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발로 호치민 2 - 언제나 첫날은 설레임
도착을 했다. 호치민에.
친구 집에서 도착 기념으루다가 맥주 한 캔씩
그러고보니 이 남북으로 길쭉한 나라의 북부, 중부를 거쳐 이제 남부까지 와보는구나. 그게 2001년이었던 듯한데, 하노이에서 여름 며칠을 보냈더랬다. 그때는 놀러간 것이 아니라 학술교류로 간 것이어서 교수님들 수행하고, 발표하고 토론하고 뭐 이러느라 제정신이 아니긴 했다. 베트남어는 뭔 소린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고, 공용으로 하던 영어도 마찬가지. 베트남어와 한국어로 이루어진 동시통역 정도나 도움이 되었을 뿐이고 나머진 진짜 곤욕도 그런 곤욕이 없었더랬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다른 이들은 모두 하롱베이 관광을 갈 때, 난 토론회 일정때문에 일찍 귀국한다는 핑계로 하노이에 남게 되었다. 그리고 그 때 숙소 인근을 돌아다니면서 비로소 베트남의 간을 살짝 보았더랬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도 거리는 오토바이로 넘쳐났고, 마치 파도가 치듯 오토바이들이 물결을 만들며 흘러가던 모습이 또렷이 기억난다. 신호고 나발이고 그따위 필요없고, 사람도 차량도 그저 오토바이가 만든 물결에 실려 떠내려가는 것처럼 느꼈더랬다.
하노이 도시 곳곳은 짓다 만듯한 가옥에서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여기저기서 건축이 활발했고, 그러다보니 골목골목마다 건축자재를 만들거나 파는 곳이 즐비했더랬다. 시장이며 골목이며 돌아다니면서 느껴던 느낌은 마치 어릴적이었던 70년대 한참 서울 곳곳에 뭔가 뚝딱뚝딱 만들어지던 그 때로 돌아간 듯한 것이었다. 그게 물경 17~8년 전이니 지금은 엄청나게 달라졌겠지만 아직도 하노이라고 하면 그 때의 풍경들이 떠오른다.
작년에 호이안과 안방에서 느낀 감정은 호젓하고 따뜻한 것이었다. 다낭은 엄청난 기세로 도시 전체가 뭔가를 쌓아 올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다낭에서 호이안까지 가는 해변은 가히 상상조차 하기 힘든 규모로 개발이 되고 있었고. 그래도 호이안은 오밀조밀 즐거웠고 안방은 휴양지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알게 하는 그런 곳이었다. 조용하면서 따사롭고 넉넉하고 시간이 아주 천천히 흘러간다는 그런 느낌. 물론 그 조용한 휴양지 안방에서도 골목마다 건물이 지어지고 있었고 거의 대부분이 기존에 그 마을에 있던 집들과는 다른 규모의 숙박시설들이었다. 아마 이곳도 시간이 좀 지난 다음에 가보면 완전히 달라져 있겠지.
밤중에 베트남 영공으로 비행기가 들어섰을 때, 지면에 펼쳐진 화려한 조명들에 넋이 나갔다. 도대체 저 빛은 뭘까... 일정하게 격자를 지으면서 끊임 없이 이어지는 빛은 처음에는 건물인줄 알았는데 자꾸 보니 일반적 건물이 아니라 뭔가 시설 같기도 하다. 뭔지 모르겠는데 나중에 친구에게 물어봐도 답을 알 수가 없었다. 암튼 그게 신기해서 사진을 찍었는데 죄다 못쓰게 되었다. 아... 카메라를 더 좋은 걸로 바꾸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같이 드는 순간이었다.
오밤중에 공항에 내려 마중나온 친구가 부른 그랩택시로 숙소로 이동했다. 차창 밖의 모습은 서울이나 호치민이나 별 다를 바가 없었다. 불 밝힌 업소들, 사람들, 차량들, 건물들... 그래도 역시 베트남에 왔다는 걸 실감하게 만드는 건 도로와 인접한 곳에 판을 펼쳐놓은 모습들이다. 길 바로 앞에 탁자와 의자가 놓이고 거기에 사람들이 앉아 음식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풍경은 한국에서는 시골 장터 정도나 가야 볼 수 있는 광경들이겠다.
그렇게 바로 숙소로 돌아왔고, 맥주 한 캔씩을 마시면서 서로 격조했던 시간에 있었던 일들과 베트남의 생활과 며칠 간의 계획과 뭐 그저 그런 시시한 이야기를 하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내 잠자리는 거실의 소파였다. 이불도 없다. 어차피 더운 나라고 나야 추위를 타지 않으니 불편할 일은 없다. 친구의 숙소는 우리로 치자면 분당 정자동 같은 위치에다가 분위기의 곳이라고 소개를 하던데, 어쨌든 신도시의 꽤나 부유한 동네 정도인 것은 분명한 듯하다. 숙소의 위치도 고층인지라 거실 창 밖으로 내려다보는 야경도 상당히 멋있었다.
저 화려한 불빛이 꺼지면 이 도시는 어떤 얼굴로 나를 마주볼까 궁금하다. 시차가 2시간 정도 나는 곳인데 서울로 따지면 이미 새벽 2시가 되었을 무렵인데도 잠이 오지 않는다. 나이를 먹어도 새로운 것에 대한 궁금증은 여전히 밤을 뒤척이게 한다. 설레임이라는 게 이렇게 무서운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