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펌질
간만에 좋은 글 하나 발견~!
펌질 왠만하면 하지 않으려 했는데, 오늘 함 해보자.
한 칼럼니스트가 "주민등록번호, 유비쿼터스 관리 사회로의 초대"라는 제목으로 글을 실었다. 읽어볼만하다. 물론 여기 오시는 많은 분들, 다 아는 이야기 뭘 새삼스럽게 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그래도 또 보자. 뭐가 문젠지.
주민등록번호, 유비쿼터스 관리 사회로의 초대
김국현 (컬럼니스트)
2005/06/21
일부에게는 당연해 보이는 것이 전체에게는 의외인 경우가 있다. 우리의 주민등록제도는 한국민에게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해 보이지만, 세계인 들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제도 중 하나다.
미국에도 사회보장번호(SSN)가 있고, 일본에도 주민기본대장이 있지만, 관리적 효율성을 지닌 통제적 번호 체계로서 우리의 주민등록제도는 독보적이다. 현대사회에서 국민이라는 오브젝트로 생성된 이상 식별자가 붙는 일은 피해가기 힘든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주민등록 제도가 유별난 점은 그것이 거부할 수 없는 고유식별자가 된다는 점이다.
주민등록번호는 그 자체가 쉽게 판독 가능한 수치이다. 자신의 나이와 성별, 출생지가 드러난다. 더 치명적인 것은 누구나 이 번호를 달게 된다는 점. 주민등록번호는 한 개인에 대한 정보의 데이터베이스화에 있어 매우 효과적인 '프라이머리 키'가 된다. 따라서 주민등록번호만 안다면 인터넷의 데이터베이스를 누비며 개인정보를 망라적으로 ‘조인(join)’해 오는 것이 이론상 가능해진다.
우리가 향유하는 편리함은 기록이라는 부산물을 남긴다. 그 기록은 모여서 개인의 궤적이 되고, 그 궤적은 하나의 꼬치에 꿰이게 된다. 주민등록번호라는 고유식별자가 바로 그 꼬치이다.
그런데 이 키 값이 마치 이름처럼 사용되고 있다. 정부기관도 아닌 사설 기업의 출입시에도 보안을 이유로 주민등록번호를 적어야 하고, 심지어 각종 쿠폰 및 경품권에까지 기재를 강요 받는다. 공개 게시판조차도 회원 가입시 주민등록번호를 받는다. 아무 거리낌 없이 번호를 내어주고 또 상대도 아무 책임감 없이 번호를 수집한다. 그러면서 이율배반적으로 많은 상황에 있어 암호 대용으로 이 번호가 쓰이고 있다.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만 대면 알아낼 수 있는 정보는 너무나 많다.
일부 몰상식한 보험 사이트 중에는, 주민등록번호만 입력하면 실명, 차번호, 차종, 소유이력까지 아무런 제한 없이 보여주는 곳도 있다. 여기서 느껴지는 두려움은 시작일 뿐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주민등록번호를 인터넷의 데이터베이스 곳곳에 삽입해 버렸다. 그 번호를 키로 하는 나의 정보가 곳곳에서 증식 중이다. 나의 취향, 나의 행동 패턴, 나의 관심사, 나의 친구들 등등. 주민등록번호로 '땅겨올 수 있는' 개인 정보의 양은 갈수록 커져 간다.
이 모든 일이 중복 가입을 막고, 실명제를 정착하기 위한 것이라 한다. 그렇지만 미국, 영국, 일본, 중국 어느 사이트를 가보아도 회원 등록에 자신의 바코드를 내보여야 하는 곳은 없다. 전세계에 유래가 없는 행태가 너무나도 태연하고 자연스럽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자는 문화적 특성 운운하며 깨끗한 인터넷을 위해 1인 1ID에 입각한 실명제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의 이면에는 하나의 믿음이 있다. 현실과 가상에 변치 않는 링크가 존재해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개인의 존재는 네트워크 상의 데이터에 완전히 쌍방향으로 링크되어 고착된다. 현실에서의 나의 삶, 나의 흔적은 네트워크에 그대로 복제되며, 인터넷 상에서 드러난 나의 취향, 나의 생각 들은 현실에 그대로 적용되어야 한다. 그래야 현실을 통제하는 이들의 마음이 편해진다. 가상 세계도 그렇게 지배하고 싶으니까. 그 매개체로 고유식별자인 주민등록번호처럼 손쉬운 것은 없다.
RFID 물류 혁명론은 전세계의 모든 사물에 고유식별자가 붙게 되어 그 생산에서 유통, 폐기까지 어느 시점에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파악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무단 투기된 쓰레기를 주워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해 보면, 누구의 어떤 신용카드로 구매된 물건인지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관리 능력이야 말로 바로 고유식별자의 힘이다.
IT업계만 보아도 고유식별자가 얼마나 많은 반발을 샀는지 알 수 있다. 인텔은 펜티엄3에 PSN(Processor Serial Number)을 도입했지만 보이콧에 놀라 조용히 거두어 들였다. 윈도우 미디어 플레이어의 '콘텐츠 공급자에게 고유 플레이어 ID 보내기' 옵션은 거부감을 샀다. IPv6의 IP에 기본적으로 MAC 어드레스가 박혀 추적가능성이 높아지는데 대한 우려 또한 고유식별자에 대한 두려움의 일종이다.
주민등록번호의 유용을 막아 줄 개인정보보호법의 제정이 추진중인 것은 환영할만 하지만, 지난 5월 헌법재판소는 주민등록증 발급시 열 손가락의 지문을 찍는 것은 합헌이라고 판결했다. "주민등록증 제도는 행정사무의 효율적 처리 외에 치안 유지, 국가 안보도 고려된 것으로 지문 수집으로 인한 인권침해가 공익목적에 비해 크다고 보이지 않는다"며 주민등록제도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을 했다. 우리가 이런 상황일진데, 과거 재일동포의 지문날인과, 현재 미국 입국장의 지문 스캐닝에 대해 무어라 말할 수 있을까?
군사정권의 공안 논리에 의해 탄생된 일종의 바코드, 주민등록번호. 등록되지 않으면 불심한 사람으로 몰릴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일까, 지문 날인도 마다하지 않는 우리는 아예 이에 길들여진 듯 우리 스스로 사회의 모든 시스템을 그 번호를 중심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민증을 까고' 있다. 내 자신의 실마리를 아무에게나 내어 주고 있는 것이다. 주민등록번호 유용이 만연해질수록 새로운 용도가 생겨나는 악순환은 꼬리를 문다. 개인 정보는 자연스럽게 생체 정보로 이어진다. 우리는 주민등록번호를 받기 위해 사진을 촬영하고 열손가락의 지문을 날인했다. 공적으로 채취한 지문뿐이 아니다. 정맥, 홍채 등 다양한 생체 인식기가 창궐하게 되고, 이들이 또 다시 주민등록번호에 연결된다면, 이미 이 땅에 존재하는 수많은 정보들과 무시무시한 '조인'이 가능할 것이다. 편의주의적 발상의 말로이자, 유비쿼터스적 악몽이다.
출입구에 손가락을 대면 "귀하는 의료기록상 간염 보균자이시며, 최근 채납사실이 있으므로, 본 청사에는 입장하실 수 없습니다."라는 기계음이 우리를 맞을지 모른다. "남편의 주민등록번호만 주세요. 온오프라인의 모든 행적을 알려드리지요"라며 사이버흥신소가 말을 걸어 오지 않으리라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