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개혁을 요구하는 교수연구자 시국선언?
난 교수가 아니라서, 그래도 아직은 연구자라고 스스로를 위치지우고 있음에도 참여하지 않았지만, 6천명이 넘는 교수/연구자가 시국선언을 했다. 검찰개혁을 주제로 한 이 선언은 형식적으로는 검찰개혁이고, 표면적으로는 조국에 대한 지지 여부와는 관계 없다고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조국 수호와 현 정권 옹위, 그리고 보수세력에 대한 집단적 비난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 선언에 참여한 어떤 교수께서는 도대체 이게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제 "가족 곁으로 돌아간 장관 조국"에 대한 연민을 표하고 있다. 난 이 교수가 왜 이렇게 이를 문제삼는 사람들의 입장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하는지, 아니 이해하려 하지 않는지를 어렴풋이 알 듯하다.
언젠가 고대출신으로 법조계에 있다가 법학자가 되어 모대학에 있는 형법/법사학 전공의 교수가 책을 냈다. 그 책의 출판을 기념하여 조촐하게 몇명 모여 토론을 할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이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이 나 하나 빼고는 전부 서울대 법대 출신이었다. 그 중에서도 저자와 같은 학교에 적을 두고 있는 서울대 법대 출신 모교수가 함께 자리를 했다.
책에 대한 이야기가 얼추 끝나갈 무렵, 고대 출신의 이 교수가 학교에서 겪는 여러 어려움을 말하는 데까지 이야기가 나갔다. 그 이야기 중에, 고대 출신의 교수는 자신이 서울대 법대 출신들에 둘러싸여 있으면서 약간의 열등감과 소외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런데, 같은 학교에 적을 두고 있는 서울대 법대 출신 교수는 "00교수가 그런 생각을 할지는 몰랐다. 우리들은 우리가 서울대 나왔다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른 이들을 대할 때도 학적을 두고 차이를 두지 않는다"며 별 쓸데 없는 이야기를 한다는 투로 말을 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불현듯 생각난 게 부르디외의 구별짓기였고, 또한 고 이재영이 이야기했던 "서 있는 위치가 다르면 보는 풍경이 달라진다"는 말이 생각났다. 가진 거 다 가진 일종의 기득권 계층으로서 남들이 보기엔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임에도, 그 안에서조차 구분이 있고, 그 구분의 경계를 느끼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가 갈린다. 하물며, 저들과 전혀 다른 계층/계급에 있는 사람들은 저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될 것인가.
난 이번 교수/연구자 시국선언을 보면서도 그 때 느꼈던 감정을 느꼈더랬다. 난 그동안 이렇게 6천 명이 넘는 교수/연구자가 노동사안에 대하여 한 목소리로 시국선언을 한 것을 본 적이 없다. 이렇듯 애절하게 톨게이트 농성노동자나 삼성해고노동자에게 인간적 연민을 보내는 걸 본 적이 없다. 서초동에 몰려간 촛불들에 대해 보내는 연대의 감정이 철탑 밑으로 모이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불만이 있지만, 이런 저런 과정을 겪으면서, 이 6천 명의 교수나 연구자들이 어쩌면 같은 위치에 있는 조국과는 감정을 공유할 수 있어도, 저 노동자들과는 결코 그럴 수 없는 인식구조를 가지고 있기에 이런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면서도 사모펀드에 투자를 하고, 문제가 발생하자 자신은 몰랐다는 것으로 도덕적 윤리적 비난을 피해가며, 특권을 공기처럼 빨아댔지만 그것이 전혀 특권인지 몰랐던 조국이, 관념적으로 노동자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말로는 노동자들을 편들 수 있었던 것처럼, 이들 교수들과 연구자들은 이론적으로 혹은 관념적으로는 온갖 옳은 말을 할 수 있었겠지만, 정작 정서적으로 감정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대상은 그저 같은 위치에 있는 자들일 뿐임을 확인한다.
그동안 노동자를 위한다거나 사회변혁을 바란다거나 한 모든 말들은 이론과 관념에서 나온 것일 뿐이었다. 그러다보니 이 시국선언의 내용, 조국이라는 공인, 그를 둘러싼 정치지형, 검찰개혁과 검찰수사의 문제를 둘러싸고 나오는 이들과 다른 비판에 대해 이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이해하려 하지도 않고. 도리어 뭐가 문젠데 우리를 비난하느냐며 볼멘 소리를 한다. 결국 이 이야기는 이들은 노동자들과 이미 다른 위치에서 다른 풍경을 보고 있다는 것이고, 문화와 자본이 만들어낸 구조 속에서 노동자들과는 다른 존재로 구별지어져 있다는 것이다.
내가 비록 아직 연구자라는 위치를 버리지 않고 있지만, 저 선언에 참여하지 않았던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연구자는 어쩔 수 없는 사회의 기생계급이라는 생각을 떨치지 않는 한, 앞으로도 저따위 행동에 동참할 일은 없을 거다. 내 바탕은 어쩔 수 없이 노동자고 그러다보니 내 인식은 물론이려니와 내 감정 조차도 저 6천여명이 아닌 고공농성하는 노동자들에게 전이될 수밖에 없다.
이제 깔끔하게 기대를 저버려도 될 사람들의 명단이 6천여명 이상이나 손에 들어왔다. 물론 그 중에 내가 아는 사람은 60명도 안 된다. 하지만,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여기 명단에 이름 올린 사람들을 존경하거나 그들에게 배울 일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