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이 신성하진 않아도 그거 없음 우짤라고?
아 뭐 이젠 공적이든 사적이든 개인의 기여분에 대한 수당에도 '개인소득'이라고 이름을 붙이자는 판국이 되다보니 기본소득에 토달면 안 되는 분위기인 듯 하지만 갑작스레 노동의 신성성까지 이야기되면서 기본소득 논란이 벌어지니 이번 참에 궁금한 거 좀 해결될까 싶어 말을 다시 꺼내보면...
에릭 올린 라이트가 사회주의적 기획들에 기본소득이 기여할 수 있는 전제로 제시한 게
첫째, 기본소득은 우쭐 거릴 수준은 아니지만 남부끄럽지 않은수준이 되어야 한다. 어느 정도냐면, 급부수준이 상당히 높아서 자본주의적 노동시장에서 "철수"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둘째, 이런 급부수준이 노동자에게나 투자자에게나 장기에 걸쳐 그 급부를 지속 불가능하게 할 수 있을 정도의 동기부여 문제를 발생시키지 않아야 한다. 달리 말하자면 먹고 살만큼 기본소득을 줘도 재정확보 등에서 별 문제가 없어야 한다는 거다.
그래서 나오는 첫 번째 질문. 도대체 얼마를 줘야 '기본'인가? 예를 들면 한국사회에서 기본소득으로 1인당 얼마를 받아야 "우줄 거릴 수준은 아니지만 남부끄럽지 않은 수준"이 되고, "노동시장에서 철수하는 선택"을 할 수 있는가?
더 중요한 문제는 이제 사람들이 기본소득만으로도 먹고 살만해져서 "자본주의적 노동시장에서 철수"하면, 어라? 앞으로 기본소득은 어디서 나오지?
이건 "노동의 신성성"하고 결부된 문제인데, 임노동에 신성성을 부여하는 거야 뭐 자본주의 논리일 수도 있고, 종교적 차원에서 노동에 신성성 부여하는 건 역시 봉건적 논리라고 비판할 수 있고, 이걸 이윤착취의 이데올로기적 이론으로 승화시키는 넘들은 마구 욕을 먹을만 하다.
그런데, 어떤 기본소득이든 간에, 그 기본소득은 어딘가의 잉여에서 나오게 되어 있다. 누군가는 일을 해야 하고, 즉 노동을 해서 잉여가치를 창출해야 하고, 그 잉여가치가 기본소득으로 전환되어야만 한다. 논리적으로 보자면, 임노동자들이 전부 "자본주의적 노동시장에서 철수"하면 기본소득의 재원이라는 것이 나올 수 있는 구멍이 없어지고, 일부만이 그런 행복을 향유하게 된다면 다른 누군가는 그 일부의 행복을 위해 잉여가치를 창출하고자 임노동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는 거.
아니, 이 문제는 기존 사회보장제도를 정리해서 남는 돈, 금융시장의 각종 상품에 대한 세금, 첨단기술의 발전에 따라 새로 만들어지게 될 로봇세 등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 이게 기본소득론자들의 주장인데, 아니 잉여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노동력이 없어지는데 뭔 세금이 나와서 기존사회보장제도고 나발이고 운영할 재원이 나오겠나 말이다.
그런데 임노동은 신성한 게 아니니 안 해도 되는 거 아냐? 물론, 임노동 아닌 다른 노동들은 빼고. ..
---> 아놔... 임노동 아니라 돌봄노동이고 재생산노동이고 간에 몸 써서 뺑이 치는 건 다 힘든 거여... 차라리 임노동은 댓가라도 보이지. 신성성이라는 건 사후 약방문 같은 거라고. 갖다 붙이면 다 되는 거지 뭘.
자본주의체제가 존재할 때만 가능한 이야기를 하면서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구라치는 건 그냥 사기지뭐... 위에 말한 에릭 올린 라이트가 뭐라 했냐면, 지가 전제한 조건을 만족시키는 기본소득이 “계급 간 힘의 균형, 노동의 탈-상품화, 사회적 경제를 위한 잠재력 제고”할 거란다. 이건 선후가 바뀐 이야기다. 기본소득이 그런 효과를 가져오는 게 아니고 저렇게 균형이 맞을 때 나올 수 있는 여러 효과 중 하나가 기본소득이다.
암튼, 기본소득론자들은 어째 저 두 질문에 도통 답이 없네... 앵무새처럼 도돌이표만 찍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