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구호수당이냐 감세냐로 갈리나?
경제가 난장판이 되니 묘법이 속출한다. 그런데 그 묘법들은 결국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돈을 풀거냐 덜 거둘거냐. 앞의 것은 재난구호수당(속칭 재난기본소득)을 현찰로 풀자는 거고, 뒤의 것은 세금을 감면해서 주머니에서 돈이 덜 빠져나가도록 해주자는 거다. 얼핏 보면 둘 다 개인적 필요에 따라 현찰을 돌릴 수 있는 여지를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비슷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둘의 성격은 완전히 다른데, 그 이유는 그 현찰 든 주머니가 누구 주머니냐가 다르기 때문이다.
돈 풀자는 이야기는 많이 봤으니 덜 걷자는 주장들을 보자. 특히 요즘 부상하고 있는 4대 보험료 감면 문제를 중점적으로 보도록 하자. 대충 구글 한 번 돌리기만 해도 세금 줄여달라는 목소리가 도처에서 나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미 정부차원에서도 고용노동부가 관광운송업 등 4개 업종을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했는데, 이 지원 주요 내용에 기업이 부담하는 4대 보험을 유예하는 안이 들어 있다. 정부는 이미 군산에 대해 고용위기지역 지정연장을 해 지원을 계속하기로 했고, 이 지원에는 지역 기업에 대한 4대보험 연장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국회차원에서도 수출기업, 중소기업, 소상공인의 고용보험 등 4대 보험을 지원하는 논의가 진행되는 중이다. 지방정부에 대한 지원에도 이 내용이 들어가 있으며, 전국상공회의소를 비롯하여 인천과 평택 등 지방 상공회의소에서도 4대보험 지원 내지 유예 요청이 쇄도한다. 덩달아 기초지방의회에서도 4대보험 감면 내지 유예를 논의하고 있다. 업종을 가리지 않고 요구가 나오고도 있는데, 예를 들면 수목원 같은 곳에서도 좀 봐달라고 하소연을 하고 있다.
이처럼 4대 보험 유예 내지 지원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어디서 나오는지 보면 대부분 자본측이다. 이런 요구들을 보면 기실 봉급쟁이들의 주머니에서 빠져나가는 건 그대로 둔 채 사업주 부담분을 감면 내지 유예나 지원해달라는 이야기들이다. 문제는 이렇게 한 번 후퇴한 조세기준은 되돌리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전시사변에 준하는 상황이 발생해서 국가가 채찍질을 해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하기 전에는 힘들다. 한 번 올린 세금 내리기는 쉽지만 한 번 내린 세금 올리는 건 하늘의 별따기라는 거.
일정하게 사업자 부담분을 정하고 있는 4대 보험 같은 경우에는 그 부담분을 어떻게 조정하느냐의 문제가 거의 계급투쟁의 수준에서 첨예하게 대립하는 쟁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언제나 바람만 불어도 화들짝 놀라면서 사업주 쪽에서는 4대 보험 부담때문에 허리가 휜다고 엄살을 떨게 되어 있다. 반대로 서민들의 입장에서는 혹시나 혜택이 줄어들지나 않을까 안달복달 할 수밖에 없게 되고.
그런데 최근 '노동당'에서 4대 보험 납부유예 등 지원책을 시행하라는 논평을 냈다.
노동당: 4대보험료 납부유예 등 즉각적인 지원책을 실시하라
노동당은 기업주의 부담분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주로 노동자들의 부담분에 대해 이를 유예하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더불어 영세자영업자의 부담분을 덜어주라는 이야기도 하고 있다. 그런데 이거 좀 아다리가 안 맞는 이야기다.
논평에서는 영세자영업자 외의 기업주에 대한 이야기는 나와있지 않지만, 4대 보험 납부유예나 지원 등에 대해서는 이미 자본쪽에서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던 사안이다. 이런 때에 노동자의 부담분을 줄이거나 유예하자는 이야기는 자본쪽에서도 얼씨구 하고 받을 가능성이 더 크다. 노동당에서야 그런 거 바라지 않겠지만, 예컨대 대한상의 같은 곳에서 봐라, 노동쪽에서도 요구하고 있지 않니? 그러니 노동쪽도 줄이되 우리도 줄이자, 이렇게 나올 수도 있다는 거다.
정부는 난색을 표할 거고, 4대 보험은 아마 엉망이 될 거다. 결국 이건 그다지 바람직한 대안이라고 하기가 어렵다. 내용적으로도 그렇지만 정치적으로도 아주 안 좋다.
논평은 임대료 문제도 거론하고 있던데, 아니 이런 기회에 말여, 부동산 사회화 뭐 이런 거 좀 주장할 수 없나? 어차피 돈이 안 돌면 임차인들이 돈을 못 벌고 ---> 그럼 임차인들이 임대료를 내지 못하고 ---> 임대인들은 임대료를 받지 못하니 건물 소유에 대한 메리트가 없고 ---> 그래도 어쨌든 세상은 돌아가고 ---> 그렇다면 까이꺼 부동산의 소유 점유 행사의 권한을 사회화한들 세상 돌아가는데 아무 문제 없지 않나?
아, 이거 방구석에만 틀어박혀 있었더니 공상이 망상이 되어가나보다. ㅎ
좀 오래된 이야긴데, '강달프'라는 닉네임을 얻으면서 명성을 떨쳤던 강기갑이라고 하는 의원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17대 국회 말년에 뭔 짓을 했냐면, 연안어업종사자들의 건강보험료를 면제하는 법률안을 내겠다고 난리를 친 적이 있다. 당연히 정책위에서는 당론에 배치되는 방향이며, 내용적으로도 합리적이지 않다고 반려했다. 그랬더니 뜬금없이 민주노총과 단체에서 사람 데려와 항의를 하게 만들고 난장판을 벌인 적이 있다. 그 바람에 복지정책을 담당하던 연구원들이 반발해서 사직을 해버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