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CCTV 감시체계, 유용성의 뒷면
2000년대 들어서면서, 개인정보보호운동에 본격적으로 참여할 때, 주변의 일부 꿘들이 이런 이야기를 했더랬다. 이 엄혹한 시기에(아마도 계급운동의 위기상황을 이야기했던 듯) 무슨 개인주의적 자유주의 부르주아 운동을 하겠다는 것이냐고. 솔직히 이 말 듣고 어이가 없었지만, 나름 성의껏 답변했던 내용은 향후 개인정보야말로 무산계급은 착취당하고 자본가계급은 더 견고하게 막힐 것이라는 게 주요 핵심이었다.
지금 보면, 과연 프라이버시를 보호한다는 운동이라는게 얼마나 더 유효할지 모르겠는데, 예컨대 트위터나 페이스북, 요샌 아예 이런 텍스트가 아니라 사진이나 동영상이 주가 되는 텀블러나 유튜브로 자신의 신상을 적나라하게 공개하면서 오히려 이를 통해 존재감을 확인하는 세상이 된 마당에 개인정보보호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의아하기조차 하다.
아무튼 그렇다고 할지라도, 예의주시해야 하는 건 발달된 기술을 이용하여 권력기관이 자의로 개인의 내면까지 들여다보는 것이다. 세월호 같은 국가재난상황에서조차 저들은 관련 개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샅샅이 훑으면서 건수를 잡고 조작에 이용하곤 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이게 한 순간 훌륭한 집권자께서 나타나 마음 곱게 써서 개인의 사생활따위 쳐다도 안 보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테니.
하지만 기술의 발달이라는 게 어느 정도나 내 정보가 쉽사리 흘러나가지 않을 것이라는 안도를 줄 수 있겠는지 모르겠다. 예를 들면 다음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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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감시기술의 확산은 사회안전을 이유로 합리화된다. 당연하게도 이건 헌법이 기본권을 제한할 때는 반드시 그런 조건들을 갖춘 후에야 비로소 가능하다고 규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개인정보를 들여다보는 공권력의 행위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이유로 정당화될 수 있다. 이번 기사에서처럼, 성폭행의 재범이 우려되는 자들에 대해 전국의 감시카메라가 이를 예의주시할 수 있도록 하는 식이다.
그런데 이 기사만 보더라도, 이미 실시간으로 CCTV를 통해 개개인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기술은 보편적으로 보급되어 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를 제어할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말이다. 난 내가 집 밖으로 발을 내디딛는 그 순간부터 다시 집에 돌아오는 순간까지 이동경로 일체를 CCTV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 아니 오히려 집구석에 틀어박혀 있는 내내, 나는 CCTV에 잡히지 않음으로써 내가 집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뭘 하든 부처님 손바닥이라는 거.
죄 안 지으면 될 거 아니냐는 고랫적부터 내려오는 반박이 있다. 왜 내가 죄 짓지 않은 걸 실시간으로 증명하고 살아야 하나? 내가 개인정보보호운동을 하게 된 이유는 여기 있었다. 하지만 이젠 그냥 차라리 내 행위 일체가 실시간으로 온갖 장치에 의하여 기록되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사는 게 훨씬 편할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지금 이렇게 블로깅을 하는 이 순간도, 이 내용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다 확인할 수 있고 기록에 남아 있으니까.
그동안 난 뭘 하고 살았던 건지, 뭘 기대하며 살았던 건지, 그리고 도대체 뭘 남긴 건지 의아한 하루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