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파악
내 스스로가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혹은 다른 이들이 인정하든 않든 간에, '계급'의 문제를 접하면서 나 자신의 계급적 지위를 끊임 없이 돌아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되돌아보면서,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동원하고, 그 지식에 의하여 수립된 논리에 따라 내 자신의 '계급'적 위치가 어디인지를 확인해야 한다. 이 과정은 생각보다 간단치 않으며, 나의 가치관에 대한 회의와 함께 내 실존에 대한 감성과 이성의 충돌을 겪어야만 한다.
내가 가장 깊이 내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는 나의 모습은 공장에서 일하고 있던 모습이다. 그 이전에, 나는 내가 건너왔던 학습의 공간 중에 가장 먼저 머리 속에 떠오르는 공간은 고등학교 교정이다. 나는 지금도 힘이 들 때면 고등학교 교가를 부른다. 달리기를 할 때나, 울적할 때나, 뭔가 풀리지 않아 마빡을 주어 긁을 때, 고등학교 교가가 흘러 나온다.
언젠가 짝지가 "운전 면허 따고 운전 시작하면 뭘 제일 하고 싶은가?"라고 물은 일이 있다. 난 내가 운전대를 잡으면 그동안 내가 발을 디뎠던 곳을 다 한 번씩 돌아보고 싶다. 제일 처음 가보고 싶은 곳이 구로공단의 마이크로 공장이고, 그 다음 가보고 싶은 곳이 인천 연안부두 안쪽의 제일제당 공장이다. 난 그 곳에서의 일들을 잊을 수가 없고, 내 정체성이 거기에 있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그 지식에 근거한 '계급'적 지위에 관하여 내 자신을 고찰해보면, 내 추억과 내 과거와 내 감수성과는 별개로, 나는 통상의 인민과는 다른 학위를 가지고 있고, 비록 자격증은 없으나 어떤 전문성을 나름 가지고 있고, 강의를 하고, 글을 쓰며 밥벌이를 한다. 과거의 내가 육체노동자였다면 이젠 일종의 '지식노동자'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이건 내가 검증을 위해 동원한 지식에 의할 때 꼭 들어맞는 계급적 지위라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적절한 건, 나는 이미 쁘띠부르주아의 일원이 되어 있으며, 기생계급의 일원이라는 거다. 최소한 내 스스로가 감당하긴 어려워도 사회적으로는 지식인의 일부로 분류될 수밖에 없고, 말석의 자리에 발을 걸칠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 생각할지라도 사회적 계급의 경계선에서 나는 지식인 그룹 안에 들어와 있다는 것이 객관적인 결론이다.
그렇다면 이 때 내가 해야 할 각성은 다시금 내가 노동자계급의 일원이 아니라 기생계급의 일원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기생계급의 한계와 의무를 인식하고 생산에 기여하지 않는 기생계급으로서 공화국의 동료시민들에게 갚아야 할 채무를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흠... 이거 너무 무겁긴 하다. 그냥 "나 돌아갈래~!" 하고 번지를 해야 하나...
아침 댓바람부터 계급을 이야기하는 자들의 글과, 그 글을 쓴 자들의 계급과, 그들의 논리가 계급을 어떻게 배반하는지 또는 이용하는지를 고민하다가 급기야 내 자신의 계급에 대해 돌이켜보게 되었다. 무겁긴 해도, 이런 기회가 없으면 나도 저들처럼 썩을 수 있다는 생각에 그나마 다행이라는 마음이다.
모처럼 이 블로그에 일기다운 일기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