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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 노동자는 정말 하나인가?

  • 분류
    계급투쟁
  • 등록일
    2012/12/31 15:27
  • 수정일
    2012/12/31 15:27
  • 글쓴이
    자유로운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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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 노동자는 정말 하나인가?

 

 

1998년 7월 파견법이 시행된 이래 수많은 노동자들은 중간 착취와 주기적 해고라는 불안을 강요당해 왔다. 이에 맞서 현대차 비정규직 동지들은 대량해고와 구속, 손배·가압류 등 정권과 자본의 탄압에도 8년째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이 악순환을 끊어낼 절호의 기회가 눈 앞에 와 있다.

 

그런데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자동차지부(이하 현대차지부)는 12월27일 불법파견 특별교섭 중단과 관련하여 ‘지부장 긴급성명서’를 발표했다.

 

현대차지부는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이하 현대차비지회)에 대해 아래와 같은 말들을 쏟아냈다.

 

‘비지회 조합원들의 교섭 봉쇄로 교섭이 진행되지 못한 것은 유감을 떠나 용납 할 수 없는 행위입니다!’

 

‘비지회의 교섭 봉쇄는 불법파견 정규직화의 열망에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비정규직 불법파견 정규직화 어떠한 논리로도 가로막아선 안 됩니다!’

 

현대차지부에 묻겠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불법파견으로 인정된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현대차비지회의 요구를 신규채용으로 둔갑시켜 회사와 합의하려는 행위가 노사대타협인가?

 

당신들의 비민주적이고 오만한 태도에 대해 항의하는 현대차비지회에게 교섭결렬의 책임을 떠넘기고 현대차비지회가 정규직화를 막고 있다고 덤터기 씌우는 것이 노동자연대정신인가?

 

지금 울산에서 노동자는 하나가 아니다.

 

대공장정규직노조의 이기주의와 편의주의에 비정규직노동자들의 눈과 귀와 손과 발이 모두 철저하게 봉쇄당하고 있다.

 

현대차지부가 현대차비지회의 의견을 무시하고 끝끝내 신규채용에 합의한다면 그것은 지난하고 고단했던 불법파견 투쟁의 성과를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드는 역사적 죄악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정규직노조를 쳐다보면서 웃다가 우는 서커스를 이제 멈추자.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연대정신을 가지고 있는 고용형태, 나이, 성별, 국경을 뛰어넘는 모든 노동자들은 이제 한계에 봉착한 낡은 노동조합운동을 넘어서는 새로운 노동자운동의 실물을 스스로 창출할 시기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전체 노동자계급의 수평적 연대를 실현하고 투쟁의 주체가 모든것을 결정하는 노동자민주주의에 대한 우리의 고민이 이 고통속에서 선명하게 꽃피우기를 희망한다.

 

정규직,비정규직,조합원,비조합원을 넘어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노동자계급의 수평적 연대를 실현하자!

 

투쟁의 주체가 모든것을 결정하고 직접행동하는 노동자민주주의를 실현하자!

 

 

2012년 12월 29일

 

국제코뮤니스트전망 (http://communistleft.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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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혁명과 인터내셔널을 향한 발걸음’ 〘코뮤니스트〙 창간호가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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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백발 사회주의자의 ‘술·학문·예술·혁명’… 고희 맞아 회고록 낸 오세철 교수

  • 분류
    잡기장
  • 등록일
    2012/11/24 12:52
  • 수정일
    2012/11/25 13:50
  • 글쓴이
    자유로운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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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 사회주의자의 ‘술·학문·예술·혁명’… 고희 맞아 회고록 낸 오세철 교수

 

 

황경상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백발의 청년. 그는 자신을 열 살이라고 소개한다. “환갑이 한 바퀴 돌았다는 얘기니까. 그때부터 새로 시작하면 열 살이죠. 요즘 사회주의 운동 하는 세대들도 다 늙었어요. 30대도 찾기 힘들어. 길게 보면 10대와도 어떻게 운동을 할까 싶어서 나이도 열 살이라고 한 겁니다.”

지난 21일 연구실에서 만난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69·사진)는 여전히 주름살을 찾기 어려운 말간 동안에 동그란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젊은이도 소화하기 힘든 분홍빛
티셔츠와 짙은 감색의 스키니진을 입은 그는 올해 고희를 맞았다. “집사람이 인터넷 쇼핑에서 만원인가 주고 사준 옷들이오. 양복은 불편해서 주례 설 때만 입어.”

 

 

 

 
 


고희를 맞은 지난 10일, 그는 서울광장 한편에서 2000일 가까이 투쟁을 계속하고 있는 재능교육 노조의 농성장을 찾았다. 그날 열린 문화제에서 오 교수는 자신을 “(9년 전 학교를 그만두고 나온) 예전에는 비정규직 교육노동자였고, 이제는 혁명하는 연극노동자”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그간 예술은 파시즘이나 스탈린, 부르주아의 선전도구로만 쓰였는데 이젠 혁명과 예술이 진정으로 만나는 판을 만들자”고 말했다.

고희를 맞아 내놓은 회고록 <술, 학문, 예술, 혁명의 사중주>(빛나는전망)도 그런 내용이다. 80세쯤 자서전을 쓰겠다는 오 교수의 ‘중간 결산’이다.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인 그는 국가변란을 목적으로 한 선전·선동단체 ‘사회주의노동자연합’(사노련)을 결성했다는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2심까지 유죄 선고를 받았다. 그럼에도 최근 그는 ‘국제꼬뮤니스트전망’이라는 ‘조직’에 다시 참여했다. “피켓 들고 시위한다고 국가보안법은 철폐되지 않습니다. 현장의 노동자들이 스스로 사회주의자라고 떳떳이 얘기하고 다 감옥에 잡혀들어갈 정도가 되어야죠. 악법은 어겨서 깨야 합니다.”

ㆍ“노동자들과 수차례 술자리를 하면, 나를 동지로 인간으로 받아준다”

“오 교수는 술자리에 한 번 딱 들어앉으면 일어나질 않습니다. 사람이 그래야 해요. 술을 먹었다 하면 일어나지 말고, 혁명을 한다 해도 일어나지 말고 그 자리에서 버텨야 합니다.”

지난 17일 연세대에서 열린 오세철 교수의 고희 출판기념회에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이렇게 말했다. 오 교수는 “술잔을 잡으면 내려놓지도 말고, 털지도 말고, ‘카-’ 하지도 말고, 찡그리지도 말고, 떼지도 말고”라는 ‘노털카찡떼’ 원칙을 갖고 있다. 술뿐만 아니라, 예술도 학문도 혁명도 “끝까지 놓지 않는다”는 신념으로도 통한다.

“탄압이 무서우면 사회주의 운동을 왜 합니까. 골방에서 하고 말지. 마르크스주의자는 아주 공개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노동자·대중들이 자신의 사상을 깨달을 수 있어야죠. 사노련이 그런 공개 운동의 시작이었어요. 탄압을 한 번 당하면 움츠러드는데 그럴 필요 없어요. 어차피 쟤네들(공안기관)은 경향신문에서 이렇게 써 주지 않아도 우리가 뭘 하는지 다 알고 있습니다. 숨는 건 어차피 불가능해요. 잡아가면 또 법정싸움하고, 또 잡혀가야죠.”

 

지난 21일 연세대 교정에서 만난 오 교수는 “술 마시고 늦게 들어가는 일이 잦아서 집사람에게 가장 미안하다”며 “집사람은 교회를 다니는데 지난번 내가 구속됐을 때 집회에 나와 ‘이명박이 믿는 하나님과 내가 믿는 하나님은 다르다’고 할 정도로 나와 생각이 통하기 때문에 그래도 많이 참아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 청탁불문 등 술자리 다섯가지 원칙
학문·예술·혁명에도 똑같이 적용


▲ “주책없다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빗속을 뚫고 새벽까지 뛰어다녀”


▲ 민주노총은 자연스럽게 해체될 것
비정규직 중심으로 다시 재편되야


책의 제목도 그렇지만 ‘술’을 빼놓고 오 교수를 얘기할 수 없다. “제목 첫 번째로 술이 들어가니까 나를 술꾼인 줄만 알고, 김수행 교수도 밤낮 술 얘기 좀 안 했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술은 학문·예술·혁명을 엮어주는 동력이라고 생각해요. 술 얘기를 아직 하는 건 여전히 건강하단 소리고, 사람과의 관계와 운동을 계속 한다는 얘깁니다.”

 

오 교수는 책에서 자신의 학문·예술·혁명, 그 속에서 술과 함께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그러고는 언급한 사람들에게 ‘오세철을 말한다’는 제목으로 원고를 청탁해 실었다. 찬양일색의 의례적인 글이 실린 건 아니다. 털어놓은 속내를 거르지 않고 모두 담았다. 역사학자 최규진은 노골적으로 흉을 본다. “오 선생님은 주사가 있다. 물론 하찮은 개인사를 늘어놓으며 시간을 축내는 일은 없다. 우리네 삶과 조직을 이야기하시는 것을 무척 좋아하신다. 그래도 그분은 술자리에서 너무 자주 질퍽거리신다. 못내 헤어지기 싫어 사람들을 붙잡고 늘어지기도 하신다.”

술을 마셨다 하면 새벽은 기본이다. 연세대 재학시절부터 학교 농구선수였던 신동파, 하의건 등 대주가와 어깨를 겨뤘다. 한 번에 보통 막걸리 한 말 정도를 마셨다고 한다. 주변에선 오 교수를 ‘알코올중독자’라고 얘기한다. 그러나 그는 매일 마시고, 혼자 마시고, 안주를 안 먹는 알코올중독의 요건에 자신은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주변에서 ‘술병이 났다’는 소문이 돌면 100일이든 6개월이든 술을 끊는다. 술만을 위한 술자리도 절대로 만들지 않는다. 강내희 중앙대 교수는 “오 선생의 건배(원 샷) 제안은 악명이 높지만 그의 과음은 경계를 벗어난 술 마시기”라며 “오 선생의 잦은 과음, 그리고 술자리에 동석한 사람들을 향한 그의 ‘원 샷’ 제안은 함께 혁명하자는 외침이 아닐까 싶다”고 말한다.

오 교수는 책에서 “술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있었을까”라고 말한다. “오래전부터 나는 마르크스주의자, 사회주의자를 자임했고, 자연스럽게 투쟁과 혁명의 주체인 노동자들과 만나게 됐다. 만일 내가 술도 못 먹고 거칠고 질펀한 뒤풀이 자리도 못하고 노동자들과의 관계가 이어지지 못했다면 나는 평범한 ‘진보적’인 학자로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 번이 아닌 수차례에 걸친 뒤풀이와 술자리를 같이 하고 더 진솔하고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그 동지들은 먹물의 벽을 깨고 나를 인간으로, 동지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우리는 물질인 술로 만나 선입견과 편견, 하찮은 지식과 굴절된 이데올로기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바로 그것이 술의 힘이다.”

오 교수는 술을 마시는데 다섯 가지 원칙이 있다. 맑은 술과 탁한 술, 사람과 안주를 구분하지 않고(청탁불문), 거리와 주제의 멀고 가까움을 묻지 않고(원근불문), 밤낮을 가리지 않고(주야불문), 지위와 위치를 가리지 않으며(고저불문), 삶과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다(생사불문). 그 원칙은 똑같이 학문·예술·혁명에도 적용된다. 예컨대 학문에 청탁불문의 원칙을 적용해 보자. 그에게 순수·응용 등의 학문분과는 의미가 없다. 오 교수가 경영학과 교수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는 “자본주의의 핵심적 도구학문인 경영학 속에서 내 뜻을 펼쳐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사회심리학과 조직행동론 과목에서 그는 “제대로 된 경영학 이론은 역사·사회·인간에 대한 깊은 인식이 밑바탕이 돼야 한다”고 가르쳤다.

오 교수는 “고희가 된 것이 믿기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오 교수를 보는 사람들이야말로 그 사실을 좀처럼 믿지 못한다. “주책없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다음날 아침까지 술을 마시고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줄기를 뚫고 새벽까지 시청과 동대문을 뛰어다니기도” 했다. 2009년 용산 참사 당시에는 혹한의 설날에 2박3일 동안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철야농성을 했고, 유난히 더웠던 평택 쌍용자동차 점거 파업 현장에 함께하기도 했다. 그 일로 폐렴을 앓아 입원을 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눈빛은 형형하다. 글자를 볼 때도 돋보기를 쓰지 않고, 가는귀가 먹는 일도 없었다. 특별히 하는 운동도 없다. 손호철 서강대 교수는 “오 선배야말로 ‘나이를 먹는다’는 한국말 그대로 나이를 한 살씩 먹어치워 점점 젊어짐이 확실하다”며 “남들이 좌파라고 부르는 나 같은 사람은 극우파로 보일 만큼 발본적 입장에서 실천해 온 열혈전사”라고 말한다.

최근에 오 교수는 연극배우로 데뷔하기도 했다. 백혈병으로 숨진 삼성전자 여성노동자 등의 이야기를 다룬 연극 <반도체 소녀>와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문제 등을 다룬 <시계1>에 출연한 것이다. 그는 영문학자이자 희곡번역가였던 오화섭 연세대 교수(1979년 작고)와 극단 ‘여인소극장’의 대표이자 배우였던 박노경 이화여대 교수(1950년 작고) 사이에서 태어났다. 두 사람은 진보적 연극운동의 동지이기도 했다. 그는 어머니의 극단이 공연한 입센의 <인형의 집>에 아역으로 출연하기도 했고, 고교 3학년 때는 <제17포로수용소>를 학교 무대에 올려 세프튼 역을 맡기도 했다. 오 교수는 “1년 뒤면 명예교수로 학교 강단에 서는 것도 끝나는데 이젠 ‘비정규직 배우노동자’로 남을 것”이라고 말한다.

오 교수는 건강 비결의 하나로 ‘붉은 혁명의 비타민C’를 소개한다. 본래 약을 먹어본 적이 없지만 어느 날 서울대 이왕재 교수가 “비타민C는 위와 장에 좋다”고 하는 말을 듣고는, 술꾼으로서 “무릎을 쳤다”고 한다. 오 교수는 늘 주머니에 빨간색의 비타민C 알약을 갖고 다닌다. 하루 세 끼 여섯 알은 기본이고, 술을 먹는 날은 차수에 따라 두 알씩 추가해서 먹는다. 3차까지 가면 12알을 먹는 셈이다. ‘동지’들의 건강을 우려해 백 명이 넘는 수련회를 가더라도 인원수만큼의 비타민C를 준비해 나눠준다. 의심이 많은 운동권들은 처음에 비타민C를 권하는 오 교수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러나 10년 넘게 비타민C의 ‘생체실험’ 대상이 된 오 교수의 건강상태를 보고는 상당수가 복용 대열에 들어섰다. “사람을 좋아하니까, 술을 먹어도 늘 즐겁게 먹으니 독이 안 돼요. 운동하는 사람들도 너무 스트레스 받으면 건강을 해쳐요. 나는 늘 ‘혁명의 무기를 제대로 간수하라’고 하죠.”

상당수의 사람들은 그가 말하는 ‘혁명’을 공상주의자의 치기쯤으로 흘려 듣는다. 또 다른 쪽에서는 그를 ‘분열주의자’라 비난하기도 한다. 최규진은 그런 비난들을 소개한다. “타협도 없고 유연성도 없다. 입에 달고 사느니 혁명이고, 노동자 투쟁이고, 노동자 혁명당이다. 말하느니 ‘자본주의 붕괴론’이다. 그는 자본주의를 그럴싸하게 고쳐보면 좀 더 나은 세상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그러나 오 교수는 그런 말들이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은 탓”이라고 말한다. 그의 신념은 ‘공상’이 아니라 ‘역사’에서 온다. 고희 기념으로 함께 내놓은 <비판적 교양인을 위한 오세철 강의>(빛나는전망)의 2부에서 그는 소련, 중국, 북한을 비롯해 남미의 좌파 정권까지 모두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라고 진단한다. “지금까지 있었던 사회주의를 평가하고 뒤집고 정리하지 않으면 그 다음에 어떻게 하자는 얘기를 꺼낼 수 없습니다. 보통사람들은 여전히 그런 나라들을 사회주의라고 이해합니다. 하지만 노동계급을 억압착취하는 자본주의 혹은 국가자본주의였죠. 자칭 사회주의자라는 사람들을 보면 여전히 스탈린주의에 빠져서 소련이나 북한을 옹호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생각이 다른데 실천이 같아질 수는 없다”는 측면에서 “무엇을 실천할 것인지를 제대로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국제꼬뮤니스트전망’에 참여하면서 계간지 ‘꼬뮤니스트’ 발간 등에 나서는 것도 그런 이유다.

오 교수는 오늘날의 위기는 ‘경제위기’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위기’라고 본다. 따라서 자본주의를 넘어서야 하는데, 역사적으로 자본주의를 점진적으로 바꾸려고 노력해 온 수정주의와 개량주의는 유럽의 지난 100년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듯 모두 “실패했다”고 지적한다. 그가 말하는 ‘혁명적 마르크스주의’란 바로 “혁명적 방법의 자본주의 철폐”를 의미한다. “사실 마르크스주의 자체가 혁명적인데 따로 ‘혁명적’이란 말을 붙일 필요는 없죠. 다만 지금까지 여러 다양한 변종 사회주의가 존재했기에 구분하는 겁니다.”

오 교수는 ‘마르크스주의자’와 ‘마르크스연구자’를 구분한다. ‘주의자’는 이론과 실천이 하나되는 사람이다. 그 또한 본래 ‘강단 마르크스주의자’라는 말을 들었다. 1977년 그의 제자 3명이 대강당의 유리창을 깨고 ‘유신철폐’를 외치다 체포된 모습을 보고 부끄러움을 느낀 그는 비로소 학내민주화 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그는 6월 항쟁에서 제자였던 이한열의 죽음을 목도하고 완전히 변모한다. 그는 “87년부터 25년의 세월은 나에게 마르크스주의자가 되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말한다. 2003년 그는 ‘혁명’에 좀 더 매진하기 위해 정년 5년을 앞두고 교수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주변에선 “퇴직금으로 빚을 갚았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오 교수는 미국·유럽 등에서 국제적으로 벌어지는 반자본주의 흐름에 주목한다. “자본주의는 전 세계의 생산을 하나로 편입시킨 체제이므로 한 나라 차원에서 극복이 불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세계적 흐름에 호응하기에 우리나라는 아직도 바닥을 치지 못했습니다. 제 역할을 못하는 민주노총은 자연스레 해체될 거예요. 과거 전노협(민주노총의 전신)이 싸우면서 만들어졌듯 비정규직 노동자 중심으로 다시 조직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그는 대선과정에서도 투쟁을 통해 ‘현장’을 넓게 만들어가면서 대선판 자체를 조롱하는 판을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투표율이 30~40% 나오면 뭘 가지고 그들이 정당성을 얻겠어요? 누가 뽑히든 우리는 계속 싸운다는 장기적 전망을 줘야 합니다.”

물론 그의 생각과 인생 자체를 모두 “실패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앞서 나가는 게 실패는 아닙니다. 조금 뒤에서 보면 모험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왜 앞서 나가는지를 보면 그건 실패가 아니죠. 저는 조금 더 차근차근 앞으로 나가야 한다는 충고로 받아들입니다. 사실 책에 등장하는 60여 명의 사람들도 고립돼 있다는 생각을 하겠지요. 그들이 이 책을 보면서 ‘아직도 이런 동지들이 함께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며 격려를 받을 수 있을 겁니다.”

그는 늘 겸손하고 자기 잘못을 인정할 줄 알았던 노동운동가 고 이일재를 “공산주의자가 진정한 민주주의자임을 몸으로 보여줬다”고 평했지만 그야말로 어쨌건 ‘진정한 민주주의자’임은 분명해 보인다. 연극배우 오주환은 ‘막내배우’ 오세철을 이렇게 기억한다. “소극장의 분장실은 두세 명이 앉아 있어도 비좁은 공간이다. 내 기억에 선생님께서는 분장실에 단 한 번도 앉지 않으셨던 것 같다. 어두운 무대 뒤 구석 의자에 그저 묵묵히 앉아계셨다. 행여 다른 배우에게 방해라도 될까봐 작은 자세로 벽에 붙어서 앉아계셨다. 어둡고 좁고 답답한 그 공간에서, 선생님은 늘 특유의 인자하고 밝은 표정으로 앉아계셨다. 그게 내가 아는 오세철 선생님, 바로 그분의 모습이다.”

 

 

<출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11232233445&code=96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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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오세철 선생 고희 출판기념회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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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기장
  • 등록일
    2012/11/19 11:29
  • 수정일
    2012/11/19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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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로운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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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철 선생 고희 출판기념회] 

『술, 학문, 예술, 혁명의 사중주』

『비판적 교양인을 위한 오세철 강의록』


                

일시 및 장소: 2012. 11. 17(토) 16시 연세대 상경대 상경관 B120호
주최: 연세대 오세철 교수 제자들





 

<출처 : 꼬뮌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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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0] 삶과 투쟁의 현장에서 부치는 해방글터 시노래 문화제 영상

  • 분류
    잡기장
  • 등록일
    2012/11/19 11:27
  • 수정일
    2012/11/19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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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로운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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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투쟁의 현장에서 부치는 해방글터 시노래 문화제 영상
 

 

'길 위에서 부르는 해방노래' 

해방글터 노동자시인: 김영철/조선남/배순덕/조성웅/신경현
연대하는 문화노동자: 박준/류금신/우창수/따따따장난감밴드
연대를 위한 노래모임 좋은친구들

발언 : 오세철,   연대시 : 임성용





발언/ 오세철: 혁명과 예술, 유명자: 운동 제대로 하기

 

 

 <출처 : 꼬뮌영상>

 

 

춥고 궂은날씨에 함께 해주신 모든 동지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부산, 울산, 대구 등 멀리서 문화제 전과정을 준비해오신

해방글터 동지들, 우창수, 김은희, 장밴 동지들, 그리고 서울에서 연대해주신 동지들 모두에게 뜨거운 동지적 신뢰를!!!

 

그리고 노동자투쟁과 예술과 혁명이 더욱 가까이 어울어지는 내년을 준비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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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부르는 해방노래

  • 분류
    잡기장
  • 등록일
    2012/11/08 12:47
  • 수정일
    2012/11/08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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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로운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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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부르는 해방노래

 

1. 전국노동자대회 전야제에 맞춰 계획한 해방글터 시노래음반 발매가 지연되었습니다. 지금까지 200여명의 동지들이 492만원 가량의 후원을 해주셨습니다 약속을 지키기 못해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사과드립니다.

 

2. 9월 노래 녹음, 10월 수정작업과 자켓디자인 작업을 거쳐 전국노동자전야제 때 맞춰 발매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생계활동과 공연일정 등으로 집중해서 작업해야 할 녹음 일정을 잡기가 쉽지 않았고 계획한 일정들이 지...연되었습니다.

 

3. 지난 10월말 경, 해방글터 동인들과 우창수 동지는 점검회의를 통해 물리적인 시간상 전국노동자대회 전야제 음반 발매는 힘들다고 공유했습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하고 환불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비록 음반을 발매하지는 못했지만 이미 계획된 해방글터 시노래문화제를 통해 다시 한 번 기회의 시간을 달라고 호소하기로 했습니다.

 

4. 해방글터, 우창수, 좋은친구들은 시노래 문화제 후 전체 모임을 통해 기간 과정을 점검하고 현실적인 조건들을 고려 해 책임있게 음반발매 계획을 결정할 것입니다.

 

이후 일정과 계획들은 해방글터(http://cafe.naver.com/ptpen), 보내주신 이메일, 패이스북 등을 통해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5. 2012년11월10일/오후 6시/재능농성장/

해방글터 시노래 문화제 [길 위에서 부르는 해방노래]에 동지들을 초대합니다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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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부르주아 대선에 맞선 코뮤니스트노동자의 입장 - 변혁모임과 대선 공동기구, 노동자 후보 전술에 대하여

  • 분류
    계급투쟁
  • 등록일
    2012/10/19 12:26
  • 수정일
    2012/10/19 12:26
  • 글쓴이
    자유로운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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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부르주아 대선에 맞선 코뮤니스트노동자의 입장

-변혁모임과 대선 공동기구, 노동자 후보 전술에 대하여

 

국제코뮤니스트전망

 

 

대선 공동기구, 태생적 한계와 선거주의

 

연출이 시작됐다.

 

변혁모임이 전국활동가대회를 통해 ‘노동자대통령 공동선거투쟁본부’를 제안하면서, ‘반자본주의, 반신자유주의, 야권연대 반대, 노동자 민중후보 완주’ 기조로 한 진보좌파·사회주의 그룹(노동전선, 노혁추, 진보신당, 사노위, 좌파노동자)간의 대선 공동기구는 형식적으로 현실화됐다. 물론 진보신당의 선거용 ‘임시(가설)정당’ 정치옵션에 대한 태도를 둘러싸고, 여전히 전망은 불투명하다.

 

그동안 대선을 앞두고 일군의 사회주의 그룹은, 대선 공동기구를 구성하기 전부터, ‘답안’을 준비해놓고 있었다. 그 첫 번째가 진보정의당, 통진당과의 분별정립이며, 두 번째는 야권연대 비판, 공동전선 촉구다. 여기에 수식어가 첨가되는데, 다름 아닌 대중투쟁과 선거운동의 결합이다.

 

이 ‘답안’은 처음부터 가짜였다.

 

첫째, 진보신당은 총선정국에서 야권연대에 자신을 넣어주지 않는다고 항의하던 세력이 아닌가. 더구나 진보신당 내 주요 지도부 발언과 상당수 평당원 흐름이 진보정의당 정치 철새인 노회찬, 심상정류와 통합을 원한다는 것은 운동가 사이에서 공공연한 사실이다. 다른 한 축으로 구사회당 계열은 과거 10여 년간 조직 정체성을 선거주의로 일관해왔는데, 이번 대선 과정을 통해 그 체질이 바뀐다? 게다가 97년 대선 시기 국민승리21의 페이퍼 정당과 다를 바 없는 진보신당 가설정당에 대해, 사회주의 그룹은 공개적인 반대조차 밝히지 못하고 있다. 더 나아가, 노혁추는 동상이몽적인 일괄타결(대선 기조, 강령, 투쟁) 운운하면서, 가설정당까지 진지하게 검토할 수 있다고 한다. (2012.10.10. 노혁추 입장) 이쯤 되면 이들이 말하는 노동자 후보 전술은 기껏해야 정치적 수사를 동원한 전형적인 선거주의다.

 

둘째, 과연 야권연대를 반대하는 대중투쟁이 선거공간에서 후보를 내세워 인위적으로 창출할 수 있는가? 이들은 대중투쟁이 일군의 사회주의자들의 필요에 따라 호출하면 되는 요술 방망이쯤으로 생각한다. 야권연대 정권교체 열망 현상은 현 권력에 대한 뿌리 깊은 불만의 결과이자, 동시에 부르주아 선거에 대한 환상의 표현이다. 따라서 야권연대를 근본적으로 반대하기 위해서는 후보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 선거 환상 자체에 대한 폭로와 비판을 전개해야 한다.

 

투쟁의 공간에서 대중을 정치의 주체로 세우고 자기조직화를 통해 투쟁을 발전시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고 수많은 실패 속에서 계급이 단련되고 스스로 전망을 가질때 가능한 일이다. 더욱이 비정규, 미조직 노동자 투쟁에서의 자기조직화와 직접정치는 더욱 어렵다. 그래서 정치조직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그런데 이렇게 어려운 정치투쟁과 강령실천은 소홀히 하면서 손쉬운 선거개입으로 조직화를 이루려는 세력들이 많다. 선거철만 되면 바빠지고 활동력이 높아지는 정치조직이 여기에 속한다. 투쟁은 회피한 채 선거에서는 최대의 능력을 발휘하는 노동자 조직도 여기에 해당한다. 투쟁을 조직하는 것은 어렵지만, 조직동원과 자금모금으로 표현되는 선거의 조직은 더 수월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국가보안법의 탄압에도 공개적이고 대중적인 사회주의 정치활동이 본격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사민주의자들도 상당수 수용하는 경제 요구를 노동자계급의 행동강령이라고 내걸고, 그들과 기꺼이 연합하면서 부르주아 정치 공간에서 벌이는 선거개입이야말로 사회주의운동을 급격하게 퇴보시키는 정치적 타락행위이다.

 

 

변혁모임, 계급정당 건설?

 

그간 진행된 변혁모임을 보면, 통진당에 대한 반정립 슬로건만 있을 뿐, 노동자계급정당 ‘실체’ 논의는 사라지고, 보통명사인 계급정당만 외치고 있다. 자신의 전략적 과제와 정치적 전망인 당에 대한 최소한의 강령적 원칙내용은 토론은 고사하고, 선거참여를 해야 한다는 선당위론만이 팽배하다. 그리고 그들은 선거 절차와 기술적인 문제로 이동하면서, 대선후보군을 확정했다. 노동자계급정당의 그간의 정치적 성과와 정치적 강령을 전체 계급에 제출하는 문제의식은 실종되고, 대선후보군 상층 지도부의 ‘순교자적’ 투쟁만이 요구된다. 내용 없는 현장변혁, 계급정당 선거를 역순 한 일정 박기 투쟁, 선거용 희망버스를 호소한다. 결국, 선거정치 희망버스에 동원되는 대중은 자신의 현장 정파적 이해에 맞는 조합원으로 한정될 것이다.

변혁모임 내부에는 당에 대한 다양한 이질적 흐름이 존재하는데,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차이조차 스스로 밝히지 않은 채, 뭉뚱그려 노동자후보만을 얘기하고 있다. 이들은 단순한 대선 통일전선 이상을 뛰어넘기 어렵다.

 

강령에 입각하지 않고 우파에 대한 상대적 반정립으로 자신들을 규정한 좌파 노동조합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활동가 당을 만들겠다는 발상은, 계급정치를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계급정당의 이름으로 조합주의를 보호해줄 뿐이다. 이들이 활동가 당을 만들겠다고 하는 순간, 강령에 입각한 실천을 통해 노동조합 배후정치와 확실한 단절을 이뤄내겠다는 선언은 공문구가 되어 버렸다. 혁명당의 역할은 공산주의 정치와 노동자계급을 직접 만나게 하는 것이지, 중간에서 활동가(조직)를 통해 배후조종하거나 대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의 계급투쟁과 공산주의 혁명의 최종목표 사이에 어떠한 중간단계나 대리과정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노동자계급 자신의 힘으로 이루어야만 하며, 그 목표에 이르는 것은 노동자계급의 의식적인 투쟁에 달려있다.

 

혁명당 건설은 철저한 강령 원칙과 실천 검증에 따른 혁명적 공산주의 세력의 재구성을 통해,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새로운 주체들과 공산주의 운동이 계급투쟁 속에서 직접 만나, 계급 안에서 혁명적 주체를 세우고 자기 조직화를 이루는 것을 통해 가능하다. 그런데 운동을 과거로 돌리고 있는 사노위와 노혁추 등은 강령적 실천과 혁명적 주체의 자기 조직화라는 본질을 망각한 채, 조급한 정세대응으로 일관하거나, 아니면 자기 조직 유지와 양적 확산만을 위해 강령원칙을 폐기하면서 당 건설 운동을 후퇴시켜왔다. 이들은 진공상태에서 당 건설을 할 수 없다면서, 변혁모임의 이른바 노동자계급정당 흐름에 영합하고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 착취체제가 지속하는 한 계급투쟁에 진공상태는 없으며, 오히려 계급투쟁과 혁명적 계급의식을 담아낼 그릇이 부족할 뿐이다. 계급투쟁과 계급의식의 발전 없이 혁명당 건설은 불가능하다. 계급투쟁의 깊이는 당 건설의 주체를 담보해주고, 계급의식의 발전은 강령으로 표현된다. 당 건설의 주체와 강령을 포기한 당 건설이야말로 진공상태의 당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른바 전술 문제에 대해

 

노동조합(민주노총)이 정치방침으로 결정했던 노동자 정치세력화, 진보정당 운동은 파탄 났다. 이러한 결과가 초래한 근본적 원인은 노동자 해방으로서 이념 부재, 소위 80년대 소부르주아 이념인 NL(민족해방) 노선 추구, 개혁적 사민주의와 선거·의회를 주축으로 한 활동이었다. 따라서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한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 논의는 기존의 구도를 반복한다는 점에서 공허한 주장이다. 결국, 새로운 조직적 대안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이와 관련한 우리의 입장은 <코뮤니스트 정치조직을 제안하며>를 참조하기 바란다.)

 

몇 년 전부터, 소위 사회주의자 내부에서는 전술적 문제를 놓고 대립하기 시작했는데, 이 전술적 운용의 실천적인 대립은 선거 시기 진보신당과 같은 의회주의 좌파를 포함하는 공동전선(통일전선) 문제였다.

 

우리는 여기서 ‘원칙 중심의 전술’과 ‘기회주의적 전술’을 구분한다. 한마디로 기회주의 전술의 특징은 단기 목표의 강조, 현재 시점 이외에는 어떠한 것도 고려하지 않는다. 기회주의의 모든 전술은, 미래의 격동을 준비하면서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을 발전시키는 대신, 주로 특정 시기만을 위한 정파적 이해와 실천 운동 역량에만 관심을 둔다. 반대로 원칙중심의 전술은 혁명 운동 발전의 총체적 과정을 염두에 두면서, 운동의 근본적 임무와 계급투쟁의 방향, 미래를 향한 장기적 실천을 전개한다.

 

2008년 이후 현재까지 정세를 관통하는 핵심은 자본주의 쇠퇴와 위기, 새롭게 올라오는 대중행동 투쟁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사민주의 세력은 자본주의 재구축을 위해 나서고 있다. 한국 또한 마찬가지다. 이들은 자본주의 ‘생산의 문제’는 도외시한 채 오직 ‘분배 정의’만을 외치고 있다. 노동자계급이 생산을 직접 통제해야 한다는 어떠한 언급도 없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역사적인 파산이 명백해졌고, 공산주의 사회의 전망은 노동자들의 투쟁에 점점 더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이제 공산주의라는 대안 사회가 인류의 단순한 희망과 꿈이 아니라 역사발전의 물질적 필요성이며, 우리가 실현해야 할 역사적 과제임을 일깨워 주고 있다. 세계적인 계급투쟁은 다시 한번 혁명의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새롭게 분출되는 프롤레타리아트 투쟁이 보여준 용기와 결단, 그리고 깊은 연대의식은 자본주의가 아닌 다른 세계가 가능함을 보여주고 있다. 공산주의는 실현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부르주아 선거판에 ‘진보정당’ ‘노동자 후보’의 이름으로 끼어들어 노동계급을 배신하고 부르주아의 한 분파로 행세하는 세력들이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다. 이보다 왼편에는 노동자정치를 주장하면서도 부르주아 정치를 흉내 내는 세력들이 소수로 존재하고 있다. 이들은 노동자정치를 노동자계급 고유의 영역인 투쟁의 장에서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 선거공간에서 할 수 있다면서 그 속에서 선전선동과 조직화를 꿈꾸며 선거운동을 선거투쟁으로 미화시키고 있다. 하지만 노동자 계급을 위한 어떠한 성과도 선거나 그 과정을 통해 얻을 수 없다.

 

현시기 대선 정국을 둘러싼 사민주의와 동거, 의회 선거정치 몰입은 계급적 대중행동을 저해할 뿐이다. 대중에게 선거는 자신의 삶과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여러 선택지(후보) 중 하나를 고르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또한, 선거 결과가 마치 계급 대중 의지가 실제 실현되는 것 같은 환상을 만든다. 이것이 부르주아 선거제도의 핵심 기제가 아니었던가!

 

그동안 선거에 개입했던 노동자정당, 진보정당들은 완전한 의회주의 정당으로 자리 잡았고, 이들을 지지했던 민주노총의 정치는 파산상태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계급에 대한 수많은 배신과 운동권 출세주의를 양산했다. 통진당, 진보정의당류와 진보신당의 차이는 백지 한 장 차이다. 또한, 이들과의 정치적 공동전선이나 입당전술을 사용하는 자칭 사회주의 세력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아무도 반성하지 않는다.

 

말로는 선거주의를 비판하면서 자신들이 참여하는 선거는 훌륭한 전술로 둔갑한다. 선거에 휩쓸리지 않고 대중투쟁을 중심으로 선거 이후를 준비하는 운동의 흐름은 아직도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선거주의자들이 선거에 참여하지 않는 건강한 노동자와 혁명세력을 대기주의, 기권주의로 몰아가면서 모든 운동을 대선 블랙홀에 밀어 넣으려 하고 있다. 이것이 운동마저 삼키는 부르주아 선거다. 부르주아 선거의 본질은 지배계급의 위기를 평화롭게 넘기는 것이며, 격화되는 대중 투쟁을 잠재우고 대중의 불만표출을 잠시 멈추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선거에 휩쓸리지 말고 투쟁의 동력을 유지해 선거 이후 더욱 강력한 투쟁으로 지배계급에 맞서야 한다.

 

선거는 짧다. 두 개의 노선은 대립하고 있다. 사민주의와 동거, 선거정치 몰입이냐, 계급적 대중행동 투쟁 촉구냐?

 

이제라도 부르주아 잔치판에서 뛰쳐나와 노동자계급의 자리에서 자본주의가 인류 참상의 원인이고, 이를 넘어서는 공산주의 사회만이 대안이라고 대중적으로 공개적으로 말하고 싸워야 한다. 고통당하고 억압받는 노동계급과 함께 투쟁하고 그들을 정치의 주체로 내세워야 한다.

 

선거유세용 집회나 이벤트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대중총회를 개최하자. 대중총회, 대중집회를 통해 노동자들이 정치적 의사표현과 투쟁의지를 제한 없이 표출하는 ‘수평적 노동자 직접행동’, ‘노동자 직접정치’를 실현하자!

 

선거시기만큼이라도 모든 것에서 소외되었던 비정규 중소 영세노동자, 장애인, 소수자, 빈민, 실업자, 이주노동자 등 미조직 프롤레타리아트 투쟁에 집중하자. 노동자투쟁과 미조직 프롤레타리아트들의 직접행동이 결합하는 ‘아래로부터의 프롤레타리아 행동(연대)’을 실현하자!

 

선거에 참여하는 대선투쟁이 아니라 부르주아 대선 자체에 맞선 분노한 노동자들의 직접행동을 조직하자. 대선자금을 모금하지 말고 직접행동의 장에서 노동자 대중행동 기금을 조직하여 선거 이후의 투쟁을 준비하자!

 

새로운 지배자의 당선을 발표하는 날, 생산의 주인인 노동자들은 자본가 지배를 거부하고 자본가 권력과의 전면전을 선포하자!

 

자본가대통령 취임식 날,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투쟁과 권력의 주체임을 선언하는 ‘노동자평의회’를 향한 노동자계급총회를 개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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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정치의 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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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급투쟁
  • 등록일
    2012/10/16 07:12
  • 수정일
    2012/10/16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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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정치의 실종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

 

 

대통령 선거를 향한 부르주아 선거판이 본격적으로 펼쳐졌다. 진보·보수를 망라하고 지면과 화면을 도배하고 해외 언론도 한국 정치에 호들갑스러운 관심을 보인다. 모든 모임의 중심 화두는 대선 후보 사이의 경쟁과 찬반 토론이다. 매년 5년마다 부는‘선거 중독증’의 유난스러운 모습이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월가점령 1년을 기념하는 대중들의 직접행동이 벌어지고 전 세계 노동자들의 아래로부터 투쟁은 지속되고 확산되고 있다. 무엇이 진정으로 새로운 세상을 바꾸는가? 그것은 부르주아 선거가 아니라 노동대중의 직접행동임을 역사가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다. 인물의 선택이 아니라, 세력의 대체가 필요하다. 혁명적 탈바꿈.

 

나는 1992년 민중대통령 선거대책위원장이었다. 총선과 대선이 한 해에 치러지는 20년 전 일이다. 군사정권이후 이른바 3김이 각축하는 판에 진정한 제3세력으로 사회주의 강령과 투쟁으로 대통령 선거에 개입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진정한 사회주의가 아닌 소련과 동구 제국의 몰락을 맑스주의와 사회주의 패배로 몰아세운 전 세계 부르주아지와 사이비 진보세력의 혼란에 맞서, 사회주의의 기치를 다시 들고 그 대리인인 부르주아 정치에 맞서자는 뜻이었다. 그 이후 세 번의 대선이 있었다. 김대중, 노무현의 이른바 민주· 참여 정권 그리고 이명박의 보수 정권을 지나, 지금 부르주아 세력들이 세상을 바꾸겠다고 선거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어쩌자는 것인가?

 

5년 전 우리는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아 경제를 살리겠다는 포퓰리즘에 현혹돼서 온갖 정치· 경제·이데올로기적 억압과 고통 속에 살아왔다. 지배세력의 세련된 구호와 대중조작에 영합하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환상인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그런데 또 다시 정치의 주체로 나서지 못하고, 그들 세력에게 맞장구치며 환호할 것인가? 정말 눈을 부릅뜨고 냉철하게 따져보자.

박근혜 세력은 누구인가? 대자본의 세력이며 경제성장과 반공이데올로기로 무참히 민주세력을 탄압하고 그야말로 40년을 잃어버리게 만든 세력이다. 복지와 통합으로 포장된 현대판 자본의 이데올로기는 세련된 유신과 파시즘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러면 문재인 세력은 누구인가? 대자본과 중소자본의 연합세력이며 정치·이데올로기 면에서 민주세력으로 스스로를 규정한다. 이명박 세력이 김대중·노무현 계보에 10년을 잃어버렸다면, 노동자세력은 이른바 민주세력 때문에 노동자 정치를 10년 잃어버렸다. 그 10년 동안 얼마나 가혹한 노동자 탄압과 실질적 민주주의 후퇴가 있었는지를 우리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박근혜 세력에 대한 민주· 반민주 대립구도로 세상을 바꿀 수 없음을 인식하고, 우리가 진정으로 잃어버린 10년을 다시 찾기 위해 어떻게 환골탈태할지를 노동자 앞에 밝혀야 한다.

그러면 안철수 세력은 누구인가? 중소자본의 세력이며 부르주아 양당 정치를 대신할 제3의 시민정치세력으로 스스로 포장하고 있다. 그러나 부르주아 정치의 한 종류일 뿐이다. 이념을 초월한 중도정치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 주장 자체가 제3의 물결과 같은 현대판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이며, 다른 형태의 부르주아 정치를 열망하는 대중 정서의 반영일 뿐이다.

 

이 모두를 대체할 정치와 세력은 사회주의 정치와 노동자 계급이다. 그런데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자본주의가 인류 참상의 원인이고 이를 넘어서는 자유로운 개인이 연합하는 사회(공산주의)라고 대중적으로 공개적으로 말하고 싸우고 있는가? 고통당하고 억압받는 노동계급과 함께 투쟁하고 그들을 정치의 주체로 내세우고 있는가? 부르주아 정치판에 ‘진보’ 정당의 이름으로 끼어들어 노동계급을 배신하고 부르주아의 한 분파로 행세했음을 반성하고 있는가? 일부에서 ‘노동자 민중후보’ 를 내세우자는 움직임이 있다고 한다. 지금이 후보전술을 쓸 때인가? 제발 좀 반성하자. 부르주아 정치를 흉내 내지 말자. 선거가 아닌 대중의 직접행동으로 맞서자.

 

노동자 대중의 열망과 사회주의 정치의 무능력의 틈을 파고드는 것이 파시즘이다. 사회주의(공산주의) 정치의 진정한 복원만이 파시즘을 이기는 길이다.

 

<경향신문 기고>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10152102075&code=99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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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정치조직을 출범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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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10/15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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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정치조직을 출범하면서

 

 

국제코뮤니스트 전망

 

 

1. 낡은 것과 새로운 것

 

더 이상‘통합진보당’,‘진보정치’,‘좌파정치’운운하면서 고리타분한 대립을 논하지 말자. 가까이에서 보든, 멀리에서 보든, 우리 주변에 펼쳐진‘노동자 투쟁 정치’와 미디어에 비친‘진보정치’는 그 어느 것도 공통점이 없다. 정확히 말해, 96-7년 노동자 총파업 투쟁 이후,‘민주노총 정치방침’으로 형성된‘진보정당(정치)’시대는 끝이 났다. 그러나 여전히‘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말하면서,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한 진보정치가 노동자계급의 발목을 잡고 있다. 낡은 것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물론 지금 필요한 것은, 진보정당에 제물을 올리고 축문을 읽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렇다고 야권연대 진보정당을 비판하면서, 이른바‘지도력’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공동전선(통일전선)을 통한 ‘노동자독자정당’이 우리의 대안이 될 수 없다. 정치노선적으로 실체도 불분명한 민족해방 좌파, 중앙파, 현장파를 포함한 공동전선 당은 무엇보다, 한국 프롤레타리아 정치운동의 위기를‘계급정치의 부활’이 아닌‘지도력의 정치’에서 찾는 점에서 노동자계급에게 치명적이다. 또한 통일전선 당은 그간에 진행된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당 건설 공동 활동 경험과 노력을 폐기처분한다. 대선 정국과 맞물려 진행되는 공동전선 당 전략은 기껏해야 ‘계급성과 혁명성도 애매한 진보좌파연합’으로 수렴될 것이다.

계급투쟁의 무기력함에서 오는 비관주의와 조급성, 여러 차례 패배의 자책감 등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미래를 내다보고 활동하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보다 자본주의 위기가 눈앞에 진행되고 있으며, 국제적인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부흥을 목도하고 있다. 파업과 거리투쟁을 통해서 동지를 찾아내고, 자본과 노동의 적대적 투쟁을 통해서 새롭게 올라오는 대중의 잠재적 힘을 주목해야 한다.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다시금 혁명운동의 정치원칙을 강인하게 사고해야 할 때다.

여기서 우리는 세계혁명운동의 역사와 한국 사회주의 운동의 평가와 원칙을 되새기려 한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무엇을 반대하는 존재’가 아니라, 한국에서‘노동자국제주의’관점에서 코뮤니스트 운동을 생성해나가려는 주체로서 자신을 정립하려고 한다.

첫째, 8-90년대, 아니 아직도, 여전히 한국 운동사회의 이론적 전통으로서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이른바 ‘맑스-레닌주의’ (혁명적 맑스주의와 구분되는 스탈린주의에 입각한 공식 전통)에 근거한 혁명이론과 실천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을 전제로 한다.

한국의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민족해방 해결을 주요 실천투쟁으로 전개한 다수파인 NL운동(스탈린주의 변종)은 한국 자본주의 지배계급으로 편성되거나 개혁적 부르주아지와의 통일전선 형성으로 귀결됐다. 또한 NL노선과 대립했던 이른바 80~90년대의 ND, PD운동의 이론적 뿌리가 사실은 소부르주아 민족경제론, 국민경제에 근거한, 소련 관변학자들의 반독점민주변혁론 -> (관제고지 선점으로서) 재벌 국유화-> 권력장악 -> (일국)사회주의 노선이었다고 성격을 규정짓는다.

 

둘째, 1917년에서 1920년대는 전 세계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 봉기 상황이었으며, 1917년 러시아혁명은 세계혁명의 그 첫 단추로, 러시아 혁명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한 일련의 노동자 봉기시도가 어떻게 좌절됐는가가 혁명적 맑스주의 실천운동의 복원과 연관되어 있다. 이 점은‘사회주의 조국 소련을 방어하자’는 일국사회주의 노선의 실천적 결과로서 소련의 대외협력기구로 전락한 코민테른에 대한 평가이기도하다.

1920년대 중반 이후 세계 프롤레타리아 투쟁과 더 이상 연결되지 않은 코민테른은 공산주의 좌파, 혁명운동 세력을 배제하고, 국제주의를 포기한다. 독일 이탈리아에서 파시즘의 등장과 함께 반혁명의 시기가 열리고,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트는 결국 패배했다.

 

한국사회의 이론적 실천적 풍토에서, 레닌의『좌익공산주의- 유아적 무질서』에서 일방적으로 혹평된 좌익공산주의 운동은, 역사적으로 혁명적, 비타협적 맑스주의 이론과 실천운동으로 재조명되어야 한다.

더욱, 발본적으로, 러시아혁명에서 ①‘프롤레타리아 독재와 국가자본주의 도입’을 통한 사회주의 건설의 모순 (레닌) ② 혁명의 타락으로서 만들어진 사회는 (국가) 자본주의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이른바 모종의 사회주의, 타락한 노동자 국가라는 규정에 대한 비판을 분명히 한다. 또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관료주의를 어떻게 낳았는가? 노동자평의회는 어떻게 무너졌는가, 그 과정에 볼셰비키 당의 역할은 무엇이었는가? 가 이론적으로 검토, 직시되어야 한다.

따라서 여전히 마르크스주의·사회주의 활동가를 짓누르고 압박하는 이른바 보편적‘혁명 모델’로서 러시아 혁명 상황의 일반화는 분명히 지양되어야 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실천과 사상 이론에 대한 논쟁을 시도하고 모색해야 한다.

 

셋째, 현재 통합된 세계자본주의 체제, 자본주의 쇠퇴의 경제위기 정세와 점증하는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 투쟁, 국제주의에 입각한 세계혁명을 향한 혁명적 실천과 이론적 과제를 한국사회에서 혁명적 꼬뮤니즘 운동으로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는 점이다. 여기서‘노동자 자기해방으로서의 사회주의’라는 혁명적 맑스주의 정치실천과 이론 복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2.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운동과 코뮤니스트 정치조직

 

첫째, 자본주의 쇠퇴의 새로운 국면(대공황)은, 68혁명 이후 부활하기 시작한 세계적인 계급투쟁의 파고를 2008년 이후 혁명의 현실성으로 바꾸어 놓고 있다. 전쟁과 야만이냐, 혁명과 꼬뮤니즘이냐가 여전히 유효한 시대적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둘째, 한국에서의 1950년~1990년대의 반혁명, 반공이데올로기의 길이와 깊이는 냉전체제 해체와 젊은 세대의 등장으로 얕아지고 있다. 대신 민족주의, 애국주의 등 파시즘의 요소는 언제든 창궐이 가능하다. 이렇듯 많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반공과 극단적 스탈린주의에 물들지 않은 새로운 세대들과 프롤레타리아 계급내의 젊은 저항세력과 코뮤니스트의 소생은 혁명운동의 새로운 조건이다.

한편, 1987년 이후 성장한 대공장 정규직 중심의 민주노조운동과 1990년 후반 등장한 사민주의(진보정당)운동은 퇴보의 길을 걷다가, 현재는 총체적 파산 상태를 맞이하고 있다. 다른 한편 이러한 양 운동의 흐름을 거부하는 노동자들의 전반적 불신 현상, 새로운 운동에 대한 요구, 그리고 기성운동에서 소외된 비정규노동자, 실업자, 빈민, 장애인, 소수자들은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운동 출현의 기반이다.

 

셋째, 자본주의 경제위기로 인한 불안정노동의 증대와 한국에서의 1998년 이후 노동자운동의 패배의 연속은, 노동자 조직화의 기나긴 정체현상과 계급운동의 자신감 결여를 초래했다. 하지만 이것은 계급투쟁의 퇴조 현상이 아니라, 낡은 운동의 자연스러운 몰락과정이자 새로운 계급투쟁의 부활이 예열되는 과정이다. 또한 계급투쟁의 최종목표를 분명히 하면서 오랜 기간 계급 안에서 튼튼히 뿌리내린 혁명적 정치(조직)운동과 아래로부터의 투쟁의지가 직접 관철되는 평의회적 계급조직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위의 모든 상황은 조합주의, 사민주의 등 제도권운동과 지역/국내운동에 갇혀있는 노동자 정치운동에 새로운 조건의 창출과 전망을 요구하고 있다. 그것은 코뮤니스트 정치조직이 쇠락하는 낡은 운동과 철저히 단절하고, 아래로부터의 계급운동을 촉진하고 국제주의적 전망을 제시하며, 혁명의 현실성과 실현가능한 공산주의의 정치적 목표를 분명히 하는 조직이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 정세는 이러한 코뮤니스트 노동자 정치조직의 출현과 새로운 프롤레타리아트 운동을 공세적으로 펼쳐나갈 것을 모두에게 요구하고 있다.

 

3. 사회주의 정치 운동 평가와 전망

 

1992년부터 자의적이거나 타의적이거나 공개영역으로 나온 사회주의 서클들은 선거주의와 의회주의로 경도되면서 합법·개량주의로 나아갔다. 특히 1997년은 양날개론으로 표현되는 민주노총의 건설과 그에 기반한 민주노동당의 건설로 혁명적 사회주의의 비공개영역과 적대적으로 분리되었다. 2002년의 대선은 이러한 관계설정을 마무리하는 과정이었다. 그 당시 「노동자의 힘」과「사회당」은 선거전술에 집착하여 혁명정당 건설을 통한 혁명주의의 복원으로부터 이탈했다. 혁명적 사회주의 서클과 함께 혁명당을 건설하려는 노력은 무산되었다.

 

2003년 「사회주의 정치연합」은 중도주의와 선을 긋고 혁명적 사회주의 세력의 연대와 단결을 위한 매개로서의 역할을 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며 그 노력의 일환으로 2005년 7월 「혁명적 맑스주의자 모임」의 제안이 있었다. 그 제안은 다음의 몇 가지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첫째, 자본주의의 표면적 사멸이라는 역사유물론에 입각하여 비맑스주의의 역사적 오류를 비판·극복해야 한다는 점,

둘째, 자본주의의 객관적 구조와 혁명적 주체의 변증법적 결합을 총체적으로 인식하는 변증법적 유물론에 입각하여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실천을 통한 진정한 계급혁명을 이룩해야 할 역사적 과제를 인식했다는 점,

셋째, 과잉생산이라는 자본주의의 축적위기가 자본의 전략으로 모면될 수 없고 전쟁과 파시즘이라는 야만에의 회귀로 나아가, 결국 인류의 파멸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인식했다는 점,

넷째, 1920년대 초반의 세계 혁명의 실패, 스탈린주의의 등장은 반혁명의 역사적 반동으로 나아갔고, 이러한 역사적 퇴행에 도움을 주었던 사회민주주의, 무정부주의, 민족주의는 자본주의와 부르주아지의 유지·강화를 보완하는 반혁명적 이데올로기로 기능했고, 혁명세력의 복원을 가로막았다는 점,

다섯째, 지금까지의 인터내셔널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진정한 새로운 인터내셔널의 건설을 목표로 한 각각의 혁명적 프롤레타리아 당 건설의 과제가 우리에게 놓여 있으며, 프롤레타리아트 전체의 권력기관인 노동자평의회와 변증법적 결합으로 혁명을 실천해야 한다는 역사적 교훈을 얻었다는 점이다.

 

그 모임의 제안은 세계혁명을 향한 세계 혁명적 맑스주의(사회주의) 진영의 국제주의 실현을 위한, 세계 코뮤니스트 연대를 위한 것이며, 그러한 흐름 속에서 한국의 혁명적 맑스주의자(사회주의자)들도 함께 하면서, 우리의 혁명적 운동을 복원해내고 고립·분산되어 각개약진하고 고군분투해왔던 세력들이 새로운 각오로 힘차게 연대 전진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작을 하자는 취지였다. 2년간에 걸친 진지하고 열띤 토론을 기반으로 이 모임은 「사회주의 노동자 연합」을 공개적으로 제안하고 동의한 주체들을 중심으로 2008년 2월 출범하게 된다.

혁명적 사회주의와 혁명당 건설을 공개적으로, 대중적으로 선언하고 계급투쟁을 통해 실현하겠다는 이 흐름은 새로운 시도로 한국의 공산주의 운동사에서 획기적인 것이었다. 물론 국가보안법상의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재판 투쟁을 통한 사상 투쟁과 줄기찬 혁명주의 선전·선동은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사노련」은 서클연합으로 출범했기 때문에, 결합하지 못한 서클과 혁명주의자, 그리고 중도주의 세력 속의 혁명인자들이 다시 한 번 공동실천을 통해 한 걸음 전진하자는 「사노위」 결성제안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으며, 1년 반 동안의 공동실천은 결국 강령, 조직, 전술의 통일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하며 종지부를 찍는다.

「사노위」와 분화된 세력이 「노혁추」와 「노동해방」으로 각개약진하고 「사노련」의 잔존그룹은 「노건투」로 각각 실천하게 된 것은 혁명 세력의 분열이 아니라, 오히려 독자적인 실천을 하면서 계급으로부터 검증받는 과정이기 때문에, 바람직한 측면이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2012년 총선 선거전술 문제로, 「노혁추」에서 좌익공산주의 세력이 분화한 것은,‘종파적 철수’가 아니라‘정치적 차이’의 결과였다. 그 차이는 혁명당 건설을 둘러싼 정치활동의 전망에 있었다. 이후「노혁추」세력은 스탈린주의, 사회민주주의, 조합주의, 중도주의를 포괄한 ‘공동전선 당’을 제안한다.

 

우리는 혁명주의 세력의 노선 투쟁을 통한 경쟁과 연대·단결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동안 혁명세력이 반혁명적 스탈린주의 세력이나 민족주의 세력, 각종 기회주의 세력과 대적 전선을 공고히 하는데 주력해 온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독자적인 사상노선으로 논쟁하고 계급으로부터 검증을 통해 신뢰를 획득하는 단계로 나아가야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러한 노선투쟁의 역사가 이미 유럽과 러시아 등지에서 100년 전부터 있었음을 상기하고 있다. 세계 혁명당 건설을 목표로 노동자 국제주의를 실현하려는 현 단계 한국의 혁명적 맑스주의(사회주의) 세력은 이제 본격적으로 자신들의 맑스주의 사상과 실천의 원칙을 분명하게 내세우고 노선투쟁을 해야 하고, 진정한 의미의 정치 원칙·강령의 통일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공산주의 운동의 역사에서 「공산주의 좌파」의 원칙과 투쟁을 계승· 복원하고, 다른 혁명주의자들과 논쟁하고 토론하며 다시 연대하고 단결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바로 여기가 로두스다.

 

4. 코뮤니스트(공산주의자)의 역할에 대해

 

첫째, 여전히 노동자계급을 지배하는 여러 분열적이고 반혁명적 경향의 민족주의와 개량주의의 영향력으로부터 노동자운동이 근본적으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현실의 계급투쟁 속에서 혁명적 계급의식을 획득해야만 한다. 그런데 이 과정은 공산주의 좌파 운동의 전통을 계승 방어하면서 현실의 계급투쟁에 끝까지 전략적으로 함께하는 정치조직을 필요로 한다. 여기서 현실의 계급투쟁과 혁명적 사회주의를 직접 만나게 하는 정치활동이 코뮤니스트 조직의 일차 역할이다.

 

둘째, 정세측면에서 현 자본주의 쇠퇴기, 경제위기 상황에서 발생한 세계적인 계급투쟁의 물결에 세계혁명운동의 일부로써 조응하고, 와일드 캣 투쟁과 점령운동으로 표현되는 아래로부터의 프롤레타리아트 운동에, 코뮤니스트 조직은‘노동자계급 스스로의 과업과 자기해방’이라는 명확한 공산주의 전망을 가지고 개입해야 한다.

 

셋째, 과거 <사노련-사노위-노혁추>의 당 건설운동 과정을 철저히 평가하고, 그간의 성과이자 한계였던 '철저한 강령 원칙과 실천 검증'에 따른 혁명적 공산주의 세력의 재구성을 지속해나가야 한다. 그것은 혁명(당)조직이 당면한 계급투쟁에 개입함에 있어‘강령적 실천’이라는 장기적 본질과 혁명적 주체의 자기조직화라는 전략적 원칙을, 조급한 정세전술대응으로 놓쳐버리는 당면주의 경향을 극복해야 한다. 또한 조직 유지와 양적 확산만을 위해 강령원칙을 폐기하거나, 당면의 경제투쟁에만 몰입하는 노동자주의와 전투적 조합주의 모두를 극복하고, 코뮤니스트 정치조직을 건설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신들이‘가장 올바르다’거나‘세계에서 유일하다’라는 종파주의는 자신의 입장의 타당성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증거이다. 공산주의자는 결코‘진리의 담지자’가 아니기 때문에 토론과 사상투쟁에 있어 모든 것을 열어놓아야 한다. 이것은 조직 안과 밖으로부터 모든 비판적이고 건설적인 공헌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코뮤니스트 노동자들의 집단적이고 집합적인 정치적 성장을 도모하는 것이다.

 

5. 코뮤니스트 정치조직을 제안하면서

 

첫째, 제 정치세력에 대한 평가와 진보좌파(정당)운동에 대한 평가와 비판을 전제로 한다.

 

둘째, 현 자본주의 체제는 자본주의 쇠퇴기, 자본주의 공황의 시기임을 인식하고, 계급투쟁의 부활, 낡은 운동(사민주의, 조합주의, 스탈린주의)의 쇠퇴와 새로운 프롤레타리아운동(와일드 캣, 점령 운동)이 소생하는 시기임에 주목한다.

 

셋째, 현 정세는 프롤레타리아(대중)투쟁과 혁명적 공산주의 정치가 직접 만나야하는 시기다. 모든 문제가 ‘당 지도력 위기’로 환원되는, 따라서 절대적인‘당 지도력’을 우선시 하는 것은, 우리의 목적이 될 수 없다. 노동자계급의 조직과 계급의식 형성, 프롤레타리아트의 자기조직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다. 코뮤니스트 정치조직은 다가오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정치를 역사적으로 제기해야 한다.

 

넷째, 위와 같은 정세인식과 국제주의적인‘세계혁명’관점에서,‘혁명은 지속된다.’는 국제적 계급투쟁의 흐름에 복무하기 위해 우리는 아래와 같이‘코뮤니스트 정치조직’을 제안한다.

 

코뮤니스트 정치조직의 위상에 대해

 

1) 코뮤니스트 정치조직은 노동자평의회의 국제적 권력을 향한 운동을 실질적으로 수행하는 혁명(당)조직, 코뮤니스트 노동자조직 건설을 목표로 한다.

2) 인터내셔널 건설을 향한 혁명세력의 조직화를 위해 혁명 강령 건설과 혁명적 공산주의진영과의 국제적 연대를 실현하는 조직이어야 한다. 코뮤니스트 정치조직은 모든 상황에서 프롤레타리아 계급 안에서 국제주의 원칙을 고수하고 세계혁명의 전망을 제시하는 조직이어야 한다.

 

3) 자본주의 사회 관계 폐지(임금노동, 상품생산, 화폐)를 위해, 현실 계급투쟁에 적극 참여하여 계급투쟁의 확산과 계급의식의 발전에 공헌해야 한다. 또한 새로운 아래로부터 프롤레타리아 운동을 촉진하고, 프롤레타리아트 자기조직화를 실현하는 조직이어야 한다.

 

4) 여성, 가부장제, 소수자, 장애인, 생태문제에 대하여 철저하게 맑스주의 관점에 입각하여 인간해방을 향하는 정치운동 조직이어야 한다.

 

5) 부르주아 정치에 참여하면서 자본의 좌익에 위치하는 정치적 반정립 운동이 아닌, 부르주아 정치를 전면적으로 거부하고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와 이들의 조력자들에 대한 근본적인 사상투쟁을 통해 노동자운동이 부르주아 영향으로부터의 독립, 자기조직화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조직이어야 한다.

 

6.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운동을 제안하며

 

지난 수십 년간 사민주의(의회주의), 민족주의, 조합주의 등 노동자계급 내부의 장애물들은 노동자계급 고유의 무기인 단결력과 전투성, 그리고 계급투쟁에서의 창발성을 무기력화시켰다. 자본의 공격은 강화되는 반면 노동자계급의 저항과 투쟁은 부르주아 국가기구와 자본가, 그리고 계급 내부의 적들에 의해 여전히 여러 장벽에 막혀있다. 따라서 자본주의 착취에 대항하여 혁명적으로 투쟁하는 노동자계급의 모범이 없이 그 어떤 출구도 만들어낼 수 없다. 최근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 직접행동은 자본주의 위기 상황에서 생활수준의 급격한 하락과 생존의 위협을 받는 수많은 프롤레타리아들과 노동자계급의 오래된 세대들을 자신의 주변으로 끌어 모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낡은 조합주의, 의회주의 세력 운동의 쇠락 속에서도 새롭게 소생하는 프롤레타리아 운동을 전망하면서,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새로운 분출을 촉진하는 아래로부터 실천을 제안한다.

 

1) 제도권 노조운동을 넘어서는 자립적 노동자운동이 현실화되어야 한다. 이것은 기존의 노조/현장운동을 넘어서는 새로운 노동자운동일 수밖에 없다. 자본이 만들어내고 관료화된 노조운동을 넘어서야 한다. 정규직. 비정규직, 조합원. 비조합원을 구분치 않고, 투쟁하는 노동자 모두를 평의회적으로 포괄하는‘수평적 노동자 직접행동’, 노동자투쟁과 실업자, 빈민, 청년, 소수자들의 직접행동이 결합하는‘아래로부터의 프롤레타리아 행동(연대)’을 제안한다.

 

2)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조직형식은 내용과 형식이 통일되는 노동자민주주의와 직접행동에 기반해야 한다. 이것은 투쟁하는 주체들에 의해 직접 선출/소환 가능한 대중총회, 파업/투쟁위원회, 노동자평의회의 형식과 같아야 하며, 노동자민주주의의 완전한 실현과 노동자국제주의에 기반한 직접행동만이 계급투쟁의 확산과 자기조직화를 보장해줄 수 있다.

 

3) 현재의 자본주의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서 분출하는 새로운 노동자운동은 운동의 주체와 최종목표가 불분명한 반자본주의 운동이 아니라, 노동자계급 자기해방의 최종목표를 분명히 밝혀주는 공산주의를 전망하는 운동이어야 한다. 이 과정은 지난한 계급투쟁의 과정 속에서 주체들이 혁명적 계급의식의 획득을 획득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점진적으로 단련되며 이 과정은 매우 길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노동자투쟁과 계급의식의 꽁무니를 쫒아 다니는 사민주의, 조합주의, 중도주의 정치세력들이 아닌, 계급투쟁의 최종목표를 전망하는 코뮤니스트 정치와 아래로부터의 프롤레타리아 직접행동이 만나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계급의식의 발전과 노동자계급이 자신들의 정치적 전망을 설정하고 스스로를 혁명적으로 무장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코뮤니스트 정치와 계급투쟁이 직접 만나는 일이다. 아래로부터의 프롤레타리아 직접행동의 분출과 코뮤니스트 노동자들의 집합적 존재여부가 중요하다. 따라서 이 모든 것을 근본적으로 촉진하고 실천 속에서 준비하고 장기적인 전망을 세워, 새로운 주체들에게 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할 새로운 운동이 필요하다.

 

코뮤니스트 정치조직과 계급조직(노동자평의회)이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코뮤니스트 직접 정치운동을 실천하자!

 

2012년 10월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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