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동존이(求同存異)

은희님의 [김창현 전총장의 기자간담회 기사를 기다리며] 에 관련된 글.

 

주은래가 1955년 아시아 - 아프리카 회의에서 연설하는 도중 천명된 평화공존 5원칙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원칙이 "구동존이(求同存異)"다. 문자 그대로 서로간의 공통점을 찾아내고 다른 점은 일단 그대로 두자는 뜻이다. 구동존이는 주은래가 실리위주의 외교전략을 진행하는 와중에 중미협상에서도 활용되었듯이 중국 외교정책의 기본 정신이다.

 

중국의 수뇌가 바뀔 때마다 외교정책의 일단이 변화되는 과정은 있었어도 구동존이라는 정신은 바뀌질 않는다. 주은래가 구동존이를 설파하고 다니던 때가 모택동 시절이었는데, 모택동은 자신의 외교전략을 소위 "16자 전법"으로 표현한 바가 있다. ‘적진아퇴, 적주아교, 적피아타, 적퇴아추(敵進我退, 敵駐我攪, 敵避我打, 敵退我追)’가 그것이다. 이렇듯 피아에 대한 분명한 구분과 타격의 지점을 명확히 해야하던 그 고난의 시기에도 이 구동존이는 중국대외정책의 기본이 될 정도로 인정되었던 거다.

 

그런데 이 구동존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뜻이 단지 같은 거는 찾아보고 다른 거는 걍 놔두자는 정도로 새기고 넘길 수준이 아니라는데 문제가 숨어 있다. 다시 말해 겉은 그럴싸 해보이는데 이 말을 주장하는 저의가 뭐냐에 따라 나중에 호되게 뒤통수 맞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거다.

 

구동존이는 '구대동존소이(求大同存小異)'를 줄인 말이다. 즉, 큰 뜻에서 같은 것을 찾아보고 작은 차이는 일단 놔두자는 뜻이다. 이 구호에는 전제가 있다. 바로 큰 것이 같아야 작은 것을 놔둘 수 있다는 전제다. 뒤집어 말하자면 동의할 수 있는 '큰 것'이 없을 때는 구동존이가 있을 수 없다는 거다. 아무리 작은 것에서는 합의를 한다고 해도 큰 것에서 합의를 할 수 없을 때 같이 갈 수는 없게 된다. 이게 구동존이를 들여다 볼 때 가져야 할 첫 번째 주의사항이다.

 

두 번째 조심할 점은 '존이(存異)'다. 여기서 '존(存)'자는 그냥 놔둔다는 뜻이다. 이를 해결하거나 해소한다는 뜻도 아니다. '존(尊)'이라는 한자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즉, 큰 것에서 동의를 했고 이를 통해 일정하게 관계를 유지한다고 하더라도 합의를 도출했던 큰 틀이라는 것이 깨질 경우 언제든 상존하고 있던 작은 것으로 인해 서로의 뒤통수를 칠 수 있다는 거다.

 

중국에서 구동존이가 매우 오랜 내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비추어 이를 고찰해볼만 하다. 구동존이의 가장 대표적 원류로 꼽히는 사례는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적벽대전이다. 조조의 위나라에 대응한다는 큰 목표를 근거로 군웅할거 패권을 다투던 유비의 촉과 손권의 오는 연합한다. 그리고 적벽에서 조조의 대군을 섬멸한다.(연의에 나오는 이야기가 90% 개 뻥이라는 사실은 논외로 하자.)

 

그러나 일단 삼국분할의 틀이 고착되자 제갈량은 오나라의 뒤통수를 후려쳤고 오나라는 그 댓가로 관우의 목을 친다. 잔존하고 있던 그 '소(小)'는 이렇게 그 후과를 남긴다. 구동존이는 결국 실리가 남아 있는 동안만 그 효과를 유지한다. 실리가 해소된 이후에는 언제든지 합의하지 않은 채 남겨놨던 작은 것들이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거다.

 

대선 전 경선과정에서 당내 일부 사람들이 당게와 외부 언론에 "구동존이" 운운 하면서 단결을 이야기했다. 쉬운 얘기로 기왕 권영길이 대선후보로 뽑혔으니 딴 얘기 관두고 큰 틀에서 함께 하자는 이야기였다. 대선이라는 이벤트를 '큰 것'으로 보는 것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었으나 자기 좋을 대로 아전인수식 해석을 하면서 말을 갖다 붙이는 꼴을 보면서 은근히 속이 뒤틀렸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더니 결국 지난 7일 김창현이 참세상과 인터뷰를 하는 와중에 기어이 이 말을 쓰고야 말았다.  그 말이 나온 맥락이 대단히 우스운데 김창현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북한식 사회주의로의 통일을 주장한 적 없다. 흡수통일 방식에 일관되게 반대해왔고 남북상호체제를 존중한 연방제 통일로 구동존이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왔다. 연공연북을 강조했다. 북한과 연대해 함께 통일하자는 것이다."

 

맞다. 코연방은 "북한식 사회주의로의 통일"방식이 아니었다. 그 3단계 안이라는 것을 아무리 뒤집어 보고 이리 저리 재봐도 그건 "북한식 사회주의로의 통일"방안이 아니었다. 그러나 김창현식 주장처럼 "흡수통일 방식에 일관되게 반대"하고 "남북상호체제를 존중"한 통일방식 역시 아니었다. 그 3단계 안은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세계자본체제에 북한을 편입시키는 남한체제우월의 흡수통일방식이었다.

 

"연공연북"? 김창현은 지금 자기가 뭘 이야기했었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아니, 코연방이라는 자기 이야기가 도대체 뭔 이야긴지조차 모르고 떠들었다. 도대체 북한식 사회주의 비판론자인 행인이 흡수통일을 반대하는 입장에서 문제를 풀어주어야 하는 이 기막힌 사태를 김창현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저 코리아연방방안이라는 거,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다. 강정구가 이미 에저녁에 그 틀을 가지고 통일방안이라고 떠든 바가 있다. 지금 강정구가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인가, 권영길 선대본 본부장인가? 어디서 그 이야기가 나왔으며 어떻게 그 이야기가 퍼졌으며 어떤 결과를 야기할 것인지조차 남들에게 설명하지 못하면서 "연공연북"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김창현의 사고 수준이 딱 아메바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웅변한다.

 

결국 당내에서 이념을 달리 하는 두 집단, 자주파와 평등파가 이번 대선에서조차 크게 동의할 것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구대동'할 수가 없으니 대선과정에서도 서로 치고 박고 싸우게 되었던 거고 결국 대선 끝나자마자 '존소이'되었던 것들이 사방에서 쏟아지면서 난리 버거지가 나는 거다. 말 한마디 갖다 쓰더라도 좀 생각이나 하고 갖다 쓰는 센스, 이게 필요하다...

 

구동존이 함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김창현이 이야기하는 구동존이는 그동안 소위 자주파 운동권이 줄창 이야기해 왔고 최근 손석춘 등 일부 논객이 그대로 되풀이하는 닥치고 대동단결의 다른 버전일 뿐이다. 분당을 막고자 하는 김창현의 '충정'은 안쓰럽다. 지금 당이 산산조각 나면 장차 자신이 등 기대고 비빌 언덕이 없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고민할 필요가 없다. 이미 김창현은 민주노동당을 원내진출 원년에 열우당 2중대로 전락시킨 일이 있다. 고민하지 말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가면 될 일이다. 2중대 떠나서 본부중대로 가면 되는 거다. 열우당 없어졌다고 고심하지 말고 새로 이름 바뀐 본부중대 쉰당 찾아 가면 된다. 괜히 구동존이 꺼내면서 아는 척 고상한 척 하는 건 역겹다. 그거 이미 오종렬이 지난번 구속되면서 한 번 써먹었기 때문에 별로 신선하지도 않다.

 

도대체 이 동네 부류들은 어째 신선한 구석이 이렇게 없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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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09 15:16 2008/01/09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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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른바 '자민통'의 진정한 한계는, 대체 '자민통'한테 맡겨 두었다가는 '자'고 '민'이고 '통'이고 되는 게 하나도 없겠더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지 오래 됐지요.^^
    (물론 이건, '자민통'을 백 번 양보해서 '정파'라고 봐 줄 때 가능한 이야기긴 합니다만)

  2. 삐딱선/ 안타까운 일이지만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한지가 오래되었네요. 이건 자주를 하자는 것도 아닌듯 싶고 민주를 하자는 것도 아닌듯 싶고 통일을 하자는 것도 아닌듯 싶어서 말이죠...

  3. 오늘 참세상 기사를 읽고 저 구동존이가 문제가 되겠군, 했는데 마침 행인님 포스팅을 읽게 됩니다그려

  4. 요즘은 진보신당 창당을 목적으로 하는 카페에도 가입하고 해서 여기저기서 기웃거리고, 배우고 그러고 있는 중인데... 음... 정말이지 그 '원칙적'이라는 말이 대체 어떤 골격을 가지고 있을까? 하고 고민했었는데 저런 식이었던가? 싶기도 하고 그렇네요; 고민 많이 되는 요즘이에요 크 ^^: (역시 사람은 배워야 한다는 걸 맨날 느끼고 간답니다 ^^)

  5. 구대동존소이 딱 하나 배우고 갑니다. ^^

  6. 염둥이/ 통했군요. ㅎㅎ

    에밀리오/ 공유할 수 있는 원칙이라는 것이 분명히 있겠죠. 그걸 찾아가는 것이 또 공부하는 사람의 자세가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에밀리오님은 많은 공부를 하시는 분이고 또 언젠가는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원칙을 내주시리라 생각합니다.

    not/ 그거면 오케~~!

  7. 그러고보니! 예전에도 구대동존소이 관련된 포스팅을 보았던 느낌이 드는 1人...

  8. 덕분에 구동존이에 대한 심화학습 잘 했습니다. 더욱 감사한 것은 트랙백이란 것이 이런 것인줄 오늘 알았습니다.^^ (완전 시대착오적인 인물! 흑흑)

  9. 에밀리오/ 그랬나요??? 제가 포스팅하고도 기억을 못하고 있다뉘... ㅠㅠ

    은희/ ㅎㅎㅎ 저도 블로그 기능 제대로 몰라용. 그래도 잘 살아요. ^^

  10. 에밀리오/ 헉... 글쿤용... 이건 뭐 했던 얘기 또하고 했던 얘기 또하고... 저도 어지간히 식상한 인물이네요... 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