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포인트 개헌과 심재철의 자학개그
전에 언급해놓은 적이 있었구나.
문정권이 대선공약으로 개헌을 내걸면서 "제헌에 준하는 개헌"을 운운할 때, 그거 해봐야 안 된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아, 뭐 논문도 그런 취지로 쓰긴 했다만 어차피 논문이라고 해봐야 작성자와 심사위원만 보는 거니 뭐 별 반향이 있을 턱이 없고.
논문은 현 단계 개헌이 이루어질 수 없는 이유를 개헌주체의 문제를 통해 확인했지만, 그 외에 "제헌에 준하는 개헌"이 안 된다고 한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그런 정도로 전면개헌을 하기엔 한국사회가 너무나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안정적"이라는 건 찬반 양측의 입장에 대등해서 어느 한 쪽으로 확 기울지 않았다는 걸 이야기한다. 표현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이 모순적인 표현이 전면개헌의 불가능성을 배태하고 있는 현 상황을 그럭저럭 잘 설명해준다고 생각한다.
전면적 개헌이라는 게 얼마나 전면적이냐는 둘째 치고, 개헌 그 자체는 중차대한 사회적 변화가 있다는 걸 의미한다. 뭔가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 어떤 상황이 도래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장기집권을 위한 욕망에서 기인했든 혁명에 버금가는 민중의 봉기에 의한 것이든 간에.
그런 일이 없는 상태에서 헌법 전문에서부터 맨 마지막까지 주르륵 훑고 지나갈 정도의 개정을 한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 언제나 이야기하지만, 한국사회에서는 철의 35%가 있다. 나라가 망해도 핑크를 찍겠다는 사람들 말이다. 독재정권이라면 입에 재갈을 물리고서라도 개헌을 하겠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불가능하다. 적어도 한국의 민주주의는 그런 짓은 할 수 없을 정도로 유지되고 있다.
그래서 정 개헌을 하고 싶다면, 국민발안제/국민투표제만 가지고 원포인트 개헌을 하는 게 가장 현실성 있고 바람직하다는 게 내 지론이었다. 하지만 그런 원포인트 개헌이 개헌안이라도 국회에 올라갈 수 있을지에 대해선 의문이었다. 아, 미리 말하지만 난 그 '직접민주주의'나 '국민발안, 국민투표, 국민소환' 3종 세트를 무슨 진보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그건 절차적 민주주의를 건전하게 유지하는 하나의 원리이다. 암튼.
그런데 그렇게 불가능하리라 생각했던 일이 20대 국회 말미에 이루어졌다. "국민개헌안발의->국민투표"를 내용으로 하는 개헌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거다. 지난 3월 6일 여야의원 148명이 이런 헌법개정안을 발의한 거다. 이 안건은 "본회의 부의 안건"이다.
연합뉴스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듯, 이 안건을 본회의에서 처리하지 않으면 위헌이 된다.
연합뉴스: 문의장, '국민발안 개헌안' 관련 5월 8일 마지막 본회의 검토(종합)
20대 국회는 헌법 129조와 130조 1항에 따라 반드시 이 건을 임기내 처리해야 한다. 20대 국회가 아무리 개판이었더라도 위헌국회가 되어선 안 될 거다. 하지만 한겨레 성한용 기자의 기사를 보면 이게 난항을 겪고 있단다.
한겨레: 김무성 의원, 개헌 발의만 하고 의결은 안 하나
이유는 심재철 같은 자가 민주노총이 '노동자공화국' 개헌도 할 수 있어 이 나라를 빨갱이들로부터 지키기 위해선 이런 개헌안을 처리해선 안된다고 막아서고 있어서란다. 이 작자는 어떻게 말년에 이렇게 자학개그로 사람들을 웃길라고 작정을 하고 사는지 모르겠다.
민주노총 100만 조합원이 겁난다고? 아유, 난 오히려 전경련-경총-자유총연맹-재향군인회 커넥션이 더 겁난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직접민주주의가 조심스러운 거다. 이런 반민주적 커넥션이 돈과 쪽수로 민주주의적 절차를 통해 민주주의를 형해화시킬 수 있어서다.
사실 이런 게 겁나면 나같은 사람은 오히려 저 커넥션이 두려워서라도 국민발안/국민투표는 반대할만하다. 하지만 국민발안/국민투표는 그 위험성만큼이나 시도의 가치가 있는 제도라고 생각하니까 찬성한다. 싫으면 반대하면 되는 거고. 하지만 반대를 하더라도 절차는 지켜야하지 않나? 지들이 빨갱이로부터 지켜내고 이토록 사랑하며 가꾸는 조국의 헌법이 그렇게 하라고 시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