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구라6. "연방제에 준하는 분권형 지방자치"?
지난 대통령 개헌안에서 주목할만한 점 한 가지는 지방자치를 강조/ 강화한 부분이었다. 우선 헌법 전문에 "자치와 분권을 강화하고", "지역 간 균형발전을 도모하고"라는 구절이 삽입되었다. 한편 지방자치와 관련한 본문의 규정을 상당히 세분화하면서 그 기준을 명확히 했다.
현행 헌법은 제8장 지방자치의 장에서 제117조와 제118조 두 조문을 두었고, 각각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에 대해 규정하였다. 이 두 규정에 따라 자치단체 별로 조례를 만들 수 있고, 일단의 자치행정을 수행할 수 있다.
개정안에는 이를 더 세분화했다. 주민발안, 주민투표, 주민소환에 대한 사항을 헌법사항으로 규정했다. 사무배분에 있어 지방정부 우선의 원칙이 천명되었다. 지방의회의 구성, 지방정부의 유형, 장의 선임 등에 대한 사항이 일률적으로 공직선거법에 의하는 현행 제도와 달리, 그 내용을 조례로서 자치단체 별로 다양하게 만들 수 있는 여지를 두었다.
권리제한이나 의무부과가 아닌 경우 법률에 위임이 되지 않았더라도 법률을 위반하지 않는 범위에서 조례의 제정이 가능하도록 그 범위를 확장했다. 또한 재정자치에 대한 원칙도 규정하였다. 현행 헌법체계보다 한층 진일보한 내용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이러한 헌법규정들이 과연 문재인 정부가 공약으로 내걸었던 "연방제에 준하는 분권형 지방자치"에 걸맞은 수준인지는 의문이다.
주민자치에서 직접민주제적 요소를 천명한 건 실제로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현행 제도들을 헌법적으로 승인한 것에 불과하다. 달리 이야기하면, 굳이 헌법의 규정이 없더라도 지방자치차원에서 이미 그 정신이 확인되었고 제도적으로 정비되어 있는 사안인 것이다. 조례의 자치 가능성을 더 확장할 필요도 있었으나, 개정안의 수준이 현행 헌법의 수준과 크게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제정 또한 마찬가진데, 기실 얼마나 지방정부의 조세재량권을 확대한 것인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재정조정의 기준을 지방정부의 독립적 행정행위에 부합할 수 있을 정도로 조정했는지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여전히 각 내용은 법률에 위임되어 있고, 그 법률을 만드는 주체는 어차피 국회다. 헌법 개정안이 "연방제에 준하는 분권형 지방자치"의 수준을 보여주고 있는지 의문인 이유다.
사실 이 사안에는 헌법의 규정이나 법률의 규정보다 먼저 따져봐야 할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지방이 과연 "연방제에 준하는 분권형 지방자치"를 주도할 역량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개헌이 설왕설래하고 있을 당시, 서울지역 각 기초단체에서는 희안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동사무소에서난 공무원들이 연판장을 만들어 내방하는 민원인들에게 서명을 받고 있었는데, 다름 아니라 분권형 지방자치를 내용으로 하는 개헌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이었다.
공무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런 서명운동을 하는 경우를 처음 보는 지라 신기하기도 했다. 그런데 서울 지역 이곳 저곳에서 보이던 이런 서명운동은 수도권 밖에서는 볼 수 없었다. 공무원들이 죄다 분권형 개헌을 원하는 게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온 천지 주민센터를 다 돌아본 것이 아닌지라 확신할 수는 없지만.
게다가 주민들의 반응도 썩 좋진 않았다. 사는 동네에서 악성민원인으로 구청 공무원 사이에 악명이 높은 한 분은 "연방제에 준하는 분권형 지방자치"를 사정 모르는 헛소리라고 했다. 그냥반의 평에 따르면, 이런 개헌은 분권자치를 할 수준이 안 되는 공직자들이 중앙정부의 견제를 벗어난 권력을 누리는데 이용될 뿐이라는 거. 또는 지방 유지들과 지방자치단체의 유착을 쉽게 만들어줄 가능성이 높아서 반대한다는 거다.
이냥반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할 건 아니겠지만, 여기엔 모종의 진실이 겹쳐져 있다. 즉 분권형 지방자치에 걸맞은 나름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지역이 상당하다는 거다. 주체의 수준도 그렇지만, 그보다는 재정자립도라든가 지방자치에 대한 주민의 이해도라든가 하는 기본적 조건이 어느정도나 성숙되어 있는지 모르겠다, 혹은 부족하다는 거.
아니 뭐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게 어느 정도 기초만 있으면 일단 해볼 거 다 해봐야 하는 거지, 수준이 어느 정도 돼야 할 수 있다고 하면 어느 천년에 해보겠냐는 비판이 가능하다. 그래서 비록 지금 보면 아무리 밑천이 달랑달랑 하는 수준이라고 할지라도 개헌이 되었든 법률 정비가 되었든 간에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동원해서 지방자치를 보장하는 게 맞는 방안임에는 분명하다.
동시에 지방자치가 장차 "연방제에 준하는 분권형 지방자치"로 가기 위해선, 아니 그걸 넘어서 연방제 체제로 갈 수 있을 정도로, 뭐 더 나가면 아예 각 지방이 자주독립해버리는 일도 가능할 수 있을 정도로 지방자치의 수준을 올려놓기 위해서는 개헌이나 법률정비와 동시에 교육, 문화, 정치 등 각 분야에서 질적 기초를 다지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정당을 이야기할 때 다시 언급하게 되겠지만, 지방자치의 핵심은 지방정치다. 현재 한국의 정치풍토는 지방정치는 지방자치행정의 한 부분 정도로 치부되는 듯하다. 전국단위의 정치는 쓸데없이 과잉팽창하는데, 정작 풀뿌리 운운하면서 가장 생활밀접형 정치가 이루어지는 지방의 정치에 대해선 별 거 아닌 것처럼 치부하는가?
기실 헌법은 지방정치에 대해선 별다른 입장을 갖지 않고 있으며, 대통령 개헌안 역시 지방정치에 대해 현행 헌법 이상의 어던 걸 내놓지 않고 있다. 지방정치를 활성화하지 않은 채 행정 중심의 지방자치를 강조하는 한 결국 중앙정부에 예속적인 지방정부의 지위를 극적으로 개선할 수 없다.
지방자치의 핵심은 중앙정부와 견제 및 균형의 관계를 정립할 수 있는 지방정치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