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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5호] “귀하의” 국가를 위해 싸우지 마라!

“귀하의” 국가를 위해 싸우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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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모두가 싫어한다. 사람들 대부분은 타인을 전장에서 죽으라고 내보낸다. 그들은 전쟁을 혐오하지만, 이를 어쩌나, 상대편으로 인해 전쟁이 강제된다. 우리의 전통 사냥터를 침범하고 있는 것은, 상대편이다. “주권” 국가를 침해하고 있는 것은, 상대편이다. 우리에겐 선택권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방어해야만 한다... 당신은 “우리”의 어느 쪽인가? 양측의 무자비한 선전이 모두에게 어느 한 편을 선택하도록 압박한다. 전쟁의 적극적 참여자가 되거나 치어리더가 되라고 말이다. 왜냐면, 상대편이란 진정으로 무자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변함없다.

 

러시아 군대는 전범(戰犯)으로 비난받고 있다. “전범”, 이라는 이상한 용어. 참으로, 쓸모없는 말이다. 전쟁이 범죄로 정의되다니. 그것도 극악한 범죄로. 목적이 무엇이건 간에, 수단은 언제나 대량 살상과 파괴다. 극악무도한 대학살이 없는 전쟁이란 없다. 전쟁에 무게를 재는 두 가지 방법을 제시하는 용어가 있다. 문명화된 전쟁과 범죄형 전쟁이다. 만약 둘 사이에 차이가 없는 거라면, 그건 군사 기술로 사전에 제거되었을 것이다. 20세기 초 이래, 전쟁 중 시민 사상자 비율은 꾸준히 증가해왔다. 19세의 미국 내전 중, 전체 전쟁 사망자 중 90% 이상이 군인으로 집계됐다. 1차 세계대전 중에는 시민 사상자가 전체의 59%였다. 2차 세계대전에서는 63%로 증가했고, 베트남전에서는 67%로 증가했다. 1980년대의 여러 전쟁에서는 74% 올랐으며, 21세기에는 90%로 올랐다. 2차 세계대전 이후로는 그렇게 많은 사람이 전쟁으로 사라진 적이 없다. 전투원과 민간인의 차이, 군사와 비군사적 표적 간의 차이가 동시대의 전쟁으로 대부분 사라져버렸다. 각 진영이 전개하는 전투력이 강할수록, 민간인에 대한 “이차적 피해”가 더욱 커진다.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더욱 심화할수록, 평범한 이들의 삶은 더욱 파괴된다. 국가는 더욱 폐허로 변한다.

 

전범으로의 간주 여부는 견해의 문제가 된다. 모든 분쟁에 대해 모두가 상대방을 비방하는 저급한 욕설이 되어버린 “테러리즘”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비난으로 위장한 변명이다. 대중매체와 정치인이 모든 악 중 최악으로 정의한 “테러리즘”에는 모든 수단으로 그것을 억압해도 좋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리하여 그것은 테러 자신의 목적에 대한 무미건조한 변명거리가 된다. 마찬가지로, ‘전범’이라는 비난은 ‘우리 쪽’ 범죄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매체가 거의 언급한 적도 없고, 때로는 전혀 그런 적도 없는 것이다. 예멘을 보기로 생각해보면, 그곳에서 사우디 군대는 러시아 군대가 지금까지 우크라이나에 저지른 것 이상으로 훨씬 심각하게 폭격을 가했으며, 시민들을 굶겼다. 사우디 공군은 영국 및 미국의 군사적/기술적 원조와 무기 공급이 없었더라면 일주일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도 “민주주의를 위한 전쟁”이란 말인가? 이러한 잔혹 행위가 지금 자행되고 있다. 미디어의 조명이 닿지 않는 곳에서. 자리를 옮겨도, 볼만한 것이 없다. 여기서 전범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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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 전쟁

 

전시 중에는 선전과 보도의 경계를 인지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자주 본다. 러시아 군대가 키예프(Kyiv)에 텔레비전 타워에 (실패한) 미사일 공격을 가했을 때, 서구 언론은 그것을 전범이라고 일컫는다. 그러나 나토가 1999년 베오그라드(Belgrade)의 라디오 및 텔레비전 타워에 (성공적으로) 폭탄을 투하했을 당시, 그것은 “합법적인 군사적 표적”이었다.

 

러시아 군대의 “특별한 군사 작전”이 범죄라는 사실은 그로즈니(Grozny)와 알레포(Aleppo)에서 충분히 입증되었다. 최근 폐허로 변해버린 도시의 극단적인 사례를 들자면 말이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아직 여기까지 이르지는 못했는데, 아마도 침략의 구실이 우크라이나가 해방되어야 할 형제 같은 이들이라는 사실에 있기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군사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러시아는 전쟁을 강화하는 한편, 월등한 파괴력으로 “형제”들을 압도해야만 한다. 전쟁 논리는 러시아 침략이 대대적 파괴에 속도를 높이도록 몰아간다.

 

이것이 러시아의 현상인 척하지는 말자. 걸프전에서 미국은 바그다드의 은신처에 폭탄(벙커를 파괴하도록 설계되었다.)을 투하했고, 결국 수백 명의 시민이 사망했다. 1991년에는 “죽음의 고속도로”에서 도망가는 병사들에게 공중에서 대학살을 자행했을 때, 더욱 많이 죽었다. 서방이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인 전쟁에서는 38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사망했다. 미합중국 군대가 수행한 무자비한 드론 공격 역시, 전투원과 비전투원 간의 차이를 존중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워싱턴의 가장 충직한 봉신인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벌인 일은 말한 것도 없다. 그들 모두가 그것을 이용한 것이다. 이것이 현대의 전쟁이다.

 

전쟁은 시민에 대한 국가의 통제를 강화하는데 이상적인 프레임이다. 이제 그것은 러시아에서 자명해졌다. 그곳은 전쟁을 전쟁이라고 부른다면 징역 15년에 처할 수 있는 곳이다. 반전 항의가 야만적으로 억압되는 곳이다. 크렘린 궁전의 대변자가 아닌 모든 매체는 침묵해야 하는 곳이다. 하지만 이 정권의 약점이라면, 노골적인 억압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것이 우크라이나의 경우만은 아니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곳에서는 모두가 젤렌스키를 지지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아는 한 그렇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서구 매체와의 여러 인터뷰에서 전쟁에 관하여 반대한다거나 혹은 의심하는 표현도 듣지 못했다. 비록 우리가 사회적 매체나 우리가 가진 자료로 그들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을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매체에 따르면, 모두가 국가를 위해 기꺼이 죽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18세부터 60세까지의 모든 남성이 이 국가를 떠나는 것을 금지하는 조처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모두가 고향을 위한 총알받이로 남아있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그는 야당을 막고, 모든 텔레비전 뉴스 채널을 “연합뉴스”로 불리는 “전략적 소통의 단일 정보 플랫폼”으로 통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모두가 자유의 수호라는 명목이다. 물론, 우크라이나인들에게 가능한 한 많은 “러시아 바퀴벌레들”을 죽이라고 하는 매체는 그들의 독을 계속해서 뿜어낸다. 서구의 여러 매체 – 심지어는 뉴욕타임즈와 같은 신문까지도 – 젤렌스키의 권위적인 조치를 보도하려 하지 않는다. 타임즈의 유명한 모토는 “인쇄하기 알맞은 모든 뉴스”를 언급한다. 그리고 이러한 종류의 뉴스는 민주주의를 위한 이 전쟁에 맞지 않는 이야기이다.

 

거짓말쟁이

 

러시아 정부와 우크라이나 정부 모두 잘못된 정보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검열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미꾸라지 같은 주장이다. “전범”, “테러리즘”처럼, 그것은 “보는 이의 각도에 달린 것”이다. 물론, 잘못된 정보는 사회적 매체 그 외에도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누가 그것을 규정하는가? 러시아에서는 누구에게 발언권이 있는지, 침묵해야만 하는지를 국가가 결정한다. 서방국에서 그러한 일은 대개, 매스 미디어 및 사회적 미디어 플랫폼을 통제하는 기업인 개인적 영역으로 외주를 준다. 그러나 그들 역시 정부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유럽 의장 우르술라 폰데어라이엔(Ursula von der Leyen)은 ”우리는 유럽연합의 크렘린 미디어 기계를 금지할 것이다. 오늘날의 러시아 국영기업, 스푸트니크(Sputnik)와 그들의 자회사는 푸틴의 전쟁을 정당화하는 자신들의 거짓말을 퍼뜨리도록 더 이상 허락되지 않는다. 우리는 유럽에서 그들의 극악한 허위 정보를 막을 도구를 개발하고 있다.”라고 언급했다. 정말이지, 친서방을 따르지 않는 충성스러운 러시아 뉴스 채널과 다른 채널은 더 이상 페이스북에 접근할 수 없으며, 다른 주요 사회 미디어 통로도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을 검열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것이 적이 행하는 바이다.

 

러시아인과 서양인 각각은 전쟁에 관하여 매우 다른 시각을 갖고 있다. 그들은 거짓말을 하게 되는데, 특히 그들의 미디어가 무엇을 보여주어야 할지 혹은 아니어야 할지가 그렇다. 보기를 들어, 러시아 시청자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러시아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극단적 민족주의자들에게 구타당하고 위협받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되고 서방 시청자는 우크라이나를 위해 기꺼이 죽을 것이라고 말하는 남편들에게 눈물을 흘리며 작별 인사를 하는 어머니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두 종류의 이미지 모두 진짜이긴 하겠지만, 각국은 그들의 선전 서사에 무엇이 적합한지 보여주기로 선택한다.

 

서방의 이야기는 악당으로부터 자신을 용감하게 방어하는 솔직한 사회적 약자에 관한 것이다. 용감한 영웅을 위하여 우리는 당연히 환호한다. 당연히 그들을 돕고, 노랗고 푸른 깃발을 흔든다. 이는 그만큼 간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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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이야기는 매우 정교하지 못하다. 이는 이전 구소련의 천박한 형식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대량 학살 정권인 신나치의 붕괴 속에 신음하고 있다. 우리는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우리의 고향에 위협이 되는 나토의 전초기지가 되는 것을 막으려는 것뿐이다. 우리는 나치가 없는 세상을 위해 싸우는 것이다. 같은 종류의 뻔한 서문과 함께, 러시아 탱크가 부다페스트와 프라하로 동시에 진격했다.

 

모든 선전이 그렇듯, 진실의 일면이 있다. 나토의 압박은 진실이다. 우크라이나 내부에 극단적 민족주의의 기류가 흐른다. 동성애자, 페미니스트, 로마어와 러시아어를 구사하는 이들을 공격하는 그룹, 스보보다(Svoboda), 아조프(Azov) 대대(현재는 우크라이나 군대에 통합되었다.)와 같은 파시스트 그룹이 존재한다. 물론 극우세력이 추악한 고개를 들고 있는 나라는 우크라이나뿐만이 아니다. 우크라이나의 정치 시스템이 파시스트라는 뜻은 아니다. 적어도 러시아에서는 덜 그렇다. 그리고 대량 학살? 러시아 군대가 시리아 및 체첸공화국에서 행한 것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개를 때리고자 하는 이는 반드시 막대기를 찾을 것이다. 모든 국가는 그들의 군대가 외부로 향하면 거짓을 말한다. 미국뿐만 아니라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사담 후세인의 존재하지도 않는 “대량 살상 무기”, 알카에다(미국의 이라크 침략의 전조였다)와의 거짓된 연합을 생각해보라.

 

진실

 

진실은 상호 제국주의라고 불리는 이야기이다. 세계가 아무리 글로벌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경쟁에 기반을 둔 세계이다. 상업적인 경쟁은 상황적 필요에 따라 냉전과 열전과 같은 군사적 경쟁이 된다. 상황이란, 권력의 손실, 경제 위기, 시장의 손실 혹은 잠재적 이득을 말한다. 우리는 인간의 필요와 야만적인 충돌을 일으키는 체제 속에서 살아간다. 시스템은 그 자체로 행성과의 전쟁, 생명과의 전쟁터다. 자본주의 체제를 물리치고 싸우는 것이 이치에 맞는 유일한 전쟁이다.

 

냉전은 끝나지 않았다. 기껏해야 잠깐 멈춘 것이다. 바르샤바 조약은 사라졌지만, 나토는 그러지 않았다. 러시아도 나토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고 옐친이 제시했으나, 당연히 그것은 불가능했다. 나토의 존재 이유가 러시아를 제압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러시아 역시 자본주의 민주국가가 된 현재, 나토의 필요성에 관한 격렬한 논의가 이어졌다. 실로 논의에 대한 답변은 긍정적이었다. 나토는 애초의 약속을 깨고 러시아 국경까지 진출했다. 전(前) 바르샤바 조약 14국이 반(反)러시아 동맹에 통합되었다. 폴란드와 루마니아에 미국 미사일 기지가 설치되었다. 우크라이나 점령은 공세 중 가장 최근의 것이었다. 이익을 목적으로 하면서도, 더욱이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함이었다. 우크라이나는 아직은 나토의 회원이 아니지만, 서방과 군사적으로 협력하기 시작했다.

 

나토의 확장은 미국(및 다른 서방국)을 위한 거대한 시장의 확대를 의미했다. 새로운 회원국이 그들의 무기를 나토 기준에 따르도록 요구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준에 충족하기 위해 폴란드는 2011년부터 2020년까지 60%, 헝가리는 2014년부터 2020년까지 133%의 군비 지출이 증가했다. 계산대가 울리고 있었다. 그러나 나토의 확장은 또한, 군사력, 특히 핵무기를 보유한 러시아가 아메리카제국에 잠재적인 위협으로 남아있다는 인식에서 나온 것이었다. 미국은 여전히 반(反)전면적 파괴의 위협 없이 전쟁을 치를 수 없는 유일한 나라다. 냉전 시기를 그대로 닮았다. 그리하여 그것은 끝나지 않았다. 견제.-워싱턴 전략은 그대로다.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함이다. 영향력을 낮추기 위함이다. 러시아와 직접적 충돌에 개입하지 않고 힘을 약화하기 위함이다. 냉전 시기에 이러한 충돌은 쿠데타, 민족해방운동으로 드러났다. 이제 우크라이나는 “자유로운 서방”을 위해 열렬히 자발적으로 죽음을 무릅쓰고자 한다. “동정심” 많은, 호전적인 백만장자 젤렌스키로 인해 벌어진 일이다. 마치 쿠바미사일위기 당시의 체 게바라처럼, 필요하다면 세계대전이라도 일으키기를 바란다. 나토와 러시아의 공중전인 “비행금지구역”에 대한 요구가 받아들여진다면, 위험해질 것이다. 그는 체 게바라처럼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정면 대결은 금기시되고 있다. 그것이 핵전쟁 이전과 평행선을 그리는 것이 오해의 소지가 될 수 있는 한 가지 이유다.

 

적은 더는 “코뮤니스트 위협”으로 설명되지 않지만, 러시아를 우리와 같은 평범한 자본주의 국가로 만들지는 않는다. 부자들은 우리와 같은 자본가들이 아닌 “집권층”이다. 집권층. 그들은 누구인가? 부패, 착취, 투기로 부자가 된 억만장자들, 화려한 사치 소비로 그들의 재산을 과시하는 이들이다. 다시 말해, 자본가들이다. “막대한 부 이면에는 엄청난 범죄가 있다.”는 격언은 러시아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엄청난 범죄”는 여전히 새롭다. 러시아의 새로운 자본가계급은 대부분이 구 자본가계급, 즉 사이비 코뮤니스트 (구)소련의 공장장, 정당의 의장, 관료였으며 국가 재산이 사유화되었을 때 도적처럼 돌변했던 계급이었다. 특권 계급은 현재의 민간 자본가처럼 특권 계급으로 남았다. 민간 자본가들의 이윤은 현재 푸틴의 손아귀에 확고하게 놓인 국가 기구에 얽혀있고 종속되어있다.

 

구소련의 해체, '중앙지휘부'의 친자본주의 경제의 사유화는 우선 제국 유지에 드는 심각한 비용, 노동자들이 적은 임금으로 더욱 열심히 노동하는 것을 꺼리는 것에서 야기되었다. 그러나 지배계급 구성원의 갈망 역시 중요한 요소였는데, 자본의 관리자뿐 아니라 개인 자본소유자들에게 전 세계 자본에 접근하는 것이었다.

 

표준생활기준이 돌처럼 가라앉는 동안 경제는 급격히 침체했다. 1998년 러시아의 GDP는 (구)소련의 붕괴 직전 해의 1/3을 조금 웃돌았을 뿐이었다. 산업 생산은 60%로 감소했다. 그러나 1999년을 기점으로, 석유와 가스 같은 러시아의 주요 수출품의 가격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이는 생활 수준을 향상시키며, 빠르게 회복되었다.

 

치안 기구를 중심으로 국가 기구가 통합되었다. 전 KGB 대령이었던 푸틴이 왕좌를 이어받자, 러시아는 회복하기 시작했다. (250만 명 이상의 러시아인을 고용했던) 군수산업이 과잉생산으로 곤란할 지경에 처할 때까지 군사부분이 재정비되었다. 이 군대는 (조지아와 카자흐스탄) 국경 지역의 내륙과 (시리아) 외곽 지역이 “질서”를 유혈로 회복시켰다.

 

그러나 2015년의 산업 생산은 여전히 1990년 수준 이하였다. 유일하게 석유와 가스 영역만이 민영화 이전의 생산 수준을 넘어섰을 뿐이다. 그 해에, 석유 가격이 급하락하여, 러시아 경제에 타격을 입혔다. 2020년 GDP는 2013년 2조 2900억이었던 것이, 1조 4800억으로 하락했는데, 텍사스보다는 낮은 수치다.

 

따라서 러시아 자본의 도전은 여러 가지였다.

 

- 석유, 가스 같은 주요 수출 산업의 시장 지위를 유지할 것:

 

- 그것에 대한 의존을 낮출 것 : 물가 폭등 및 불확실한 미래로 인해 무너진 경제에 대해 그것은 신뢰할 수 없는 목발이다.

 

- 군수산업의 초과생산을 축소할 것 혹은 해당 상품 사용을 증대시킬 것

 

- 노동계급에 제공할 것이 없다는 사실을 숨길 것, 프롤레타리아를 비참한 환경으로부터 주의를 분산시킬 것(생존 조건 파괴에 책임이 있는 외부의 적에 대해 국가적 자부심을 강조하는 캠페인에 개입시키도록 한다.)

 

이는 제국주의 침략의 조건이다.

 

우크라이나는 매력적인 전리품이다. 세계 최대의 철강 산업 보유국이며, 가스 및 기타 광물 자원과 함께 비옥한 토지와 산업, 조선, 항구 ... 또한 러시아와 견줄만한 현대 군수 산업을 보유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우크라이나는 “무장해제 되어야” 한다고 모스크바가 주장하는 이유이다. 그다음으로는 러시아의 가스와 석유를 우크라이나를 통해 서유럽으로 이동하는 관이 있다. 물론 러시아가 그것을 통제하기를 바란다.

 

러시아는 이들 관을 통해 유럽의 가스 수입의 45%를 제공한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미국에서 시장을 조금씩 점유해갔다. 러시아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천연가스 생산국이다. 미국이 최대의 가스 산업국이자, 성장 속도가 가파른 데에는 새롭고도, 생태계에 손상을 입히는 (수압파쇄법) 추출방식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과잉생산으로 신규 시장을 공격적으로 개척하느라 고군분투 중이다. 2018년 이래 대부분의 유럽 연합국 및 영국에 대한 수출은 가파르게 증가했다. 우크라이나를 경유하는 발트해 하부에 새롭게 내장된 노드스트림(Nordstream)2 가스 수송관의 종점이었던 독일은 예외다. 그것은 아직 사용하지 않았고, 지금으로서도 전혀 사용될 것 같지 않다. 이는 독일 자본의 안정적인 비용 효율적인 에너지 공급 및 러시아와의 통상 관계 확대를 위한 희망이었다. 현재 독일은 미국으로부터 액화 가스를 공급받기 위해 새로운 터미널에 투자함으로써 한 편이 되었다. 심각하게 오염된 화력 발전소는 새 시대를 열었다. 유럽연합위원회는 이듬해까지 러시아 가스 수입을 3분의 2로 감소시켜 2027년에는 중단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심지어 그 목표에 완전히 도달하지 못한다 해도, 방향은 분명하다.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유럽 에너지 시장을 둘러싼 전쟁인 만큼,-또한 그것이 분명한 그림의 일부인 만큼-미국은 이미 승리자다.

 

현재의 전쟁은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니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다툼은 2008년부터 지속되었다. 2014년, 이 다툼이 전쟁이 된 것이다. 그때부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애국적인 전쟁 선전으로 넘쳐났다. 우크라이나는 모스크바도 워싱턴도 포기하려 하지 않는 살기 힘든 나라다. 두 여성이 서로가 한 아기의 엄마라고 주장했던 솔로몬 왕의 판결을 떠오르게 한다. 솔로몬이 말했다. 그렇다면 그 아기를 둘로 잘라 각자에게 나누어 주겠소. 진짜 엄마가 주장하기를 “안 됩니다. 아기에게 손대지 말고 그를 그녀에게 주십시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두 엄마는 “자르시오.”라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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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

 

현재 가짜 뉴스와 진짜 뉴스가 너무도 뒤섞여 있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서 벌어지는 일을 정확히 이해하기가 어렵다. 보기로, 2월 27일 “뱀 섬”의 13명의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조국을 위해 죽겠다고 결심했다 들었다. “엿 먹어라.”는 표현은 항복하려면 러시아 숭배를 요구했던 것에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보여준다. 우크라이나와 모든 서방 미디어에서 그들의 영웅주의가 하늘로 울려 퍼졌다. 말하자면, 그들의 조각상이 이미 주문된 것이다.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저 군인들이 부질없는 죽음을 숙명으로 받아들였다는 선전에 중독되었단 말인가? 자살폭탄처럼, 사후에 보상이라도 받기를 바랐는가? 그들의 죽음으로부터 이득을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들을 영웅으로 추앙도, 애국적 광기의 희생자로 애도해서도 안 된다.

 

불행히도, 군인들은 무엇보다도 지혜롭게 항복한 것으로 상당히 빠르게 드러났다. 어휴. 심지어는 러시아 방송에서 그들의 생존과 안녕이 보도된 이후에도, 서방의 여러 미디어에서는 그것을 보도할 수가 없었다.

 

고향과 싸우는 것이 우크라이나의 인구 대다수의 관심 사안이 아니다. 나토와 유럽연합으로 일치된 국가가 얻는 삶의 이점이 무엇이든, 전쟁의 불이익보다 크지 않다. 몇 주 후, 몇 달 혹은 몇 년 후, 총소리가 잦아들고 폭탄이 터진 도시 위의 연기가 사라질 때, 우크라이나는 폐허와 무덤 더미로 가득히 오염된 도시가 될 것이다. 또한 서방 국가들은 그들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무기보다 재건을 위한 비용에 덜 관대할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전쟁에서 “승리”한다 해도, 사람들이 거기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국가의 영예인가?” “자유인가?” 전쟁이 젤렌스키를 끝장내고 나면, 우크라이나만의 “집권 세력”은 여전히 부유하겠지만, ‘평범한’ 우크라이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뿌리 깊은 비극이다.

 

전쟁에 관해서 우리가 접한 최고의 소식은 러시아 군인들이 자신들의 무기를 파괴하여 내다 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불투명한 일인가. 우리는 무기 유기가 더욱 커지기를 바랄 뿐이다. 양국 모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군인이 서로 화해하고, 그들을 죽음으로 내몬 자신들의 지도자들에게서 무기를 돌리기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노동자들이 전쟁 반대를 선언하기를. 국민이 전쟁과 그 모든 결과를 계속해서 인내하고자 한다면, 평화 선언만으로는 전쟁을 멈출 수 없다. 거대한 대중이, 노동계급이 전쟁으로부터 등을 돌릴 때만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1차 세계대전은 처음은 1917년 러시아에서, 이듬해 독일에서 노동계급의 전쟁 반대 투쟁으로 중단되었다. 그렇지만 이는 오래전 일이다. 오늘날 러시아에는 대규모 폭동의 기류가 없으나, 전쟁의 파괴적 결과는 잠자는 거인을 깨울지도 모른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에서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의 격차가 가파르게 벌어졌다. 양국의 “집권 세력”(푸틴과 젤렌스키를 포함해서)은 해외 조세 도피처에 재산을 숨기고, 세금을 거의 지불하지도 않는다. 반면 물가가 급상승한 한편, 12년간 우크라이나의 실질 평균임금은 변동이 없었다. 성공적인 우크라이나 정부가 사회적 비용을 2014년 예산의 20%에서 현재 13%로 축소시켰다. 이미 가난한 우크라이나 인구의 대다수는 전쟁 이후 더욱 빈곤해질 것이다. 지배계급의 관심과 그들의 관심은 같지 않다.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우크라이나의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은 그들이 가진 적대적 이해로 인해 서로를 살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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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라고?

 

이 전쟁이 어떻게 끝날지 우리는 모른다. 아마도 양국의 승리를 인정하는 일종의 현상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상 이는 다음 전쟁을 예고하는 숨 고르기에 지나지 않는다. 2008년의 “대침체” 이후, 세계 경제는 급격한 위기를 겪었다. 세계의 이윤이 거의 최저 수준으로 하락했다. 화폐를 대량으로 찍어내고 엄청난 금액을 차입함으로써만 붕괴를 피했다. 세기 전환기에, 세계 부채는 84조에 달했다. 2008년 위기가 시작되었을 당시 수치는 173조였다. 2021년에는 71% 상승하여 296조였다. 모든 국가의 연간 총수입을 합하면 353%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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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은 솟구쳤고, 어떤 “정상적” 의미에서든 구덩이에서 나올 계획도 전망도 없다. 세금의 증감, 소비의 진작, 화폐공급의 축소 또는 확대, 성장과 가치 축적에 의존적이지만, 그것을 점점 더 성취할 수 없는 이 체제의 위기에 대적할 수 있는 노동자가 없다. 가치 축적에 유리한 조건을 세우기 위해서는 존재하는 자본의 가치 하락을 요구한다. 거대한 규모로 “죽은 나무”의 근절을 요구한다.

 

같은 기간에 경제 불안전성의 증대와 희망 없는 위기, 글로벌 군비가 해를 거듭할수록 증가한 것, 무력 충돌 횟수가 급격히 증가한 것이 우연인가? 거의 모든 대륙에서 전쟁이 격렬해지고 긴장이 긴박해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서로 명목상 군비 확충 노력을 가속화 했다. 글로벌 군비는 지난 10년간 경상 달러로 9.3%까지 증가했으며, 현재는 매년 2조를 경신하고 있다. 지금까지 최대 수요는 미국(2020년 7780억, 매년 4.4% 상승)은 러시아(2020년 610억, 2.5% 상승)를 포함한 그 외 국가를 월등히 넘어선다. 2020년 유럽의 총 군비 지출은 2011년보다 16% 높았다. 심지어 대유행으로 촉발된 침체조차 이러한 경향을 멈추지 못했다. 2020년 세계 GDP가 4.4%까지 하락했지만, 글로벌 군비 지출은 3.9% 증가했고, 2021년에는 3.4% 증가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이를 가속화하고 있다. 내년이 되면 무기 생산 업체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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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은 다시 한번 세계의 용광로가 될 수 있다. 지난 세기의 역사적 순간과 비교하여 중요한 차이가 있다. 첫째: 핵 요인이 상승에 제동을 걸고 있다. 두 번째 차이 : 글로벌 경제가 이전보다 심화하고 있다. 이해관계들이 서로 얽혀있다. 자신의 살점을 베지 않고서는 경제적으로 적을 벌할 수 없다. 러시아는 11번째 경제 대국이며, 현재 석유와 가스와 같은 주요 수출품은 제재에서 대부분 제외되었다. 유럽이 러시아와의 전쟁을 위해 우크라이나로 무기를 대량 보내는 동안, 러시아의 석유와 가스는 지금도 우크라이나를 통해 유럽으로 흐른다. 이 상호적 의존성이 상승을 제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상승에 대한 이들 억제 사항은 철통같이 보장되지 않는다. 군사 권력이 넘어서서는 안 되는 경계선이, 문제, 특히 패자 측에 대한 해석의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 러시아는 2020년, “군사적 행동의 촉발을 피하고, 러시아와 다른 동맹국이 인정할 수 없는 조건들에 그러한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잠재적 핵 사용을 줄이는 핵 억제력에 대한 대통령의 새로운 지시를 발표하였다. 화학적 생물학적 무기인 “지저분한 폭탄”(기존의 폭발물에 방사능물질을 결합한다.)을 사용함으로써, 이는 감소되었다. 거기에서부터 전술적 핵무기 증가가 그렇게 큰 진전처럼 보이지 않을 수 없다. 그 외에도 더 있다. 그러한 과정을 피하고자 지배계급의 분별력을 신뢰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경제적 이해가 얽혀있는 것이 각각을 보증하지 않는다. 이것이 현 순간을 명확하게 하는 지점이다. 전쟁은 러시아, 우크라이나 모두의 경제에 치명적이다. 양국의 자본가계급은 결과적으로 이윤이 줄어들 것이다. 따라서 세계 경제 전반은 고통을 겪을 것이다. 특히 경제 제재의 심각성은 놀라웠다. 그것 모두는 이윤이 되지 않지만, 이윤을 쫒는 것이 그것을 움직이게 한다. 전쟁과 제재가 어떤 식으로든 피할 길 없는 미래의 침체를 가속화하고 심화시킬 것이다. 지금은 그것 때문에 전쟁이 비난받는다. 바이든은 그것을 “푸틴이 일으킨 침체”라고 명명할 것이다. 푸틴은 러시아에 대한 서방 경제의 전쟁을 비난할 것이다.

 

전후 제재 정권의 강화는 미래의 분쟁을 위한 준비를 뜻할 것이다. 현 자본주의의 변화무쌍함 속에서 이윤은 승전을 위한 희생양이다. 보호주의자가 됨으로써, 제재는 이윤 추구의 세계화 경향에 반대할 것이다. 무역 관계가 무너졌고, 물류의 연결이 단절된다. 그러나 전쟁 경제 속에서 그것들이 인식될 것이다. 제재의 목표는 (러시아, 이란, 북한, 그리고 잠재적으로는 중국이) 공공의 적에 대항해 뭉칠지도 모르겠다. 전쟁에 대한 지정학적인 함축이 또 다른 기사의 표제어가 될 것이다. 요지는, 세계화 속에서 우리는 세계 경제에서 우리를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 번째는, 과거 이전의 세계대전 순간에 중요한 차이가 있다. 그것은 의식에 관한 것이다. 지배계급이 국민에게 전쟁에 총력을 기울도록 필요한 것은, 의식의 파괴이며 개인의 원자화, 그리고 거짓된 국가 공동체 속에서의 통합이다. 푸틴은 아직은 거기까진 가지 않았다. 그는 히틀러와 독일인들처럼 러시아인들을 자신의 호주머니에 담지 않았다. 러시아 내부에서의 항전을 외치는 수많은 저항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대한 저항은 현재로서는 제한적이다. 그러나 국가에서 많은 이들이 참여하도록 강제된 하나의 대규모 집회를 제외하고는, 푸틴을 지지하는 국수주의적 표명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의 군사력을 제외하면, 푸틴은 전쟁을 히틀러만큼 확대할 수 없는데, 그의 이데올로기적 통치가 취약하기 때문이다. 반면 확대해야만 하는 이유라면, 승리 없이는, 포클랜드 패전 이후의 아르헨티나 군사정권처럼 그의 버팀목이 무너져 내일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것은, 사회 투쟁의 전통을 가진 대부분의 다른 국가도 이데올로기 통치가 취약한 나머지 국민을 대규모의 전쟁으로 끌어내지 못한다. 그러나 진행되고는 있다. 우리는 틀에 박혀있다. 우리는 또다시 군인을 영웅으로 숭상하도록 학습한다. 우리는 또다시 전쟁터에서 승리를 응원할 것을 학습한다. 우리는 전쟁의 노력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도록 학습한다. 또한 우리의 어떤 문제에 대해서 국가적 해결책이 없지만, 경제 위기, 기후 파괴, 대유행, 기근, 등 국경을 지키기 위해 전투하는 것, 고향을 위해 죽는 것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다고 배운다.

 

그것이 여러분을 규정하도록 놔두지 마라. 1915년 칼 리프크네히트가 혁명적 패전주의에 대해 그의 호소를 결정했듯이, “살육은 넘치도록 충분하다! 국내외 전쟁 선동자들을 타도하라! 대학살에 종말을 고하라!”

 

2022년 3월 23일

샌더(Sander)

국제주의자 전망(IP)

 

 

<자료 출처>

군사 데이터 : Sipri, IISS, 루트 레거 시바르.

경제 데이터 : IMF, 세계은행, 블룸버그지, 매크로트렌드

 

옮긴이 : 지나

 

<원문출처>

https://internationalistperspective.org/dont-fight-for-your-cou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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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 선거와 노동계급] 의회주의 비판 - 안톤 판네쿡

 의회주의 비판 - 안톤 판네쿡

 

세계혁명과 코뮤니스트 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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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장

 

코뮤니즘을 사회민주주의와 구별 짓는 평의회 체제와 독재라는 새로운 원칙에 대한 확고하고 분명한 강조와는 대조적으로, 제3 인터내셔널의 기회주의는 제2 인터내셔널로부터 이어받은 투쟁의 방식에 최대한 의지한다. 러시아혁명 이후에는 의회 활동을 평의회 체제로 대체했고, 공장을 기반으로 노동조합 운동을 건설했고, 서유럽에서 첫 번째 충격은 이 사례를 따르는 것이었다. 독일코뮤니스트당(KPD)은 의회 선거를 거부했고 노동조합으로부터 즉각적 또는 점진적인 조직 분리에 찬성하는 운동을 했다. 그러나 1919년 혁명이 느슨해지고 침체되었을 때, 독일코뮤니스트당 중앙위원회는 의회주의를 선택하고, 산별 노동조합에 반대하여 낡은 노동조합연맹을 지지하는 이전과는 다른 전술을 도입했다. 이 배후의 주된 논거는 코뮤니스트당이 여전히 전적으로 의회주의적으로 생각하고 선거운동과 의회 연설을 통해 가장 잘 도달할 수 있는 대중에 대한, 그리고 조합원 수를 700만 명까지 늘렸던 대중에 대한 지도력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똑같은 생각이 영국 사회주의당(BSP)의 태도에서 볼 수 있다. 그들은 노동당이 제2 인터내셔널에 속할지라도 다수 노동조합 활동가와의 관계를 잃을까 두려워해서 노동당과 단절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제4장

 

의회 활동과 노동조합 운동은 제2 인터내셔널 시대의 두 가지 주요 투쟁 형태였다.

 

제1 인터내셔널인 국제노동자협회의 대회는 자본주의 이전, 쁘띠부르주아 시대에 속하는 초기 개념에 문제를 제기하고, 맑스의 사회이론에 따라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의 성격을 정의함으로써 이 전술의 기초를 놓았다. 생존 수단을 위한 자본주의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의 끊임없는 투쟁, 즉 정치 권력의 장악으로 이어질 투쟁으로서. 부르주아 혁명과 무장봉기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이 정치 투쟁은 오래된 민족 국가나 새로 창설된 민족 국가의 틀 안에서만 계속될 수 있었고, 노동조합 투쟁은 종종 훨씬 더 엄격한 제한을 받았다. 따라서 제1 인터내셔널은 해체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스스로 실천할 수 없었던 새로운 전술을 위한 투쟁은 제1 인터내셔널을 파산시켰다. 한편 낡은 개념과 투쟁 방법의 전통은 아나키스트들 사이에 존속하게 되었다. 제1 인터내셔널은 새로운 전술을 실천해야 하는 사람들, 도처에서 생겨난 노동조합과 사회민주당에 이 새로운 전술을 물려주었다. 제2 인터내셔널이 사회민주당의 느슨한 연합으로 생겨났을 때, 사실 여전히 아나키즘의 형태로 전통과 싸워야 했다. 그러나 제1 인터내셔널의 유산은 이미 논쟁의 여지가 없는 전술적 토대를 형성했다. 오늘날 모든 코뮤니스트는 당시에 이러한 투쟁 방식이 왜 필요하고 생산적이었는지 알고 있다. 노동계급이 상승하는 자본주의 내에서 발전하고 있을 때, 노동계급은 사회를 통제하고 질서를 정할 수 있는 기관을 아직 만들 수 없었고, 심지어 그렇게 할 필요성을 인식조차 할 수 없었다. 노동계급은 먼저 정신적으로 방향을 잡고 자본주의와 계급 지배를 이해하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전위인 사회민주당은 선전을 통해 체제의 본질을 밝히고 계급적 요구를 제기하여 인민 대중의 목표를 보여 주어야 한다. 따라서 사회민주당은 연단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정당 간의 갈등에 참여하기 위해 부르주아 지배의 핵심인 의회에 대리인이 입성할 필요가 있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이 혁명의 국면으로 접어들면 상황은 변한다. 여기서 우리는 의회제가 대중의 정부 체제로서 왜 부적절하고, 평의회 체제로 대체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 투쟁의 수단으로 의회의 활용에 관심이 있다. 의회 활동은 지도자들만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대중 자신은 종속적인 역할을 하는 투쟁의 패러다임이다. 이것은 주요 투쟁을 수행하는 개별 대리인으로 구성된다. 이것은 다른 사람이 그들을 위해 싸울 수 있다는 환상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대중은 지도자들이 의회에서 노동자들을 위한 중요한 개혁을 쟁취할 수 있다고 믿곤 했다. 그리고 심지어 의회 의원들이 의회의 행위를 통해 사회주의로 이행할 수 있다는 환상도 발생했다. 이제 의회주의가 그 주장에서 더 겸손해지면서 의원들이 코뮤니스트 선전에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주장을 듣게 된다. (최근 독일에서는 코뮤니스트들이 의회에 들어가 노동자들에게 의회 투쟁이 쓸모가 없다는 것을 확신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그것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잘못된 방향을 택하지 않고 처음부터 올바른 길을 가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항상 주요 강조점이 지도자들에게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비록 이것이 민주적인 토론과 의회 결의라는 장막 아래에서 이루어진다고 할지라도, 전문가들이 정책을 결정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사회민주주의의 역사는 구성원 스스로 정책을 결정하도록 이끄는 것에 대한 일련의 실패한 시도이다. 이것은 여전히 프롤레타리아트가 의회 투쟁을 수행하고 있는 동안, 대중이 아직 자기 행동의 기관을 만들지 않는 동안, 혁명이 아직 이루어져야 하는 동안,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대중이 스스로 개입하고 행동하고 결정을 내리기 시작하자마자, 의회 투쟁의 단점은 압도적으로 커진다.

 

위에서 주장했듯이, 전술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프롤레타리아 대중의 힘을 마비시키는 전통적인 부르주아 사고방식을 근절하는 가이다. 수용된 개념에 새로운 힘을 부여하는 모든 것은 해롭다. 이러한 사고방식에서 가장 집요하고 다루기 힘든 요소는 지도자에 의존하는 것으로, 대중이 일반적인 문제를 결정하고 계급 문제의 관리는 지도자에게 맡기는 것이다. 의회주의는 본질적으로 혁명에 필수적인 대중의 자발적 활동을 저해하는 경향이 있다. 프롤레타리아트에 혁명적 행동을 촉구하는 훌륭한 연설이 의회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후자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대안이 없다는 어려운 필요성에서이다.

 

혁명은 또한 정부를 전복시키는 대규모 공격 이상의 것을 요구하며, 우리가 알고 있듯이, 지도자들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거대한 충동으로부터만 일어날 수 있다. 혁명은 사회 재건을 요구하고 어려운 결정을 내리고 전체 프롤레타리아트가 창조적 행동에 참여하도록 요구한다. 이는 먼저 전위가, 그다음에는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자신의 책임을 알고, 조사하고, 선동하고, 씨름하고, 노력하고, 반성하고, 평가하고, 기회를 포착하고 그에 따라 행동할 때만 가능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어렵고 힘든 일이다. 따라서 노동계급이 높은 단상에서 선동을 이끌거나, 결정을 내리고, 행동에 대한 신호를 보내고, 법을 제정하는 것을 자신을 대리하는 다른 사람을 통해 더 쉬운 길을 생각하는 한, 사고의 낡은 습관과 오래된 나약함은 그들을 주저하게 하고 수동적으로 남게 할 것이다.

 

의회주의는 한편으로 대중에 대한 지도자의 지배를 강화하는 반(反)혁명적 효과가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지도자를 타락시키는 경향이 있다. 개인의 정치가가 대중의 능동적인 힘이 부족한 것을 보완해야 할 때, 사소한 외교술이 발전한다. 당이 어떤 의도로 출발했든 간에, 법적 기반, 즉 의회 권력의 지위를 얻어야 한다. 그리하여 결국 수단과 목적의 관계가 역전되고, 더는 코뮤니즘을 향한 수단으로써 역할을 하는 의회가 아니라 의회정치를 위한 선전 구호로 서 있는 코뮤니즘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코뮤니스트당 자체는 다른 성격을 띤다. 혁명적 행동을 목적으로 전체 계급의 배후에서 집단화하는 전위 대신에, 새로운 급진적 구호 아래에서 낡은 사회민주주의의 새로운 무대, 그들의 싸움에 가담하여 다른 당처럼 똑같은 법적 지위를 갖는 의회 정당이 된다. 혁명적 노동계급과 코뮤니스트당 사이에는 근본적인 적대감이나 내부 갈등이 있을 수 없지만, 당은 프롤레타리아트의 가장 명료한 계급의식과 증가하는 통일 사이의 통합 형태를 구현하기 때문에, 의회 활동은 이러한 통일을 산산이 조각내고 그러한 갈등의 가능성을 만든다. 코뮤니스트는 계급을 통일하는 대신에, 자신의 당수를 두는 새로운 당이 되며, 다른 정당과 결탁하여 계급의 정치적 분열을 영속화한다. 이러한 모든 경향은 혁명적 의미의 경제발전에 의해 틀림없이 다시 한번 단축될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의 첫 시작에서조차 명료한 계급의식의 발전을 저해함으로써 혁명운동을 손상시킬 수 있다. 그리고 경제 상황이 일시적으로 반혁명에 유리할 때, 이 정책은 혁명을 반동의 영역으로 전환하는 길을 열어줄 것이다.

 

러시아혁명이 위대하고 진정으로 코뮤니스트적인 것은 무엇보다도 그것이 인민대중의 활동을 일깨우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고 유지하기 위한 정신과 육체의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사실이다. 대중을 이러한 자신의 힘에 대한 의식으로 일깨우는 것은 한 번에 달성할 수 없고 단계적으로만 달성할 수 있다. 독립을 향한 이 길의 한 단계는 의회주의의 폐기이다. 1918년 12월 새롭게 창당된 독일코뮤니스트당(KPD)이 의회를 보이콧하기로 했을 때, 이 결정은 빠르고 쉽게 얻은 승리에 대한 미숙한 환상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트가 의회 대표에 대한 정신적 의존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켜야 할 필요성에서 - 사회민주주의의 전통에 대한 필연적인 거부 - 이제 자기 활동의 길은 평의회 체제를 건설하는 데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독일코뮤니스트당(KPD)에 남아 있던 결속된 당원의 절반은 혁명의 퇴조와 함께 의회주의를 다시 채택했다.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두고 볼 것이지만, 부분적으로는 이미 입증되었다. 다른 나라에서도 코뮤니스트들 사이에 의견이 나뉘었고, 혁명이 일어나기도 전에 의회 활동을 자제하려는 그룹이 많았다. 투쟁의 수단으로서 의회의 활용에 대한 국제적인 논쟁은 분명히 향후 몇 년간 제3 인터내셔널 내에서 주요한 전술적 쟁점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어쨌든, 의회 활동이 우리 전술의 부차적인 특징일 뿐이라는 데 모두가 동의한다. 제2 인터내셔널은 프롤레타리아트가 대중 행동의 무기로만 제국주의를 정복할 수 있다는 새로운 전술의 본질을 드러내고 피력하는 정도까지 발전할 수 있었다. 제2 인터내셔널은 더는 대중행동이라는 무기를 이용할 수 없었다. 세계대전이 혁명적 계급투쟁을 국제적인 차원으로 만들었을 때 붕괴할 수밖에 없었다. 앞선 인터내셔널의 유산은 새로운 인터내셔널의 자연스러운 토대였다. 총파업과 내전이라고 할 정도의 프롤레타리아트 대중행동은 코뮤니스트 공동의 전술적 기반을 형성한다. 의회 활동에서 프롤레타리아트는 국가로 분열되고, 진정한 국제적인 개입은 불가능해진다. 국제 자본에 대항하는 대대적 행동에서 국가 분열은 사라지고, 모든 운동은 그것이 확장되거나 제한된 국가에 이르기까지 단일 세계 투쟁의 일부이다.

 

1920년

안톤 판네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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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읽기>

https://www.marxists.org/archive/pannekoe/1920/communist-tactics.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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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행 선생 7주기] 마르크스가 예측한 미래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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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행 선생 7주기

 

 

노동자가 해방되니 자본가도 해방되어 인간이 해방되는 ‘새로운 사회’가 코뮤니즘(공산주의)이고 사회주의라고 가르쳤습니다. … 

사실상 소련이나 동유럽 나라들은 노동해방의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하지도 않았고 당과 정부의 관료들이 점점 더 인민 대중을 옥죄고 있었던 것입니다. …

 

그 나라들은 사회주의 사회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였다는 것은 맑스의 「코뮤니스트 선언」이나 「자본론」을 조금만 읽었더라도 금방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결국 ‘소련식 자본주의’가 내부의 위기 때문에 ‘일반적 자본주의’로 성장 전환한 것이 바로 1990년의 소련 사회의 붕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노동하는 개인들은 생산수단으로부터 분리되어 노동력을 국영기업이나 콜호스에, 즉 국가자본에 판매하여 화폐를 얻고 이 화폐로 상품을 사기 때문에, 소련의 상품과 화폐는 자본주의 사회의 ‘진정한’ 상품.화폐와 동일한 것이었습니다. 생산수단이 국가 소유로 되었기 때문에 사적소유는 없어지고 사회적 소유로 되었다는 것은 잘못된 추론입니다. … 이 경우 [사회적 소유] ‘사회’는 개인들을 초월하여 자립적으로 존재하는 정치적.경제적.이데올로기적 문제가 아니라, 자각한 개인들의 연합을 가리키거나 연합한 개인들 그 자체입니다.

 

따라서 소련의 생산양식에서 자본주의적 사적소유가 폐기되어, 이런 연합한 개인들의 사회적 소유가 만들어졌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국가 소유는 실질적으로 노멘클라투라의 소유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김수행, 「마르크스가 예측한 미래사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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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 행동 호소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 행동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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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단발적인 행동이 아니다. 이것은 1945년 이후 볼 수 없었던 방식으로 더욱 일반화된 전쟁 위기에 직면한 제국주의 경쟁의 새로운 시대 시작이다.

 

2.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 밖에 있는 나라는 없다. 제국주의 경쟁의 심화는 수십 년 된 자본주의의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경제 위기의 산물이다. 그동안 자본주의는 이윤율 하락으로 인한 경제 위기를 관리하기 위해 많은 수단에 의존해야 했다. 이것이 세계 노동계급에 가져온 것은 더욱 강도 높은 착취, 더욱 큰 고용 불안정, 그리고 그들이 생산하는 부의 노동자 몫의 지속적인 감소이다. 이 체제는 전쟁을 부를 뿐만 아니라, 끝없는 이윤 추구는 지구의 파괴로 이어지고 있다.

 

3. 그러나 세계화, 금융화, 그리고 이른바 신자유주의라고 불리는 이윤율 하락에 대한 모든 반응은 2008년 세계 투기 거품의 극적인 붕괴로 끝났다. 그들은 위기를 모면했을 뿐, 해결하지 못했다. 체제의 모순은 증가하고 있고 어떤 국가도 그것을 면할 수 없다.

 

4. 가장 두드러진 모순 중 하나는 1980년대에 서유럽이 저임금 경제로 투자를 이전한 것이다. 가장 큰 수혜자는 중국이었다. 중국은 서유럽 노동자들의 소득 감소에 대한 압력 완화를 위해 저임금 노동력의 대규모 착취를 통해 값싼 상품 공급하면서 경제를 구축했다. 세계 자본주의를 위한 이 편리한 방식은 중국의 경제 성장이 지구상에서 미국과 경쟁하기 시작하자마자 무너지기 시작했다. 2008년 투기 거품 붕괴 이후 경제적 편의의 결합이 파경에 이르고 더욱 명백해지면서 이미 존재하는 체제의 모순을 심화시켰다.

 

5. 그 거품의 붕괴는 각국이 금융 체제의 부채를 흡수하기 위해 개입하지 않았다면, 1929년 이후 볼 수 없었던 세계 자본주의 위기를 초래했을 것이다. 그러나 양적 완화는 전반적인 위기를 해결하지 못했고, 착취를 비인간적인 수준으로 강화하지도 않았다.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것은 기존 자산을 탕감하는 것을 넘어 자본의 대규모 평가절하이며, 이는 일반화된 전쟁을 필요로 한다. 일반화된 전쟁을 향한 이러한 추진력은 한동안 탄력을 받아왔다. 세계 지도자들에게 열려 있는 선택지가 점점 줄어들면서 '국익'이 무엇인지에 대한 타협의 여지가 점점 적어지고 있다. 그들이 더 절박해질수록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대량 파괴 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커진다(기후 변화로 인한 실제 위협보다 더 빠른 순서로). 사실 세계전쟁의 위협은 점점 더 위기에 처한 체제에 의한 자연 자원의 고갈과 환경 파괴의 가속화로 인해 이미 발생하고 있는 환경 재앙과 관련이 있다.

 

6. 이 재앙과 전쟁 전반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은 세계 노동계급이다. 노동계급의 집단적 힘은 먼저 전쟁 활동을 마비시킨 다음 자본주의 질서를 전복할 수 있다. 전 세계의 임금노동자는 착취자의 손에 들어가는 세계 부의 창조자라는 공통의 물질적 위치를 공유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지켜야 할 국가도, 국익도 없다. 그들만이 국가가 없고 생산이 협력적이며 소수의 이윤이 아닌 모두의 필요를 충족하도록 설계된 새로운 계급 없는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따라서 사람들이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받는 자유롭게 연합한 생산자들의 세계 공동체를 위한 조건이 존재한다.

 

7. 이를 달성하기 위해 노동계급은 조직화하거나, 재조직화할 필요가 있다. 임금 삭감 등에 반대하는 일상적인 투쟁에서 노동자들은 투쟁을 통합하기 위해 모든 노동자가 선출하고 소환할 수 있는 파업위원회를 결성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자본가들의 공격을 막을 수 없다. 한 부문 또는 일터에서의 개별적인 투쟁은 사장과 그들의 노동조합 협력자가 쉽게 처리할 수 있다. 모든 파업위원회는 기존 국가를 정복하는 과정을 시작할 수 있는 더 넓은 계급 운동으로 단결해야 한다.

 

8. 이 과정에서 일부 노동자가 자본주의 존재의 막다른 골목을 다른 이들보다 먼저 인식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전자가 국제적 차원에서 정치적으로 조직화하여 명확한 진로를 제시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특히 자본주의의 맹공격 앞에서 노동자 투쟁이 수십 년 동안 쇠퇴한 후에는 이런 일이 당장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크라이나의 상황은 각국 정부가 전 세계 노동자에게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경고하는 것이며, 우리는 일상적인 착취뿐만 아니라 '우리'를 통치하는 지도자의 정치적 계획에 대응해야 한다.

 

9. 인도주의적 재난의 현 상황에서 역사가 새로운 절박한 국면을 맞이하더라도 우리는 계급 운동이 당장 일어날 수 있다는 환상을 갖고 있지 않다. 우리는 착취와 전쟁에 맞선 운동을 함께 만들어야 한다. 현재의 우크라이나 위기가 어떤 미봉의 협상으로 끝나더라도 이것은 다음번 제국주의 충돌의 씨앗을 뿌릴 뿐이다.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미 러시아를 중국의 품으로 끌어들이고, 나토와 EU를 미국과 그 목표 주위로 결집시켰다.

 

10. 자본주의는 전쟁을 의미하며 멈춰야 할 것은 자본주의다. 따라서 우리가 어디에 있든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 위원회」를 설립할 것을 제안하고, 모든 민족주의에 반대하며 싸울 가치가 있는 유일한 전쟁은 자본주의와 피비린내 나는 제국주의 충돌을 끝장내기 위한 계급전쟁이라는 것을 인식한 개인과 그룹에 참여를 요청한다. 이것은 오늘날 흩어져 있는 혁명적 소수가 힘을 모으고 더 넓은 노동계급에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전쟁에) 맞서 싸우자는 우리의 메시지를 받아들일 수 있게 할 것이다.

 

11.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는 국제적인 계획이지만, 인터내셔널(세계혁명당)은 아니다. 그것은 계급전쟁이 세계 자본주의 질서를 전복할 수 있는 운동으로 발전할 때만 가능하다. 그러나 이 운동은 어느 한쪽을 지지해야 할 '덜 나쁜 악'이라고 규정해 하나의 제국주의 또는 다른 제국주의를 노골적으로 편들거나, 제국주의 전쟁을 계급전쟁으로 전환할 필요성을 거부하는 평화주의를 지지해 노동계급이 스스로 투쟁하는 것을 교란하고 무장 해제시키는 모든 사회민주주의, 트로츠키주의, 스탈린주의 정치를 거부하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혁명가들에게 정치적 나침반을 제공한다.   

 

 

12. 마지막으로, 우리는 이것이 평화주의에 대한 요구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평화주의는 기본적으로 '정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탄원일 뿐이다. 문제는 ‘정상’에 관한 것이다. 전쟁으로 이끄는 세력을 만들어내는 것은 자본주의 체제 자체이다. 자본주의의 종식을 요구하지 않고 전쟁에 반대하는 것은, 착취가 자본주의 존재의 필수 조건일 때, 착취 체제를 전복하지 않고 자본이 이윤을 창출하지 않을 것을 기대하는 것과 같다.

 

위 내용에 동의하는 동지들에게 의견을 제시하고 행동할 것을 호소한다.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의 동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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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 선거와 노동계급] 여성 의원 - 실비아 팽크허스트

여성 의원 - 실비아 팽크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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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명의 여성이 의회에 복귀한 것은 여론의 진전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마침내 여성이 단지 일부가 아니라 모든 인간적 속성을 가진 사람이며,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그들이 살아가는 사회 조건을 만드는 데 참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나라(영국)는 여성과 남성의 정치적 평등을 인정한 최초의 국가가 아니다. 다른 나라들은 여성을 입법부에 허용하는 데 있어서 우리보다 앞서 있었고, 비록 이 나라의 여성이 정치적, 법적 평등을 선동하는 데 앞장섰지만, 우리는 아직 이곳 선거권에서 정치적 평등을 이루지 못했다.

 

의회 폐지 운동이 러시아 의회 정부의 전복과 소비에트 수립을 목격하는 강력한 자극을 받기 전까지 여성 5명의 의회 참여와 그 선거에 대한 장벽이 제거되지 않았다는 것은 흥미롭다.

 

러시아에서 일어난 이러한 사건들은 소비에트 코뮤니즘 사상을 환영하는 소수파뿐만 아니라 반동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전 세계적으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후자는 그들이 일부 여성에게 투표권과 선출권을 모두 부여하여 낡은 의회 제도를 대중화하기로 결정했을 때 소비에트주의의 성장을 결코 간과하지 않았다.

 

의회 선거는 항상 후보자의 자질보다는 당 조직의 힘이 더 중요한 문제이다. 대천사는 강력한 당의 지지가 없다면 선거에서 패배할 것이다. 유권자의 대다수는 실제 선거에서 극히 미미한 역할을 하는 후보자를 듣거나 보지 않고 투표한다. 그런데도, 여성 후보가 먼저 극복해야 할 편견이 분명히 있었다. 그것은 그들에 대한 균형추 역할을 했고, 그렇지 않으면 그들 뒤에 있는 당의 정상적인 힘을 능가했을 것이다.

 

이번 선거는 유권자가 여성 후보자의 장점에 대해 어느 정도 주목할 만한 수준으로 투표한 첫 번째 선거다. 애스터(Astor) 여사, 윈트링엄(Wintringham) 여사, 필립슨(Phillipson) 여사는 단지 남편의 대리인으로 의회에 진출했다. 이러한 사실은 민주적 관점에서 볼 때, 애스터 경의 경우 특히 상하 양원을 통해 국민을 통치하는 발언권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특히 불쾌했다.

 

남편을 대신해 의회에 진출한 여성들은 독창적인 정책을 내놓지 않았으며, 우리는 그들의 후임이 그렇게 할 것으로 예상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후보 공천을 받고 특정 정당을 대표하도록 선출되었으며, 기본적으로 그들의 의정활동은 당내 남성 동료의 행동을 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이 그들을 쫓아낼 것이다.

 

이러한 어려움의 대부분과 그 중에서 더 심각한 문제는 체제 내에서 해결할 수 없다. 그들 대부분은 역시 경제 상황을 훼손하지 않고는 완화될 수 없다. 그리고 거기서 당의 일반적인 정책은 분명히 스스로를 방해할 것이고, 여성 당원이 당 계획에서 멀리 벗어나면 남자 당원처럼 채찍으로 뒤통수를 맞을 것이다.

 

그런데도, 여성의 특별한 어려움과 특히 성과 관련된 질문에 대해, 여러 정당의 여성 당원들은 때때로 일반적으로 페미니즘 강령으로 간주하는 것을 일부 고수함으로써 당의 일반적인 기준보다 약간 앞서거나 뒤처져있음을 보여줄 수 있다. 그것은 많은 면에서 좁고 편견이 있지만, 다소 진보적인 중산층과 상류계급의 특정 여성들이 채택했기 때문에 매우 존중된다. 그들은 강인하고 열정적인 성격을 지녔고 자신의 성과 계급의 법적 지위가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을 반영하는 운동을 진행했다. 그들 부류의, 그 강령은 많은 면에서 퇴보적이고 모든 면에서 사회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

 

의회에서 제기되는 어떤 주제에 대해서도 새로운 정책을 찾을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곳의 분위기는 메마르고, 삶은 생각하기 힘들게 만든다. 기껏해야 의회 의원들은 의회에 들어가기 전에 채택한 정치를 계속하거나, 외부에서 일어나는 약간의 진동이나 운동을 따라잡는다. 의회는 쇠퇴하는 기관이다. 그것은 자본주의 체제와 함께 사라질 것이다. 그것은 생산, 유통, 운송이 자본가의 손을 떠나면 산업 소비에트로 대체되어 전 인민의 공동 관심사가 될 것이며, 산업의 각 부문은 그것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관리할 것이다.

 

여성은 남성보다 쇠퇴하고 있는 의회라는 기관에 더는 미덕을 부여할 수 없다. 그것은 과거의 개혁이고 사라져야 한다.

 

정치권에서 여성의 특별한 법적 걸림돌이 완전히는 아니지만, 상당 부분 제거되자, 정치에서 여성과 남성 사이에 차이가 거의 없어야 한다는 것이 불가피해졌다. 그것은 마땅히 그래야 한다.

 

여성 전문 정치인은 남성 전문 정치인보다 더 바람직하지도 덜 바람직하지도 않다. 세상은 둘 모두를 덜 가질수록 더 좋아질 것이다. 기대해야 할 시간은 통치하는 것이 그들의 일이거나 통치자와 그 꼭두각시의 연설을 듣고 원내총무의 요청에 표결 로비에서 투표하기 위해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인 사람들이 더는 존재하지 않게 되는 때이다.

 

코뮤니즘 아래에서 소비에트는, 경쟁에 기반을 두고 전쟁 계급의 투쟁으로 찢겨진 오늘날 사회에 불가피한 당쟁을 계속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동체의 서비스 행정을 위해 모일 것이다.

 

여성에게도 남성에게도 미래의 희망은 의회 개혁이 아니라, 자유로운 생산자 연합, 코뮤니즘과 소비에트에 있다.

 

1923년 12월 15일

「노동자의 전함」, 실비아 팽크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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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http://leftcommunist.net/2018/02/06/women-members-of-parliament-sylvia-pankhur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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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 하청노동자 투쟁 승리를 위한 계급적 연대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투쟁 승리를 위한 계급적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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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의 동지들과 지지자들은 오전 일찍 남궁원 동지 9주기 추모식을 치르고, 거제로 향했다. 6월 2일부터 한 달 넘게 전면 파업에 나선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고 연대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거제에서 열린 노동자대회 중에, 선박 안에서 고공농성하고 있던 대우조선 하청업체 노동자가 다음과 같이 외쳤다

 

“우리 조선 하청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이 있어도 노동자의 기본 권리조차 제대로 대우받지 못했습니다. 이 투쟁으로 대우조선뿐 아니라, 전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를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습니다.”

 

지난 7년여간 조선소 노동자는 11만 명 넘게 줄었는데, 그중 하청노동자 7만 6천여 명이 2016년 조선산업 위기 때 쫓겨났다. 이러한 무차별 해고와 함께 30% 이상의 임금 삭감과 복지축소가 있었다. 최근 조선산업은 다시 회복되었지만, 초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하청노동자의 삶은 "생지옥"과도 같았다.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의 요구는 바로 지난 2016년부터 줄어든 임금 30%의 회복과 단체협약 체결이다.

 

이번 투쟁은 2016년 조선산업의 위기를 하청노동자에게 떠넘기면서 지속되어온 하청노동자들의 비참한 삶을 바꾸기 위한 투쟁이기에 모든 조선산업 하청 노동자들의 투쟁이기도 하다. 또한, 자본주의 위기와 전쟁이 불러온 물가 폭등과 경제 파탄에 대한 고통 전가에 맞선 모든 노동자의 생존권 투쟁과 연결된다.

 

이번 투쟁은 조선소 하청노동자가 공장을 멈추고 진수를 막은 첫 투쟁이기에 자본도 적극적으로 파업 파괴에 나섰다. 조선산업 자본가들은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이 전체 하청노동자의 투쟁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폭력침탈과 고소고발/손해배상 청구 등의 협박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날 집회는 하청노동자 파업 투쟁의 위력과 연대 투쟁의 필요성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물론 형식적 연대와 관료주의 한계도 확인했다.

 

따라서 앞으로는 거제 투쟁에 더욱 집중하고, 모든 생존권 투쟁을 자본과 정권에 대한 투쟁으로 확대해야 한다. 지난 주말 집회에서 확인했듯이 모든 것을 걸고 싸우고 있는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에게는 대대적인 지지와 후원뿐만 아니라 물리적 힘을 가질 수 있는 계급적 연대가 필요하다. 계급적 연대에는 하청노동자 투쟁을 방관하고 교란하는 정규직노조에 대한 계급적 비판과 정규직-비정규직을 넘어서는 아래로부터의 연대가 중요하다.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투쟁의 승리를 위해, 전체 조선소 하청노동자의 승리를 위해, 노동계급 독자적 조직인 조선산업 노동자 파업위원회 건설이 절실하다.

 

계급적 연대 강화! 아래로부터의 투쟁 확산!

조선산업 노동자 파업위원회 건설!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파업 투쟁 승리!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No War But the Class War!

자본주의 위기 전가에 맞서 생존권 투쟁 전면화! 노동자의 희생이 아닌 자본가계급과의 계급전쟁으로!

 

2022년 7월 5일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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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남궁원 동지 9주기 추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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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남궁원 동지 9주기 추모식
 
 
코뮤니스트 남궁원 동지 9주기 추모식에
함께 해주신 모든 동지들께 감사드립니다.
 
올해도 코뮤니스트 정신을 계승하는 동지들은 
'2022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 전동행진'에 함께 했고
모란공원 추모식에서는 남궁원 동지를 기리고 계승하는 자리를 갖고
거제와 서울로 이동해 노동자대회에 참석해 계급적 연대를 실천했습니다. 
 
코뮤니스트 추모식은 단순한 추모 행사가 아닙니다. 
코뮤니스트 길을 걷다가 먼저 가신 동지를 기억하고 
코뮤니스트 정신 계승과 실천을 다짐하는 자리입니다.
 
올해도 변함없이
남궁원 동지의 혁명적 발언을 함께 낭독하며 실천을 다짐했습니다.
 
 
이번 주말에는 강릉에서 3년 만에 '작은코뮨 수련회'를 개최합니다.
7월의 태양보다 더 뜨겁게 실천하는 동지들! 
모두 건강한 모습으로 강릉에서 뵙겠습니다.
 
일시 : 2022년 7월 9일(토)~10일(일)  장소 : 강릉 안프로하우스
 
 
2022년 7월 4일
코뮤니스트 정신 계승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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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원 동지 9주기 "비정규직 투쟁 지지와 혁명을 위한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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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원 동지 9주기

 

 

"남궁원 동지의 '코뮤니스트 정신'을 계승하는 동지들은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을 지지하고 연대합니다."

 

 

오늘 이 땅에서 벌어지는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의 염원은 “비정규직 철폐”입니다. 

그러나 비정규직 철폐는 현 자본주의 체제에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구호입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본능적으로 자본과 적대적으로 투쟁하고 있습니다. 

 

노동자들 자신이 염원하는 투쟁 속에서, 스스로 계급의식을 체득하고 있으며, 자본과 적대적으로 투쟁하면서 노동자 자신의 권력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자본주의가 위기에 직면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취한 긴축재정과 노동법 개악, 정리해고, 임금삭감, 복지축소, 물가폭등에 맞선 세계 노동계급 투쟁을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혁명의 문제설정은, 자본주의 위기를 단순히 경기순환상의 문제로 보지 않고,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쇠퇴 경향과 혁명적 프롤레타리아의 투쟁을 제기하는 것입니다.

 

노동계급이 역사적 관점을 상실하고 하나의 공장, 하나의 지역에 갇혀 있으면 패배한다는 역사를 코뮤니스트는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인류가 겪고 있는 전쟁, 빈곤, 생태계 파괴 극복을 위해서는 코뮤니스트 사회가 절대적인 필요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입니다. 

저는 노동자혁명 운동이 다시금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혁명을 꿈꾸고 시도해야 한다고 봅니다. 

건강한 자본주의를 위한 투쟁이 아닌, 이제 코뮤니즘을 위한 투쟁에 이제 나서야 합니다.

 

(2010년 12월 3일, 남궁원, 「사회주의노동자연합」 재판 최후 진술 중에서)

 

 

 코뮤니스트 정신 계승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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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5호] 칩: 생산의 혼돈과 추가적인 제국주의 충돌

칩: 생산의 혼돈과 추가적인 제국주의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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칩은 품귀현상이다. 몇 달 전에 예고된 개선의 여지를 갉아먹으면서도 부품 부족으로 산업계는 여전히 혼란에 빠져 있다. 제국주의 갈등이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으며 칩 생산의 군사화를 이끌고 있다.

 

칩 생산 병목 현상의 영향은 산업 네트워크 전반에 걸쳐서 걸러진다.

 

전자와 가전제품용 칩과 마이크로컨트롤러는 공급이 부족하다. 캐논(Canon)은 칩을 내장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고객에게 자사의 전자적 점검을 회피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가장 심각한 영향 중 일부는 자동차 생산 체인에서 발생한다. 대기업들은 전체 라인과 공장의 가동 중단을 계속해서 발표하고 있다. 게다가 생산 속도는 느려진다. 이달 들어서만 포드(Ford)가 8개 공장에서 생산을 중단했다. 폭스바겐(Volkswagen)은 속도를 늦추었고, 재규어랜드로버(Jaguar Land Rover)는 부품 부족으로 2019년 대비 34%의 생산량을 감축한 후 엄청난 적자를 냈다. 다임러(Daimler), 토요타(Toyota), 닛산(Nissan) 등, 비슷한 상황에 있는 기업 목록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전자 부품에 직접적으로 의존하는 회사들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자동차 회사의 주문에 의존하는 철강 및 야금 회사들 또한 아셀로미탈(ArcelorMittal)과 같은 많은 중단을 경험하고 있으며, 풍력 터빈 제조업체들은 부품 부족과 원자재 가격의 동시 상승에 직면하고 있다.

 

그러나 산업계는 단순한 생산이나 이윤 수치 그 이상이다. 어떤 공장도 노동자 없이 가동되지 않으며, 혼란은 노동조건을 훨씬 더 악화시켰다.

 

자동차와 야금 부문에서는 수익성 있는 전기 자동차로의 전환을 흑자로 만들기 위해 이미 예정된 폐업과 정리해고 계획이 추가 해고 및 임시 해고와 함께 중단 및 생산 축소로 증폭되었다.

 

전자 부문 자체에서는 부품 부족이 실제 생산량 감소 때문은 아니기에 그 사정이 다르다. 컴퓨터와 장치에 대한 수요는 재택근무 및 원격 학습의 증가로 인해 주조 공장의 생산 능력(fabs)을 훨씬 더 초과한다.

 

이러한 주조공장들은 소수의 노동자가 근무하는 값비싼 자재로 가득 차 있는 공장이며 대규모 국가 자본의 영역에 있지만, 다음의 조립 단계를 수행하는 공장들은 훨씬 더 노동 집약적이며 대체로 반(半)식민지 국가에 있다. 여기서는 일의 속도가 아주 빨라졌다. 중국의 폭스콘(Foxconn) 같은 조립공장의 악명 높은 조건은 대유행 이전부터 이미 악명이 높았고, 수요가 최고치인데도 개선이 되지 않고 있다.

 

베트남에서는 세계적인 전염병이 한창일 때 한국 삼성의 조립공장이 완전히 가동되어, 노동자들을 대규모 감염지로 변했던 임시 기숙사에 밀어 넣었다. 인도에서는 남부 지역의 조립 공장에서 여러 번의 파업과 저항이 있었다.

 

이는 단지 몇 가지 보기에 불과하지만, 그들이 결국 중단이 되든지 또는 가속화된 생산의 편에 서게 되든지 간에, 노동자들은 결국 생산의 혼란에 의해서 짓눌리게 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경직되고 적합하지 않은 생산 시스템

 

체인의 첫 번째 연결 고리인 주조 공장이 세계적인 감염병이 발생한 지난 2년 동안 새로운 조건에 적응하지 못한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이는 우리가 사는 사회 유형에 의해 강요된 결함과 거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데다가 대규모 제국주의 분쟁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대규모 전자 마이크로 회로의 제조 과정은 예측이 가능하고 거의 선형적인 방식으로 배당을 산출하는 기계와 설비에 투자된 엄청난 양의 돈을 할당할 수 있는 능력에 의해 강화된, 자본의 축적을 통해 이미 성형되고 선호되는 과정의 역설적인 사례이다.

 

그러나 배당금을 쥐어짜내기 위한 이와 같은 최적화는 공정의 물리적 생산성을 배가시켰을 뿐만 아니라,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직면하여 그 취약성을 주로 배가시켰고, 몇몇 장소와 몇 사람의 통제 속에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했다.

 

같은 양의 실리콘으로 점점 더 많은 마이크로 회로 생산과 규모를 늘리기 위한 추진으로 실리콘 결정 성장과 석판 제작 과정이 더 길고, 더 비싸고, 더 복잡해졌다. 각 주기는 최소 6개월이 걸리며 주조공장은 기본적으로 80~90% 가동된다. 그리고 나머지 20%의 용량은 반응이 매우 제한적이다.

 

이 공정은 나머지 생산 체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사실상 피드백에 무감각하다. 농도, 극단적인 공기 순도(공정의 많은 부분이 공장에서 공장으로 이동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의 조건을 유지해야 할 필요성, 그리고 가능한 한 많은 기계를 한곳에 배치해야 할 필요성은 전 세계 극소수의 공장에서 모든 생산의 집중을 훨씬 더 촉진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새로운 공장을 짓는 것은 시간이 걸릴 뿐만 아니라, 실제로 설비를 갖추기에 충분한 기계 생산이 없기 때문에 실현할 수 없다. 그 팹(fabs)을 위한 매우 비싼 기계들은 주문에 따라 아주 적은 수로 제작된다. 단순히 돈을 쏟아붓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병목현상과 문제가 있다.

 

자본의 집중 정도가 생산력 발전에 걸림돌이 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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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집중도는 실로 엄청나다. 시장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생산력을 실질적으로 독점하는 기업들이 있다.

 

모바일 마이크로프로세서 분야의 선두 주자인 대만의 TSMC는 세계 칩 주조시장의 65%, 세계 로직 회로 용량의 40%, 트랙이 10nm(특히 2nm 미만) 이하인 칩 생산의 92%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 램 생산은 한국의 삼성과 SK하이닉스가 독점하고(과거에 가격 담합 스캔들에 연루됨), PC용 마이크로프로세서 생산은 인텔(Intel)이 독점하고 있다.

 

이러한 독점에 직면하여, 생산 자율권을 얻으려는 중국의 시도는 세계적인 영향력 측면에서 보면 일화적이다. 그리고 나머지 국가들은 마이크로컨트롤러와 다른 작은 칩 또는 그 장벽 뒤에서 시계를 생산한다.

 

세계적 독점에도 자본주의 혼란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설립된 거대 자본의 이러한 그림에 속아서는 안 되며, 주조공장과 공정에 대한 투자는 차라리 카지노 도박의 특징을 여전히 보여주고 있다.

 

공정의 유형과 투자금을 갚는 데 걸리는 시간 때문에 고객이 원하는 것과 주조 공장 소유자가 원하는 것이 아주 많이 달라서 전체 공정이 파산하는 경우가 많다.

 

보기를 들면, 고객은 다양한 트랙 너비로 석판화 할 수 있는 "청사진"을 제공하지만, 소유주는 건설 후 몇 년 또는 심지어 몇 달 후면 이미 쓸모가 없을 수도 있는 특정 트랙 너비를 생산하는 공정을 수익성 있게 만들어야 한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특정 트랙 폭(28nm)에는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많은 생산능력이 있지만, 나머지는 모두 막혀 있다.

 

TSMC를 포함한 생산자들은 28nm의 새로운 공장과 라인에 투자하여 고객들에게 병목현상에 대한 해결책으로 사용하려고 한다. 그러나 보기를 들어 마이크로컨트롤러를 필요로 하는 고객들은 이론적으로 실리콘 디스크당 더 많은 칩을 짜내서 더 값싼 더 작은 노드(22nm)를 선호하기 때문에 그것을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노드에 충분한 용량이 없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는다.

 

이에 반해, 단순히 자동차에서 특정 칩을 없앤 테슬라(Tesla)부터 다양한 종류의 칩에서 사용할 수 있는 생산능력을 활용하는 퀄컴(Qualcomm)과 같은 분야의 기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수준의 고객들이 스스로 대안을 모색해왔다.

 

지금까지 논의해 온 칩은 기능(ASIC)용으로 미리 설계된 그리고 주조공장에서 실리콘에 청사진을 '인쇄'하는 칩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사전에 연결이 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인쇄 후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로직 게이트가 많이 놓여있는 칩이 있는데, 이들은 FPGA 칩이다.

 

물론 제대로 된 생각을 하는 사람은 FPGA에 컴퓨터의 핵심인 마이크로프로세서를 프로그래밍하려고 하지 않겠지만, 그들은 이론적으로는 마이크로제어기와 기타 산업 부문에서 절실히 필요한 부품에 유용하다. 요점은 비용 대비 편익 결정이며 특정 규모로 FPGA를 생산하는 것이 표준 정적 회로보다 훨씬 더 비효율적이다.

 

“새로운 설계 도구로 인해 5만대 이상의 전문 칩(ASIC)에 대한 생산 비용을 낮출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코비드 위기 이후 남아 있는 생산능력이 없다. FPGA 칩은 사용이 가능하다,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다. […] 필요하다면 우리는 ASIC 및 SoC 부분을 계속해서 살펴볼 것이다.” (퀄컴 기술자)

 

다시 원래의 문제로 돌아가 보자... 자본주의, 그리고 특히 그것의 주된 힘, 축적, 그들이 발전할수록 시스템의 취약성과 생산적 혼란 모두를 증가시키는 것은 새로운 소식이 아니다. 현실은 마찰이 없는 생산적 균형이라는 이상적인 망상에서 몇 광년 떨어져 있지만 "단순한" 산업적 혼란보다 훨씬 더 좋지 않은 상황이 눈앞에 놓여 있다. 국가 거대도시들은 행동에, 그리고 언제나 좋지만은 않은 방법으로 참여하기를 원한다.

 

모순과 제국주의 움직임

 

자본의 이러한 투쟁의 효과는 지상에서도 느낄 수 있는데, 그중 자본이 가장 밀집된 나라에서 거대한 신규 주조공장이 건설되고 있다. 지난해 KTX 고속열차로 서울을 다녀간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램 중심지의 소유주인, 이 왕조의 야망의 상징인, 평택에서의 삼성 신규 주조공장의 거대한 상자가 땅에서 솟아오른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평택의 첫 생산라인은 이 회장이 사면을 받고 지난 정부에 뇌물을 건넨 혐의로 복역하던 교도소에서 풀려난 뒤 설립되었다.

 

막 출범한 두 번째 라인에서는 1,000억 달러를 투자하여 논리 회로(가공 처리용 기계와 제어장치)로 핵심 부분을 전환하기로 결정했다. 몇 달 전 우리가 이미 언급했듯이, 한국 정부는 축적 분야에서 앞서가기 위해 수천억을 투자할 계획이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또 다른 주요 램 제조업체인 SK하이닉스는 작년 말 중국에 공장을 증설하려고 했으나 미국의 동맹으로 추정되는 업체로부터의 걸림돌에 부딪혔다. SK가 원하는 규모의 석판인쇄에 필요한 기계는 네덜란드 제품인데 미국이 이들의 중국 진출을 막아, 한국의 계획을 뒤엎었다. 한국 자본이 엄청나게 곤란한 부분은, 한국 투자의 대부분이 중국이며 중국은 한국 반도체 매출의 40%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결과는 중국 기술 산업을 "아래로부터" 억누르려는 미국의 목표가 아시아 제국주의와 그 이익에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보기를 들어 인텔 CEO의 서술에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다.

 

“우리는 그것과 관련된 지적 재산, 연구개발, 재정 흐름을 갖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아시아가 갖기를 원하는가?

 

“적”을 돕는다는 게 말이 되나?

 

대만은 불안정한 곳이다. 이번 주에 중국의 27대의 전투기가 대만의 방공식별구역으로까지 간 적이 있다. 이것이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가 아니면 아무렇지도 않은가?

 

30~40%의 보조금을 받는 곳과 어떻게 경쟁하나? 그것은 바로 TSMC나 삼성과의 경쟁이 아니라 대만, 한국이라는 나라와의 경쟁이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보조금은 훨씬 더 많다.” (인텔 사장 팻 글래싱어)

 

실제로 미국은 자신들의 새로운 공장에 투자하도록(보조금이 글레싱어를 화나게 한다) 하기 위해 삼성과 TSMC를 “유치하려고 한다.” 그러나 실수하면 안 된다. 그들은 미국과 그 회사에 대한 종속적인 위치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음을 즉시 분명하게 했다: 바이든 정부는 미국에 투자하고자 한다면 그들의 기밀 자료를 공개하도록 강요했다. 결과적으로, 한국 부르주아지의 일부는 불만을 나타내며, 미국이 그들의 협상력을 약화하고 경제적으로 앞서가는 방법을 계획하고자 한다고 분명하게 얘기했다.

 

기술 후발주자인 유럽연합(EU)은 이후 반도체 전략 계획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TSMC 및 한국과 설비 개방에 대해 협상을 했다. TSMC에 의해 유럽에 최초로 공장을 설립하고, 유럽연합(EU)과 한국이 공동으로 “전쟁과 같은 노력”을 공동으로 한다는 생각을 유럽 신문이 선전했다.

 

한국 또는 미국의 공장 하나가 소화하는 1000억 개에 비해 적은, 8년간 450억 개의 공식적인 투자를 발표하는 한편 2030년까지 전 세계 반도체 생산 비중을 10%에서 20%로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물론, 제한되는 부분과 부분적인 수출 차단이 있다.

 

물론, 만일 미국인들이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둘 경우만이지만, 인텔은 며칠 전 경쟁을 없애고 “업계를 선도”하기 위해 시장에서 살 수 있는 공장 기계 공급을 모두 독점하겠다는 뜻을 발표했다. 그리고 그 공격은 기계뿐만 아니라 설계도 자체를 지배하는 설계에서도 여러 가지 전선에서 동시에 발생하고 있다.

 

몇 달 전, 미국에 본사를 둔 엔비디아(Nvidia)는 그것에 의존하는 전 세계의 많은 국가와 기업들이 공포에 떨도록 ARM 설계를 넘겨주려고 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차단되었지만, 이틀 전 인텔은 V버전에서 RISC 설계 표준을 효과적으로 실행하고 제어할 것이라고 발표했는데, 이는 많은 분석가들이 세계적인 설계와 모바일 및 PC용 마이크로프로세서(ARM의 R은 RISC를 나타낸다)의 생산에 있어 RISC의 비중을 높이기 위한 시도의 승리라고 해석했다.

 

칩 생산의 군사화를 향하여

 

인텔 사장(CEO)의 호전적인 어조와 전쟁 같은 긴장의 암시가 아주 명확하지 않은 경우에, 그 회사는 100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해 오하이오주에 거대한 새 공장을 지을 계획이다.

 

알려진 첫 번째 주요 고객은 미군이다.

 

“TSMC에 수년 간 뒤지고 이제 문제없이 긴 시간을 보낸 후 인텔은 (짧은 기간 안에) 다시 앞서고 있다. 우리는 매년 더 이상 프로세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12개월, 18개월마다 완전한 석판화 과정을 거치는 시나리오에 진입하여, 그 어느 때보다 아찔한 싸움이 펼쳐질 미래를 분명하게 바라봐야 한다.

 

미 육군이 보여줄 수 있었던 경주, 한편엔 세계적인 충돌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 이 세 가지 중, RAMP-C 방어 프로그램을 통해, 그 나라의 군부만이 그 협정에 대한 메시지를 보낼 용기가 있었다.”

 

무역전쟁의 와중에, 군사적 긴장이 커지고 악화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칩이 역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유사한 과정이 진행 중(지구적 규모로 생산적 기계, 죽음과 파괴의 기계를 전쟁 경제로 전환하는) 이라는 것이다.

 

현 사회의 형태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필요에 맞설 정도로 자신의 이미지 안에서 생산 기구 전체를 왜곡한다.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방향을 지향하는 기술의 발전은 풍요롭고 자유로운 세계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효과적으로 자본의 성장과 축적이 표현되면서, 인류 발전에 적대하여, 수백만, 인간의 삶이 순수하고 단순하게 살아가는 것을 위태롭게 한다.

 

"개인", "소비자", "시민"으로서도 이러한 체제의 범주 내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계급으로서 투쟁하고, 이윤의 논리와 충돌하는 모든 장소와 환경에서 보편적인 인간 필요성의 우선성을 주장해야만, 우리는 이러한 표류를 멈추고 새로운 세상의 문을 열 수 있다.

 

2022년 2월 11일

해방(EMANCIPATION)

 

 

<츨처>https://en.communia.blog/chips-chaos-imperi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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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5호]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선전이 숨기고 있는 것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선전이 숨기고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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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전쟁, 한계를 모르는 전쟁, 인류를 갈라놓는 수축을 드러내는 전쟁은 국가 사이의 전쟁도, 지배계급 사이의 전쟁도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그들이 착취하는 자들에 대한 '사회의 소유주들'의 전쟁이며, 그들의 비용으로... 미사일이 날아가는 동안에도. 그것이 좋은 사업을 의미한다면 항상 거래할 준비가 되어 있다.

 

양측의 단속이 강화되면서 …

 

러시아에서는 첫 반군 시위가 발생한 바로 그 순간부터 진압 속도가 빨라졌다. 지금까지 수천 명의 사람이 시위에서부터 눈 속에서 "전쟁 반대"를 쓰는 것까지 다양한 범죄로 체포, 기소, 투옥되었다.

 

실제로 텔레그램 채널의 "시민 기자"들의 집합체인 수십 개의 라디오 방송국과 "기관"에 대한 압살은 도시 소부르주아지의 계급경계를 넘어 공장 노동자들과 이웃들이 불신에 동참하는 방법을 모르는 운동의 상황에 직면하여 무기력을 입증했다. 임금 체불, 대량 해고, 의약품 등 기본적인 물품의 부족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점점 더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불신.

 

한편 우크라이나에서는 탈영병 사냥(문자 그대로) 합법화, 좌파 정당의 금지 그리고 단일 국가 전쟁 선전 네트워크로 모든 뉴스를 집중하는 새로운 수준의 억압과 전체주의로 치달았다.

 

젤렌스키가 이스라엘 의회에서 전쟁을 제2차 세계대전 중 유대인의 대량 학살에 비유했지만, 그의 극우 동맹들, 즉 한때 독일의 히틀러와 오늘날 리비우(Lviv) 지역에서 폴란드와 유대인의 대량 학살에 공동으로 참여했던 동맹국들에 인종적, 정치적 억압을 촉발하고 배후에서 사법적 외압을 강화할 수 있는 청신호를 보냈다. 오늘날 우리는 아조프(Azov) 대대와 같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조직(OUN) 준군사조직이 가택수색을 한다는 소식을 처음으로 들었다. 산체스가 말하듯이 "우리의 가치"가 실제로 작용하고 있다.

 

…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부르주아지는 유럽에서 가스를 판매하기 위해 (그리고 그것으로 돈을 벌기 위해) 현장에서 계속 협력하고 있다.

 

그러나 폭격, 진압, 결핍과 살인이 계속되는 동안, 두 부르주아지는 유럽으로 가는 가스 운송 인프라를 그대로 유지하고 최대한으로 가동하기 위해서 매우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사실, 벨라루스와 폴란드를 통해 독일로 가스를 수송하는 야말-유럽(Yamal-Europe) 파이프라인은 일주일 전 역주행 모드로 전환해서 여전히 그렇게 유지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 파이프라인은 가즈프롬(GazProm)의 공급량이: 1000입방미터 당 유럽 시장의 1,077달러 비해 930달러로 거래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기관들은 오늘날 유럽의 바람과 풍력 발전의 생산 감소에 직면하여 가스 가격에 대한 전망이 계속해서 상승하고 있기 때문에 자축했다. 그리고 물론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와의 협상 내용을 "가능한 한 오래" 유지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즉, 선불금을 계속 지급하고 최종 가격에 백분율을 추가할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우리에게 실제 전선이 어디에 있는지 보여준다.

 

강제 징집을 피하려고 시도하는 17세나 18세의 젊은이는 우크라이나에서 그를 발견하면 누구에게나 죽임을 당할 수 있다, 또는 러시아인이라면 자기 후손이 대대로 베어질 수 있다. 젤렌스키는 공용어(여전히 수백만 우크라이나인의 모국어였으며 2014년까지 공용어인)에서 러시아어를 사용하여 의심받고 있다. 그리고 푸틴의 암살자들은 억압을 통해 러시아를 "정화"하고 "배신자들과 애국자들을 구별"하라는 지도자의 명령에 따라 심지어 이미 "세계의 평화"를 선언한 (그들이 위선적이었지만, 기념비적인) 오래된 브레즈네비안(Brezhnevian) 포스터들조차 파괴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단속은 계속될 것이고 심지어 최전선의 양쪽에서 증가할 것이다. 만약 유럽 언론이 러시아가 두뇌 없는 푸틴주의자들의 균질한 퍼레이드가 아니라는 사실을 숨기는 것만큼 부패하고 민족주의적인 우크라이나 정권을 미백하는 데 관심이 있다면, 가려져서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두 부르주아지는 두 지배계급 모두에게 아주 많은 수입을 창출하는 가스 사업이 '우연히' 중단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일 것이다.

 

결국, 두 지배계급 모두 자신의 사업을 위해 수천 명을 학살로 이끄는 전쟁에 나섰다. 양측의 수천 명의 군인과 민간인이 싸움을 하는 동안 왜 그들은 최고의 공동 사업을 포기하려고 하겠는가?

 

2022년 3월 23일

해방(EMANCIPATION)

 

<출처>

https://en.communia.blog/what-the-propaganda-is-hiding-from-you-about-the-ukrainian-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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