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들은 대화
몇 가지 에피소드들이 마구 엉켜서 이게 그건지 저게 이건지 분간이 가지 않는 상태다. 정신사나운 일들이 사회적으로, 개인적으로 연일 벌어지는 통에, 꿈인지 생시인지가 구별되지 않는다. 호접몽 수준이라면 도통한 연이라도 하겠으나 이건 나이트메어일 뿐이다.
짝지를 기다리며 마을 도서관 휴게실에 앉아 있는 동안, 시험공부라도 할 요량이었는지 도서관을 찾은 여고생 둘이 건너편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재잘재잘 하는 소리가 꽤나 산만해서, 어차피 휴게실을 찾은 마당에 원래 그러려니 하고 보던 책을 덮었다. 불과 2m도 되지 않는 거리에 떨어져 있던 이 두 학생의 대화는 그래서 자연스럽게 귀를 파고 들었던 게다.
으레 그렇듯이, 이 나이 또래의 학생들이 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거, 대부분 일정한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10여분 남짓 짧은 시간 동안 이 학생들이 한 이야기라는 것이 진로고민이었다. 다름 아니라 대학을 어떻게 할 것인가...
재밌는 것은 두 학생 모두 대학에 갈 필요성을 못느끼고 있다는 거. 대충 옮겨보면,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그거 못하고 4년을 허비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 싫다는 것, 따라서 대학을 가더라도 2년제 대학을 가고 싶다는 거, 집에 부모님(특히 아버지를 특정하던데)은 어떻게 해서든 4년제로 보내려고 한다는 거. 2년제 대학을 선호하는 이유는 첫째 기간이 짧고, 둘째 집에서 가깝고, 셋째 이게 제일 중요한데, 취업이 잘 된다는 거.
경기북부의 외진 곳에 있는 어떤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서울 강남이나 목동지역의 학생들이 받는 과외나 학원수업은 들을 엄두가 나지 않는 이 학생들은 어차피 자신들이 잘해봐야 수도권 소재 4년제 대학을 갈 가능성이 그다지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듯 했다. 게다가 원래 대학이라는 곳을 가고싶지는 않다는 것이 2년제 대학을 가고싶다는 소망의 한 원인.
한 학생은 대학에서 시간 보내는 것은 별로 바라지 않지만, 그래도 한 1년간 "대학이 뭔지"를 경험해보고 싶은 생각은 있단다.
본의 아니게 대화를 '엿듣다'가 문득 든 생각이, '그래, 니들이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만, 나중에 대학 못나왔다는 이야기를 듣는다면, 즉 사회에 나가서 학력으로 인해 차별을 받는다면, 아마 그 때 아빠말 들을 걸 하는 후회를 하게 될 거야'라는 것이었는데, 내가 이런 생각을 해놓고도 다음 순간 몸을 부르르 떨어야 했다. 이 빌어먹을 정도로 공고화된 학력차별에 치를 떨던 내가, 마치 그 아이들의 부모라도 된 듯한 위치에서 해버린 일종의 걱정은, 결국 학력차별적 현실을 이미 내 스스로 체화한 채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혐오감이 들어서였다.
어찌보면 내 자신이 살아온 시간 동안, 지금까지도 일종의 트라우마가 되어버린 학력차별의 기억이 발동하면서, 구김살 없는 그 학생들의 표정을 연민으로 바라보게 된 것은 그럴 수도 있을 터이다. 하지만, 과연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지금의 내 자신은 그동안 얼마나 학력차별이라는 것을 깨기 위해 노력했고, 저 아이들이 학력차별이라는 것 없는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노력했던가? 내가 한 그 연민은 오히려 내 노력의 부족을 소위 '기성세대'의 무성의한 염려로 대치해버린 것이 아니었을까?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맴도는 어떤 생각은, 만일 그 학생들과 내가 대화를 하게 되었더라면, 나는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었을까 하는 거다. 과연 나는 그 학생들에게, "너희의 생각이 옳다, 대학 가지 않아도 된다,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맘껏 세상을 즐겨라"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그 학생의 아버지처럼, 그래도 4년제 대학은 마치고 나서 생각을 해보자고 이야기를 했을까?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보니 어떤 분이 마치 내가 대학이라는 것 자체를 무용한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것처럼 비판을 한 적이 있다. 당연히 나는 대학이라는 것이, 아니 배움의 장이라는 것이 더 많아지고 더 넓어지길 바란다. 누구나 언제든 자신이 원할 때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다만, 왜 고등학교까지 12년간의 학습이 모두 대학으로 수렴되기 위한 학습이어야 하는가가 문제였다.
저 학생들이, 사회생활을 하던 어느날 자신이 더 넓고 깊은 공부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겨 대학이든 뭐든 새로운 공부를 시작할 수 있다면 그건 좋은 일일 거다. 그러나 지금 전혀 대학이라는 것을 욕망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어거지로 대학이라는 공간으로 가야만 한다는 것, 그것을 마치 의무처럼 만들어 버리는 것은 이해할 수도 없고 용납할 수도 없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내가 저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뭐가 있을라나...
비를 내리려다가 폭설을 내리게 하는 실수를 신만이 저지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중화인민공화국이 보여주었다는 기사를 보면서, 혹시 우리 사회가 그런 실수를 항상적으로 저지르도록 강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실업계 고등학교(요샌 '전문계고'라고 하더라) 졸업생들의 취업률이 드디어 20% 미만으로 떨어져버리는 현실에서, "4대강에 공구리치는 거지만 토목사업은 아니다"라고 강변하는 각하가 떵떵거리는 세상에서, 진로를 고민하는 저 학생들에게 "진로는 하루 2병만"이라는 70년대식 코메디라도 해줘야 하는 거였을까...
꿈이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았기에 더 답답하다. 아니 꿈이었더라도 어차피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가위눌리는 꿈. 그저 그 앳되고 해맑던 웃음들이 좀 더 오랜 시간 그들의 얼굴에 남아있기를 바랄 뿐이다. 겨울이 다가오는 것을 실감하던 하루였다.
행인님의 [엿들은 대화] 랑 언듯 관련이 있는 것 같지만 사실 또 생각해보면 하나도 관련 없는 것도 같은 글. (지금도 대학원에 다니고 있긴 하지만...) 대학원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게 아마도 2007년 12월 말쯤이었던 것 같다. 앞으로의 사회는 뭘 알아야 운동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국내의 대학원을 알아보려고 기웃거리다가 살짝쿵 좌절. 그러다, 그럼 어차피 배우는거 유럽가서 배우고 싶다고 생각하다가 금전 등의 문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