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발로 호치민 8 - 문전박대를 당하다
돌고 돌고 돌다보니 덥고 찌고 다리아프고 발바닥 아프고 배도 고프고 목도 마르다. 하긴 이 더위에 걸어 돌아다닌다는 게 애초부터 좀 무리한 짓거리긴 했다. 어느 정도 견딜만큼 견뎠는지 좀 쉬어야겠다는 마음이 간절해진 시간. 점심시간 되려면 시간이 좀 남았길래 친구가 소개해 준 쌀국수집을 찾아갔다. 워매... 점심시간이 30분은 남았는데 벌써 사람들이 그득그득하고 바깥에 줄 서있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대충 눈치를 봐도 이건 뭐 기다리다 지칠 상황인데다가 혼자 처음 가는 집인데 뭔가 주문이며 상 위에 올라있는 게 좀 낯설어서 손님 좀 빠지고 자리에 여유가 있을 때 다시오자고 마음을 먹고 걷기 재출발.
파스퇴르 연구소 길 건너편에 있는 포호아 파스퇴르. 점심시간 30분 전인데 손님들로 초만원
그리하여 시장통이며 핑크빛 성당이며를 한 바퀴 더 돌고 가기로 하고 길을 걸었다. 몇 블럭을 뒤집고 돌다보니 아무래도 물이라도 한 통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편의점을 찾기 시작. 그런데 그 많던 편의점이 우째 보이질 않는다. 점방이라도 드가볼까 했는데 보이질 않아 점방이 즐비했던 시장으로 다시 가볼까 하다가 되돌아가기도 뭐해서 일단 계속 고고하기로. 그러다가 편의점을 발견했다. 반가운 마음에 편의점을 향해 길을 건넜는데, 편의점 바로 옆이 주점이다.
전형적인 베트남식 길까페 형태의 주점이었다. 점포 안에 자리가 좀 있고, 바깥에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점포 안에는 자리가 꽤 많았고, 바깥에는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앉아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아아... 이 땡볕에, 이 더위에, 이렇게 땀을 흘리고 난 후에 저 맥주 한 잔은 얼마나 달콤할 것인가?
맥주를 마시고 있는 사람들 앞으로 안주가 나오고 있었다. 안주류는 주로 조개를 삶아 무친 것처럼 보였다. 마치 한국에서 꼬막을 삶아 반쪽 껍데기를 떼내고 간장양념을 얹은 것과 거의 비슷한 모양새다. 짭쪼름 한 것이 땡긴다. 시원한 맥주가 땡긴다. 애초 옆에 있는 편의점에서 물이나 한 통 사가지고 좀 더 걷다가 점심시간 지나면 다시 앞의 그 쌀국수집을 가기로 했던 계획을 엎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쌀국수야 노상 다니면서 먹음 되는 거고, 오늘 이 시간은 낮술로 대체하자. 저 안주들로 더위가 가실 때까지 맥주를 마신 후 배가 부를 때까지 맥주를 또 마셔서 점심을 때우자. 술 중의 술은 낮술이려니와, 지금 바로 여기서 저 안주들과 맥주들을 버리고 간다면 아마도 평생을 후회하게 되리라! 그래, 결정했어!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빈 자리가 많아서 아무데나 앉으면 될 것 같았고, 그래도 주인에게 손님 입장했다는 신호라도 할 요량으로 선 채로 메뉴판을 들어 이것 저것 훑어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주인인지 일하는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풍기는 포스로 보니 주인이 맞을 것 같은 마른 몸의 날카롭게 생긴 중년의 남자가 다가오더니 뭐라고 묻는다. 몇 명이냐는 것 같아 한 명이라고 이야기했다. 조금 있으면 마시게 될 맥주를 기대하며 나의 얼굴은 한껏 기대에 찬 것이었을 터이고,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헤벌쭉한 표정을 짓고 있었을 터였다.
그런데 갑자기 이 쉑귀가 메뉴퍈을 홱 낚아 채 테이블 위에 던지더니 내 어깨를 밀치며 옆의 편의점에 가라고 밀어낸다. 순간 당황해서 어, 이거 뭐야, 어어, 지금 뭐야 이거, 응? 뭐하는 거야? 이러는 순간 하도 심하게 밀쳐져서 몸이 좀 휘청했다. 갑자기 빡이 확 올라서 "홧아유두잉?" "돈 터치미, 돈 터치 이 ㅆㅂㄹㅁ!!!!" 이러고선 그 쉑귀 손을 쳐냈다. 근데 이쉑기 얼굴이 완전 빡이 친 얼굴로 계속 손짓으 하면서 침을 튀겨가며 나가라고 이야길 한다.
와, ㅆㅂ 진짜 이거 한국 같았으면 바로 쳐 발라버렸을텐데, 남의 나라 와서 뭐 까딱했다가 봉변이나 당할까 싶기도 하고, 뉀장 여기 아님 뭐 술 마실 곳이 없냐 이 썩을럼아 이러고 나오긴 했는데 와, 이게 빡 친 기분이 쉽게 가시질 않는 거다. 승질을 가라 앉히느라 한참을 식식대다가 일단 목이 마르므로 옆 편의점에 들어가 물을 사 벌컥벌컥 마시고는 숨을 몰아쉬는데 이게 쉽게 기분이 풀리질 않는다.
페밀리마트 옆에 TU PHE라는 간판 붙어 있는 주점이다. 승질같아서는 좌표 찍어놓고 싶다만 그냥 호치민 파스퇴르거리 근처 어디쯤이라고만 해놓자. 흥!
국내에서든 국외에서든 혼자 술 한잔 하거나 식사라고 하기 위해 어디 가게에 들어갈 때, 들어가면서 1명이라고 하면 1명은 받지 않는다고 하는 집을 못 본 건 아니다. 어쩌다가 그런 일이 있는데, 그럴 때라도 1명 손님은 받지 않는다고 말로 이야기를 하지, 지금처럼 무슨 거지 쫓아내듯 내쫓기는 경험은 난생 처음이다. 그것도 베트남 호치민에서 이런 일을 겪게 되다니...
아니 뭐 아무리 생각해봐도, 하고 있는 몰골이 거지꼴로 있었던 것도 아니고, 말을 뭣같이 한 것도 아니고, 들어가면서 뭔가 오해를 살만한 행동을 한 것도 아닌데, 그 쉑귀가 왜 그따위로 쥐랄을 틀었는지 도통 알 길이 없다. 뭐 말을 알아야 물어보길 하지. 하, 참... 하긴 그 쉑귀도 거기 앉아 있던 웬만한 관광객들 몇 명이 자리 차지하고 대충 먹고 마시는 것보다 배는 더 처먹을 넘을 쫓아냈으니 이문 남길 건 없었다고 하겠지만서도, 아니 그거야 그 쉑귀가 내 주량과 배포를 알고 있을 때 이야기지 쥐뿔도 모를텐데 뭔 아쉬움이 있겠냐고. 이런 썩을...
많은 시간을 보낸 건 아니지만, 베트남을 다니면서 난 항상 그들의 친절함과 밝은 모습이 좋았다. 그러다보니 저런 쉑귀 하나 있다고 해서 베트남에 대한 인상을 바꾸지는 않는다. 이 일 전에도 그렇고 이 일 후에도 내가 본 다른 사람들에게 전혀 불만이 없다.
그렇지만 다음번에 호치민을 가면 절대로 저 집에는 가지 않을 거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혹시 호치민 간다는 사람이 있으면 저 집은 절대 가지 말라고 해주...면 오히려 궁금해서 가볼라나? 아, 별 그지같은 쉑귀땜에 이번 호치민 돌아다니는 여행길에 아주 걍 지저분한 기억 하나가 남아버렸다. 물론 그날 저녁에 쐬주...가 아니라 맥주 한 잔 하면서 다 잊었는데 정리를 하다보니 급 빡침이 밀려오네... 거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