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재난학교가 될까?
문화인류학을 전공해볼까 한다. 이렇게 생각나는 대로 의식의 흐름에 맡겨 말을 해도 '학'이 되고 언론 지면이 할애되는 그런 전공을 했어야 했다.
경향신문: [조한혜정의 마을에서] 푹 쉰 후 슬슬 재난학교를 만들자
이분이 평상시 하시는 말씀들의 품이 늘 그러했지만, 이번 칼럼은 특히 더 심각하다. 노학자의 달관에서 오는 여유라고 보기엔 글의 주제와 내용이 그리 한가하진 않은데.
세 가지 제안에 대한 의문은 이런 거다. 첫째, 한 석달 푹 쉬자는 주장. 누가 뭘 어떻게 쉬자는 건가? 그냥 일상에서 어쩌다 한 번 하게 되는 '모임'을 쉬자는 건가? 그 정도라면 굳이 뭘 쉬고 자시고 할 것도 아니고. 아무리 봐도 맥락상 먹고 사는 일을 쉬자고 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글은 얼핏보면 일이고 뭐고 다 쉬자는 취지로 보인다. 전자라면 하나마나 한 소리고 후자라면 이게 다 굶어 죽자는 말과 어떻게 다른지 의문이다.
그런 의문이 들까봐 두 번째 제안을 기본소득 주자는 것으로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아카데미 시상식의 풍경이 기본소득으로 이어지는 인과관계를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문화인류학적으로는 그런지 몰라도 내 기준에서 봤을 때는 그렇다. 아카데미상 시상식에 앉아 있던 나이든 백인 남성 감독들을 보면 기본소득이 떠오르는 건가? 게다가 지금의 난맥상에 비추어 필요한 건 현금이 아니라 현물이다. 마스크와 손세정제 등은 물론 생필품이 필요하다. 어떻게 이 대목에서 기본소득이 떠오를 수 있을까?
세번째 제시된 대안이 재난학교다. 뭐지? 민방위교육을 연령 불문 전 국민으로 확대한다는 취지인가? 뭐 좋다. 기껏해봐야 전역한 군간부들 먹고 살 길 마련해주는 취지로 운영되는 민방위교육의 체제를 개편하여 재난안전교육으로 전환할 수도 있다. 거기서 조한선생이 말하는 각종 학교들도 읽히고 손 소독제도 만들어보고 그러면 진짜 좋겠다. 그런데 그게 갑자기 도시재생과 마을사업으로 이어지는 메커니즘은 어디서 튀어나오는 건가?
거기다가 특히 서울이 그 대상이 되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국가가 아닌 서울? 재난학교가 서울을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매력적인 도시"로 만드나? 그리고 여기에 왜 굳이 "봉준호 감독이 일으킨 돌풍을 재난을 직시하는 글로벌 캠퍼스로 받아 안을 수 있다면"이라는 가정이 끼어들까? 봉준호의 아카데미 '돌풍'이 이분에게 어떤 영감을 주었는지는 모르겠는데, 문화인류학을 전공하면 뭔가 범상한 사람들은 깨달을 수 없는 어떤 다른 차원의 시야가 열리는 걸까? 부럽다.
그런 의미에서 난 조한 선생이 이야기하는 '재난학교'의 상이 전혀 그려지질 않는다. 차라리 그보다는 이분이 손자 손녀들을 무릎에 앉혀 놓고, 녹색과 생태를 옛날 이야기하듯 말해주는 광경이 더 그럴싸하게 떠오른다. 내 영감의 한계가 거기까진지 모르겠다. 봉준호와 아카데미와 코로나19와 기본소득이 연결되는 그 어마어마한 상상력이 내겐 없어서 그런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