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체제의 정체성 문제
이 기사의 분석이 실제로도 그러하다면, 중국의 체제를 뭐라고 해야할지가 너무나 명확해진다.
경향신문: [구정은의 '수상한 GPS'] 중국의 홍콩 탄압, 그 배경엔 '광저우의 불안'
중국이나 조선처럼, 스스로를 사회주의국가, 즉 노동자가 주인된 국가로 자처하는 국가들에는 노동조합이 없다. 다만 지역, 성별, 계층 등 다양한 노동조직들이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이 간혹 노동조합의 역할을 대신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역할이라는 건 무노조 삼성에서 운영되었던 노사협의회 수준만큼도 못된다. 거의 대부분의 경우, 노동자들의 처우개선 등 노동권의 확보와 보장보다는 당 중앙의 지침을 전파하고 이에 따른 노선'투쟁'(생산력 증대 등)을 주도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다보니 이들 중국과 조선의 노동조직들은 국가기구의 일부로서 국가주의를 공고히하는 첨병의 위치에 있기 십상이다.
기실 이러한 조선과 중국의 노동조직(기구)에 대한 분석과 판단 및 대안을 논의하는 경우는 한국에서 거의 보질 못했다. 당장 민주노동당이 원내진출했던 당시, 개성공단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 있는가 없는가라는 문제에 대해 민주노동당 내에서조차 명확한 입장과 대안을 만들어내지 못한 채 nl과 좌파 간 진영투쟁만 벌어지고 말았던 적이 있다.
노동자가 주인이 된 사회, 노동계급이 생산수단을 장악하고 있는 사회에서 노동조합이 존재한다는 건 일종의 형용모순이다. 그런 차원에서 중국이나 조선이 노동조합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일견 사회주의국가를 자처하는 그들 국가체제에서는 형식적으로 당연한 결과일 수 있다.
하지만, 사회주의국가가 단지 경제체제의 사회주의적 경향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과 결과를 민주주의적 경로를 통해 확보하는 사회라고 했을 때, 노동자의 권리 권익은 다른 양상에서 조직적으로 보호되고 관철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민주주의과 관철되는 사회주의국가라면 이러한 노동자들의 조직적 단결과 집단적 권리행사를 자본주의체제의 국가들보다는 훨씬 광범위하고 완전하게 보장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스스로를 사회주의국가로 자처하는 중국이나 조선은 이러한 면에서는 오로지 형식주의에 매몰되어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조선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은 이 기사가 지적하듯 "'차이니즈 드림(중국몽)'을 외치는 시 주석과 공산당 지도부는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며 제 몫을 달라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억누르고 있다. 지방정부는 기업들에 쟁의를 무산시키라 압박하고, 사업장들은 파업하는 노동자들을 내쫓고, 공안(경찰)은 노동지도자들을 구금한다. ...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이 궤도에 올랐던 1989년 톈안먼 학살이 벌어지자 서방 언론들은 대학생들에게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실제로 탄압을 받은 것은 노동자들이었다."
이렇게 되면, 중국은 과연 사회주의국가인지 아니면 시진핑이 총수로 있는 재벌에 불과한 것인지 알 도리가 없다. 홍콩이 아수라장이 된 배경이 실제로 이런 이유라면, 중국을 사회주의국가로 인정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보다 분명해진다. 그것도 자본주의국가 중에서도 가장 악질적인 자본주의 국가의 체제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 확인되는 것이다. 저 인용한 따옴표 안의 상황을 한국에 대입해 보라.
"문재인 정부와 여당은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며 제 몫을 달라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억누르고 있다. 지방정부는 기업들에 쟁의를 무산시키라 압박하고, 사업장들은 파업하는 노동자들을 내쫓고, 경찰은 노동지도자들을 구금한다. ... 실제로 탄압을 받은 것은 노동자들이었다."
이렇게 똑같을 수가 있는가? 한국은 지금 홍콩에서처럼 불바다가 된 상황은 아니지만, '헬지옥'이라고 명명되면서 노동자들의 지옥으로 변해가고 있는 현 상황과 너무나 똑같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