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총을 달라

산오리님의 [공자님 가르침만 난무하면서 어떻게 쇄신??] 에 관련된 글.

이번 당직선거 중 최고위원 후보자 토론회에서 "개성공단의 노동자들에 대한 우리의 자세"가 질문으로 제기되었다. 후보자들의 답변 내용은 별론으로 하고 개인적으로는 이런 질의를 준비한 사람의 뛰어난 사고에 대해 평가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질문은 매우 간단한 듯 하면서도 후보 각각의 인식을 확인할 수 있고, 앞으로 어떤 방향이 필요한지에 대해 각자의 주장을 이끌어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문제를 낼 수 있는 강사가 되고 싶다. 이렇게 되면 절대 컨닝을 할 수가 없게 된다. 물론 정답이란 것이 없는 질문이다. 다만, 가장 바람직한 방향이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모두에게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당 혁신에 관한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다. 그런데, 과연 뭘 어떻게 하겠다는 구체적인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있다. 당직선거과정에서 역시 마찬가지다. 혁신을 하겠다는데 뭘 혁신하겠다는 것인지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비정규문제를 풀어나가는 해법에 대해 설왕설래가 있는데, 이 과정을 보면 기가 막힌다.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감이 오질 않기 때문이다.

 

윤영상 후보가 정규직 노동자의 양보를 들고 나오자 이용대 후보는 이를 노무현식 해법이라고 하고 김인식 후보는 경총식 해법이라며 비판하고 나선다. 정부가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있고, 경총을 대표로 하는 자본가 집단 역시 그러한데 지금 윤영상 후보가 펼치는 논리가 딱 그 꼴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비판이라는 것을 이런 식으로 하면 영영 해법은 나오지 않는다.

 

윤영상 후보가 비판받아야할 지점은 따로 있다. 예컨데, 그렇다면 윤영상 후보가 말하든 '하후상박'의 원칙을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적용하려면 어떤 방법이 필요한지가 중요하다. 그런데 윤영상 후보의 경우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기금의 확보를 대안으로 내놓은 정도일 뿐 구체적인 내용이 아직 보이지 않는다. 정책을 만들겠다는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그러다보니 그 과정에서 당은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윤영상 후보를 비판하려면 바로 그러한 측면에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해야한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손해를 보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가 제대로 보장될 수 있도록 할 방법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데, 이용대 후보측이나 김인식 후보측이나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은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채 그저 노무현식이니 경총식이니 하는 비판과 함께 '양보'라는 단어에 집착한 흠집내기를 하고 있다.

 

이용대 후보의 주장에 대해서는 솔직히 언급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내용이 없이 비난하는 모습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한편 김인식 후보는 정규직의 양보를 제도화하려한다고 윤영상 후보를 비판한다. 이거 참 난감한 것이 윤영상 후보가 제도화에 대한 언급을 한 것은 아니다. 사회적 기금의 조성이라고 하더라도 윤영상 후보가 그것을 어떤 식으로든 정부의 입김이 개입되는 가운데 만들어 보자고 한 바는 없다. 오히려 그 부분에서 윤영상 후보의 의도가 뭔지 잘 잡히질 않는다. 그런데, 도대체 뭘 가지고 제도화를 하려 했다는 비난을 하는 건가?

 

당게에 올라오는 글 중에는 윤영상 후보 또는 윤영상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노동자계급의 연대에 회의적 내지는 비관적 반응을 보인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오버 좀 하지 마시라고 권하고 싶다. 누가 비관적으로 보고 있나? 당면 투쟁의 과정에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보여준 반 계급적 몰연대적 행위는 이미 그 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이 부분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하여 인식전환을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여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그들이 직접 참여하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연대하도록 하는 실질적인 틀거리를 만들어 내야 한다. 그런데 그런 틀거리를 어떻게 만들자는 이야기는 쏙 빼고 그저 그들을 찾아다니면서 연대하고 투쟁하자는 소리만 해대고 있다.

 

이들이 드는 모범사례 중의 하나가 2004년도 금호타이어 노동자들의 연대이다. 그런데, 금호타이어의 사례를 들기 위해서는 적어도 금호타이어의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연대하게 된 과정에 대해서 살펴야 한다. 특히 그 과정에서 당이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를 검토해야할 것이다. 당이 뭐했지?(이건 노동자계급의 자발성과 관련된 문제다. 여기서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긴 내용이 너무 길어질 듯 하고 다분히 이론적인 이야기가 될 것 같아 다음 기회로 미룬다) 그러나 그런 과정에 대한 검토는 쏙 빼놓은 채 단지 금호타이어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이 선진적인 모범사례를 만들어놨으니까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자위행위이다. 왜 작금 울산과 여수와 기타 등등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규직 노동자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적대감정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가? 그들을 찾아가 당위적인 이야기만 설파함으로써 이후 실질적인 연대가 자동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노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그건 착각이다. 울산의 패배를 보면서도 이런 자위행위만을 하고 있다면 이건 좀 골치아픈 문제다.

 

연대하고 투쟁하고 교양하고 논쟁해야한다. 그건 당위다.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다. 그거 포기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 하나도 없다. 그거 포기하자고 주장하는 후보가 있으면 이야기해주기 바란다. 가서 혓바닥을 뽑아 놓겠다. 그러나, 당위만을 설파하며 누가 더 강력한 구호를 외치는가로 선명성 경쟁을 하는 것은 이제 그만 보고 싶다. 누가 더 강력한 어조로, 더 선정적인 표현으로 투쟁을 강조하는지가 아니라 그 투쟁이 실물을 만들어 내기 위해 어떤 방법이 필요할 것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열우당, 한나라당, 정부가 전방위적인 선전선동을 통해 노동자계급을 해체하려고 하는 시도에 대응할 수 없다. 구호만으로 노동자들의 연대를 실물화해낼 수 없다. 곰팡이 냄새 물씬 물씬 풍기는 이데올로기 서적의 답습만으로는 결코 상황을 타개해나갈 수 없다.

 

사실 이 부분에서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변혁을 이야기하고 혁신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전혀 변혁적이지 않고 혁신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도대체 시계가 멈춰버린듯한 인식구조 속에서 변혁과 혁신에 대한 주장을 그렇게 용감하게 해댈 수 있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당원들이 지도부에 요구하는 것은 "싸우라!"는 지시가 아니다. 이미 그 지시는 계급의 갈등이 시작된 시기부터 내려져 있었고, 노동자 계급이 해방되는 그날까지 철회되지 않을 것이다. 이런 판국에 새삼스레 "싸우라!"라는 지시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얘기다. 당원들은 지도부에 요구한다. "우리에게 총을 달라!" 싸울 무기를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데 싸우라는 말만 되풀이하는 이 지독하게 한심한 현상을 보며, 명색 무기생산공장에서 복무하고 있는 행인의 입장은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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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20 00:19 2006/01/20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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