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년 문명콤비, 04년 시민삽질, 07년엔??

대망의 17대 대선 투표일 이브다. 오전에 눈발이 좀 날리길래 화이트 대선데이가 될 줄 알았더만, 햇빛은 쨍쨍 파도는 반짝. 날씨가 따뜻해야 88만원세대보다 좀 더 버는 인류들이 스키장 포기하고 투표하러 갈터인데, 쬐까 걱정시럽다. 하긴 뭐 가거나 말거나...(기왕 가심 3번 찍어 주시고... 죄송...)

 

건 글코, 이번 대선에서는 조용히 넘어가나 했는데, D-1을 남겨 둔 이 시점이 되자 또다시 예의 비지론이 좀비처럼 엉거주춤하게 일어서고 있다. 오호 통제라... 어제 백낙청 박사, 고은 시인, 함세웅 신부 등 "재야원로"라는 분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권영길, 문국현 가리지 말고 닥치고 정동영을 선언했다.

 

어째 20년 내내 똑같은 레퍼토리인지 모르겠다. 이분들 할 줄 아는 게 이거 밖에 없어서 그런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난 2002 대선이나 2004 총선처럼 눈물의 신파가 그닥 흥행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거. 아, 또 그 때의 일이 아롱삼삼하게 회상 되누나.

 

2002년 투표 하루 전날 밤, 밴댕이 속알딱지 같은 정몽준이 그만 단일화를 뽀개고 문 걸어 잠그자 노란 목도리를 목도리 도마뱀처럼 두른 황건적이 봉기하였다. 그 노란 물결의 한 가운데서 문성근과 명계남, 눈물 질질 흘리며 "담번"에 밀어줄께, 민주노동당이여 노무현을~! 이렇게 외쳤더랬다.

 

2004년 역시 마찬가지. 탄핵바람 한창일 때, 개혁세력이 원내 다수가 되어야 헌재가 탄핵을 하지 못한다는 희한한 주장을 하면서 유시민, 그 초롱초롱한 눈빛을 반짝이며 '전략적 투표'를 선언했다. "담번"엔 민주노동당 찍어주자면서 이번엔 열우당 지역구 밀어달라고.

 

문성근, 명계남, 유시민. 이 인간들, 약속 알기를 개 콧구녕에 낀 사료조각 정도로 알고 있다. 그토록 떠들어 대던 "담번"이 왔는데, 멀쩡히 눈물연기 잘 해내던 이 인간들, 눈물 질질 흘리면서 이번엔 민주노동당 찍어줍시다, 지난번의 빚을 갚읍시다, 뭐 이런 이야기 한 마디 없다. 하긴 뭐 니들을 믿겠냐, 차라리 정화조 속에 든 것이 된장이라는 말을 믿지.

 

하긴 이것들이 또 눈물 콧물 짜면서 튀어나와 정동영 찍어줍셔, 권영길 찍으면 이명박 됩니다 이따위 소리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할 판이다. 아니, 혹시 내가 모르는 어디 가서 이미 이따위 소리 하고 자빠져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만. 우짰거나 여직까지는 조용한 듯 싶다.

 

그러나 나이 드신 값으로 원로역할 하시는 일부분들처럼 여기 저기서 "닥치고 정동영~!" 외치면서 권영길더러 사퇴하라고 외치는 인간들이 삐죽삐죽 튀어나오고 있다. 예컨대 오마이 뉴스의 기사 "거리에서 할 일을 투표소에서 끝내자" 같은 경우.

 

기사를 올린 정윤수는 타겟을 명확히 하고 있다. 권영길이다. 아니, 민주노동당이다. 권영길과 민주노동당, 이번 대선에서 명박에게 버금가는 삽질만 했다고 일단 씹어준다. 그러면서 '진보진영'의 대동단결을 소리높여 외친다. 이명박이 대통령 된 다음 1001, 1002, 1003 애들하고 대굴빡 터지게 거리에서 싸우지 말고 이 참에 정동영 찍어 평화세상 건설하자는 결론을 내리면서 글을 맺는다. 이 글에 대한 소회를 한 마디로 정리하면, "조까라~!"

 

지난 10년 세월을 보수세력은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딱지를 붙이며 궁시렁 대고 있지만, 소위 '진보세력' 역시 잃어버린 10년이긴 마찬가지다. 아니 물타버린 10년이라고 해야할까?

 

지난 10년을 진보세력이 놓쳐버린 이유는 물론 진보세력 스스로에게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게 가장 큰 이유다. 남한 사회 내에서 일정한 세력을 가진 한 축으로 자리매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슈를 선점하지 못한 채 끌려다니고, 항상 안티세력으로 낙인찍히고, 누구에게나 자신있게 내놓을 전문적 기획을 만들어내지 못한 죄 크도다.

 

그러나 진보세력의 이 무능력만이 오늘날 이 참담한 사태를 유발한 것은 아니다. 지난 10년 동안, 특히 참여정부 5년 동안 진보세력은 얼토당토 않게 청와대 386 부류와 동일한 취급을 받아왔다. 이 어이없는 사태를 만든 주범 중에는 글 좀 쓴다는 논객들, 학자들, 언론인들의 역할이 컸다. 조중동문을 비롯한 보수일간지들이야 그렇다 치자. 이 찌라시들이야 노무현이나 민주노동당이나 사회당이나 가릴 것 없이 지들 맘에 안 들면 다 빨갱이였으니까.

 

그런데 이 찌라시들 말고 자칭 타칭 진보적이라고 했던 논객들, 학자들, 언론인들, 그동안 한나라당과 뉴라이트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사회 세력을 '진보개혁세력'이라는 정체성 상실의 조어로 통칭해왔다. 덕분에 '진보'정당이나 '개혁'당이나 다 똑같은 넘들로 합성이 되어버렸고, 이걸 5년 내내 귀가 닳도록 들었던 인민들은 그넘이 그넘이라고 착각하게 되어 버렸다. 뉘뮈, "포유파충류"라고 하는 새로운 분류라도 탄생했단 말이냐.

 

멀리도 가지 말고 1997년 대선부터 함 보자. 당시 국승으로 권영길이 출마했을 때 이 비지론자들, 권영길 찍으면 이회창 된다고 난리 버거지를 치면서 DJ로 대동단결을 외치고 다녔다. 그 와중에 국승 선거운동하던 상당수 우파들, 투표 며칠 앞두고는 고무신 거꾸로 신고 그동안 만들어 놓은 바닥 다 끌고 DJ에게 몰표를 안겼다. 결과는 다들 알다시피 DJ 대통령 탄생.

 

2002년에도 역시 마찬가지. 권영길 옆자리에 앉아 개표방송 같이 보고 있다가 노무현이 당선되니까 만세부르던 듣보잡들, 지금 또 권영길 지지하자고 설레발이 치고 돌아다니고 있다. 물론 그러면서 동시에 BBK 규탄 집회에는 촛불 들고 맨 앞자리 차지하고 앉아 있다.

 

만일 말이다. 만일, 1997년과 2002년에 이 사람들이 국승과 민주노동당에 원래 마음 먹었던 대로 투표했다면 어떤 결과가 발생했을까? 이회창이 대통령 해먹었을라나? 천만에 말씀이다. 2002년에도 그랬고 2004년에도 그랬지만, 선거 전에 눈물 흘리며 민주노동당 지지자 여러분들의 배신을 추동했던 사람들, 선거 끝나자 마자 민주노동당 지지자의 표는 큰 변수가 아니었다고 쌩깠다.

 

이거 걔들이 똥뚜깐 들어갈 때하고 나올 때하고 맘이 변해서가 아니라 실제 그러했다. 즉, 어차피 될 놈이 된 선거판이었다는 거다. 따라서 1997년 이후 지금까지 그 되도 않는 비지론에 우왕좌왕하지 않고 제대로 투표했으면 남한사회의 정치지형에서 진보세력이 가질 수 있었던 힘은 지금보다 훨씬 더 커졌을 거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고? 쓰벌, 그래도 함 해볼란다. 토달지 마라.

 

지금 2007년이다. 이명박이 대통령 되는 거 진짜 바라지 않는다. 그러나 20년 동안 진보세력의 등에다가 칼침을 놓았으면서 또다시 칼침 놓는 짓은 반칙이다. 상도덕이 아니다. 이명박이 BBK 가지고 개뻥치며 돌아다닐 때, 지금 주류가 되어 있는 소위 '민주개혁'세력들, 말도 되지 않는 '진보개혁'이라는 용어를 써가며 진짜 진보세력을 도매급으로 말아먹었다. 더불어 매 선거때마다 "담번"엔 운운하면서 진보진영의 힘을 야금야금 갉아 먹었다. 그만하면 배 찢어질만큼 처먹은 거 아닌가?

 

진보세력이라고 자청하는 집단 중 일부가 이번 대선판에서 완전 쥐약을 뿌리고 있는 거 인정한다. 수령님도 포기한 고려연방제 들고 나오는 시대착오적 주사돌이들이 숙주로 삼고 있던 민주노동당의 생피마저 다 빨아먹고 있는 거 인정한다. 그렇다고 해도 그건 진보세력이 알아서 정리할 일이다. 현재를 극복하고 미래로 달리던 발부리에 채인 돌에 걸려 마빡을 터트린 채 비명횡사를 하던 그건 지들이 지지고 볶을 일이다.

 

개판 오분전으로 가면 그거 지적하면 된다. 이번 대선에서 권영길이 보여준 완전 생초보 운동권 초년생 같은 짓에 대해 비판하면 된다. 그러나 그걸 넘어서 그러니 어차피 안 되는 인생, 닥치고 정동영~! 이러면 그 때부턴 오바다. 이런 오바질 하는 인간들, 이젠 지구를 떠나 주는 것이 지구온난화 방지에도 도움이 된다. 2002년과 2004년,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타도 시원찮을 눈물연기를 보여줬던 문성근, 명계남, 유시민. 이젠 안드로메다행 은하철도 999에 승차해도 "대~한민국" 큰 문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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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18 14:51 2007/12/18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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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다른 원로들이야 뭐 그려러니 하지만, 얼마 전에 조세희 선생님께서 노동당 지지선언에 이름을 올려주신거 보니까 참 기분이 좋더군요. 그냥 갑자기, 그러네요.^^;;

  2. 이제는 생까도 될만큼 아무런 영향도 없지 않겠어? 그 영감탱이들도 이제 구릿내 나는 과거라고 보통사람들도 거들떠 보지 않을거야.

  3. 이런 인간들에게 '조까라'는 너무 엄숙하삼..ㅎㅎ
    산오리가 잘 써먹는 게 딱 어울리는 거 같은데..
    "에라이 좆까고 댓진 바를 놈들아!!!"

  4.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다가올 미래를 위해서라도, 행인님께서 하신 것처럼 "만약에"라는 가정법으로 역사를 다시금 생각해 보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저는 투표를 하게 되면 민주노동당 찍으려고요(^_^;)......

  5. 주위 사람들에게 비난적 지지(?)라도 하며 민노당 찍겠다고 했어요. 에효. 이번에도 정동영 찍으라 뭐 이런 분위기긴 했는데 저야 싫으니까. 정동영이 되면 1000시리즈들이랑 거리에서 박 터지게 안 싸울 것도 아니고... 그저 이명박 되면 참 걱정이야 하는 생각이 있긴 하지만 말에요 ㅠ.ㅠ (노점상 분들 어카지ㅠ.ㅠ)

  6. 예측은 하고 있었지만 이명박 되어버렸네요. 노점상 분들 비정규직 학생들 노인들 운하예정터 다 어쩌죠 ㅠㅠㅠ
    선거 내내 수고하셨습니다. 또 갈길이 머네요.

  7. 박노인/ 조세희 샘... ㅠㅠ 몸은 괜찮으신지 몰겠네요...

    말걸기/ 생까는 건 까는 거고 기분나쁜 건 기분 나쁜 거거덩. ㅡ..ㅡ'

    산오리/ 댓진까지... 매우 쓰라리겠네요. ㅎㅎ

    무한한 연습/ ㅜㅜ 희망을 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에밀리오/ 이멍박이 뭘 하게 될지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습니다. 오밤중에 남의 사업장 진입로를 포크레인으로 파버렸던 곤조통이니까요. 암튼 앞으로 5년이 걱정이네용.

    동동이/ 뭐 빡시게 싸워야죠. 언젠 안 그랬나요? ^&^ 그동안 좀 쉽게 살았나봐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