의의 부정적인 측면에 반대하는 논쟁이라는 특징을 간과하는 것이다이러한 부정적 특징은 한 편에서 가 능한 한 생각(사고)을 금지하는 실증주의가 되어가는 경향이 있었고또 다른 한 편에서는 독일의 저속한 유물론이 주장하는 것처럼 자연 이론을 사회에그리고 사회 개혁에 적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13) 엥겔스가 헤겔주의 변증법의 이름으로 진정한 유물론’, 다시 말해 오늘날의 근대적인 과학을 형이상학의 한 형태로 거부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이다.

 

콜레티가 지적한 대로헤겔주의 변증법은 머리로 물구나무선’ 것이거나 신비주의의 껍질로부터 추출한 것으로서저속한 유물론이나 불가지론적 실증주의(경험주의)의 단점을 수정하는데 부적절한 도구라는 것이 진실이다그러나 헤겔주의 변증법에 대한 이러한 거부를그것을 인문과학에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유효하게 사용한 맑스와 자연과학에 잘못 적용한 엥겔스를 대립시키는 방식으로 제시하는 것은 잘못되었다.

 

헤겔과 관련해서는맑스와 엥겔스는 둘 모두 근본적인 지점에서 동의했다둘은 변증법의 유물론적 재해석을 위해서는 1) 객관적인 존재가 있는 법칙이나 법칙들로 취급되어야 하며객관적 실재(objective reality)가 오직 현상적으로 투영될 뿐인 사상의 법칙으로 여겨져서는 안 되며, 2) 현실에서 이러한 법칙들의 존재는 실증 방법을 통해미리 생각하고 있는 법칙에 끼워 맞추는 식으로 실재를 위반하지 않는 방식을 통해 정립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납득하고 있었다그들에게 있어 어려웠던 점은오늘날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이지만두 번째 작업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할 것이냐에 있었다.

 

보기를 들어 맑스의 글에서 나오는 것과 같은 부정의 부정과 같이변증법의 사용이 더 날카롭게 묘사된다면역사-인문학 내에서 기원한 논리적인 절차들의 사용을 자연과학에 적용할 때 보다 더 큰 문제를 불러온다는 사실로 아마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지금까지 자연 과학이그리고 여전히 자연과학은 과학적 정확성의 길을 따라 진보했고양적 용어로 공식화되지 않은 불만족스러운 특징들은 날카롭게 다듬어졌다맑스가 스스로 자연의 변증법이란 생각에 전혀 적대적이지 않다고 지나가는 말로 이야기했다는 점은 언급해 두어야겠다그는 자본」 1, ‘잉여 가치의 비율과 양’ 챕터 주석에서 작은 예시를 들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그가 언급한 엥겔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납득했다:

 

헤겔의 발견 – 양적 변화가 질적 변화로 전환된다는 법칙 – 은 역사와 자연과학에서 유사하게 옳다.”

 

이런 언급은 맑스가 변증법을 잠깐 건드려 보았을’ 뿐일 가능성을 배제하거나우리가 반()엥겔스 진영이 주장하는 바처럼 맑스가 엥겔스 때문에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스스로 허락했다고 가정해야만 하는 것일까?

 

엥겔스와 개량주의

 

엥겔스의 기계적 유물론이 독일 사민당(SPD)와 그들 중 일부가 참여한 제인터내셔널의 주류가 된 개량주의 전략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주장은 흔한 비난이다만약 사회주의가 필연적이라면왜 혁명적 모험이라는 그 과정의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가의회 다수가 되는 필연적 과정을 기다리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이것이 개량주의로 알려진 전형적인 공식화이며이는 엥겔스의 엄격한경직된 객관주의의 이론과 연결되어 있다이러한 개량주의가 엥겔스의 사상이나 전반적인 정치적 관점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선택적 인용과 왜곡의 결과이다.

 

이 암시의 씨앗은 사실 맑스가 제인터내셔널 헤이그 회의 이후 암스테르담에서 한 연설에서 처음 제기된 주장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데그는 여기서보기를 들어 영국에서, “노동자가 자신의 목표를 평화로운 방법으로 성취할 수 있다라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이 인용에 부여된 해석의 중요성을 부과하는 것은 맑스의 파리코뮨에 대한 일반적인 분석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을 전제한다그는 파리코뮨에 대한 분석에서 노동자들은 반드시 국가 기계를 때려 부숴야 한다라고 주장했고,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공개적으로 천명했다이후유사한 맥락에서엥겔스를 폄하하는 이들은 자본의 첫 영어 번역판의 엥겔스가 작성한 서문에 집착하는데여기서 엥겔스는 맑스의 언급에 대해 아래와 같이 응답한다:

 

적어도 유럽에서영국은 평화롭고 합법적인 수단으로 필연적 사회 혁명이 일어날 수 있는 유일한 국가이다.”

 

그러나엥겔스는 다음과 같은 결정적인 단서를 덧붙인다:

 

(맑스)는 확실히 영국의 지배계급이 -노예 반란’ 없이 평화롭고 합법적인 혁명에 항복할 것이라고 거의 기대하지 않는다고 덧붙이는 것을 절대 잊지 않았다.”

 

따라서엥겔스가 한 언급의 전체 의미는 만약 영국의 노동계급이 평화롭게 권력을 획득한다고 할지라도그들은 혁명적 내전의 방식으로 그것을 방어해야만 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엥겔스가 죽기 얼마 전 작성한 그 유명한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 소개 글에서 도시에서의 무장봉기의 가능성에 대한 비관적인 판단과 독일 사회민주주의당의 선거 승리에 긍정적 가치를 표현함으로써개량주의의 등장을 사주했다는 것이 가능한가?

 

중요한 점은 이것이다이것은 엥겔스를 개량주의의 죄악에 연루시키고자 하는 이들은 편의적으로 빠뜨리는 것인데엥겔스의 소개 글은 독일 사회민주주의 지도자들의 승인을 받기 위해 다양한 결정적인 측면에서 검열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엥겔스는 이 문구를 그의 주장에서 필수적인 것으로 취급했는데, 1895년 4월 3일 라파르그에 보낸 그의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리프크네히트는 저를 속였습니다그는 프랑스 1848-50년에 대한 맑스의 글을 소개한 나의 글에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평화롭고 반()폭력적인 전략을 지지하는 그의 목적에 맞는 것들만 추출하였습니다그러나 저는 이 전략이 오직 오늘날 독일만을 위한 전략이며그것조차 많은 유보사항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유사한 맥락에서카우츠키에게 보낸 혹독한 항의 서한에서그리고 SPD의 기관지 새 시대(Neue Zeit)의 편집자에게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놀랍게도전진(Vorwarts)에서 나의 소개글 일부가내가 모르는 상태로나를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평화를 사랑하는 합법의 숭배자로 보이도록 편집되어 인용된 것을 보았습니다새 시대(Neue Zeit)에서는 전체 글을 모두 실어준다면이러한 매우 수치스러운 인상이 일소될 것입니다.”

 

혐의와는 반대로소개글은 선거를 통한 평화로운 권력 쟁취의 목표를 프롤레타리아트에 부여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오히려그 목적은 합법적 환경에서 당의 성장이며부르주아지가 스스로 평화로운 타협의 영역을 포기할 때필연적인 마지막 결전의 순간이 왔을 때보다 강력한 힘을 갖춘 상황에서 직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론적 생산의 조건

 

지식이 형성되는 과정은 보편적인 과학적 개념과 사상의 생산 조건에 의존한다이 조건은 다시 보편적인 생산 조건에 연결된다생산양식은 과학이 이론적으로 정교화하는데 실질적으로 적용될 뿐만 아니라사상과 과학이 정교화되는 방식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자본주의적 노동 분업이 생산과 관련된 모든 영역에서 극단적인 전문화를 강요하는 것처럼사상의 형성특히 과학의 영역에서도 역시 노동의 분업을 심화시키는 극단적인 전문화를 강요한다.

 

지배계급은 과학의 영역에서 착취의 양식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 한도 내에서 통합을 이뤄낼 수 있다하지만 이를 건드리자마자무의식적으로 현실을 왜곡한다사실 통합은 그들의 혁명적 비평을 위한 필수적인 출발 지점이다따라서 노동자 운동에서의 지식의 발전은 자기 자신의 과학의 이론적 발전을 엥겔스의 자연 철학과의 대립을 위한 동기와 출발 지점으로 보는 것을 포함한다.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에서의 레닌과 마찬가지로엥겔스는 그가 전혀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문제에 대해 다뤄야만 했다더욱이 맑스 사후엥겔스는 자본을 편집하고 출간해야 하는 엄청난 양의 작업을 하고그가 직면한 보다 큰 정치적 조직적 책무들을 수행하고 남은 가끔의 시간 동안 그 일을 해야만 했다-뒤링의 제2판 서문은 그가 자연변증법을 끝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위험과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그런데도 자연과학과 그로부터 발생하는 철학에 대립하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엥겔스 또는 레닌이 이러저러한 이론적 오류를 저질렀는지가끔 그들이 지나치게 도식적이거나 과거의 부르주아 유물론과 유사한 철학적 견해에 빠졌는지 여부는 그들을 평가하는데 필수적인 기준이 아니다그것은 그들의 일반적인 활동계급투쟁에 대한 고발과 관련하여 그들의 정치적 지향에 대한 판단 기준일 것이다중요한 지점은 어떻게그리고 왜 그들이 맑스의 포이에르바흐에 관한 테제의 실천 영역에 스스로 어떤 입장을 취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과학적 발전을 보다 전반적인 이해로 통합하려는 시도는 사회 혁명 – 모든 진정한 진보의 기반 의 실천적인 실현을 중심으로 이뤄졌다이것이 엥겔스와 레닌의 실천에서의 추동 원칙이었다.

 

노동자 운동은 자본주의 내에서 그 독특한 혁명적 존재다시 말해 그 투쟁을 통해 확인된다결과적으로 그 지식의 발전은 이중적인 측면이 있는데그것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진정한 해방으로 가는 진척 상황에 달려있다한 편에서 그것은 정치적이며즉각적이고 뜨거운 이슈들을 포함한다또 다른 한 편에서 그것은 이론적이며 과학적인데좀더 천천히그리고 지금까지는 주요하게 계급투쟁의 퇴조기에 이르는 시기까지 진화하는 측면이다.

 

그러므로 정치적 작업의 차이는 강령에 제기되고그 이후에 실천 적용에서 제기되며일상적인 활동 속에서 제기된다이러한 차이의 진화는 사회의 보편적인 진화계급의 진화투쟁의 방식이데올로기이론과 정치적 실천을 반영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순수하게 철학적 영역에서의 과학적 변증법은 실천적정치적 계급투쟁의 즉각적인 방식으로 발전하지 않는다계급투쟁의 변증법은 더욱 거리가 멀고간헐적이며지역 사회 또는 보다 넓은 사회적 환경과 명백한 연결이 없다이는 봉건제도 말기와 자본주의 초기의 자연과학 발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식의 더 많은 영역이 실천적 적용에 즉각적으로 연결될수록그 진행 상황을 알아채기 쉽다다른 한 편더 폭넓은 통합을 시도할수록 변증법을 설명하는 것은 어려워진다왜냐하면 그러한 통합은 엄청난 복잡성의 법칙에 의존하고매우 다양한 요인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며결국 오늘날 우리에게 현실적으로 그런 연구들에 씨름하는 것은 실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글은 오직 그런 노력을 위한 기반을 다지는 하나의 기여에 불과하다코뮤니스트 좌파 전통이 영국에서 부활한 많은 부분은 필연적으로 정치적 고고학의 정지작업과 맑스주의 경제 이론 기초의 재()서술 덕분이다노동자 운동 역사상 가장 긴 반()혁명에 직면하여맑스주의의 목소리가 소멸한 것과 다름없는 곳에서, 20년 이상 동지들의 가장 큰 에너지를 소모한 것이 이 필수적인 책무였다.

 

이러한 실천적-정치적 요구사항들이 압박하는 맥락에서우리가 다른 문제들에 대응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20세기 대부분 동안 반복해서 나타나는, ‘서유럽 맑스주의가 철학적문화적 분석들 주변을 회전하는 상황에서우리는 우리의 관심을앞으로 이 저널에서 출간된 글 속에 담길 몇몇 문제들에 쏟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우리가 주장해 왔듯이()엥겔스주의는 본질적으로 관념론의 독특한 변종이다그 기원은 한 세기의 초반 등장했던 신-관념론극단적 반-객관주의를 포함한 변형에서 찾을 수 있다그 시작은 과학의 인식론에 있는 실제심각한 문제였으나이 위기가 등장한 관련 역사적 맥락에서 신비주의적 자유와 인간의 창의성새로운 주관주의-자발주의와 같은실제 인간 존재가 속해 있는 진짜 조건을 무시하는 사상들에 대한 재주장에 이용되었다.

 

비록 엥겔스가 이런 복잡한 문제들에 대한 주어진 해답을 제공한 것은 아님에도이러한 이론적 질문들을 직면하는 데 있어서 매우 많은 중요한 방법으로 우리의 정치적 기원에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그는 우리의 출발 지점이다.

 

A.S.

 

 

<>

 

(1) 리히트하임, p.238

(2) 같은 책, p.253

(3) 슈미트, p.55

(4) 같은 책

(5) 루소에서 레닌까지(From Rousseau to Lenin), p.26

(6) 카버(Carver), 맑스와 엥겔스지적 관계(Marx and Engels: The Intellectual Relationship)

(7) 르빈(Levine), 비극적 속임수맑스와 엥겔스의 대립(The tragic Deception: Marx contra Engels)

(8) 맑스와 엥겔스서신집(Marx and Engels: Selected Correspondence)

(9) 어빙 페처(Irving Fetscher), 맑스와 맑시즘(Marx and Marxism)

(10) 다시 말해지식 철학에의 기여로서(편집자 주)

(11) 몰레스홋(1822-93): 독일 생리학자이자 철학자유몰론과 헤겔주의 관념론을 배치함.

(12) 세바스티아노 팀파나로(Sebastiano Timpanaro), 유물론에 대해(On materialsim)

(13) 자연의 유물론(The Dialectics of Nature), p.153, p.85

 

2020년 11월 28

국제코뮤니스트경향(I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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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출처>http://www.leftcom.org/en/articles/2020-11-28/200-years-on-engels-and-his-revolutionary-contrib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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