꿩대신 닭이라
간만에 괴기 맛 좀 보자고 마트에 갔다가 삼겹살 가격을 보고 기절 직전에 겨우 정신을 수습했다. 어허... 국산 냉장육 삼겹살이 근에 만오천원을 후딱 넘어간다. 중국발 돼지열병 등으로 가격이 올랐다고는 하지만 백수 주제에 언감생심 눈도 돌리면 안 되는 상황인 거다. 돼지비계와 상코기가 어울린 그 묘한 감칠맛의 유혹이 아무리 강렬할지라도, 백수 주제에 입맛대로 먹고 살 수는 없는 것. 굳건하게 마음을 먹고 고개를 돌리다보니 뒷다리살이 보인다. 오호... 1600그램에 9천원...
일단 질르고 봤는데, 막상 뭘 해서 먹어야 할지 좀 궁리를 해야 했다. 이거 그냥 놔두면 어차피 냉동실에 처박혀 또 어느 세월에 입으로 들어갈지 알 수가 없다. 지를 걸 질러야지... 암튼 뭘 어찌 해야 할까 궁리를 하다가 기왕에 양이 꽤 되니 할 수 있는만큼 조리를 하기로.
일단 간장양념조림.
준비물: <간장국물다시용 건더기> 마늘 다진것 대충. 생강 다진 것 대충. 양파 하나. 무 대충. 고추 매운 거 두 개. 향신료 있으면 대충.
<간장국물> 간장 적당하게. 야채 육수 있으니까 그거 사용하기로. 제사때 쓰고 남은 정종 대충
(1) 고기는 후추와 소금을 뿌려 재워둔다. 약 1시간.
(2) 고기를 구워 모든 면을 골고루 바짝 익혀준다.
(3) 고기를 굽는 동안 간장국물을 내기 위하여 준비한 재료를 죄다 냄비에 붓는다.
(4) 구운 고기를 냄비에 넣고 끓인다.
(5) 졸인다. 약 2시간 졸인다. 간이 잘 베도록 30분에 한 번씩 돌려준다.
(6) 식힌다. 덩어리를 바로 썰면 걍 부서지니 적당히 식은 후에 편으로 썬다.
(7) 잘 식혀 편으로 썬 고기를 팬에 굽는다. 열이 오르면 먹는다.
내 입맛에는 맞는데 짝꿍은 고기 누린내가 약간 난단다. 어허... 이런 쉣한 일이... 마침 부추가 잔뜩 있으므로 부추를 적당한 크기로 썬 후 고기와 부추를 층층이 쌓아 앞의 간장국물을 붓고 다시 졸였다. 그 후 다시 먹을 때 구워 먹는 것으로다가. 살짝 구워 먹으니 이건 기냥 술안주로 딱이다. 반찬은 다른 걸 만들어야겠다...
그래서 남은 고기로 만든 게 주물럭 불고기
준비물: 냉장고에 남아 도는 채소는 죄다 꺼내 대충 먹을만한 크기로 썰어놓음. 고기도 한 입 크기로 잘 썰어서 모셔놓음
<양념> 고추장 대충. 고춧가루는 고추장 분량보다 좀 많이. 간장 대충. 올리고당 대충. 정종 대충. 후추 대충. 마늘 다진 거 좀 많이. 생강 다진거 쬐끔.
(1) 고기 썰어 놓은 것을 양념과 잘 섞어 재운다. 약 30분.
(2) 팬에 파기름을 낸 후 재워두었던 고기를 넣고 대충 익힌다.
(3) 준비해 놓은 채소를 죄다 쏟아 붓고 있는 힘을 다해 웍을 돌려가며 센 불에 익힌다.
(4) 야채 육수를 약간 부어 고기가 익는 동안 재료가 타지 않도록 한다.
뭐 이렇게 했는데, 아뿔사... 채소 먹기 위해 고기 꺼내는 거라고 하지만 이번엔 채소를 너무 많이 넣은데다가 미리 따로 볶았어야 하는데 귀찮아서 한꺼번에 볶았더니 물이 넘 많이 나오는듯... 에구...
어쨌거나 불고기는 다 됐고, 국물을 좀 빼내 밥에 붓고 비볐는데 아하... 이건 내가 만들었지만 참 맛있구나. 흐... 밥도둑일세 그려... 흐뭇하도다.
완전 성공작은 아니지만 그냥 먹기 괜찮을 정도는 된다. 그렇게 했는데도 아직 고기가 300그램 정도 남았다. 어쩔 수 없이 냉동고행. 삼겹살 굳이 먹지 않아도 이렇게 먹으면 맛있다. 그나저나 문제는, 이렇게 뭘 많이 만들어놓게 되면 필히 짝꿍에게 한 소리를 듣게 될 것이라는 거... 모르겠다. 까이꺼. 케세라세라...
동영상은 고사하고 사진이라도 찍어놓을까 했는데, 까먹기도 했거니와 그거 뭐 해서 뭐할까 싶기도 해서 패스. 아, 소주 마시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