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하게 욕하기

행인의 포스트를 보신 분들은 대충 짐작하셨겠지만, 사실 행인은 '욕쟁이'다. 그런데 욕쟁이에도 급수가 있다. 급수로 따지자면 행인은 아주 하수에 속한다. 진짜 '욕쟁이'들은 개, 닭 같은 짐승들이나 벼룩, 빈대, 바퀴벌레 같은 곤충들, 거기다가 "ㅆ"발음 나는 단어나 성기를 빗댄 용어, 내지 주변사람이나 가족관계를 살짝 얹는 방식의 욕설, 이런 하류급 욕설을 하지 않는다. 아주 우아하게, 현학적인 말들을 돌려 써서 마치 전혀 욕처럼 보이지 않게 욕하는 것, 이것이 바로 가장 최상급 '욕쟁이'들의 욕설 방식이다.

 

최근 거의 수준급 욕설신공을 보여주는 글을 발견했다. 참세상에 뜬 기사인데 제목은 "민주노동당은 진보정치를 추락시켰다"라는 것으로서 욕설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는 행인으로서는 배울만한 것이 많은 문장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에 대한 '욕'을 하고 있으나 문장 어디에고 "개XX"라던가 "좆XX" 혹은 "씨XX"같은 '상욕'은 섞여있지 않다. 글도 매우 현학적이고 용어도 아주 어려운 말들이 가득하다.

 

뭐 솔직히 민주노동당이나 민주노총, 지난 연말 노동관계법들이 통과되는 과정을 돌이켜보건데, 이런 욕 먹어도 싸다. 그 조직의 일원이 행인으로서도 역시 그 욕 먹을만 하다고 생각한다. 근데, 욕을 먹더라도 좀 그럴싸하게 먹어야지 이렇게 쌩뚱맞게 처음부터 끝까지 주구장창 욕만먹고 있으면 내가 왜 욕을 먹는지도 잘 모르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 글 읽다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우선 그 욕설을 누구 들으라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 제목이나 뭐 기타 등등 내용상으로 볼 때는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 들으라고 하는 소리인듯 싶기도 하다. 그런데 이 글이 민주노동당이나 민주노총에 보낸 항의서한도 아니고, 올려진 매체가 다분히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언론매체(참세상)라고 할 때, 이 글을 보이고자한 원래 대상은 아무래도 참세상을 찾아와 기사를 읽는 독자들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글이 도대체 어려워서 통 진도가 나가질 않는다. 이건 독자들 보라고 쓴 글인지, 아니면 같이 세미나나 스터디 하던 사람들 보라고 쓴 글인지 분간이 가질 않는다.

 

왜 내용이 아니라 글형식을 가지고 시비냐고 물을 수 있다. 내용에 대해선 앞에 다 얘기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욕이다. 거기다가 되도 않는 소리로 시비를 건다. 기껏 한다는 소리가 "누구 한 사람 당직을 그만 둔다던가 하다못해 국회의원 배지를 반납하겠다는 '공갈'조차 치는 이가 없다"고 화를 낸다. 이정도 되면 욕먹으면서 덜덜 떨다가 풋~!하고 실없이 웃을 수밖에 없다. '공갈'치기를 바라나? 민주노동당의원들 변명하려는 것은 아니다만, 그 노동관계법들, 노사관계로드맵에 의한 그 법안들, 그나마 9명으로 3년 버텼다. 그거 결국 못막았다고 어느 의원이 의원직 사퇴하면 그게 "진보정치"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그렇게 하면 "진보정치"가 추락하지 않고 승천하게 되나?

 

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수준이다보니 내용에 대해선 뭐라고 할 말이 없다. 그나마 형식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은 남들 들으라고 욕지거리 할 양이면 좀 쉽게 욕하라는 거다. 알아듣기 쉽게 말이다. 중국인들에게 "양상군자"라는 말은 도둑놈이라는 욕지거리로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일지 모르겠지만 조선천지 한글세대 아이들에게 한자교육시키기 전에는 "양상군자"라는 말 알아듣기 어려운 상황이 펼쳐진다. 그냥 도둑놈이라고 하란 말이다.

 

선전선동의 기술이 이정도밖에 되지 않으니 열나게 어려운 말 동원해서 화려한 욕설을 퍼부어놔도 선뜻 동의가 되지 않는다. 아니 동의 이전에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저 이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딱 이거 뿐이었다.

 

"계급적 민중운동 세력들과 좌파-사회주의자들은 모든 공간에서 민노당을 대체하는 정치세력으로 성장해야 한다."

 

성장해라. 행인도 그거 절실하게 바란다. 그런데 기왕 정치세력이 되고 싶으면 정치세력다운 모습을 보여줄 것도 함께 바란다. 남 실컷 욕한 이유가 자기 정치세력화를 선전하기 위해서였다라면 좀 계면쩍지 않은가? 정치세력화를 원하는 분이라면 내용도 좋아야겠지만 표현도 좀 잘 해야한다. 그냥 도둑놈은 도둑놈이라고 하는 것이 대중에게 호소력이 있다. 이 세상에 조직화해야할 대상은 '참세상'에 들어와 현학적인 말로 점철된 기사를 보며 자기 세미나와 스터디의 성과물을 확인하는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행인처럼 '쌍욕'밖에 할 줄 모르는 사람도 '참세상'에 가끔 들어가 기사를 확인한다는 것, 이거 중요하다. 고상한 욕설을 하는 것은 행인이 배워야할 일이지만 상대를 가려가면서 말을 사용하는 거, 이건 필자가 좀 고민해야할 부분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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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03 13:06 2007/01/03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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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racked from
    • At 2007/01/03 16:43

    매너리즘과 패배의 시대, 너잘났다 나잘났다 따질땐가? -잘못을 인정할줄 모르면 후퇴뿐이다. cf1.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id=38275 cf2. 행인님의 [우아하게 욕하기] 에 관련

  1. 음... 인터넷 대안 매체, 그리고 그 중에서도 진보적인 매체들에 대해서는 거의 무비판적으로 글을 읽고는 했었는데 (무조건 수용하는 형식으로 말예요;) 음... 그게 아닌거로군 하고 느끼게끔 해주는 글이로군요. 역시 아직 많이 배워야 한다는 ^^;

  2. 저는 요즘 '저 매체'에 표현하기 어려운 불만이랄까, 답답함이랄까 따위가 생기기 시작했는데... 욕을 있는 그대로 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려니 하고 마시죠, 뭐.

  3. "나 지금 졸라 흥분했어. 흥분했단 말이야!!!"라는 것밖에 기억이 안 나는 글이더군요.

  4. 참세상도 잘 안보는데, 행인님의 포스트에 나오니까 궁금해서 보게 되었네요. 마땅히 싸울데도 싸울 생각도 없으니, 민주노총이나 민주노동당이나 열나 씹어대는 거 같은데..ㅎㅎ

  5. 산오리/
    글쓰신 동지가 보면 기분 무지 상하겠네요. 그래보이진 않는데. 현장에서 고민도 많이하고 반성도하고, 좌절도 하면서 투쟁하는 진정성있는 동지면 어쩌시려고 그러십니까? 그럼 지금 내뱉으신 말에 대해 후회하시지 않을까요? 비판의 내용에 대한 언급은 없고 전부 빈정거림 뿐이네요.
    보는 제가 다 민망합니다.

  6. 에밀리오/ 괜히 행인이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 아닌지 요즘 반성하고 있습니다... 쩝...

    marishin/ 그 답답함... 저도 이해하고 있다면 맞는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ㅠㅠ

    야스피스/ 그 글이 그래서 안타깝습니다. 그렇게 읽힐 글이 아니라고 생각되는데...말이죠...

    산오리/ 민주노동당이 공적이 되서 제대로 씹히기라도 한다면 되려 나아질텐데요... 에궁...ㅠㅠ

    피에로/ 글 잘 보았습니다. 산오리님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산오리님은"현장에서 고민도 많이하고 반성도 하고, 좌절도 하면서 투쟁하는 진정성 있는 동지"라는 것을 행인이 보증합니다. 그리고 잘 아시겠지만 제 블로그에서 댓글이 가지는 역할은 굳이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자기 생각을 한 두 줄로 가감없이 적어놓는 것으로도 충분하고요. 더 필요한 말이 있을 때는 트랙백을 걸 수도 있습니다. 피에로님이 민망하신 것은 위에 댓글 쓰신 분들이 저런 댓글을 달게 만든 행인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양해를 부탁합니다. ^^

  7. /행인
    보증하시니 저는 의심없이 믿어요. 그걸 의심하는게 아니라, 아무리 산오리님이 '서하'동지랑 생각이 달라도 그 동지의 진정성까지 의심할 필욘없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8. 피에로 / 진정성 있는 동지와 글의 내용과 무슨 상관이 있을라나요? 산오리는 글 쓴 사람도 모르고 또 알고 싶지도 않지만, 그 글을 읽고 느낀 걸 쓴거 뿐인데, 그게 후회해야 할 일인가요? 글구 원래부터 산오리가 빈정거림의 대가가 되고 싶어해요..
    행인 / 행인께서 산오리를 변명 또는 옹호해 주려고 하신 건지 모르겠는데, 행인님의 글을 보니 오히려 산오리가 무지 쪽팔리는군요. 중요한 것은 행인님이 전혀 보증할수도 없는걸 보증하시겠다니 이거야 말로 공수표인듯하군요..ㅎㅎ.
    사실은 우아하게 욕하기에 필적할 만한 훌륭한 욕을 산오리가 알고 있어서 그걸 알려 드리려 했는데, 넘 재미 없는 댓글을 달았네요..

  9. 욕과 걱정, 비난과 비판의 차이.
    난 그 분 기고읽으면서 그냥 그런 차이들에 대해 잠깐 생각했더랬죠;;

  10. 산오리/ 원래 '인우보증'이라는 것이 이래서 어렵습니다. ㅎㅎ
    우아하게 욕하기에 필적할만한 훌륭한 욕...이라 하옵시면...궁금해지잖아욧! ㅡ.ㅡ+

    정양/ 잠깐만 생각하세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