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과 대안 없는 "희망과 대안"
"희망과 대안"이라는 모임의 창립식을 머리 허옇고 나이 지긋하신 분들께서 원봉하셨다는 뉴스를 보고 먼저 든 생각은, 한국사회의 노인복지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 앞으로 정부와는 반대입장에 있는 단체들이 행사를 할 때는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노인들을 위해 필히 도시락을 준비해두어야 할 일이다. 탑골공원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때우는 분들에게 그나마 밥 한끼라도 제공해주던 노력이 있었으니 꼴보수 우익집단이 백주 대낮에 백색테러까지도 결행할 수 있었던 거다. 물론 이 노인네들을 동원한 세력들이 갖잖게 "대한민국 어버이 연합"이라는 상호를 걸고 장사질을 하고 있다는 건 웃긴다. 난 니들같은 "어버이" 둔 적이 없다.
창립식이 난장판이 되어버린 "희망과 대안"은 그래서 쬐끔 불쌍하긴 하다. 단상을 점거한 소외된 노인들이 만세삼창을 하는 동안 찝찝하게 행사장을 빠져나왔을 이름짜한 사회각계의 인사들이 느꼈을 당혹감 역시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그러나 그다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이들의 "희망과 대안"에 전혀 희망도 느끼지 못했고 대안도 찾아볼 수 없었으니까.
박원순은 창립식에서 쓰려 했던 원고를 통해 "희망과 대안"의 성격이 뭔지를 밝히고 있다. 스스로를 "국가의 녹을 먹은 적이 없지만 늘 국가와 백성의 안위를 걱정하고 공동체가 위기에 처할 때에는 자신의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린 선비"와 동격의 반열에 올려놓으면서, 이 "위기의 상황"에서 "선거시기이든 평상시이든 국민의 존엄한 주권을 행사하는 모든 행동"을 하겠다고 선언한다. 재밌는 것은 이러한 결의가 언제나 그렇듯이 조건부라는 거다.
박원순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질책과 더불어 이 정권이 해야 할 7가지 시책을 제시한다. 좀 지루하더라도 7가지의 제목만 훑어보자면, 1) 당초 내세웠던 실용정부의 비전과 정책을 되살릴 것, 2) 정치공학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참모진을 주변에서 물리칠 것, 3) 공안기구를 앞세운 억압적 통치의 중단, 4) 진정성을 담아 국민과 소통하는 사회통합의 정치, 5) 시민사회에 대한 억압 중단 및 파트너십 복원, 6) 21세기의 가치와 비전을 담아내는 정부가 될 것, 7) 3년 후, 10년 뒤를 생각하는 대통령이 될 것 등이다. 박원순은 이 7가지 조건에 대해 "시무7책"이라는 거창한 이름까지 붙였다.
우선, "희망과 대안" 혹은 박원순 개인이 제시한 이 7가지 시책, 이름하여 "시무7책"은 앞으로 "희망과 대안"이라는 조직이 "존엄한 주권을 행사"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는 '조건'이라는 점을 확인해야 한다. 다시 말해, 이명박이 이런 조건을 들어주면 "희망과 대안"은 "존엄한 주권을 행사"하는 방식을 달리 할 수 있다는 거다. 어떻게? 당연히 정부와 협조적으로. 박원순은 노골적으로 이러한 조건부 협조를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다. 그래서 제안하는 것이 "국민통합 미래발전 원탁회의"의 소집. 이 원탁회의에서 "위의 여러 사항을 원점에서부터 논의하자고 한다면, 시민사회 진영이 국가와 우리 공동체의 발전을 위한 노력에 함께 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라고 박원순은 밝히고 있다.
이 제안을 박원순 혹은 "희망과 대안"이 제기할 때, 과연 이명박 정권이 이에 호응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제안했을까? 잠시 뒤에 다시 보겠지만 저 "시무7책"의 내용들은 이명박 정권에서 별달리 대응할만한 가치를 느끼지 못할 정도의 내용들이고, 게다가 "희망과 대안"이라는 조직이 하려고 하는 정치적 개입, 예컨대 내년 지방선거에 대한 능동적 개입이라는 거 역시 그들에게는 별로 위협거리가 되지 못한다. 당연히 원탁회의고 나발이고 그런 거 할 이유가 없다. 불과 몇 십명의 노인네들에게 원봉당해 창립식조차 제대로 성사시켜나가지 못하는 조직에 대해 이명박이 해줄 수 있는 일은 콧방귀 한 번 꿔주는 것 뿐.
결과론이지만, 어차피 "시무7책"을 제안한 입장에서도 이명박 정권이 전혀 호응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제안을 한 것이다. 결국 이건 말장난이다. 안 받을 거 뻔히 알면서 공개적으로 받아보라고 던져놓고, 안 받으니 우리는 싸운다는 식의 결기 발동. 사실 저 제안들은 이명박이 받고 자시고 할 수준의 내용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냐? "시무7책"에는 "희망과 대안"이라는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환언하자면, 정권이 "시무7책"을 보면서 덜덜 떨 일이 전혀 없다는 거다.
실용정부의 비전과 정책. 박원순은 이명박이 전봇대 뽑으라고 하는 것을 보고 이 정권의 실용정책에 일단의 기대를 가졌다고 한다. 웃겨 죽는다. 정말 그랬을까? 대통령이 길거리 전봇대의 제거까지 명령하는 나라, 이거 제정신인 나라가 아니다. 이걸 실용이라고 하면 스탈린이 예술작품의 생산기법까지 지시하고, 모택동이 참새소탕작전을 내리고, 김정일이 개인의 복장형태까지 지도지시하는 것도 실용이다. 이명박이 당초 내세웠던 실용정신이라는 것은 기껏해야 "어륀쥐"다. 거기에 기대를 걸었다는 건가? 이명박은 당연히 좋아할 일이다. 4대강도 실용인데 열심히 삽질하라는 충언정도?
간신모리배같은 주변 참모를 배제하라는 것 역시 웃기기는 마찬가지다. 이건 공안기구를 앞세운 억압통치 중단하라는 주장과도 상통하는데, 아닌 말로 알아서 기는 넘들을 어쩌란 건가? 다 내치라고? 그건 뒤집어 말하면 이명박에게 정치 그만하라는 말과 같은 거다. 주변참모문제론은 결국 박정희는 잘 했는데 그 옆에 있던 넘들이 문제였다는 식의 변명거리만 넘겨주는 것과 같다. 하긴 히틀러가 무슨 문제겠나? 괴벨스가 문제였지. 그런 건가? 더구나 이명박이 언제 공안기구를 앞세워 억압통치했나? 증거 있나? 노무현도 공안기구 앞세워 억압통치한 거 아니었나? 새만금, 이라크파병, 평택, 각종 사법살인 등등...
네 번째부터 마지막까지는 당연히 공자님 말씀이고 부처님 말씀이다. 걍 금과옥조 정도로 생각하면 족할 내용들이다. 오히려 이명박은 그런 차원에서는 명실상부 "정치"를 하고 있다. 자기 계급에 기반한 충실성, 그 충실성의 정확한 발현. 바로 이것이 정치의 ABC이고 이명박은 그 ABC에 충실하게 움직이고 있다. 오히려 그 반대편에서 "희망과 대안"을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들은 정치도 아니고 뭐도 아니고 그저 회색빛일 뿐이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시무7책"이라는 거, "희망과 대안"의 대외포장용이지 그 알맹이는 아무 것도 없다는 거다. 이명박이 대가리에 삽만 넣고 다닌다고 해서 껍데기 속에 알맹이가 있는지 없는지도 못알아볼 거라고 생각했다면 오판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들이 어떻게 해서든 내년 지방 선거에 개입하겠다는 의지다. 좋은 대안을 제시하고 훌륭한 사람을 발굴한다는 거다. 그런데 이게 과거 시민단체들이 죄다 모여서 진행했던 "낙선운동"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낙선운동은 네거티브 운동이었고, 이번 운동은 포지티브 운동? 사실 이런 류의 구분이라는 것은 전형적인 물타기인데, 네거고 포지고 간에 "희망과 대안"이 이야기하는 지방선거 개입이라는 거, 낙선운동하고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다. 전형적인 훈수두기라는 거, 혹은 경마경기 해설 같은 거 정도의 성격일 뿐이다.
거듭 지적해야 할 것은 소위 시민단체라는 사람들의 발 빼기다. 낙선운동이 되었든 당선운동이 되었든 간에 "희망과 대안"은 경기장 밖에서 논의될 뿐이지 결코 주체 스스로가 경기장 안에서 선수가 되지는 않는다. 자신들은 똥물에 발 안 담그고 오직 진흙밭 밖에서 고고하게 훈수두기. 그러면서 가끔 경마장 관전평같은 숭고한 말씀 몇 마디 던져 넣기. 그러면서도 얻을 것은 다 얻으려 한다. 하다못해 이명박 정권에게조차도 "시민사회와의 협력과 파트너쉽"이라는 거 복원해달라고 요구한다. 명목은 거버넌스를 통한 좋은 정치구현이나 그 실제는 결국 정권과의 밀월을 통한 이해관계. 당연히 지난 10년은 아름다운 추억이 될 것이고.
지난 포스팅에서 이해찬의 '연대'가 가지는 공허함을 이야기하면서, 시민단체들에게 연대해달라고 요청할 것이 아니라 정당에 들어가 움직이라고 요구하는 것이 더 적실하다고 꼬집은 적이 있다. 이거 농담이 아니다. 박원순을 비롯한 "희망과 대안"의 지도급 인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무슨 진보세력에 대안이 있느냐 없느냐 어쩌구 하지 말고, 당신들의 대안을 들고 그 대안에 적절한 정당에 들어가던지, 그것도 아니면 아예 "희망당"을 만들던지 하는 것이 훨씬 적절하다. 그렇게 훌륭한 "희망과 대안"을 경기장 밖에서 예배당 찌라시 뿌리듯 하고 있는 거보다는 더 좋지 않은가?
오늘 경향신문에 김상봉교수가 칼럼 하나 실었다. 김상봉은 아예 대놓고 "밖에서 훈수를 두시기 보다 차라리 민주당에 입당하시길 권한다"고 주문한다. 더불어 "대의민주주의 시대에 정당 밖에서 정치의 희망과 대안을 말하는 것은 기만이 아니면 착각일 뿐"이라고 일갈한다. 이분, 진짜 조용조용하고 책장 넘기는 것밖에는 아는 것이 없는 샌님선비같은 분인데, 이렇게 직설적으로 표현할 정도면 어지간히 답답했던가보다. 하긴 지금 상황에서 답답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희망과 대안" 창립식을 통해 공론화하려던 박원순의 "시무7책"이라는 것을 보면서, "희망과 대안"에는 결코 "희망과 대안"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다. 정치의 복원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정치를 하라. 민주주의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정치를 통해 경쟁하라. 정치판 한 가운데 뛰어들어서 "희망과 대안"을 내놓고 정면충돌하라는 이야기다. 그래야 민주주의가 복원된다. 상생과 화합은 민주주의의 가치가 아니다. 그건 그냥 민주주의를 고사시키겠다는 이야기에 다름 아닌 거고, 그렇게 정치가 실종되고 민주주의가 고사되는 와중에 갈곳을 잃은 노인네들은 도시락 하나에 휩쓸려 다니면서 애국심에 감복해 만세삼창을 하게 된다.
행인의 [희망과 대안 없는 "희망과 대안"] 에 관련된 글. 창립식의 헤프닝과 박원순의 글을 통해 기왕에 짐작은 했다만, "희망과 대안"은 좀 난처하다. 물론, 희망은 언제나 필요하다. 비록 절망의 한 가운데에 있더라도 언젠간 빛 볼 날이 있을 거라는 기대의 끈을 놓치지 않는 것은 일종의 생존전략이기도 하다. 게다가 그 희망이라는 게 그닥 돈도 들지 않는 거고, 덕담으로 한마디씩 하기에 얼마나 간편한가? &q