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을 향한 김정은의 진정성을 믿는 사람들에게
작년 4월과 9월에 있었던 남북정상회담 후, 친분이 있었던 자민통 계열 사상의 젊은 활동가들과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이야기는 처음에는 북미관계의 정상화와 남북관계의 연관성에서 출발했었다. 그러다가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임종석 이야기가 나왔고 이게 노태우 정권 당시 임수경이 통일축전에 참여하게 된 데까지 이야기가 전개되었다.
여기서 난 의문을 제기했다. 노태우 정권 당시 정권차원에서 남북관계에 일정한 진전이 있었고 상당한 수준에서 평화체제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굳이 임수경을 북한에 보낸 이유가 뭔가? 남북관계 경색은 물론 당시 한참 고조되고 있던 노동운동을 파탄지경으로까지 몰고가게 된 계기가 된 그 결정이 과연 적실성이 있었던 것이었던가?
그런데 이러한 문제제기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나와 이야기를 하던 활동가는 정권의 진정성을 문제로 거론했다. 쉽게 이야기하면 당시 노태우 정권은 진정성을 결여한 상태였다는 것. 반면 북한의 김일성은 평화통일의 의지를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통일축전을 열고 남한을 초청했던 것이라는 주장. 이후 김영삼 정권 들어와서 남북정상회담이 추진되다가 김일성의 사망으로 경색국면 돌입. 이 때 남한의 정권이 조문도 못 가게 함으로써 평화통일에 대한 진정성 없음을 드러냈다고 평가.
그래서 내 질문은 현재 문재인 정권은 진정성이 있는가? 한편 김정은은 통일에 대한 진정성을 가지고 있는가? 내가 볼 때는 현재 진행되는 국면은 오히려 북한정권이 남북분단고착화를 기정사실로 만드는 것 같은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런 류였다. 돌아온 답변은 매우 당황스러웠는데, 김정은은 여전히 수령님과 장군님으로부터 전수된 통일의 의지를 가지고 있으나 남한 정부는 그러한 진정성이 부족하다는 입장이었다.
난 지난 몇 년 동안, 남한의 진보정치를 위해서는 자민통의 젊은 세대와 연대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해왔고, 이들 젊은 세대는 기존 선배세대들과는 보다 개방적이며 합리적인 사고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함께 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나름 노력을 해왔는데, 이 대화를 끝으로 그들과 더 이상 논의를 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 노력 역시 작년 연말을 기준으로 정리되었고...
그들이 아직도 김정은의 진정성을 믿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김정은의 지금까지 행보를 보면 그는 절대로 통일을 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상징적인 행보가 바로 이것.
김정은은 관광재개가 되면 개방은 하겠지만 주도권은 자신이 쥐겠다는 뜻을 명확히 했다. 백마타고 설산을 달리는 장엄한 광경을 연출한 이후 나온 이러한 행보를 보면서도 여전히 김정은은 통일을 열망하고 있다고 그 활동가가 주장할지는 의문이다.
계속되는 입장이지만, 남북평화체제구축과 한반도 및 동북아 긴장상태 해소는 놓치면 안 될 정치적 정책적 지향이다. 하지만 물리적 통일에 얽매이는 건 결코 진전을 가능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런데 이제 가만 보면, 그동안 물리적 통일을 그토록 주장해왔던 측에서 입장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이미 북한은 통일 그 자체보다는 체제의 독자성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과거 '반전반핵 양키고홈'을 주장했던 그 활동가들의 선배세대가 언제부턴가 '반핵'을 뺐던 것처럼, 이제 이 후속 세대들이 언젠가는 '자주민주통일'이라는 자신들의 전통적 지향에서 '통일'이라는 말을 빼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반핵 빼고 통일 빼면 솔직히 그들에게는 '귀 빼고 X 뺀 당나귀' 같은 모습이 될 텐데 그 이후 어찌 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