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이후 위기와 노동계급의 대안
들어가며
2024~2025년 세계는 선거 열기로 뜨거웠다. 프랑스, 이란, 영국, 미국, 독일에 이어 한국에서도 조기 대선을 치렀다. 자본주의 주요 국가들에서는 국내 문제뿐 아니라 두 개의 전쟁(러시아-우크라이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과 난민 위기를 배경으로, ‘국가 안보’ 문제가 선거 쟁점으로 떠올랐다. 세계 60여 개국과 유럽연합 전역에서 치러진 선거(전 세계 인구의 절반)에서 대부분 집권당이 패배했다. 이것은 계급의식 발전의 결과가 아니라, 선거에서 유권자 ‘선택’이 항상 자본주의 국가에서 부르주아지의 이익을 대변하는데 어떤 자본가 정당(대통령)이 적합한가를 결정하는 것임을 의미한다.
최근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전쟁, 부채, 오염이 인류에 가하는 위협에 대해 말했듯이, 세계가 ‘혼돈의 시대’(1)로 접어들고 있지만, 부르주아 선거는 온갖 장밋빛 공약과는 달리 전혀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지난 몇 년간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부르주아 정치와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는 전 세계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이다. 프랑스에서는 “거의 2/3가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2), 영국에서는 “45%가 어떤 정당의 정부도 ‘거의’ 믿지 않는다”라고 답했다.(3) 미국에서는 (주요) 기관에 대한 신뢰도가 "이보다 더 낮았던 적은 없다"(4)고 하고, 한국에서는 국민 절반 이상이 수일 이상 지속하는 ‘장기 울분’ 상태에 놓였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는데, ‘정부·정치권의 비리 은폐’, ‘정치·정당의 부도덕’, ‘안전관리 부실로 인한 참사’에 각각 85% 이상이 울분을 느꼈다고 밝혔다.(5) 특히 젊은 세대의 ‘정부 불신’이 높은데, 15~29세 청년의 정부 불신율은 그리스(86.9%), 이탈리아(68.4%), 미국(66.1%), 영국(65.3%), 한국(64.8%) 순으로 나타났다.(6)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자본주의는 50년째 구조적인 이윤율 위기에 빠져 있고, 세계 부르주아지는 제국주의 전쟁과 긴장 고조, 무역 전쟁, 기후 위기, 코로나19 팬데믹 등으로 심화한 위기를 타개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인플레이션으로 생계비 위기가 더해지면서, 선거를 통해 삶을 개선하려는 모든 환상이 무너지고 있다. 그런데도 노동자들은 여전히 투표할 것이고, 안정을 기대하는 이들은 자본의 우파든 좌파든 조금 ‘더 나은(덜 나쁜)’ 정당이 상황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으로 현상 유지 투표를 할 것이고, 그 반대는 항의 투표를 할 것이다. 그러나 전 세계 투표율은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 1960년대 이후 감소 추세에 있으며(7), 많은 노동자가 선거 시장에서 더는 매력적인 선택지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는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허울뿐이라는 것을 실제로 인정한 결과이기도 하다.

<표 1> 1945~2017년 (세계) 총선 투표율 추이, *출처 : 「THE CONVERSATION」

<표 2> (한국) 역대 국회의원 선거 투표율 변화 추이, *출처: 중앙선관위

<표 3> (한국) 역대 대선 투표율, *출처: 중앙선관위
2024~2025년 선거 결과
지난 1년여 선거에서,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한국, 대만,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세계적으로 집권당(현 정부)이 패배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영국에서는 스타머가 이끄는 신노동당(New Labour)이 보수당을 누르고 정부를 장악했고, 미국에서는 트럼프의 (트럼프주의) 공화당이 민주당을 누르고 정부를 장악했고. 독일에서는 메르츠가 이끄는 중도보수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 연합이 사회민주당을 누르고 승리했고, 한국의 조기 대선에서는 민주당의 이재명이 국힘당의 김문수를 누르고 정권을 장악했다.
이 글에서는 영국, 미국, 독일의 선거를 살펴볼 것이다. 주요 자본주의-제국주의 국가의 선거 결과가 노동계급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는 것은 한국의 대선 이후 계급투쟁을 전망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지난 선거에서 영국과 미국 노동계급은 모두 개선의 여지가 전혀 없는 중도파와 극우 포퓰리스트를 접했고, 독일에서는 기대할 것 없는 중도보수 세력의 집권과 극우세력의 부상을 보게 된다.
영국 : 스타머는 1924년 이후 최저 득표율(33.8%)로 역대 최대 과반 의석을 확보했다. 노동당이나 자유민주당 모두 득표율에서 큰 변화를 불러오지 못했는데, 그들의 득표율은 대부분 보수당과 개혁당(8)의 표 대결 때문이다. 트러스 낙마(9) 이후 노동당은 보수당을 대신해 '강력하고 안정적인 집권당'으로서 긴축 의제를 지속하는 데 성공했다. 동시에 부르주아지의 반동적인 우파가 강화되어 개혁당 지지율이 크게 상승하고 2024년 7~8월에 인종차별 폭동(10)이 발생했다. 영국에서 수십 년간 지속한 생활 수준 저하를 '남 탓(이민자)'으로 돌렸던 것이 이제 그들의 썩은 열매가 되고 있다.
지난 선거 결과는 계급투쟁과 관련이 있다. 2022~2023년에 계급투쟁이 급증한 것은 보수당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는데, 보수당은 2023년 6월 공공 부문 노동자들의 파업을 금지하는 최저 서비스 수준 법안을 통과시키며 노동자들과 정면으로 맞서는 전략을 구사했다. (당시 노조들은 파업이 확산하지 못하도록 영국 의회의 명령에 따라 파업을 비효율적이고 고립된 상태로 유지했기 때문에 수개월을 투쟁에도 승리를 거둔 곳은 거의 없었다) 보수당과는 달리 스타머는 공공 부문 일부의 임금 인상을 양보하고 노조법을 개정하는 등 태도를 바꾸어 계급투쟁 위협을 줄이고 노조 관료의 지지를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했지만, 이미 영국 자본주의의 제로아워 계약(11)에 대한 의존에 굴복해야 했다.
스타머 정부는 다른 분야에서도 약간의 수정만 했을 뿐 보수당 정부와 같은 전략을 이어가고 있다. 노동당 옹호론자들은 보수당과 개혁당을 ‘반(反)이민주의자’라며 비난하고 있지만, 정작 노동당의 이민부 장관 안젤라 이글(Angela Eagle)은 세 차례에 걸쳐 비행기를 이용한 대규모 추방을 자행했고, 이민자를 고용한 것으로 의심되는 300여 곳의 사업장을 급습했다고 자랑했다. 이는 모두 기존 이민자 추방과 새로운 난민선 입항을 위한 것이다. 이러한 만행이 자행되어도 정치인과 언론은 사람을 숫자로만 평가하는데, 스타머와 수낙(전 총리)을 수천 명의 절박한 난민 신청자들이 영국 해협을 건너는 데 성공한 횟수로 평가하는 데 열을 올린다. 두 자녀 수당 상한선으로 인해 더욱 깊은 빈곤에 빠진 수백만 명의 어린이들은 아껴서는 안 되는 20~40억 파운드의 국가 예산을 위해 희생되고 있는데, 이는 영국 자본이 점점 줄어드는 이윤에 대한 절박함이 일으킨 비극이다. 리즈 켄달(Liz Kendall) 노동연금부장관은 일자리가 없는 젊은이들에 대한 수당을 삭감하겠다고 약속하며 또 다른 ‘실업에 대한 단속’(12)에 착수했다. 이는 존재하지 않는 일자리를 만들어내거나 장애가 있거나 아픈 노동자가 일할 수 있는 능력을 더 갖추게 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바로 이 새로운 스타머 정권에서 노동자들이 맞서야 할 것들이다. 대부분 이전 정부와 같은 상황이 반복될 것이며, '질서 회복'을 위한 부분적인 개혁만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노동계급에 대한 약간의 말치레가 포함되는데(그래도 ‘보수당보다는 낫다’ 등), 이는 모두 계급투쟁을 무력화시키기 위해서이다.
미국 : 트럼프는 지난 선거에서 모든 경합 주(swing state)에서 승리했고, 처음으로 과반수 득표도 달성했다. 이는 공화당의 투표율이 높고 민주당의 투표율이 낮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민주당 전통 강세 지역인 뉴욕과 뉴저지조차 이례적으로 공화당이 근소한 차이(각각 12%와 6%)로 승리했고, 여론조사에서도 트럼프가 우세했다. 어쩌면 이번 패배가 민주당이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지도 모른다.
많은 노동계급 유권자에게 이번 선거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정상 복귀'에 대한 항의 표시였다. 여론조사 결과 ‘경제’ 문제가 이번 선거의 최대 이슈로 꾸준히 꼽혔고, 스티븐 세믈러(Stephen Semler)(13)가 시행한 여론조사에서도 거의 70%가 경제가 더 나빠졌다고 생각했다. 바이든은 원래 2021년 미국 구조 계획에서 코로나19 이후 일시적인 사회복지 조치에 이어 영구적인 조치를 통해 팬데믹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회복'을 약속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 계획이 소수 상원의원에 의해 막힌 후, 거의 모든 계획이 폐기되고 재정 적자 감축으로 대체되었다. 그 결과 이 조치는 바이든의 임기 중반에 노동계급이 인플레이션의 벽에 부딪히면서 바로 끝났다. 트럼프는 이러한 노동계급의 불안에 뛰어들었다. 그는 포퓰리즘적 반동적 수사로 소부르주아 부대를 결집하는 것뿐만 아니라 노동자, 특히 18~28세와 라틴계 남성을 설득하여 자신이 문제 해결사라는 점을 다시 한번 부각하면서 선거에서 승리했다. 그는 대통령이 물가를 통제할 권한이 있다고 거짓말을 했는데, 이는 노동자들에게 실제 임금 인상을 약속하지 않아도 되는 마법 같은 해결책이다. 트럼프는 중국과의 갈등에 대비해 관세를 인상하고 우크라이나에서 철수하겠다고 약속하고, 자본에 불리한 기후 위기를 무시하고, 분열과 정복의 반(反)이민 캠페인을 재개하고, 산업 회복, 민족주의 부활, 차별적인 도덕적 공황과 음모론으로 노동자들의 불만을 잠재우겠다고 했다.
실제로 트럼프는 지난 4월부터 관세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러한 관세전쟁에는 경제뿐 아니라 제국주의 군사전략이 포함되어 있다. 그는 관세로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일자리를 미국으로 되돌리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관세정책은 위기에 빠진 자본을 위한 것일 뿐 노동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경제 위기 때마다 자본은 노동자에게 위기를 전가해왔다. 관세 비용도 결국 노동자에게 전가되어 생계비 증가로 삶을 위태롭게 할 것이다. 그리고 6월 8일 트럼프는 로스앤젤레스(LA)에서 불법 이민자 체포·추방에 반발해 일어난 대규모 시위(14)를 진압하기 위해 주방위군을 투입했다. 미국 대통령이 시위 진압을 위해 주방위군을 연방정부 명령으로 동원한 사례는 1992년 흑인 인종차별 문제로 촉발된 LA 폭동 이후 33년 만에 처음이다. 이는 반(反)이민 공약 실현으로 지지층을 결집하고 노동계급을 분열하기 위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바로 트럼프 2기에서 노동자들이 맞서야 할 것들이다.
이렇게 영국과 미국 노동자에게는 신자유주의 현상 유지와 혐오스러운 극우 사기극만이 선택지로 주어졌다. 노동자들은 이에 냉소적으로 반응했다. 영국에서는 많은 사람이 아예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 10명 중 4명이 투표에 참여했는데, 이는 2001년 이후 또 다른 최저 기록이다. (이번 조기 총선 투표율은 59.9%로 2019년 총선 대비 7.4% 낮았으며, 1885년 이래 두 번째로 낮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미국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새로운 것이 아니다. 투표율은 오바마와 트럼프 같은 유능한 사기꾼들 덕분에 높아졌을 뿐이다. 그들이 대선에 나섰던 해와 2001년 이후 유례없는 민족주의 열풍을 제외하면, 1972년 이후 투표율은 50%대를 유지해 왔다.
독일 : '트럼프 충격(당선)' 당일 숄츠 '신호등 정부'(15)의 붕괴는 독일 자본주의 위기 경향을 상징적으로 잘 보여준다. 이른바 '신호등 정부'는 역사상 가장 인기 없는 정부 중 하나가 되었다. 많은 사람이 현재의 비참한 상황에 대한 책임이 그들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기민당(CDU) 정부가 상황을 개선하리라는 기대도 별로 없다. 독일의 위기는 이미 심각한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영향으로 독일 자본주의는 전략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미국과 관계있는 군사 및 에너지 정책 분야에서 새로운 종속성이 생겼으며, 동시에 중국 시장과의 차단은 독일 경제에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독일 부르주아지에 깊은 균열을 일으켰다. 그리고 트럼프의 관세전쟁으로 분쟁이 격화되거나 미국과 전면적인 무역전쟁이 벌어진다면 독일 경제에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독일 자본이 이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대대적인 재무장 노력과 잔혹한 사회복지비용 삭감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독일에서는 이미 1,400만 명이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2006년에 비해 약 300만 명이 증가했다). 주거비, 연료비, 식료품비는 치솟았고, 사회복지 지원금은 거의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2019년에는 328억 2,200만 유로였지만, 2022년에는 176억 3,000만 유로로 삭감되었다. 이는 무기 회사들이 벌어들인 막대한 이윤으로 상쇄된다. 보기를 들어, 2024년에 라인메탈(독일 군사산업 복합기업)은 48% 증가한 520억 달러 상당의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지배계급이 '이주 문제'를 제기하고 인종주의적 선동에 가담(메르츠는 선거운동 동안 공개적으로 인종주의 카드를 꺼냈다)하며 난민과 이주민을 이 모든 사회적 불행의 희생양으로 삼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는 이번 총선에서 극우가 부상한 배경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그리고 모든 위기의 근본 원인인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 싸우지 않은 한, 인종주의 우파는 계속 승승장구할 것이다.
투표율이 저조한 세계적 흐름과 달리, 2025년 2월 독일 총선의 투표율은 1990년 독일 통일 뒤 최고치인 83.5%를 기록했다. 이는 신호등 정부에 불만을 품은 극우 지지자들이 늘자 이를 저지하려는("극우를 저지하고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좌파 지지자들이 결집하여 대결을 벌였기 때문이다. 선거 결과 메르츠 대표가 이끄는 중도보수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 연합이 28.5%를 득표해 1당에 올랐다. 숄츠 전(前) 총리가 이끈 중도좌파 사회민주당은 16.4%를 득표해 3위에 그쳤다. 반면 극우 성향인 AfD(16)는 20.8%로 2위를 차지해 사회민주당마저 눌렀다. AfD의 득표율은 이전 총선인 2021년 10.3%의 2배 이상으로 올랐다.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 연합은 과반을 달성하지 못해 결국 사회민주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했는데, 메르츠는 5월 6일에야 간신히 독일 총리로 선출되었다. 그가 2차 투표 끝에 총리가 된 것은 연립정부가 출발부터 힘든 상황을 마주했음을 뜻한다. 따라서 새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유권자 의지’로 국가 안보와 위기 극복을 내세우며 재무장을 추진하고, 사회복지 비용 삭감을 추진하고, 이민법 강화를 통해 노동계급을 분열시키고, 전쟁으로 몰아넣는 일이다.
메르츠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독일군의 영구 해외 파병을 시작했고(17), (유럽에서의 전쟁 위기감이 커지면서) 러시아 침공에 대비해 100만 명을 수용하는 대피소를 준비하기로 했다. 이에 대한 비용은 최소 100억 유로(약 15조 5000억 원)이고, 향후 10년간 300억 유로(약 46조 5200억 원)가 추가로 든다고 하는데, 이 또한 노동계급이 떠안아야 할 것이다.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대한 맑스주의자의 태도
투표율 감소에서 나타나듯이 노동자의 관심사에서 멀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이 체제를 유지해 주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우리는 현재의 정치 체제를 부르주아 민주주의라고 부르는데, 그 뿌리는 '부르주아지 독재'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수 계급인 부르주아지는 생산수단을 소유하기 때문에 사실상 모든 권력(경제, 정치, 군사적)을 갖는다. 반면에 다수 계급인 프롤레타리아트는 살기 위해 부르주아지가 부과한 조건에서만 자기 노동력을 팔 수 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현대의 노예, 즉 임금 노예이다. 따라서 두 계급의 이해관계가 양립할 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가 중립적이고 계급을 초월한 전지전능한 기관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이전의 모든 국가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국가는 계급 통치의 기구이며, 그 기능은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것, 즉 노동계급을 임금 노동의 사슬로 묶어 부르주아지 노예로 만드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선거는 누가 부르주아지를 대신하여 국가를 운영할지 결정한다. 선거 제도는 부르주아 독재 체제를 주권자(국민)의 명령으로 포장하고, 동시에 그것을 ‘민주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부르주아지는 독재를 위한 이상적인 정치적 외피로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계속 의지해왔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보통 선거권을 통해 '다수' 또는 '국민'이 통제권을 가지고 있다는 강력한 착각을 만든다. 즉, 자본주의 국가가 실제로 중립적인 기관이라는 착각, 유권자가 단순히 주인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대해 진정한 발언권을 가지고 있다는 착각을 만든다. 하지만, 유권자들은 후보자가 누구든 (우파든 좌파든) 기껏해야 부르주아지 이해관계를 방어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해 줄 사람 중에서 선출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노동계급이 누구에게 투표하든 자본주의적 요구가 승리한다. 보기를 들어 경제 위기 때마다 자본주의 체제는 긴축과 해고 등을 요구했고, 선거에서 누가 이기든, 모든 정부는 자본주의 요구에 따랐다.
그렇다면 부르주아 민주주의(선거, 의회)에 대한 맑스주의자의 태도는 무엇이었나?
이에 대한 맑스주의자의 태도는 어떤 영원한 반(反)정치적 '순수주의' 원칙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국가의 일부인 의회의 역사적 발전에 근거한다. 오늘날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이해하려면 그것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그리고 각 단계에서 노동자 운동에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살펴봐야 한다.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의회는 부르주아지가 자신들의 전임자인 봉건 귀족에 대항하는 핵심 무기가 되었다. 이 시기에 노동자들은 정치 과정에서 명백히 배제되어 투표하거나 후보를 낼 수 없었다. 따라서 초창기 노동계급 운동에서 제기된 요구 중 일부는 정치적 대표성(영국의 차티즘 등)을 포함했다. 지배계급은 양보할 수밖에 없었고 노동자들에게 제한적인 정치적 권리를 부여해야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맑스와 같은 혁명가들은 노동자들에게 새롭게 제공되는 공간을 활용하도록 장려했다. 맑스는 영국, 미국, 네덜란드처럼 거대한 관료 체제와 군사 기구가 없는 일부 국가에서는 의회를 통한 평화적 전환이 가능할 것으로 보았지만, (1871년 파리 코뮌의 경험이 보여주듯) 다른 대부분 국가에서 노동계급의 정치권력 장악은 혁명을 수반해야 한다는 점을 인식했다. “노동계급은 단순히 기성 국가기구를 접수하여 자신의 목적을 위해 그것을 행사할 수는 없다.”(맑스, 「프랑스 내전」, 1871) 이제 노동계급은 자본주의 국가를 파괴한 후 새로운 기관을 건설해야 한다.
자본주의 발전과 더불어 자본주의 국가들이 규모와 정교함을 갖추면서 실제 정치권력은 점점 더 의회에서 벗어나 관료주의 복합체와 상비군으로 이동했다. 이러한 국가 복합체 내에서 부르주아 의회는 자본주의 통치를 최적화하기 위한 토론장과 위원회로 위축되었다. 계급투쟁은 필연적으로 의회 밖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제2 인터내셔널의 혁명 세력에게 의회와 선거 참여는 전술적이고 선동적인 것이었다. 선거 출마는 혁명가들이 선거 유세장에서 노동자들에게 연설하거나, 의회 연단에서 연설과 시위를 하거나, 의회 면책을 이용해 혁명가들을 기소로부터 보호하는 등 선전을 확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17년 혁명 물결이 발발한 후 제3 인터내셔널 내에서 이를 정확히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즉시 제기되었다. 러시아에서 일어난 사건의 영향을 받은 ‘노동자평의회’, 일명 소비에트 운동이 유럽 전역으로 확산하고 있었다.
투쟁의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자본주의 국가에 대한 대안을 찾았다. 부하린이 작성하고 제3 인터내셔널 제2차 대회에서 채택한 테제는 ‘국가 체제로서 의회주의는 부르주아지 통치의 ‘민주적’ 형태가 되었기 때문에 부르주아지 국가기구는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가 파괴하고 노동자 대표로 구성된 지역 소비에트로 대체해야 한다’라고 인식했다. 동시에 그들은 혁명적 상황에서도 의회 연단을 여전히 유용한 선전 도구로 여겼다. 이를 묘사하기 위해 혁명적 의원들이 '적진에 들어가 지뢰를 매설'하고 '의회 담장 뒤에서 대중이 의회를 폭파하도록 돕는' 군사적 이미지를 사용했다.
“결과적으로 코뮤니즘은 미래 사회의 국가기구 또는 프롤레타리아 계급독재의 기구로서 의회를 부정한다. 장기적 관점에서 프롤레타리아의 대의를 위해 의회를 사용할 가능성을 부정한다. 의회 파괴를 자신의 임무로 규정한다. 부르주아 국가기구는 오직 분쇄 대상으로만 여겨질 것이다. 이것이 [그 기구들의] 이용과 관련하여 제기될 오직 하나의 그리고 유일한 길이다. (...)
코뮤니스트당은 이 의회 체제 속에서 자기 역할을 하기 위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 국가기구와 의회 분쇄를 의회 안에서 돕기 위해 들어가는 것이다.”(18)
반면, 보르디가의 ‘기권주의 분파’로 대표되는 코뮤니스트좌파의 입장은 의회가 전술적 문제라는 부하린의 주장에 동의하면서도, 혁명이 임박하고 노동계급 당면 임무가 부르주아 지배의 정치 기구를 파괴하고 자신의 것으로 대체하는 것일 때, 혁명가들이 의회에서 의석을 차지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주장했다. 그것은 노동자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더 중요한 일에 쏟아부을 에너지를 빼앗아 가며, 결정적인 순간에 이들 기구에 정당성을 부여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맑스주의 원칙으로 민주주의 질서가 오랫동안 발전해 온 나라들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위한 선동은 선거와 부르주아 기구에서 보이콧을 확대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선거 활동에 막대한 중요성을 부여하는 실천은 이중적인 위험이 있다. 한편으로는 그것이 가장 중요한 활동이라는 인상을 주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당의 모든 힘을 빨아들여 당의 다른 모든 부분을 마비시킨다. (...)
선거 활동을 수행하는 당 조직은 혁명에 필요한 합법적 혹은 비합법적 활동에 맞는 조직의 성격과 뚜렷이 다른 매우 특수한 기술적 성격을 발전시킨다. 당은 유권자들을 준비하고 동원하는 것에만 관심을 쏟는 여러 선거위원회로 쪼개진다. (...)
제1 인터내셔널은 선동, 비판, 선전하기 위해 의회 제도를 활용했다. 그 뒤 제2 인터내셔널에서 의회주의의 해악적 영향이 나타났다. 그것은 개량주의와 계급 협조를 가져왔다. (...)
언론, 결사의 자유 등과 같은 방식으로 선거를 활용할 수는 없다. 언론, 결사의 자유 등을 활용하는 것은 행동 방식 문제이다. 선거 캠페인과 의회 연단을 활용하는 것은 부르주아 기관 문제이다. 부르주아 기관은 노동자 소비에트 같은 프롤레타리아 기관으로 대체해야 한다. 우리는 혁명 이후에 언론, 선전 등의 활용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무엇보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기구를 분쇄하고 그 자리에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세우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 (...)
착취계급에서 피착취 계급으로 권력 이전은 그 뒤로 대의제 기구 변화를 불러온다. 부르주아 의회주의는 소비에트 체제로 대체해야 한다. 혁명적인 직접행동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계급투쟁을 은폐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라는 낡은 가면을 찢어버려야 한다. 이것이 의회주의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며, 이 관점은 혁명적 맑스주의의 방법에 완전히 부합한다. (...)
코뮤니스트혁명의 대의는 바로 착취계급의 자본주의 체제에 대항하는 직접행동을 요구한다."(19)
“믿을 수 없는 자들이 의회에 들어가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과 혁명의 노선에 따라 투쟁할 거로 생각하는 건 순진한 생각이다. (...) 의회에 들어가면 연설을 통해 선동할 수 있다고 흔히들 말한다. 하지만 그 결과는 프롤레타리아트가 민주적 제도들을 믿도록 길들이는 것이다. 의회에 들어간 자들에게 선동을 요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전 세계 코뮤니스트당은 이제 의회 선거로 시간을 낭비하기보다는 다른 할 일을 찾아야 한다. (...)
리프크네히트 동지는 분명 위대한 일을 했다. 하지만 그 역시 의회 밖 대중들 속에서 활동하는 한에서만 그랬다. 만약 리프크네히트 동지가 의회 안에서 발언만 했었다면, 맥도널드나 다른 많은 배신자처럼 아직 살아있었을 것이다. (...)
모든 나라 인민이 그런 것처럼,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 앞에도 이제 양자택일의 선택이 있다. 두 가지 전술이 있다. 하나는 갖가지 민주적 단계를 통해 인민들 속에 순종의식을 키우는 것이다. 다른 것은 대중들 속에 혁명적 정신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
이제 우리 힘은 대중들 속에서 혁명적 투쟁을 날카롭게 만드는 데 사용해야 한다.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은 지금 순종의 길이냐 투쟁의 길이냐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20)
코뮤니스트좌파 뿐만 아니라 아나키스트, 생디칼리스트 등도 원칙적으로 부르주아 의회 참여를 완전히 거부했다. 이들 모든 분파는 노동자들이 자기 정치를 포기하고 자신의 적(敵)인 부르주아 정당의 약속, 즉 자본가 식탁에서 더 많은 빵 부스러기를 뜯어내겠다는 약속에 넘어가는 것은 아무런 이익이 없다는 데 동의했다. 노동계급은 투쟁을 통해 그 부스러기를 직접 가져갈 수 있고 훨씬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코뮤니스트좌파가 선거 참여가 유용하다고 판단하여 마지막으로 선거에 참여한 것은 1948년이었다. 이탈리아의 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PcInt)은 “투표하지 말자”라는 구호 아래, 선거 유세를 하기 위해 참여했을 뿐이다. 당시 유럽에서는 냉전의 경계가 형성되고 노동자들은 각각 (스탈린주의) 이탈리아 코뮤니스트당과 기독교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두 제국주의 블록, 소련과 미국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기 때문에, 선거 자체는 제국주의 갈등의 한 장면으로 축소되었다. 그때 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에 선거는 도전이었다. 73개 도시와 읍내에 있는 지부와 수천 명의 당원으로 당은 빠르게 성장했지만, 아직은 다양한 제국주의 세력의 지원을 받는 주요 정당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일부는 1919년 보르디가의 ‘기권주의’ 분파의 입장으로 돌아가 선거를 강력하게 비난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대다수는 프롤레타리아혁명을 의회 방식을 통해 이룰 수 없다는 원칙에 모두가 동의하면서도 선거 문제는 전술적 문제라고 주장했다. 1948년 국회의원 선거에 참여한 결정적 요인은 후보자를 내세운 정당이 모든 도심 광장에서 열리는 집회나 공청회에서 발언권을 가졌다는 사실이었다. 공적인 공간을 사용함으로써 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은 더 많은 노동자에게 다가갈 수 있었고 동시에 체제 전체를 공격할 수 있었다. 아래 전단에서 볼 수 있듯이 당의 목표는 여전히 반(反)의회적이었다.
“우리 국제주의자들은 표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선거의 신비를 여전히 믿고 있는 대중들에게 ‘프롤레타리아트가 부활할 것이며, 전쟁 세력을 물리칠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보다 효과적이고 현실감 있게 말할 수 있어서 선거와의 전쟁에 뛰어들었다. 오직 부패한 투표용지와 의회를 모두 쓸어버릴 수 있는 의식과 힘을 가질 때만 가능하다고 말하기 위해서.”(21)
실제로 계급의식을 발전시키는 가장 나은 방법이 무엇인지는 전술적 문제로 남아 있으므로 선거 참여를 배제하지 않았지만, 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은 의회 선거에 참여해서 얻을 수 있는 전술적 장점을 결코 찾지 못했다. 그리고 선거에 대한 자본주의 미디어의 역할이 증가하면서 의회 선거에 참여하는 것이 전술적으로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전략적으로 체제를 정당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그 이후의 모든 선거에 참여하지 않게 된다.
오늘날에는 자본주의 미디어와 자본(선거비용)이 선거 자체를 더욱 지배하게 되어, 노동자들을 ‘자본의 경쟁 영역’으로 강력하게 끌어들인다. 이러한 선거에서 노동계급이 자신의 후보를 출마시킨다 해도 얻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고(거대한 물량 공세 앞에 작은 선전의 효과도 초라해진다), 오히려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대한 노동자들의 환상만 강화할 뿐이다.

<표 4> 20·21대 대선 국민의힘·민주노동당 유세 규모 차이, *출처: 중앙일보(22)
노동계급의 대안
부르주아 선거를 넘어, 어떻게 할 것인가?
선거를 거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계급투쟁으로 대응해야 한다. 선거에서 자본가계급은 우리에게 온갖 장밋빛 공약과 미래를 제시하지만, 실제로는 임금 노예와 전쟁만을 제안한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노동계급이 자본가 편에 서서 싸우도록 속이기 위한 퍼포먼스에 지나지 않는다. 대안은 노동자민주주의이다. 노동계급은 위대한 투쟁 역사에서 파업위원회(23), 대중총회(24), 노동자평의회와 같은 독립적 조직을 만들었는데, 이곳에서 노동자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었다.
노동계급은 특히, 노동자평의회를 통해 수백만, 수천만 명이 자기 삶의 수준과 일상을 스스로 결정하고 사회를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1871년 파리 코뮌은 노동계급 대표자를 직접 선출할 가능성을 열었고. 1905년에 이어 1917년 러시아혁명에서 만들어진 소비에트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실제로 노동자민주주의를 실현했다. 전 세계 노동계급은 여기에서 영감을 받아 각 나라와 지역에서 노동자평의회를 만들었다. 심지어 기차 승객들도 달리는 열차에서 모든 승객이 원하는 것을 요구하도록 위원회를 구성할 것이다. 이러한 조직들은 노동자들이 투쟁의 물결 속에서 자주적으로 투쟁을 조절-통합하고 자기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 스스로 만들었다. 일단 선출되고 나면 유권자의 통제를 받지 않는 대통령, 국회의원과 달리, 노동자의 대표는 노동자평의회에서 위임받은 내용에 반드시 따라야 하며, 유권자가 언제든 교체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각 대표와 함께 ‘대체 대표’를 선출했고, 탄압 시기에는 대표가 체포되었을 때 역할을 대신할 대체 수단이 되기도 했다.
미래에 노동자 투쟁이 대대적으로 확산하고 계급의식이 발전하여 세계적인 계급투쟁이 벌어진다면, 세계 노동계급은 자본주의 체제에 맞설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계급투쟁이 혁명적 절정에 이르고, 마침내 지배계급과의 전투에서 승리한다면, 노동계급은 자기 조직인 노동자평의회를 통하여 생산과 사회를 민주적으로 통제할 것이다. 이때 비로소 노동계급은 처음으로 자기 권력을 갖게 되며, 사회는 계급 철폐와 인간해방을 위한 자유로운 인류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고,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노동자민주주의로 대체될 것이다.
안타깝게도 노동자민주주의는 오래가지 않았다. 노동자민주주의가 효과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최초로 성공한 프롤레타리아혁명이 한 나라(러시아)에 고립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 모든 경험은 오래전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의 노동계급은 혁명에 가까워졌을지 모르지만, 오늘날 노동계급은 자신을 계급으로 거의 인식하지 못한다. 게다가 수십 년 동안 계급이 아닌 민주 ‘시민’이나 애국하는 ‘국민’으로서 투표하도록 길들어졌다.

그렇다면 노동계급은 스타머, 트럼프, 메르츠 정권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이들과 비슷한 길을 걷게 될 한국의 이재명 정부에 맞서 어떻게 싸울 것인가?
오늘날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의회는 노동계급을 통치하는 무기가 되었다. 지난 선거에서 영국 유권자의 17.5%만이 스타머를 지지했음에도, 이 정권은 다수 ‘유권자의 이름’으로 노동계급의 임금과 생활 수준을 공격하고 있다. 새 정부는 영국 자본주의가 220억 파운드의 막대한 재정 적자를 겪고 있으므로 세금 인상에 대비하고 희생을 감수하며 모두 힘을 합쳐야 한다고 했다. 이미 스타머 정부는 노동계급의 이익에 반(反)하는 여러 정책을 발표했다. 그들은 50억 파운드의 수당 삭감을 제안했는데, 이는 사상 최대 규모의 삭감이다. 스타머는 복지 삭감을 정당화하면서 복지 제도를 “지속 불가능하다”라고 설명했는데, 이는 앞으로 더 나쁜 일이 있을 것임을 시사한다. 자본가들이 계속해서 말하듯이, 영국의 복지 제도는 관대하기는커녕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로 볼 때 칠레를 제외한 모든 OECD 국가 중 가장 낮다. 2차대전 이후 자본과 노동 사이 합의의 일부였던 복지 제도는 꾸준히 해체되고 있으며, 모든 주요 자본주의 국가에서 비슷한 과정이 일어나고 있다. 처음에는 이윤율을 높이기 위한 시도였던 삭감이 오늘날 군비 증강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부가 군사비를 2.3%에서 2.5%로 인상한 금액은 67억 파운드로, 복지비 삭감으로 절감되는 금액보다 더 큰 금액이다. 이렇게 자본가계급은 전쟁을 준비하고 있으며, 그들의 구호는 1930년대 나치가 만든 “버터가 아닌 총”(25)이다.
선거 전에도 선거 후에도, 자본주의와 자본가 정권은 노동계급에 점점 더 악화하는 생활 수준 외에는 아무것도 제공하지 않는다. 노동자가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거나 대통령에 당선되어 체제를 전환할 수 있다는 생각은 뜬구름 잡는 환상이다.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를 지탱하는 핵심적인 물질적 관계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다. 유일한 해결책은 노동계급이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다. 그것은 혁명적 투쟁을 통해 썩은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하고, 의회와 자본주의 권력의 모든 기구를 파괴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민주주의가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라 선출한 사람이 직접 소환할 수 있는 노동자평의회와 같은 노동자 권력 기구를 만들어 현재 우리를 지배하는 가짜 민주주의를 대체하는 것을 의미한다.
트럼프와 같은 극우 포퓰리스트나 파시스트에 맞서는 것도 마찬가지다. 많은 반(反)파시스트들이 촉구하는 것처럼 극우에 대항하는 '덜 나쁜' (민주당, 노동당, 사민당, 더불어민주당 ) 자본가정당을 선택하는 것은 전혀 해결책이 아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파시즘의 정반대가 아니라 자본가들이 독재를 운영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방식 중 하나로서 파시즘과 함께 공존한다. 파시스트 억압은 자본주의 통치의 특별한 일탈이 아니라, 부르주아지가 노동계급을 상대로 사용하는 또 다른 무기일 뿐이며, '민주적이고 합법적인' 억압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1919년 독일혁명을 잔인하게 짓밟은 것은 극우가 아니라 바로 자유주의 공범들과 함께하던 사민주의 정부였다.
심화하는 자본주의 체제 위기 속에서 세계의 통치자들은 대외적으로 경쟁국들과 피할 수 없는 전쟁을 준비하면서, 동시에 국내에서는 노동계급을 빈곤에 빠트리는 계급전쟁을 선포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치러진 부르주아 선거에서 누가 당선되든, 노동계급의 대대적인 반격 없이는 기본 생존권조차 위협받는 상황이 올 수 있다. 모든 새 정부가 내세우는 ‘위기 극복’, ‘국가 안보’라는 명분은 결국 다수 ‘유권자의 이름’으로 노동계급에 더 큰 희생과 고통을 강요하는 청구서가 될 것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이번 선거에서 이재명은 객관적으로 유리한 상황에서도 좌우를 아우르는 부르주아 정치의 통합을 통해 정권교체를 이루었다. 왼쪽에서는 ‘내란 세력 청산’이라는 명분으로 ‘광장연합정치’세력을 포섭했고, 오른쪽에서는 ‘국민 대통합’, ‘성장과 회복’이라는 명분으로 친(親)자본 보수우파를 더 넓게 끌어들였다. 이는 앞으로 이재명 정부가 ‘주권자의 이름’으로 모든 위기를 노동계급에 전가하는 데 유용한 무기가 될 것이다.
이재명은 통합정부, 실용정부를 표방하면서 취임했는데, 위기 극복의 수단으로 '국민통합'과 '국익 중심'을 내세웠다. 이는 "박정희 정책도, 김대중 정책도 쓰겠다"라는 말처럼, 이전 자본가 정권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민통합'이라는 말은 이재명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대부분의 새 정부가 사용하는 공식적인 거짓말로, 부르주아 독재-계급 적대 사회인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가리고 국가의 역할을 중립적인 것으로 보이게 하는 지배 이데올로기 공세이다. 그리고 '국익 중심'의 의미도 자본가계급의 이익에 중심을 두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재명 정부에서 국익을 극대화하겠다는 것은 위기에 처한 자본가계급을 위해 이윤추구의 자유-착취의 극대화를 뒷받침하겠다는 약속이다. 물론 이재명은 윤석열처럼 세련되지 못한 폭압 정책이 아니라 노동계급 일부를 포섭하고 최소한의 법제도 개선 등 당근 정책도 펼 것이다. 그러나 다음은 "짐작조차 힘들 땀과 눈물, 인내가 필요할 것"이다. 즉, 각종 ‘위기 극복’(경제 위기, 정치 위기, 무역 전쟁/관세 전쟁, 안보 위기, 기후 위기 등)을 위한 노동계급의 희생과 양보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노동자 운동 다수파가 이재명과의 약속, 즉 자본가들의 식탁에서 아주 작은 빵 부스러기라도 받아내겠다는 약속에 넘어간 것은, 자본가 정권에 협조하겠다는 약속이며, 이는 앞으로의 노동자 투쟁에 큰 재앙이 될 것이다. 선거 시기 전·현직 노동자 대표(관료)들이 자본가정당에 입당하거나 지지하는 일은 부르주아 선거 서커스의 고정 프로그램 중 하나로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며, 노동조합이 국가기구(체제 수호 세력)로 포섭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노동자 운동 다수파가 ‘내란 종식, 정권 교체, 사회대개혁’이라는 명분으로 자본가 정권과 손을 잡은 것은 일시적 연합을 넘어 이미 그들의 ‘운동 노선’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기 때문에 매우 해롭다. (우리는 이들을 ‘자본의 좌파’로 규정한다) 따라서 앞으로 노동자 운동과 계급투쟁의 미래는 자본가계급과의 투쟁뿐만이 아니라 내부적으로 이들 ‘자본의 좌파’와의 투쟁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선거 시기만 되면 노동자 운동은 깊은 나락에 빠져든다. 우리가 실망할 것은 선거 결과가 아니라 부르주아 정치와 단절하고 선거 자체를 거부하며 계급투쟁을 이끌 노동계급 정치의 부재이다. 그로 인해 계급투쟁의 새로운 세대마저 부르주아 정치에 속해 있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자본가계급이 경쟁하는 선거가 아니라 자신의 고유 영역에서 계급으로 투쟁해야만, 정세의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다. 그 첫걸음은 선거가 아닌 계급투쟁에 나서는 일이다,
선거는 짧고 자본주의 위기는 길다. 노동계급은 새 정부 초기부터 제대로 준비해 싸워야 한다. 자본가 정권이 부과하는 모든 양보와 희생(긴축, 삭감, 노동조건 악화, 생활 수준 하락)을 받아들이지 말고, 생존권 투쟁을 전면화해야 한다. 자본가 정권에 포섭된 민족주의-관료주의-조합주의 노동조합을 넘어 독립적인 파업위원회, 대중총회를 통해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확산해야 한다.
자본주의 위기는 전 세계 노동계급을 전쟁과 야만의 위험에 빠뜨렸다.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선거로는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 위기에서 빠져나오는 길은 오직 노동계급의 국제적 단결과 투쟁뿐이다. 아직 세계의 노동계급은 자신의 집단적 힘을 인식하지 못한 채 잠자는 거인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계급투쟁을 통해 집단적 힘을 자각한다면 전쟁을 막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쇠퇴하는 자본주의 체제 전체를 뒤엎을 수 있다. 계급투쟁은 처음에는 지역과 나라 차원에서 일어나겠지만, 나중에는 국제적으로 전개되어 자본주의에 맞설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다.
모든 선거가 그랬듯이 이번 선거도 노동계급과 차별받고 배제된 사람들에게 최악의 선거였다. 착취와 차별의 정치, 전쟁과 야만의 정치, 혐오와 배제의 부르주아 정치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선거가 아닌 계급투쟁을 통해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하고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노동자 민주주의로 대체해야 한다.
선거가 아닌 계급투쟁으로!
선거 이후에도 계급투쟁이 대안이다!
2025년 6월 10일
사회실천연구소│이형로
<주>
1. 세계는 '혼돈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 유엔 구테흐스, 「로이터」
2.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프랑스 정치 불신 다시 증가, 「르 몽드」
3. 영국 정부 시스템에 대한 신뢰와 확신이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영국 국립 사회 연구 센터」
4. 미국 심리: 미국 대선의 핵심에 있는 불안을 탐구하는 새로운 시리즈, 「가디언」
5. 공정 붕괴·정치 불신이 낳은 ‘울분 사회’…국민 절반 “울분 지속”, 「서울신문」
6. "한국 청년들 '정부 불신' 30개국 중 5번째로 높아", 「연합뉴스」
7. 1960년대 이후로 전 세계 유권자 투표율이 감소해 왔다, 「THE CONVERSATION」
8. 개혁당(Reform)은 영국의 포퓰리즘 정당으로 최근에 부상하고 있는데, '파시스트'로 불리고 있다.
9. ‘45일 총리’ 영국 트러스, 왜 최단기 낙마했나, 「한겨레」
10. 2024년 영국 폭동은 2024년 7월 30일부터 8월 5일까지 영국에서 전개된 극우 반(反)이민 시위 폭동이다. 이는 7월 29일 중서부 도시 사우스포트에서 세 명의 어린이가 살해된 사건의 가해자가 무슬림이자 망명 신청자라는 거짓 주장이 유포되어 촉발되었다. 이 사건은 2011년 폭동 이후 영국에서 발생한 가장 큰 사회적 불안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9월 1일 기준 폭동 관련자 1,280명이 체포되었고 약 800건이 기소되었다.
11. 제로아워 계약(Zero-hour contract)은 영국 노동법에서 최저 노동시간이 0시간으로 고용인이 필요할 때 노동을 요청하는 형태의 고용계약이다. 즉, 고용주는 노동자에게 최소한의 근무 시간을 제공할 의무가 없다. 노동조합과 노동 단체들은 이를 노동 착취로 규정해 왔다
12. 리즈 켄달 영국 노동연금부장관은 3월 18일 하원에서 "국민과 국가 전체에 피해를 주는 현재 망가진 복지 시스템을 용납할 수 없다"라며 복지삭감안을 발표했다. 삭감안의 골자는 일상생활에 도움이 필요한 장애인 또는 환자에게 제공되는 개인자립수당(PIP)의 지급 요건을 강화하는 것이다. 켄달 장관은 과도한 복지 혜택이 젊은이들로부터 '일할 기회'를 박탈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실직 상태이거나 교육·직업훈련을 못 받은 청년이 전체의 8분의 1에 해당하는 100만 명에 달한다며 "일할 수 있는 수백만 명이 이 혜택에 얽매여있다"라고 지적했다. 스타머 총리는 "수백만 명, 특히 젊은 세대가 일하고 독립적인 삶을 살 잠재력이 있는데도 복지 혜택에 의존한다"라며 "그들이 이렇게 삶을 낭비하도록 두는 것은 도덕적으로 파산한 것"이라고 했다.
13. 스티븐 세믈러는 미국의 기초 지원을 받는 외교 정책 싱크탱크인 「안보정책개혁연구소」의 공동 창립자이자 국제정책센터의 수석 연구원이다.
14. LA에서 대규모 시위는 2025년 6월 6일 ICE와 FBI 등이 도심의 의류 도매시장과 홈디포 매장을 급습해 이들 지역에서 일하는 불법이민자 44명을 체포·구금하면서 촉발됐다. 당시 ICE의 단속 현장을 비롯해 불법이민자들이 구금된 연방 구금센터 주변과 히스패닉계 주민들이 다수 거주하는 패러마운트 지역 등에서 당국에 항의하는 시위가 잇달아 벌어졌다. 시위는 7일에도 이틀째 이어졌고, 당국은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최루탄과 섬광탄을 터뜨리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자신의 소셜미디에 글을 올려 민주당 소속 뉴섬 주지사 등이 시위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연방정부가 개입해 문제를, 즉 폭동과 약탈자들을 해결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주방위군 2,000명을 LA에 투입하는 내용의 명령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15. 사회민주당(SPD), 자유민주당(FDP) 및 Alliance 90/Greens의 연립정부, 각 정당의 색상(빨간색, 노란색, 녹색)을 따서 부름. 즉, 2021년 12월부터 2024년 11월까지의 올라프 숄츠 내각을 말한다.
16. 「독일을 위한 대안」, 우파 포퓰리스트 정당
18. 「3차 인터내셔널 첫 4개 대회 테제」, 결의와 선언, 1920년
19. 아마데오 보르디가, 「의회주의에 대한 테제」, 1920년
20. 갈라처(영국)의 지지 발언, 위의 글
21. ‘투표하지 말자’, 1948년 4월 「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 집행위원회
22. 민노당은 6·3 조기 대선의 선거비용으로 약 6억 원을 지출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출마했던 2022년에 지출한 약 32억 원보다 약 20% 수준으로 줄어든 금액이다. 거대 양당이 지출하는 약 500억 원과의 격차도 더 커졌다. 개혁신당도 일찌감치 ‘단돈 50억 원’으로 대선을 치르겠다는 목표를 내세우며 선거 예산을 적게 잡았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20대 대선에 이어 이번 대선에서도 선거비용 제한액인 약 588억 원에 가깝게 지출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유세 트럭도 공보물도 확 줄었다"…6∙3 대선, 처음 보는 풍경, 「중앙일보」)
23. ‘파업위원회’는 파업 투쟁에서 조합원과 비조합원, 정규직과 비정규직 구분 없이 모든 노동자가 참여할 수 있고, 언제든지 소환할 수 있는 대표를 선출해, 파업 노동자 스스로 투쟁을 결정하고 통제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아래로부터의 계급투쟁만이 관료주의, 조합주의를 넘어 계급투쟁을 확산할 수 있다.
24. ‘대중총회’는 모든 노동자와 연대하는 동지들에게 열려있는 투쟁의 공간으로, 대중총회 참여자들이 토론을 통해 모든 것을 직접 결정하고 공동으로 책임지는 방식이다. 대중총회에서는 흩어져 있던 노동자의 개별적인 요구를 모으고 집중하여 공동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작업장/업종/부분을 넘어 진정한 계급 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다.
25. 이 개념은 1936년 히틀러의 최측근인 나치 독일의 지도자 헤르만 괴링이 “총이 아닌 버터”라는 말을 반대로 사용하면서 왜곡했다. “총이 우리를 강하게 만들지만, 버터는 우리를 뚱뚱하게 만들 뿐이다.” 괴링은 국민이 생활고를 감내하면서 전쟁 준비를 지지해야 한다고 했다. 그의 발언에 힘입어 1차 대전서 패배한 독일은 빠르게 재무장에 나섰고 결국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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