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잘데기 없는 법들의 이야기 - 자원봉사활동기본법
지난 번에 '인성교육진흥법'이라는 법을 언급한 적이 있다. 입법기관이 법을 그냥 재미삼아 만드는 게 아닌가 싶은 법들이 꽤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인성교육진흥법이었다. 문제는 이렇게 법을 만들어 놓으면 법이 기능을 한다는 거다.
만들어놓은 법은 가만 있는 법이 없다. 가만 있는 것 같아도 언젠가는 그 법이 제 이름값을 한다. 국가보안법이 없는 듯해도 여전히 그 강력한 힘을 발동하고 있듯. 다른 법도 마찬가지다. 쓰잘데기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법을 만들어놓으면 주무부처가 예산과 인력을 배치하게 되고, 그에 따라 돈과 정책이 움직이며, 여기엔 당연하게도 이해관계가 있는 당사자들이 달라 붙게 된다.
그래서 이런 법들은 결국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가? 소위 '눈 먼 돈'들을 약삭빠른 이해관계자들의 주머니에 꽂아주게 되고, 이런 관계를 이용해 주무부처는 권력을 휘두르게 된다. 국민들은 멀쩡하게 눈 뜨고 있다가 세금은 세금대로 뜯기고, 현장의 실무자들은 왜 이따위 짓을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까라면 까고 갈아 넣으라면 갈아 넣어야 한다. 반면 법 덕분에 돈줄 늘어난 이해관계자들은 노나고, 관리감독권 휘두르는 맛에 관료들은 신나는 게 이 법들이 만들어내는 요지경 세상사다.
그런 법 중에 '자원봉사활동 기본법'이라는 게 있다. 2005년에 제정되었다. 법 제3조 제1호는 “자원봉사활동”이란 개인 또는 단체가 지역사회ㆍ국가 및 인류사회를 위하여 대가 없이 자발적으로 시간과 노력을 제공하는 행위라고 규정한다. 이러한 자원봉사활동과 그 '봉사자'들의 지원 등에 대한 규정을 둔 법이 이 기본법이다.
그런데 법 제2조 제2호에서 자원봉사활동은 무보수성, 자발성, 공익성, 비영리성, 비정파성(非政派性), 비종파성(非宗派性)의 원칙 아래 수행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부터 삑사리가 나기 시작한다. 이런 성격의 자원봉사활동이라면 굳이 왜 국가가 '기본법'을 제정하여 관리해야 하는가? 아니, 그 이전에 이런 성격의 자원봉사라는 게 가능한가?
법 제7조는 기본법의 적용을 받는 자원봉사활동의 범위를 열거하고 있는데, 그 범위가 상당히 넓다. 예를 들면 동조 제6호는 "인권 옹호 및 평화 구현에 관한 활동"을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 활동이 과연 정파성을 떠나서 이루어질 수 있을까? 제3호는 "환경보전 및 자연보호에 관한 활동"을 규정하고 있다. 이 활동이 과연 정파성을 떠나서 이루어질 수 있을까?
이 법은 제5조에서 자원봉사단체나 센터가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의 선거운동을 못하게 함으로써 마치 봉사활동 자체는 정치적 중립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걸 강조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법 전체의 구조로 보면, 이건 그냥 무보수 관변조직 육성법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이 법에 따라 만들어진 무슨 진흥위원회라든가 협의회는 '돈쭐'이 나겠지만.
이 법에서 유일하게 바람직한 국가적 책무를 규정한 조항이라면 제12조 포상규정 뿐이다. 국가가 할 일은 사회의 안녕유지에 현저한 공을 끼친 '자원봉사활동', '자원봉사자'에게 감사를 표하는 것으로 족하다. 이걸 뭐 이런저런 정의와 규정을 만들어서 법으로 관리한다는 자체가 '자원봉사'와는 거리가 멀다.
가끔 보면 정부나 국회는 자원(自願)을 자원(資源)으로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하긴 학생들이 수행하는 자원봉사를 가장한 무급노력동원을 스펙으로 취급하는 나라에서 뭘 더 바라겠냐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