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원령
할일은 많고 머리는 아프고... 사실 머리가 아픈 이유는 맨땅에 뒤통수를 호되게 박았더니 그런 거 같다. 약간의 뇌진탕도 있었던 듯 한데, 지금은 어질어질... 사건의 진상은 묻어두리라. 진실은 언제나 저 너머에 있을 때 그 가치를 발휘하니까.
아무튼 오후에 외부로 나갔다가 늦게 당사로 돌아왔더니 한 당직자가 후배에게 전화받은 이야기를 한다. 후배가 사립학교 계약직 교사인데 오늘 동원령이 떨어져 시청앞에 끌려가 '사학법 원천무효 및 우리아이 지키기 범국민대회 촛불집회'에 갔다 왔다는 거다. 날도 추운데 고생 무지했겠다. 그런데 그렇게 끌려나온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닌가 보다. 조직적인 동원령도 내렸고.
친절한 명박씨는 만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가한 정치집회에 명박잔디광장을 제공했다. 민중의 지팡이 경찰은 이들이 삼삼오오 청계천까지 가두행진을 하는데도 물대포를 쏘지 않는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 성직자를 믿는 신도 여러분께서도 먼 길을 마다않고 달려 오셨다. 당연히 한나라당의 당직자 및 보좌관 전원은 이 곳에 모였겠고.
개정 사학법,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건 이미 걸레가 된 법이다. 이번에 국회를 통과했다고는 하나 여전히 우리 사학의 현실을 수술하기에는 먼 법안이다. 그거 하나 통과시키는데 '지둘려'만 반복했던 집권 여당의 무능이 이번 국회통과로 만회될 사안은 아니다. 그러나 최대한 양보하여, 그 법안이 통과됨으로써 앞으로 사학의 비리와 정상화를 위한 논의가 잉보 전진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난리다. 전교조가 학교를 정치판으로 만들 것이라고 비판을 하면서 지들은 학교 교직원들을 정치집회에 동원한다. 그것도 교총이 공문 내리고 사학 재단이 엄포를 놓으면서 조직적으로 동원한다. 종교 지도자가 신도를 동원하고 서울 시장이라는 자가 편의 제공을 한다. 도대체 이 사람들, 뭘 주장하고 싶은 건가?
그들의 주장 속에는 학생이 없다. 교육개혁, 사학개혁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 학생이라는 존재가 그들에게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정부 지원금 받지 않을 테니까 등록금 올리는 거 말리지 말라고 주장하는 사학재단 관계자들의 일성은 바로 그들이 사는 법이 무엇인지를 적실하게 보여주는 모습이다. 그들에게 학생은 돈벌이의 수단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렇게 우리의 학생들은 자신들이 당사자가 되어야 하는 문제에서조차 소외당한다.
구국의 일념으로 엄동설한에 거리로 튀어나온 한나라당 여러분, 오늘로서 서울에서의 구국운동은 막을 내린단다. 다음 주에는 부산으로 가겠단다. 아무래도 서울보다는 부산이 따뜻하겠지. 가서 부산 자갈치 어시장에서 회라도 한접시씩 하시면서 열심히 구국하시기 바란다. 그러나 거기서는 동원령 내리기 힘들 거다. 오늘처럼 만여명이 넘는 인원이 몰려나올 것을 기대하기는 정말 어려울 것이다. 가서 오손 도손 여러분들끼리 잘 놀다 오는 것이 좋겠다. 다시 한 번 부탁하건데, 괜히 학교 교사들 동원하고 신도들 동원하는 짓은 좀 하지 말길 바란다. 그 사람들이 당신들의 이익을 위한 동원의 수단으로 이용될 이유는 어디에도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