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베네수엘라
한국 외교부가 베네수엘라 사태에 대한 성명을 발표했다. 전문을 긁어 붙인다.
<베네수엘라 위기에 대한 외교부 대변인 성명>
□ 정부는 2월 23일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 물품을 베네수엘라 국내로 반입하는 과정에서 베네수엘라 정부군의 민간인에 대한 발포로 인해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한 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
□ 정부는 지난 해 5월 실시된 베네수엘라 대선이 정당성과 투명성을 결여하여 현재의 혼란이 발생한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우려를 표명하며, 1월 23일 임시대통령으로 취임 선서한 과이도 국회의장을 베네수엘라의 임시대통령으로 인정한다.
□ 정부는 과이도 임시대통령 주도로 조속한 시일 내 민주적이며 투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대통령 선거를 실시할 것을 촉구한다. 끝.
글쎄다... 아무리 남북관계에 목숨을 거는 상황이고 북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견인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인 정부라고 할지라도 과연 이런 입장을 내는 것이 적절한가? 외교라는 게 트럼프 얼굴만 쳐다보고 하는 게 아닐텐데.
대놓고 내정간섭을 해대는 트럼프에 대해 미국 내에서도 심각한 우려가 있는 것으로 안다. 트럼프가 주도하는 과이도 지지에 유럽의 주요 국가들, 예컨대 독일, 프랑스, 영국, 스페인, 스웨덴 등이 동조하고 있고, 자기 발등에 불떨어진 남미 각국이 현재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도 입을 닫고 있지만, EU차원에서는 과이도 인정을 하지 못했고, 다른 국가에서도 과이도를 선뜻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실제 트럼프가 띄워주고 있는 것 외에 과이도가 누군지 서방을 비록한 각국은 물론이려니와 심지어 베네수엘라 국민들조차도 잘 모르는 게 현실이다.
더불어 베네수엘라 정치상황만을 염두에 두더라도, 과이도가 정권을 장악한 이후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에 대해서는 거의 오리무중에 가깝다. 군부는 여전히 마두로를 지지하고 있다. 그것이 공고한 부패커넥션의 결과라고 할지라도 군부와 정치계를 비롯한 실질적인 권력은 마두로 진영에 있다. 이 틀을 부술 수 있는 건 그 나라의 주권자들이지 트럼프의 공작이 아니다. 베네수엘라 주권자들은 헌법전을 들고 투쟁하는 방법을 몸으로 익힌 사람들이다. 이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고 해서 민주적 과정을 거치지 않고 외세에 의해 현 정권을 전복하고 집권을 한 어떤 세력도 아마 오래 그 자리를 유지하지 못할 거다.
물론 유혈사태가 난 부분에 대해서 입장을 표명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외교부는 첫 번째 문장을 중심으로 배치하고, 조속히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혼란이 해소되길 바란다는 정도로 입장을 내는 것으로 충분했다. 외교부의 그 전문가들이 오늘날 베네수엘라 사태가 단지 사회주의정권의 패착때문이라거나 미국의 내정간섭때문에 발생한 것만은 아니라는 걸 잘 알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입장의 수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잘 판단할 근거를 가지고 있었을 터이다.
그런데도 이런 식의 입장을 낸다는 건 현 정부가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지나치게 조급한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이러다가 자칫 입장과는 다른 형태로 베네수엘라 사태가 진정되고, 급기야 과이도를 지지한 것이 잘못된 것으로 드러나게 될 경우 외교부는 그 무능에 대한 변명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그나저나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양상이 저 북미 정상회담이라는 블랙홀에 휩쓸려 들어가는 통에 향후 이로 인한 부작용이 어떻게 또 이 사회를 흔들게 될지 심각하게 우려된다.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 등의 발언도 그렇고 외교부를 비롯한 정부의 행보도 그렇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