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의 정의를 바꿀 때가 된 거 아닌가
코로나19로 인해 난리가 아닌 게 없지만서도, 결국 문제는 먹고 사는 거다. 먹고 사는 일들이 곳곳에서 막히게 되니 난리가 더 심해진다. 특히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에게 하루 일거리가 몇 달째 사라진다는 건 그냥 굶어 죽으라는 이야기가 된다. 이런 사람들은 코로나19에 감염되 죽을 확률보다는 굶어 죽을 확률이 더 높아지므로 그놈의 사회적 거리두긴지 뭔지 백날 해봐야 귓등으로도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심심찮게 나오는 이야기가 '재난기본소득'이다. 일단 현찰부터 꽂아줘서 먹고 사는 문제부터 해결해놓고 시작하자는 거다. 보아하니 이걸 두고 갑론을박이 한참이다. 어차피 모든 게 다 멈춰버리는 시기에 현찰이 중요한 게 아니라 바로 뱃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걸 뿌려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지라 '재난기본소득'이 효과적일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발등에 떨어진 불은 어떻게든 끄고 봐야 하는 법이니 그것도 한 방법일 수 있겠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이 와중에 벌어지는 논쟁은, 이게 기본소득이냐 아니냐, 기본소득이 좋은 거냐 나쁜 거냐 뭐 이런 식으로 계속 흘러가는 듯하다. 나중에 각잡고 이야기할 일이 있겠지만 지금은 잡던 각도 풀어야 할 시기가 아닌가 싶어 이런 논쟁들이 좀 얼척없다고나 할까. 암튼 그런데.
기실 이런 논쟁을 해소하는 건 아주 간단하다. 그동안 이야기되어왔던 '기본소득'의 개념을 바꾸면 된다. 기본소득은 보편성, 무조건성, 개별성, 충분성, 정기성, 현금지급의 원리로 이루어져 있다고 기본소득론자들이 그동안 주장해왔다. 기본소득이 다른 여타의 복지제도와 비교하여 훨씬 경쟁력 있고 효과적인 제도일 수 있는 이유가 이런 원리들에서 나온다는 거다. 그런데 현실은 개폭망인데, 이런 원리들이 제대로 지켜지는 기본소득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으며, 나는 앞으로도 이런 원리들이 관철되는 기본소득이라는 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수도 없이 이야기했고, 뭐 앞으로도 이야기하겠지만 지금은 패스하고.
아무튼 원리야 그럴싸하지만 실현은 망상이다보니 원리에 약간은 어긋나도 대충 현찰지급하는 게 있으면 거기에 죄다 '기본소득'이라는 이름을 갖다 붙이는 게 유행이 되어버렸다. 좌나 우나 개나 소나 뭐 다 기본소득 이야기하는 세상이 되어버린 거다. 그런데 요새 이야기되는 기본소득이라는 건 그냥 과거 우리가 통상 '수당'이라고 했던 것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 오히려 원래의 '기본소득'이라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그런데도 그냥 기본소득이라는 이름을 쌔려 붙인다. 이러니 혼란이 가중된다.
그렇다면 이제 그냥 사회적으로 합의를 좀 하자. 여타의 이유와 목적으로 일정하게 현찰을 직접 지급하는 모든 사회복지제도를 그냥 '기본소득'이라고 하는 거다. 쉽게 말하면 예전에 무슨무슨 수당이라고 했던 것의 이름을 그냥 다 '기본소득'으로 바꾸자는 거다. 얼마나 쉬운가? 이름이 뭐가 문젠가? 뭣이 중헌디?
물론 이렇게 되도 약간의 논쟁은 있을 거다. 기존에 '수당'에 대한 고민과 연구를 많이 했던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그 정의에도 맞지 않은 용어를 편의상 갖다 붙이는 게 탐탁치도 않을 뿐더러 명확한 개념을 이해하는데도 방해가 된다고 생각할 거다. 반대로 '기본소득'이라는 것에 천착해왔던 사람들은 이러다가 원래 의미의 기본소득마저도 형해화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에 화가 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대중들은 다르다. 당장 굶어죽게생겼는데 이것들이 무슨 수당이니 기본소득이니 귀신 씨나락까먹는 소리만 하고 자빠져 있냐고 할 거다. 일단 살고 봐야 그말이 적당한 말인지 따질 시간도 오는 거지 다 죽은 다음에 그게 기본소득이라고 이름이 붙든 수당이라고 이름이 붙든 뭔 소용이냐?
난 '재난기본소득' 역시 썩 좋은 생각이라고 보진 않는다. 현찰도 줘야하는 건 맞지만 현찰 전에 사람들이 우왕좌왕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마스크 사려고 줄 서있는 저 사람들이 저렇게 긴 줄 서지 않도록 할 방법부터 필요한 거다. 현찰 나눠준다고 저 줄이 줄어들겠는가?
사회적 거리커녕 사람얼굴 구경도 잘 못한 채 방콕하고 있는 백수도 당장 알바 하나 못하고 버티면서 빚갚으라고 날라오는 고지서보면 그렇잖아도 약한 심장이 덜컹덜컹 내려 앉는다. 현찰 주면 고맙지. 그거 받으면 일단 각종 고지서부터 어떻게 정산하고... 코로나19가 언제 잠잠해질지 모르겠지만 얘들이 알콜에 약하다던데 어디 알콜로 내장소독시켜줄 사람 없나. 아, 아니다. 어제 의사가 술 더 마시면 위험하다고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