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주목할만한 선수 등장
'붉은 악마'식 응원은 왠지 내키질 않는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지나친 정형화에 있다. 축구는 행인에게 일종의 영화와 같은 장르다. 영화를 보면서 감동을 할 때는 눈물도 흘리고 웃길 때는 웃고 화가 날 때는 화도 내는 것이 자연스러운 거다. 축구도 마찬가진데, 축구보는 내내 "대~한민국" 연호하며 짝짝짝 짝짝 하는 박수치는 것도 함께 참여하는 즐거움을 줄 수 있겠지만 드라마로서의 축구를 감상하는데는 어색하다.
A매치 경기는 쏠쏠한 재미를 준다. 그런데, A매치의 한계는 어느 순간 축구 그 자체의 감동을 느끼기 보다는 절대로 져서는 안 되는 전쟁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줄 때가 있다. 특히 한국 국대의 경기를 볼 때는 그런 느낌을 자주 받는다. 아무리 '조국과 민족'을 개 콧구녕의 코딱지처럼 생각하는 행인이라고 할지라도 살아온 환경의 영향은 무시할 수 없는 건가보다. 뭐 그렇다고 해서 축구보면서 쇼비니즘에 대한 회의를 자학적으로 느끼지는 않는다. 스포츠의 정치적 맥락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일단 스포츠로서의 축구는 그 자체로 매력적인 것이니까.
K리그는 자주 보지 못한 편이다. 그건 한편으로는 게으른 소치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영 시간이 맞질 않는다는 측면에서도 그렇다. 게으름이야 뭐 원래 그렇다고 쳐도 중계방송을 보거나 경기장을 찾을 시간 내기가 영 마땅칠 않다는데 문제가 있다. 꼭 그 시간쯤 되면 회의니 뭐니 해서 바쁘게 움직여야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시간을 좀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 간절한데 마음같이 될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변명은 여기까지 하고...
행인은 프로리그가 창단될 때부터 일화의 팬이었다. 서포터즈나 팬클럽에 가입한 적은 없지만 일화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만사 제쳐두고 그 경기를 보려했던 적이 있다. 고정운이나 신태용같은 선수들이 화려한 개인기와 저돌적인 돌파를 보여주는 날이면 하루의 스트레스가 확 사라지던 시절이 있었다. 그동안 많은 선수들이 은퇴를 하고, 감독도 바뀌고 근거지도 천안에서 성남으로 바뀌는 등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일화의 경기는 재미있다.
그런데 K리그는 재미가 없다. 맨날 프리미어리그나 프리메라리그를 보다 보니 하늘높은 줄 모르고 눈이 높아져서냐 하면 그런 이유만은 아니다. 그건 K리그와 국가대표경기를 비교해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K리그의 선수들 중 상당수가 국가대표에서 활약하고 있다. 국가대표가 된 선수들이 다른 나라 선수들과 A매치 경기를 하는 것을 보면 저 선수들이 저렇게 잘 하는 선수들이었던가 놀랄 때가 있다.
아쉬운 점은 바로 이거다. 국대에서 그렇게 뛸 수 있는 선수들이 리그에서는 그렇게 잘 뛰질 않는다는 거다. 물론 리그는 국가대항 경기보다 긴장도가 많이 떨어지는 면도 있다. 하지만 외국의 메이져 리그와 비교해볼 때 이러한 이유는 이유가 되질 못한다. 멘유의 2번 게리네빌을 보라. 오른쪽 윙백을 담당하고 있는 네빌은 멘유 선수들 중에서 오버래핑을 통한 전방투입시간이 가장 많은 선수이다. 루니나 호나우두, 박지성이 엄청난 운동량을 보여준다고는 하지만 게리네빌의 운동량은 이들에 비해서도 손색이 없거나 오히려 더 많은 양을 뛴다. 단지 오른쪽 측면에서 전후진을 주로하는 위치이다보니 카메라에 상대적으로 많이 잡히지 않기 때문에 인식을 잘 못할 뿐이다.
K리그에서도 많이 뛰는 선수들은 있다. 다만 전반적으로 경기운영 자체가 타이트하지 못하다보니 도대체 누가 그렇게 많이 뛰는지를 잘 몰라보는 경우가 많다. 그 와중에서도 유독 많이 뛰는 선수가 하나 있었다. 성남 천마구단의 장학영이 그다. 수비임에도 불구하고 오른쪽 측면에서의 오버래핑 뿐만 아니라 중앙 미드필드까지 진출해서 활약을 보여주는 선수다 보니 눈에 잘 띄는 편이었다. 또 하나, 장학영의 플레이가 자주 보였던 중요한 이유는 장학영이 2005 시즌 동안 모든 경기에 출장해서 거의 모든 경기를 풀로 소화해냈다는 점이다.
시즌 총 36경기에 출전해 48개의 파울을 기록하고 그 중 4번의 경고를 받을 정도로 뛰어난 압박수비의 능력을 보여준 그는 이번 월드컵 대표팀에 발탁되는 행운을 누렸다. 170cm의 단신에 80만원짜리 월급을 받는 연습생 출신의 장학영은 성남에 연습생으로 들어간지 만 2년이 채 되지 않아 국가대표로 발탁되는 행운을 잡게 되었다.
이틀 전 UAE와의 경기에서 장학영은 꿈에 그리던 국가대표유니폼을 입고 첫 A매치에 나섰다. 왼쪽 윙백으로 나선 장학영은 교체될 때까지 공을 잡아볼 기회조차 몇 차례 없었다. 부지런히 오버래핑을 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에게 공은 가지 않았고, 어렵사리 공이 왔을 때도 장학영은 매끄러운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한 채 공을 돌리거나 뺏기는 모습을 보였다.
오마이뉴스에서 독자들이 매긴 평점은 가혹한 것이었다. 평점 3.7. 그러나 장학영의 플레이가 그런 점수를 받을만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에게 중단없이 뛰어다니는 기관차의 모습을 보여줄 만한 기회가 없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더구나 장학영이 가지고 있었을 부담감이라는 것은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2004년 대학 졸업과 함께 테스트를 했던 대전 시티즌에서의 불합격, 어렵사리 입단한 천마에서의 고된 연습생 생활, 주전선수들의 부상과 피로로 대타 비슷하게 시작된 리그 출전, 그리고 거기서부터 시작된 주전생활.
그동안 박주영처럼 화려한 플레이로 세인의 관심을 받아본 일도 없고, 외국팀과 경기 경험은 더욱 없었고, 비행기 타고 지구를 반바퀴 돌아 다른 나라 운동장에 서본 경험은 더더욱 없었다. 더구나 월드컵 본선 진출 주전 멤버를 선발하는 전지훈련이라니! 장학영의 부담감과 긴장감은 "공이 무서웠다"는 그의 UAE 경기 직후의 고백으로 대변된다.
그러나 오늘 경기에서 보여준 장학영의 모습은 불과 이틀만에 전혀 다른 모습이라고 할 정도로 변화된 것이었다. 조원희와 교체되어 나온 장학영은 안정된 수비와 상대편 수비를 교란하는 오버래핑을 구사하며 4백라인의 오른쪽을 담당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물론 최종수비 과정에서 헛발질을 하는 등 미숙한 면은 여전히 있었지만 결정적일 수 있는 위기에 몸을 던져 수비를 하는 등 자신의 원래 모습에 더욱 가까운 경기운용능력을 보여주었다.
축구를 보는 묘미 중의 하나는 바닥을 기어 올라온 선수가 출장횟수를 거듭하면서 발전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이영표가 뛰고 있는 토튼햄의 최종 수비수 중 하나인 도슨은 이 맛을 보여주는 선수 중에 하나다. 경기를 거듭할 수록 도슨은 수비수로서 눈부신 발전을 하고 있고, 이제는 주장 킹과 함께 포백라인의 중심선에서 남다른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장학영 역시 그런 축구의 맛을 보여줄 수 있는 선수로 기대된다.
맨 밑바닥에서부터 눈물과 한을 씹으며 차근 차근 성장해나가고 있는 장학영을 주목해보자. 인생만사 새옹지마, 준비된 땀이 있으면 반드시 그 결실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연습생 출신의 장학영이 우리에게 보여줄 수 있을지 궁금하다.
오늘 아침에 그리스와의 국대 경기 봤는데, 장학영 선수 잘 하던데요. 가능성이 있어 보여요. 근데 아나운서와 해설자들은 장학영을 조원일(?)의 일회용 대체 선수처럼 얘기하더군요^^. 씁쓸... 논문 오늘 보냈습니다^^.
오오... 감사합니다.
장학영은 아직 많이 다듬어야할 선수죠. 그런데 그렇게 보면 박주영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국내에서 박주영의 스타일같은 플레이를 하는 사람이 없다보니 각광을 받았지만 국제무대에는 그런 정도의 선수들은 널리고 ?옥? 셰도우 스트라이커의 역할을 아직 이해못한 것 같기도 하구요. 조원희와 장학영을 비교한다면 둘 다 아직은 백중세라고 할만하더군요. 조원희의 백업멤버로 장학영을 본다는 것은 장학영의 능력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하는 것이 아닌가 하구요.
논문 잘 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