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똑같은 넘덜?
'모래시계'란 드라마가 세간의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모래시계'를 방영하는 시간이면 술집 매상이 떨어지고, 거리가 한산해진다는 말이 돌 정도로 인기가 있었고, 당시 서울방송이 송출되지 않던 지방의 경우(특히 광주 전남지역)는 방영 끝난 후 녹화한 비디오를 공수해 돌려보기까지 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
인기만큼이나 '모래시계'가 가져온 여파는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대사도 별로 없이 고현정 뒤를 봐주던 이정재의 인기가 아줌마들 사이에서 폭발적으로 올라갔고, 광주 금남로에서 벌어진 살육의 과정을 묘사하는 장면에서 헬기가 사격하는 것을 암시하는 내용이 담기기도 해 논란이 일어났다.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장면은 그 와중에 길바닥에 떨어져 깨지던 기름병... 일상이 부서지고 사람들의 정과 인간의 기본적 이성이 깨져버리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냈던 그 장면은 아직도 '모래시계'에서 보았던 장면 중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기억된다.
아무튼 이렇게 여러 가지 이야기거리를 제공했던 '모래시계'의 여파 중 매우 웃겼던 것은 이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와중에 청소년들(주로 남자 애들이겠지)의 장래 희망 중 '조폭'이 순위권으로 올라왔다는 것이다. 최민수의 거만하기까지 한 그 카리스마와 조직원 간의 우정, 배신, 야망, 성공... 뭐 이런 것들이 아이들의 감수성을 자극한 바 컸었다는 이야기겠지. 하다못해 "나 떨고 있냐?"라는 그 유명한 대사... 학생부에 끌려가던 고삐리 하나가 학생과 앞에서 같이 끌려가던 친구넘에게 "나 떨고 있냐?"라고 최민수 삘로 말하다가 남들 한 대 맞을 거 몇 배로 주어터졌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고...
최근 언론기사를 보니까, 한국 조폭의 평균수입이 월 400만원대에 달하며, 조폭들의 "직무만족도"는 거의 절반 수준에서 "보통"이라는 답이 나왔단다. 세금도 빠지지 않는 400만원 월평균수입에 정년도 없고, 나와바리 하나 잡으면 수입보장 완전히 이루어지고 정년도 따로 없고, 게다가 '현역'에서 물러나도 '고문' 대접받으면서 일정한 수입을 보장받는다고 한다. 재수 없어서 '빵'에 가거나 연장질 당해 병원 침대신세만 지지 않는다면 공무원보다 낫다는 소릴 들을 수도 있겠다.
재밌는 현상은 주변에서 이 언론 기사를 보고 비분강개하거나 거기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화제거리로라도 생각하는 정도의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거다. 중앙당 상근자들 중 최고 월급을 받는 사람조차도 최소 두 달 반을 일해야 얻을 수 있는 수입을 대~한민국 조폭 조직원들이 한 달이면 벌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그닥 반응들이 없다. 그냥 그런갑다 하는 정도?
사람들이 이렇게 무감각이라고 할 정도의 반응을 보이는 것이 이해하지 못할 것만은 아닌듯 싶다. 어디 뭐 조폭만 문제인가? 법원, 검찰, 공무원, 국회의원, 하다못해 교수들까지도 직군에 따른 패밀리 정신, 일컬어 "우리가 남이가?" 정신을 발휘하면서 자신들의 입장과 이해에 따라 벼라별 좀스러운 짓을 다 하는 판국에 조폭이 뭐 따로 관심을 끌만한 소재인가 말이다.
주먹질하면서 월수 400버는 조폭 양아치나 있는 폼 없는 폼 다 잡아가며 거들먹거리면서 조폭과 다를 바 없는 양아치짓을 보여주는 기득권 세력이나 없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넘이 그넘인 거지 뭐 특별할 것이 없는 거다. 사실은 이 땅의 서민들이 희망을 걸 사람들이 없어진 결과다. 영웅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없이 사는 사람들을 위해 애써줄 수 있는 사람들을 없이 사는 당사자들이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법원의 판사들, 검찰청 검사들, 국가 공무원들, 국회 의원들, 학교 전문가(교수)들... 이들이 서민들의 아픔엔 눈을 감은 채 자기들의 입장과 이해만을 대변하고 있는 이 현실은 조폭이 나와바리 관리하는 차원에서 발생하는 온갖 부조리들과 별반 다를 바 없이 서민들에게 다가온다.
그래서, "그넘이 그넘이여"라던가 "다 똑같은 넘덜이여"라는 자조어린 탄식은 있을지 몰라도, 아니 조폭 이 양아치들이 도대체 어떻게 사람들 등을 쳤길래 그렇게 벌 수 있단 말인가 하는 분노는 나오지 않는 거다. 그런 분노가 나오지 않는 이 상황이 완죤 웃기는 상황인 거다. 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