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피, 인간...

M16소총을 몇 백발씩 쏘고 나면 부대로 돌아오는 60트럭 위에 총소리들이 계속 맴을 돈다. 씻어도 씻어도 손과 얼굴과 몸에서 화약냄새가 나는 듯 하다. 자동화사격장 타겟에는 사람의 형상이 그려져 있다. 내가 쏜 총알이 그 몸통의 부분 부분을 하나 하나 관통한다.

 

표적지를 걸고 쏜다. 총알이 관통한 부분은 집중되어야 하며 국화꽃 문양이 나타나야 한다. 그래야 맞지 않을 수 있다. 표적지를 벗어난 총알이 있거나 관통구멍이 띄엄띄엄 나타나게 되면 가차없이 얼차려가 주어진다. 집단적으로 행해지는 얼차려가 끝나고 나면 고참들로부터 구타를 당하는 등의 폭행이 뒤따른다.

 

사격과 관련된 기억은 언제나 끔찍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럭저럭 사격실력은 괜찮았으므로 개인적으로 불이익을 당한 일은 거의 없었지만 집단 속에서 같이 당하는 입장은 항상 괴로운 것이었다.

 

왜 총을 쏘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할 수도 없었고 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당연히 군대를 가야하는 것이었고 군대에 간 이상 당연히 총을 쏘아야 한다는 생각만을 했을 뿐이다. 자대 훈련소에서 신병훈련을 받던 훈련병 중 하나가 사격장에서 자신의 머리를 총으로 쏘아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에도 오히려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어이없어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니, 아마 그랬을 거다. 뭐가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 몰랐으니까.

 

군대가 반드시 필요한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기에는 아직 이를지도 모른다. 내전 과정에서 무수히 흘린 피의 상흔이 아직도 가슴 깊숙히 남아있는 사람들이 있고, 철두철미한 반공교육 속에 '북괴'에 대한 공포를 각인시킨 사람들이 아직 건재하다. 식민지배와 전쟁을 겪은 선대의 충격은 핏속에 남아 유전된다. 그 와중에 군대는 건드려서는 안 되는 신성불가침의 위치를 여전히 고수한다. 비록 군대의 문제가 과거와는 달리 많이 노출되고 있고 이에 대한 비판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군대는 두려운 무엇이며 거역해서는 안 되는 절대자처럼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래야 할까? 왜 '당연히' 군대를 가야하는 것으로 생각해야 하고, '건강한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가야하는 것일까? 누구를 위해서 가야하는 걸까? 후방에서 생활하고 있는 가족을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세계 평화를 위해? 정말?

 

혹시 그냥 가지 않으면 처벌받으니까, 왕따당하니까 그래서 가는 것은 아닐까? 왜 꼭 총을 들어야만 국방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해야할까? 거의 절대 다수의 한국의 여성들은 그러면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지 않고 있는 건가? 여성들은 그저 남성들 덕분에 그냥 편하게 세상살이를 하고 있는 건가? 여성들이 낸 세금은 단 한 푼도 국방에 소모되지 않는 건가? 뭔가? 도대체.

 

평화를 위해서라면 총을 버리는 것이 맞다. 평화를 위해 군비를 확충해야 한다는 것은 확실히 모순이다. 어쩔 수 없는 필요에 의해 이 모순을 저지를 수도 있다면 그 한계는 최소화되어야 할 일이지 최대화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현상은 그 반대다. 평화를 위한다고 하면서도 더 많은 인명을 살상하고 더 많은 지역을 초토화시킬 수 있게 하려는 시도가 계속된다. 무기는 점점 더 강력해지고 그 파괴력은 점점 더 공포스러워진다.

 

구조적으로 조장된 공포, 물리적으로 체감되는 공포를 거부한다는 것은 엄청난 노력을 필요로 한다. 더 나가 개인적인 피해와 고통을 수반한다. 병역을 거부한다는 것 그 자체를 반역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반역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는 사람들은 그보다 더 많다. 사법당국은 칼을 갈고 있고, 사회구성원들은 이들을 언제라도 소외시킬 수 있는 준비를 갖추고 있다.

 

그 고통의 길에 또 몇 사람이 올라섰다. 그리고 그 중에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 문제에 대해 고민했던 사람도 있다. 그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는 지금의 상황이 참담할 뿐이다. 그리고 끝내 자신의 소신을 버리지 않고 굳굳히 자신의 입장을 견지한 그에게 한없이 미안하다.

 

사회주의자로서 병역을 거부한다고 소신을 밝힌 그는 이제 상당기간 사법처리를 받아야 할 것이고 그보다 더 긴 기간을 사회적 편견으로 인해 고통받을 것이다. 귓전을 울리는 총성의 환청과 몸에 배어버린 화약냄새, 총알을 낭비(?)했다는 이유로 받았던 얼차려나 구타로 인해 받았던 고통은 차라리 편한 것이었으리라.

 

그의 이름은 김영진이다. 같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찾아봐야 하겠다.



병역거부 소견서


 
 나는 병역거부를 하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왜 그러냐”고 묻는다. 한국에서 남자로 태어났으면 ‘당연히’ 군대를 가야된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지만, 나는 오히려 되묻고 싶다. 무엇이 군대 가는 것을 당연하게 만드는냐고. 또 다른 사람은 다시 말한다. “한국은 남북이 대치하고 있기 때문에 군대에 가야 된다”라고. 난 다시 말한다. 그런 말과 생각이 남과 북을 더 멀게 만들었다고.

 

 지난 세기동안 이 사회는 한 개인을 개인의 존엄성과 가치를 만들도록 그 역할을 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한 개인을 사회의 부속품 역할만 하도록 개인을 훈육시켜왔다. 그것을 가장 상징적이고,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군대이다. 특히, 나는 ‘군대는 민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본과 지배층의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고 그것을 위해 복무하는 곳이다’라고 강조하고 싶다. 실질적으로 지배층들은 그들의 자녀들을 군대에 보내지 않으려고 한다. 지배층은 편법으로 그들이 져야할 의무를 민중에게 떠넘기고 지배층 자신은 특혜만 누린다. 이는 전적으로 그들의 행위와 이데올로기가 허위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지배층은 사회에서  군대와 같은 지배층을 위한 수직적 문화가 유지되기를 원할 것이며, 군대는 수직적인 사회구조를 배우기 위한 예비학교가 되는 것이다. 때문에 지배층과 지배층의 논리를 자기의 논리로 만든 사람은 ‘당연히 군대를 가야한다’라고 말할 것이다. 나는 군대는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킨다는 명분을 가진 조직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지배층의 금고통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사적 조직이라 말하고 싶다.
 
 군대라는 조직이 유지되어야하는 당위는 없다. 다만 상황 속에서 그 필요가 발생하는 것인데, 지금 동북아시아의 군사적 대립을 보자면 군비, 징병제의 유지는 오히려 동북아시아의 군사적 긴장만을 고조할 따름이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그리고 북한. 세계 군사강대국이 다 모여 있다. 그 중 한국이 있는 것이다. 한국이 군비를 증가하면 얼마나 할 수 있는가?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그들 보다 더 많은 병력과 무기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나? 착각이다. 오히려 광기어린 군비경쟁은 전쟁으로의 길만 만드는 격이며, 군비가 확장된 상태서 전쟁은 지배층의 몰락이 아니라, 노동자, 농민, 피지배계층이 피를 흘린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현재 정부와 우익 보수주의자들은 일본과 미국을 우방이라 말하지만 국제관계속에 영원한 우방은 없다. 따라서 한국은 한국 나름대로의 국제 관계를 유지해야하는데, 그 방법이 군국주의, 군사주의가 될 수 없음은 자명할 터이다. 모든 강대국이 군비를 확장해 전쟁을 하려고 할 때, 한국이 그 사이에서 군비를 증가하려한다면 오히려 전쟁을 일으켜 달라는 명분을 제공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는 북한과의 관계에도 예외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말을 듣고도 더 이상 징병제와 강력한 군대가 필요하다고 감히 주장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계속 같은 이야기를 한다면 그 사람은 이성적인 사고를 포기한 광기적인 군사주의자들일 것이다. 
  
 답은 명백하다. 그것은 비무장, 모병제로서 최소한의 군대, 군축이다. 이것은 단순히 개인의 양심을 보호해 달라는 병역거부자의 간절한 외침이 아니다. 이것은 지배계급의 전쟁 이데올로기와 사회유지 이데올로기에 대한 강력한 투쟁인 것이다. 우리는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것을 강력히 반대하고 반전운동을 했던 프랑스 사회당의 장 조레스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전쟁이 터지면 프랑스, 독일의 민중이 죽게 되는 그 상황을 반전, 반군국주의의 힘으로 강하게 저항하려했던 그의 생각을 다시 이어가야 할 것이다. 전 세계 민중들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지 않게 하기 위한 작은 몸부림으로서 나는 정치적 병역거부를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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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10 20:06 2006/02/10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