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론자가 말하지 않는 것들
그래, 이 주제로 글을 좀 써봐야겠다. 난 어느 정도 사람들의 주머니에 현찰이 들어 있어야 움직거리기가 수월하다는 걸 인정한다. 하지만 주머니에 현찰 꽂아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식의 망상은 사절이다. 기본소득론자들이 주로 후자에 치중해서 기본소득의 당위론을 이야기하는데, 그러다보니 결국 자신들의 말을 계속 바꿀 수밖에 없는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제기되는 비판을 정면으로 반박할 수 없음에도 기본소득이라는 자신들의 대안을 주장하려다보니 에둘러 비판을 피하다가 최종적으로는 자신들이 애초 이야기했던 기본소득과는 아주 다른 무엇들을 기본소득이라고 명명하고 우기게 된다. 특히 링크를 건 글이 제기하는 비판에 대해 기본소득론자들은 대답하지 못한다. 반박하지 못하는 순간 기본소득론자들이 꺼내드는 칼은 "기본소득에 대해 공부를 더 해봐라"라는 희안한 역공이다.
플랫폼씨: 기본소득이 소득 불평등과 빈곤감축을 위한 좋은 수단이 아닌 이유
이 글의 핵심은 다른 게 아니다. 기본소득론이 문제의 원인에 대해 눈을 감고 있다는 거다. "보편적 기본소득이라는 수단이 그 원인을 여전히 건드리지 않고 남기기 때문에" 대안으로서 큰 가치가 없으며, 오히려 "'건드리지 않고 남는 것'이 자유주의 사상가들이 보편적 기본소득에 관심을 가진 원래의 이유"임을 이 짧은 글은 밝히고 있다. 결국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당장 해야만 하는 일은 "국가와 노동시장에서 노동과 자본 사이의 권력관계를 건드"리는 것이다. 간명하다.
언제나 강조하지만, 문제는 생산수단의 사유화라는 자본주의의 대의를 어떻게 붕괴시킬 것이냐이다. 이 부분을 건드리지 않는 모든 대안은 반동이다. 궁극적인 대안의 귀결은 사회적 제 세력의 역관계를 어떻게 재편할 것이냐이다. 북유럽 사민주의를 '개량'이라고 퉁쳐서 욕하는 꼴좌들이 있긴 하다만, 기실 그 수준의 복지국가를 만들어낸 결정적 동력은 바로 힘의 관계에서 노동이 일정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생산수단의 사회화까지 나가길 원하지 않은 자본의 물러섬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고, 이를 강제한 건 노동의 힘이었다.
기본소득론은 이 지점에서 항상 빈 공간을 내보인다. 생산수단을 누구의 손으로 돌릴 것인가? 자본에 비해 상대적 열세에 처한 노동의 힘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 노자관계를 어떻게 역전시킬 것인가? 기본소득론은 이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저 임노동에 얽매이지 않는 주체들이 형성됨으로써 불안정노동 등에 대해 대응할 수 있다는 추정만 제시한다. 단정적으로 말하지만 그런 거 없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기본소득론이 가지는 한계에 대해 언급을 했지만, 기본소득론자들이 말하는 기본소득의 구조는 자본주의의 영속을 전제로 한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체제가 붕괴되면 기본소득이라는 건 나올 구멍이 없어지게 된다. 그런데 기본소득론자들은 이런 이야기를 자꾸 회피한다. 무슨 세금을 만들고 어쩌고 저쩌고... 아니 세금은 어디서 나오냐고...
어쨌거나 간에, 신변정리를 빨리 끝내고 이사에 준하는 방구조배치가 완료되는 즉시 기본소득 까는 거나 연구해봐야겠다. 글도 좀 써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