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문제와 개인의 문제
나는 존재하는 어떤 문제가 오로지 개인적 차원에서 연유한 것이라거나 또는 정반대로 오로지 사회적 차원에서만 이해될 수 있는 것이라는 식의 단정은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물론 인간을 환경의 산물이라고 인식하는 입장에서, 사회적 환경이 문제를 유발하는 기본적 원인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런데 가끔은 특히 내 주변에서 오로지 사회적 구조의 체계적 변환이 생기면 현존하는 상당한 문제들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는 공상을 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제도결정주의같은, 달리 말하자면 법률 페티쉬같은 경향을 보이는 사람들마저 있을 정도인데, 예를 들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자유한국당 같은 쓰레기들이 공중분해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 그런 거다.
난 이런 류의 희망을 품는 분들을 개인적으로는 별로 신뢰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그분들의 순수함은 아름다우나 기실 그 순수함이야말로 적대의 온상이기 때문. 치밀하지 못한 낙관으로 중첩된 그 순수함은 고단한 현실의 대안같은 무지개를 보여줄지는 모르겠지만, 무지개는 무지개일 뿐. 예를 들면, 바로 위에 언급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은 자유한국당의 형질을 변화시키거나 아예 다른 당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몰라도 동시에 그것들보다 더 쓰레기같은 것들의 의회진출까지도 보장할 수 있다는 거. 순수한 분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가끔 경악을 금치 못하는 모습을 보는데, 암튼 뭐 그렇고.
이런 거 말고도, 예를 들어 정치경제적 구조모순, 즉 자본주의 경쟁체제가 만들어낸 이 지랄맞은 구조를 파괴하면 자본주의사회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범죄들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글쎄다. 난 자본주의 이전 시대에 지금보다 더 범죄가 적었다는 이야기를 통계적으로 납득될만한 수준에서 드들어본 바가 없다. 또는 사회주의가 현실로 도래하면 지금보다 범죄가 더 줄어들 것이라는 합리적 판단의 근거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렇게만 보자면 어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게 된다. 사회적으로는 어떤 대안이 필요하며 개인적으로는 어떤 방향을 모색해야 하는가를 고려해야 한다. 더 깊이 들어가자면 그러한 대안과 방향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고 시기마다 다를 것이며 공간마다 다를 것이다. 전반적인 시스템도 고민해야겠지만 케바케로 벌어지는 양상에 대하여 적용할 수 있는 툴을 다양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정책을 만든다는 건 그래서 종합예술의 경지에 이를 수 있어야 할 지경이다.
뭔 잡설이 길었는데, 암튼 이런 잡생각을 하게 된 건 지난번 자유한국당 청년최고위원에 출마했던 어떤 자의 인터뷰 때문이다. 이런 장문의 인터뷰기사를 실어줄 정도로 한국 언론의 품이 넉넉해졌음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모르겠다만, 기본적으로 인터뷰 내용 즉 그 자의 말은 그냥 쓰레기일 뿐이다.
관련기사: 국민일보 - "기승전짝 모태솔로면 어때, 자유한국만 지킨다면"
말들은 쓰레긴데 그 쓰레기들이 양산되는 과정을 보면 이걸 과연 이 사람의 개인적 문제로 치환할 수 있을 것인가 고민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그는 오로지 경쟁일변도의 학창생활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게 스스로 선택한 것일지도 모르겠으나 과연 자신이 원했던 것이었는지 의심스러운 경험담들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과정으로 인하여 발생한 스트레스와 육체적 고통들,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사회와 스스로 격리될 수밖에 없었던 정황들, 예민하고 극단적인 정신상태에서 일방향적으로 접하게 된 정보들, 자신이 무척이나 똑똑하고 재기발랄하지만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다는 자괴감, 이 와중에 자신이 일정하게 인정받는 어떤 그룹을 발견하게 되고 거기에 천착하게 되는 과정들...
물론 이와 유사한 과정을 겪은 수도 없는 사람들 중 거의 대부분은 상식적이고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김준교는 그 중에서 좀 독특한 경우인데, 그렇다면 김준교 개인의 문제를 무시하거나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게 다 그 놈이 모자라서 벌어진 일이라고 하기엔, 이 인터뷰 기사 전반이 보여주고 있는 그의 37년 삶이 덕지덕지 문제로 점철되어 있다.
이 경우, 지금과 다른 김준교의 가능성이 없었을까, 내지는 또다른 김준교를 만들어내지 않기 위해선 어떤 대안이 필요할까를 고민하는 게 정책의 일이겠지. 경쟁일변도가 아닌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학창시절을 만들어주고, 특이질환에 대해 사회적 관심과 보장체계를 갖추어 빠른 치료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정치/경제/사회/문화 전 분야에 걸쳐 고루 세상을 접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등 지금과 다른 사회적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서는 뭐가 필요할 것인가?
자유한국당 집행단위 선거과정에서 그를 알게 되었을 때, 난 뭐 또 신종 듣보가 하나 출현했구나 싶었는데, 국민일보 인터뷰를 보다보니 이런 류의 인간형 양산체계가 고착되어가는 것이 아닌가 싶은 안타까움과 동시에 김준교 본인에 대한 안타까움이 생기게 되었다. 이 자를 단지 웃음거리로 소비해버리기에는 이 자가 보여주는 어떤 징후가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