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나...
피에로님의 [반성할줄 모르면 후퇴뿐!] 에 관련된 글.
앞서 포스팅 한 "우아하게 욕하기"에 피에로님이 트랙백을 건 것이 위의 글이다. 반성할 줄 모르는 조직 또는 개인은 후퇴한다는 그 말에 백번 동의하는 동시에, 좀 더 나가 그런 조직이나 개인은 소위 말하는 언필칭 "활동" 내지 "운동" 같은 거 하루 속히 접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다. 그건 그렇고...
솔직히 말하자면 행인의 입장에서는 생산적이고 건실한 논쟁이 오고가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단언컨대, 운동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다시금 예전 어느 때와 같이 건실하고 충만한 '논쟁'이 되살아나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 '논쟁'을 되살리기 위한 어떠한 견해나 주장에도 우선 마음을 가다듬고 다가앉을 준비가 되어 있다.
이런 관점에서 피에로님의 말걸기는 대단히 의미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지난 번 올린 "우아하게 욕하기"는 그닥 논쟁을 염두에 두고 올린 글이 아니라는 점을 먼저 밝힌다. 참세상에 올라 있던 그 글이 말하는 바, 특히 민주노동당에 비판은 행인 역시 별로 다를 바가 없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러한 비판이 공론의 장에서 논의되는 것에 대해서 오히려 당 안에 있는 사람으로서 환영한다. 그런데 어차피 이렇게 "우아하게 욕하기"가 논쟁거리가 되었으니 몇 가지 해명비스무리한 것은 해야할 판이 되었다.
"우아하게 욕하기"가 피에로님이 지적하듯 "민주노동당의 의회주의적 퇴행에 대한 비판이 조금만 드러나면 억울하다며 펄쩍펄쩍 뛴다"는 식의 글이었는지는 의문이다. 참세상의 그 글은 행인의 입장에서 "억울"할 글도 아니고 "펄쩍펄쩍" 뛸 글도 아니었다. 지적에 대한 대부분의 지점들에는 다시 한 번 말하거니와 동의하고도 남음이 있다. "우아하게 욕하기"에서도 고백했지만 "욕 먹어도 싸다"고 생각할 뿐만 아니라 "그 조직의 일원인 행인으로서도 그 욕 먹을만 하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러한 지적을 하는 과정이 지나치게 가쁜 호흡으로 치달리면서 흥분한 모습 이상의 감흥을 남겨주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그러한 숨까쁜 내달리기가 가져온 하나의 대안이 "누구 한 사람 당직을 그만 둔다던가 하다못해 국회의원 배지를 반납하겠다는 '공갈'"로 귀결되는 모습을 보면서 솔직히 말해 허탈했다. 그러한 '공갈'빵이 사실은 전형적인 '의회주의'적 전술의 일면이라는 점을 잘 몰랐단 말인가? 혹여 이러한 '공갈'빵 같은 전술도 쓰지 않는 모습이 바로 '의회주의적 퇴행'이라고 생각했던 건가?
민주노동당과 민주노동당의 의원들, 까놓고 이야기해서 '의회주의적 퇴행'의 모습을 보여주는 선례는 많이 있다. 일일이 여기서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고, 이에 대한 지적은 '매일노동뉴스'의 정용상 기자가 뼈아프게 시리즈로 지적한 기사가 있다. 매일노동뉴스 인터넷판이 민중의 소리로 합쳐진 관계로 이 기사를 찾고싶은 분은 민중의 소리 메뉴바에서 '뉴스 +'라는 메뉴를 찾아 보시거나 정용상 기자 이름으로 검색해보시면 되겠다.
정용상 기자의 기사 중에는 행인이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특히 입법과 관련된 부분에서) 전체적인 맥락에는 십분 동의한다. '의회주의적 퇴행'의 가장 적나라한 모습은 민주노동당이나 민주노동당의 의원들이 '정책'을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는 반면 '정치'는 완전 아마추어의 모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관계법의 통과와 관련된 부분에서도 행인이 지적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 '정책'이라는 '의회주의'의 함정에 빠져 이들이 정치적 차원의 제츠쳐를 구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비판받을만 하다고 스스로 판단하고 있는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세상 기사에 대해서 딴지를 걸었던 것은 위에 언급한 공허할 정도의 "우아하게 욕하기"에 그쳐버린 이 기사가 한편으로는 맥이 빠져서이고 한편으로는 안타까워서이다. "우아하게 욕하기"로 장식된 참세상의 글은 그 전후를 따져볼 때 목적하고 있는 바가 바로 눈에 띈다. 즉, "계급적 민중운동 세력들과 좌파-사회주의자들은 모든 공간에서 민노당을 대체하는 정치세력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당위론적 목적의식의 설파가 이 글의 목적이었다. 그 "정치세력"의 실체가 항간에 떠도는 "2008년 좌파 신당"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아니면 표현된 그대로 당위를 이야기하는 것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어쨌든 이러한 정치세력화의 선동이 그 글의 목적이라는 것은 분명하게 확인된다.
그렇다면 적어도 그 "정치세력"이 가지는 정향에 대한 그림이 그려져야 하는데, 참세상의 글에서는 "민노당을 대체"하는 이외에 뭘 어떻게 대체하는지에 대한 부분이 전혀 그려지지 않는다. 그 글에서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이 욕먹은 것을 하지 말자는 정도? 행인처럼 자기 블로그에 대충 생각나는대로 떠들어대는 글이 아니라 적어도 공중에게 완전 노출된(그것도 목적의식적으로 노출된) 언론매체에 올린 글이라면, 그리고 그 글이 특정대상을 타겟으로 하여 신나게 두드려패는 것이었다면 안 맞을 방도에 대해선 이야기해줄 수 있어야 한다. 기껏 이야기하는 것이 뭐가 '의회주의적 퇴행'인지 분간도 하지 못한 채 '공갈'치지 않은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정도라면 욕먹은 대상으로서는 그저 맹숭맹숭할 따름이다.
"열우당과 노무현정권의 로드맵 수정안에 대해 반발과 저항없이 묵인하에 처리했다는 것이 배신행위"라고 단정하는 그 필자에게 묻고 싶은 것. 도대체 당신이 원하는 "반발과 저항"은 뭔가? 배신행위? 또 하나, 피에로님이 그토록 신신당부하는 '애정이 담긴 비판'의 모습이 저토록 "우아하게 욕하기"인지, 내막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단지 법안통과되던 시점의 모습만으로 "배신행위"로 단정하는 저 모습이 과연 '애정이 담긴 비판'인지 궁금하다. 그런 의미에서 피에로님이 "repeat!"를 외치며 몇 줄에 걸쳐 ctrl+c & ctrl+v 한 그 문장은 행인의 입장에서는 별로 repeat할만한 문장이 아니었다.
참세상 기사의 필자가 하고자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그 글에서는 보이지 않고 피에로님의 글에서 보이는 한 문장이 바로 해당 기사가 원하는 "반발과 저항"의 의미에 대한 설명이 될 듯하다. 즉, "KTX, 대우건설빌딩 하청노동자와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 농민들, 민중들"에 대한 "끊임 없는 연대와 지지의 활동"이 그것이다. 이걸 민주노동당이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그리고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된 희망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것. 민주노동당은 그래서 욕 먹을만 하다. 이들에게 보내는 지지와 연대가 바로 참세상의 글에서 이야기 되었던 "반발과 저항"의 내용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한 전술의 구상과 실천은 앞으로도 계속 당의 고민지점이 될 것이고, 또다시 비판의 지점이 될 것이다.
하지만, 참세상에 실렸던 그 원글은 행인이 볼 때, '이상주의자들의 헛소리'도 아니고 '아무도 못알아들을 운동권 문건 비판'도 아니다. 그저 제 분에 겨워 숨가쁘게 뱉어낸, 그러면서도 천박함을 최대한 보이지 않으려 노력한 "우아하게 욕하기"에 불과하다. 그래서 행인은 "억울하다면 펄쩍펄쩍" 뛰기는 커녕 아주 편안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원래 행인도 "욕쟁이"기 때문에 이런 정도에는 크게 당황하지 않을 수 있었다. 물론 읽어나가다가 허무해지긴 했지만서도... 아무튼 이렇기 때문에 이 글에 대해서 행인은 "욕 그만하라고 투정"할 생각도 없고 그럴 필요도 못느꼈다. 다만, 바랐던 것은 기왕 욕하는 거 제대로 좀 해달라는 거다. 그래야 욕 먹는 넘도 지 잘못이 뭔지 알지 않겠는가?
피에로님의 우려와는 달리 행인, 그렇게 비판에 깜짝 놀라 제 변명하기에 급급하지는 않다. 날이 갈수록 '의회주의적 퇴행'에 물들어가는 민주노동당과 그 의원들에 대해 불만도 많고, 더우기 그러한 경향에 스리슬쩍 묻혀가는 내 자신에 대한 비판은 "우아하게 욕하기"는 커녕 저잣거리 쌍욕을 해댈 정도라는 변명을 해두고 싶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피에로님과 마찬가지로 '논쟁'이 이루어지길 학수고대한다. 때론 그것이 살점을 도려낼 정도로 아프게 다가올지라도. 반성할 줄 모르면 후퇴한다는 것을 잘 알기에...
덧 : '사회연대전략'에 대해서는 행인도 일정하게 비판하고 있다. 명칭도 솔직히 적절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코포라티즘에 대한 부정적 시각때문일지도...) 그런데, '사회연대전략'이 제시되는 맥락에 대한 고려도 하지 않은채 일방적인 매도로 이루어지고 있는 일부 좌파단위의 비판은 수긍하기 어렵다. 예를 들자면 피에로님이 올려주었던 '다함께'류의 비판은 맥락의 고려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매도의 대표적인 케이스다.
에또.. 같은 25세의 분들이 쓰신 글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계속 보는데 어찌 이리도 다를지;; (그 우아하게 욕한 분도 25세, 피에로님도 25세;;) 허허;;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또 다시 절로 드는군요;
글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행인님의 정치에 큰틀에서의 공감을 느낍니다. 생각의 맥락에 대해 이해했습니다. 다만 쟁점이 쟁점인지라 맥락이 다르게 공감하는 사람들도 있을것 같아 글쓰기 버튼을 눌렀던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기본적으로 논쟁에 임하는 스타일이라는 부분에서 생각이 좀 달라서요.
저도 다함께류의 비판은 대체로 그래왔듯 생산적이지도, 긍정적 논쟁을 낳지도 않을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포스트는 '사회연대전략'에 대한 여러 입장들을 모아서 올린 것이었기때문에 올렸던 것이죠. 근데 '다함께'에 쓸때없이 책잡혀서 한번 스탠스가 흐트러지면 계속 말릴겁니다.
에밀리오/ 님은 같은 25세의 친구들과 또 다른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잖습니까? 원고지 1000매짜리 도전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죠. 홧팅입니다. ^^
피에로/ 헛... 감사하실 일은 아닌데요... ^^;;;
제 이야기를 좀 하자면, 저는 불과 몇 년 전까지 엄숙'주의'자였죠. 모든 일을 모두 진지하게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그것은 결코 자기 자신에 충실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보호하려는 위장막에 불과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 후로 진지해야할 부분과 그러지 않아야할 부분을 의도적으로 구분하기 시작했습니다. 근데 그게 잘 안되더라구요? ^^ 진지해야할 곳에서 가벼워지고 가벼워야할 부분에서는 오히려 진지해지는 경우도 있다는... 쩝...
아무튼 이번 참세상의 글은 저에겐 별로 진지할 이유가 없는 글이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오히려 그 글 보다는 피에로님 덕분에 건전하고 생산적인 '논쟁'에 대해서 재고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는 것이 소득이었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